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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66호(2012.08.01)

신의주 채하시장, 화교 좌판 상인 등장

국경지역, 자전거가 제일 잘 팔려

‘돌강원도’군인도, 농민도 죽을 지경

보위사령부 단련대도 직급 차별

사금반 단련대생, 고생 막심

신의주 채하시장, 화교 좌판 상인 등장

평안북도 신의주 채하시장에 좌판 장사를 하는 화교들이 있다. 일반 공산품 판매 금지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국내 상인들의 입지가 좁아진 틈을 탄 것이다. 화교들은 돈주의 역할을 하거나, 도매상인으로 물건을 소매상인들에게 넘겨주는 역할을 해왔다. 북한 당국의 시장 통제가 심해지면서, 화교들의 판매망에도 제약이 생겼다. 중국 물건을 팔다가 회수당하거나 북한 소매상인들의 피해가 심하다보니, 직접 관리하려는 화교들이 생긴 것이다. 채하시장에서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오정숙(가명)씨는 화교를 끼고 장사를 해야 안전하다고 했다. 신의주의 한 간부도 “우리 시장에 대한 자료가 외국에 많이 폭로됐다고 들었다. 그래서 보위부원들이 CCTV를 설치해두고 몰래 사람들의 동태를 찍는다. 누가 무엇을 팔고 사는지, 특히 판매하는 사람을 주목해서 잡아들이려고 그런다. 하도 감시가 심하니까 다들 꼼짝 못하고 한동안 장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장사를 못하면 돈주 화교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직접 나서게 된 거다. 화교들이 옆에 있으면 아무래도 보위부원들이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화교를 끼고 장사를 하면 안전하니까 조선 돈주가 돈 없는 화교를 붙잡아 동업을 하려는 경우가 생길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경지역, 자전거가 제일 잘 팔려

함경북도와 량강도 등 국경연선지역에서 상반기에 눈에 띄게 많이 팔리는 품목은 자전거이다. 자전거를 되걸이 판매하는 한 상인은“올 봄에 장사가 잘 될 때는 보름 만에 500만 원이 넘게 팔 때도 있었다”며 다른 장사에 비해 자전거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했다. 한 달이면 중국 돈으로 평균 1만-1만 5천 위안은 벌어들인다고 했다. 다른 장사는 거의 안 되는데, 유독 자전거 장사만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먹고 살려면 아무리 배고파도 움직여야 한다. 자전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자전거가 있어야 시나 군으로 장사를 다닐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귀한 장사 밑천”이라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 라남구역에 사는 정룡일(가명)씨는 김책제철소 노동자이지만, 옥수수 배급마저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자전거 장사에 나섰다. 정씨는 2008년도에 식량 사정이 어려울 때는 공장에 들어오는 콕스(원료)를 몰래 빼돌리는 장사를 했다. 몇 번 발각돼 뇌물로 무마했지만, 2010년도에는 단련대행을 피할 수 없었다. 3개월 노동단련대 생활 후에 김책제철소에 꼬박꼬박 출근했지만, 역시 오래지 않아 결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됐다. 강원도 원산에서 자전거 장사를 하던 사촌 형님의 도움으로, 중고자전거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다시 단련대에 붙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다가도, 식구들 배곯는 것을 보고 다시 장사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못 먹어도, 자전거는 산다. 나중에 자전거가 잘 안 팔리면 또 다른 장사꺼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며, 요즘은 자전거가 제일 잘 팔리고 있다고 했다.

‘돌강원도’군인도, 농민도 죽을 지경

강원도에는 2개 정규군이 편재돼 있는데, 1군단과 5군단 등 2개 군단과 전투 기재가 배치돼 있다. 강원도 주민들보다 군인수가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군대 인원이 많다. 하도 먹을 것이 없고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초모생들은 이곳에 배치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제 한 몸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군인들은 강원도를 ‘돌강원도’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돌과 군대뿐이라 나온 말이다. 강원도 주둔 군인들은 누구나 “전쟁이 일어나면, 허약한 군인들이 싸우지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 상부에서는 우리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있다고 하는데 들을 때마다 기가 찬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1차 타격에 다 죽거나, 군대 인원수나 채우자고 복무시키는 것 같다”고 자조한다.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정광일(가명)씨는 “허약자들의 원기가 잘 회복되지 않는다. 강원도에서 군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 번쯤은 영양실조를 겪어서 회복돼야 만기 제대할 수 있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결핵환자들도 많은데, 군대에서 영양실조도 그렇지만 결핵환자들도 살아나가기가 참 힘들다. 거의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집에 보내니까 돌아가면 대개 빨리 죽는다”고 했다.

강원도 평강군에 주둔하는 한 하사관은 “돌강원도라는 말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올해는 진짜 돌과 바람밖에 없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안 보인다. 가뭄 때문에 올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쳐서 농민들도 다 죽게 생겼고, 군대도 죽겠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모양이 들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인민들 하는 말이, 군인들이 농작물을 훔치러 들어오면 막지 않는다고 한다. 가져갈 것도 없고, 군인들이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너무 험악해서 무섭단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위사령부 단련대도 직급 차별

함경남도 금야군 보위사령부 단련대에는 사병들과 하전사, 군관들이 같이 수용된다. 농산반과 사금반, 목공반, 축산반 등 일반 로동단련대와 별다를 바 없는 작업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군관과 하사관 및 병사 비율은 해마다 약간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로 6대 4 정도로 군관이 더 많다. 단련대 형기가 끝나면 본대 복귀할 수 있는 단련대생과 바로 생활제대하는 단련대생으로 나뉘는데, 후자들이 주로 고되게 힘쓰는 일을 한다. 직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비교적 쉬운 집짐승을 키우는 일은 소대장 이상의 군관들이 하고, 탄광이나 사금 등 힘든 일은 사병들이 맡는다. 가장 차별이 심한 부분은 역시 먹는 문제다. 식당에서 옥수수밥을 거의 정량대로 받는 것은 군관들로, 밥 식기에 수평상태로 받는다. 하전사들이 소금국에 겨우 죽 한 그릇 먹을까 말까한 것과 비교된다. 단련대의 한 관계자는“군관들은 가족들이 면회도 자주 오는 편이라 옥수수펑펑이가루라도 잘 먹는데, 하전사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바짝 말라간다. 영양실조에 각종 병으로 죽는 사람들도 다 하전사들”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단련대 정문 안에 들어가면, ‘도주하는 자, 자멸이다’, ‘일하지 않는 자, 밥을 먹을 수 없다’ 등 갖가지 구호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단련대생들은 이런 구호에 무감각해지지만 아무래도 매일 쳐다보게 되니 스스로 새기게 된다. 다들 육체적으로 힘들고 배고픈 생활에 고통스러워하면서,‘무조건 살아서 나가 죄를 씻자’는 구호를 새기면서 단련대 생활을 견딘다”고 전했다. 간혹 일을 열심히 해서 타의 모범을 보인 사람은 모범 퇴소를 받기도 하는데, 이조차 하전사보다는 군관들이 많다. 한편 단련대에서 퇴소할 때엔,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절대 함구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사금반 단련대생, 고생 막심

함경남도 금야군 보위사령부 단련대에는 사금채취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매일 작업량이 정해지는데, 시금반 단련대생들은 하루 작업 과제를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인데, 과제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달성할 때까지 일해야 한다. 보통 하루 10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12시간 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금반은 다른 작업반보다 끼니를 잘 받는 편이다. 옥수수밥을 먹여서라도 일을 많이 시켜 사금을 많이 생산하자는 의도이다.

지난 4월부터 사금계획 실적이 감소해 단련대생들의 노동 강도가 더 세졌다. 채취구역을 옮겨가면서 하는데, 하루종일 강변에서 일하다보면 금새 배가 고파진다. 단련대생들은 규정대로 주는 옥수수밥을 먹고도 성에 차지 않아 한다. 단련대에서는 사금계획을 달성하면 끼니를 더 주는 것으로 사금 채취를 독려하고 있다. 하루 700g이 정량이라면 900g으로 올려주는 식이다. 지난 7월에는 사금작업반 3반 단련대생들이 과제를 수행하자, 옥수수묵지가루 2kg을 얹어주기도 했다. 3반 단련대생들은 묵지가루에 배추 시래기를 많이 섞어 가마솥에 넣어 끓여먹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