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병원 일군들, “결핵약 시급하다”

지방 병원마다 환자는 급증하는데,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한 의사는 “매일 환자들이 죽어나가는데, 거의 영양실조로 죽는다. 우리야 이 병, 저 병으로 죽었다고 진단서를 떼 주지만, 제대로 된 약 처방도 못 받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 처방을 해줘봐야 병원에서는 줄 약이 없다. 본인들이 알아서 약을 구해야 하는데 약을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면 굶고 있었겠는가. 용케 어디서 약을 구했다 쳐도, 워낙 몸이 쇠약해져 있어서 약이 잘 듣지도 않는다”고 했다.

도병원이든 시병원이든 지방 병원들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함흥시 어느 공장 부속 병원에서 일하는 일군은 “공장이다 보니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편인데, 간단한 소독약 하나가 없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항생제와 염증치료약이 필요하다. 특히 결핵은 감염 속도가 대단히 빠른데, 아이들이 쉽게 걸린다. 아이들의 뇌막염 약이나 결핵약이 절실하다. 영양실조는 식량이 있어야 해결될 문제라서 감히 지원해달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항생제와 결핵약을 다만 얼마라도 급하게 보내주면 이 은혜 잊지 않겠다”며 거듭 몇 번이고 부탁했다

낙지(오징어)잡이 울상

동해안 어촌마다 낙지(오징어)잡이가 한창이어야 할 때지만 한숨이 가득하다. 수산물 수출 금지와 맞물려 비싼 기름 값을 대기도 어렵고, 낙지 어군도 줄고 있어서다. 중국 어선들이 종자까지 싹쓸이 해가는 데 비해, 낡은 배와 어구, 그리고 까다로운 바다출입증으로 여러 제약이 많은 북한 어선들은 처음부터 경쟁이 안 된다. 동해안 어민들은 보통 6월에서 10월까지 낙지잡이로 1년 식량을 벌어들인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말려서 판매하는데도 여성들의 일손이 딸려서 인근 도시 노동자들이나 장사꾼들도 몰려든다. 남자들은 오후 2-3시쯤 바다에 나가 다음 날 오전 9-10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몇 년 새 기후 변화로 동해안에서 낙지가 줄고 있다. 온 밤 내내 바다에서 뜬눈으로 낙지잡이를 해도 스무 마리도 못 잡고 돌아오는 날이 많다. 다들 삯벌이 배들이라 10마리를 잡으면 선주에게 6마리를 바치고, 나머지 4마리를 자기들끼리 나눠 갖는다. 인심이 야박한 선주는 7마리를 가져가기도 한다. 수산물을 수출하지 못하게 해서라기보다, 낙지잡이 자체가 잘 안 되는데서 어부들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북한이 자랑하는 명태는 중국에 수출해왔는지 이제는 도리어 수입하는 실정이다. 함경남도 신포항에 가보면 명태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냉동 창고가 텅텅 비어있다. 신포의 한 일군은 “올 겨울, 명태잡이를 얼마 못했다. 기름이 없어서 고기잡이를 나간 배가 많지 않았다. 냉동 창고에 명태를 넣었다손 쳐도 전기가 하도 오락가락하니까 신선하게 보존할 수가 없다. 수산물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보관도 큰 부담이 되다보니 웬만큼 큰 회사 아니면 버티지를 못한다. 외국에 수출하던 무역회사들도 이번에 수산물 수출 금지 조치가 떨어져서 다들 손 놓고 있는 분위기다. 몰래 팔고는 있지만, 언제 발각돼 다 회수 당할지 모를 일이니 다들 부담을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작년 수해 복구도 못했는데 다시 여름 돌아와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집중 폭우가 두렵다. 황해남도 청단군과 배천군, 평안남도 강서군 등 작년에 수해 피해가 심했던 곳은 아직도 복구를 못한 상태다. 작년 여름에 농장 밭은 물론이고 개인 소토지들까지 모두 물에 쓸려가는 바람에 올해 춘궁기를 버티기가 더 어려워졌다. 파손된 집이 복구가 안 돼 천막살이를 못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평안남도 강서군의 한 간부는 “농장 공동 건물이 모두 무너지고, 살림집들이 파괴되었다. 학교와 탁아소, 유치원도 반파되거나 완파된 곳이 많았고, 도로가 막히고 통신수단이 끊어진 후에 일부는 보수를 해서 다시 건물을 올렸지만, 시멘트도 없고 목재도 부족하니 미처 다 끝내지 못했다. 밑천 한 푼 없이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이 살아갈 방법이 없어 그동안 죽기도 많이 죽었다. 당에 보고를 다 올리지 않아서 그렇지, 제일 불쌍한 것이 수재민이었다. 농장에서 구제받은 사람들도 있긴 한데, 아직 집을 다 짓지 못해서 농장에서 공동 숙식하는 정도다. 올해 또 큰물피해를 입게 되면, 정말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황해남도 강령군은 작년 7월 30일에 내린 5시간의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수십 명의 목숨을 잃었다. 농장들마다 시체를 찾지 못한 농민 가족들이 많고, 또 일부 수재민들은 제대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꽃제비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산사태에 미처 손 쓸 틈 없이 당한 일이었지만, 그 피해는 너무 컸다. 농경지 침수와 살림집 파괴는 물론이고, 강둑과 철길, 도로가 다 끊겨 아직도 복구가 안 된 곳이 많다. 복구를 했다손 쳐도 제대로 된 장비 없이 대충 흙으로 밟아놓았다. 여름마다 큰물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강령군의 한 농장일군은“수해가 일단 난 뒤에야 중앙당에서는 일군들을 내려 보내고, 도당에서도 책임 일군들이 내려와 본다. 그러면 뭐하는가. 재난 퇴치 작업을 끝내지를 못하는데. 기계와 중장비가 있으면 침수지역에서 인차 물을 뽑겠는데, 순전히 못 먹고 힘없는 농민들을 동원해서 물을 퍼내니 복구 작업이 제대로 될 턱이 있겠나. 그렇다고 큰물피해를 막을 대책도 없다. 산에 나무가 있기를 하나, 작년에 파괴된 강둑을 제대로 탄탄하게 막아올린 것도 아니고, 배수로를 다시 정리한 것도 아니고. 아느니 한숨만 나온다. 지금 농민들은 흙 파먹을 것도 없어 죽어가고 있는데, 물이 없어서 걱정, 물이 너무 많아서 걱정, 이래도 저래도 걱정뿐”이라며 절망감을 토로했다.

황해도 청단군, “하루 한 끼 죽도 못 먹어”

황해도 농촌마다 오랜 가뭄으로 땅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했다. 황해남도 청단군 심평리 협동농장은 지난 해 7월 말에 물 폭탄이 쏟아져 농지가 심하게 유실되었고, 무엇보다 농작물을 대거 잃었다. 농민들은 감탕에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 낟알 한 알이라도 더 건져보려고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가을 분배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올해는 지독한 가뭄에 논에 물을 댈 수가 없었다. 청단군 농장일군 김철(가명)씨는 “논벼는 말할 것도 없고, 옥수수도 바싹 말랐다. 보면 알겠지만, 옥수수 잎사귀만 축 처져있는 게 아니다. 뿌리까지 다 말라 비틀어져있다. 옥수숫대를 잡고 힘주면 쑥 뽑힌다. 작년에 거둔 옥수수로 지금껏 버티고 있는 집은 몇 집 안 된다. 한 끼 죽도 못 먹는 집이 태반이다. 농민 세대는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간다. 원래 농장에서 남자 노력 1명은 한해에 290일 출근해야 만가동 한 것으로 되는데 만가동 했을 경우 남자는 겉곡으로 하루 800g, 여자는 700g을 분배 받을 수 있다. 비노력 인구로 노인은 300g, 소학교 학생은 300g, 중학교 3학년부터 400g, 5학년생은 500g이 표준이다. 재작년부터 분배 체계가 소용없어졌다. 군량미로 먼저 거둬가면 농민들은 분배를 아예 받지를 못한다. 작년에는 초봄부터 산나물에 풀밥을 해먹으면서 버텼는데, 지금은 아예 굶고 있다. 농민들 집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 비참함이란 말도 못한다. 돼지죽인지 사람이 먹을 것인지 분간도 안 된다. 이렇게는 농민들의 대량 아사를 막을 수 없다”며 절망스러워했다.

요새 잘 먹는 집도 쌀 한 줌에 옥수수밥

북한의 주식이 쌀이 아니라 옥수수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옥수수를 잘잘하게 부순 것을 옥수수‘쌀’이라고 하고, 삶은 것을 옥수수밥이라고 한다. 최상위층은 이밥(쌀밥)을 먹고, 그 외에는 옥수수를 주로 먹는다. 집안 형편에 따라 옥수수쌀에 쌀 섞이는 비율이 달라지는데, 잘 사는 집은 옥수수와 쌀의 비율이 ‘5대5’밥을 넘지 않지만, 형편이 기울수록 옥수수쌀의 비중이 높아진다.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강은희(가명)씨는 보안일군으로 일하는 남편 덕분에 지금껏 먹는 걱정을 하지 않고 살다가 남편에게만 배급이 나오고, 나머지 세 식구들에게는 배급이 안 나온 지가 벌써 수개월째다. 아껴가며 먹어 굶지는 않지만, 밥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밥만 먹고 살던 때도 있었는데, 벌써 옛날 얘기다. 작년에는 옥수수쌀을 5대5로 섞은 밥을 먹었다면, 올해는 옥수수밥에 쌀 한 줌을 겨우 섞을까 말까다. 강씨는“요새 웬만큼 큰 부자 아니면, 먹는 질이 다 떨어졌다. 옥수수밥이라도 제대로 챙겨먹는 집이 잘 사는 집이다. 옥수수밥에 쌀 한 줌 섞어 먹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 우리 집이 이 정도면, 다른 집은 더 말할 게 없다. 화교들 빼고는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리 보존하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하루빨리 국가 식량 사정이 잘 풀려서 배급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