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강순자 황성지역 활동가
한국어를 매개로 고려인과 이웃이 되어 온 ‘고려인들과 한국어로 놀아요’ 프로그램의 2년 반을 돌아봅니다. 언어를 넘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해의 폭을 넓혀 간 따뜻한 교류의 현장을 만나 보세요!
1. 한국어 수업 시작 계기
2024년 설을 맞이하여 경주 성건동 ‘이주민 사랑방’에서 고려인들과 좋은 이웃 되기 ‘좋은벗들’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이주민 사랑방’이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경주 황성지역의 실천활동으로 고려인 한국어 수업을 제안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2년 반째 수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랑방을 운영하는 외국인도움센터에서 몇 년 동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 봉사를 하며, 고려인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을 보는 순간, 이곳에서 다시 한국어 수업 봉사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지역 활동가들에게 제안하자 모두들 흔쾌히 ‘한 번 해보자’며 마음을 모아 주었고, 황성지역의 실천활동을 놀이처럼 즐겁고 가볍게 해보자는 뜻을 담아 ‘고려인들과 한국어로 놀아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2.고려인 참여 현황
현재 경주에는 약 6천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수업에는 보통 10명 내외가 참여하고 있으며,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분들입니다. 이분들의 대부분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 주러 한국에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계신 분이 8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한글도 모른 채 한국에 오신 분이거나 가끔 한 번씩 참여하는 분, 한동안 수업을 쉬었다가 다시 오시는 분들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분들의 한국어 수준은, 어릴 적 부모님께 배웠거나 고려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휘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말을 구사하는 정도였습니다. 말투는 북한말이나 옛 사투리와 비슷한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 저 역시 그러한 방언을 듣고 자란 세대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점점 잊혀 가는 정겨운 옛 단어들을 다시 듣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문화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해외 이주민 사회에서는 이주 당시의 문화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이 수업에서 얻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3.한국어 수업 내용
수업은 처음부터 말하기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활동을 구상하여 적용해 왔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수업 방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봉사자 수에 맞게 소그룹을 구성해 카드 게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를 익힌 뒤, 카드를 활용해 관련 단어 찾기, 그림 카드 보고 설명하기, 카드에 나온 단어 설명하기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활용한 방법은 배운 단어 카드를 이용한 퀴즈 게임입니다. 학교 영어 수업에서 많이 하는 ‘What am I?’를 한국어판으로 응용한 방식인데, 기초 단계에서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데 매우 효과가 좋아 꾸준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봉사자와 고려인이 함께 게임에 참여해 자신의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아는 모든 단어를 총동원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발한 표현들이 나와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단어 퍼즐, 동요 개사하기, 전래동화 읽기, 그림으로 표현하기 등의 활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계절과 관련된 활동, 스케치북을 활용한 단어 브레인스토밍, 한국 가요 배우기 등으로 진행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관련 주제를 반영해 수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고 평소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한 번 했던 내용도 다시 하면 늘 새로워하십니다. 연세가 있으신 만큼 고혈압, 당뇨, 골절 등으로 병원을 찾는 일도 많아 병원과 건강 관련 어휘는 반복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시 배울 때는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아도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느끼지는 않고, 하나둘 기억해 내는 단어들이 늘어나면서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디지만 점점 실력이 쌓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옷, 음식, 시장 보기, 숫자 읽기, 집 구조, 명절, 색깔, 날씨, 양념, 성격, 외모, 한국 문화와 관련한 짧은 글, 전래 동화와 이야기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국내외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이야기나 궁금한 것들도 자연스럽게 수업 주제가 되곤 합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고려인 학습자들의 질문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문화 비교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같은 민족이구나 하고 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면 파티를 즐기고 긍정적인 사고로 현재에 충실한 생활 모습을 보면서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심청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스스로 인당수에 몸을 던진 딸 심청의 이야기로 대표적인 효 설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함께 읽으며 자신이 효녀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와 답변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살아온 사회적인 맥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수업이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시간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따뜻한 교류의 장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4.수업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돌아보니 어느새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수업이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수업 꼭지로서 먼저 감사한 마음이 앞섭니다. 흔쾌히 실천 활동으로 채택해 준 황성지역 활동가님들께, 그리고 봉사자로 참여하여 수업에 열정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담당 활동가가 세 번이나 바뀌고 많은 봉사자가 오고 갔지만, 이 수업은 여전히 지역실천활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봉사자로 참여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처음의 들뜸과 열기는 이제 차분함과 편안함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고려인들도 있지만, 새로운 분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는 곳인 만큼 참여자들의 학습 수준 차이는 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봉사자가 함께하기에 각자의 수준에 맞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수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한국어도, 한글도 모른 채 한국에 와 낯선 일상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고려인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배우고 쉬어 갈 수 있는 곳. 경주 고려인 사회의 작은 한국어 오아시스로서 ‘고려인들과 한국어로 놀아요’ 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도록 함께 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