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개성 군인들의 특식은?

개성에 주둔 중인 2군단 군인들은 지난 해 1년 동안 어느 하루도 제대로 된 식량을 받은 적이 없다. 항상 배고픔을 참고 견디다가, 작년 9월 말부터 주변 농장 밭에서 벼 이삭을 훑어 주린 창자를 채웠다. 벼 이삭을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3시간 동안 공을 들여 특식을 해먹는다고 말한다. 보통 군인들 3-5명씩 짝을 이뤄 농장에 나가 벼를 훑어 군영에 돌아오는데, 큰 가마나 돌 받침 위에 철판을 깔고 약한 불로 슬슬 달군 다음 벼 이삭이 타지 않을 정도로 계속 닦는다. 바싹 닦은 다음에 절구나 망돌에 벼를 갈아서 물에 담그는데, 이때 쌀가루는 가라앉고 껍질만 물에 둥둥 뜬다. 벼 껍질을 살짝 거둬내고는 물에 가라앉은 쌀가루만 건져내서 군인들이 덮는 백포에 담아 수분을 쫙 빼낸다. 그렇게 물기가 빠진 쌀가루를 잘 으깨고 빚어 가마에 넣어 찌면 떡이 된다. 이렇게 만든 떡이다 보니 아무래도 껍질이 많이 섞여 있는데, 군인들은 특식 중의 특식이라고 좋아들 한다. 매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추수 전까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말 그대로 별미인 셈이다.

“죽어가는 아들한테 먹을 것 좀”노모(老母)의 눈물

다음은 청진-회령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지난 2월 중순, 함경북도 고무산 초소에서 목격한 일이다. 청진-회령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고무산 10호 초소에서 유독 단속 시간이 길었다. 전국적으로 검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초소 단속도 강화된 탓인지, 여행증명서가 있는 사람들도 꼬치꼬치 몇 번이고 캐묻고 짐 수색, 몸수색을 몇 번이나 당해야 했다. 버스 승객 중에 허리 구부정하고 제 한 몸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삐쩍 마른 할머니 한 분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지 더듬더듬 뭐라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속원들도 매일 단속하는 게 힘이 들었던지, 아니면 할머니의 더듬거리는 말을 유독 알아듣기 힘들었던지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뭐라고 했는지 급기야 노인네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소매를 잡고 사정하는 모습이었다. 뼈가 앙상히 드러난 한 줌 가느다란 손목이 거칠게 내팽겨 쳐졌다. 덩달아 할머니 몸이 휘청거렸다. 곧이어 뒤로 꿍 넘어지고 말았다. 다들 무료하게 혹은 초조하게 단속시간을 견디고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단속원들의 신경도 예민해졌는지, 빨리 처리하고 보내라고 성화였다. 몸집은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단속원 한 명이 할머니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더니 질질 끌다시피 화물차에 태웠다. 봇짐 하나를 던져주고는 화물차를 출발시켰다. 할머니는 머리가 산발된 것도 모르고, 얼마나 울었는지 일그러진 얼굴로 최후의 숨을 끌어 모은 듯이 “살려 주오. 살려 주오”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몇 마디 지르다가 결국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검사가 다 끝난 뒤 손님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회령으로 출발했다. 단속원이 눈앞에서 멀어지자 누군가 말했다. ‘저 로친, 청암(구역)에서 전거리 가던 중이라고 들었소. 그 옆에서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로친 아들이 작년에 도강하다가 걸려서 4년 형 받고 전거리에 있다지 않소. 영양실조에 걸려서 다 죽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 한 번 살려보겠다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펑펑이가루를 20kg 겨우 만들어 왔다고 하오. 잘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다리를 다쳤는지 잘 걷지도 못하던데, 하여간 대단한 로친이오. 려행증명서까지 제대로 떼어 왔더만. 원래도 기력이 없어서 말을 빨리 못하는 것 같더만, 하도 다그치니까 더 말을 못해서 더듬더듬하다나니 단속원들이 다른 속셈이 있다면서 통과를 안 시켜준 거요. 내가 옆에서 같이 사정해봤는데 나도 이상하게 취급하려고 해서 그만뒀소. 늙어서 말을 빨리 못해 그런 거지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로친이 몇 번이고 애원하고 울고불고 해도 그냥 돌려 보냅디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회령은 국경도시라서 여행증명서를 떼는 데에도 뇌물이 많이 필요한데, 보기에도 남루하고 궁색해 보이는 그 할머니가 여행증명서를 떼고 펑펑이 가루까지 챙겨 오려고 혼자 얼마나 바빴겠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왔다. 도강을 못하게 하려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겠다고 마지막 힘까지 끌어 모았을 모정까지 박대하는 게 몹시 언짢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거나, 아니면 차갑게 내팽개쳐진 모정이 서러웠는지 숨죽이고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리원, 노동자들의 고난 시대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는 도시 노동자들이 고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 농촌 지역들은 아무리 수해 피해를 입었다고 하나 농민들마다 어느 정도씩 식량을 보유한 상황이다. 반면 도시 노동자들은 장사가 잘 안 돼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상태다. 농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는 없어도 노동자들이 굶어죽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 1월 중순, 편의봉사 관리소 소속 신발 수리공 주성학(가명)씨가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28년째 묵묵히 신발 수리를 해온 사람이라,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초급당 비서와 지배인 등 일군들이 조문하러 갔다. 집안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너무 썰렁하고 누추했다. 쌀독에는 옥수수묵지가루 몇 줌뿐이었다. 남편을 여읜 아내는 “죽기 전에 쌀밥 한 그릇 해먹였으면, 아니 옥수수밥알이라도 먹였으면 원이 없었을 텐데”라며 가슴을 치고 울었다. “이렇게 가고 나면, 자신과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다시 통곡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해줄 말이 없어 하나 둘 소리 없이 자리를 물러나왔다. 옆집 아주머니만이 어깨를 안으며 “지금이 고난의 시대라 그런 거 아니냐. 울지 마라. 너무 울면 힘 빠져서 못 쓴다. 너라도 먹고 살아야지 애들도 산다”며 위로해주었다.

함흥모방직공장, “아직 생산 못해”

함경남도 함흥시 모방직공장이 여전히 정상 운영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조선신보에서는 “최근 경공업분야에서 ‘공장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상품들이 번쩍번쩍하지는 못해도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낸 바 있다. 이때 함흥모방직공장은 평양방직공장, 신의주방직공장 등과 함께 공장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공장으로 언급됐었다. 그러나 보도 내용과 달리 내부 소식은 암울하기만 하다. 함흥모방직공장은 인민군 모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유명하다. 비날론과 화학섬유, 면, 그리고 몽골에서 들여온 모 등을 이용해 모포를 생산해왔다. 설비와 기술력이 좋아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원료부족을 겪으면서 파천(헝겊 등)들을 수거해 섬유를 다시 뽑아 모포를 만들기도 했다. 1994년 2.8비날론공장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이 공장도 똑같이 멎었다. 그러다 작년 3월, 2.8비날론공장 조업이 재개되면서 모방직공장도 오랜만에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8비날론공장이 CNC공정을 도입해 현대화했다고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체섬유가 폭포처럼 쏟아지지는 않고 있다. 비날론공장의 생산 문제는 사실 CNC 공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주원료인 카바이트를 생산하는데 너무 막대한 전력이 소비되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알만한 간부들 사이에는 차라리 그 돈이면 외국에서 섬유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죄라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아무 경제 효용이 없는데도 ‘주체섬유’라는 명분에만 집착한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져있다.

정미란(가명)씨는 올해 들어 굶어죽은 노동자가 1월에만 15명이 넘는다고 했다. 또 직장마다 보통 100명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데, 1월 중순부터 50명도 못 나오는 직장이 태반이라고 했다. 공장 당위원회에서도 아사자 소식과 무단결근자 소식들을 보고받기는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무단결근한 노동자들이 장사라도 해서 잘 먹고 사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화폐 개혁 이후 장사벌이가 끊기다시피 한 뒤 좀처럼 회복이 안 돼 다들 울상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겠다는 아우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나 반동 언론을 퍼뜨리는 현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단속하는 상황이라 내부에서 끙끙대기만 할 뿐 공장 바깥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정씨는 “(우리) 공장만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다른 지역에) 소식이 알려진다 해도 주민들이 동요할리는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흥남비료공장 아사자 발생에“너마저”탄식

함경남도 흥남비료공장도 식량난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한 직장에 소속된 노동자 140명 중에서 올해 출근자는 5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월에만 10명이 사망했는데, 한 의사에 따르면 “사인은 개인 병력을 따져 기재하지만 실제로는 굶어 죽었다”고 했다. 다른 일반 공장들에서 벌어지는 일이 여기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다. 공장의 한 일군 역시 “노동자들이 죽을 때마다 공장 당위원회에 보고하는데, 병사(病死)라고 하지만 다들 굶어죽었다고 생각 한다”며 의사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무단결근자들도 부업을 찾아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업과 상관없이 기력이 없어 출근 못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이 같은 소식에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평양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직장에 따라 배급을 더 잘 받고 못 받는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주변 직장이라고 해도 국가적으로 최우선 배려가 집중되고 있는 공장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의 한 간부는 “흥남비료공장이 어떤 공장인가? 올해만도 우리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 시찰에 나서 ‘함흥시는 의식주 문제 해결에 중요한 몫을 맡은 큰 공장들이 있어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 선봉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격려말씀을 할 만큼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곳이 아니냐. 그런데 여기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나왔다니…흥남비료공장 너마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고 표현할 정도로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흥남비료공장은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의 3대 주체경제 중 주체비료를 담당하고 있다. 남흥화학청년기업소도 있지만, 실제 대량 생산의 기대를 받고 있는 곳은 흥남비료공장이다. “질소비료 1톤에 쌀 10톤”이라는 계산에 따라 비료 100만 톤 생산으로 쌀 1,000만 톤 생산하는 것이 2012년 강성대국으로 가는 목표로 제시된 적도 있다.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이라는 것이 ‘자체 원료’와 ‘자체 기술’, ‘자체 노력(노동력)’만으로 나라의 기둥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라 한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비료 생산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수소가 필요한데 다른 나라들은 천연가스나 원유를 가열분해해서 수소를 생성한다. 그러나 ‘자체 원료’만 사용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다른 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무연탄을 증류, 가수분해해서 수소를 뽑아내는 이른바 ‘무연탄가스화’ 공정이다. 문제는 고열량 무연탄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어렵다는 점과 전력 소비가 너무 막대해 경제비용이 생산성을 훨씬 초과한다는 점이다. 당장 올해 농사에 비료를 얼마나 보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어찌됐건 흥남비료공장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한다는 소식은 국가의 총역량을 투여하는 기업소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청진버스공장, “볼 장 다 봤다”

조선 굴지의 버스 및 궤도전차 생산 공장으로 유명한 함경북도 청진 버스공장마저 “볼 장 다 봤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생산성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말이다. 청진버스공장은 한때 670명 가량의 종업원 수를 보유하고, 평양 궤도전차까지 만들어 보급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2011년 2월 현재 종업원 수는 380명으로 감소했고, 출근하는 수도 80명을 겨우 넘는다. 장사를 하러 다니려고 매달 2만 5천 원 이상을 바치고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꽃제비 직전에 몰린 노동자들이 많다. 올해 두 달 동안 공식 사망자는 6명으로, 사인은 결핵, 심장병 등 병사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먹지 못해 죽은 거라고 잘라 말한다. 기업소에는 간단히 장례만 치러주고, 굶어죽었다는 말이 돌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 제관직장에 근무하는 김병관(가명)씨는 버스공장 초창기부터 일해 온 노동자인데, 지난 3월 2일 직장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이 공장이 소생할 날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병으로 죽었다지만 입에 풀칠도 못해 굶어죽었다는 걸 어떤 머저리라고 모르겠나. 공장에서 뭐 생산되는 게 있어야 배급이라도 바라볼 거 아닌가.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올 겨울 유독 직장 동료들이 많이 죽었다는 한선화(가명)씨도 “죽은 사람은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고생만 남지 않았느냐. 앞으로 어떤 세월이 오려고 이러나?”하며 암울하다고 했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며, 이를 악물고 버티겠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또 “볼 장 다 봤다”는 공장에 다시 볕들 날이 생기도록 공장 지배인과 일군들이 마음을 합해 더 열심히 일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장 지배인과 일군들 몇몇이 잘 한다고 해서 공장이 다시 가동되기에는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원래 청진버스공장은 김책제철소의 랭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을 더 잘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열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이 거칠고 무거운 탱크 등을 제작하는데 사용된다면, 랭간압연직장에서 만들어지는 비교적 가벼운 강판은 버스와 자동차, 전차 등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초창기만 해도 유능한 기술공들을 많이 보유해 평양에서 생산하는 버스, 전차 못지않게 잘 만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공장으로 손꼽혔다. 그러다 북한 경제가 하향세로 기울면서 김책제철소 생산도 원자재 부족 등으로 삐거덕거렸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버스공장에도 미쳤다. 랭간압연생산공정이 잘 돌아가지 않아 열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으로 버스 차체를 제작했더니 너무 무겁고 효율이 떨어진다며 찾는 데가 없어졌다. 게다가 전력 공급이 잘 안 되면서 전차 생산 공정도 멎었다. 버스공장에서 버스와 전차가 생산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종업원들은 살 길을 찾아 너도나도 공장을 떠났다. 시당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을 놀리면 안 된다며 각종 사회과제에 동원했다. 물론 무보수 노동이다. 사실상 노동자들이 생계유지를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볼 장 다 봤다”는 노동자들의 탄식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유이다.

■ 경제활동

함흥모방직공장, “아직 생산 못해”

함경남도 함흥시 모방직공장이 여전히 정상 운영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조선신보에서는 “최근 경공업분야에서 ‘공장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상품들이 번쩍번쩍하지는 못해도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낸 바 있다. 이때 함흥모방직공장은 평양방직공장, 신의주방직공장 등과 함께 공장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공장으로 언급됐었다. 그러나 보도 내용과 달리 내부 소식은 암울하기만 하다. 함흥모방직공장은 인민군 모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유명하다. 비날론과 화학섬유, 면, 그리고 몽골에서 들여온 모 등을 이용해 모포를 생산해왔다. 설비와 기술력이 좋아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원료부족을 겪으면서 파천(헝겊 등)들을 수거해 섬유를 다시 뽑아 모포를 만들기도 했다. 1994년 2.8비날론공장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이 공장도 똑같이 멎었다. 그러다 작년 3월, 2.8비날론공장 조업이 재개되면서 모방직공장도 오랜만에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8비날론공장이 CNC공정을 도입해 현대화했다고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체섬유가 폭포처럼 쏟아지지는 않고 있다. 비날론공장의 생산 문제는 사실 CNC 공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주원료인 카바이트를 생산하는데 너무 막대한 전력이 소비되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알만한 간부들 사이에는 차라리 그 돈이면 외국에서 섬유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죄라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아무 경제 효용이 없는데도 ‘주체섬유’라는 명분에만 집착한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져있다.

정미란(가명)씨는 올해 들어 굶어죽은 노동자가 1월에만 15명이 넘는다고 했다. 또 직장마다 보통 100명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데, 1월 중순부터 50명도 못 나오는 직장이 태반이라고 했다. 공장 당위원회에서도 아사자 소식과 무단결근자 소식들을 보고받기는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무단결근한 노동자들이 장사라도 해서 잘 먹고 사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화폐 개혁 이후 장사벌이가 끊기다시피 한 뒤 좀처럼 회복이 안 돼 다들 울상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겠다는 아우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나 반동 언론을 퍼뜨리는 현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단속하는 상황이라 내부에서 끙끙대기만 할 뿐 공장 바깥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정씨는 “(우리) 공장만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다른 지역에) 소식이 알려진다 해도 주민들이 동요할리는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흥남비료공장 아사자 발생에“너마저”탄식

함경남도 흥남비료공장도 식량난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한 직장에 소속된 노동자 140명 중에서 올해 출근자는 5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월에만 10명이 사망했는데, 한 의사에 따르면 “사인은 개인 병력을 따져 기재하지만 실제로는 굶어 죽었다”고 했다. 다른 일반 공장들에서 벌어지는 일이 여기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다. 공장의 한 일군 역시 “노동자들이 죽을 때마다 공장 당위원회에 보고하는데, 병사(病死)라고 하지만 다들 굶어죽었다고 생각 한다”며 의사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무단결근자들도 부업을 찾아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업과 상관없이 기력이 없어 출근 못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이 같은 소식에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평양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직장에 따라 배급을 더 잘 받고 못 받는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주변 직장이라고 해도 국가적으로 최우선 배려가 집중되고 있는 공장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의 한 간부는 “흥남비료공장이 어떤 공장인가? 올해만도 우리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 시찰에 나서 ‘함흥시는 의식주 문제 해결에 중요한 몫을 맡은 큰 공장들이 있어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 선봉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격려말씀을 할 만큼 국가적 관심이 집중된 곳이 아니냐. 그런데 여기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나왔다니…흥남비료공장 너마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고 표현할 정도로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흥남비료공장은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의 3대 주체경제 중 주체비료를 담당하고 있다. 남흥화학청년기업소도 있지만, 실제 대량 생산의 기대를 받고 있는 곳은 흥남비료공장이다. “질소비료 1톤에 쌀 10톤”이라는 계산에 따라 비료 100만 톤 생산으로 쌀 1,000만 톤 생산하는 것이 2012년 강성대국으로 가는 목표로 제시된 적도 있다. 자립적민족경제로선이라는 것이 ‘자체 원료’와 ‘자체 기술’, ‘자체 노력(노동력)’만으로 나라의 기둥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라 한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비료 생산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수소가 필요한데 다른 나라들은 천연가스나 원유를 가열분해해서 수소를 생성한다. 그러나 ‘자체 원료’만 사용해야 하는 북한으로선 다른 방식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무연탄을 증류, 가수분해해서 수소를 뽑아내는 이른바 ‘무연탄가스화’ 공정이다. 문제는 고열량 무연탄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어렵다는 점과 전력 소비가 너무 막대해 경제비용이 생산성을 훨씬 초과한다는 점이다. 당장 올해 농사에 비료를 얼마나 보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어찌됐건 흥남비료공장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한다는 소식은 국가의 총역량을 투여하는 기업소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청진버스공장, “볼 장 다 봤다”

조선 굴지의 버스 및 궤도전차 생산 공장으로 유명한 함경북도 청진 버스공장마저 “볼 장 다 봤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생산성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말이다. 청진버스공장은 한때 670명 가량의 종업원 수를 보유하고, 평양 궤도전차까지 만들어 보급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2011년 2월 현재 종업원 수는 380명으로 감소했고, 출근하는 수도 80명을 겨우 넘는다. 장사를 하러 다니려고 매달 2만 5천 원 이상을 바치고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꽃제비 직전에 몰린 노동자들이 많다. 올해 두 달 동안 공식 사망자는 6명으로, 사인은 결핵, 심장병 등 병사로 기록돼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먹지 못해 죽은 거라고 잘라 말한다. 기업소에는 간단히 장례만 치러주고, 굶어죽었다는 말이 돌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고 있다. 제관직장에 근무하는 김병관(가명)씨는 버스공장 초창기부터 일해 온 노동자인데, 지난 3월 2일 직장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이 공장이 소생할 날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병으로 죽었다지만 입에 풀칠도 못해 굶어죽었다는 걸 어떤 머저리라고 모르겠나. 공장에서 뭐 생산되는 게 있어야 배급이라도 바라볼 거 아닌가. 이렇게 가다가는 다 죽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올 겨울 유독 직장 동료들이 많이 죽었다는 한선화(가명)씨도 “죽은 사람은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고생만 남지 않았느냐. 앞으로 어떤 세월이 오려고 이러나?”하며 암울하다고 했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며, 이를 악물고 버티겠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또 “볼 장 다 봤다”는 공장에 다시 볕들 날이 생기도록 공장 지배인과 일군들이 마음을 합해 더 열심히 일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장 지배인과 일군들 몇몇이 잘 한다고 해서 공장이 다시 가동되기에는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원래 청진버스공장은 김책제철소의 랭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을 더 잘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열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이 거칠고 무거운 탱크 등을 제작하는데 사용된다면, 랭간압연직장에서 만들어지는 비교적 가벼운 강판은 버스와 자동차, 전차 등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초창기만 해도 유능한 기술공들을 많이 보유해 평양에서 생산하는 버스, 전차 못지않게 잘 만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공장으로 손꼽혔다. 그러다 북한 경제가 하향세로 기울면서 김책제철소 생산도 원자재 부족 등으로 삐거덕거렸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버스공장에도 미쳤다. 랭간압연생산공정이 잘 돌아가지 않아 열간압연직장에서 생산되는 강판으로 버스 차체를 제작했더니 너무 무겁고 효율이 떨어진다며 찾는 데가 없어졌다. 게다가 전력 공급이 잘 안 되면서 전차 생산 공정도 멎었다. 버스공장에서 버스와 전차가 생산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종업원들은 살 길을 찾아 너도나도 공장을 떠났다. 시당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을 놀리면 안 된다며 각종 사회과제에 동원했다. 물론 무보수 노동이다. 사실상 노동자들이 생계유지를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볼 장 다 봤다”는 노동자들의 탄식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유이다.

■ 식량소식

“죽어가는 아들한테 먹을 것 좀”노모(老母)의 눈물

다음은 청진-회령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지난 2월 중순, 함경북도 고무산 초소에서 목격한 일이다. 청진-회령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고무산 10호 초소에서 유독 단속 시간이 길었다. 전국적으로 검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초소 단속도 강화된 탓인지, 여행증명서가 있는 사람들도 꼬치꼬치 몇 번이고 캐묻고 짐 수색, 몸수색을 몇 번이나 당해야 했다. 버스 승객 중에 허리 구부정하고 제 한 몸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삐쩍 마른 할머니 한 분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지 더듬더듬 뭐라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속원들도 매일 단속하는 게 힘이 들었던지, 아니면 할머니의 더듬거리는 말을 유독 알아듣기 힘들었던지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뭐라고 했는지 급기야 노인네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소매를 잡고 사정하는 모습이었다. 뼈가 앙상히 드러난 한 줌 가느다란 손목이 거칠게 내팽겨 쳐졌다. 덩달아 할머니 몸이 휘청거렸다. 곧이어 뒤로 꿍 넘어지고 말았다. 다들 무료하게 혹은 초조하게 단속시간을 견디고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단속원들의 신경도 예민해졌는지, 빨리 처리하고 보내라고 성화였다. 몸집은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단속원 한 명이 할머니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더니 질질 끌다시피 화물차에 태웠다. 봇짐 하나를 던져주고는 화물차를 출발시켰다. 할머니는 머리가 산발된 것도 모르고, 얼마나 울었는지 일그러진 얼굴로 최후의 숨을 끌어 모은 듯이 “살려 주오. 살려 주오”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몇 마디 지르다가 결국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검사가 다 끝난 뒤 손님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다시 회령으로 출발했다. 단속원이 눈앞에서 멀어지자 누군가 말했다. ‘저 로친, 청암(구역)에서 전거리 가던 중이라고 들었소. 그 옆에서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로친 아들이 작년에 도강하다가 걸려서 4년 형 받고 전거리에 있다지 않소. 영양실조에 걸려서 다 죽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 한 번 살려보겠다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펑펑이가루를 20kg 겨우 만들어 왔다고 하오. 잘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다리를 다쳤는지 잘 걷지도 못하던데, 하여간 대단한 로친이오. 려행증명서까지 제대로 떼어 왔더만. 원래도 기력이 없어서 말을 빨리 못하는 것 같더만, 하도 다그치니까 더 말을 못해서 더듬더듬하다나니 단속원들이 다른 속셈이 있다면서 통과를 안 시켜준 거요. 내가 옆에서 같이 사정해봤는데 나도 이상하게 취급하려고 해서 그만뒀소. 늙어서 말을 빨리 못해 그런 거지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로친이 몇 번이고 애원하고 울고불고 해도 그냥 돌려 보냅디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회령은 국경도시라서 여행증명서를 떼는 데에도 뇌물이 많이 필요한데, 보기에도 남루하고 궁색해 보이는 그 할머니가 여행증명서를 떼고 펑펑이 가루까지 챙겨 오려고 혼자 얼마나 바빴겠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왔다. 도강을 못하게 하려고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겠다고 마지막 힘까지 끌어 모았을 모정까지 박대하는 게 몹시 언짢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거나, 아니면 차갑게 내팽개쳐진 모정이 서러웠는지 숨죽이고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 사회

사리원, 노동자들의 고난 시대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는 도시 노동자들이 고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 농촌 지역들은 아무리 수해 피해를 입었다고 하나 농민들마다 어느 정도씩 식량을 보유한 상황이다. 반면 도시 노동자들은 장사가 잘 안 돼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상태다. 농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는 없어도 노동자들이 굶어죽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 1월 중순, 편의봉사 관리소 소속 신발 수리공 주성학(가명)씨가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28년째 묵묵히 신발 수리를 해온 사람이라,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초급당 비서와 지배인 등 일군들이 조문하러 갔다. 집안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너무 썰렁하고 누추했다. 쌀독에는 옥수수묵지가루 몇 줌뿐이었다. 남편을 여읜 아내는 “죽기 전에 쌀밥 한 그릇 해먹였으면, 아니 옥수수밥알이라도 먹였으면 원이 없었을 텐데”라며 가슴을 치고 울었다. “이렇게 가고 나면, 자신과 아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다시 통곡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해줄 말이 없어 하나 둘 소리 없이 자리를 물러나왔다. 옆집 아주머니만이 어깨를 안으며 “지금이 고난의 시대라 그런 거 아니냐. 울지 마라. 너무 울면 힘 빠져서 못 쓴다. 너라도 먹고 살아야지 애들도 산다”며 위로해주었다.

개성 군인들의 특식은?

개성에 주둔 중인 2군단 군인들은 지난 해 1년 동안 어느 하루도 제대로 된 식량을 받은 적이 없다. 항상 배고픔을 참고 견디다가, 작년 9월 말부터 주변 농장 밭에서 벼 이삭을 훑어 주린 창자를 채웠다. 벼 이삭을 어떻게 먹느냐고 했더니, 3시간 동안 공을 들여 특식을 해먹는다고 말한다. 보통 군인들 3-5명씩 짝을 이뤄 농장에 나가 벼를 훑어 군영에 돌아오는데, 큰 가마나 돌 받침 위에 철판을 깔고 약한 불로 슬슬 달군 다음 벼 이삭이 타지 않을 정도로 계속 닦는다. 바싹 닦은 다음에 절구나 망돌에 벼를 갈아서 물에 담그는데, 이때 쌀가루는 가라앉고 껍질만 물에 둥둥 뜬다. 벼 껍질을 살짝 거둬내고는 물에 가라앉은 쌀가루만 건져내서 군인들이 덮는 백포에 담아 수분을 쫙 빼낸다. 그렇게 물기가 빠진 쌀가루를 잘 으깨고 빚어 가마에 넣어 찌면 떡이 된다. 이렇게 만든 떡이다 보니 아무래도 껍질이 많이 섞여 있는데, 군인들은 특식 중의 특식이라고 좋아들 한다. 매번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추수 전까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말 그대로 별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