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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광주, 우리가 마주한 푸른 기억

광주 5·18 역사 기행

글·사진 최유리 / 서울 청년 활동가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집합 시간이 제일 빨라서 전날에 짐을 챙겨 두고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재작년에 진행됐던 5·18 광주 역사 기행이 올해 재개된 터라 기행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렸고 궁금한 마음이 컸습니다. 사전 학습으로 한강 작가의 책《소년이 온다》 도 읽고, 여러 영상도 시청하니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버스 안에서 여러 활동가와 얘기도 나누고 간식으로 맛있는 떡과 단팥빵을 먹었습니다. 일찍 일어난 터라 잠시 눈을 붙였더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58명의 청년 활동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조별로 시작 나누기를 한 다음 이어폰을 끼고 미트로 접속했습니다. 예전에는 송수신기를 사용해서 기행 안내를 받았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훨씬 간편해졌습니다.

5·18 민중항쟁 추모탑

첫 기행지는 국립 5·18 민주 묘지였습니다. 다 같이 민주의 문에 모여 묵언하고 입장했습니다. 민주 광장과 추념문을 지나 참배 광장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거대한 5·18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멈춰 서서 준비한 꽃을 헌화하고 다 같이 묵념했습니다. 마음이 묵직하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추모탑 뒤에 있는 돌조각 앞에서 활동가 강희석 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5·18 민주항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표현한 조각물이었습니다. 열심히 설명하던 활동가 강희석 님이 울컥하자 설명을 듣던 참가자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가 권력이 시민에게 가한 폭력과 학살에 분노와 슬픔을 느꼈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잠시 조별로 묘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놀랐습니다. 묘비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도 있다고 하니 더욱더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묘비 뒤에 적힌 문장들을 보며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돌아가신 소중한 생명들의 무게가 확 와닿았습니다. 묘지 옆에 있는 유영봉안소에 가서 고인이 되신 유공자들의 사진을 천천히 보았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어서 망월동 5·18 구묘지로 향했습니다. 활동가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옛 전남도청 외벽의 총알 자국

다음 기행지는 옛 전남도청이었습니다. 복원 공사를 마치고 개관을 앞둔 터라 약간 어수선했지만, 곳곳에 있는 당시의 상황을 추측해 보았습니다. 바닥에 있는 조각에 오월의 별이 된 자리라고 표시된 곳들이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27일 최후 항쟁 당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위치를 표시해 둔 것이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그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사실적이라서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활동가들은 조용히 그들의 희생을 기렸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외부를 둘러보는데 지나가던 시민 한 분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생생했습니다. 건물 앞으로 돌아와서 외벽과 주변 나무에 남아 있는 총알 자국을 살펴봤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전일빌딩의 외벽에도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셨음이 다시 한번 깊게 느껴졌습니다.

잠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예약해 둔 근처 한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맛있어서 다들 배부르게 먹었고 어떤 활동가들은 2~3회씩 먹기도 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5·18 역사기록관이었습니다. 인원이 많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기자들이 급하게 갈겨쓴 취재 노트를 보며 현장이 얼마나 급박하게 전개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기자 취재 수첩

이어 기록관 전시를 더 둘러보며 당시 광주 시민들은 모든 물품과 재료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슈퍼 주인도, 가정집에서도 기꺼이 재료와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었다는 설명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민주항쟁 기간, 단 한 건의 절도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기행지는 5·18 자유공원(상무대 옛터)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잘 조성된 공원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민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고, 끔찍하게 고문당했던 장소였습니다. 각 건물에 들어가 보면 당시의 사진과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계엄군에게 상처 입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민군의 사진이었습니다. 참혹함에 한동안 활동가들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심문과 조사를 받는 모형도 있었는데 너무 잔인했습니다.

 5·18 자유공원 헌병대 식당

활동가 강희석 님은 헌병대 식당 앞에서 마지막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모두 깊이 공감했습니다. 조별로 소감 나누기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잔인해서 오히려 믿기지 않았던 현장, 그러나 모두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할 그날입니다. 마음이 감사로 차오른 하루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광주에 다녀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옛 전남도청 앞 단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