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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73호

■ 논평

북한 결핵문제, 강 건너 불구경 안 돼

화폐교환 이후 식량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서 북한에 결핵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른 추위에 감기까지 겹쳐 사망률 역시 높아지고 있다. 결핵은 다른 전염병에 비해 주거환경, 영양상태, 건강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 전염성 질병으로, 주거환경이 불결할수록, 경제력이 낮을수록, 그리고 영양상태가 안 좋을수록 더 많이 발생하는 일명‘가난한 병’, 또는 ‘후진국 병’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에서도 결핵 환자치료 및 예방을 위해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미 1997년부터 북한 보건성이 결핵 퇴치를 위한 지원을 국제사회에 공식 요청했고,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유진벨재단과 같은 국제 NGO 단체들에서도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그러나 위생과 영양상태가 안 좋은 만성 영양실조상태인 북한 주민들의 결핵을 퇴치한다는 것은 빈곤문제만큼이나 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병원 시설이 부족해 거의 죽을 때가 되지 않으면 입원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치료약 역시 충분하지 않다보니 결핵환자들의 병원 이용률이 현저하게 낮다. 결핵균을 뱉어내 전염성이 높은 개방성 결핵환자들이 일반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가족을 비롯한 이웃들에게 전염시키는 일이 많다. 비단 북한 내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북한과 인접한 남한 지역에서도 결핵발병률이 높아졌다는 최근 보고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달 8일 대한결핵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지역별, 연도별 결핵신고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북한과 인접한 서울특별시(11,531명→12,320명), 인천광역시(1,798명→2,143명), 경기도(6,349명→6,545명), 강원도(1,860명→1,934명) 모든 지역에서 결핵환자가 예년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OECD 가입 이후 10년째 결핵발병률과 사망률 1위 국가”라며 “북한 주민들의 건강상태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결핵의 완전 퇴치는 지구촌 전 지역에서 결핵이 근절되지 않는 한 어렵다고 한다. 또 북한에 결핵이 퇴치되지 않으면 남한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결핵 치료 지원이 북한 주민을 위하는 동시에 곧 우리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인 것이다.

일반 결핵은 최소 6개월 정도 치료받으면 대부분 치유된다고 한다. 단,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영양보충이 필수적이다. 내성결핵으로 전이된 환자들의 경우 치료기간도 길어지고, 약도 비싸진다. 북한의 결핵문제가 심각한 것은 일반 결핵환자도 많지만 내성환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수영양조차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치료효과가 떨어지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치료약과 식량지원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료지원은 정치적 사안과 별개로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 결정이 어렵다면 민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한다. 이미 꾸준하게 지원해온 경험 있는 민간단체들이 북한 주민들과 쌓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치료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루 빨리 결핵지원을 포함한 대북 의료지원을 확대하기를 촉구한다(끝).

■ 시선집중

어랑군 가을걷이 총동원에 몸수색 강화

농업성의 가을걷이 총동원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함경북도에서는 도당과 도인민위원회 간부들을 관내 시, 군마다 파견해 가을걷이 총동원을 사상적으로 독려하는 한편, 농장에 배치된 녀맹원들과 중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의 가을걷이 전투 상황을 지켜보도록 했다. 어랑군의 경우 10월 6일부터 녀맹원들과 학생들을 농촌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어랑군에 파견된 한 도당 간부는 가을걷이 상황을 지켜보니 작년 작황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옥수수 1정보에 최대 5톤까지 나왔던 농장에서조차 올해 이상기후로 3톤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어랑군 관내 농장 일군들에게 작년보다 작황이 적은만큼 한 알도 유실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해마다 인근 군부대의 굶주린 군인들이 털어가는 바람에 손실되는 양이 상당한데다, 동원 나온 인력들이 몰래 훔쳐가는 낟알의 양도 적지 않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그 어느 해보다 경비에도 많은 신경을 써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작황이) 얼마 안 되는데, 지원 나온 사람들까지 도적질해가면 알곡 수확고에 지장을 준다. 녀맹원 노력(인력)들을 특히 잘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각 농장들은 몸에 숨겨가는 낟알이 한 알도 없도록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인력들의 몸수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녀맹원들의 경우 농촌동원에 나가느라 장사벌이를 못하게 되니, 알곡을 훔쳐 나오는 것으로 만회해보려고 한다. 매일 옥수수 5-6개 이상씩 훔쳐 나와 식량 보탬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농장에서는 여성인력보다 더 순진한 학생들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낭패만 봤다. 중학생들이 훔쳐가는 양 역시 녀맹원들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녀맹원들은 눈치껏 한다면, 학생들은 거칠 것 없이 대담하게 가져간다. 그래서 학생 도둑이 더 무섭다고, 하루에 보안서에 접수되는 신고만 수십 건이 넘는다.

녀맹원들은 한두 해 훔쳐본 것이 아니라, 단속당하는 것도 이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옷 안에 큰 주머니를 만들어 낟알을 몰래 숨겨가더라도 집에 돌아가는 시각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슬쩍슬쩍 가져가는데, 그 양도 꽤 된다. 집단적으로 훔쳐가는 사람들은 아예 땅 구덩이를 깊게 파서 옥수수를 파묻어두고는 밤에 몰래 와서 가져가기도 한다. 농민들은 동원인력들이 훔쳐 가면 그만큼 자기에게 돌아갈 분배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단속에 열을 올리고, 동원인력들은 인력들대로 가을걷이 때 한 몫 거두어놓지 않으면 내년 봄을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훔쳐간다. 해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어랑군에서는 올해 유독 작황이 좋지 않으니, 그 어느 때보다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먹는 문제가 안 풀리는데, 단속한다고 단속이 되겠느냐?”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시각이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달 타령 불렀다가 혼쭐

9월 10일부터 최고사령관과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민간반항공소개훈련(민방위훈련)이 시작되었고, 평안남도 순천시멘트공장에서도 훈련을 진행했다. 순천시멘트공장측은 노동자들을 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농촌에 데려가 강하천 둑 보수 공사에 참여시켰다. 시당 선전부 일군들도 현장에 나와 일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노동시간 중간에 휴식시간을 이용해 기업소별로 오락회를 조직해보라고 하는 등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려고 했다. 공장 일군들의 지시에 따라, 공장 단위별로 노동자들이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올해 7월에 제대한 한 제대군인 노동자 김학철(가명)씨는 평소 자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어깨를 들썩이며 구성지게 불렀다. 듣는 사람들도 김씨의 노래에 맞춰 한 목소리로 크게 따라 불렀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덩실거렸다. 다들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라 흥겨워했고 시당 선전부 일군들과 초급당 비서들도 김씨가 노래를 참 잘 부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항공훈련이 모두 끝나고 공장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김씨의 노래가 화제에 올랐다. 김씨가 “목청이 좋고, 노래를 맛깔나게 잘 부르더라”면서 가수 못지않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일주일동안 온 공장 안에 소문이 돌면서, 마침내 공장 보위부원에게까지 이 소식이 들어갔다. 보위부원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김씨가 부른 노래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리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달타령)이라는 남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김씨를 불러 “무슨 목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남조선 노래를 불렀느냐”며 호되게 추궁을 했다. 이 과정에 심한 욕설과 구타가 자행됐다. 영문을 모르고 붙잡혀간 김씨는 “남조선 노래인줄 몰랐다”고 했다. 김씨는 “평소 군대에서도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라 조국의 노래인 줄 알았다. 군대에만 있었기 때문에 남조선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노래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심문은 일주일 내내 계속됐다. 별다른 답이 나오지 않자, 남조선 노래를 군중 앞에서 불러 보급시켰다는 죄목으로 김씨를 단련대 6개월 형에 선고했다. 김씨의 부모가 찾아와 “모르고 불렀던 건데 한 번만 용서해주시라”고 간곡히 사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오락회를 조직하라고 한 시당 선전부 일군들과 초급당비서들도 “현장에 있었으면서 남조선 노래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끝까지 부르게 놔뒀다”며 시당 조직부로부터 강한 비판과 함께 당책벌을 받았다. 공장 노동자들은 “(김씨는) 정말 억울하다. 술 한 잔 걸치면 누구나 부르던 노래였는데 그게 남조선 노래였냐. 우리 민요로 알고 있는데, 이거 너무 심하다. 잡아가면 우리도 다 잡아가야지. 다 같이 불렀는데. 보위부원이 자기 실적 올리려고, 생짜로 걸고 넘어졌다”며 김씨의 일을 안타까워했다.

“안 먹으면서 결핵약 정량 투여하면 사람 죽는다”

결핵병동 근무 14년차 의사에 따르면, 결핵약을 정량 투여하는 것이 꼭 환자에게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공화국에서 사용하는 결핵약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미찐(마이신)주사, 결핵예방약 이소니지트(isoniazid), 또 하나는 극성 결핵약 드보진이다. 드보진은 옛날부터 수입해왔다. 미찐주사는 순천제약공장에서 대량생산해왔고, 이소니지트는 남포나 평양, 함흥 제약공장 등지에서 생산해왔다. 드보진은 옛날부터 급한 환자들에게만 사용할 정도로 귀했지만, 미찐과 이소니지트는 상당히 흔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공화국에 닥친 대 경제난으로 제약공장이 제대로 안 돌아가면서 이소니지트와 미찐 생산량이 급감해 국내산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요즘에는 국제보건기구를 통해 드보진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미찐과 드보진 등은 극약이라 투약하게 되면 세포가 파괴된다. 단백질 영양보충이 잘 돼야 한다. 환자들이 고기를 못 먹으면 계란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된다. 단백질이 보충 안 되면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몸이 자꾸 약해진다. 안 먹으면서 정량대로 치료 받으면 사람이 죽는다. 그러니 우리 결핵의사들도 진퇴양난이다. 우리들이 영양보충을 시켜줄 수도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수 없이 약 양을 조절해준다. 잘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꾸 환자가 늘어난다”고 걱정했다.

결핵약 너무 오래 기다려 환자들 불만

함경남도 보안당국은 하반기 들어 도내 결핵 환자 실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중앙에 의약품을 요청했다. 보건성에서는 급한 불이라도 끄도록 상당히 많은 약을 내려 보냈다. 약이 내려왔다는 소문에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대거 병원에 몰리기 시작했다. 통원치료라고는 하지만 병원에 약이 없어 그동안 발길이 뜸했던 환자들이다. 이들은 약을 타려고 아침 8시부터 병원에 들어선다. 새로 검진 받는 환자들의 수가 늘어나자 약을 타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 검진 받는데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1시간을 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검진 한 번 받고 약까지 타려면 며칠씩 걸린다.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자, 환자나 그 가족들의 불만도 자연히 높아지고 있다.

서재국(가명)씨는 약을 타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의사들이 수를 쓰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담당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담배나 자기네 필요한 물건을 뇌물로 받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이다. 약이 내려왔다고 하나 한정돼 있고, 달라는 사람은 더 많아지니 자연히 의사들이 약을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는 것이다. 며칠씩 사람을 힘들게 오라 가라 해놓고 겨우 주는 것은 정량보다 적은 양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환자들 사이에 “병을 깨끗이 낫도록 약을 주는 게 아니라, 병을 더 키워서 약을 오래 먹게 하려고 조금씩 준다”는 비난까지 돌고 있는 정도다. 의사들도 식량문제가 심각하다보니 일부 약품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팔거나, 사사로이 뇌물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함흥 제2예방원의 한 의사는 오해라고 말한다. 일부 의사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받아먹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양보충을 잘 못하는 환자에게 정량대로 약을 투여했다가 몸이 더 상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약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함남, 전염성 높은 폐결핵 환자 대책 시급

함경남도 함흥시 제2예방원은 등록된 결핵환자 수가 천명이 넘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결핵환자가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결핵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는 함흥시에만도 개방성 폐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가 수천 명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전염성이 높아 하루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모두 쉬쉬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환자가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알고 있어도 장사벌이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칠뿐 치료는 곧 사치라는 생각 때문이다.

예방원에서도 환자가 너무 많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함경남도 관내 일부 지역에서 개방성 폐결핵 환자들이 파악되더라도, 입원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해둔다. 집단 치료를 실시할 인력도 돈도 약품도 모두 없기 때문이다. 손을 못 대고 있다가, 다 죽게 된 사람들만 겨우 입원시킬 뿐이다. 개방성 폐결핵환자들은 제2예방원 산하 결핵료양소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기본 치료를 받으면서 부업 밭에서 자신들이 먹을 채소농사를 짓는 등 경노동을 하며 보내게 된다. 옛날에는 식량정지증명서를 떼면 료양소에서 먹을 식량이 배급됐는데, 지금은 배급 식량이 없어 증명서가 있으나마나다. 료양소에 들어가고 싶으면, 환자들이 자기 먹을 식량을 챙겨가야 한다. 환자들이 료양소에 가기 어려운 이유이다.

결핵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라고 해서 치료를 잘 받는 것도 아니다. 일단 치료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둘째 영양보충이 안 되기 때문에 약물치료의 효과가 떨어진다. 10월 들어서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서 결핵환자들이 감기에 걸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망자도 부쩍 늘고 있는데, 최근 일주일새 하루 평균 9-10명의 사망자가 생기고 있다. 사망자 수가 급증하자 병원당국도 무척 곤혹스러워 하고 있으나, 별다른 대책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중앙당, “중국산 의약품 수입 늘려라”

중앙당은 수입 의약품에서 중국산 비중을 점차 높여가기로 결정했다. 수입의약품은 주로 간부 병원에서 수입해 사용해 왔다. 평양 고위급 간부들(장관급 이상)의 진료를 도맡아하고 있는 봉화진료소에서는 프랑스제를, 부부장급(차관급) 이상이 가는 남산 진료소 등에서는 독일제, 부부장급 이하 일반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적십자중앙병원과 평양 의학대학병원, 김만유병원 등에서는 러시아제를 많이 사용해왔다. 일반 주민들이 이용하는 동(리)진료소에는 유엔에서 지원한 의약품이 간혹 비치되기도 하지만, 약이 없을 때가 더 많다. 일반 환자들이 시장에서 약품을 직접 사들고 병원에 치료를 부탁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약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순천제약공장에서 생산되는 약품이나 개인들이 사사로이 제조한 약품들이 일부 유통되지만, 중국산 수입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평양 보건 부문의 의료일군에 의하면 간부들 대상 병원에서 중국산이 30% 정도, 국내산은 5%에도 못 미치고, 나머지가 모두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의약품이라고 했다. 중앙당은 국내 의약품 생산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유통비가 덜 들고 싼값에 비해 약효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중국산 수입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라고 지시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는 약품은 효능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기한이 지난 약품들을 헐값에 들여오다 보니 약효가 떨어지고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이것을 다시 분쇄해 국산 약처럼 만들어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진료소에 팔기도 하는데 환자들이 좋은 약인 줄 믿고 쓰다가 더 악화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일선 진료소의 의사들은 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부작용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올해는 특히 홍수 피해로 각종 질병이 창궐한데다, 항생제가 부족해 주민들의 고통이 컸다. 평양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동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사 리인영(가명)씨는 환자들이 수인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데도 달리 방법이 없어 손 놓고 있었다고 한다. 평양시에서조차 약품 부족으로 사망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자, 중앙당은 의약품 수입지침을 새로 정리하고 중국산을 더 많이 수입해 약품을 일정하게 충당할 것을 지시했다. 리씨에 따르면 “중국산을 수입하더라도 주로 간부용으로 돌아가겠지만, 간부들은 더 좋은 약을 구입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이 중국 약들은 각 동이나 지방 진료소들에 팔릴 것이고, 결국 주민들이 이용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 사건사고

“이태백이 놀던 달아”달 타령 불렀다가 혼쭐

9월 10일부터 최고사령관과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민간반항공소개훈련(민방위훈련)이 시작되었고, 평안남도 순천시멘트공장에서도 훈련을 진행했다. 순천시멘트공장측은 노동자들을 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농촌에 데려가 강하천 둑 보수 공사에 참여시켰다. 시당 선전부 일군들도 현장에 나와 일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노동시간 중간에 휴식시간을 이용해 기업소별로 오락회를 조직해보라고 하는 등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려고 했다. 공장 일군들의 지시에 따라, 공장 단위별로 노동자들이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올해 7월에 제대한 한 제대군인 노동자 김학철(가명)씨는 평소 자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어깨를 들썩이며 구성지게 불렀다. 듣는 사람들도 김씨의 노래에 맞춰 한 목소리로 크게 따라 불렀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덩실거렸다. 다들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라 흥겨워했고 시당 선전부 일군들과 초급당 비서들도 김씨가 노래를 참 잘 부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항공훈련이 모두 끝나고 공장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김씨의 노래가 화제에 올랐다. 김씨가 “목청이 좋고, 노래를 맛깔나게 잘 부르더라”면서 가수 못지않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일주일동안 온 공장 안에 소문이 돌면서, 마침내 공장 보위부원에게까지 이 소식이 들어갔다. 보위부원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김씨가 부른 노래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리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달타령)이라는 남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김씨를 불러 “무슨 목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남조선 노래를 불렀느냐”며 호되게 추궁을 했다. 이 과정에 심한 욕설과 구타가 자행됐다. 영문을 모르고 붙잡혀간 김씨는 “남조선 노래인줄 몰랐다”고 했다. 김씨는 “평소 군대에서도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라 조국의 노래인 줄 알았다. 군대에만 있었기 때문에 남조선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노래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심문은 일주일 내내 계속됐다. 별다른 답이 나오지 않자, 남조선 노래를 군중 앞에서 불러 보급시켰다는 죄목으로 김씨를 단련대 6개월 형에 선고했다. 김씨의 부모가 찾아와 “모르고 불렀던 건데 한 번만 용서해주시라”고 간곡히 사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오락회를 조직하라고 한 시당 선전부 일군들과 초급당비서들도 “현장에 있었으면서 남조선 노래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끝까지 부르게 놔뒀다”며 시당 조직부로부터 강한 비판과 함께 당책벌을 받았다. 공장 노동자들은 “(김씨는) 정말 억울하다. 술 한 잔 걸치면 누구나 부르던 노래였는데 그게 남조선 노래였냐. 우리 민요로 알고 있는데, 이거 너무 심하다. 잡아가면 우리도 다 잡아가야지. 다 같이 불렀는데. 보위부원이 자기 실적 올리려고, 생짜로 걸고 넘어졌다”며 김씨의 일을 안타까워했다.

■ 식량소식

어랑군 가을걷이 총동원에 몸수색 강화

농업성의 가을걷이 총동원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함경북도에서는 도당과 도인민위원회 간부들을 관내 시, 군마다 파견해 가을걷이 총동원을 사상적으로 독려하는 한편, 농장에 배치된 녀맹원들과 중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의 가을걷이 전투 상황을 지켜보도록 했다. 어랑군의 경우 10월 6일부터 녀맹원들과 학생들을 농촌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어랑군에 파견된 한 도당 간부는 가을걷이 상황을 지켜보니 작년 작황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옥수수 1정보에 최대 5톤까지 나왔던 농장에서조차 올해 이상기후로 3톤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어랑군 관내 농장 일군들에게 작년보다 작황이 적은만큼 한 알도 유실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해마다 인근 군부대의 굶주린 군인들이 털어가는 바람에 손실되는 양이 상당한데다, 동원 나온 인력들이 몰래 훔쳐가는 낟알의 양도 적지 않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그 어느 해보다 경비에도 많은 신경을 써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작황이) 얼마 안 되는데, 지원 나온 사람들까지 도적질해가면 알곡 수확고에 지장을 준다. 녀맹원 노력(인력)들을 특히 잘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각 농장들은 몸에 숨겨가는 낟알이 한 알도 없도록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인력들의 몸수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녀맹원들의 경우 농촌동원에 나가느라 장사벌이를 못하게 되니, 알곡을 훔쳐 나오는 것으로 만회해보려고 한다. 매일 옥수수 5-6개 이상씩 훔쳐 나와 식량 보탬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농장에서는 여성인력보다 더 순진한 학생들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낭패만 봤다. 중학생들이 훔쳐가는 양 역시 녀맹원들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녀맹원들은 눈치껏 한다면, 학생들은 거칠 것 없이 대담하게 가져간다. 그래서 학생 도둑이 더 무섭다고, 하루에 보안서에 접수되는 신고만 수십 건이 넘는다.

녀맹원들은 한두 해 훔쳐본 것이 아니라, 단속당하는 것도 이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옷 안에 큰 주머니를 만들어 낟알을 몰래 숨겨가더라도 집에 돌아가는 시각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슬쩍슬쩍 가져가는데, 그 양도 꽤 된다. 집단적으로 훔쳐가는 사람들은 아예 땅 구덩이를 깊게 파서 옥수수를 파묻어두고는 밤에 몰래 와서 가져가기도 한다. 농민들은 동원인력들이 훔쳐 가면 그만큼 자기에게 돌아갈 분배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단속에 열을 올리고, 동원인력들은 인력들대로 가을걷이 때 한 몫 거두어놓지 않으면 내년 봄을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훔쳐간다. 해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어랑군에서는 올해 유독 작황이 좋지 않으니, 그 어느 때보다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먹는 문제가 안 풀리는데, 단속한다고 단속이 되겠느냐?”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