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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과 함께 한 우리동네 줍깅

글, 사진 : 신미순/시흥

광명, 시흥, 안산지역의 좋은벗들은 2022년 부터 매년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좋은이웃의 날 나들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좀 쉬어갈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날씨도 좋고, 행사가 있을때마다 “이런 자리 많이 마련해 주세요” 라고 했던 북한이탈주민의 말씀도 생각나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벗들 대부분의 행사가 주말에 진행되다 보니, 주말에 시간내기 어려워 아쉬워하던 북한이탈주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평일로 날을 잡아 소수라도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시흥에서 가볍게 진행해보는 방향으로 의논 했습니다. 환경실천으로 줍깅도 하고 동네 유적지(영모재)를 간단히 돌아보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영모재는 시흥지역의 향토문화유산으로, 조선 광해군의 장인 문양부원군 류자신의 재실입니다. 영모재를 찾아가 해설 신청을 하고, 사전 답사하며 동선과 계획을 짰습니다. 행사 준비 과정에서 활동가 세 명이 쑥을 뜯어 쑥설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깨끗한 쑥을 뜯어야 한다고 산 고개를 두 번 넘어 이틀에 걸쳐 쑥을 뜯었습니다. 다양한 꽃들이 모여 화단을 이루듯, 좋은벗들 행사가 있을 때 도와주고 응원해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봉사자가 있어 제 마음이 무척 가벼웠습니다.

2025년 4월 29일 화창한 봄날, 파프리카와 양파, 당근을 송송 썰어 유부초밥을 만들며 이래저래 마음은 분주했지만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줍깅 나들이라 기대되었습니다. 늘 사회를 맡던 분이 바빠서 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활동가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께 그동안 쌓아온 정 덕분인지 편안했습니다.

9시50분에 집결지에 모두 모여 반갑게 인사하고 여는 인사와 일정으로 행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줍깅은 ‘쓰레기줍는 조깅’ 의 줄임말로 환경운동 캠페인의 하나로 자리 잡은 활동입니다. 요즘 날씨도 변덕스럽고 환경문제 심각성 다들 느끼고 계시죠?”라고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누기와 공지안내를 마친 후 준비해 온 장갑, 재활용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꺼내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한 분이, 담배꽁초가 이렇게나 많다며 한 줌 쥐어 보여주고는 한숨을 내쉬며 여기저기 보물찾듯 쓰레기를 찾았습니다. 아파트 주변에는 버려진 비닐이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상가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많았습니다. 각종 캔과 스티로폼, 종이 등을 길 모퉁이에서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북한이탈주민들이 쓰레기 줍는 일에 거부감을 가질까 걱정 했었는데, 다들 열심히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보며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집결지에서 영모재까지 대략 1km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예정되었던 시간이 지체되어 “빨리 갑시다! ” 하고 외쳤지만 들리지 않는지, 다들 허리를 굽힌채 사방으로 흩어져 쓰레기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더 “갑시다!” 라고 손짓을 하며 되돌아 가보니 쓰레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줍깅에 몰두하는 멋진 활동가, 북한이탈주민들과 같이 저도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작은 손길들로 주변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영모재로 입장하니 안내자 두 분과 해설사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영모재를 구성하는 안채와 문간채는 1869년에 지어졌고, 영모재는 188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안채는 시흥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가옥이라고 합니다. 활동가도 북한이탈주민들도 , 대청마루의 희귀한 팔각 기둥을 살피며 해설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옛 살림살이도 만져보고 사진도 찍으며 조선시대의 역사를 느껴보는 참 감사한 시간었습니다.

인원이 많아 2조로 나누어 1조는 한옥체험을 하고, 남은 1조는 밖에서 전통놀이 체험을 교대로 했습니다. 전통놀이로는 딱지치기 ,활쏘기, 링 던지기, 투호놀이 등을 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한 분이 링 던지기를 하는데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안내자가 집중해서 해보라고 응원하니 “이번엔 꼭 넣고 말꺼야” 라며 굳은 결심을 한 듯 집중했고, 세 번 만에 기분 좋게 들어갔습니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얼굴로 함께 박수치고 응원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영모재 옆 공원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100m 남짓 되는 길을 걸으며 시흥의 유래와 변천사가 적힌 안내문을 함께 읽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몇 분은 한국도 이렇게 못 살았던 시절이 있었느냐 물으며 의아해 했습니다. 한민족의 가난했던 시절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다 같이 돗자리 깔고 활동가들이 준비한 식사를 하며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정성이 들어간 쑥설기는 너무 향긋했고 제가 만든 유부초밥도 다들 맛있다고 칭찬하니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김밥과 과일로 소박하게 준비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점심이었습니다.

식사를 일찍 마친 분들은 푸르름 가득한 주변을 산책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나들이에서 노래 한곡 안들어 보면 서운하겠지요? 활동가 한 분이 평소에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번에는 조용한 곡으로 불렀습니다. 뒤이어 북한이탈주민 한 분이 찔레꽃을 멋지게 부르자 앞서 노래했던 활동가가 “이거 내가 할 걸” 했고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끝으로 함께한 소감을 나누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평일에 가까운 곳으로 와 가볍게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고, 조선시대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는데 알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봉사활동이 있으면 꼭 참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과 활동가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발이 제일 빨랐던 북한이탈주민 한 분이, 먼저 집결지 근처로 가서 줍깅한 쓰레기 분리수거를 다 해놓아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익숙한 동네에서 오붓한 분위기로 가볍게 진행할 수 있어서 좋았고,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환경실천을 한 점이 의미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의 수고로움과 변함 없는 활동 덕분에 2025년 4월도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하는 나들이를 잘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