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한 동네가 된 김장하는 날

조민경 / 경기도 화성시

지난 폭설로 김장 행사장에 소복히 쌓인 눈을 바라보니 막막했습니다. 화성지역 활동가들은 2024년 11월 29일부터 넓은 주차장과 행사장에 쌓인 눈부터 치워야 했습니다. 활동가 몇분이 시간을 내어 행사장 눈 치우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삽으로 퍼내고 염화칼슘을 뿌리는데 눈이 또 내렸습니다.
‘내일부터 행사를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걷히니 걱정도 걷혔습니다.

<신나게 눈 치우는 모습>

11월의 마지막 날 윗동네 16명, 아랫동네 11명 총 27명이 모여 김장 양념의 주재료인 동태를 다듬었습니다. 올 해는 지난해에 비해 신청 인원이 2배에 달해 배추와 양념으로 준비할 동태, 갖가지 야채의 양이 크게 늘었습니다. 총 60가구의 김장을 준비해야 합니다. 손빠른 윗동네 분들의 리드로 동태를 씻고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에 시작한 동태손질은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어 끝이 났습니다.

점심으로 준비한 따뜻한 순두부와 김밥. 소박한 밥상이지만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중간중간 비가 내려 비닐로 비 가림막을 하고 남북이 뒤섞여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즐겁게 했습니다. 동태김치가 낯선 아랫동네, 동태김치에 설레이는 윗동네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동태김치는 북에서 귀한 김치라고 합니다. 함경도 사람들에게 명태는 고향을 상징하는 것이며 가장 그리운 고향의 맛인 것 같습니다.

작년 김장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일 순서와 손놀림이 빨랐습니다. 동태를 다듬는 게 처음인 아랫동네 사람들에게 윗동네 사람들이 찬찬히 일러주고, 따라하니 금방 동태 다듬는 선수가 됩니다. 동태 130마리를 다듬고 양념을 하니 그 무게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큰 대야에 담긴 동태양념 소를 6명이 합심하여 안으로 이동한 후 내일 김장이 맛있게 되길 바랬습니다.

<비 가림막 아래에서 브이~>

12월의 첫째날 이른 시간부터 속속 아랫동네 윗동네 이웃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반짝하는 맑고 따뜻한 날씨가 감사했습니다. 77명이 함께 어우러지니 통일이 되어 더 많은 북녘동포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 준비물인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수건을 하고, 고무장갑을 끼고 개인 칼과 채칼까지 준비, 완료!

어제 미처 치우지 못한 눈을 치우는 사람들, 야채를 씻고 다듬는 소리, 테이블 설치소리, 간식인 어묵탕 준비하는 소리까지 넓은 주차장이 이야기소리, 웃음소리로 물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도 나누고 일감도 나누어가며 왁자지껄 하지만 질서있게 착착 김장 준비가 되었습니다.

김장 양념의 양이 많으니 테이블 4개를 붙여 김장 소 양념을 했습니다. 어제 끓여둔 채수 두통이 양념을 버무릴때 마다 중간중간 부어지고, 야채와 갖은 양념이 고운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리로 밀고 저리로 밀며 깔깔깔 웃음 꽃이 피었습니다. 옷에 양념이 묻어도 신이 났습니다.
간이 잘 배도록 양념 숙성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김장 양념 만들기>

야채에 간이 베이는 시간 동안 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두부와 잘 삶아진 고기, 동태 내장으로 끓인 동태탕 그리고 김치 겉절이, 갓지은 쌀밥에 김치를 얹으니 행복합니다. 올해도 김치가 맛있다! 미소가 지어지고 다행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치 간이 어떤지 서로 묻기도 하고 밥도 더 드시라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김치버무리기는 정말 장관 이었습니다. 3줄로 나열한 김장테이블에 노오란 배추와 새빨간 양념의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김치를 버무리며 테이블마다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김치가 버무려지면 포장팀이 김치를 날라 포장을 하고 쌓아갔습니다. 배추가 높이 쌓여있던 자리에는 포장된 김장박스가 대체되고 김치버무리기가 마무리된 테이블부터 뒷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일 나누기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눈치 빠르고 손놀림 빠른 민족 답습니다.

<김장 양념 버무리기>

윗동네 분들이 김치를 나누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니 피곤함이 씻겼습니다. “수고했다. 감사하다. 감기 걸리면 안된다.” 활동가에게 전하는 인사에 배웅이 길었습니다. 활동가들과 마무리하며 나눈 소감에서 ‘이제는 윗동네 아랫동네가 아닌 한동네로 불러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장 후 윗동네 분들의 김장소감의 문자와 카톡이 며칠간 활동가들을 미소 짓게 했습니다.
-오랜만에 입에 맞는 김치를 먹으니 행복하다.
-좋은벗들 김치는 아껴먹어야겠다.
-내년에는 동태다듬는 것부터 이틀을 모두 참석하겠다.
는 말씀에 힘들었던 3일간의 김장행사가 위안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130년만에 내린 폭설을 치우며 함께 만든 함경도 김치.
올 겨울 윗동네 분들의 밥상에 올려질 함경도 김치.
행복했던 고향의 그 시절을 떠올리시며 행복한 밥상이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