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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64호

■ 경제활동

입쌀밥은 사치품, 옥수수밥이 주식

시장에서 입쌀은 넘쳐나는 대신 옥수수를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주민들이 입쌀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옥수수를 사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누가 요즘 쌀밥 먹기도 힘들다고 하면 옥수수밥을 먹기가 힘든가보구나 하고 알아듣는다. 황해도와 평안도 등 일부 곡창지대를 제외한 곳에서 쌀농사를 짓는다는 말도 입쌀이 아니라 옥수수, 감자, 조 농사를 일컫는 말이다. 주식이 옥수수쌀밥을 비롯한 다른 대용작물로 바뀐 지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상위 10-15%를 제외한 대다수 주민들에게 입쌀밥은 사치품이다. 일반주민들에게 입쌀은 꿈의 식량일 뿐 현실적으로는 이미 주식의 자리에서 밀려나있다.

한편 각 지역 특성에 따라 밥의 종류가 다르게 나타난다.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감자밥이, 보리를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보리밥이 주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쌀밥이 입쌀밥이 아닌 것처럼 감자밥도 입쌀에 감자를 섞은 것이 아니다. 감자밥은 감자에 옥수수를, 보리밥은 보리에 옥수수 또는 감자를 섞은 것이다. 다만 5대 5밥이 입쌀에 옥수수를 섞은 것이다. 이렇듯 옥수수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과 섞은 대용식량이 어엿하게 밥의 지위로 격상되어 주민들의 배고픔을 겨우 달래주고 있다.

법 기관 담당자들조차 식량부족 심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먹을 걱정이 전혀 없을 것처럼 보이던 법 기관 사람들도 식량사정이 급속히 열악해지고 있다. 비교적 잘 산다는 국경지역의 보위부와 보안원들 중에도 영양실조나 영양부족으로 생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영양실조자라고 해봐야 1년에 3-5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국경지역 보위부원, 보안원, 검찰 등 법기관 성원들의 약 1/3 가량이 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작년 하반기 식량사정이 매우 악화됨에 따라 법 기관 사람들도 배급 물량이 대폭 줄어들어 생활이 어렵다. 법 기관 성원들은 “매번 국정 가격으로 공급받다가 공급이 끊기니 이제야 주민들의 사정을 얼마라도 알 것 같다”며 미공급의 심각성을 비로소 실감하는 눈치다. 평양을 제외하고 그나마 돈벌이하기가 좋은 국경지역의 법관들이 영양실조로 고생한다면 다른 지역은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한숨의 소리도 들린다.

예전에는 돈이 필요하면 외국에 나가있는 탈북자 집에 드나들며 얼마간의 돈을 뜯어내거나 뇌물을 받고, 외화벌이 명목으로 챙기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함경북도 법 기관 자리는 돈을 줘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국경지역 검열이 거세지면서 단속하는 당사자들 또한 상당히 영향 받고 있다. 이번에 탈북자 가족을 대거 잡아들이거나 추방하면서 돈줄도 끊기는 한편, 법 기관 일꾼들 역시 자체 단속으로 몸 사리게 된 것이다. 그 외에 외화벌이 사업소를 전부 정리함에 따라 보위부가 자체 운영하던 외화벌이 사업소도 해체되어 보위부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되었다.

시장 쌀 유입으로 쌀 가격 하락 안정세

지난 1월 중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청진, 신의주, 원산, 함흥 등 대도시 지역 순회방문이 잇따르면서 해당 지역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5-10일치 분량의 입쌀이 전량 공급됐다. 이번에 공급된 쌀은 5-6월 두 달 분량의 군량미다. 도시 노동자들의 개별 보유 식량이 바닥나면서 생계유지가 위험해지자 당국에서는 일단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히 군량미를 푼 것이다. 노동자들은 공급받은 입쌀 대부분을 시장에서 옥수수와 잡곡으로 바꿨다.

작년 가을부터 전국적으로 1,100원대를 호가하던 쌀 가격이 지난 2월 초순부터 950원대로 떨어지기 시작해 3월 현재 850-900원대까지 내려갔다. 냄새가 심하고 까맣게 변색된 질 낮은 쌀은 8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배급에 대해 주민들은 “군량미를 푼 것은 공화국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고난의 행군 때도 이렇게 전국적으로 푼 적이 없었는데 이럴 정도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군량미를 내놓은 것”이라는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6자회담의 낙관적 기대 속에서 그간 매점매석한 쌀들이 동시에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근래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주민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비록 상인 한 명이 하루에 쌀 5kg을 팔기 어려울 정도로 쌀 시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쌀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입쌀을 먹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기대심리가 조심스럽게 퍼지고 있다.

“한국 쌀이 들어오고 있다”소문 퍼져

3월 15일을 전후로 청진 시장에 쌀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다. 쌀이 워낙 대량으로 들어오다 보니 “한국 쌀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함경북도 전체에 퍼지고 있다. 쌀 고장에서 청진으로 쌀을 실어 나르던 도매상들이 모두 멈춰버린 상태이다. 오히려 청진을 기점으로 다른 지역에 쌀이 흘러가는 현상이 보인다. 이에 청진시 주민들은 십 년 간 없던 경사라며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쌀을 본다고 모두 들뜬 상태이다. 시장에 들어온 많은 쌀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주민들도 있다. 고난의 행군시기 숱한 죽음을 지켜봤던 노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마음 졸이며 자식들을 근심해 왔는데 그간 조였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며 얼굴마다 상기된 표정들이다. 마치 자기 집 쌀독이 넘쳐나는 것처럼 좋아한다.

주민들은 “많이 들어오라, 계속 들어오라. 그럼 쌀값이 내린다. 그럼 우리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입쌀을 먹을 수 있다”며 소박하면서도 절박한 소원을 빌고 있다. 시장에 쌀이 많이 풀리면 풀릴수록 돈 있는 주민들은 그만큼 사먹을 기회가 있을 것이고, 하다못해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며 모두 한시름을 놓는 광경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잘만하면 최소한 아사를 모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

6자회담 몰라도 ‘3.20 결판’ 기대감 높아

북한 주민들은 6자회담이 무엇인지,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 등에 대해 알지 못한다. 간부들조차 6자 회담 말을 듣긴 했지만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상이 어떤 난관 속에 진행되었는지,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 등이 북.미간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중재 역할을 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북한 당국의 말대로 “미국이 무릎을 꿇고 대화에 나섰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사실 북한 관료들이나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느냐 안하느냐,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이냐 아니냐 등의 구체적 사항에 있지 않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3월 20일을 기점으로 과연 쌀이 풀릴 것이냐 풀리지 않을 것이냐에 있다. 북한의 중간 간부들도 3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지만 “3월 19일과 20일까지 결판을 못 내면 우리 모두 죽게 된다”며 3월 20일을 주문처럼 외고 다닌다. 3월 19일부터 중국 북경에서 6자회담이 재개된다는 사실을 아는 간부들은 “이번 6자회담이 마지막 사생결단의 날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결정한다. 전쟁하면 다 죽는다. 3월 20일까지 담판이 되어야 그 다음날부터 식량이 들어올 것이다”라며 제 6차 6자회담을 쌀 지원 여부의 중요 척도로 삼고 있다.

2.16 명절 직전, 수해지역 입쌀 공급

지난 2월 16일 명절 직전에 수해지역에 입쌀이 공급되었다. 평양에서는 ‘양덕 지원 쌀’이라는 표지를 단 차량 스무 대가 떠나는 것이 목격되었다. 전국 주요도시에 10-15일치 분량의 배급이 풀린 것과 같은 선상에서 이뤄진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쌀이 수재민들에게 직접 배분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시선집중

주민세대 60-70%, 식량 떨어져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식량이 드디어 고갈 단계에 이르고 있다. 각 지역 양정사무소에서는 각 도시마다 전체 주민 세대 중 약 60-70%의 식량이 바닥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과 같은 대량아사는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 영양실조가 심화되어 일부 죽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배급을 받는 사람들과 개인 소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평소 비축한 식량을 조절하고 있고, 빈민층들은 죽이라도 쒀서 근근이 연명하는 형편이다.

농민의 경우 지난 달 2월부터 식량이 떨어진 상태다. 작년 10월에 6개월분의 식량을 배분받았으나 실제로는 3-4개월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작년 농사가 잘 되지 않아 그만큼 배분량이 준 탓이다.

다른 민수부문 공장들은 생산을 멈춰도 제 2경제 산하의 군수공장은 전력 공급과 임금 지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져왔다. 그런데 최근 군수공장의 노동자들조차 식량이 없어 일을 못하는 상태이니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도 임금을 받고 있는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사정이 여전히 낫다고들 말한다. 시장에 쌀이 없어서 못 사먹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배급과 임금은 물

론 약간의 돈도 없는 사람들은 시장에 나가도 쌀을 눈으로 구경하기만 할 뿐 사 먹지는 못한다. 중간 간부들 사이에는 임금과 배급이 없으면서 개인 소토지를 경작하지 못하는 도시 주민들부터 굶어 죽어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다행히 2월 중순과 3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일시적으로나마 배급이 풀려 잠시 해갈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전만해도 “군량미라도 풀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