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일전망대 추석 합동 차례에 다녀와서
글_윤나현 (강원)
사진_서양례·이혜숙(경기), 김재호(강원)
추석을 앞둔 2026년 9월 13일,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고성 통일전망대 망배단에 정성 어린 차례상이 차려졌습니다. 북녘에 고향을 둔 이들과 남녘의 이웃들이 한마음으로 절을 올린 그날의 이야기를 윤나현 님이 전합니다.

태백에서 고성까지, 차례를 준비하며
저는 강원도 태백에 삽니다. 고성까지는 차로 세 시간이 걸립니다. 통일전망대는 처음이라 먼 길이어도 기꺼이 가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탈주민을 직접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강원도와 경기도 곳곳에서 길게는 네 시간을 달려온 참가자들이 고성 통일전망대에 모였습니다. 이번 합동 차례는 ‘좋은벗들’의 후원으로 북한이탈주민 8명과 활동가 13명이 함께했습니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이날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앞으로 열릴 통일축전에서 상영할 예정입니다.

저는 차례상과 현장 준비물 예산을 짜고 정산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위패였습니다. 망배단에 위패를 붙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현장을 보지 못한 채 답사 사진만으로는 위패의 크기와 배치를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준비팀 대화방에 의견을 구해 포스터 게시대를 마련하고, 하드보드지에 위패를 붙였습니다. 두꺼운 판을 자를 자신이 없어 그대로 싣고 갔는데, 현장에서 한 활동가께서 말끔하게 잘라 주어 아담한 위패가 완성되었습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 장보기부터 막막했지만, 춘천 활동가들이 필요한 재료를 하나하나 짚어 주었고, 전도 직접 부쳐 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마다 제 몫을 보태면서 필요한 준비도 하나씩 갖춰졌습니다. 음식을 담당했던 활동가님이 “장보기 예산을 넉넉히 잡아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셔서 오히려 제가 더 황송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맡아 준비해 가는 사이, 합동 차례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녘 땅
안내 교육 영상을 본 뒤, 언덕 위 망배단을 향해 삼삼오오 걸었습니다. 망배단은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이 북녘을 바라보며 절을 올리는 곳입니다. 몇 분을 걸어 올라서자,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이 말로만 듣던 해금강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전까지 해금강이 강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금강산 동쪽 해안의 절경을 ‘바다의 금강’이라는 뜻에서 해금강이라 부른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봉우리는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꼽히는 구선봉이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송도 너머로는 북녘 땅이 훤히 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지점에 따라 약 16~25km라고 합니다. 노래로만 들었던 ‘그리운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웠습니다. 구름이 조금 낀 날이었지만 북쪽 산자락은 또렷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 송도까지 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해안가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코앞인데 갈 수 없었습니다.
망배단에 차린 고향의 차례상
망배단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자리를 깔고 정성껏 준비해 온 음식으로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북한식 오징어무침, 김칫소를 넣은 송편, 두부밥, 인조고기밥,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든 인절미까지 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온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망배단에도 정겨운 추석날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명절을 맞아 가족을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이윽고 차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가 먼저 잔을 올리고 다 함께 두 번 절한 뒤, 북녘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과 자작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편지를 읽는 이의 목소리가 떨릴 때 제 가슴도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애써 삼키는 이도 있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한 분 한 분이 앞으로 나와 잔을 올리고 절하던 모습, 북녘 고향과 가족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남습니다.
철 너머 고향을 바라보며 두고 온 가족에게 마음을 전하는 경건하고 애틋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상에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
차례를 마친 뒤 모두 둘러앉아 음복하며 자기소개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북에서 온 참가자들은 남녘을 ‘아랫동네’, 북녘을 ‘윗동네’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북한 말씨를 실제로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분위기는 금세 편안해졌습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진지해지다가도 유쾌한 입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날 처음 맛본 북한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조고기밥이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경제난이 심할 때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깻묵으로 만들어 먹던 서민 음식입니다. 쫄깃한 인조고기 안에 밥을 채우고 매콤한 파기름 양념을 얹은 인조고기밥을 맛보며, 음식 한 가지에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는 사이 대화는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친정아버지를 비롯해 북에서 돌아가신 가족들의 제사를 한 번도 지내지 못해 늘 답답했습니다. 오늘 한복을 입고 처음으로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나니, 무거운 짐이 싹 내려앉고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은데 제사도 못 지내고 있었어요. 여기서 차례를 함께 지내고 나니까 마음의 응어리가 좀 내려앉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소풍 갔던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합니다. 통일은 못 돼도 이렇게 같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날의 차례는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인사를 건네고, 마음속에 묻어 둔 가족을 다시 불러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랫동네에서 온 참가자와 실향민 가족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꺼냈습니다. 장모님이 신의주 출신이라 아내와 함께 울컥했다는 분, 남북 철도 복원 사업 당시 침목을 후원했던 시아버지를 떠올리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곳을 찾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우리 자식 세대만큼은 망배단이 아닌 고향 땅에서 다 함께 차례를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어졌습니다. 살아온 곳은 달라도 가족을 그리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위쪽부터 오징어무침, 아래쪽 두부밥과 인조고기밥, 오른쪽 송편)
망배단에 뿌린 씨앗
이분들을 만나고 나니 우리가 정말 같은 언어와 풍습, 역사를 나누어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끈끈한 정이 느껴졌습니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남녘의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채울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해금강과 금강산을 눈앞에 두고도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눈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합동 차례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올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제사를 올린 날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그리던 고향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본 날이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북에서 온 이웃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망배단이 아니라 각자의 고향에서 함께 차례를 지낼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날 나눈 이야기와 따뜻한 밥 한 끼의 온기가 서로를 잇는 작은 씨앗이 되리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