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2005년 8월호 편집자의 글

편집자의 글

한창 긴장감을 높여가며 지지부진했던 6자회담이 7월 드디어 속개되었다. 광복절 60주년을 맞아 8 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대표단은 현충원 참배, 국회 방문 등 이례적인 일정으로 모처럼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물론 여전히 모든 핵과 핵 프로그램을 포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미국과 주권국가로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주장하는 북한, 기타 국가들의 이견이 쟁점으로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폐기라는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중대한 일보 전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휴회되었던 제4차 6자 회담 속개를 앞두고 서로간의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이런 화해분위기는 남북한 관계, 북미관계 뿐 아니라 북한 내부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감자, 옥수수 등 대용 식량의 출하와 함께 6자 회담 개최 소식과 한국, 미국 등의 쌀 지원 계획이 발표되면서 1,000원대까지 오르던 북한의 쌀값이 7월에 들어 떨어지기 시작해 8월에 800-900원대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350원까지 올랐던 위안화도 300원대로 떨어졌다. 쌀값과 위안화 하락은 북한 시장가격이 이제 외부의 환경에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호에서는 재중 북한 난민의 수가 급감했다는 소식을 실었다. 조․중 국경에서의 단속과 강제송환, 체류 난민들의 상태가 달라지면서 난민수의 큰 변화가 온 것이다.

북한 내부 소식으로, 여전히 탁아유치원 어린이의 하루 식량이 100g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회령 지역의 농장은 땅의 산성화로 인해 전체 농지 면적의 40% 정도만 경작 가능하며, 북한 내에서 질이 좋아 인기가 많은 신의주 신발 공장조차 원재료가 부족해 30%정도만 가동되고 있을 뿐이라는 소식을 실었다.

한편 주민들의 장사 수완과 시장 경제적 감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에 주목하고 싶다. ‘돈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에서 이제는 장사를 하기 위한 ‘신용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내부의 변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을 탔다. 남북관계와 주변국과의 관계 또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 큰 변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하루하루의 변덕스러운 날씨보다는 한 계절의 흐름을 보는 밝은 눈이 필요한 때이다.

■ 여성/어린이/교육

8월 평안도 해안가의 떠돌이 생활(2005년)

떠돌이 생활

평안북도 철산군, 선천군, 곽산군 등의 해안가 주변 지역에서는 떠돌이 생활자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극빈층이다. 마땅한 거주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닷가 주변에 천막을 치고 살거나 섬에 들어가 비닐 박막을 치고 살아간다. 해안가에서 조개류 등을 잡아 담당 어장에 가져가서 돈이나 밀가루로 바꾸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조개 잡이는 여성들이 많이 한다.

금이 생산되는 산간 지역에도 이런 떠돌이 생활자들이 많다. 금이 나오는 곳이면 어느 산이든지 들어가 천막을 치고 산다. 작년에는 금 1g당 12,000원 했는데 올해는 18,000원으로 올랐다. 금을 잘 캐지 못하는 사람은 1g 하기도 힘들어하지만, 좀 한다 하는 사람은 보통 5-6g씩 하기도 한다. 금을 잘 하는 사람들은 쌀밥 먹으면서 살 만 하다. 이들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 가족들도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많다. 금을 캐는 것은 주로 남자들이 하고, 여자들은 남자들 밥 해주다가 마음이 맞는 사람과 살기도 한다.

■ 시선집중

2005년 재중 북한 난민 수 감소 현상

2005년 재중 북한 난민 수 감소

1999년 30만으로 추정되던 재중 북한 난민의 수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난민이 크게 줄어든 원인으로 우선 북한과 중국의 국경 경비가 심해지고, 중국 내 단속이 더 철저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권을 떼서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열렸다는 점과, 북한 내부의 상황이 5년 전보다 나아진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또 요즘에는 장기 체류 목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보다 보따리 장사나 구호 요청을 하는 단기 체류자들이 많아진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연변조선족 자치주 같은 국경변에는 2~3일 거주자가 주류이고 장기거주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1999년에 난민들이 국경변에 가장 밀집해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장기 거주자는 중국 정부의 단속을 피해 노출되기 쉬운 농촌 마을을 떠나 중국 내지로 이동하거나 대도시 근교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족 거주 지역이 한족 거주 지역보다 난민 수 감소 폭이 훨씬 더 큰 이유와도 연결된다. 한족 거주 지역은 중국 당국의 단속이 적고, 난민들이 중국에 장기 체류하면서 중국 말을 할 수 있으며,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체류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 5년 전에 중국 말이 통하지 않아 조선족 사회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것과 크게 달라진 점이다. 또 한족 거주 지역에서는 대부분 한족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많았는데, 남편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점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들은 여전히 단속에 대한 공포, 노동 착취, 비인간적 처우 등의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주중 외국 공관 및 외국인 학교 진입을 통한 이른바 ‘기획 망명’은 이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중국 내 장기 체류자들의 생활을 더 불안하고 더 열악하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난민들은 여전히 끼니만 겨우 때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여전히 식량 및 의약품, 옷, 신발, 생필품 등이 필요하다.

■ 경제활동

2005년 8월, 함경북도 국경지역 물가동향

8월 함경북도 국경지역 물가동향

쌀 가격이 지난 달 900-1,000원대에서 800-900원대로 떨어졌다.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식량 작물이 수확되고 있고, 한국 등 외부에서 식량이 지원된다는 소식을 듣고 매점매석한 사람들이 식량을 장마당에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폐 환율도 많이 떨어졌다.

6월 1위안당 350~360원 (1달러당 : 2,870~2,950원)

7월 1위안당 310원 (1달러당 : 2,540원)

8월 1위안당 300원 (1달러당 : 2,460원)

2005년 8월, 함경북도 회령시 탁아유치원 아동 하루 끼니 100g

탁아유치원 아동 하루 끼니 100g

회령시 협동농장 산하 탁아유치원 어린이들의 영양사정이 매우 열악하다. 하루 100g의 양으로 네 끼니를 주는데 한 끼니가 겨우 25g에 불과하다. 이는 탁아유치원의 배급량을 300g으로 정해놓은 것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간식도 없고 다른 반찬도 없어 부모들은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 형편이다.

간식으로 아주 가끔 우유를 주기도 하는데 우유를 마신 어린이들 중에 구토와 설사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냉장시설이 안 되어 있다보니 신선한 우유를 공급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들여온 우유들이 유통기한을 넘긴 경우가 많아 탈이 나는 것이다. 이에 가급적 탁아소측에서는 우유를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식량과 간식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2005년 8월, 함경남도 함흥의 식량 사정

영양가보다 불려먹는 안남미 선호

함흥에는 중국 쌀이 국경지역에 비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흥남항으로 들어오는 안남미나 한국쌀, 아니면 황해도, 평안도 지역에서 들어오는 북한 입쌀을 사먹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서도 안남미는 물에 불려 먹거나 옥수수쌀에 섞어 먹을 수 있어 선호하는 편이다. 물에 불리면 양이 많아지는 듯해서 좋아하고, 옥수수쌀과 섞으면 그나마 풀기가 있어 먹기 좋기 때문이다. 중국 쌀이 비교적 많이 들어오는 함경북도에서 안남미를 영양가가 없다고 선호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쌀은 풀기도 좋고, 저장도 오래할 수 있으며 벌레도 잘 먹지 않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쌀보다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집들이 많다.

형편 좋은 몇몇 집들을 제외하고 대체로 두 끼는 5대 5밥(옥수수와 쌀 절반씩 섞은 밥)을 겨우 먹거나, 그나마 한 끼는 옥수수 국수나 죽으로 떼운다. 하루 한 끼만 먹는 집은 아침과 저녁을 굶고 점심 식사만 한다.

2005년 8월, 신의주, 길주, 무산의 공장 가동 상황

신의주 신발공장 가동률 30%

평안북도 신의주의 신발공장이 원자재 확보의 어려움으로 약 3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위탁생산 계약을 맺어 생산량의 75%를 수출하고 있다. 주 원료인 생고무가 부족해서 수출상품에 쓰고 남은 고무로 파고무를 섞어 국내용으로 출시한다. 국내용 신발은 생고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무더운 여름날에는 신발 바닥이 녹아버리기 쉽다. 노동자들에게 배급은 매달 2회 지급된다.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장사 행방을 다니거나 산에 나무땔감을 하러 다니고, 빗자루, 썰매, 빨래 방망이 등 가내 수공업으로 생필품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탄광, 금광 등의 시설 현대화 노력

함경북도 길주군의 탄광, 금광 등 기간산업에 설비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목재 설비는 철재 설비로 바꾸고, 폐기된 금광들을 재복구하고 있다. 석탄공업위원회 책임자들이 그루빠를 구성해 내려와 있다. 각 기업소마다 책임자 한 사람이 내려와 돌격대식으로 노동자들을 꾸리고 있다. 길주군의 일신탄광에도 두 명의 책임자들이 내려와 탄광을 복구하고 있다.

미개발지역 발굴도 한창이다. 새로운 금광과 탄광, 명승지를 찾는 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조사와 현대화 개발 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는 우선적으로 식량이 지급되고 있다. 새로운 금광 조사는 금 산출량이 많은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평북 운산군 삼산리, 북진리를 집중적으로 조사 개발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펄프공장인 길주 펄프공장 역시 현대식 설비 꾸리기가 한창이다. 작년부터 1년 넘게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설비교체를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기간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탄광, 금광 개발의 현대화를 주요 사업과제로 삼고 있다.

무산 철광석 중국으로 수출

중국 연변 화룡시의 남평 세관을 통해 하루 40대 이상의 10톤 트럭이 무산 철광석 물량을 나르고 있다. 무산광산 노동자들은 약 2만명 가까이 되는데, 배급을 받고 있다. 노임은 1만원에서 3만원 이상을 받는다.

2005년 8월, 북한의 얼음과자 까까오

‘까까오’(얼음과자) 만들기

남한의 아이스크림과는 다르지만 북한에서도 무더운 여름에 얼음과자가 인기다. 얼음과자를 만드려면 밀가루 반죽에 우유, 설탕, 색소를 넣고 맛에 따라 바나나향, 초콜릿향, 배향, 사과향 등을 첨가한다. 이것을 얼리려면 극동기(주. 얼음 얼리는 기계, 제빙기)가 있어야 하는데, 전기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전기 사정이 좋은 큰 기업소까지 극동기를 가져가야 한다. 보통 밀가루 5kg 당 까까오(얼음과자 이름)가 세 상자 정도 나온다. 한 상자당 300개씩 들어간다. 얼음과자 한 개당 100-200원이다. 반 상자만 팔아도 본전을 건질 수 있다.

음료수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한다. 들쭉단물, 귤단물 등 비교적 다양한 음료수를 만든다. 주 원료로 보리를 쓰는데 보리 1kg당 보통 100병 가량의 양이 나온다. 음료수 용기로 청주병을 쓰는 경우 한 병당 15원씩 하는 것을 20원 주고라도 100-200병씩 사들여 음료수 한 병당 30원에 판매한다. ‘물장사는 망하는 법이 없다’고 음료수 장사는 남는 장사에 속한다.

얼음과자나 음료수와 같은 식품을 팔려면 위생 방역소에 가서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 결핵 또는 간염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확인증을 발급한다. 이런 확인증을 받으면 떳떳하게 장사를 할 수 있다.

2005년 8월, 북한 주민의 생필품 소식

가루비누는 필수품목

빨래는 누구나 다 하기 때문에 세제는 장사의 필수품목 중 하나이다. 가루비누는 주로 화교, 재일교포 가정 등 살림살이가 비교적 괜찮은 집에서 산다. 이런 가정은 세탁기가 있는 경우가 많아 장사꾼들은 이런 집에 직접 방문 판매를 한다. 외화벌이 기업소에서도 중국산 가루비누를 취급하기 때문에 개인 장사꾼들이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개인 장사꾼들은 외화벌이 회사들이 가루비누 포장지를 10원에 사들일 때, 두 배인 20원에 사들인다. 포장지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장사꾼들은 당연히 더 비싼 가격에 사주는 개인들과 거래를 하기 마련이다.

분량은 1봉지에 350-400g이다. 가루비누는 170원, 포장지 20원 해서 원가가 190원 정도인데 이를 400-500원에 넘긴다. 도매로 넘길 때는 200개 이상씩을 350원에 넘긴다.

물고기 잡는 그물도 손수 만들어 판매

어업을 하는 데 있어 배, 기름, 여타 기자재와 함께 그물도 중요한 필수품이다. 그러나 쉽게 구하기 어려워 그물 역시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이에 일부 장사꾼들 중에는 직접 그물을 짜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이면수, 명태 그물은 1,000코×80코(가로×세로) 크기로 뜬다. 가재미, 게 등 잡다한 고기는 잡어그물이라고 하는데 600코×20코(가로×세로) 크기이다. 이면수와 명태 그물은 하나 뜨는데 보통 잠 안 자고 꼬박 4-5일 걸리고, 잡어그물은 이틀 정도 소요된다. 재료는 비닐 실을 쓴다. 비닐 실 1kg으로 그물 5되 가량을 뜰 수 있다. 실 1kg을 사려면 1,200원이 드는데 그물이 완성되면 1되당 800원을 받고 판다. 꼭 현금으로 받는 것은 아니고 그물 1되당 생선 1kg씩 받는다. 그러면 이 생선을 다시 시장에 내다판다.

헌 옷도 새 옷처럼 손질 판매

보통 옷 도매 장사꾼들은 청진, 남포, 원산 항 등지에 들어온 중고 의류를 마대자루로 사서 소매시장에 넘긴다. 마대 자루에 어떤 종류의 옷이 들어있는지 세세하게 살펴볼 겨를 없이 사 넘기면 소매 장사꾼들도 들어온 상품 그대로 펼쳐놓고 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와 달리 중고 옷을 직접 손질하고 재가공하여 파는 전문 장사꾼들도 있다. 이들은 일단 옷을 찬물에 빤다. 찬물에 담갔다가 빼냈을 때 탄력이 있으면 이 옷을 우선적으로 수선한다. 실밥이 터진 부분, 단추가 떨어진 부분 등을 꿰맨다. 단이 떨어진 부분은 다시 깁고, 목 깃이나 소매 등을 쓸어내려 구김이 없도록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손을 댄다. 중고 상품이지만 거의 새 상품처럼 재가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가공된 옷을 마대에 넣어 평양, 평성, 함흥 등 대도시 중심으로 구매력이 있는 계층에 넘긴다. 어떤 옷은 한 벌에 20만원 이상 하기도 한다. 이 장사꾼들은 옷을 마대 단위로 팔지 않고, 마대로 가져가되 옷 한 벌마다 다른 가격으로 돈을 받는다.

좋은 중고 상품을 구하기 위해 어떤 상인들은 화교나 재일교포 집에 직접 찾아가서 직접 고르기도 한다. 보면서 구매자의 취향, 치수, 색감 등을 가늠하면서 판매가능성을 면밀히 고려한 뒤 옷을 가져온다.

2005년 8월, 함경남도 함흥의 식량과 장마당 상황

호남벌 쌀(한국산 쌀) 사재기 열풍

함흥 시장에서 한국산 쌀은 호남벌 쌀로 통한다. 쌀 판매 상인들은 북한 입쌀, 함주벌 쌀 등과 함께 호남벌쌀이라는 표식을 붙여두고 판매를 한다. 함흥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왔던 한국산쌀이 호남쌀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중국쌀은 잔돌이 많고 북한쌀은 도정을 두 세 번밖에 하지 않아 거친데 비해 한국쌀은 깨끗하고 낱알이 고른 편이어서 고급 쌀에 속한다.

한국쌀은 북한쌀보다 100-150원 정도 더 비싸다. 그런데 올해 4월, 북한 쌀이 890원할 당시 한국산 쌀 가격이 1,400원까지 올라갔다. 당시 한국으로부터 쌀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통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호남벌 쌀은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북핵 문제로 인한 국제 정세가 좋지 않아 더 이상 한국에서 쌀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함흥에서 제일 번창하는 성천시장

함흥 시장은 지구별로 한 개씩 있다. 이 중에서도 성천강 시장이 제일 번창하고 있다. 동흥산 지구에 간부들 사택과 잘 사는 사람들의 사택이 많이 있어 동흥산 시장에서는 비싼 물품들이 곧잘 거래되지만 시장이 성천교와 만세교를 지나 좀 멀리 떨어져 있어 동흥산 지구 사람들은 보다 가까운 성천강 시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성천시장은 원래 공터였으나 사람들이 넘쳐 나다보니 전년도에 공터 옆의 건물까지 허물어 시장터를 확대하였다. 장세는 나물 종류 등의 식료품이 150원, 의류, 중기 등 공업품이 700-800원 선으로 다양하다. 해산물은 금야군 원평리에서 주로 가져온다. 군부대 수산기지들이 원평리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어 외화벌이 단위들이 이 곳을 많이 다닌다.

성천강, 사포, 회상, 동흥산 지구 네 곳의 시장 중에서 도매 역할을 하는 곳은 사포 지구 시장이다. 사포 상인들은 각 기간 기업소별로 행방 다니는 도매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후결재로 넘겨받아 판매한다. 성천강 시장 상인들도 사포 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함흥의 가족 분조 관리제

함흥에서는 가족 분조 관리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함주, 정평 지역의 땅을 분배받은 사람들이 많아 농사보다 장사에 더 신경 쓰는 형편이라고 한다. 함흥 시내에서 경작지가 있는 농촌 마을까지 가려면 걸어서 2시간, 자전거로 40분 정도 걸려서 농사 짓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그럼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비료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2004년까지만 해도 질안 비료가 1kg당 50-55원 선에서 거래되던 것이 올해 4월 180원까지 올랐다. 한국에서 들여온 요소비료는 1kg에 1,800원으로 열 배 이상 비싸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더 선호한다. 질안 비료 열 번 쓰는 것보다 한국산 요소 비료 한 번 쓰는 게 낫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2005년 8월, 함경북도의 농사 상황

함경북도 농사 작황 상황

북한 동북부 지역(함경북도)의 올해 벼농사는 작황이 나쁘다. 원인은 생육기간인 6, 7월의 기온이 20℃ 이하라서 발육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6월 초순에 심은 벼는 6월 25일까지 이삭이 30개 정도 벌어져야 하는데 20~24개 정도 밖에 벌어지지 않았다.(※ 벼모는 2포기를 함께 심는데 심은 후 20일 이내에 한 포기당 15개 씩 30개 정도의 이삭이 벌어져야 정상이다.)

또 8월 5일까지 벼가 대부분 피어야 하는데 일주일(7일) 정도 늦어졌다. 벼 이삭이 여물려면 낱알을 품고 피어난 후 서리가 올 때까지 45일 정도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45일이 보장되지 못하고 서리가 오게 되면 낱알이 불충실하거나 아예 쭉정이가 된다. 북한 북부 및 중국 연변지역인 두만강 유역은 보통 9월 20일 경에 첫 서리가 오므로 8월 5일 경에 벼가 다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런데 냉해로 발아가 일주일이나 늦어져 첫서리가 예년처럼 9월 20일 경에 내리면 생산량이 많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옥수수도 싹이 터 나오는 5월 초순에 눈이 내려 파종을 다시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싹이 냉해를 입어 발육에 장애가 생겼다.

경작 가능 면적이 전체 면적의 40%

회령시에서 규모가 큰 협동농장의 농지 재배면적이 전체 농지의 40%선에 불과하다. 풍산, 금생, 벽성, 유선, 원산 등의 협동농장이 큰 편에 속하는데, 재배 가능한 면적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 땅이 강산성화되어 비료를 주어도 수확이 힘들다. 농장원들은 충분한 비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땅갈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로 땅갈이를 하고 있지만 소가 부족하다. 소가 있다 하더라도 충분하게 깊이 땅갈이를 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30-40cm 이상 깊이로 땅갈이를 해야 하나, 소를 이용하면 20-25cm로 그에 미치지 못한다.

회령의 명물 백살구

길주 배, 해주 배, 덕성 사과, 황주 사과, 룡강 흰복숭아, 옹진 감과 함께 회령은 백살구로 매우 유명하다. 회령 백살구는 당도가 높고 크기가 복숭아보다는 작지만 남한의 살구보다 크다. 살구 씨는 약재용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백살구의 씨는 고소한 맛이 난다.

회령 백살구 중에서도 최상품의 백살구는 일찌감치 8호제품(김정일 위원장 및 최고간부들의 일용 식료물자)으로 지정되어 특별 관리되어 왔다. 높은 당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 나무들에 많은 양의 설탕과 비료를 준다. 백살구 나무 한 그루당 설탕은 120kg, 비료는 요소 비료로 약 100kg 가량이 들어간다. 혹여 외부의 비료 지원이 없다 하더라도 중앙당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배분할 만큼 8호 제품으로 지정된 백살구 나무는 중요하게 경작되고 있다.

2005년 8월, 장사꾼의 상거래 인식

‘신용이 곧 목숨’

상인들 사이에 신용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싹트고 있다. 외상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때 물건을 믿고 맡길만한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거래를 하는 사람들끼리의 기초적인 신상명세는 물론 수차례 거래를 해 본 연후라야 물건을 안심하고 맡기거나 돈을 빌려준다. 즉 신용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함경북도 청진에서 함흥, 원산, 평양 등지로 원거래를 하는 한 도매 장사꾼은 ‘신용이 곧 목숨’이라는 믿음으로 일하고 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깨달음이다. 돈이 있어야 장사를 할 수 있기에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액수의 돈이라도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빌린 돈의 열배라도 보상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거래를 한다.

개인에게 돈을 빌릴 경우 이자는 매월 20%인데, 돈을 갚을 때 원금과 이자만 주는 것은 아니다. 신발이나 옷가지 선물이라도 주어 꼭 성의 표시를 하곤 한다. 만약 사정상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이자 20% 중 다만 10%라도, 또는 다른 부업 일을 해서라도 그 사람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기 대접은 자기가 받는다’고 이렇게 신뢰가 쌓이면 연줄이 생겨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돈벌이를 소개받을 수도 있다.

아무리 신용 거래를 한다고 해도 사기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청진시의 한 부부는 무려 40여 명으로부터 돈을 꾸어 달아나기도 했다. 이 부부는 두어 차례는 착실하게 돈을 갚아 신용을 얻은 뒤 막판에 70만원 이상의 큰 돈을 빌려 달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사기 피해가 비일비재해서 점점 큰 돈을 꾸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철저한 신용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