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탈북자 3명, 중국 움막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돼

지난 1월 15일, 중국 도문 변방대에서는 농촌 움막에서 얼어 죽어있는 탈북자 3명을 발견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2명이었는데, 이들은 함경북도 온성 쪽에서 건너온 뒤 변방대의 단속을 피해 차량을 이용하는 대신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택했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이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 몸을 숨겼으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얼어 죽었는데,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것 같았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한 조선족은 최근 북한에서 식량난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중국에 도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며 예전 같지 않아서 지금은 조선족들도 잘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도 조선족을 잘 믿지 않는 상황이라 이런 비극이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국경경비 강화 지시에 군관들 시큰둥

비법월경자나 밀매매업자 등을 붙잡으면 큰 상을 주겠다는 상부의 약속에 하전사(일반병)들은 솔깃해하는 반면, 군관(장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결혼한 군관들은 생활비 4,000원과 식량 약간으로 살림을 하고 아이까지 키워야 하니 생계유지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장호석(가명)씨는 “군관 생활을 평생 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사회로 진출하려면 돈을 모아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데, 도강시켜주면 돈벌이가 꽤 짭짤해서 모두들 한 건이라도 더 하고 싶어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부에서도 이런 실정을 감안해 “도강을 비법으로 시켜준 군관까지 함께 책임을 물어 책벌을 하겠다”고 군관들을 향해 채찍을 들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특별경비지도를 하면서 군관들의 비리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강조해 군관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했다.

군관들은 “그럴 거면 초소 꾸리기 사업 같은 것 좀 그만 시키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경경비대에 최근 초소를 잘 꾸릴 데 대한 군사 과업이 많이 떨어져 군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초소 꾸리기 운동을 하라며 시멘트도 자체 해결하라, 목재와 자갈, 페인트를 비롯해 모든 자재를 자체 해결하라고 하니 너무 힘들다고 한다. “(상부에서) 초소 꾸리기에 필요한 각종 자재 및 물품 보장은 하나도 해주는 것이 없이 강제로 내리 먹일 뿐”이라, 결국 군관들이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초소 꾸리기를 깨끗하게 잘 했는지, 유리창을 해 넣었는지, 지붕을 잘 고쳤는지 등을 나중에 보여줘야 하니까 일단 꾸려놓고 봐야 한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강을 건너가 중국 측에 구걸하는 부대도 있는가하면, 민가에 내려가 돈을 융통하는 곳도 있었다. 이런 부대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군관들은 초소에 공급된 식량을 몰래 시장이나 민가에 내다팔아 그 돈으로 자재를 구입하는 게 가장 흔한 방법이라고 했다. 부업 농사를 하는 산골 소대들에서는 직접 농사지은 두부콩이나 옥수수를 내다 팔기도 하는데, 능력이 부족한 군관들은 분대장이나 사관들에게 책임을 미루기도 한다. 하는 수없이 분대장이나 사관(하사관)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민가에 내려가 도적질을 하거나 식량을 약탈하곤 해서 군민관계를 악화시킨다. 군관들은 “군 과제를 강제로 내리먹이면 우리가 별 수 있나. 도강이나 밀수를 도와줘서라도 돈을 벌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국경연선지역에 제아무리 경비강화 지시가 내려져도 하는 시늉만 할뿐 실제로 군관들은 지킬 생각이 없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번 군관들은 사회에 나가서 살만한 돈을 챙겨 가기 때문에 누구든 국경연선지역에 배치되길 바라는 것이 현재의 풍속이라고 했다. 국경경비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질수록 도강비만 비싸질 뿐 도강자는 줄지 않는다. 상부에서는 군관들을 대상으로 가택수색 및 불법품목소지 여부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좌 2명과 소좌 1명이 남한 탈북자에게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개인 비리가 계속 적발되는 한편, 최근 고급차량 검열 등의 여파로 군부 검열이 한층 강화됐다.

올 겨울 탈북자 행렬 증가에 국경 경비 강화

두만강이 얼면 중국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올 겨울 유독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도문에서 온성군 남양교두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가 109명으로 집계됐다. 국경경비강화에도 약 한 달 간 1월 말까지 수백 명이 중국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에서는 작년 12월 1일부터 28일까지 한 달 동안 자체 검열을 실시해 “한 명의 탈북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경계령을 내린 바 있다. 국경 경비 사령부에서는 지난 12월 17일, 국경경비대 려단들은 각 산하 대대와 중대, 독립소대들에 이르기까지 려단급 또는 대대급 군관들로 조직한 지도 성원을 내려보냈다. 지도원들은 파견나간 부대의 훈련 상황과 정치 상학, 국경경비 진행 등을 상세히 파악한 뒤 직접 지도하고 있다. 한국과의 무력 분쟁이 일어난 이후 군 경계가 강화된 이유도 있지만, 국내 식량 부족 현상으로 탈북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경비 강화에 힘을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에게는 “비법 월경자와 밀수자, 도주자 등을 잡으면 제대한 뒤 지망하는 대학에 우선 보내주고, 표창 휴가와 집에는 아리랑 천연색 텔레비전 등을 선물로 주겠다”고 독려한다. 혹시라도 “주민들이 찾아와 비법 월경을 시켜 달라고 하면 해 주겠다고 응답하고, 국경 연선에 들어설 때 잡아라, 그러면 배려는 무조건 차례진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 조․중 무역을 강화하면서 북한 대표단이 중국에 많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반 무역상이나 주민들은 보다 강해진 검열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중국 도문에 왔다갔다하는 한 무역상인은 “모두 새로 임명된 소장파들이라 충성심에 두 눈이 빨개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금지물품을 가져오다 걸리면 사소한 일에도 무자비한 처벌을 한다”고 분위기가 살벌해졌다고 전했다.

옥수수 몇 줌으로 버티던 전쟁로병, 결국 동사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도 굶주림과 추위가 겹쳐 동사하는 노약자들이 많았다. 설 명절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일, 성천강구역 신흥1동에서는 전쟁로병(6.25참전용사) 김동석(가명) 할아버지가 동사한 일이 있었다. 이웃들은 할아버지가 한 달 넘게 기침을 심하게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고 했다. 거의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면서도 매일 몇 줌의 옥수수를 구걸하려고 영하의 추위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집 저집에서 꾸어온 옥수수 몇 줌에 물을 몇 바가지 부어넣고 소금을 넣어 끓인 죽물이 할아버지가 섭취하던 유일한 음식이었다. 할아버지의 동사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옆집 할머니였다. 전날 저녁에도 할아버지가 옥수수를 꾸러 왔는데, 없다고 하는데도 계속 와서 사정하는 것을 며느리 눈치가 보여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파리한 입술에 핏기 하나 없는 할아버지 얼굴이 꼭 저승사자처럼 보여서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 쌀독에 겨우 2kg 정도 남아있던 옥수수에서 두 줌을 덜어내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머니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느낀 것은 싸늘한 냉기였다. 방문을 여니 불을 때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처럼 써늘해 도저히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온기 하나 없는 냉돌방에 할아버지가 꽁꽁 얼어붙어 누워있었다. 할아버지 옆에는 큰 냄비에 두꺼운 얼음덩이가 절반을 덮고 있었고, 그 밑에 옥수수 알 몇 알이 들여다보이더라고 했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따뜻한 옥수수밥 한 끼라도 먹일 걸 그랬다며 할머니가 내내 우셨다. 전쟁로병의 사망 소식에 동사무소에서 동당 비서와 사무장이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도 집은 냉장고처럼 써늘했다. 가마솥 뚜껑을 열어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 솥 안이 모두 녹이 슬어있었다. 김동석 할아버지는 신흥1동에 생존해있던 마지막 전쟁로병이어서, 동당비서는 시당에 약식으로라도 예우를 갖추도록 장례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시당에서는 동사무소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동사무소 차원에서 간단하게 술과 약간의 음식을 마련해 장례를 지내고, 타도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아버지의 사망 기별을 보냈다. 명절이었는데도 자식들 중에 집에 다니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웃들은 “살기가 어려우니 아무리 보고 싶은 부모형제라도 여러 해 동안 만나러 다니지 못하고, 그나마 배려를 받는다는 전쟁로병조차 배급이 끊겨 얼어 죽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며 끌끌 혀를 찼다.

설 인사 하러 갔다 친정아버지 동사체(凍死體) 발견

높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은 계단으로 오르내리기조차 힘들어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지낸다. 식량도 땔감도 너무 비싸 집에서 쫄쫄 굶다가 얼어 죽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2월 4일, 청진 수남구역 추목동에서는 시집 간 딸이 설 인사 차 본가(친정)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얼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리영옥(가명)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웃들이 찾아와 “이런 일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갈 줄은 몰랐다. 저렇게 혼자 떨다 돌아가셔서 너무 안됐다”는 등 위로를 건넸다. 사람들이 몇몇 모이자, 옆 동네에서도 몇 명이 죽었다는 둥 싸늘한 시체가 꽁꽁 얼어붙어서 움직이는데도 애를 먹었다는 둥, 고난의 행군 때 굶어죽는 것은 많이 봤어도 얼어 죽는 것은 처음 봤다는 둥 풍문들을 수군거렸다. 그러자 어느 샌가 담당보안원이 나타나 “사회를 비방하는 말은 삼가라. 요즘 이렇게 죽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렇게 부모 생각했으면 진작 돌보러 올 것이지, 죽고 나서 와가지고 왜 시끄럽게 구나”라며 괜히 울고 있는 딸을 타박했다. 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형편이 좋으면 누가 낳아주고 키워준 제 부모를 멀리하겠는가. 지금 같이 바쁜(힘든) 세월에 명절이라고 먼 길 떠나 부모 집 찾아다니는 자식들이 몇이나 되느냐. 찾아온 것만도 효심이 대단하다”고 딸을 위로했다.

평양 포함 전국, 꽃제비와 노약자 동사(凍死) 속출

평양시에서는 구역당마다 꽃제비들과 노약자들의 동사 문제를 계속 접수받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평양 구역당의 한 간부는 “(평양시) 생활수준이 안정적인 편이라, 다른 지방에 비해 유독 노인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다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구역당내 흉흉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렇게 많이 얼어 죽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평양시가 이 정도면 다른 지역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평성을 비롯한 함흥, 원산, 청진 등 전국 주요 도시들마다 노약자들과 꽃제비들의 동사가 속출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월에 얼어 죽거나 굶어죽은 꽃제비들이 무려 150명에 달한다. 꽃제비들의 출신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청진 이외의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장사꾼이 많이 드나들어 구걸과 소매치기 등이 쉬운 주요 도시 역전에 인근 지역 꽃제비들이 모여 거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진이나 함흥, 평성, 원산 등 주요 도시 역에는 꽃제비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구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요행히 구걸에 성공한다고 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서 용케 비닐박막을 구해 온몸에 둘둘 말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걸레가 다 된 넝마를 걸치고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땟물이 줄줄 흘러 새까매진 파리한 몸을 보면 애처롭기 짝이 없다. 굶주림의 고통에 추위까지 겹쳐 동상에 안 걸린 아이들이 없고, 폐렴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을 돌봐줄 곳은 아무데도 없는 상황이다.

■ 사건사고

탈북자 3명, 중국 움막에서 얼어 죽어

지난 1월 15일, 중국 도문 변방대에서는 농촌 움막에서 얼어 죽어있는 탈북자 3명을 발견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2명이었는데, 이들은 함경북도 온성 쪽에서 건너온 뒤 변방대의 단속을 피해 차량을 이용하는 대신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택했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이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에 몸을 숨겼으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얼어 죽었는데,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난 것 같았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한 조선족은 최근 북한에서 식량난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중국에 도강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며 예전 같지 않아서 지금은 조선족들도 잘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북한 사람들도 조선족을 잘 믿지 않는 상황이라 이런 비극이 정말 안타깝다고 했다.

옥수수 몇 줌으로 버티던 전쟁로병, 결국 동사

함경남도 함흥시에서도 굶주림과 추위가 겹쳐 동사하는 노약자들이 많았다. 설 명절 하루 전날인 지난 2월 2일, 성천강구역 신흥1동에서는 전쟁로병(6.25참전용사) 김동석(가명) 할아버지가 동사한 일이 있었다. 이웃들은 할아버지가 한 달 넘게 기침을 심하게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고 했다. 거의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면서도 매일 몇 줌의 옥수수를 구걸하려고 영하의 추위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집 저집에서 꾸어온 옥수수 몇 줌에 물을 몇 바가지 부어넣고 소금을 넣어 끓인 죽물이 할아버지가 섭취하던 유일한 음식이었다. 할아버지의 동사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옆집 할머니였다. 전날 저녁에도 할아버지가 옥수수를 꾸러 왔는데, 없다고 하는데도 계속 와서 사정하는 것을 며느리 눈치가 보여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파리한 입술에 핏기 하나 없는 할아버지 얼굴이 꼭 저승사자처럼 보여서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 쌀독에 겨우 2kg 정도 남아있던 옥수수에서 두 줌을 덜어내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머니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느낀 것은 싸늘한 냉기였다. 방문을 여니 불을 때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처럼 써늘해 도저히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온기 하나 없는 냉돌방에 할아버지가 꽁꽁 얼어붙어 누워있었다. 할아버지 옆에는 큰 냄비에 두꺼운 얼음덩이가 절반을 덮고 있었고, 그 밑에 옥수수 알 몇 알이 들여다보이더라고 했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따뜻한 옥수수밥 한 끼라도 먹일 걸 그랬다며 할머니가 내내 우셨다. 전쟁로병의 사망 소식에 동사무소에서 동당 비서와 사무장이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도 집은 냉장고처럼 써늘했다. 가마솥 뚜껑을 열어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 솥 안이 모두 녹이 슬어있었다. 김동석 할아버지는 신흥1동에 생존해있던 마지막 전쟁로병이어서, 동당비서는 시당에 약식으로라도 예우를 갖추도록 장례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시당에서는 동사무소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동사무소 차원에서 간단하게 술과 약간의 음식을 마련해 장례를 지내고, 타도에 있는 아들과 딸에게 아버지의 사망 기별을 보냈다. 명절이었는데도 자식들 중에 집에 다니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웃들은 “살기가 어려우니 아무리 보고 싶은 부모형제라도 여러 해 동안 만나러 다니지 못하고, 그나마 배려를 받는다는 전쟁로병조차 배급이 끊겨 얼어 죽는 것이 요즘 현실”이라며 끌끌 혀를 찼다.

설 인사 하러 갔다 친정아버지 동사체(凍死體) 발견

높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은 계단으로 오르내리기조차 힘들어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지낸다. 식량도 땔감도 너무 비싸 집에서 쫄쫄 굶다가 얼어 죽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2월 4일, 청진 수남구역 추목동에서는 시집 간 딸이 설 인사 차 본가(친정)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얼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리영옥(가명)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웃들이 찾아와 “이런 일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갈 줄은 몰랐다. 저렇게 혼자 떨다 돌아가셔서 너무 안됐다”는 등 위로를 건넸다. 사람들이 몇몇 모이자, 옆 동네에서도 몇 명이 죽었다는 둥 싸늘한 시체가 꽁꽁 얼어붙어서 움직이는데도 애를 먹었다는 둥, 고난의 행군 때 굶어죽는 것은 많이 봤어도 얼어 죽는 것은 처음 봤다는 둥 풍문들을 수군거렸다. 그러자 어느 샌가 담당보안원이 나타나 “사회를 비방하는 말은 삼가라. 요즘 이렇게 죽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렇게 부모 생각했으면 진작 돌보러 올 것이지, 죽고 나서 와가지고 왜 시끄럽게 구나”라며 괜히 울고 있는 딸을 타박했다. 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형편이 좋으면 누가 낳아주고 키워준 제 부모를 멀리하겠는가. 지금 같이 바쁜(힘든) 세월에 명절이라고 먼 길 떠나 부모 집 찾아다니는 자식들이 몇이나 되느냐. 찾아온 것만도 효심이 대단하다”고 딸을 위로했다.

평양 포함 전국, 꽃제비와 노약자 동사(凍死) 속출

평양시에서는 구역당마다 꽃제비들과 노약자들의 동사 문제를 계속 접수받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평양 구역당의 한 간부는 “(평양시) 생활수준이 안정적인 편이라, 다른 지방에 비해 유독 노인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다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구역당내 흉흉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렇게 많이 얼어 죽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평양시가 이 정도면 다른 지역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평성을 비롯한 함흥, 원산, 청진 등 전국 주요 도시들마다 노약자들과 꽃제비들의 동사가 속출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월에 얼어 죽거나 굶어죽은 꽃제비들이 무려 150명에 달한다. 꽃제비들의 출신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청진 이외의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장사꾼이 많이 드나들어 구걸과 소매치기 등이 쉬운 주요 도시 역전에 인근 지역 꽃제비들이 모여 거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진이나 함흥, 평성, 원산 등 주요 도시 역에는 꽃제비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구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요행히 구걸에 성공한다고 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서 용케 비닐박막을 구해 온몸에 둘둘 말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걸레가 다 된 넝마를 걸치고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땟물이 줄줄 흘러 새까매진 파리한 몸을 보면 애처롭기 짝이 없다. 굶주림의 고통에 추위까지 겹쳐 동상에 안 걸린 아이들이 없고, 폐렴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을 돌봐줄 곳은 아무데도 없는 상황이다.

■ 사회

국경경비 강화 지시에 군관들 시큰둥

비법월경자나 밀매매업자 등을 붙잡으면 큰 상을 주겠다는 상부의 약속에 하전사(일반병)들은 솔깃해하는 반면, 군관(장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결혼한 군관들은 생활비 4,000원과 식량 약간으로 살림을 하고 아이까지 키워야 하니 생계유지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장호석(가명)씨는 “군관 생활을 평생 할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사회로 진출하려면 돈을 모아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데, 도강시켜주면 돈벌이가 꽤 짭짤해서 모두들 한 건이라도 더 하고 싶어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부에서도 이런 실정을 감안해 “도강을 비법으로 시켜준 군관까지 함께 책임을 물어 책벌을 하겠다”고 군관들을 향해 채찍을 들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특별경비지도를 하면서 군관들의 비리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강조해 군관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했다.

군관들은 “그럴 거면 초소 꾸리기 사업 같은 것 좀 그만 시키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경경비대에 최근 초소를 잘 꾸릴 데 대한 군사 과업이 많이 떨어져 군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초소 꾸리기 운동을 하라며 시멘트도 자체 해결하라, 목재와 자갈, 페인트를 비롯해 모든 자재를 자체 해결하라고 하니 너무 힘들다고 한다. “(상부에서) 초소 꾸리기에 필요한 각종 자재 및 물품 보장은 하나도 해주는 것이 없이 강제로 내리 먹일 뿐”이라, 결국 군관들이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초소 꾸리기를 깨끗하게 잘 했는지, 유리창을 해 넣었는지, 지붕을 잘 고쳤는지 등을 나중에 보여줘야 하니까 일단 꾸려놓고 봐야 한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강을 건너가 중국 측에 구걸하는 부대도 있는가하면, 민가에 내려가 돈을 융통하는 곳도 있었다. 이런 부대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군관들은 초소에 공급된 식량을 몰래 시장이나 민가에 내다팔아 그 돈으로 자재를 구입하는 게 가장 흔한 방법이라고 했다. 부업 농사를 하는 산골 소대들에서는 직접 농사지은 두부콩이나 옥수수를 내다 팔기도 하는데, 능력이 부족한 군관들은 분대장이나 사관들에게 책임을 미루기도 한다. 하는 수없이 분대장이나 사관(하사관)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민가에 내려가 도적질을 하거나 식량을 약탈하곤 해서 군민관계를 악화시킨다. 군관들은 “군 과제를 강제로 내리먹이면 우리가 별 수 있나. 도강이나 밀수를 도와줘서라도 돈을 벌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국경연선지역에 제아무리 경비강화 지시가 내려져도 하는 시늉만 할뿐 실제로 군관들은 지킬 생각이 없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번 군관들은 사회에 나가서 살만한 돈을 챙겨 가기 때문에 누구든 국경연선지역에 배치되길 바라는 것이 현재의 풍속이라고 했다. 국경경비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질수록 도강비만 비싸질 뿐 도강자는 줄지 않는다. 상부에서는 군관들을 대상으로 가택수색 및 불법품목소지 여부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좌 2명과 소좌 1명이 남한 탈북자에게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개인 비리가 계속 적발되는 한편, 최근 고급차량 검열 등의 여파로 군부 검열이 한층 강화됐다.

올 겨울 탈북자 행렬 증가에 국경 경비 강화

두만강이 얼면 중국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올 겨울 유독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도문에서 온성군 남양교두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가 109명으로 집계됐다. 국경경비강화에도 약 한 달 간 1월 말까지 수백 명이 중국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에서는 작년 12월 1일부터 28일까지 한 달 동안 자체 검열을 실시해 “한 명의 탈북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경계령을 내린 바 있다. 국경 경비 사령부에서는 지난 12월 17일, 국경경비대 려단들은 각 산하 대대와 중대, 독립소대들에 이르기까지 려단급 또는 대대급 군관들로 조직한 지도 성원을 내려보냈다. 지도원들은 파견나간 부대의 훈련 상황과 정치 상학, 국경경비 진행 등을 상세히 파악한 뒤 직접 지도하고 있다. 한국과의 무력 분쟁이 일어난 이후 군 경계가 강화된 이유도 있지만, 국내 식량 부족 현상으로 탈북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경비 강화에 힘을 넣으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에게는 “비법 월경자와 밀수자, 도주자 등을 잡으면 제대한 뒤 지망하는 대학에 우선 보내주고, 표창 휴가와 집에는 아리랑 천연색 텔레비전 등을 선물로 주겠다”고 독려한다. 혹시라도 “주민들이 찾아와 비법 월경을 시켜 달라고 하면 해 주겠다고 응답하고, 국경 연선에 들어설 때 잡아라, 그러면 배려는 무조건 차례진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 조․중 무역을 강화하면서 북한 대표단이 중국에 많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반 무역상이나 주민들은 보다 강해진 검열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중국 도문에 왔다갔다하는 한 무역상인은 “모두 새로 임명된 소장파들이라 충성심에 두 눈이 빨개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금지물품을 가져오다 걸리면 사소한 일에도 무자비한 처벌을 한다”고 분위기가 살벌해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