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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함께 한 공연 ‘개성 불시착’

김진숙 / 서울특별시 노원구

최00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첫 소풍 가는 아이의 마음처럼 설렜습니다.

“북에서 오셨다는 그 분은 어떤 분이실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

기대되는 마음이었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나고 바로 최00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푹 빠져 들었습니다.

말씀을 워낙 잘하기도 했지만 같은 민족으로 정서적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2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질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7월 어느 날, 서초동 정토사회회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북한이탈주민 강연회에 참여했던 활동가가 최00 님의 강의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한편으로는 2023년 7월 30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종교인 평화선언’이 수많은 세상 이야기 속에 조용히 묻혀가는 것에 안타까웠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벌어지고, 남과 북은 적대적인 관계로 서로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에 최00님의 이야기를 연극 공연으로 펼치자 제안했습니다.

<활동가 온라인 회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성공단 남측 기업 직원과 북측 여성의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어보자 마음을 모았습니다.

체제를 뛰어넘은 사랑은 2000년대 중반 개성공단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로, 남한의 신문기사에서도 다루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례입니다.

남한 기업 직원이 북한 여성 노동자와 사랑을 싹틔워 남으로 함께 내려오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발각이 되어 이별을 맞게 되었던 그 이야기로 연극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개성 불시착’!!

몇년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제목을 응용해 ‘개성 불시착’이라 제목을 지었습니다.

남한의 아동작가인 좋은벗들 활동가가 대본을 쓰고,

북에서 오신 최00님이 북의 사투리로 대사를 바꾸고,

음악과 영상으로 옷을 입혔습니다.

열정만으로 비전문가들이 빠른 속도로 대본 리딩을 하고 배역을 정해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2개월여간의 연습과정은 아래로부터의 통일을 경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연극에 사용된 음악, 배경영상은 북한의 것을 사용했고,

대사 역시 북한 사투리로 바꾸어 연습했습니다.

남과 북의 배우들이 하나하나 의논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배경이 개성공단이다 보니 배경 음악이나 효과음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가 북한과는 달라 여배우 의상을 직접 맞추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쇼핑으로 북한 병사 옷을 구입 했는데 중국 공안의 제복이 배달되어 반품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북한 문화를 새롭게 배울 수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북에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없어 처음 남으로 내려왔을 때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여성이 남성에게 손수건을 깔아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개성공단 초기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남한의 대중가요가 나훈아의 ‘나 하나의 사랑’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남한의 노동자들과 북한의 노동자들이 서로 운동경기를 하며 친목을 다지는 일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합니다.



배우들은 익숙치 않은 북한 사투리를 따라 배우며 대사를 외우고,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최00님은 본인 대사 외우랴 다른 배우들 사투리를 가르쳐 주랴 바빴지만 남과 북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는 마음에 온 힘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무대인사를 하는 배우들>


체육행사가 있는 날이면 북한 주민들이 모여 서로 어울려 추었다는 ‘훌라리 춤’도 배웠습니다.

공연 연습을 하며 우리는 개성공단 노동자가 되었고, 분단의 현실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일상의 관심사, 체육행사, 남남북녀의 사랑이야기를 20분간의 짧은 시간에 담아내기 어려웠지만 연습을 거듭하면서 줄이고 수정하고 삭제하고를 반복하여 드디어 무대에 올렸습니다.

<훌라리 춤>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북한 사투리에 관객들이 놀랐고,

팔씨름에 졌음에도 남쪽 동무를 일부러 봐줬다고 허풍 떠는 보위부 동지를 보며 함께 웃었고,

훌라리춤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치며 흥겨웠습니다.

<체육대회 중 팔씨름>


영원한 사랑을 바랐던 남남북녀의 이별앞에서는 모두 다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이별 장면>


첫번째 공연 한달 후 북한이탈주민들 앞에서 ‘개성 불시착’ 공연을 다시 했습니다.

좋은벗들 김장축제가 있는 날 북한이탈주민들과 봉사자들이 김장을 함께 담근 후,

2부 여흥의 시간에 공연을 했습니다.

<김장 축제 2부 여흥의 시간>


첫공연 때와는 달리 북한이탈 주민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게 여간 긴장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고 무대에 올랐고, 극이 진행될수록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관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배우들도 눈물이 터졌습니다.

북받치며 흔들리는 감정에 목소리도 떨리고 대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의 마음의 파동이 공명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구나, 같이 일을 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 같은 놀이를 하며 마음에서부터 통일이 시작되는 것이구나!’ 알았습니다.

휴전 상태인 한반도의 현실을 두 달 여 동안 짧은 연극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확인했지만,

북에서 오신 최00님께서는 늘 말씀 하셨습니다.

“이미 통일을 우리가 만들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