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구루마꾼 12년 해도 밥벌이 어려워

평안남도 평성시 은덕동에 사는 김석호씨는 올해로 57세로 12년째 손짐 구루마 끌기를 하고 있다. 주로 시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달려간다. 40대 중반에 시작해 벌써 환갑을 앞두고 있는데, 궂은 날이건, 좋은 날이건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 왔다. 최고 많을 때는 하루 12,000원까지 벌었고, 아무리 못 벌어도 평균 4,000-5,000원은 벌었다. 더 나이 들면 구루마 끄는 일을 하기 어려우니, 노후를 생각해 많지는 않지만 제법 돈도 모아두었다. 그러나 재작년 화폐 개혁을 기점으로 오히려 생활이 급락했다. 김씨는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고 한다. 화폐개혁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왜 그 때 중국 돈으로 바꿔놓지 못했을까 아직도 후회가 막심하다”고 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구루마 끄는 벌이도 타격을 받았다.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려도 1-2명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장사꾼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 손님도 뚝 끊겼다. 모처럼 손님이 생겨도 나를 보고는 그냥 돌아간다. 늙어서 힘꼴 못 쓸 것 같다고 안 찾는 것이다. 다른 구루마꾼들보다 값을 눅게(싸게) 받는다고 해야 겨우 일거리를 잡는다. 하루에 1,000원도 못 벌 때가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밥은 뭘 먹고 사냐”고 물었더니, “옥수수밥을 먹으면 잘 먹는다”고 했다. 국수나 죽으로 때울 때가 많다.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어야 힘이 날 텐데, 구루마 끄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구루마 한 번 끄는데 짐들이 정말 무겁다. 생각해봐라. 자기 피 같은 돈을 낼 때는 자기들이 도저히 들기 힘든 무거운 것을 주지, 가벼운 걸 주겠나. 한 번 끄는데 무게가 300-400kg는 되는 것 같다. 옥수수밥이라도 안 먹으면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끈다. 김치도 없어서 안해(아내)가 들에 나가 쑥이든 나물이든 캐다가 소금 뿌려 먹는다. 된장이나 기름, 소금 이런 것도 사먹으면 좋겠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구경하는 정도”라고 생계벌이의 고충을 토로했다.

최소 1,000평 농사지어야 먹고 살만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올해 너나없이 소토지 농사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소토지 농사를 지어 식량 걱정이 없을 정도로 소출을 내기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일반 주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얻는 것부터 쉽지 않다. 농사지을 땅을 얻으려면 담배와 술, 돈 등을 뇌물로 바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 삽 하나, 곡괭이 하나 들고 맨몸으로 돌산을 캐서 뙈기밭을 만들거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 밭을 어렵게 일구었다고 해도 종자와 비료 구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소토지 농사로 소출을 내는 집들은 보통 1,000평 이상 규모로 농사를 짓는 집들이다.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동에 사는 올해 65세 김천일(가명)씨는 산림순시원을 하면서 소토지 농사를 전업으로 짓고 있는데, 곡물은 좀 부족해도 김치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작년에 약 1,000평 땅에 옥수수 400kg, 두부콩 200kg, 고추와 배추, 무 등 채소 800kg 이상의 소출을 거뒀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얼마간 보내주고, 알곡을 팔아 살림살이를 챙기면 두 부부가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 그래도 김씨는 굶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말한다. “아무리 일년 내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풍족한 생활은 못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료도 사야 되고, 두 늙은이 힘으로 안 되면 머슴살이도 한두 명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남는 것도 없다. 김치도 못 먹고 사는 집들이 많은데 더 욕심 부리면 안 될 것 같다”며 햇감자가 나올 때까지 잘 아껴먹으면 올 춘궁기도 무사히 지날 것 같다고 했다. 작년보다 비료를 많이 구하지 못한 게 걱정이다. 김씨는 ‘산림순시원’이라는 직위로 그나마 소토지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농사짓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장사로든 뭐로든 먹고 살만해서 소토지 농사를 전업으로 하지 않던 집들도 올해는 정신 바짝 차려야 살 수 있다며 다른 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토지 농사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리선옥(가명)씨에 따르면, “국내 식량 사정이 20년 이래 줄곧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장사 벌이도 화폐 개혁 이후 줄곧 안 돼 소토지 농사가 유일한 식량 해결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리씨는 “(소토지 농사는) 뇌물을 주고 좋은 밭을 얻어서 일군을 두고 관리만 잘 하면 적어도 반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소토지 농사에 희망을 걸고 밭을 얻으러 다니는 장사꾼과 돈 많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시당 일군들과 시 인민위원회 일군세대들에서도 올해 들어와 그 수가 적극 늘어나고 토지 면적도 늘고 있다. 간부들은 자기 직권을 이용해 좋은 토양으로 된 1,000여 평짜리 밭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옥수수나 곡물 종자와 비료만 대고는 인력은 기업소 노동자들을 동원한다. 농장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아도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시당의 한 간부는 “농사를 도와주는 로동자들에게는 하루 2끼만 잘 먹여 주면 된다. 그러면 종자 심기부터, 김매기, 비료주기, 가을걷이도 모두 로동자들을 쓸 수 있다. 부업지에서 나오는 식량은 아무 공력도 들이지 않고 얻는 셈이다. 시당과 시 인민위원회 일군들은 내가 알기만도 작년에 옥수수만 보통 600-800kg씩은 얻었다. 작년은 특히 수해를 겪고 수확량이 많이 줄어서 올해는 소토지 농사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회령 도시 건설대, 김치 떨어져

함경북도 회령시 도시 건설대 로동자 세대들은 현재 식량도 없고 김치도 떨어져 옥수수밥에 된장국을 먹고 있다. 정철룡(가명)씨는 “작년 김장으로 겨우 배추김치 한 독을 채웠다. 아끼고 아껴서 2월까지 버티고 지금은 먹을 김치가 없다. 우리 집은 그래도 안해(아내)가 장사를 하니까 배추라도 가끔 사다가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지만, 장사가 잘 안 된 날은 김치 구경을 못 한다”고 했다. 자기네 집은 그럭저럭 살만한 축에 속한다고 했다. 형편이 더 어려운 집들에서는 옥수수국수나 옥수수묵지가루죽을 먹는다. 풀죽을 해먹는 집들도 있다.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집들이 아니면 김치 구경하기가 어렵다.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도로담당구역 공사와 철도 로반 정리 등에 동원되기 일쑤다. 동원에 나갈 때는 보통 2-3일치 식량을 갖고 나가는데, 가난한 노동자들은 빈손으로 가기 일쑤다. 어떻게든 한명이라도 더 동원하려고 일군들이 조금씩 식량을 갹출한다. 노동자들에게 줄 식량이 없어서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 비서나 지배인이 시당에 불려가 비판서를 쓰거나 심한 경우 해임까지 당할 수 있어, “일군 사업도 하기 힘든 지경”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간부들은 나름대로 애쓴다고 하지만, 결근자는 늘어나는 실정이다. “무단결근자는 시단련대에 쳐 넣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이제는 별로 위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출근하러 나온 노동자들조차 “맥이 없어 일을 못하겠다.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시당 일군은 “우리 시 도시건설대 로동자들은 옥수수밥에 된장국이라도 먹지, 절대 굶지는 않는다”면서 자랑했다. 김정숙 어머니 혁명사적지를 꾸미는 곳이기 때문에 도당과 시당 등에서 각별히 신경써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겠다는 목표로 아무리 힘들어도 혁명사적지 건설에 이바지 하겠다”는 다짐이 어느 도시보다도 굳세다. 회령시 만큼 잘 먹는 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굶주리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회령 시당 일군들이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령광스러운 혁명사적지 건설 로동에 임하려고 해도 먹어야 기운이 나지. 국가가 곤란할 때 혁명사적지 건설에 리바지했다고 하면 간부들이야 평가받겠지만, 우리는 뭔가. 당장 김치 쪼가리 하나 못 먹는 처지인데. 간부 집에서 시어빠지고 있는 김치라도 내주던가. 자기들은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우리는 소처럼 부려먹기만 하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며 불평하고 있다.

간부 집에 김치가 풍족한 이유

간부들 집에는 김치가 남아도는 이유가 뭘까? 간부가족에게 배당되는 가족분조 덕분이다. 협동농장은 작게는 4-5개에서 많게는 20개가 넘는 작업반으로 되어있고, 1개의 작업반은 적어도 4-5개 이상의 분조로 이뤄져있다. 당간부 가족분조들은 말이 가족분조이지 실은 작업반 규모다. 주로 간부의 아내들이 농사를 짓는데 농촌 동원 기간에 녀맹원이나 학생들, 기업소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밭 면적이 아무리 커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많은 수확을 거둔다. 농장마다 비료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칠 때도, 가족분조에 우선 분배해 준다. 아무리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해도, 간부들의 가족분조 농장 소출은 늘 평작을 넘는다.

함경북도 회령시 시당 간부들의 경우, 오산덕 농장에서 가족분조 농사를 짓는다. 작년에는 세대별로 배추 800-1,000kg에 무 400-500kg씩을 분배받았다. 다른 집은 김치 떨어진지가 오래지만, 이들은 6-7월까지 먹어도 아직 충분하다. 김치 떨어질 걱정은 여태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한 시당간부의 아내는 “4월이 되면 김치독마다 김치들이 벌써 시쿨해져서 돼지나 짐승들에게 준다. 일부 량심있는 사람들은 못 사는 이웃들에게 일부 나눠주기도 한다. 우리 같은 집들은 제정된 (채소)량을 모두 분배받기 때문에 장사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 식량 배급도, 채소 분배도 모두 보장받으니 먹는 것으로만 따지면 별 걱정 없이 산다”고 했다.

시당과 시농촌경영위원회에서는 “시당 가족분조처럼 농사일을 잘 하라”고 선전한다. 시당 간부들의 아내는 말만 농장원이지,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는 셈이고, 시당 간부들도 겨우 ‘금요로동’시간에만 얼굴을 들이미는 정도라서 이런 선전은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심을 자극한다.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정주시의 한 간부는 “사람들이 시당 가족분조를 놓고 말이 많겠는데, 시당에서는 시당 일군들부터 가정생활에서 애로가 없어야 사업을 잘 하기 때문에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려라고 하니 묻는 건데, 배려 받지 못한 주민들에게 시당 가족분조처럼 일을 잘 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그렇게 소출을 내려면 비료든 로력(인력)이든 가족분조에 주는 만큼 다른 분조들에도 배려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시당 간부들은 입쌀밥에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반찬을 먹고, 김치도 여러 가지를 먹는다는데, 일반 세대(가정집)에서는 김치가 떨어져 소금국을 먹는 수준”이라고 했더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치 없이 어떻게 사나?”

평안북도 정주시 정주읍에 사는 함춘화(가명)씨는 보안원인 남편 덕분에 김치 걱정 없이 산다. 남편이 받아온 뇌물이나 돈으로 살림살이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입쌀밥을 주로 먹고, 가끔 옥수수쌀을 섞어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돼지고기에, 생선이나 계란, 야채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는다. 김치는 당연히 8월까지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하다. 함씨네는 배추김치와 무채김치를 번갈아 내먹고, 여기에 깍두기, 오이절임 등을 별미로 먹는다. 작년에 배추김치만 1톤을 받았고 무는 500kg를 받아서 땅에 김장독을 총 6독이나 묻어두었다고 했다. 보통 3월이면 끝나는 김장김치가 아직 한참 남아 시어질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조선 사람이 김치 없이 어떻게 사느냐. 밥에 김치를 못 먹으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거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해 여느 주민들과 달리 풍족한 생활을 드러냈다.

반년 식량 ‘김치’떨어져 소금국 끓여먹어

반년식량이라고 하는 ‘김치’가 떨어진 집들이 많다. 6월까지 김치를 먹고 있는 집들은 대단히 잘 사는 집에 속한다. 주로 간부집이나 법관, 돈주들의 집에서 배추김치, 채김치, 깍두기 등 4-5가지 이상의 김치를 먹는다. 몇몇 잘 사는 집들을 제외하면 2월부터 김치가 떨어진 집들이 대부분이다. 채소가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염장 무 정도밖에 못 먹는 집들이 많고, 가난한 집에서는 김치 한 조각도 구경하기 힘들다. 그저 된장국이나 소금국을 유일한 반찬으로 먹는다. 평안북도 신의주 채하시장에서 잡화를 팔고 있는 고순덕(가명)씨는 “아예 김치를 못 먹는 건 아니다. 그날그날 장사 벌이가 어떠냐에 따라 다르다. 하루 벌이가 잘 된 날은 오이나 무, 배추를 조금씩 사다가 그때그때 절여서 먹기도 한다. 소금국만 먹는 집들은 정말 못 사는 집들이고, 우리처럼 하루 1-2끼라도 밥 먹고 사는 집들은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금국 밖에 못 먹는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낫다는 것이지 충분한 영양 섭취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신의주는 작년 여름 수해 피해가 워낙 심해 채소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농장마다 자기네가 먹을 채소조차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채소를 건사하기가 쉽지 않아서 턱없이 부족한 양의 김치를 담글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락원동 주민들은 올해 1-2월에 벌써 김치가 떨어져, 김치 한 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락원동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일군은 락원 1, 2동을 통틀어 김치 못 먹는 집이 70-80%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방동이나 채하동, 평화동 등 비교적 잘 사는 집이 모여 있는 동네는 아무리 가난해도 염장 무라도 먹지만, 자기네 동 주민들은 소금국이나 된장국만 끓여먹거나 그것도 없이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에게 김치가 없다면?”

한국 사람에게 김치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에 잘 익은 김치 하나면 잘 먹었다고 말하는 음식문화이다. 주식은 쌀밥, 김치는 부식으로 구분하지만, 매 끼니 식탁에 올라간다는 점에서 김치는 한국인에게 주식이나 마찬가지이다. 북한 사람들이 김치를 ‘반년식량’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상 주식으로 간주하는 말이다. 이번 호에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작년에 담가 둔 김장김치가 일찌감치 떨어져 고생하고 있는 소식을 전한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집들은 김치 대신 소금국을 들이키고, 조금 형편이 나은 집들은 김치 먹기를 옥수수밥 먹기처럼 띄엄띄엄 먹는다. 반면 간부나 잘 사는 집들은 4-5가지 이상의 김치를 종류별로 먹고 있다. 김치 종류만 200가지가 넘는 식 문화권에서 김치를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계급과 부를 구분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 경제활동

구루마꾼 12년 해도 밥벌이 어려워

평안남도 평성시 은덕동에 사는 김석호씨는 올해로 57세로 12년째 손짐 구루마 끌기를 하고 있다. 주로 시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달려간다. 40대 중반에 시작해 벌써 환갑을 앞두고 있는데, 궂은 날이건, 좋은 날이건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 왔다. 최고 많을 때는 하루 12,000원까지 벌었고, 아무리 못 벌어도 평균 4,000-5,000원은 벌었다. 더 나이 들면 구루마 끄는 일을 하기 어려우니, 노후를 생각해 많지는 않지만 제법 돈도 모아두었다. 그러나 재작년 화폐 개혁을 기점으로 오히려 생활이 급락했다. 김씨는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고 한다. 화폐개혁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왜 그 때 중국 돈으로 바꿔놓지 못했을까 아직도 후회가 막심하다”고 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구루마 끄는 벌이도 타격을 받았다.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려도 1-2명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장사꾼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 손님도 뚝 끊겼다. 모처럼 손님이 생겨도 나를 보고는 그냥 돌아간다. 늙어서 힘꼴 못 쓸 것 같다고 안 찾는 것이다. 다른 구루마꾼들보다 값을 눅게(싸게) 받는다고 해야 겨우 일거리를 잡는다. 하루에 1,000원도 못 벌 때가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밥은 뭘 먹고 사냐”고 물었더니, “옥수수밥을 먹으면 잘 먹는다”고 했다. 국수나 죽으로 때울 때가 많다.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어야 힘이 날 텐데, 구루마 끄는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구루마 한 번 끄는데 짐들이 정말 무겁다. 생각해봐라. 자기 피 같은 돈을 낼 때는 자기들이 도저히 들기 힘든 무거운 것을 주지, 가벼운 걸 주겠나. 한 번 끄는데 무게가 300-400kg는 되는 것 같다. 옥수수밥이라도 안 먹으면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끈다. 김치도 없어서 안해(아내)가 들에 나가 쑥이든 나물이든 캐다가 소금 뿌려 먹는다. 된장이나 기름, 소금 이런 것도 사먹으면 좋겠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구경하는 정도”라고 생계벌이의 고충을 토로했다.

최소 1,000평 농사 지어야 먹고 살만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올해 너나없이 소토지 농사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소토지 농사를 지어 식량 걱정이 없을 정도로 소출을 내기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일반 주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얻는 것부터 쉽지 않다. 농사지을 땅을 얻으려면 담배와 술, 돈 등을 뇌물로 바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 삽 하나, 곡괭이 하나 들고 맨몸으로 돌산을 캐서 뙈기밭을 만들거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 밭을 어렵게 일구었다고 해도 종자와 비료 구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소토지 농사로 소출을 내는 집들은 보통 1,000평 이상 규모로 농사를 짓는 집들이다.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동에 사는 올해 65세 김천일(가명)씨는 산림순시원을 하면서 소토지 농사를 전업으로 짓고 있는데, 곡물은 좀 부족해도 김치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작년에 약 1,000평 땅에 옥수수 400kg, 두부콩 200kg, 고추와 배추, 무 등 채소 800kg 이상의 소출을 거뒀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얼마간 보내주고, 알곡을 팔아 살림살이를 챙기면 두 부부가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 그래도 김씨는 굶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말한다. “아무리 일년 내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풍족한 생활은 못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비료도 사야 되고, 두 늙은이 힘으로 안 되면 머슴살이도 한두 명 구해야 한다. 그러면 남는 것도 없다. 김치도 못 먹고 사는 집들이 많은데 더 욕심 부리면 안 될 것 같다”며 햇감자가 나올 때까지 잘 아껴먹으면 올 춘궁기도 무사히 지날 것 같다고 했다. 작년보다 비료를 많이 구하지 못한 게 걱정이다. 김씨는 ‘산림순시원’이라는 직위로 그나마 소토지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농사짓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장사로든 뭐로든 먹고 살만해서 소토지 농사를 전업으로 하지 않던 집들도 올해는 정신 바짝 차려야 살 수 있다며 다른 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토지 농사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리선옥(가명)씨에 따르면, “국내 식량 사정이 20년 이래 줄곧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장사 벌이도 화폐 개혁 이후 줄곧 안 돼 소토지 농사가 유일한 식량 해결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리씨는 “(소토지 농사는) 뇌물을 주고 좋은 밭을 얻어서 일군을 두고 관리만 잘 하면 적어도 반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소토지 농사에 희망을 걸고 밭을 얻으러 다니는 장사꾼과 돈 많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시당 일군들과 시 인민위원회 일군세대들에서도 올해 들어와 그 수가 적극 늘어나고 토지 면적도 늘고 있다. 간부들은 자기 직권을 이용해 좋은 토양으로 된 1,000여 평짜리 밭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옥수수나 곡물 종자와 비료만 대고는 인력은 기업소 노동자들을 동원한다. 농장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아도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시당의 한 간부는 “농사를 도와주는 로동자들에게는 하루 2끼만 잘 먹여 주면 된다. 그러면 종자 심기부터, 김매기, 비료주기, 가을걷이도 모두 로동자들을 쓸 수 있다. 부업지에서 나오는 식량은 아무 공력도 들이지 않고 얻는 셈이다. 시당과 시 인민위원회 일군들은 내가 알기만도 작년에 옥수수만 보통 600-800kg씩은 얻었다. 작년은 특히 수해를 겪고 수확량이 많이 줄어서 올해는 소토지 농사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 식량소식

회령 도시 건설대, 김치 떨어져

함경북도 회령시 도시 건설대 로동자 세대들은 현재 식량도 없고 김치도 떨어져 옥수수밥에 된장국을 먹고 있다. 정철룡(가명)씨는 “작년 김장으로 겨우 배추김치 한 독을 채웠다. 아끼고 아껴서 2월까지 버티고 지금은 먹을 김치가 없다. 우리 집은 그래도 안해(아내)가 장사를 하니까 배추라도 가끔 사다가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지만, 장사가 잘 안 된 날은 김치 구경을 못 한다”고 했다. 자기네 집은 그럭저럭 살만한 축에 속한다고 했다. 형편이 더 어려운 집들에서는 옥수수국수나 옥수수묵지가루죽을 먹는다. 풀죽을 해먹는 집들도 있다.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집들이 아니면 김치 구경하기가 어렵다. 별로 먹은 것도 없이 도로담당구역 공사와 철도 로반 정리 등에 동원되기 일쑤다. 동원에 나갈 때는 보통 2-3일치 식량을 갖고 나가는데, 가난한 노동자들은 빈손으로 가기 일쑤다. 어떻게든 한명이라도 더 동원하려고 일군들이 조금씩 식량을 갹출한다. 노동자들에게 줄 식량이 없어서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 비서나 지배인이 시당에 불려가 비판서를 쓰거나 심한 경우 해임까지 당할 수 있어, “일군 사업도 하기 힘든 지경”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간부들은 나름대로 애쓴다고 하지만, 결근자는 늘어나는 실정이다. “무단결근자는 시단련대에 쳐 넣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이제는 별로 위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출근하러 나온 노동자들조차 “맥이 없어 일을 못하겠다.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시당 일군은 “우리 시 도시건설대 로동자들은 옥수수밥에 된장국이라도 먹지, 절대 굶지는 않는다”면서 자랑했다. 김정숙 어머니 혁명사적지를 꾸미는 곳이기 때문에 도당과 시당 등에서 각별히 신경써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겠다는 목표로 아무리 힘들어도 혁명사적지 건설에 이바지 하겠다”는 다짐이 어느 도시보다도 굳세다. 회령시 만큼 잘 먹는 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굶주리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회령 시당 일군들이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령광스러운 혁명사적지 건설 로동에 임하려고 해도 먹어야 기운이 나지. 국가가 곤란할 때 혁명사적지 건설에 리바지했다고 하면 간부들이야 평가받겠지만, 우리는 뭔가. 당장 김치 쪼가리 하나 못 먹는 처지인데. 간부 집에서 시어빠지고 있는 김치라도 내주던가. 자기들은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우리는 소처럼 부려먹기만 하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며 불평하고 있다.

반년 식량 ‘김치’ 떨어져 소금국 끓여먹어

반년식량이라고 하는 ‘김치’가 떨어진 집들이 많다. 6월까지 김치를 먹고 있는 집들은 대단히 잘 사는 집에 속한다. 주로 간부집이나 법관, 돈주들의 집에서 배추김치, 채김치, 깍두기 등 4-5가지 이상의 김치를 먹는다. 몇몇 잘 사는 집들을 제외하면 2월부터 김치가 떨어진 집들이 대부분이다. 채소가 나오기 시작했는데도 염장 무 정도밖에 못 먹는 집들이 많고, 가난한 집에서는 김치 한 조각도 구경하기 힘들다. 그저 된장국이나 소금국을 유일한 반찬으로 먹는다. 평안북도 신의주 채하시장에서 잡화를 팔고 있는 고순덕(가명)씨는 “아예 김치를 못 먹는 건 아니다. 그날그날 장사 벌이가 어떠냐에 따라 다르다. 하루 벌이가 잘 된 날은 오이나 무, 배추를 조금씩 사다가 그때그때 절여서 먹기도 한다. 소금국만 먹는 집들은 정말 못 사는 집들이고, 우리처럼 하루 1-2끼라도 밥 먹고 사는 집들은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금국 밖에 못 먹는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낫다는 것이지 충분한 영양 섭취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신의주는 작년 여름 수해 피해가 워낙 심해 채소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농장마다 자기네가 먹을 채소조차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채소를 건사하기가 쉽지 않아서 턱없이 부족한 양의 김치를 담글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락원동 주민들은 올해 1-2월에 벌써 김치가 떨어져, 김치 한 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락원동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일군은 락원 1, 2동을 통틀어 김치 못 먹는 집이 70-80%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방동이나 채하동, 평화동 등 비교적 잘 사는 집이 모여 있는 동네는 아무리 가난해도 염장 무라도 먹지만, 자기네 동 주민들은 소금국이나 된장국만 끓여먹거나 그것도 없이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 사회

간부 집에 김치가 풍족한 이유

간부들 집에는 김치가 남아도는 이유가 뭘까? 간부가족에게 배당되는 가족분조 덕분이다. 협동농장은 작게는 4-5개에서 많게는 20개가 넘는 작업반으로 되어있고, 1개의 작업반은 적어도 4-5개 이상의 분조로 이뤄져있다. 당간부 가족분조들은 말이 가족분조이지 실은 작업반 규모다. 주로 간부의 아내들이 농사를 짓는데 농촌 동원 기간에 녀맹원이나 학생들, 기업소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밭 면적이 아무리 커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많은 수확을 거둔다. 농장마다 비료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칠 때도, 가족분조에 우선 분배해 준다. 아무리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해도, 간부들의 가족분조 농장 소출은 늘 평작을 넘는다. 함경북도 회령시 시당 간부들의 경우, 오산덕 농장에서 가족분조 농사를 짓는다. 작년에는 세대별로 배추 800-1,000kg에 무 400-500kg씩을 분배받았다. 다른 집은 김치 떨어진지가 오래지만, 이들은 6-7월까지 먹어도 아직 충분하다. 김치 떨어질 걱정은 여태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한 시당간부의 아내는 “4월이 되면 김치독마다 김치들이 벌써 시쿨해져서 돼지나 짐승들에게 준다. 일부 량심있는 사람들은 못 사는 이웃들에게 일부 나눠주기도 한다. 우리 같은 집들은 제정된 (채소)량을 모두 분배받기 때문에 장사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 식량 배급도, 채소 분배도 모두 보장받으니 먹는 것으로만 따지면 별 걱정 없이 산다”고 했다. 시당과 시농촌경영위원회에서는 “시당 가족분조처럼 농사일을 잘 하라”고 선전한다. 시당 간부들의 아내는 말만 농장원이지,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는 셈이고, 시당 간부들도 겨우 ‘금요로동’시간에만 얼굴을 들이미는 정도라서 이런 선전은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심을 자극한다.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정주시의 한 간부는 “사람들이 시당 가족분조를 놓고 말이 많겠는데, 시당에서는 시당 일군들부터 가정생활에서 애로가 없어야 사업을 잘 하기 때문에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려라고 하니 묻는 건데, 배려 받지 못한 주민들에게 시당 가족분조처럼 일을 잘 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그렇게 소출을 내려면 비료든 로력(인력)이든 가족분조에 주는 만큼 다른 분조들에도 배려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시당 간부들은 입쌀밥에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반찬을 먹고, 김치도 여러 가지를 먹는다는데, 일반 세대(가정집)에서는 김치가 떨어져 소금국을 먹는 수준”이라고 했더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치없이 어떻게 사나?”

평안북도 정주시 정주읍에 사는 함춘화(가명)씨는 보안원인 남편 덕분에 김치 걱정 없이 산다. 남편이 받아온 뇌물이나 돈으로 살림살이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입쌀밥을 주로 먹고, 가끔 옥수수쌀을 섞어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돼지고기에, 생선이나 계란, 야채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는다. 김치는 당연히 8월까지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하다. 함씨네는 배추김치와 무채김치를 번갈아 내먹고, 여기에 깍두기, 오이절임 등을 별미로 먹는다. 작년에 배추김치만 1톤을 받았고 무는 500kg를 받아서 땅에 김장독을 총 6독이나 묻어두었다고 했다. 보통 3월이면 끝나는 김장김치가 아직 한참 남아 시어질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조선 사람이 김치 없이 어떻게 사느냐. 밥에 김치를 못 먹으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거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해 여느 주민들과 달리 풍족한 생활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