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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1호

■ 논평

2004년 9월 오늘의 북한 소식 발간사

북한의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식량난이 국내 및 국제사회에 알려진지도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외부사회의 계속되는 대북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당장 대내적으로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북핵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선 요구 등 굵직한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그동안 남한 정부는 남북한의 평화통일이라는 목표 아래 식량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꾸준히 남북교류를 넓혀왔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가 적대에서 점차 신뢰로 나아가는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둘러싼 국내의 남남갈등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남북한의 조건과 상황이 이미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고가 여전히 과거의 냉전 시대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냉혹할 만큼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우리는 북한과 주고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주변정세에 휘둘리면서 북한의 현재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보다 안정적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극히 제한적이고 편향적으로 이루어져 온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의 정치군사 정보와 지도층에 대한 분석은 넘쳐나지만, 북한 주민의 실생활 정보는 찾기 어려운 현실이 대표적인 예이다.

북한의 식량난 이후 북한 주민의 실생활은 북한 당국의 통제를 넘어설 정도로 급변해 왔고, 때로는 북한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실정인데도 우리는 정확한 원인조차 변변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상을 잘 모르니 전체 사회상을 섣불리 그려볼 수 없고, 그 사회의 미래도 예측하기 힘들다.

물론 최근 들어 국내의 대북 관심이 인권 문제를 비롯하여 북한 주민의 실생활로 서서히 옮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문제와 인도적 지원, 경제교류 등 각 주체의 다양한 목적에 따라 북한과의 접촉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때로는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거나 정작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는 문제들도 발생한다.

정치적 입장은 다르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대의에 합의를 한다면, 최근 북한의 경제 동향 및 북한 주민의 생활상태, 인권 상황, 그리고 북한 난민에 대한 정보 등이 신속하게 공유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많이 축적되고 치밀하게 분석되어야만 이를 토대로 북한 주민에게 시급한 인도적 구호 및 경제원조 대책, 전체 개발 복구 전략, 그리고 북한 난민들과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방안 등을 보다 현실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사단법인 좋은벗들 산하 북한 연구소는 본 소식지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이 소식지가 향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대북 정책을 세우거나 북한 실정에 맞는 지원을 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쓰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를 위해 비록 처음에는 단편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확한 사실(fact)에 근거한 정보로서의 효용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부단히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모쪼록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아낌없는 조언을 부탁하는 바이다.

2004년 9월 1일 좋은벗들 북한연구소

■ 시선집중

2004년 9월 중국의 북한난민 소식

중국인과 결혼하여 가족의 보호아래 있더라도 단속에 걸릴 경우 강제송환 조치되고 있음. 특히 기획망명 사건이 터지면 집중적으로 단속 됨.

길림성의 어느 마을에서는 북한 여성 28명이 머물고 있었으나 중국 공안의 단속으로 12명은 잡혀가고 나머지는 도피했다고 함. 자녀가 있어도 단속에서 제외되지 않음.

흑룡강 지역의 어느 마을에서도 10여 명 살고 있었으나 집중단속기간에 모두 잡혀갔음.

이번 북한 난민 468명 남한 대거 입국 사건 당시에는 이전에 난민 문제로 조사 받은 적이 있는 조선족들이 모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함. 한 차례 집중 수사가 있어 9명이 연행되고 이 중 4명이 연루혐의로 구속되었다고 함.

2004년 8월 중국에서 면담한 북한 여성 난민들

면담한 북한 난민 여성들:

① 용정 거주 여성(34세)

이 여성은 중국에 건너 온지 6개월이 되었으나, 바깥출입을 단 한 번도 못하였다고 함. 청진 출신의 이 여성은 한국의 친척 찾아주는 일을 하다가 걸려 도피한 것이라고 함. 남편과 자녀는 아직 조선에 거주하며 가끔 남편이 건너오기도 한다고 함. 한국에 오려고 준비 중임.

② 연길 거주 할머니

한국 사람이 도와주다가 지금은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 주변에 한국으로 가려했던 북한 난민들이 많았으나 모두 붙잡혀 나가고 현재 할머니 혼자 남겨진 상태임.

③ 연길 거주 여성(23세)

이 여성은 흑룡강쪽에서 거주하다가 한국행을 모색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연길로 돌아왔다고 함.

④ 연길 거주 여성(48세)

연길 시장에서 일하면서 한 달 1천 위안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함. 노무시장(인력시장)에서 일당제로 일을 한다고 함.

2004년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의 북한 여성 인신 매매

인신매매:

장백 지역의 인신 매매가는 싼 편이나 연길 지역은 비싼 편이라고 함. 장백에서는 2,000 위안에 여성이 거래되고 있고, 연길에서는 4,500-5,000 위안에 샀다가 다른 지역까지 연계해주면서 6,000-6,500위안을 받는다고 함.

흑룡강의 한 마을에서 만난 여성은 14,000위안에 팔려왔다고 증언.

2004년 중국 흑룡강성에서의 북한 여성 살인사건

살인사건:

흑룡강의 어느 지역에서는 북한 여성이 살해되어 암매장당한 사건이 발생. 한족에게 팔려와 매를 심하게 맞고 폐결핵 등 심각한 질병에 걸린 이 여성이 새로 팔려간 집에서 인신매매 중개자에게 되돌려 보내지자, 그 중개자가 다시 팔수도 없고 병을 치료하기도 어려워 연변까지 끌고 가 어느 산에 암매장했다고 함.

2004년 중국 두만강변 마을에서의 북한 꽃제비

난민 꽃제비:

두만강변의 어느 지역에서는 북한 난민 꽃제비들이 빈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함. 관할 공안에서는 이 꽃제비들을 골치 아파하고 있음. 이 아이들은 낮에는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내려와서 활동한다고 함.

2004년 송환된 난민

강제송환: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어떤 사람은 보위부에 3만원을 주고 풀려난 경우도 있었음. 이 사람은 신의주로 송치되었는데 가족이 회령에서 신의주로 가서 3만원을 주고 데려왔다고 함.

■ 경제활동

2004년 9월의 배급 상황

배급 상황:

배급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함. 1급 또는 2급 기업소와 같은 큰 기업소의 경우 현재 최저 3일분-최고 15일분의 식량을 공급한다고 함. 각 기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1개월 단위로 각 15일, 10일, 5일과 3일정도의 양을 배급하는 곳이 있음. 단 일이 없는 기업소는 배급을 하지 않는다고 함.

(* 덧붙여, 식량사정이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은 아니나 주민들이 장사나 뙈기밭을 비롯한 소토지 개간 등을 통해 살아갈 방도를 스스로 터득하면서 굶주려 죽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고 함)

2004년 4월 함경북도 무산의 배급 상황

함경북도 무산 광산:

2004년 4월까지 옥수수, 밀가루를 보름 단위로 배급하다가, 최근에는 쌀을 배급하고 있다고 함. 쌀은 각 가정에 300g 단위로 15일분에 해당하는 4.5kg 정도를 배급하였는데 이 중 실제 배급량은 약 4kg을 나눠준다고 함.

2004년 함경남도 단천 검덕광산 배급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 광산:

2004년 4월까지 1개월 단위로 5일분에서 15일분 정도의 식량을 공급받다가 최근에는 15일분의 배급을 받는다고 함.

(* 15일 분량의 배급에서 군량미를 제한다고 하더라도 약 일주일가량의 배급량은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음)

2004년 황해북도 사리원 11월 8일 광산

황해북도 사리원 11월 8일 광산:

1급 기업소인 사리원 11월 8일 은광산에서는 2003년에 최저 3일분-최고 10일분의 식량을 배급했다고 함. 광산에서 산출된 은은 중국에 수출하여 벌어들인 수입금으로 2개월 내지 3개월에 한 번씩 노임을 지급한다고 함. 단, 소기업소들은 노임 지급을 하지 않는다고 함.

2004년 함경북도 온성의 개인당 토지 분배

농업 관련 소식

1) 대체로 텃밭, 뙈기밭 등(일명 소토지)을 개간하여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 정부에서도 소토지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개인이 먹고살도록 하고 있음.

2) 땅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집 소토지 밭일을 해주는데 그 대가로 강냉이를 일당 2~3kg씩 계산해서 가을에 수확한 후 한꺼번에 받는다고 함. 집단농장이 아니라 뙈기밭을 소작하는 것.

3) 온성 상화탄광에서는 집단농장의 밭을 일인당 120평정도 나눠주었음. 평당 세금은 12원. 또 온성군 종성의 ‘4?25 담배농장’(주. 집단농장 이름)에서는 3~4세대를 1개조로 묶어서 땅을 나눠준다는 이야기가 있었음. 이에 2003년 가을 북한 정부는 토지세를 미리 거두었음. 올해 3월부터 농지를 분배해 줌. 단, 가정주부 등을 제외하고 꾸준히 출근하는 직장 근로자에 한해 1인당 300평씩 분배함. 토지는 상중하로 나누어 차등적으로 세금을 거둠. 가장 좋은 토지는 평당 12원.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은 동일하지만 지급하는 토지 면적은 농장마다 차이가 있는 상황임

4) 경작지를 분배받았어도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소나 농기구, 비료 등이 없어 실제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함. 협동농장 때보다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함. 협동농장 때는 농기구, 소도 있었지만 현재는 호미, 낫 등 아무 것도 없어서 땅을 일구지 못하고 있음. 그래서 땅을 놀리고 있는 경우도 많음. 북한 주민들은 개인 영농이 좋기는 하지만 농기구가 없어 정작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경작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함.

2004년 9월 북한의 교통 소식

교통수단 관련 소식

1) 기차는 예전에 비해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전력부족, 기관차와 철로의 노후화 문제 등으로 원활한 운행은 하지 못하는 상태. 함북도는 ‘온성-평양’선이 ‘라진-사리원’으로 개편되면서 1주 1회 운행하는 직행노선이 개설됨. 현재 그 외 다른 노선은 없음.

2) 기관차는 새 것으로 교체되었으나 운행 차량 대수가 부족하고, 속도는 여전히 느림. 열차 승객은 주로 장사하는 사람들로 짐은 수량에 관계없이 실을 수 있다고 함. 돈을 주면 개인 짐 1톤까지도 객차에 싣고 탈 수 있음. 짐을 싣기 위해 열차가 연착하는 경우가 많음. 내용물은 주로 식량인 경우가 많다고 함.

3) 열차를 제외한 교통수단으로 각 단위에 소속된 트럭, 자동차 등의 차량을 이용하기도 함. 일명 ‘서비차’(서비스차의 줄임말)라고 한다고 함. 서비차란 영업용으로 공인된 차가 아니라 각 직장 단위에 소속된 차량들인데 차비를 받고 사람들을 대도시 중심으로 특정지역까지 이동시켜 줌. 군대, 안전부, 보위부 단위에서도 서비차로 돈을 벌어들인다고 함.

4) 통행증이 있을 경우 ‘청진-평양’ 열차 운임비는 1,200원 정도. 서비차 이용시 이보다 3-4배 가량 비쌈. 서비차가 기차보다 훨씬 기동력이 있지만 연료비 때문에 운임비가 비싼 편임. 그럼에도 이용자는 증가하고 있음.

(* 수요자는 많은데 차량은 부족하여 일부 개인이 운행하는 차량 중에는 거리 100m당 100원씩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함)

5) ‘사리원-은파’는 2001년 당시 버스비 천 원이었으나 지금은 군대차량으로 만 원이라고 함.

6) ‘사리원-해주’는 기차로 2시간 소요, 버스로 약 2시간 30분 소요. ‘사리원-해주’행 버스는 야매 가격으로 1,000원, ‘사리원-평양’은 서비차로 4시간 소요되고 운임비는 1,500원. 사리원에서 평양까지는 교통이 원활한 편임.

7) 어떤 기관사는 1개월간 행방을 다니기 위해 직장 상부에 3천 원을 바치고 떠났다고 함.

8) 어떤 사람은 증명서를 발급 받기 위해 발급 경비로 5천 원, 뇌물로 7천 원짜리 중국 담배 한 보루가 들었다고 함. 증명서 발급 기간은 신청한 후 3일 가량 소요됨.

9) ‘온성-사리원’ 열차 운임비는 국정가격 1,500원, ‘청진-평양’은 1,200원. 야매가격은 약 5천원. ‘단천-청진’ 국정가격은 300원, 야매 가격은 2천원.

(* 기차가 좌석제로 바뀐 이후 운임료가 비싸져서 기차 대신 기업소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고 함)

10) 6월 말-7월 초순 경 황해도 홍수 피해로 잠시 열차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음. 역시 홍수피해로 양강도 혜산 지역은 홍수 피해로 도당 앞 굴이 무너져 기차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함. 그래서 기차가 위연까지 운행.

2004년 9월 북한의 교육 의료 소식

교육의료 상황

1) 아직 무상교육이지만 생활난으로 인해 함경남도 단천 지역에서는 약 70% 가량의 학생들만 출석하고 있다고 함. 한 학급에 40-50명인데, 학생들은 2/3정도만 등교한다고 함.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은 꽃제비처럼 장마당으로 다닌다고 함.

2) 요즘 학교를 ‘돈교’라고 부른다고 함. 학부모에게서 여러 명목으로 찬조금을 걷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

3) 식량난이 장기화되면서 학생들의 학교 출석률이 떨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런데 요즘엔 탁아소도 학교와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함. 어느 마을의 탁아소는 정원이 25명이었는데 실제 나가는 아동의 수는 8명에 불과했다고 함. 유아에 대한 식량배급 사정도 여전히 좋지 않아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고 함.

4) 학습장이 부족하여 강냉이 껍질(일명 오사리)로 만든 학습장을 학기초에 나눠주어 사용하도록 한다고 함. 이 학습장은 접으면 쉽게 꺾임.

5) 병원에 약품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UN 지원 약품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 병원에서 의사는 처방만 하고 환자들 스스로 장마당에서 약품을 구입하고 있음. 대부분의 약품은 중국산임. 장마당에 국산(조선)으로 유통되는 약품은 대부분 가짜가 많다고 함.

2004년의 환율과 장마당 등 경제 관련 소식

경제 관련 소식

1) 2000-2001년 환율이 인민폐 1위안에 조선돈 22원 정도였음. 2004년 요즘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1위안이 최소 160원에서 최고 278원(양강도 혜산 기준)까지 오른 상태.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인상되고 있음. 조선의 화폐 가치가 그만큼 하락하고 있다는 것.

2) 장마당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사실상 판매물품에도 거의 제한이 없다고 함. 장세를 내면 장사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음.

3) 온성군 삼봉노동자구 장마당은 마을 길목에 포장을 쳤음. 예전에 삼봉 농아학교 쪽에 있다가 옮겨진 것. 규모는 작은 편. 전체 장마당의 형태는 ‘ㄱ’자형. 장마당이라는 표지판은 없어졌음.

상인들 수에 비해 구매자의 수가 많지 않음. 매대(판매대)를 갖고 있는 상인들이 많으나 매대 없는 상인들도 앉아서 장사를 함. 매대 없이 장사를 한다해도 장세는 내야 함. 장세는 규모에 상관없이 매일 50원씩 지불해야 함. 시장 관리소에서 아침마다 받아간다고 함.

어떤 상인은 다른 상인의 매대 옆에 자기 물건을 진열하는 조건으로 매대 주인에게 얼마간 돈을 주고 장사하기도 함.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메뚜기 장사꾼들도 종종 있음. 그러나 판매 물건이 많은 상인들은 장세를 내고 매대에서 장사를 함.

4) 삼봉시장에서 쌀을 파는 상인이 없었음. 쌀, 옥수수 등 식량은 장마당에 오기 전에 다 팔리기 때문이라고 함. 어떤 사람은 삼봉 장마당에서 1시간 30분 이상을 돌았으나 결국 쌀을 구하지 못했다고 함. 쌀을 사려면 일반 농가에 들어가야 간혹 구할 수 있다고 함. 식량값은 계속 오르고 있음. 쌀, 옥수수, 콩 등의 식량을 장마당에서 팔고 싶어도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5) 장마당에서는 음식을 주로 만들어 파는데 두부 요리가 많음. 그 외 집에서 직접 밀가루로 만든 빵, 중국산 과자, 사탕, 떡, 강냉이 국수, 이면수, 가자미, 옷, 신발, 맛내기, 약품 등이 거래되고 있음.

6) 외부에서 들어온 쌀은 정해놓은 지원양에 따라 군부대에 우선적으로 배분되는데, 군대는 이 쌀을 장마당에 암거래로 유통시키는 경우가 많음. 군량미로 지급된 쌀을 군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이 때문에 일반 사병들 중에는 굶주리는 경우도 있다고 함.

함북도, 양강도 등 북부 지역은 중국산 쌀이 많고, 황해도 등 남부 지역은 빼돌려진 군량미를 비롯하여 국내산(조선) 쌀이 주로 거래된다고 함.

7)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상태에서 빈부차가 극심해짐. 잘 사는 집은 가죽 소파를 갖고 있고, 못 사는 집은 죽도 먹기 힘들다고 함. 잘 사는 사람은 열에 둘 정도, 다섯 명은 죽도록 어렵고 셋 정도는 강냉이 밥이라도 먹을 것이라고 함.

8) 평안도 지역은 중국 화교들이 단동에서 물건을 들여와 신의주시장에 내다 판다고 함. 함경도에서는 라진선봉으로 모두 물건이 들어오는데 물품은 모두 중국산임.

9) 현재 북한에서 신발 등 생필품이 조금씩 생산되고 있지만 질이 나쁘기 때문에 판매되지도 않고 관상용에 불과하다고 함. 함남도 단천과 함흥 쪽이 항상 물가가 제일 비싼 편임. 장사할 때도 함남도 쪽 장사가 이윤이 가장 많이 남았다고 함.

10) 양강도 혜산에는 조선족 소유의 4층 짜리 건물에 백화점이 들어섰다고 함. 하루 매출액이 인민폐 20만 위안 정도라고 함.

2004년 북한 주요 도시의 곡식가격

2004년 북한 주요 도시의 곡식 가격 동향

2004년 6월 북한 지역별 식량가격 비교표

2004년 6월 북한 지역별 식량가격 비교표입니다.

빨간선은 쌀, 녹색선은 옥수수, 파란색은 밀가루, 노란색은 콩의 가격입니다.

국경변보다 내륙쪽인 함경남도의 가격이 가장 높고 곡창지대로 갈수록 다시 가격이 낮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2004년 북한 경제의 동향 분석 1 – 쌀값 인상의 원인

쌀값 인상의 원인

중국 현지에서 쌀값이 1kg에 2위안에서 3위안 가량으로 50%쯤 인상되었다. 또 북한돈이 평가절하되었다. 때문에 중국쌀이 수입되어 들어오는 국경변에서는 2004년 1월에 비해 70~80%의 쌀값이 인상된 반면 해주와 평양은 외부에서 지원된 쌀이거나 자체 생산된 쌀이라서 환율인상이나 중국 쌀값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국경변의 물건이 싸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비싼데 최근의 쌀값은 그 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4년 북한 경제의 동향 분석 2 – 장마당 허용

장마당 허용

장마당은 이미 세금을 받고 허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가격은 수요 공급의 법칙과 변동 환율에 따라 정해지고 있고 국정가격은 여전히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이미 북한의 쌀값 변동은 중국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입 쌀 가격에 따라 좌우되므로 대량의 인도적 지원은 북한의 쌀값을 낮추고 주민들의 경제 생활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2004년 북한 경제의 동향 분석 3 – 개인농으로의 변화 조짐

개인농으로의 변화 조짐

함경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가 개인에게 세금을 받고 토지의 경작권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는 7?1 경제 개혁 정책에 따른 것이라 보여진다. 뙈기밭과 같이 소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소작인을 고용하여 소작농이 생겨난 것도 특이한 사항이다.

농지가 생겼지만 농사를 지을 농기구 등 생산 수단은 아직 사유화되지 못하고 있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농지를 개인에게 분배하더라도 시행 초기에는 수확량이 늘어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간단한 농기구와 비료 등을 신속히 지원하여 개인농 정책에서 성과를 낸다면 북한의 개방 정책은 훨씬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2004년 북한 경제의 동향 분석 4 – 시장경제와 배급제의 혼재

시장경제 도입과 사회주의 배급제 혼재

농업 부문에서 소작농의 출현, 상업 부문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계약 관계 등은 이미 국가 배급에 의존하던 생활양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 경제가 농업과 상업, 자영업 등 밑바닥에서부터 이미 시장 경제체제가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남한과 국제 사회 등의 식량 지원으로 북한의 식량 수급 상황이 약간 안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큰 기업소를 중심으로 다시 배급제가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무산 광산과 검덕 광산에서 다시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을 중심으로 시장 경제 체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도 국영기업이나 기간 산업 시설에 대해 배급제가 회복되는 등 혼재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개혁개방으로 인한 시장 경제의 도입과 기존 사회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는 국가 의도의 정책적 혼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북한 경제의 동향 분석 5 – 경제정책 혼란

경제 개혁 정책의 혼란

국정 가격을 현실화하고 임금을 올려주는 새로운 경제 개혁 정책은 여전히 안정화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물가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계속되는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물자의 절대적 부족으로 물가 인상 및 화폐의 평가절하는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대신 중국 위안화가 지배적인 화폐로 맹위를 떨침으로써 북한 경제가 중국 경제권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 여성/어린이/교육

7월의 비사그루빠 활동(2004년)

6·4 그루빠 활동 재개:

2004년 7월 10일부터 국경변에서 활동을 재개했다고 함. 6?4 그루빠란 1990년대 초반 6월 4일 조직되어 전 인민들 대상으로 비사회주의적인 행위를 발견하여 처벌하고자 만들어졌음. 일반 계층뿐 아니라 도당 책임비서 등 간부들, 각 지역 보위부 성원 등 모두가 이들의 감찰 대상임.

이들의 활동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 중 일례로 혜산시 시당 책임비서가 이번 6?4 그루빠가 들어온 이후 사라졌다고 함. 한국 사람과의 거래가 있어 잡혀 들어간 것으로 소문이 돌았다고 함.

기차간에서의 사민과 군인간의 싸움(2004년)

기차 운행 중 분쟁 목격자 증언:

“함북선이 운행 중 고무산 역에 와서 싸움이 붙은 일이 있었다. 고무산 역은 원래 기관차를 바꾸는 역인데 기관사가 일부러 대피 선로에 세우고 내렸다. 기차가 한번 서면 언제 떠날지도 모르지, 승객들이 겪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한 아주머니가 기관사가 일부러 역에서 물건 팔게 하려고 차를 세웠다며 욕을 했다.

‘저런 기관사는 때려놓아야 정신을 차린다’ 사령원들이 차를 멈춰 놓는데 역 부근에 사는 사령원 가족들이 음식 등을 가지고 나와서 역에서 기차 승객들에게 물품을 팔기 때문에 기차를 일부러 역에 세운다. 그래서 몇몇 군인들이 나서서 그 기관사와 기관차 사령원들을 때려놓았다.

막 소란이 일어나니 사회안전원들이 출동했는데 안전원들이 군대들을 건드리지는 못하니까 할 수 없이 아주머니만 잡아갔다. 그 후 경무부(주. 군대를 통제하는 군대 안전부)가 나와 때린 군대를 잡아가길래 주변 사람들이 군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니 ‘우리가 아무래도 군인 편이지 아무렇게나 다루겠는가?’하면서 잡아갔다. 소동이 일어나니 사회안전부는 주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주머니만 잡아간 것이다.”

9월의 꽃제비들(2004년)

꽃제비 상황:

꽃제비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많다고 함.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꽃제비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함. 부모 중에는 자녀를 찾지 않는 경우도 있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생활형편이 몹시 어려운 경우 역전 등지에 나가 구걸을 하며 연명한다고 함. 각 지역의 문화회관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