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투자 유치 위해 경영권 넘기겠다”

평양의 한 무역일군은 중국 투자자들에 대한 편의가 높아졌다는 말에 “지금은 투자 조사 단계라서 잘 해주는 것”이라며, “우리 조선에는 현재 약 200개의 중국 기업이 들어와 있다. 70%는 라진선봉에 집중돼 있다. 중국이 견지하고 있는 원칙은 정부 주도, 기업 위주, 시장 경영, 호리호혜 4가지로, 여기에 따라 우리 공화국과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 원칙으로 하더라도 너희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너희도 이득보고 우리도 이득 보는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설득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는 ‘너희는 투자만 해라, 경영은 우리가 하겠다’는 식으로, 경영권을 그동안 양보하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중국이 투자를 잘 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와 친한 중국 투자자 한 명도, ‘설비투자만 들어가고 경영부실로 성과가 없으니까 투자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투자가 안 들어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으니까. 아무리 접대를 잘해도, 중국에서는 가능성 조사나 실태조사를 한 뒤에 투자를 결정한다. 지금은 대부분 조사 단계니까 우리 측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대우를 아주 잘 해주는 것이다. 만경대 방문보다 투자를 하나라도 더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중국에서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지는 솔직히 우리도 모르겠다”며 새로운 변화 상황을 설명했다.

유연해진 중국 투자자 관광일정, 김일성 수령 동상참배도 생략

세관에서의 까다로운 몸수색과 달리 중국 무역투자자들에 대한 편의 제공과 배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예전 같으면, 무역대표단이 들어가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관광일정들도 지금은 대폭 폐지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 고향집이나 판문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심지어 김일성 수령 동상에 참배하던 일정까지 없애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보위부 일군들의 태도도 너그럽고, 저녁에는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자유 시간을 주기도 한다.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중국 사람들 중에는 수령님의 혁명사적을 관람해보고 싶다고 청하기도 하는데, 보위부원들은 오히려 “번거롭게 아까운 시간을 랑비할 거 있는가? 사업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시간을 아껴 사업 토론을 잘하라”고 타이를 지경이다. 심지어 중국 대표단들을 이끌고 들어온 해외대표들마저 한번 구경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요청하는데도 사업 토론 잘하는데 신경 쓰라고 대꾸한다. 예전 같으면 정치 생명이 끝장나고,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엄중 처벌을 받았을법한 말들도 서슴없이 한다. 중국 사람들이 도리어 괜찮겠느냐고 상대를 걱정해주며, 조마조마해할 정도이다. 일부 중국 무역일군들이 “경영권을 준다고 다짐해놓고 조선의 대외정책이 또 변해버리면, 모든 것이 강물에 처넣은 돌 신세가 되는데 정책이 안변한다는 보장이 있는가?”하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 답답하구만. 만약 정책이 변하거나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경영권이 곧 사유재산과 같은 것이 아니냐. 나라 사이에 투자자보호법이 있는 한 정책이 바뀌더라도 투자 재산을 보호받을 건 빤한 사실이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건데 뭘 그리 두려워하느냐?” 라고 하면서 투자 각서를 체결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평양으로 인솔해온 해외대표가 “동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책이 바뀐다니? 그것도 외국 사람들 앞에서 온 집안이 살아남지 못할 대역죄와도 같은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가?”라고 저지해도, 본사 대표와 단위 일군들이 빙그레 웃으며 “중국 사람들이 하도 불안해하니까 이해관계를 따져주느라 그런 것인데 괜히 긴장해한다”면서 도리어 핀잔을 주었다. 이 대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에는 입만 벙긋해도 목숨이 날아갈 말들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했다.

국경세관, 중국인 몸수색 강화

국경 세관마다 중국 사람들의 몸수색이 최근 강화되고 있다. 라디오를 비롯해 MP3, USB, 소형카메라 등 여러 물품이 국내에 비밀리에 유통되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주로 가져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붙잡힌 중국 사람이 많은데, 특히 화교들이 많다. 몸수색이 강화되면서 뇌물비도 자연 올라가기 마련인데, 예전에는 세관원들이 아는 사람들에게서만 물건이나 돈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돈을 달라고 한다. 중국 돈으로 1백 위안은 너무 작다며 2백 위안에서 3백 위안까지 요구한다. “평소 모른 척하다가 일이 생기고 나서 손 내밀면 누가 봐주겠느냐. 자주 얼굴 마주치고 인사도 먼저 알아서 챙겨야 그게 오히려 돈이 적게 드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할 정도다. 하는 수없이 돈을 내밀면, 까다롭기만 하던 세관 조사는 당연 무사통과다. 세관원들 배불려주려고 몸수색을 강화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조선 사람에 대한 몸수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몸 구석구석까지 검사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중국 사람들이 돌아가 전하니, 중국에서도 보복성으로 조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회령 남문동, 창고 살림살이 증가

함경북도 회령시 남문동에는 창고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 인민위원회 도시 경영 관리부의 조사 결과, 남문동 아파트들에 딸린 창고에서 기거하는 세대가 총 150여 세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집이 없는 세대와 노인 세대, 새로 살림을 나온 세대들이다. 노인 세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이 살던 집을 내주고 창고에 내려온 경우들이 많고, 새 살림 세대는 결혼을 했어도 부모와 동거해야 하거나 집을 배정받지 못해 나온 세대들이다. 식량이 없고 장사도 안 되는 세월이라, 집 식구들이 같이 모여 살면 먹을 것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창고라도 좋다며 살림을 분가하는 것이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아들, 며느리나 딸, 사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창고 살림을 살러 나온다. 이처럼 창고에서 사는 세대들이 증가하는 것은 어느 동이나 비슷하지만, 특히 남문동 지역에 집중돼있다. 시당에서 도시 미화 사업을 해친다며 창고 세대들을 몇 년째 강제로 철거시켜 내몰고 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늘고 있다.

함흥시 보위부원들도 식량난 실감

함경남도 함흥시 법일군들의 생활수준도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흥의 한 보위부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흰쌀밥에 고기도 먹고,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 등 간식을 떨치지 않고 먹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입쌀밥 구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보안원들도 마찬가지다. 한 보안원은 “법관들의 집을 돌아봐도 백미 먹는 세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5대5밥(흰쌀과 옥수수를 절반씩 섞어 먹는 밥)을 먹고 있더라. 동료들 얘기를 들어봐도 돼지고기를 한 달에 1-2번이라도 먹으면 그래도 괜찮은 형편이다. 애들 간식도 며칠에 한 번 사줄까 말까이다. 우리가 이 정도인데 하층 백성들이야 오죽 하겠는가”라고 했다. 시당이나 구역당 등 당 일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흰쌀밥을 정상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무역일군들이나 화폐개혁에 살아남은 일부 돈주들 뿐이다. 흥남시 시당 일군들도 백성들의 식량난을 요즘처럼 실감하게 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식량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장사꾼들이 잘 봐달라고 돈이나 물건을 들고 와도 코웃음 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에는 자진해서 장사꾼들을 찾아가 부탁하지도 않는 일을 처리해주고 있다. 어떻게든 잘 보여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궁책이다. 함흥과 흥남 일군들은 아무리 량강도가 못 산다고 해도 자기네보다는 낫다고 했다. 함흥시 시당의 한 간부는 “량강도 지역은 온통 보리밭과 감자밭이라서 아무리 농사가 잘 안됐다고 해도 감자 이삭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지만, 함흥시와 흥남시는 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 풀뿌리도 주워 먹을 데가 없다. 일반 백성들만이 아니라 간부들까지도 요즘 식량 사정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 더 힘든 악 조건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함흥시 한 보안원은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1990년대 말처럼 길거리에 시체들이 나 뒹굴까봐 무섭다”며 고난의 행군 이후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갑산군, 언 감자도 떨어져 풀뿌리 캐러 다녀

량강도 갑산군 갑산읍 주민들은 3월 들어 땅이 좀 풀리자, 언 감자마저 떨어져 풀뿌리를 캐러 다니고 있다. 시장에 쌀과 옥수수가 있어도 살 돈이 없다. 장사할 처지도 못되는 주민들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식량대용으로 풀뿌리를 캐고 있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들과 야산까지 몇 십리 길을 오르내린다. 온 하루 밭을 헤매다보면 간혹 언 감자를 몇십 알 줍게 될 때도 있는데,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썩어서 삶아 먹기가 곤란하다. 얼기 전에 썩어버리는 감자들이 많아서다. 감자 되걸이 장사를 하는 김일순(가명)씨는 지난 3월 중순, 한 농장에서 감자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배가 고파 도중식사를 꺼내들었다. 아침도 거르고 새벽 일찍 떠난 길이라 한창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감자 추수를 끝내 휑한 밭에 누군가 열심히 밭을 파헤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올만한 것도 없는데 열심인 것을 보니 감자 이삭주이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 옆에는 딸아이인 듯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아비를 따라 찾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꽃제비 가족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치려고 하다가 땟물이 좔좔 흐르는 여자아이가 손에 든 삶은 감자를 빤히 쳐다보기에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뱃속이 꼬르륵 거려 잠깐 망설였지만, 남자를 불러 담배를 한 대 권하며 쉬었다 하라고 했다. 세 덩이의 감자를 아이와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는 제 아비 눈치를 보다가 냉큼 집어 들고는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이 처연했다. 그는 “갑산읍에서 일용품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인데, 2월부터 언 감자에 풀뿌리를 섞어 먹고 살았다. 지금까지 감자밭을 몇 십번씩 훑어서 더 나올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게 생겨서 다시 감자밭에 나왔다”고 했다. 어린 자식 셋 중에 둘을 먼저 보내고 여자아이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큰아들은 11살 되던 2008년에 이질에 걸려 3일 동안 피똥을 계속 오줌처럼 싸다 죽었다. 작은 아이는 작년에 허약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지금은 안해(아내)와 이 아이 뿐인데, 앞으로 먹여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하다가 제 설움에 못 이겨 울음을 쏟아냈다. 이제 서너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아비가 울음을 터뜨리자 영문도 모르고 같이 엉엉 울었다. 갑자기 두 부녀가 우는 통에 잠시 당황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저 힘내시라고 하고는 일어섰다.

량강도 농장원들, 언 감자로 연명

량강도 농장원들은 언 감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 감자를 제때 거둬들이지 못해 상당수가 얼어버리고 말았다. 도당 조사결과, 2월 이후 옥수수 알조차 구경하지 못했다는 집이 많아 식량난이 그 어느 해보다 심각하다는 평가다. 지난 1월, 당 지시에 따라 전국에서 군량미 원호사업이 재개됐으나, 량강도는 제외시킬 정도로 이곳 농민들의 생활 형편이 매우 어렵다. 량강도 관내 군마다 ‘농장 지원 대책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좀 잘 산다는 사람들이 5대 5밥을 먹는데, 주로 보안원, 보위부원 등 법기관 일군들과 농장 관리일군이나 작업반장들이다. 나머지 일반 주민들이 언 감자로 연명하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잘 먹는 축이나, 다른 지역의 법일군들이 입쌀밥 먹는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량강도에서 언 감자는 감자를 먹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먹는 방법에는 그냥 삶아먹거나, 녹말가루로 만들어서 감자녹말국수로 먹는 경우가 있지만, 감자를 얼려두었다가 삶아먹는 방법도 있다. 보관이 어려워서인데, 모양은 새까매도 삶아먹으면 맛은 괜찮다. 썩은 감자도 물에 씻으면 녹말가루가 나오기 때문에 그냥 버리지 않고 알뜰히 챙긴다. 량강도 사람들은 “얼어도 먹고 썩어도 먹어 감자를 버리는 법이 없다”고 하지만, 썩은 감자를 녹말로 만드는데 물이 많이 필요하고 공정이 대단히 복잡해서, 평양이나 평성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렇게 먹지 못한다.

■ 경제활동

“투자 유치 위해 경영권 넘기겠다”

평양의 한 무역일군은 중국 투자자들에 대한 편의가 높아졌다는 말에 “지금은 투자 조사 단계라서 잘 해주는 것”이라며, “우리 조선에는 현재 약 200개의 중국 기업이 들어와 있다. 70%는 라진선봉에 집중돼 있다. 중국이 견지하고 있는 원칙은 정부 주도, 기업 위주, 시장 경영, 호리호혜 4가지로, 여기에 따라 우리 공화국과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시장 원칙으로 하더라도 너희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너희도 이득보고 우리도 이득 보는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설득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는 ‘너희는 투자만 해라, 경영은 우리가 하겠다’는 식으로, 경영권을 그동안 양보하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중국이 투자를 잘 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와 친한 중국 투자자 한 명도, ‘설비투자만 들어가고 경영부실로 성과가 없으니까 투자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투자가 안 들어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으니까. 아무리 접대를 잘해도, 중국에서는 가능성 조사나 실태조사를 한 뒤에 투자를 결정한다. 지금은 대부분 조사 단계니까 우리 측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대우를 아주 잘 해주는 것이다. 만경대 방문보다 투자를 하나라도 더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중국에서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지는 솔직히 우리도 모르겠다”며 새로운 변화 상황을 설명했다.

■ 정치생활

유연해진 중국 투자자 관광일정, 김일성 수령 동상참배도 생략

세관에서의 까다로운 몸수색과 달리 중국 무역투자자들에 대한 편의 제공과 배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예전 같으면, 무역대표단이 들어가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관광일정들도 지금은 대폭 폐지했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 고향집이나 판문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심지어 김일성 수령 동상에 참배하던 일정까지 없애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보위부 일군들의 태도도 너그럽고, 저녁에는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자유 시간을 주기도 한다.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중국 사람들 중에는 수령님의 혁명사적을 관람해보고 싶다고 청하기도 하는데, 보위부원들은 오히려 “번거롭게 아까운 시간을 랑비할 거 있는가? 사업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시간을 아껴 사업 토론을 잘하라”고 타이를 지경이다. 심지어 중국 대표단들을 이끌고 들어온 해외대표들마저 한번 구경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요청하는데도 사업 토론 잘하는데 신경 쓰라고 대꾸한다. 예전 같으면 정치 생명이 끝장나고,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엄중 처벌을 받았을법한 말들도 서슴없이 한다. 중국 사람들이 도리어 괜찮겠느냐고 상대를 걱정해주며, 조마조마해할 정도이다. 일부 중국 무역일군들이 “경영권을 준다고 다짐해놓고 조선의 대외정책이 또 변해버리면, 모든 것이 강물에 처넣은 돌 신세가 되는데 정책이 안변한다는 보장이 있는가?”하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 답답하구만. 만약 정책이 변하거나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경영권이 곧 사유재산과 같은 것이 아니냐. 나라 사이에 투자자보호법이 있는 한 정책이 바뀌더라도 투자 재산을 보호받을 건 빤한 사실이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건데 뭘 그리 두려워하느냐?” 라고 하면서 투자 각서를 체결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평양으로 인솔해온 해외대표가 “동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책이 바뀐다니? 그것도 외국 사람들 앞에서 온 집안이 살아남지 못할 대역죄와도 같은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가?”라고 저지해도, 본사 대표와 단위 일군들이 빙그레 웃으며 “중국 사람들이 하도 불안해하니까 이해관계를 따져주느라 그런 것인데 괜히 긴장해한다”면서 도리어 핀잔을 주었다. 이 대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에는 입만 벙긋해도 목숨이 날아갈 말들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했다.

국경세관, 중국인 몸수색 강화

국경 세관마다 중국 사람들의 몸수색이 최근 강화되고 있다. 라디오를 비롯해 MP3, USB, 소형카메라 등 여러 물품이 국내에 비밀리에 유통되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주로 가져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붙잡힌 중국 사람이 많은데, 특히 화교들이 많다. 몸수색이 강화되면서 뇌물비도 자연 올라가기 마련인데, 예전에는 세관원들이 아는 사람들에게서만 물건이나 돈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돈을 달라고 한다. 중국 돈으로 1백 위안은 너무 작다며 2백 위안에서 3백 위안까지 요구한다. “평소 모른 척하다가 일이 생기고 나서 손 내밀면 누가 봐주겠느냐. 자주 얼굴 마주치고 인사도 먼저 알아서 챙겨야 그게 오히려 돈이 적게 드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할 정도다. 하는 수없이 돈을 내밀면, 까다롭기만 하던 세관 조사는 당연 무사통과다. 세관원들 배불려주려고 몸수색을 강화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조선 사람에 대한 몸수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몸 구석구석까지 검사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중국 사람들이 돌아가 전하니, 중국에서도 보복성으로 조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 사회

회령 남문동, 창고 살림살이 증가

함경북도 회령시 남문동에는 창고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 인민위원회 도시 경영 관리부의 조사 결과, 남문동 아파트들에 딸린 창고에서 기거하는 세대가 총 150여 세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집이 없는 세대와 노인 세대, 새로 살림을 나온 세대들이다. 노인 세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이 살던 집을 내주고 창고에 내려온 경우들이 많고, 새 살림 세대는 결혼을 했어도 부모와 동거해야 하거나 집을 배정받지 못해 나온 세대들이다. 식량이 없고 장사도 안 되는 세월이라, 집 식구들이 같이 모여 살면 먹을 것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창고라도 좋다며 살림을 분가하는 것이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아들, 며느리나 딸, 사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창고 살림을 살러 나온다. 이처럼 창고에서 사는 세대들이 증가하는 것은 어느 동이나 비슷하지만, 특히 남문동 지역에 집중돼있다. 시당에서 도시 미화 사업을 해친다며 창고 세대들을 몇 년째 강제로 철거시켜 내몰고 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늘고 있다.

■ 식량소식

함흥시 보위부원들도 식량난 실감

함경남도 함흥시 법일군들의 생활수준도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흥의 한 보위부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흰쌀밥에 고기도 먹고,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 등 간식을 떨치지 않고 먹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입쌀밥 구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보안원들도 마찬가지다. 한 보안원은 “법관들의 집을 돌아봐도 백미 먹는 세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5대5밥(흰쌀과 옥수수를 절반씩 섞어 먹는 밥)을 먹고 있더라. 동료들 얘기를 들어봐도 돼지고기를 한 달에 1-2번이라도 먹으면 그래도 괜찮은 형편이다. 애들 간식도 며칠에 한 번 사줄까 말까이다. 우리가 이 정도인데 하층 백성들이야 오죽 하겠는가”라고 했다. 시당이나 구역당 등 당 일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흰쌀밥을 정상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무역일군들이나 화폐개혁에 살아남은 일부 돈주들 뿐이다. 흥남시 시당 일군들도 백성들의 식량난을 요즘처럼 실감하게 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식량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장사꾼들이 잘 봐달라고 돈이나 물건을 들고 와도 코웃음 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에는 자진해서 장사꾼들을 찾아가 부탁하지도 않는 일을 처리해주고 있다. 어떻게든 잘 보여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궁책이다. 함흥과 흥남 일군들은 아무리 량강도가 못 산다고 해도 자기네보다는 낫다고 했다. 함흥시 시당의 한 간부는 “량강도 지역은 온통 보리밭과 감자밭이라서 아무리 농사가 잘 안됐다고 해도 감자 이삭이라도 주워 먹을 수 있지만, 함흥시와 흥남시는 주민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 풀뿌리도 주워 먹을 데가 없다. 일반 백성들만이 아니라 간부들까지도 요즘 식량 사정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 더 힘든 악 조건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함흥시 한 보안원은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1990년대 말처럼 길거리에 시체들이 나 뒹굴까봐 무섭다”며 고난의 행군 이후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갑산군, 언 감자도 떨어져 풀뿌리 캐러 다녀

량강도 갑산군 갑산읍 주민들은 3월 들어 땅이 좀 풀리자, 언 감자마저 떨어져 풀뿌리를 캐러 다니고 있다. 시장에 쌀과 옥수수가 있어도 살 돈이 없다. 장사할 처지도 못되는 주민들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식량대용으로 풀뿌리를 캐고 있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들과 야산까지 몇 십리 길을 오르내린다. 온 하루 밭을 헤매다보면 간혹 언 감자를 몇십 알 줍게 될 때도 있는데,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썩어서 삶아 먹기가 곤란하다. 얼기 전에 썩어버리는 감자들이 많아서다. 감자 되걸이 장사를 하는 김일순(가명)씨는 지난 3월 중순, 한 농장에서 감자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가던 중 배가 고파 도중식사를 꺼내들었다. 아침도 거르고 새벽 일찍 떠난 길이라 한창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감자 추수를 끝내 휑한 밭에 누군가 열심히 밭을 파헤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올만한 것도 없는데 열심인 것을 보니 감자 이삭주이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 옆에는 딸아이인 듯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아비를 따라 찾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꽃제비 가족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치려고 하다가 땟물이 좔좔 흐르는 여자아이가 손에 든 삶은 감자를 빤히 쳐다보기에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뱃속이 꼬르륵 거려 잠깐 망설였지만, 남자를 불러 담배를 한 대 권하며 쉬었다 하라고 했다. 세 덩이의 감자를 아이와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는 제 아비 눈치를 보다가 냉큼 집어 들고는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이 처연했다. 그는 “갑산읍에서 일용품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인데, 2월부터 언 감자에 풀뿌리를 섞어 먹고 살았다. 지금까지 감자밭을 몇 십번씩 훑어서 더 나올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게 생겨서 다시 감자밭에 나왔다”고 했다. 어린 자식 셋 중에 둘을 먼저 보내고 여자아이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큰아들은 11살 되던 2008년에 이질에 걸려 3일 동안 피똥을 계속 오줌처럼 싸다 죽었다. 작은 아이는 작년에 허약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지금은 안해(아내)와 이 아이 뿐인데, 앞으로 먹여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하다가 제 설움에 못 이겨 울음을 쏟아냈다. 이제 서너 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아비가 울음을 터뜨리자 영문도 모르고 같이 엉엉 울었다. 갑자기 두 부녀가 우는 통에 잠시 당황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저 힘내시라고 하고는 일어섰다.

량강도 농장원들, 언 감자로 연명

량강도 농장원들은 언 감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 감자를 제때 거둬들이지 못해 상당수가 얼어버리고 말았다. 도당 조사결과, 2월 이후 옥수수 알조차 구경하지 못했다는 집이 많아 식량난이 그 어느 해보다 심각하다는 평가다. 지난 1월, 당 지시에 따라 전국에서 군량미 원호사업이 재개됐으나, 량강도는 제외시킬 정도로 이곳 농민들의 생활 형편이 매우 어렵다. 량강도 관내 군마다 ‘농장 지원 대책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좀 잘 산다는 사람들이 5대 5밥을 먹는데, 주로 보안원, 보위부원 등 법기관 일군들과 농장 관리일군이나 작업반장들이다. 나머지 일반 주민들이 언 감자로 연명하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잘 먹는 축이나, 다른 지역의 법일군들이 입쌀밥 먹는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량강도에서 언 감자는 감자를 먹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감자를 주식으로 먹는 방법에는 그냥 삶아먹거나, 녹말가루로 만들어서 감자녹말국수로 먹는 경우가 있지만, 감자를 얼려두었다가 삶아먹는 방법도 있다. 보관이 어려워서인데, 모양은 새까매도 삶아먹으면 맛은 괜찮다. 썩은 감자도 물에 씻으면 녹말가루가 나오기 때문에 그냥 버리지 않고 알뜰히 챙긴다. 량강도 사람들은 “얼어도 먹고 썩어도 먹어 감자를 버리는 법이 없다”고 하지만, 썩은 감자를 녹말로 만드는데 물이 많이 필요하고 공정이 대단히 복잡해서, 평양이나 평성 같은 대도시에서는 그렇게 먹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