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O P

[오늘의 북한소식]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의 북한소식」을 발행한지도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북한 최고지도자와 정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좋은벗들은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알려내는 것이 남북한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일상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북한 내부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는지 알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와 국내외 정세, 그리고 우리 국민의 통일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남북한 평화통일과 민족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기회로 바꾸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의 북한소식」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잠시 휴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012.08.01(수)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오늘의 북한소식 466호(2012.08.01)

신의주 채하시장, 화교 좌판 상인 등장

국경지역, 자전거가 제일 잘 팔려

‘돌강원도’군인도, 농민도 죽을 지경

보위사령부 단련대도 직급 차별

사금반 단련대생, 고생 막심

신의주 채하시장, 화교 좌판 상인 등장

평안북도 신의주 채하시장에 좌판 장사를 하는 화교들이 있다. 일반 공산품 판매 금지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국내 상인들의 입지가 좁아진 틈을 탄 것이다. 화교들은 돈주의 역할을 하거나, 도매상인으로 물건을 소매상인들에게 넘겨주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가 심해지면서, 화교들의 판매망에도 제약이 생겼다. 중국 물건을 팔다가 회수당하거나 북한 소매상인들의 피해가 심하다보니, 직접 관리하려는 화교들이 생긴 것이다. 채하시장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오정숙(가명)씨는 화교를 끼고 장사를 해야 안전하다고 했다. 신의주의 한 간부도 “우리 시장에 대한 자료가 외국에 많이 폭로됐다고 들었다. 그래서 보위부원들이 CCTV를 설치해두고 몰래 사람들의 동태를 찍는다. 누가 무엇을 팔고 사는지, 특히 판매하는 사람을 주목해서 잡아들이려고 그런다. 하도 감시가 심하니까 다들 꼼짝 못하고 한동안 장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장사를 못하면 돈주 화교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직접 나서게 된 거다. 화교들이 옆에 있으면 아무래도 보위부원들이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화교를 끼고 장사를 하면 안전하니까 조선 돈주가 돈 없는 화교를 붙잡아 동업을 하려는 경우가 생길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경지역, 자전거가 제일 잘 팔려

함경북도와 량강도 등 국경연선지역에서 상반기에 눈에 띄게 많이 팔리는 품목은 자전거이다. 자전거를 되걸이 판매하는 한 상인은“올 봄에 장사가 잘 될 때는 보름 만에 500만 원이 넘게 팔 때도 있었다”며 다른 장사에 비해 자전거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했다. 한 달이면 중국 돈으로 평균 1만-1만 5천 위안은 벌어들인다고 했다. 다른 장사는 거의 안 되는데, 유독 자전거 장사만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먹고 살려면 아무리 배고파도 움직여야 한다. 자전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자전거가 있어야 시나 군으로 장사를 다닐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귀한 장사 밑천”이라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 라남구역에 사는 정룡일(가명)씨는 김책제철소 노동자이지만, 옥수수 배급마저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자전거 장사에 나섰다. 정씨는 2008년도에 식량 사정이 어려울 때는 공장에 들어오는 콕스(원료)를 몰래 빼돌리는 장사를 했다. 몇 번 발각돼 뇌물로 무마했지만, 2010년도에는 단련대행을 피할 수 없었다. 3개월 노동단련대 생활 후에 김책제철소에 꼬박꼬박 출근했지만, 역시 오래지 않아 결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됐다. 강원도 원산에서 자전거 장사를 하던 사촌 형님의 도움으로, 중고자전거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다시 단련대에 붙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다가도, 식구들 배곯는 것을 보고 다시 장사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못 먹어도, 자전거는 산다. 나중에 자전거가 잘 안 팔리면 또 다른 장사꺼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며, 요즘은 자전거가 제일 잘 팔리고 있다고 했다.

‘돌강원도’군인도, 농민도 죽을 지경

강원도에는 2개 정규군이 편재돼 있는데, 1군단과 5군단 등 2개 군단과 전투 기재가 배치돼 있다. 강원도 주민들보다 군인수가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군대 인원이 많다. 하도 먹을 것이 없고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초모생들은 이곳에 배치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제 한 몸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군인들은 강원도를 ‘돌강원도’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돌과 군대뿐이라 나온 말이다. 강원도 주둔 군인들은 누구나 “전쟁이 일어나면, 허약한 군인들이 싸우지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 상부에서는 우리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있다고 하는데 들을 때마다 기가 찬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1차 타격에 다 죽거나, 군대 인원수나 채우자고 복무시키는 것 같다”고 자조한다.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정광일(가명)씨는 “허약자들의 원기가 잘 회복되지 않는다. 강원도에서 군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 번쯤은 영양실조를 겪어서 회복돼야 만기 제대할 수 있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결핵환자들도 많은데, 군대에서 영양실조도 그렇지만 결핵환자들도 살아나가기가 참 힘들다. 거의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집에 보내니까 돌아가면 대개 빨리 죽는다”고 했다.

강원도 평강군에 주둔하는 한 하사관은 “돌강원도라는 말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올해는 진짜 돌과 바람밖에 없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안 보인다. 가뭄 때문에 올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쳐서 농민들도 다 죽게 생겼고, 군대도 죽겠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모양이 들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인민들 하는 말이, 군인들이 농작물을 훔치러 들어오면 막지 않는다고 한다. 가져갈 것도 없고, 군인들이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너무 험악해서 무섭단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위사령부 단련대도 직급 차별

함경남도 금야군 보위사령부 단련대에는 사병들과 하전사, 군관들이 같이 수용된다. 농산반과 사금반, 목공반, 축산반 등 일반 로동단련대와 별다를 바 없는 작업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군관과 하사관 및 병사 비율은 해마다 약간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로 6대 4 정도로 군관이 더 많다. 단련대 형기가 끝나면 본대 복귀할 수 있는 단련대생과 바로 생활제대하는 단련대생으로 나뉘는데, 후자들이 주로 고되게 힘쓰는 일을 한다. 직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비교적 쉬운 집짐승을 키우는 일은 소대장 이상의 군관들이 하고, 탄광이나 사금 등 힘든 일은 사병들이 맡는다. 가장 차별이 심한 부분은 역시 먹는 문제다. 식당에서 옥수수밥을 거의 정량대로 받는 것은 군관들로, 밥 식기에 수평상태로 받는다. 하전사들이 소금국에 겨우 죽 한 그릇 먹을까 말까한 것과 비교된다. 단련대의 한 관계자는“군관들은 가족들이 면회도 자주 오는 편이라 옥수수펑펑이가루라도 잘 먹는데, 하전사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바짝 말라간다. 영양실조에 각종 병으로 죽는 사람들도 다 하전사들”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단련대 정문 안에 들어가면, ‘도주하는 자, 자멸이다’, ‘일하지 않는 자, 밥을 먹을 수 없다’ 등 갖가지 구호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단련대생들은 이런 구호에 무감각해지지만 아무래도 매일 쳐다보게 되니 스스로 새기게 된다. 다들 육체적으로 힘들고 배고픈 생활에 고통스러워하면서,‘무조건 살아서 나가 죄를 씻자’는 구호를 새기면서 단련대 생활을 견딘다”고 전했다. 간혹 일을 열심히 해서 타의 모범을 보인 사람은 모범 퇴소를 받기도 하는데, 이조차 하전사보다는 군관들이 많다. 한편 단련대에서 퇴소할 때엔,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절대 함구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사금반 단련대생, 고생 막심

함경남도 금야군 보위사령부 단련대에는 사금채취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매일 작업량이 정해지는데, 시금반 단련대생들은 하루 작업 과제를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인데, 과제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달성할 때까지 일해야 한다. 보통 하루 10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12시간 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금반은 다른 작업반보다 끼니를 잘 받는 편이다. 옥수수밥을 먹여서라도 일을 많이 시켜 사금을 많이 생산하자는 의도이다.

지난 4월부터 사금계획 실적이 감소해 단련대생들의 노동 강도가 더 세졌다. 채취구역을 옮겨가면서 하는데, 하루종일 강변에서 일하다보면 금새 배가 고파진다. 단련대생들은 규정대로 주는 옥수수밥을 먹고도 성에 차지 않아 한다. 단련대에서는 사금계획을 달성하면 끼니를 더 주는 것으로 사금 채취를 독려하고 있다. 하루 700g이 정량이라면 900g으로 올려주는 식이다. 지난 7월에는 사금작업반 3반 단련대생들이 과제를 수행하자, 옥수수묵지가루 2kg을 얹어주기도 했다. 3반 단련대생들은 묵지가루에 배추 시래기를 많이 섞어 가마솥에 넣어 끓여먹었다(끝).

오늘의 북한소식 465호

■ 시선집중

보위사령부, “도주하면 사살하라”

보위사령부 단련대의 노동 강도는 일반 단련대보다 세다. 노동시간에 휴식 시간을 따로 주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려면 2명씩 짝을 이뤄 다녀와야 한다. 둘 중 한 명이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혹여 짝이 도주에 성공했을 경우, 짝이 되었던 사람은 단련기간이 1년 연장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는 감시 체제다. 단련대에서 도주하다 체포된 사람은 교화소 10년 형을 받는다. 단련대생의 도주를 막기 위해 반장과 분조장들은 작업할 때 15분마다 인원 점검을 하거나 번호를 부른다. 이동작업을 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 작업할 때 무장 감시하는 것은 보위사령부 소속 계호중대나 소대에서 담당한다. 보통 작업반 1개에 50여명이 있는데, 7명으로 구성된 1개 계호 분대가 무장 감시한다. 보위사령부 단련대의 콘크리트 담장 높이는 5-6미터 정도 다. 저녁에는 탐조등을 켜놓고, 기관총을 설치한 포대가 4대 정도 있다. 하도 감시가 삼엄하다보니, 도주하려고 꿈꾸는 단련생들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도주자가 발견되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보위사령부 지시가 내려온 뒤로 시도하려는 사람이 없다. 도주 다음으로 단련대에서 신경 쓰는 것은 패싸움이나 폭행 사건이다. 군인들이다보니 단련대생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면 피를 부르는 심각한 폭력으로 번질 때가 많다.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 단체 기합은 기본이고 단련대 기간을 각자 10일씩 연장시킨다

사병 가족들, “단련대 간 것도 몰라”

군민 관계 범죄 즉 농작물을 도적질하거나 길 가던 사람의 돈을 털다 걸려 들어온 미혼 하사관이나 사병들은 면회 오는 가족이 거의 없다. 병에 걸려 죽거나 영양실조로 완전히 폐인이 되어 운신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하사관이나 사병들이다. 단련대에서는 아픈 것도 제 마음껏 아프지 못한다. 일주일 누워 앓는다고 치면, 단련형기가 그만큼 일주일 연장되기 때문이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픈 마음에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 가동 일수를 채운다. 무장 감시에 꼬장꼬장한 작업반장을 만나면 아무리 아파도 일을 슬렁슬렁 할 수도 없다. 한 관계자는 “우리 단련대의 로동강도가 얼마나 강한 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작년 말에 누구는 피오줌을 싸면서도 일하러 나왔다가 결국 얼마 못 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맥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1년 이상 처벌을 받은 단련대생들이다. 군관들은 가족들이 자주 면회를 오는 편이라 괜찮지만, 하사관이나 일반 사병들은 집에서 면회를 오지 못한다”고 했다. 사병들이나 하사관에게도 부모형제는 있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부대에서 집에 통보를 안 해준다. 부모형제들은 우리 단련대에 온 사실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면회를 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급성질병으로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은 군의소에서 집에 보내라고 권고하기도 하는데, 승인이 떨어지는 데만 최소 3개월이 걸려서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다.

군관 단련대생들, 가족 면회로 목숨 연명

군관 단련대생들이 일반 단련대생들보다 좋은 점은 가족 면회를 월 1회씩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면회 규정에 따르면 보통 6개월에 1회 가능한데, 군관들은 월 1회 가능하다. 간혹 국경경비대사령부에서 근무하다 들어온 군관들 중에 사업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면회 음식을 끼니때마다 받아먹는 사람도 있다. 국경연선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면회 직일관(당직)을 잘 구슬려 편의를 받는다. 이런 사람은 열의 한두 명 정도이고, 대다수 군관들은 아내가 월 1회 방문해서 들여보내주는 옥수수펑펑이가루로 연명한다. 단련대에서 주는 식사는 옥수수묵지가루죽에 소금물을 푼 미역국, 어쩌다 한 번 된장국에 염장 무에 불과해 영양실조자가 속출한다. 아파도 약이 없어 가족들의 면회가 더 절실하다.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단련대생들의 아내나 부모형제들은 음식 외에 일반적인 설사약이나 감기약, 열내림약(해열제) 같은 기초 약품까지 챙겨간다. 약품을 넣어주어도 바로 단련대생에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면회 직일관이 받아 작업반 반장에게 전달하면, 보관하고 있다가 본인이 요청할 때 주도록 되어 있다. 가족들은 면회 물품이 남편/아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직일관이나 하사관 계호원에게 바칠 담배를 반드시 챙겨간다. 음식이나 약품 등은 잘 전달되는 편이지만, 다른 면회품은 접수가 잘 안 된다.

보위사령부 단련대, 사상개조 후 복귀자 많아

함경남도 금야군에는 보위사령부 단련대가 있다. 보위사령부가 직접 통제하는 곳으로, 집중적으로 사상 개조를 시켜 현직에 복귀시키거나, 퇴소 이후 생활제대를 시키는 곳이다. 국경경비사령부 소속 국경경비 려단과 대대, 중대, 소대 등에서 밀매매 건으로 걸리거나 도강을 도와주다 적발된 사람들이 많이 간다. 그밖에 일반 군복무 중 농작물을 훔쳐 먹다 농민들을 다치게 하거나, 산중에서 강도짓을 벌이다가 붙잡힌 범죄자들도 간다. 사상 개조가 목표다보니 일반 단련대보다 사상 학습 시간의 비중이 크다. 단련대생들을 교양하고, 노동을 지휘하는 교원들을 작업반마다 소좌(대재장)급으로 한 명씩 배치한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저녁 9시까지 하루종일 노동과 3-40분간 식사를 반복한다. 9시에 저녁식사를 마치면, 11시 45분까지 정치사상 학습을 한다.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동지의 위대성에 대한 학습이 주요 내용이다. 밤 12시가 넘어야 잠을 자고, 또 다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므로,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군관들은 일반 사병들과 달리, 퇴소 후 복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일반 사병들보다는 사상 교양 학습에 열성을 보이는 편이다. 18-20세의 어린 하사관들은 군부대 지휘관들이 요청할 경우 대체로 다시 복귀시킨다.

작년 폭풍군단 검열 걸린 군관들, 보위사령부 단련대 수감

작년 여름 량강도와 함경북도에 불어 닥쳤던‘폭풍군단검열’에 걸린 군관들을 대부분 보위사령부 단련대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경지대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등 군 고위 간부는 물론, 보위부원과 보안원 등이 밀매매와 도강문제, 비사회주의 행위 등으로 적발돼 보위사령부에서 취조를 받았다. 막대한 뇌물을 써서 한국문세를 비껴 교화소행을 면한 사람들이 주로 보위사령부 단련대에 갔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단련대에서 생활한 뒤 출당과 철직된 뒤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사상이 개조됐다고 평가를 받으면 현직에 복귀된다. 보위사령부에 돈을 많이 바치면 복귀에 유리하다. 다만 작년에는 새 지도부의 인물 교체 성격이 있어서 범죄의 경중 여부와 별도로 다뤄졌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폭풍군단 검열에서 걸린 사람들 중 주요 교체 대상들은 교화소에, 나머지는 단련대에 많이 간 것으로 전했다.

■ 정치생활

보위사령부, “도주하면 사살하라”

보위사령부 단련대의 노동 강도는 일반 단련대보다 세다. 노동시간에 휴식 시간을 따로 주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려면 2명씩 짝을 이뤄 다녀와야 한다. 둘 중 한 명이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혹여 짝이 도주에 성공했을 경우, 짝이 되었던 사람은 단련기간이 1년 연장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는 감시 체제다. 단련대에서 도주하다 체포된 사람은 교화소 10년 형을 받는다. 단련대생의 도주를 막기 위해 반장과 분조장들은 작업할 때 15분마다 인원 점검을 하거나 번호를 부른다. 이동작업을 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 작업할 때 무장 감시하는 것은 보위사령부 소속 계호중대나 소대에서 담당한다. 보통 작업반 1개에 50여명이 있는데, 7명으로 구성된 1개 계호 분대가 무장 감시한다. 보위사령부 단련대의 콘크리트 담장 높이는 5-6미터 정도 다. 저녁에는 탐조등을 켜놓고, 기관총을 설치한 포대가 4대 정도 있다. 하도 감시가 삼엄하다보니, 도주하려고 꿈꾸는 단련생들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도주자가 발견되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보위사령부 지시가 내려온 뒤로 시도하려는 사람이 없다. 도주 다음으로 단련대에서 신경 쓰는 것은 패싸움이나 폭행 사건이다. 군인들이다보니 단련대생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면 피를 부르는 심각한 폭력으로 번질 때가 많다.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 단체 기합은 기본이고 단련대 기간을 각자 10일씩 연장시킨다

보위사령부 단련대, 사상개조 후 복귀자 많아

함경남도 금야군에는 보위사령부 단련대가 있다. 보위사령부가 직접 통제하는 곳으로, 집중적으로 사상 개조를 시켜 현직에 복귀시키거나, 퇴소 이후 생활제대를 시키는 곳이다. 국경경비사령부 소속 국경경비 려단과 대대, 중대, 소대 등에서 밀매매 건으로 걸리거나 도강을 도와주다 적발된 사람들이 많이 간다. 그밖에 일반 군복무 중 농작물을 훔쳐 먹다 농민들을 다치게 하거나, 산중에서 강도짓을 벌이다가 붙잡힌 범죄자들도 간다. 사상 개조가 목표다보니 일반 단련대보다 사상 학습 시간의 비중이 크다. 단련대생들을 교양하고, 노동을 지휘하는 교원들을 작업반마다 소좌(대재장)급으로 한 명씩 배치한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저녁 9시까지 하루종일 노동과 3-40분간 식사를 반복한다. 9시에 저녁식사를 마치면, 11시 45분까지 정치사상 학습을 한다.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동지의 위대성에 대한 학습이 주요 내용이다. 밤 12시가 넘어야 잠을 자고, 또 다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므로,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군관들은 일반 사병들과 달리, 퇴소 후 복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일반 사병들보다는 사상 교양 학습에 열성을 보이는 편이다. 18-20세의 어린 하사관들은 군부대 지휘관들이 요청할 경우 대체로 다시 복귀시킨다.

작년 폭풍군단 검열 걸린 군관들, 보위사령부 단련대 수감

작년 여름 량강도와 함경북도에 불어 닥쳤던‘폭풍군단검열’에 걸린 군관들을 대부분 보위사령부 단련대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경지대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등 군 고위 간부는 물론, 보위부원과 보안원 등이 밀매매와 도강문제, 비사회주의 행위 등으로 적발돼 보위사령부에서 취조를 받았다. 막대한 뇌물을 써서 한국문세를 비껴 교화소행을 면한 사람들이 주로 보위사령부 단련대에 갔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단련대에서 생활한 뒤 출당과 철직된 뒤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사상이 개조됐다고 평가를 받으면 현직에 복귀된다. 보위사령부에 돈을 많이 바치면 복귀에 유리하다. 다만 작년에는 새 지도부의 인물 교체 성격이 있어서 범죄의 경중 여부와 별도로 다뤄졌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폭풍군단 검열에서 걸린 사람들 중 주요 교체 대상들은 교화소에, 나머지는 단련대에 많이 간 것으로 전했다.

■ 사회

사병 가족들, “단련대 간 것도 몰라”

군민 관계 범죄 즉 농작물을 도적질하거나 길 가던 사람의 돈을 털다 걸려 들어온 미혼 하사관이나 사병들은 면회 오는 가족이 거의 없다. 병에 걸려 죽거나 영양실조로 완전히 폐인이 되어 운신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하사관이나 사병들이다. 단련대에서는 아픈 것도 제 마음껏 아프지 못한다. 일주일 누워 앓는다고 치면, 단련형기가 그만큼 일주일 연장되기 때문이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픈 마음에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 가동 일수를 채운다. 무장 감시에 꼬장꼬장한 작업반장을 만나면 아무리 아파도 일을 슬렁슬렁 할 수도 없다. 한 관계자는 “우리 단련대의 로동강도가 얼마나 강한 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작년 말에 누구는 피오줌을 싸면서도 일하러 나왔다가 결국 얼마 못 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맥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1년 이상 처벌을 받은 단련대생들이다. 군관들은 가족들이 자주 면회를 오는 편이라 괜찮지만, 하사관이나 일반 사병들은 집에서 면회를 오지 못한다”고 했다. 사병들이나 하사관에게도 부모형제는 있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부대에서 집에 통보를 안 해준다. 부모형제들은 우리 단련대에 온 사실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면회를 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급성질병으로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은 군의소에서 집에 보내라고 권고하기도 하는데, 승인이 떨어지는 데만 최소 3개월이 걸려서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다.

군관 단련대생들, 가족 면회로 목숨 연명

군관 단련대생들이 일반 단련대생들보다 좋은 점은 가족 면회를 월 1회씩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면회 규정에 따르면 보통 6개월에 1회 가능한데, 군관들은 월 1회 가능하다. 간혹 국경경비대사령부에서 근무하다 들어온 군관들 중에 사업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면회 음식을 끼니때마다 받아먹는 사람도 있다. 국경연선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면회 직일관(당직)을 잘 구슬려 편의를 받는다. 이런 사람은 열의 한두 명 정도이고, 대다수 군관들은 아내가 월 1회 방문해서 들여보내주는 옥수수펑펑이가루로 연명한다. 단련대에서 주는 식사는 옥수수묵지가루죽에 소금물을 푼 미역국, 어쩌다 한 번 된장국에 염장 무에 불과해 영양실조자가 속출한다. 아파도 약이 없어 가족들의 면회가 더 절실하다.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단련대생들의 아내나 부모형제들은 음식 외에 일반적인 설사약이나 감기약, 열내림약(해열제) 같은 기초 약품까지 챙겨간다. 약품을 넣어주어도 바로 단련대생에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면회 직일관이 받아 작업반 반장에게 전달하면, 보관하고 있다가 본인이 요청할 때 주도록 되어 있다. 가족들은 면회 물품이 남편/아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직일관이나 하사관 계호원에게 바칠 담배를 반드시 챙겨간다. 음식이나 약품 등은 잘 전달되는 편이지만, 다른 면회품은 접수가 잘 안 된다.

오늘의 북한소식 464호

■ 시선집중

굶어 죽는 안쪽지역 농민들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이른바 ‘안쪽’ 지역에서는 굶어죽는 농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농번기에도 일을 못 나오고, 산나물과 풀을 뜯으러 다니는 농민 세대가 많았다. 옥수수가루를 아껴 먹느라고, 풀에 옥수수가루 한 수저를 넣어 끓인 풀죽으로 목숨 줄을 연명하는 상황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재령군, 봉천군 등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죽이라도 두 끼 먹는 집은 잘 먹는 축에 속한다. 온 하루 굶는 세대가 전체 주민의 절반이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서해안은 6월 20일이 넘어가면서 올감자를 수확할 때이지만, 가뭄 피해로 콩알만한 감자가 많아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고비를 넘겨야 올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햇감자도 이 모양이고, 옥수수도 이삭이 안 여물 것 같아서 정말 큰일이다. 계속 농민들이 죽어가니 애가 탄다”고 걱정했다

회령 성북농장, 절반의 모가 말라죽어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로동자구 성북협동농장에서는 가뭄으로 벼 모판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을 대지 못해 말라 죽은 모가 절반이 넘는다. 식량증산에 힘쓰라는 중앙당의 지시가 거듭 내려오고 있지만, 벼이삭이 얼마나 나올지 농장일군들의 시름이 깊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벼농사 피해는 물론, 밭작물 파종이 늦어져 그 피해 역시 심각하다. 병해충이 증가하는데 농약이 없어 손으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장 관리 대책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회령시당에서는 “올해 농사를 망치면, 관리 일군 전원이 책임지고 법 추궁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뿐이어서 농장일군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함북, 가뭄 피해 옥수수 급감할 듯

함경북도 도당에서는 관내 농장들의 가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함경북도는 산간지대가 많아 옥수수 농사 비중이 큰 데 올 봄 가뭄에 옥수수가 여물지 못하고 다 말라 비틀어져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경북도 농장 일군들은 정보당 2-3톤 정도 예상하는데, 산골을 낀 농촌에서는 1톤도 못 거두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당의 한 간부는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9월이 되어봐야 보다 근거 있는 수확량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나마 황해남북도나 평안남도 지역보다는 괜찮은 편”이라며 씁쓸해했다.

평양 살림집 건설 제대군인들, 고대하던 집에 돌아왔지만

2009년부터 평양 살림집 건설에 투입됐던 군인 일부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돌아온 김병학(가명)씨는 만 4년 만의 귀향이라고 했다. 제대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선군정신의 기치를 받들어 조국이 부여한 임무를 달성하기위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아야했다. 김씨는 그래도 공사가 일찍 끝난 편이고, 현장에 남아있는 동료들도 많다. 그토록 고대하고 바라던 집에 돌아왔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승과 저승이라고 할 정도다. 살림집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동원됐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다 제대로 못하면서 살림집을 지었는데, 다 지으니 우리가 쓸모없어진 거다. 아무 보상도 없이 지방으로 돌려보냈다. 그것도 괜찮다. 조국에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니까. 막상 우리 집에 오니, 어머니는 소토지 농사를 짓다가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하고, 형수는 집을 떠났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쓰레기장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다. 어린 두 조카는 고개도 못 가누고, 쫄쫄 굶고 있지. 형이 죽고 없으니, 이제는 내가 이 집의 세대주가 되어야겠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겁이 난다. 제대군인이라고 배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너무 한심하니까 눈이 뒤집어지는 거”라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평양시 살림집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은“해도 너무 한다. 실내 공사가 안 끝난 곳이라도 높이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다가 자기네 집에 돌아가면 “내가 뭐 하다 온 건가 하고 회의감이 몹시 든다고 했다. 특히 제대군인들은 제 앞으로 땅집 하나 구하지 못해, 부모집이나 형제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소외감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위의 평양’, 창전거리

평양 간부들은 창전거리를 ‘평양 위의 평양’으로 부른다.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에 들어선 화려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살림집을 배정받지 못한 핵심 간부들 사이에 말이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창전거리 살림집에 냉동기와 세탁기를 다 수입제로 들여놓고, 보안도 철저하게 해서 일단 혁명 2세대와 3세대를 입주자로 선별했다. 대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살던 사람들인데, 여기에 뽑히지 못한 간부들도 꽤 많다. 특히 만경대 가문인데도 혜택을 받지 못한 간부들의 반발심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요 당, 정 간부들을 비롯해 체육인, 예술인, 과학자들의 주거지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서 만수대지구 창전거리로 바뀌면서 지역에 따른 새로운 신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라. 십 수 년 동안 같은 거리에 살던 이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창전거리로 이사 가는데, 자기 집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집안과 개인이 당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냐. 아무리 잘 나가던 집안이라도, 끈 떨어진 신세로 비쳐지는 것이 불쾌할 것”이라며, 기존 핵심 계층 사이에서도 창전거리 새 아파트가 위화감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 식량소식

굶어 죽는 안쪽지역 농민들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이른바 ‘안쪽’ 지역에서는 굶어죽는 농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농번기에도 일을 못 나오고, 산나물과 풀을 뜯으러 다니는 농민 세대가 많았다. 옥수수가루를 아껴 먹느라고, 풀에 옥수수가루 한 수저를 넣어 끓인 풀죽으로 목숨 줄을 연명하는 상황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재령군, 봉천군 등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죽이라도 두 끼 먹는 집은 잘 먹는 축에 속한다. 온 하루 굶는 세대가 전체 주민의 절반이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서해안은 6월 20일이 넘어가면서 올감자를 수확할 때이지만, 가뭄 피해로 콩알만한 감자가 많아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황해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고비를 넘겨야 올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햇감자도 이 모양이고, 옥수수도 이삭이 안 여물 것 같아서 정말 큰일이다. 계속 농민들이 죽어가니 애가 탄다”고 걱정했다

회령 성북농장, 절반의 모가 말라죽어

함경북도 회령시 유선로동자구 성북협동농장에서는 가뭄으로 벼 모판이 큰 피해를 입었다. 물을 대지 못해 말라 죽은 모가 절반이 넘는다. 식량증산에 힘쓰라는 중앙당의 지시가 거듭 내려오고 있지만, 벼이삭이 얼마나 나올지 농장일군들의 시름이 깊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벼농사 피해는 물론, 밭작물 파종이 늦어져 그 피해 역시 심각하다. 병해충이 증가하는데 농약이 없어 손으로 벌레를 잡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장 관리 대책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회령시당에서는 “올해 농사를 망치면, 관리 일군 전원이 책임지고 법 추궁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뿐이어서 농장일군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함북, 가뭄 피해 옥수수 급감할 듯

함경북도 도당에서는 관내 농장들의 가뭄 피해 실태 조사를 벌였다. 함경북도는 산간지대가 많아 옥수수 농사 비중이 큰 데 올 봄 가뭄에 옥수수가 여물지 못하고 다 말라 비틀어져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경북도 농장 일군들은 정보당 2-3톤 정도 예상하는데, 산골을 낀 농촌에서는 1톤도 못 거두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당의 한 간부는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고, 9월이 되어봐야 보다 근거 있는 수확량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나마 황해남북도나 평안남도 지역보다는 괜찮은 편”이라며 씁쓸해했다.

■ 사회

평양 살림집 건설 제대군인들, 고대하던 집에 돌아왔지만

2009년부터 평양 살림집 건설에 투입됐던 군인 일부가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돌아온 김병학(가명)씨는 만 4년 만의 귀향이라고 했다. 제대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선군정신의 기치를 받들어 조국이 부여한 임무를 달성하기위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아야했다. 김씨는 그래도 공사가 일찍 끝난 편이고, 현장에 남아있는 동료들도 많다. 그토록 고대하고 바라던 집에 돌아왔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피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승과 저승이라고 할 정도다. 살림집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동원됐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다 제대로 못하면서 살림집을 지었는데, 다 지으니 우리가 쓸모없어진 거다. 아무 보상도 없이 지방으로 돌려보냈다. 그것도 괜찮다. 조국에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니니까. 막상 우리 집에 오니, 어머니는 소토지 농사를 짓다가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하고, 형수는 집을 떠났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쓰레기장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다. 어린 두 조카는 고개도 못 가누고, 쫄쫄 굶고 있지. 형이 죽고 없으니, 이제는 내가 이 집의 세대주가 되어야겠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겁이 난다. 제대군인이라고 배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너무 한심하니까 눈이 뒤집어지는 거”라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평양시 살림집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은“해도 너무 한다. 실내 공사가 안 끝난 곳이라도 높이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다가 자기네 집에 돌아가면 “내가 뭐 하다 온 건가 하고 회의감이 몹시 든다고 했다. 특히 제대군인들은 제 앞으로 땅집 하나 구하지 못해, 부모집이나 형제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소외감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위의 평양’, 창전거리

평양 간부들은 창전거리를 ‘평양 위의 평양’으로 부른다.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에 들어선 화려한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살림집을 배정받지 못한 핵심 간부들 사이에 말이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창전거리 살림집에 냉동기와 세탁기를 다 수입제로 들여놓고, 보안도 철저하게 해서 일단 혁명 2세대와 3세대를 입주자로 선별했다. 대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살던 사람들인데, 여기에 뽑히지 못한 간부들도 꽤 많다. 특히 만경대 가문인데도 혜택을 받지 못한 간부들의 반발심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요 당, 정 간부들을 비롯해 체육인, 예술인, 과학자들의 주거지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서 만수대지구 창전거리로 바뀌면서 지역에 따른 새로운 신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라. 십 수 년 동안 같은 거리에 살던 이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창전거리로 이사 가는데, 자기 집만 덩그러니 남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집안과 개인이 당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냐. 아무리 잘 나가던 집안이라도, 끈 떨어진 신세로 비쳐지는 것이 불쾌할 것”이라며, 기존 핵심 계층 사이에서도 창전거리 새 아파트가 위화감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오늘의 북한소식 463호

■ 시선집중

청진 송평구역 주민들, “옥수수 1kg로 1주일 버틴다”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주민들은 ‘하루에 옥수수 1kg 벌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옥수수 1kg는 2,000원에서 2,500원선에서 거래된다. 수남구역에서 중고옷 장사를 하는 금영(가명)씨는 하루에 2,000원 벌기도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못 벌어도 쌀 1kg는 거뜬히 벌곤 했는데, 이젠 1kg에 4,000원이 넘어가는 쌀은 바라지도 않는다. 옥수수 1kg 벌이를 못할 때가 많다보니, 아침에는 풀죽을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 옥수수 국수를 먹는다. 이 정도 벌이도 못하는 집들은 옥수수가루에 산나물을 섞어 물을 많이 불린 풀죽으로만 두 끼를 먹는다. 송평구역의 한 인민위원회 일군은 “우리 구역의 한 1/3 정도가 풀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옥수수가루를 최대한 아껴 먹어야 하니까, 옥수수 1kg로 일주일 버티는 집들이 많다. 작년에는 옥수수가루 1kg가 네 식구가 3일 먹을 분량이었는데, 지금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영양실조자가 많고, 결국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도(함경북도)는 그래도 먹고 사는 편에 속한다. 안쪽 지방(황해도, 평안남도, 강원도)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살기가 바쁘다고 들었다”며 송평구역 주민의 식생활이 안쪽보다는 낫다고 했다.

생활난으로 인한 범죄 증가

북한 사회 내 빈익빈 부익부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소수의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어려운 계층은 더 힘들어졌다. 함경북도 청진 라남구역에 사는 김책제철소 노동자 가족들은 생활난으로 집 기물을 팔고 있는데, 상인들이 이를 사들여 중국 국경연선지역에 내다 판다. 주민들의 생활 형편이 워낙 힘들다보니 대낮에도 각종 범죄 사례가 속출한다. 청진시의 한 보안일군은 지난 7일, 수남시장 주변에서 자전거 절도 사건이 하루새 3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하루에 연달아 자전거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포항구역 수북동에서는 세 명의 강도단이 음식매대원을 구타하고 판매대금을 털어가기도 했다. 동네를 배회하는 꽃제비들의 소행이 아니겠느냐며, 꽃제비들을 잡아들여 수사를 벌였는데 이틀 만에 범인들이 붙잡혔다. 꽃제비들은 아니지만 무직 청년들이 벌인 일이었다. 6월 말, 신암구역 강도 5명이 상업관리소에서 운영하던 수매상점에 침입해 경비생 3명을 흉기로 위협하고, 잡화류와 록화기 8대, 자전거 3대를 털어갔다. 경비생들이 반항하자, 경비실 부엌에 있던 석탄 삽으로 구타해 경비생들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 요즘 수매상점에 진열할만한 상품이 가뜩이나 없는데, 절도까지 당해 수매상점 직원들이 변상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진의 한 보안일군은 “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강도 정도로 끝나면 양반이다. 사는 것이 각박해서인지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이런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큰 기업소들, 식량 고생 더 막심

규모가 큰 공장일수록 식량고생이 막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함흥, 청진, 원산 등에서는 큰 공장들은 공장 내 선철이나 기계설비들을 내다팔아 노동자들에게 간간이 식량을 나눠주곤 했다. 청진 김책제철소의 특급기업소에서는 일부 생산물을 내다팔아 옥수수를 사들여오기도 했다. 올해는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해외 판매처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큰 기업소들의 생산물 판매가 부진한 이유를 작년 무역성 검열의 여파로 설명했다. “무역성을 검열하면서 새로 교체된 일군들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간부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대외무역도 크게 흔들렸다. 큰 기업소들일수록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무역일군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국내 생산과 노동자 생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국의 작은 공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3대 제철소를 비롯해 평양방직공장 같은 곳에서도 식량공급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 노동자들은 닥치는 대로 술깡치, 두부깡치, 강냉이껍질, 묵지가루로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다. 도처에서 비참한 소식들이 전해지자, 중앙당의 한 간부는 “무역성 검열에 들어간 게 작년 7월 초다. 그 때만 해도 대외무역이 역대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다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뭔가 풀릴 줄 알았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도 청사진이 보였고.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 돌파구는 안 보이고, 무역도 잘 안 되고 식량문제가 더 심각해지니까, 사람들이 무역성 검열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 같다. 새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에 부득이하게 인물 교체를 한 것이지만, 아무리 썩은 이라도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고 최대한 잘 써먹었어야 했는데 생각할수록 아쉽다. 검열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했다.

국경 분위기, 여전히 살벌

국경연선지역 분위기가 작년 말 이래 지금까지 꽁꽁 얼어붙어있다. 실제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등 국경지역에서는 탈북자를 철저히 막으라는 지시가 거듭되고 있다. 량강도 혜산시의 한 간부는 “장백 쪽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엔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단단히 벼른 것 같다. 중국 공안부나 국경변방대, 살림경찰대대는 물론이고 지방 파출소들까지 국경단속을 강조하는 실정이다. 중국 국가안전부나 검찰소 등에서는 중국 인민이나 간부들이 조선 도강자들을 돕거나 해외 국가나 단체들을 도와준 증거가 있으면 가차 없이 체포해 수사한다. 외국인들의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당 차원의 지시와 문건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길림성과 료녕성 등은 조선족들이 많이 몰려 있는 도시가 많고, 국경선이기도 해서 중국 중앙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중국이 자기네 국경을 엄격하게 차단해주니 우리 정부로선 고마운 일이지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중국 간부로부터 ‘식량난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이니, 우리로서는 탈북자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대놓고 우리를 깔보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빴다”며 중국 정부의 국경통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처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정부는 국경연선지역에 철조망 가설을 거의 완료한 상태이며, 중국 현지에서 활약 중인 탈북자 브로커와 조력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집중 수사 중이다.

북한, 중국과의 우호 관계 거듭 강조

북한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중국은 우리가 필요할 때 제대로 도와준 적이 없다는 것이 일부 간부들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우리에게 득 될 것이 없다. 지난 번 중국어선 나포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광명성3호를 발사한 것도 그렇고, 중국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차 발사를 미루고 있는 것도 조·중관계를 의식해서다. 일부 갈등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듯이 조·중우호협력관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위화도와 황금평 개발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조·중관계가 흔들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없는 말을 퍼뜨리는 것이다. 하도 그렇게 몰아가니까 우리 정부도 ‘적대분자들이 중·조관계를 이간질하는 작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내에서 중국에 의지를 하다보면 이것저것 간섭도 많이 받게 될 것이니 미리 경계하자는 말은 나온다. 그래도 당에서는 조·중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을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가뭄피해와 식량난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에서 중국과의 분쟁을 일으킬만한 일이나 발언을 삼가도록 하는 당의 결정은 옳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최근 모든 단위와 기관, 기업소 등에 북·중관계에 해를 끼칠만한 언행을 삼가라는 지시를 거듭 내리고 있다.

■ 식량소식

청진 송평구역 주민들, “옥수수 1kg로 1주일 버틴다”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주민들은 ‘하루에 옥수수 1kg 벌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옥수수 1kg는 2,000원에서 2,500원선에서 거래된다. 수남구역에서 중고옷 장사를 하는 금영(가명)씨는 하루에 2,000원 벌기도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못 벌어도 쌀 1kg는 거뜬히 벌곤 했는데, 이젠 1kg에 4,000원이 넘어가는 쌀은 바라지도 않는다. 옥수수 1kg 벌이를 못할 때가 많다보니, 아침에는 풀죽을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 옥수수 국수를 먹는다. 이 정도 벌이도 못하는 집들은 옥수수가루에 산나물을 섞어 물을 많이 불린 풀죽으로만 두 끼를 먹는다. 송평구역의 한 인민위원회 일군은 “우리 구역의 한 1/3 정도가 풀죽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옥수수가루를 최대한 아껴 먹어야 하니까, 옥수수 1kg로 일주일 버티는 집들이 많다. 작년에는 옥수수가루 1kg가 네 식구가 3일 먹을 분량이었는데, 지금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영양실조자가 많고, 결국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도(함경북도)는 그래도 먹고 사는 편에 속한다. 안쪽 지방(황해도, 평안남도, 강원도)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살기가 바쁘다고 들었다”며 송평구역 주민의 식생활이 안쪽보다는 낫다고 했다.

큰 기업소들, 식량 고생 더 막심

규모가 큰 공장일수록 식량고생이 막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함흥, 청진, 원산 등에서는 큰 공장들은 공장 내 선철이나 기계설비들을 내다팔아 노동자들에게 간간이 식량을 나눠주곤 했다. 청진 김책제철소의 특급기업소에서는 일부 생산물을 내다팔아 옥수수를 사들여오기도 했다. 올해는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해외 판매처를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큰 기업소들의 생산물 판매가 부진한 이유를 작년 무역성 검열의 여파로 설명했다. “무역성을 검열하면서 새로 교체된 일군들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간부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대외무역도 크게 흔들렸다. 큰 기업소들일수록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무역일군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국내 생산과 노동자 생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국의 작은 공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3대 제철소를 비롯해 평양방직공장 같은 곳에서도 식량공급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 노동자들은 닥치는 대로 술깡치, 두부깡치, 강냉이껍질, 묵지가루로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다. 도처에서 비참한 소식들이 전해지자, 중앙당의 한 간부는 “무역성 검열에 들어간 게 작년 7월 초다. 그 때만 해도 대외무역이 역대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다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뭔가 풀릴 줄 알았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도 청사진이 보였고.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 돌파구는 안 보이고, 무역도 잘 안 되고 식량문제가 더 심각해지니까, 사람들이 무역성 검열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 같다. 새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에 부득이하게 인물 교체를 한 것이지만, 아무리 썩은 이라도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고 최대한 잘 써먹었어야 했는데 생각할수록 아쉽다. 검열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했다.

■ 사회

생활난으로 인한 범죄 증가

북한 사회 내 빈익빈 부익부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소수의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어려운 계층은 더 힘들어졌다. 함경북도 청진 라남구역에 사는 김책제철소 노동자 가족들은 생활난으로 집 기물을 팔고 있는데, 상인들이 이를 사들여 중국 국경연선지역에 내다 판다. 주민들의 생활 형편이 워낙 힘들다보니 대낮에도 각종 범죄 사례가 속출한다. 청진시의 한 보안일군은 지난 7일, 수남시장 주변에서 자전거 절도 사건이 하루새 3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하루에 연달아 자전거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포항구역 수북동에서는 세 명의 강도단이 음식매대원을 구타하고 판매대금을 털어가기도 했다. 동네를 배회하는 꽃제비들의 소행이 아니겠느냐며, 꽃제비들을 잡아들여 수사를 벌였는데 이틀 만에 범인들이 붙잡혔다. 꽃제비들은 아니지만 무직 청년들이 벌인 일이었다. 6월 말, 신암구역 강도 5명이 상업관리소에서 운영하던 수매상점에 침입해 경비생 3명을 흉기로 위협하고, 잡화류와 록화기 8대, 자전거 3대를 털어갔다. 경비생들이 반항하자, 경비실 부엌에 있던 석탄 삽으로 구타해 경비생들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 요즘 수매상점에 진열할만한 상품이 가뜩이나 없는데, 절도까지 당해 수매상점 직원들이 변상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진의 한 보안일군은 “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강도 정도로 끝나면 양반이다. 사는 것이 각박해서인지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이런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 정치생활

국경 분위기, 여전히 살벌

국경연선지역 분위기가 작년 말 이래 지금까지 꽁꽁 얼어붙어있다. 실제 중국 길림성과 요녕성 등 국경지역에서는 탈북자를 철저히 막으라는 지시가 거듭되고 있다. 량강도 혜산시의 한 간부는 “장백 쪽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엔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단단히 벼른 것 같다. 중국 공안부나 국경변방대, 살림경찰대대는 물론이고 지방 파출소들까지 국경단속을 강조하는 실정이다. 중국 국가안전부나 검찰소 등에서는 중국 인민이나 간부들이 조선 도강자들을 돕거나 해외 국가나 단체들을 도와준 증거가 있으면 가차 없이 체포해 수사한다. 외국인들의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당 차원의 지시와 문건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길림성과 료녕성 등은 조선족들이 많이 몰려 있는 도시가 많고, 국경선이기도 해서 중국 중앙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중국이 자기네 국경을 엄격하게 차단해주니 우리 정부로선 고마운 일이지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중국 간부로부터 ‘식량난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이니, 우리로서는 탈북자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대놓고 우리를 깔보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빴다”며 중국 정부의 국경통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처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정부는 국경연선지역에 철조망 가설을 거의 완료한 상태이며, 중국 현지에서 활약 중인 탈북자 브로커와 조력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집중 수사 중이다.

북한, 중국과의 우호 관계 거듭 강조

북한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중국은 우리가 필요할 때 제대로 도와준 적이 없다는 것이 일부 간부들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우리에게 득 될 것이 없다. 지난 번 중국어선 나포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광명성3호를 발사한 것도 그렇고, 중국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차 발사를 미루고 있는 것도 조·중관계를 의식해서다. 일부 갈등 기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듯이 조·중우호협력관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위화도와 황금평 개발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조·중관계가 흔들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없는 말을 퍼뜨리는 것이다. 하도 그렇게 몰아가니까 우리 정부도 ‘적대분자들이 중·조관계를 이간질하는 작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내에서 중국에 의지를 하다보면 이것저것 간섭도 많이 받게 될 것이니 미리 경계하자는 말은 나온다. 그래도 당에서는 조·중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을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가뭄피해와 식량난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에서 중국과의 분쟁을 일으킬만한 일이나 발언을 삼가도록 하는 당의 결정은 옳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최근 모든 단위와 기관, 기업소 등에 북·중관계에 해를 끼칠만한 언행을 삼가라는 지시를 거듭 내리고 있다.

오늘의 북한소식 462호

■ 시선집중

병원 일군들, “결핵약 시급하다”

지방 병원마다 환자는 급증하는데,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한 의사는 “매일 환자들이 죽어나가는데, 거의 영양실조로 죽는다. 우리야 이 병, 저 병으로 죽었다고 진단서를 떼 주지만, 제대로 된 약 처방도 못 받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 처방을 해줘봐야 병원에서는 줄 약이 없다. 본인들이 알아서 약을 구해야 하는데 약을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면 굶고 있었겠는가. 용케 어디서 약을 구했다 쳐도, 워낙 몸이 쇠약해져 있어서 약이 잘 듣지도 않는다”고 했다.

도병원이든 시병원이든 지방 병원들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함흥시 어느 공장 부속 병원에서 일하는 일군은 “공장이다 보니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편인데, 간단한 소독약 하나가 없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항생제와 염증치료약이 필요하다. 특히 결핵은 감염 속도가 대단히 빠른데, 아이들이 쉽게 걸린다. 아이들의 뇌막염 약이나 결핵약이 절실하다. 영양실조는 식량이 있어야 해결될 문제라서 감히 지원해달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항생제와 결핵약을 다만 얼마라도 급하게 보내주면 이 은혜 잊지 않겠다”며 거듭 몇 번이고 부탁했다

낙지(오징어)잡이 울상

동해안 어촌마다 낙지(오징어)잡이가 한창이어야 할 때지만 한숨이 가득하다. 수산물 수출 금지와 맞물려 비싼 기름 값을 대기도 어렵고, 낙지 어군도 줄고 있어서다. 중국 어선들이 종자까지 싹쓸이 해가는 데 비해, 낡은 배와 어구, 그리고 까다로운 바다출입증으로 여러 제약이 많은 북한 어선들은 처음부터 경쟁이 안 된다. 동해안 어민들은 보통 6월에서 10월까지 낙지잡이로 1년 식량을 벌어들인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말려서 판매하는데도 여성들의 일손이 딸려서 인근 도시 노동자들이나 장사꾼들도 몰려든다. 남자들은 오후 2-3시쯤 바다에 나가 다음 날 오전 9-10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몇 년 새 기후 변화로 동해안에서 낙지가 줄고 있다. 온 밤 내내 바다에서 뜬눈으로 낙지잡이를 해도 스무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오는 날이 많다. 다들 삯벌이 배들이라 10마리를 잡으면 선주에게 6마리를 바치고, 나머지 4마리를 자기들끼리 나눠 갖는다. 인심이 야박한 선주는 7마리를 가져가기도 한다. 수산물을 수출하지 못하게 해서라기보다, 낙지잡이 자체가 잘 안 되는데서 어부들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북한이 자랑하는 명태는 중국에 수출해왔는지 이제는 도리어 수입하는 실정이다. 함경남도 신포항에 가보면 명태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냉동 창고가 텅텅 비어있다. 신포의 한 일군은 “올 겨울, 명태잡이를 얼마 못했다. 기름이 없어서 고기잡이를 나간 배가 많지 않았다. 냉동 창고에 명태를 넣었다손 쳐도 전기가 하도 오락가락하니까 신선하게 보존할 수가 없다. 수산물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보관도 큰 부담이 되다보니 웬만큼 큰 회사 아니면 버티지를 못한다. 외국에 수출하던 무역회사들도 이번에 수산물 수출 금지 조치가 떨어져서 다들 손 놓고 있는 분위기다. 몰래 팔고는 있지만, 언제 발각돼 다 회수 당할지 모를 일이니 다들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작년 수해 복구도 못했는데 다시 여름 돌아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집중 폭우가 두렵다. 황해남도 청단군과 배천군, 평안남도 강서군 등 작년에 수해 피해가 심했던 곳은 아직도 복구를 못한 상태다. 작년 여름에 농장 밭은 물론이고 개인 소토지들까지 모두 물에 쓸려가는 바람에 올해 춘궁기를 버티기가 더 어려워졌다. 파손된 집이 복구가 안 돼 천막살이를 못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평안남도 강서군의 한 간부는 “농장 공동 건물이 모두 무너지고, 살림집들이 파괴되었다. 학교와 탁아소, 유치원도 반파되거나 완파된 곳이 많았고, 도로가 막히고 통신수단이 끊어진 후에 일부는 보수를 해서 다시 건물을 올렸지만, 시멘트도 없고 목재도 부족하니 미처 다 끝내지 못했다. 밑천 한 푼 없이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이 살아갈 방법이 없어 그동안 죽기도 많이 죽었다. 당에 보고를 다 올리지 않아서 그렇지, 제일 불쌍한 것이 수재민이었다. 농장에서 구제받은 사람들도 있긴 한데, 아직 집을 다 짓지 못해서 농장에서 공동 숙식하는 정도다. 올해 또 큰물피해를 입게 되면, 정말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황해남도 강령군은 작년 7월 30일에 내린 5시간의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수십 명의 목숨을 잃었다. 농장들마다 시체를 찾지 못한 농민 가족들이 많고, 또 일부 수재민들은 제대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꽃제비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산사태에 미처 손 쓸 틈 없이 당한 일이었지만, 그 피해는 너무 컸다. 농경지 침수와 살림집 파괴는 물론이고, 강둑과 철길, 도로가 다 끊겨 아직도 복구가 안 된 곳이 많다. 복구를 했다손 쳐도 제대로 된 장비 없이 대충 흙으로 밟아놓았다. 여름마다 큰물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강령군의 한 농장일군은“수해가 일단 난 뒤에야 중앙당에서는 일군들을 내려 보내고, 도당에서도 책임 일군들이 내려와 본다. 그러면 뭐하는가. 재난 퇴치 작업을 끝내지를 못하는데. 기계와 중장비가 있으면 침수지역에서 인차 물을 뽑겠는데, 순전히 못 먹고 힘없는 농민들을 동원해서 물을 퍼내니 복구 작업이 제대로 될 턱이 있겠나. 그렇다고 큰물피해를 막을 대책도 없다. 산에 나무가 있기를 하나, 작년에 파괴된 강둑을 제대로 탄탄하게 막아올린 것도 아니고, 배수로를 다시 정리한 것도 아니고. 아느니 한숨만 나온다. 지금 농민들은 흙 파먹을 것도 없어 죽어가고 있는데, 물이 없어서 걱정, 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 이래도 저래도 걱정뿐”이라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황해도 청단군, “하루 한 끼 죽도 못 먹어”

황해도 농촌마다 오랜 가뭄으로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했다. 황해남도 청단군 심평리 협동농장은 지난 해 7월 말에 물 폭탄이 쏟아져 농지가 심하게 유실되었고, 무엇보다 농작물을 대거 잃었다. 농민들은 감탕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 낟알 한 알이라도 더 건져보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가을 분배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올해는 지독한 가뭄에 논에 물을 댈 수가 없었다. 청단군 농장일군 김철(가명)씨는 “논벼는 말할 것도 없고, 옥수수도 바싹 말랐다. 보면 알겠지만, 옥수수 잎사귀만 축 처져있는 게 아니다. 뿌리까지 다 말라 비틀어져있다. 옥수숫대를 잡고 힘주면 쑥 뽑힌다. 작년에 거둔 옥수수로 지금껏 버티고 있는 집은 몇 집 안 된다. 한 끼 죽도 못 먹는 집이 태반이다. 농민 세대는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간다. 원래 농장에서 남자 노력 1명은 한해에 290일 출근해야 만가동 한 것으로 되는데 만가동 했을 경우 남자는 겉곡으로 하루 800g, 여자는 700g을 분배 받을 수 있다. 비노력 인구로 노인은 300g, 소학교 학생은 300g, 중학교 3학년부터 400g, 5학년생은 500g이 표준이다. 재작년부터 분배 체계가 소용없어졌다. 군량미로 먼저 거둬가면 농민들은 분배를 아예 받지를 못한다. 작년에는 초봄부터 산나물에 풀밥을 해먹으면서 버텼는데, 지금은 아예 굶고 있다. 농민들 집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 비참함이란 말도 못한다. 돼지죽인지 사람이 먹을 것인지 분간도 안 된다. 이렇게는 농민들의 대량 아사를 막을 수 없다”며 절망스러워했다.

요새 잘 먹는 집도 쌀 한 줌에 옥수수밥

북한의 주식이 쌀이 아니라 옥수수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옥수수를 잘잘하게 부순 것을 옥수수‘쌀’이라고 하고, 삶은 것을 옥수수밥이라고 한다. 최상위층은 이밥(쌀밥)을 먹고, 그 외에는 옥수수를 주로 먹는다. 집안 형편에 따라 옥수수쌀에 쌀 섞이는 비율이 달라지는데, 잘 사는 집은 옥수수와 쌀의 비율이 ‘5대5’밥을 넘지 않지만, 형편이 기울수록 옥수수쌀의 비중이 높아진다.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강은희(가명)씨는 보안일군으로 일하는 남편 덕분에 지금껏 먹는 걱정을 하지 않고 살다가 남편에게만 배급이 나오고, 나머지 세 식구들에게는 배급이 안 나온 지가 벌써 수개월째다. 아껴가며 먹어 굶지는 않지만, 밥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밥만 먹고 살던 때도 있었는데, 벌써 옛날 얘기다. 작년에는 옥수수쌀을 5대5로 섞은 밥을 먹었다면, 올해는 옥수수밥에 쌀 한 줌을 겨우 섞을까 말까다. 강씨는“요새 웬만큼 큰 부자 아니면, 먹는 질이 다 떨어졌다. 옥수수밥이라도 제대로 챙겨먹는 집이 잘 사는 집이다. 옥수수밥에 쌀 한 줌 섞어 먹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 우리 집이 이 정도면, 다른 집은 더 말할 게 없다. 화교들 빼고는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리 보존하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하루빨리 국가 식량 사정이 잘 풀려서 배급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의 북한소식 461호

■ 시선집중

“섬유 생산 잘 안 된다”

지난 5월, 중국에서 솜과 면류, 기타 섬유제품이 북한으로 많이 들어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옷을 새로 사 입는 사람들은 잘 사는 계층이다. 대부분 옷이라고 해야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수준이다. 인민들의 식생활이 너무 큰 문제라서 관심을 안 가지지만, 입는 것도 진짜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섬유생산이 안 되니 중국에서 사오는 수밖에 없는데, 입에 넣을 것도 없는 판에 입을 것을 챙기는 인민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창피해서 말을 못하는 거지, 인민들이 헐벗은 거 보면 한숨도 안 나온다. 주체섬유가 예상과 달리 생산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2.8비날론공장이 기대와 달리 생산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2.8비날론공장은 원래 3차 7개년계획기간에 폐기하려고 했다. 대신 순천화학련합기업소를 큰 규모의 비날론공장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16년 만에 지난 2010년에 김정일 동지께서 강한 의지를 보이시고, 공장 재건에 나서셨다.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가 않다. 지금쯤 국영상점이나 시장에 비날론 천도 나오고 모포도 깔려야 하지 않느냐. 둘러보면 알겠지만 비날론이나 모포는 말할 것도 없고, 천 1m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군복까지 중국에서 사 오고 있다. 국경지역에 가보면 알겠지만, 우리 군인들을 멀리서 보면 중국 군인과 구분을 못한다. 2.8비날론공장의 생산이 아무리 안 좋아도 군복만큼은 보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2.8비날론공장을 16년 만에 재건했지만, 원자재 부족과 막대한 전력 소비 문제, 낙후한 기술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체철, 사실상 실패”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에 필요한 철강재는 중국에서 들여온다. 원래는 함경북도 청진 김책제철소에서 조달하려고 했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주체철 생산 공법이 성공해 휘황한 전망이 열렸다고 좋아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고 전했다. “작년 1월에 세계적인 과학기술, 첨단기술의 하나인 산소 열법에 의한 철 생산 기술을 장악했다고 얼마나 시끄럽게 선전했었나. 4월 15일까지는 살림집과 인민봉사시설들이 모두 완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알게 됐다. 주체철 생산에 기대를 하면 안 되겠구나.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지니까 다른 데보다야 생산이 되는 편이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에는 절대 못 미쳤다. 절반도 생산이 안 되니까 할 말이 없는 거다. 금년 들어서까지 생산이 안 되고 있다. 중앙에서도 좌시할 수가 없어, 책임을 물어 숱한 기술자들을 붙잡아갔다”고 설명했다.

청진의 한 간부는 “작년에 새로운 실험에 성공한 건 사실이다. 우리 제철소(김책)에는 큰 로가 4개, 작은 로가 4개 있는데, 따로 실험용으로 작은 로를 하나 만들었다. 작은 로에서 실험을 성공해도 실제 크기의 로에서 해보면 당연히 오류가 발생한다. 처음부터 큰 로로 실험을 해야 하는데, 돈이나 자재, 로력(노동력), 뭐든 숱하게 들어가야 하고, 실패도 여러 차례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돈도 시간도 기술도 없었다.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토로했다. 주체철 생산이 기대에 못 미치자, 수입에 의존하면서 살림집 건설 완공 시기도 무한정 늦어지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은 “평양 살림집 건설장에서 수십 동에 달하는 고층살림집들의 골조 조립이 성과적으로 끝났다”고 보도했으나, 골조공사를 마감하지 못한 곳도 여전히 남아있다. 내부 공사를 못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올 연말을 완공 목표로 잡고 있지만, 자금난과 자재 부족으로 몇%나 완공될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자립적민족경제로선, 자립이란 말이 무색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섬유 등 이른바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의 3대 기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자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립이 어렵다는 자조 섞인 한숨도 들린다. 올해 초 2012년 강성대국 원년 선포를 앞두고, “주체철과 주체비료, 주체섬유가 쾅쾅 쏟아져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선전했던 것과 달리, 생산량이 수요에 한참 못 미친다.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경제, 자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며, 자기 나라의 자원과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발전하는 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 국내 일군들 기피 심해져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이 북한에서 새로 임명돼 중국에 나오는 당, 정, 기관 일군들을 피하는 일이 심해지고 있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이들을 접대하는 일이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착하면서부터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부터 귀국하는 길에 선물을 주는 일까지 줘야한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예전에는 나라에 충성하라는 식으로 교양을 했다면, 이제는 과제를 안 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작년 9월까지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교체가 완료됐고, 10월부터 국내 무역기관들에서 주요 몇몇 책임자만 남고 모두 교체됐다. 감옥에 가지 않으면 혁명화 받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체로 새로 바뀌었다. 새로운 간부들이 중국에 나가다 보니, 해외대표부 일군들로선 일이 더 많아졌다. 중국 대방들을 새로 연결해줘야 하고, 물정을 잘 모르니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고,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돈 쓰는 것도 다 대야 하니까 아예 안 만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내각 성마다 비료 구입 과제

올해 농장들마다 비료 부족으로 비상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비료는 찾아볼 수 없고 내각 성 단위에 비료 과제를 내려 3-4월에 중국의 질 낮은 비료만이 간간이 들어왔다. “무역성 일군들에게 비료 구입 과제를 내렸다가, 내각으로 20만 톤 과제를 내리고, 무역성에는 다시 식량 과제를 내렸다. 내각의 성에는 질소비료와 뇨소 비료 구입을 과제로 내렸다. 국내 식량 부족이 심하니, 각자 알아서 량심껏 내라고 했는데, 모두 얼마를 내야 할 지 몰라 눈치를 살피면서 조금씩 식량을 바치고 있다. 내각의 성에는 비료 과제로 돈을 내거나 비료를 내면, 년말에 국가 상납금에서 그만큼 면제해주기로 했다. 성 일군들은 국내에서 자체로 절반을 해결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기네 단위에서 해외로 파견한 대표들에게 과제를 떨구었다. 체육성은 국내에서 1만 톤을 만들어 내거나 돈으로 마련하고, 또 1만 톤을 해외에 나가있는 체육성 일군들에게 골고루 분담하게끔 지시했다.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비료를 들여오고 있는데, 수량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비료 부족에 가뭄까지, 올 농사 최악

농민들이 농지에 물을 대지 못해 바짝바짝 속만 태우고 있다. 6월 중순 쇠약해진 몸에 무더위까지 겹쳐 들판에서 쓰러지는 농민들이 많다. 당국은 농업용수는 물론, 농민들의 영양실조와 일사병에도 아무 대책이 없다. 간부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국가 재난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황해남도 해주시의 한 간부는“해마다 최악이라고 말해왔지만 올 농사가 사상 최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비료와 농업용수, 노동력 3박자가 골고루 최악이라 풀죽으로 버텨야 할 춘궁기에 풀죽을 쒀먹을 형편조차 못 된다. 땅이 바싹 메말랐으니 풀이라고 제대로 자라겠나. 가뭄이 길어지니까 물이 오염돼서 병을 앓는 사람도 많아진다. 병원마다 약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황해북도 사리원의 한 농장일군은 비료가 없어 올해 농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농사철에 비료가 모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다. 흥남비료공장에서 올해부터는 비료를 생산해줄 줄 알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어쩌다 한 번씩 중국에서 비료가 들어오는 정도다. 우리 도는 군량미기지다 보니, 인민무력부 간부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무역일군들을 설복해서 중국 대방에게 높은 값으로 가을에 갚기로 하고 겨우 비료를 얻어왔다. 절대 선불이 아니면 못 준다고 했다가 우리 처지를 측은히 여겨 후불로 준 것이다. 어렵게 들여온 비료지만, 농사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비료 50만 톤을 구입해야 하는데, 자금 부족으로 20만 톤으로 줄였다. 이조차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경제활동

“섬유 생산 잘 안 된다”

지난 5월, 중국에서 솜과 면류, 기타 섬유제품이 북한으로 많이 들어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옷을 새로 사 입는 사람들은 잘 사는 계층이다. 대부분 옷이라고 해야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수준이다. 인민들의 식생활이 너무 큰 문제라서 관심을 안 가지지만, 입는 것도 진짜 심각하다. 우리나라에서 섬유생산이 안 되니 중국에서 사오는 수밖에 없는데, 입에 넣을 것도 없는 판에 입을 것을 챙기는 인민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창피해서 말을 못하는 거지, 인민들이 헐벗은 거 보면 한숨도 안 나온다. 주체섬유가 예상과 달리 생산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2.8비날론공장이 기대와 달리 생산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2.8비날론공장은 원래 3차 7개년계획기간에 폐기하려고 했다. 대신 순천화학련합기업소를 큰 규모의 비날론공장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잘 알다시피 다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16년 만에 지난 2010년에 김정일 동지께서 강한 의지를 보이시고, 공장 재건에 나서셨다.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가 않다. 지금쯤 국영상점이나 시장에 비날론 천도 나오고 모포도 깔려야 하지 않느냐. 둘러보면 알겠지만 비날론이나 모포는 말할 것도 없고, 천 1m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군복까지 중국에서 사 오고 있다. 국경지역에 가보면 알겠지만, 우리 군인들을 멀리서 보면 중국 군인과 구분을 못한다. 2.8비날론공장의 생산이 아무리 안 좋아도 군복만큼은 보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2.8비날론공장을 16년 만에 재건했지만, 원자재 부족과 막대한 전력 소비 문제, 낙후한 기술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체철, 사실상 실패”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에 필요한 철강재는 중국에서 들여온다. 원래는 함경북도 청진 김책제철소에서 조달하려고 했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주체철 생산 공법이 성공해 휘황한 전망이 열렸다고 좋아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고 전했다. “작년 1월에 세계적인 과학기술, 첨단기술의 하나인 산소 열법에 의한 철 생산 기술을 장악했다고 얼마나 시끄럽게 선전했었나. 4월 15일까지는 살림집과 인민봉사시설들이 모두 완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알게 됐다. 주체철 생산에 기대를 하면 안 되겠구나.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지니까 다른 데보다야 생산이 되는 편이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에는 절대 못 미쳤다. 절반도 생산이 안 되니까 할 말이 없는 거다. 금년 들어서까지 생산이 안 되고 있다. 중앙에서도 좌시할 수가 없어, 책임을 물어 숱한 기술자들을 붙잡아갔다”고 설명했다.

청진의 한 간부는 “작년에 새로운 실험에 성공한 건 사실이다. 우리 제철소(김책)에는 큰 로가 4개, 작은 로가 4개 있는데, 따로 실험용으로 작은 로를 하나 만들었다. 작은 로에서 실험을 성공해도 실제 크기의 로에서 해보면 당연히 오류가 발생한다. 처음부터 큰 로로 실험을 해야 하는데, 돈이나 자재, 로력(노동력), 뭐든 숱하게 들어가야 하고, 실패도 여러 차례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돈도 시간도 기술도 없었다. 처음부터 무리였다”고 토로했다. 주체철 생산이 기대에 못 미치자, 수입에 의존하면서 살림집 건설 완공 시기도 무한정 늦어지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은 “평양 살림집 건설장에서 수십 동에 달하는 고층살림집들의 골조 조립이 성과적으로 끝났다”고 보도했으나, 골조공사를 마감하지 못한 곳도 여전히 남아있다. 내부 공사를 못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올 연말을 완공 목표로 잡고 있지만, 자금난과 자재 부족으로 몇%나 완공될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자립적민족경제로선, 자립이란 말이 무색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섬유 등 이른바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의 3대 기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자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립이 어렵다는 자조 섞인 한숨도 들린다. 올해 초 2012년 강성대국 원년 선포를 앞두고, “주체철과 주체비료, 주체섬유가 쾅쾅 쏟아져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선전했던 것과 달리, 생산량이 수요에 한참 못 미친다.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경제, 자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며, 자기 나라의 자원과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발전하는 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 국내 일군들 기피 심해져

재중 해외대표부 일군들이 북한에서 새로 임명돼 중국에 나오는 당, 정, 기관 일군들을 피하는 일이 심해지고 있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은 이들을 접대하는 일이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착하면서부터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부터 귀국하는 길에 선물을 주는 일까지 줘야한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예전에는 나라에 충성하라는 식으로 교양을 했다면, 이제는 과제를 안 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작년 9월까지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교체가 완료됐고, 10월부터 국내 무역기관들에서 주요 몇몇 책임자만 남고 모두 교체됐다. 감옥에 가지 않으면 혁명화 받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체로 새로 바뀌었다. 새로운 간부들이 중국에 나가다 보니, 해외대표부 일군들로선 일이 더 많아졌다. 중국 대방들을 새로 연결해줘야 하고, 물정을 잘 모르니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고,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돈 쓰는 것도 다 대야 하니까 아예 안 만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내각 성마다 비료 구입 과제

올해 농장들마다 비료 부족으로 비상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비료는 찾아볼 수 없고 내각 성 단위에 비료 과제를 내려 3-4월에 중국의 질 낮은 비료만이 간간이 들어왔다. “무역성 일군들에게 비료 구입 과제를 내렸다가, 내각으로 20만 톤 과제를 내리고, 무역성에는 다시 식량 과제를 내렸다. 내각의 성에는 질소비료와 뇨소 비료 구입을 과제로 내렸다. 국내 식량 부족이 심하니, 각자 알아서 량심껏 내라고 했는데, 모두 얼마를 내야 할 지 몰라 눈치를 살피면서 조금씩 식량을 바치고 있다. 내각의 성에는 비료 과제로 돈을 내거나 비료를 내면, 년말에 국가 상납금에서 그만큼 면제해주기로 했다. 성 일군들은 국내에서 자체로 절반을 해결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기네 단위에서 해외로 파견한 대표들에게 과제를 떨구었다. 체육성은 국내에서 1만 톤을 만들어 내거나 돈으로 마련하고, 또 1만 톤을 해외에 나가있는 체육성 일군들에게 골고루 분담하게끔 지시했다.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비료를 들여오고 있는데, 수량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비료 부족에 가뭄까지, 올 농사 최악

농민들이 농지에 물을 대지 못해 바짝바짝 속만 태우고 있다. 6월 중순 쇠약해진 몸에 무더위까지 겹쳐 들판에서 쓰러지는 농민들이 많다. 당국은 농업용수는 물론, 농민들의 영양실조와 일사병에도 아무 대책이 없다. 간부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국가 재난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황해남도 해주시의 한 간부는“해마다 최악이라고 말해왔지만 올 농사가 사상 최악”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비료와 농업용수, 노동력 3박자가 골고루 최악이라 풀죽으로 버텨야 할 춘궁기에 풀죽을 쒀먹을 형편조차 못 된다. 땅이 바싹 메말랐으니 풀이라고 제대로 자라겠나. 가뭄이 길어지니까 물이 오염돼서 병을 앓는 사람도 많아진다. 병원마다 약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황해북도 사리원의 한 농장일군은 비료가 없어 올해 농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농사철에 비료가 모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다. 흥남비료공장에서 올해부터는 비료를 생산해줄 줄 알았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어쩌다 한 번씩 중국에서 비료가 들어오는 정도다. 우리 도는 군량미기지다 보니, 인민무력부 간부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무역일군들을 설복해서 중국 대방에게 높은 값으로 가을에 갚기로 하고 겨우 비료를 얻어왔다. 절대 선불이 아니면 못 준다고 했다가 우리 처지를 측은히 여겨 후불로 준 것이다. 어렵게 들여온 비료지만, 농사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비료 50만 톤을 구입해야 하는데, 자금 부족으로 20만 톤으로 줄였다. 이조차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의 북한소식 460호

■ 시선집중

평양 옥류관도 외화벌이에 뛰어들어

평양의 자랑이자, 민족 음식을 제일 잘 만드는 식당으로 이름난 평양 옥류관도 외화벌이 사업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옥류관은 평양랭면과 평양온반, 녹두지짐 등 평양 시민들이 맛보고 싶어 하는 최고의 음식점이다. 예전에는‘인민봉사의 대전당’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평양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이 강했다. 일반 평양 시민들은 모범가정 순으로 공급표(일종의 배려 식사권)를 받을 수 있는데, 암거래로 비싼 가격에 매매될 만큼 인기가 높다. 물론 얼마 안 되는 공급표를 간부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빼돌리기 일쑤여서 시민들에게 혜택이 많이 돌아가지는 못했다. 최근 옥류관이 외화벌이를 본격화하면서 시민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더욱 줄게 됐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평양 옥류관이 외국인 손님들을 더 많이 받으려고, 2층 공사를 해서 공간을 확대했다. 그동안 외국인 손님들은 2층의 작은 공간에서 식사를 했다. 원래 고려호텔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외화벌이 하는 냉면 집이었지만, 최근 옥류관이 고려호텔과 경쟁하고 나선 것이다. 고려호텔에서 물냉면을 미화 3달러에 파니까 옥류관도 3달러에 팔고 쟁반국수는 4.5달러에 판다. 저번에 외국 손님을 데리고 쟁반국수를 곱빼기로 시키고, 녹두지짐을 시켰더니 10달러가 나왔다. 당의 기조는 옥류관 만큼은 평양 시민을 위해 복무하고, 외화벌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도 허락한 게 아니라서 조용히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북·중 수산물 수출입 금지에도 밀매매 계속

수산물 수출을 둘러싸고 북·중 양국이 힘겨루기 하는 양상이다. 6월 들어, 중국은 북한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에 북한 수산성 부문 일군들과 무역일군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수산물을 수출하지 못하면 당장 돈줄이 막히기 때문이다. 북한 간부들은 갑작스런 중국의 수입 금지 조치가 한 달 전, 북한군의 중국어선 나포 사건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단동 수산부문 일군들이 이제부터 조선 수산물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해서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알면서 그러냐고 한 마디 하더라. 이 때문에 우리 수산물 외화벌이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우리 도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들이 많아서 다들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수산물 수출 금지는 북한 정부가 먼저 했다. 지난 4월 15일 태양절을 끝마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수산물을 수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산물을 내수용으로 돌리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그대로 시행하는 업체는 별로 없었다. 외화를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익사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법거래가 힘들수록 음지 거래가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중국과 우리 정부에서 아무리 수입하지 않겠다, 수출하지 말라고 옥신각신해도, 수산물 밀매매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양국의 수출입 금지 조치로, 북한 내각 수산성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수산성에서는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서해안 간석지에 조개와 새우 양식업에 힘을 쏟아왔다.

“황금평 개발, 물 건너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이 물 건너갔다고 단언했다. 북한 정부가 발표한 개발 계획에 따라 뭔가 진행되는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년 봄부터 시작하기로 한 황금평 개발 공사부지에서 북한 농민들은 모내기를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이 쉽게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기업들로선 투자해봤자 뭐 얻어갈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개성공단 식으로 자기네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다. 인력관리를 중국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험부담이 높은 만큼 중국 정부에서 보장을 해주지도 않는다. 남조선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금융지원이나 여러 보장들을 해주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 역시 비슷한 진단을 했다. “우리 정부는 황금평, 위화도 개발이 당장 눈앞에 진척되지 않아도, 제도를 정비하면서 계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말로는 하자고 하는데, 별로 투자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차라리 신압록강대교를 빨리 건설해서 물자와 인력교류를 원활히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해남도 간부, 눈물로 인도주의 지원 호소

황해남도의 식량난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해주시의 한 간부는 절망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난의 행군 시대에도 겪지 않았던 고난을 2000년대 중반부터 해마다 겪고 있어서다. “2007년에 큰물 피해가 심해 2008년 춘궁기 때 진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 하도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가니까 간부들도 무서워했다. 그런데 그 해에 또 큰물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군량미기지라서 농작물을 군대에 보내고 나머지를 분배하는데, 연타로 농사를 망쳐서 농민들이 분배를 거의 못 받았다. 그 뒤로도 농사가 잘 된 적이 없어서 농민들이 굶어죽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급기야 2년째 결산 분배를 못 받았다. 이 상태에서 금년 농사를 시작하니, 농민들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중앙당에서는 당의 배려 차원에서 긴급히 몇 백 톤의 식량을 풀었지만, 도저히 해갈이 안 된다. 몇 달째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도 심각하다. 땅도 마르고 사람들도 바짝바짝 말라간다. 농민들의 생산 의욕도 없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 쇠약해진 상태다. 이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누구에게든 직접 보여주고, 제발 도와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무릎 꿇고 사정하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보안일군 가족, 식량 배급 중단

북한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보안당국에서도 배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보안 일군 당사자에게만 배급하고 가족들에게는 주지 못하고 있다. 지방 보위부원이나 보안원 등 보안 일군들의 식량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평안남도 평성시의 한 보안원은 “예전에는 6개월 정도 먹을 식량을 비축해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 달 살기도 바쁘다. 가족들이 배급을 받으면 배급을 건너뛰고 받아도 괜찮지만, 못 받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도 곤란하다”고 했다. 절망감을 표하는 보안 일군들이 있는가 하면, 식량 문제가 풀리면 나중에 밀린 배급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배급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설령 밀린 배급을 받을 날이 온다고 해도, 그 세월 기다리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다. 지금은 돈벌이를 찾아 악착같이 버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전했다.

■ 경제활동

평양 옥류관도 외화벌이에 뛰어들어

평양의 자랑이자, 민족 음식을 제일 잘 만드는 식당으로 이름난 평양 옥류관도 외화벌이 사업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옥류관은 평양랭면과 평양온반, 녹두지짐 등 평양 시민들이 맛보고 싶어 하는 최고의 음식점이다. 예전에는‘인민봉사의 대전당’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평양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이 강했다. 일반 평양 시민들은 모범가정 순으로 공급표(일종의 배려 식사권)를 받을 수 있는데, 암거래로 비싼 가격에 매매될 만큼 인기가 높다. 물론 얼마 안 되는 공급표를 간부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빼돌리기 일쑤여서 시민들에게 혜택이 많이 돌아가지는 못했다. 최근 옥류관이 외화벌이를 본격화하면서 시민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더욱 줄게 됐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평양 옥류관이 외국인 손님들을 더 많이 받으려고, 2층 공사를 해서 공간을 확대했다. 그동안 외국인 손님들은 2층의 작은 공간에서 식사를 했다. 원래 고려호텔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외화벌이 하는 냉면 집이었지만, 최근 옥류관이 고려호텔과 경쟁하고 나선 것이다. 고려호텔에서 물냉면을 미화 3달러에 파니까 옥류관도 3달러에 팔고 쟁반국수는 4.5달러에 판다. 저번에 외국 손님을 데리고 쟁반국수를 곱빼기로 시키고, 녹두지짐을 시켰더니 10달러가 나왔다. 당의 기조는 옥류관 만큼은 평양 시민을 위해 복무하고, 외화벌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도 허락한 게 아니라서 조용히 확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금평 개발, 물 건너갔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이 물 건너갔다고 단언했다. 북한 정부가 발표한 개발 계획에 따라 뭔가 진행되는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년 봄부터 시작하기로 한 황금평 개발 공사부지에서 북한 농민들은 모내기를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이 쉽게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기업들로선 투자해봤자 뭐 얻어갈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개성공단 식으로 자기네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다. 인력관리를 중국 기업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험부담이 높은 만큼 중국 정부에서 보장을 해주지도 않는다. 남조선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금융지원이나 여러 보장들을 해주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 역시 비슷한 진단을 했다. “우리 정부는 황금평, 위화도 개발이 당장 눈앞에 진척되지 않아도, 제도를 정비하면서 계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말로는 하자고 하는데, 별로 투자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차라리 신압록강대교를 빨리 건설해서 물자와 인력교류를 원활히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 정치생활

북·중 수산물 수출입 금지에도 밀매매 계속

수산물 수출을 둘러싸고 북·중 양국이 힘겨루기 하는 양상이다. 6월 들어, 중국은 북한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에 북한 수산성 부문 일군들과 무역일군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수산물을 수출하지 못하면 당장 돈줄이 막히기 때문이다. 북한 간부들은 갑작스런 중국의 수입 금지 조치가 한 달 전, 북한군의 중국어선 나포 사건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간부는 “단동 수산부문 일군들이 이제부터 조선 수산물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해서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알면서 그러냐고 한 마디 하더라. 이 때문에 우리 수산물 외화벌이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우리 도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들이 많아서 다들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수산물 수출 금지는 북한 정부가 먼저 했다. 지난 4월 15일 태양절을 끝마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들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수산물을 수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산물을 내수용으로 돌리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그대로 시행하는 업체는 별로 없었다. 외화를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익사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법거래가 힘들수록 음지 거래가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중국과 우리 정부에서 아무리 수입하지 않겠다, 수출하지 말라고 옥신각신해도, 수산물 밀매매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양국의 수출입 금지 조치로, 북한 내각 수산성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수산성에서는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서해안 간석지에 조개와 새우 양식업에 힘을 쏟아왔다.

■ 식량소식

황해남도 간부, 눈물로 인도주의 지원 호소

황해남도의 식량난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해주시의 한 간부는 절망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난의 행군 시대에도 겪지 않았던 고난을 2000년대 중반부터 해마다 겪고 있어서다. “2007년에 큰물 피해가 심해 2008년 춘궁기 때 진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 하도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어가니까 간부들도 무서워했다. 그런데 그 해에 또 큰물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군량미기지라서 농작물을 군대에 보내고 나머지를 분배하는데, 연타로 농사를 망쳐서 농민들이 분배를 거의 못 받았다. 그 뒤로도 농사가 잘 된 적이 없어서 농민들이 굶어죽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급기야 2년째 결산 분배를 못 받았다. 이 상태에서 금년 농사를 시작하니, 농민들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중앙당에서는 당의 배려 차원에서 긴급히 몇 백 톤의 식량을 풀었지만, 도저히 해갈이 안 된다. 몇 달째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도 심각하다. 땅도 마르고 사람들도 바짝바짝 말라간다. 농민들의 생산 의욕도 없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나 쇠약해진 상태다. 이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누구에게든 직접 보여주고, 제발 도와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무릎 꿇고 사정하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보안일군 가족, 식량 배급 중단

북한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보안당국에서도 배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보안 일군 당사자에게만 배급하고 가족들에게는 주지 못하고 있다. 지방 보위부원이나 보안원 등 보안 일군들의 식량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평안남도 평성시의 한 보안원은 “예전에는 6개월 정도 먹을 식량을 비축해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 달 살기도 바쁘다. 가족들이 배급을 받으면 배급을 건너뛰고 받아도 괜찮지만, 못 받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도 곤란하다”고 했다. 절망감을 표하는 보안 일군들이 있는가 하면, 식량 문제가 풀리면 나중에 밀린 배급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배급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설령 밀린 배급을 받을 날이 온다고 해도, 그 세월 기다리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다. 지금은 돈벌이를 찾아 악착같이 버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전했다.

오늘의 북한소식 459호

■ 시선집중

40-50대 젊은 사장님들, 중국 대방 찾아 분주

요즘 북한에서 새로 임명된 40-50대 초반의 젊은 사장들이 너도나도 중국에 나가고 있다. 다른 사장들을 따라 대표단 방문 형식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아, 독자적으로 중국인 대방과 친분을 쌓아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온갖 선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중국인 대방을 사귀어 거래를 트려고 노력한다. 평양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나 직장 동료의 소개는 기본이고, 지인의 지인들까지 샅샅이 훑으며 중국 대방을 소개받으려 애쓴다. 가뜩이나 신용도가 없는데, 그나마 거래를 텄던 일군들이 새로운 얼굴로 대거 교체되면서 중국 무역 상인들이 선뜻 거래에 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작년 가을부터 중국에 다니기 시작한 한 일군은 “중국 상인들은 앞에서는 그저 좋은 말로 거절한다. 지불할 능력이 안 되는 거 뻔히 아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뭘 믿고 주겠느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같은 문제는 작년 무역성 검열 이후 대규모 인선교체로 본격 대두된 이래 고착되는 분위기다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 항일투사 가족 최우선 입주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이 아직 완료되지 못한 가운데, 시범 건설 주택 1,800세대를 먼저 입주시키는 중앙당의 배려가 있었다. 300세대의 특별 배려 대상은 항일투사가족에게 돌아갔다. 500세대는 조국해방전쟁 당시 공훈자 가족에게 배정됐다. 나머지 1,000세대는 김정은 정권에 새로 등용된 간부들의 차지가 됐다. 평양시당의 한 간부는 시범주택의 경우 평양 시당의 관할이 아니라 중앙당의 관리에 속하므로 전기 공급 체계가 다르고, 보안도 철저하다고 했다. “이 집들은 자체로 전기가 공급되는지라 정전이 없다. 각종 편의시설도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내부인들도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돼 있는 등 경비가 삼엄하고 관리가 철저하다”고 전했다. 평양 살림집 10만 세대 건설은 지난 4월 15일 태양절 100돐 기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상징으로서, 주요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그간 중앙당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반드시 4.15 명절 전에 완성할 것을 누차 독려했지만, 자재부족과 자금난 등으로 6월 현재까지 외곽만 들어선 상태다. 올 연말이나 되어야 일반인들의 입주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투자자 눈치 보는 재판부

지난 달, 라선에서 중국인 투자자가 연관된 교통사고가 발생해 보안당국이 한동안 고심에 빠졌다. 중국인 투자자가 연관되어 있어서였다. 북한은‘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수정, 보완해왔는데, 그 중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신변안전보장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제9조에, “법에 근거하지 않고는 구속, 체포하지 않으며 거주 장소를 수색하지 않는다. 신변안전 및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해당 나라사이에 체결된 조약이 있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다”고 돼있다.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법과 제도 보장을 한 것으로, 사건사고의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구금, 심문할 수 없게 돼있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자의 명백한 과실에도 처벌을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눈치를 보는 탓이다. 지난 달 발생한 교통사고도 비슷한 사례이다. 당시 중국인 투자자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험한 산길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굽이진 산길에서 오는 차량을 피하려고 급하게 방향을 튼다는 게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중국인 동료 한 명과 북한 남녀 한명씩 동승하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중경상을 입고 살아났으나, 여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규정상 북한 사람들이 사사로이 외국인 차에 탑승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재판부는 고심 끝에 여성의 죽음에 중국인 운전자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지방당은 재판부의 결과를 존중하지만, 사람이 죽은 만큼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피해자 가족에게 합당한 배상을 하라고 가해자 측에 권고했다. 중국인 사장은 배상금으로 5천 달러를 제시했으나, 피해자 가족이 1만 달러 이상을 요구해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 달 내내 합의를 못 보고 끌다가, 6월에 들어서야 당의 강력한 조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1만 달러 배상으로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라선의 한 간부는 “결과적으로 높은 배상금을 받고 합의를 했지만, 당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중국 사람은 무혐의로 풀려나는 거였다. 재판부에서 규정대로 하지 않고 중국 눈치를 보면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잘 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원정리-라진항 도로공사, 올 여름 완공 예정

중국 훈춘에서 원정리-라진항을 잇는 도로 보수 공사가 올 여름이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6월 현재, 도로공사는 약 2/3 정도 진척된 상황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해 연말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길 상태가 워낙 험한데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등이 겹쳐 공사가 예상보다 많이 지연되었다. 한편 중국 건설노동자들이 도로공사에 부분 참여하다보니, 양국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도 발생한다. 북한의 한 관리일군은 “조선 로동자들과 중국 로동자들 사이에 말싸움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우발적인 손찌검에서 시작해 무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중국 로동자 2명이 조선 로동자 한 명과 어쩌다 싸움이 붙었는데 조선 사람이 몰매를 맞고 숨을 거뒀다. 바빠난 중국 사람들이 증거를 없앤다고 시체를 멀리 버렸다가 보안원들한테 붙잡혔다. 이렇게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서로 자존심 싸움하느라고 많이들 부딪힌다.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이 큰 소리 친다.”고 전했다. 현재 원정리-라진항 도로 보수 공사 및 다리 개축비용은 중국이 모두 부담하고 있다.

라선 땅값 3배 올라

북한 라선지구의 땅값이 2년 사이에 3배가량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부터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레 땅값도 오르고 있다. 중국은 특히 라진항 4, 5, 6호 부두 건설권과 50년 사용권을 확보하면서 여객기와 화물기용 비행장, 화력발전소, 철도 건설 투자를 결정했다. 라선의 한 간부는 외국인들의 활발한 투자 분위기에 라선 땅값 상승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많이 끌어내기 위해, 작년부터 은행에서 건물이나 토지를 담보로 대출이 가능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라진에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많이 했던 사람들이 제일 반긴다. 그간 라진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투자를 많이 했어도 회수가 안 돼 자금난에 시달리는 곳들이 많아서다. 지금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땅이나 건물을 담보로 내놓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단, 저당 잡힌 물건(토지나 건물) 원가의 2/3 수준을 이자로 물어야 한다”고 전했다. 라선에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상점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간혹 러시아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눈에 띈다.

■ 경제활동

40-50대 젊은 사장님들, 중국 대방 찾아 분주

요즘 북한에서 새로 임명된 40-50대 초반의 젊은 사장들이 너도나도 중국에 나가고 있다. 다른 사장들을 따라 대표단 방문 형식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아, 독자적으로 중국인 대방과 친분을 쌓아온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온갖 선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중국인 대방을 사귀어 거래를 트려고 노력한다. 평양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나 직장 동료의 소개는 기본이고, 지인의 지인들까지 샅샅이 훑으며 중국 대방을 소개받으려 애쓴다. 가뜩이나 신용도가 없는데, 그나마 거래를 텄던 일군들이 새로운 얼굴로 대거 교체되면서 중국 무역 상인들이 선뜻 거래에 응하지 않는 분위기다. 작년 가을부터 중국에 다니기 시작한 한 일군은 “중국 상인들은 앞에서는 그저 좋은 말로 거절한다. 지불할 능력이 안 되는 거 뻔히 아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뭘 믿고 주겠느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같은 문제는 작년 무역성 검열 이후 대규모 인선교체로 본격 대두된 이래 고착되는 분위기다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 항일투사가족 최우선 입주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이 아직 완료되지 못한 가운데, 시범 건설 주택 1,800세대를 먼저 입주시키는 중앙당의 배려가 있었다. 300세대의 특별 배려 대상은 항일투사가족에게 돌아갔다. 500세대는 조국해방전쟁 당시 공훈자 가족에게 배정됐다. 나머지 1,000세대는 김정은 정권에 새로 등용된 간부들의 차지가 됐다. 평양시당의 한 간부는 시범주택의 경우 평양 시당의 관할이 아니라 중앙당의 관리에 속하므로 전기 공급 체계가 다르고, 보안도 철저하다고 했다. “이 집들은 자체로 전기가 공급되는지라 정전이 없다. 각종 편의시설도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내부인들도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돼 있는 등 경비가 삼엄하고 관리가 철저하다”고 전했다. 평양 살림집 10만 세대 건설은 지난 4월 15일 태양절 100돐 기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상징으로서, 주요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그간 중앙당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반드시 4.15 명절 전에 완성할 것을 누차 독려했지만, 자재부족과 자금난 등으로 6월 현재까지 외곽만 들어선 상태다. 올 연말이나 되어야 일반인들의 입주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투자자 눈치 보는 재판부

지난 달, 라선에서 중국인 투자자가 연관된 교통사고가 발생해 보안당국이 한동안 고심에 빠졌다. 중국인 투자자가 연관되어 있어서였다. 북한은‘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수정, 보완해왔는데, 그 중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신변안전보장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제9조에, “법에 근거하지 않고는 구속, 체포하지 않으며 거주 장소를 수색하지 않는다. 신변안전 및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해당 나라사이에 체결된 조약이 있을 경우에는 그에 따른다”고 돼있다.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법과 제도 보장을 한 것으로, 사건사고의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구금, 심문할 수 없게 돼있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자의 명백한 과실에도 처벌을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눈치를 보는 탓이다. 지난 달 발생한 교통사고도 비슷한 사례이다. 당시 중국인 투자자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험한 산길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굽이진 산길에서 오는 차량을 피하려고 급하게 방향을 튼다는 게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중국인 동료 한 명과 북한 남녀 한명씩 동승하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중경상을 입고 살아났으나, 여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규정상 북한 사람들이 사사로이 외국인 차에 탑승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재판부는 고심 끝에 여성의 죽음에 중국인 운전자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지방당은 재판부의 결과를 존중하지만, 사람이 죽은 만큼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피해자 가족에게 합당한 배상을 하라고 가해자 측에 권고했다. 중국인 사장은 배상금으로 5천 달러를 제시했으나, 피해자 가족이 1만 달러 이상을 요구해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 달 내내 합의를 못 보고 끌다가, 6월에 들어서야 당의 강력한 조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1만 달러 배상으로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라선의 한 간부는 “결과적으로 높은 배상금을 받고 합의를 했지만, 당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중국 사람은 무혐의로 풀려나는 거였다. 재판부에서 규정대로 하지 않고 중국 눈치를 보면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잘 살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원정리-라진항 도로공사, 올 여름 완공 예정

중국 훈춘에서 원정리-라진항을 잇는 도로 보수 공사가 올 여름이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6월 현재, 도로공사는 약 2/3 정도 진척된 상황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해 연말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길 상태가 워낙 험한데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등이 겹쳐 공사가 예상보다 많이 지연되었다. 한편 중국 건설노동자들이 도로공사에 부분 참여하다보니, 양국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도 발생한다. 북한의 한 관리일군은 “조선 로동자들과 중국 로동자들 사이에 말싸움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우발적인 손찌검에서 시작해 무리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중국 로동자 2명이 조선 로동자 한 명과 어쩌다 싸움이 붙었는데 조선 사람이 몰매를 맞고 숨을 거뒀다. 바빠난 중국 사람들이 증거를 없앤다고 시체를 멀리 버렸다가 보안원들한테 붙잡혔다. 이렇게 사람이 죽기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서로 자존심 싸움하느라고 많이들 부딪힌다.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이 큰 소리 친다.”고 전했다. 현재 원정리-라진항 도로 보수 공사 및 다리 개축비용은 중국이 모두 부담하고 있다.

라선 땅값 3배 올라

북한 라선지구의 땅값이 2년 사이에 3배가량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부터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자연스레 땅값도 오르고 있다. 중국은 특히 라진항 4, 5, 6호 부두 건설권과 50년 사용권을 확보하면서 여객기와 화물기용 비행장, 화력발전소, 철도 건설 투자를 결정했다. 라선의 한 간부는 외국인들의 활발한 투자 분위기에 라선 땅값 상승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외국인들의 투자를 많이 끌어내기 위해, 작년부터 은행에서 건물이나 토지를 담보로 대출이 가능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라진에 공장을 세우고 투자를 많이 했던 사람들이 제일 반긴다. 그간 라진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투자를 많이 했어도 회수가 안 돼 자금난에 시달리는 곳들이 많아서다. 지금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땅이나 건물을 담보로 내놓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단, 저당 잡힌 물건(토지나 건물) 원가의 2/3 수준을 이자로 물어야 한다”고 전했다. 라선에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상점 등을 쉽게 볼 수 있고, 간혹 러시아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눈에 띈다.

오늘의 북한소식 458호

■ 시선집중

탈북자단체 감시, 탈북자 가족에 불똥

국가안전보위부는 지난 4월 말, 남한의 탈북자 단체들을 주요 투쟁 대상으로 규정하고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북한 당국은 남한 탈북자 단체들이 주축이 돼 전국 주요 사적지의 동상과 건물들을 폭파하려고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몇 곳에서 관련자들을 검거하기도 했다. 또 해외에서 활동하는 탈북자단체들의 대북 비방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탈북자단체들이 국내 탈북자 가족들과 연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반북행위여부와 연계여부에 대해 재조사를 하고 있다. 행방불명 처리된 가족들도 재조사 대상이다. 탈북자 가족들은 전화탐지기와 전파방해로 가뜩이나 가족과의 통화가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까지 시달려야 해 괴롭다는 반응이다. 서울에 있는 언니와 몇 달째 통화를 못했다는 김정선(가명)씨는 “작년 말에 군대 갔던 남동생이 다 죽어 돌아왔다. 큰언니가 아들처럼 아꼈던 동생이라 꼭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초소마다 몸 검사를 해서 산중턱에 전화기를 묻어놓고 다녔는데 전파방해가 더 심해졌다. 언니가 동생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애가 닳을지, 바짝바짝 속이 다 타들어간다. 보위부원의 감시도 심하고, 언니와 언제 전화했느냐, 뭘 받았느냐 꼬치꼬치 물으면서 수시로 불려가다 보니 요즘처럼 울고 싶은 때도 없다”고 절망스러워했다. 북한 당국은 국경연선지역을 모두 국가안전보위부의 관할로 편재하고 국경봉쇄를 강화하는 한편, 탈북자 가족들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중국에서 2-3명씩 조 짜서 다니라”

북한 당국은 중국에 파견되는 일군들에게 혼자 다니지 말고, 꼭 2-3명씩 조를 짜서 다니라고 지시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탈북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한 관리는 “탈북자 문제가 중국에도 민감한 사안이 된 것 같다. 작년 말부터 중국 정부도 조선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우면 멈추지 말고 그냥 지나치되,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라고 교육 한다”고 했다. 국경통제가 전례 없이 강화됐는데도 탈북자가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식량난 상황이 위중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본적도 없고,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들 중에 탈북 사례가 늘고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강제송환된 사람들을 심문해보면, 10명 중 7명은 남조선에 먼저 나간 가족이 탈북시킨 경우이고, 나머지 3명은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넘는 사람들이다. 주로 여자들과 아이들이 너무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서 건너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중국에 가면 개도 이밥을 먹고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에 도강 한다”고 했다.

탈북자가족, “통화 안 돼 속 탄다”

전국적으로 식량 초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경연선지역에서는 통화하기가 너무 힘들어져 탈북자 가족들이 애타하고 있다. 량강도 혜산에 사는 정해숙(가명)씨는 중국에 나간 딸과 통화를 못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전화 단속이 심해 목소리를 들을 방법이 없으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북한의 한 관리는 “손전화기를 비법으로 사용하다 걸리면 역적죄로 처벌된다. 걸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보지 않으면 교화소행이고, 전과라도 있으면 도에까지 올라가 취조를 받는데 고초가 심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풀려나려고 한다. 능력이 없으면 위험부담이 너무 높아서 손전화기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 탈북자 브로커 조사 세졌다”

북한의 한 관리는 북한 정부가 탈북자 도강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 역시 탈북자 브로커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중국 정부에서 공안 계통과 안전부문, 국경 무장 경찰과 국경경비대들 중에 탈북자와 연계되어 있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탈북자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대거 잡아들여 탈북자를 도와준 게 드러나면 직위에 상관없이 처벌하는 분위기다. 비법으로 우리 쪽과 전화 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집중 조사한다. 중국에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데, 공식적인 접촉도 조사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집에 재웠거나 도와준 적이 있는 사람들은 5천 위안에서 2만 위안 상당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인신매매에 가담한 사람들은 보름 동안의 예심을 거쳐 3년 이상 판결을 받는데, 최대 17년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조선족들이 많은 연변자치주는 요즘 탈북자들과의 전쟁 분위기다. 국제여론이 워낙 나쁘게 돌아가니까 우리 공화국도 그렇지만, 중국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탈북자 발생을 막으려면 자기네 브로커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중국이 외교문제를 의식해 관련자 색출에 애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제송환 앞둔 탈북자 자살 시도

중국 변방대에 붙잡혀서 강제송환에 처한 탈북자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도문집결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가 작년 말부터 몇 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고난의 행군 때는 중국 집결소에서 자살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요새는 조선에 돌아오면 어차피 죽을 길밖에 없으니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부터 탈북자 처벌 강도가 세진 것도 이유이지만,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식량난에 그만큼 절망감이 깊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먹을 게 없어서 넘어간 단순 도강자들이 많다. 예전에는 단순 도강자들은 단련대 처벌에 그쳤는데, 지금은 교화소 처벌을 내린다. 한 번 붙잡히면 교화소에서 몇 년을 썩어야 하니 돈 없이 도강했다가 붙잡힌 사람들이 자살까지 시도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송환돼 온 젊은 남자도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먹을 것을 아무 것도 못 구했는데 중국 변방대에 붙잡히는 바람에 살기가 싫어졌다면서. 자기가 교화소에 가면 다섯 식구는 꼼짝없이 굶어죽는다고 우는데 해줄 말이 없었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발견하면 붙잡지 말고, 그 자리에서 위협해서 제 나라로 돌려보내라는 지시를 다시 한 번 내렸다. “중국으로선 국제여론이 아무래도 신경 쓰일 것이다. 작년에도 똑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집결소에 있는 사람들은 국경에서 잡힌 사람들보다는 동북3성 지역 도시에서 붙잡히거나 정착한 지 오래된 사람들이 많다.

■ 정치생활

탈북자단체 감시, 탈북자 가족에 불똥

국가안전보위부는 지난 4월 말, 남한의 탈북자 단체들을 주요 투쟁 대상으로 규정하고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북한 당국은 남한 탈북자 단체들이 주축이 돼 전국 주요 사적지의 동상과 건물들을 폭파하려고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몇 곳에서 관련자들을 검거하기도 했다. 또 해외에서 활동하는 탈북자단체들의 대북 비방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탈북자단체들이 국내 탈북자 가족들과 연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반북행위여부와 연계여부에 대해 재조사를 하고 있다. 행방불명 처리된 가족들도 재조사 대상이다. 탈북자 가족들은 전화탐지기와 전파방해로 가뜩이나 가족과의 통화가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까지 시달려야 해 괴롭다는 반응이다. 서울에 있는 언니와 몇 달째 통화를 못했다는 김정선(가명)씨는 “작년 말에 군대 갔던 남동생이 다 죽어 돌아왔다. 큰언니가 아들처럼 아꼈던 동생이라 꼭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초소마다 몸 검사를 해서 산중턱에 전화기를 묻어놓고 다녔는데 전파방해가 더 심해졌다. 언니가 동생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애가 닳을지, 바짝바짝 속이 다 타들어간다. 보위부원의 감시도 심하고, 언니와 언제 전화했느냐, 뭘 받았느냐 꼬치꼬치 물으면서 수시로 불려가다 보니 요즘처럼 울고 싶은 때도 없다”고 절망스러워했다. 북한 당국은 국경연선지역을 모두 국가안전보위부의 관할로 편재하고 국경봉쇄를 강화하는 한편, 탈북자 가족들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중국에서 2-3명씩 조 짜서 다니라”

북한 당국은 중국에 파견되는 일군들에게 혼자 다니지 말고, 꼭 2-3명씩 조를 짜서 다니라고 지시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탈북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한 관리는 “탈북자 문제가 중국에도 민감한 사안이 된 것 같다. 작년 말부터 중국 정부도 조선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우면 멈추지 말고 그냥 지나치되,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라고 교육 한다”고 했다. 국경통제가 전례 없이 강화됐는데도 탈북자가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식량난 상황이 위중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본적도 없고,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들 중에 탈북 사례가 늘고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강제송환된 사람들을 심문해보면, 10명 중 7명은 남조선에 먼저 나간 가족이 탈북시킨 경우이고, 나머지 3명은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넘는 사람들이다. 주로 여자들과 아이들이 너무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서 건너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중국에 가면 개도 이밥을 먹고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에 도강 한다”고 했다.

■ 사회

탈북자가족, “통화 안 돼 속 탄다”

전국적으로 식량 초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국경연선지역에서는 통화하기가 너무 힘들어져 탈북자 가족들이 애타하고 있다. 량강도 혜산에 사는 정해숙(가명)씨는 중국에 나간 딸과 통화를 못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전화 단속이 심해 목소리를 들을 방법이 없으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북한의 한 관리는 “손전화기를 비법으로 사용하다 걸리면 역적죄로 처벌된다. 걸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보지 않으면 교화소행이고, 전과라도 있으면 도에까지 올라가 취조를 받는데 고초가 심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풀려나려고 한다. 능력이 없으면 위험부담이 너무 높아서 손전화기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 탈북자 브로커 조사 세졌다”

북한의 한 관리는 북한 정부가 탈북자 도강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것처럼, 중국 정부 역시 탈북자 브로커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중국 정부에서 공안 계통과 안전부문, 국경 무장 경찰과 국경경비대들 중에 탈북자와 연계되어 있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탈북자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대거 잡아들여 탈북자를 도와준 게 드러나면 직위에 상관없이 처벌하는 분위기다. 비법으로 우리 쪽과 전화 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집중 조사한다. 중국에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데, 공식적인 접촉도 조사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집에 재웠거나 도와준 적이 있는 사람들은 5천 위안에서 2만 위안 상당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인신매매에 가담한 사람들은 보름 동안의 예심을 거쳐 3년 이상 판결을 받는데, 최대 17년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조선족들이 많은 연변자치주는 요즘 탈북자들과의 전쟁 분위기다. 국제여론이 워낙 나쁘게 돌아가니까 우리 공화국도 그렇지만, 중국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탈북자 발생을 막으려면 자기네 브로커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중국이 외교문제를 의식해 관련자 색출에 애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제송환 앞둔 탈북자 자살 시도

중국 변방대에 붙잡혀서 강제송환에 처한 탈북자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의 한 관리는 도문집결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가 작년 말부터 몇 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고난의 행군 때는 중국 집결소에서 자살한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요새는 조선에 돌아오면 어차피 죽을 길밖에 없으니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부터 탈북자 처벌 강도가 세진 것도 이유이지만, 초근목피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식량난에 그만큼 절망감이 깊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먹을 게 없어서 넘어간 단순 도강자들이 많다. 예전에는 단순 도강자들은 단련대 처벌에 그쳤는데, 지금은 교화소 처벌을 내린다. 한 번 붙잡히면 교화소에서 몇 년을 썩어야 하니 돈 없이 도강했다가 붙잡힌 사람들이 자살까지 시도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송환돼 온 젊은 남자도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먹을 것을 아무 것도 못 구했는데 중국 변방대에 붙잡히는 바람에 살기가 싫어졌다면서. 자기가 교화소에 가면 다섯 식구는 꼼짝없이 굶어죽는다고 우는데 해줄 말이 없었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발견하면 붙잡지 말고, 그 자리에서 위협해서 제 나라로 돌려보내라는 지시를 다시 한 번 내렸다. “중국으로선 국제여론이 아무래도 신경 쓰일 것이다. 작년에도 똑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집결소에 있는 사람들은 국경에서 잡힌 사람들보다는 동북3성 지역 도시에서 붙잡히거나 정착한 지 오래된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