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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32호

■ 시선집중

평양 쌀값 kg에 3,000원대

평양 쌀값이 좀처럼 3,000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평양에서는 지난 11월 초, 시장에서 쌀 1kg가 최고 3,800원에 거래됐다. 옥수수는 2,300원으로 다른 지역의 쌀값만큼이나 비쌌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황해도와 평안남도에서 식량이 유입되면서 쌀값이 떨어지는데, 올해는 곡창지대의 생산량이 매우 저조한 탓이다. 추수가 끝나고 식량 유입량이 늘어도 평양의 쌀값은 여전히 3,300원대다. 쌀보다 옥수수가 주로 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옥수수값은 11월 초 2,300원에서 현재 1,300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집중폭우 피해가 적었던 함경북도 지역에서는 11월 초 3,600원까지 올랐던 쌀값이 청진에서는 11월 말 현재 2,900원, 그럭저럭 배급이 나오는 회령에서는 kg당 2,700-2,800원까지 내렸다. 옥수수는 청진과 회령에서 750-76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다른 지방 도시들도 함경북도와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11월 말 평양 식량과 달러 가격

10월11월 초11월 말
1달러3,4504,0003,900
쌀 kg3,2003,8003,300
옥수수 kg1,7002,3001,300

화폐 교환 2년째 평성, 후유증 지속

화폐 교환을 한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충격과 혼란의 시기가 지나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을 찾은 듯 보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살기가 좋아졌다고 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려워졌다고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소수요, 돈 없는 사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불안한 이유이다. 화폐 개혁 이전에 조선 최대 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평성 시장은 옛 명성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평성 주민들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있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외환을 보유하고 있던 세대에서는 지금이 더 낫다고 한다. 중국산 일색이던 물건들도 점차 유럽산, 동남아산, 간간이 미국산까지 접할 수 있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평성 시장에서는 평양 통일거리 시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세련된 옷차림을 한 중년 여성들이 고급 물건과 열대과일처럼 쉽게 구하기 어려운 먹을거리를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만 보면 2년 전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평성은 시장 거래가 매우 활발해서 평양 다음으로 전국에서 돈주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평성시의 한 간부는 “무역회사나 공장, 기업소들은 저마다 우리 평성에 창고를 마련해놓고 많은 물량을 쌓아두면서 필요할 때 가져가거나 다른 지역에 넘겨 팔았다. 우리 평성 시장이 도매시장이라는 것은 일반 매대 장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대형 창고들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을 말한다. 평성시장이 폐쇄되고, 화폐교환조치로 일반 공장, 기업소들이 대거 무너지다나니까 자연 우리 시에 있던 창고들도 텅텅 비게 되고, 도매시장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일부 돈주들의 소비가 살아난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회복은 아니다. 그는 화폐 개혁으로 일단의 시장 세력이 몰락했는데, 살아남은 건 화교 세력과 일부 외화벌이 세대뿐이라고 했다. 평성시 전반적으로 볼 때 오히려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 세대가 많다. 하루걸러 이밥을 먹을 정도로 비교적 잘 먹고 살던 집들에서는 이제 옥수수밥 차려 먹기가 힘들다. 옥수수밥 먹던 세대는 옥수수국수를, 옥수수국수 먹던 세대는 죽을 먹는 식으로 식생활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몇몇 인민반장들에 따르면 옥수수밥이 없어 국수나 죽으로 때우는 세대는 화폐 개혁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인민반장 김수정(가명)씨는 “잘 사는 사람들이야 돈 못 써서 안달 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우리 인민반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옥수수밥이라도 꼬박꼬박 먹고 사는 집이 손에 꼽고, 아파트마다 칼바람 막을 비닐박막도 못 구해서 걱정하는 집들이 태반”이라며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신 것 같다고 해서 예전처럼 이밥 먹던 시절이 다시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인민탄광에서 노(老)부부가 사는 법

탄광 지역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숨 걸고 인민탄광 일에 매달리고 있다. 인민탄광은 사굴(私掘) 또는 인민갱이라고도 하는데 탄부들이 직장별, 가족별, 동네별로 수직갱을 파고 들어가 직접 석탄을 캐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캔 것이라 해서 ‘자체탄’ 또는 ‘인민탄’이라고 부른다. 올해 70세인 송학성(가명)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새별군 고건원 탄광 부근 인민탄광에서 탄벌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탄광에서 평생 잔뼈가 굵어 굴진할 때 동발을 시공하는 능력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송할아버지를 서로 모셔가려고 한다. 송할아버지는 오랜 경험으로 탄맥을 찾아내는 데도 귀신같은 감각을 자랑한다. 이런 능력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석탄을 나눠주면 그것으로 끼니 걱정을 던다. 할머니는 등짐가방을 메고 갱입구에서 기다리다가 버럭이 섞인 탄을 가져나오면 등짐으로 이고 날라주고 푼돈을 번다. 인민갱 일이 없는 날에는 노부부가 함께 석탄 되거리장사에 나선다. 이웃들은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을 70대 노부부가 별 힘든 내색도 않고 오순도순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송할아버지 내외를 잘 따른다.

“석탄 수출 줄이면, 전력난 해소되나?”

중앙당 간부들은 최근 석탄 수출을 줄이라는 방침이 내려온 것은 전력난 악화 때문이라고 했다. 내수용 석탄이 대거 수출로 전환되고 화력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면서 전력부문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외국의 투자 없이 탄광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에 그나마 생산되는 것들도 모두 중국에 팔리고 있어 대책이 없는 상태다. 중앙당에서는 전력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풀려고 할까? 중앙당의 한 간부는 답이 안 나온다고 한숨부터 쉬었다.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풀자고 전력공업 부문 일군들과 전력 생산자들이 나름 애쓰고 있으나 필요한 설비자재가 원만히 보장되지 못해 발전소들을 만보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력생산을 누리는데서 제일 걸리고 있는 것은 석탄이다. 당에서는 석탄공업 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더 열심히 석탄을 생산해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애로와 난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손 놓고 주저앉아 조건이 마련되기만 기다린다면 석탄 생산을 늘릴 수 없으며, 나라의 긴장한 문제를 풀 수가 없으니, 일군들이 더 책임성 있게 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문한다. 석탄공업부문 일군들이 혁명의 선풍기가 되고 가속기가 되어 대중의 정신력을 총 발동시켜나가야 한다며, 결국 책임을 개인에게 지운다. 여기서도 사상을 강조하는데, 한 마디로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정신만 차리면 서 있는 전차도 움직이고 탄차도 다시 끌어내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는 식이다. 전력난 해소를 위해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석탄을 원만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책면이나 제도 면에서 여건을 조성할 생각은 안 한다. 그저 중국에 석탄 수출량을 줄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석탄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내수용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취해진 조치라고 하는데 표면상으로는 중국의 탄광 투자가 대부분 국경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더 깊이 있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유이다. 국경지역은 중국 정부에서 전력 공급이 쉽고, 도로를 닦아주고 철길도 내주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려고 하지만, 아직 안쪽 지역에는 투자가 소극적이다. 외국의 투자 없이 우리 힘으로는 석탄을 많이 생산하기가 어렵다. 전력 문제를 푸는데 걸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연료부족 위기의식, 석탄 수출에 제동

석탄 채굴권과 경영개발권을 중국에 넘겨주다시피 하던 북한 당국이 석탄 수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외화를 얻기 위해 내수물량까지 수출하면서 석탄을 헐값에 팔아넘겨왔으나 석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갈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채굴권과 경영권에 투자제한을 둘 것이라는 애초의 방침과 달리 최근에는 석탄 수출량까지 감소시켰다. 이미 체결된 계약에 따른 수출이 계속되고 있어 아직 감소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최대 1/10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자원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계약이 끝났거나 투자가 정해진 회사 외에는 수출을 제한하라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철광석이나 동, 금 등 다른 광물 자원들의 경우 투자는 받되 경영권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모두 막아 버리면 외화벌이 원천이 막히므로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은 석탄으로 국한했다”고 전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광물자원 수출 외에 다른 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광물자원은 남북한 상생의 길

북한의 석탄 생산량이 늘지 않는 것은 전력난과 설비 노후화, 사회제반시설 부족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 안 되니 석탄 생산성이 떨어지고, 석탄이 없으니 화력발전소를 돌릴 수 없어 전력을 생산하지 못한다. 반면 석탄 수출량은 늘었다. 무분별한 석탄 수출은 전력난 악화로 이어진다. 뒤늦게 석탄 수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의 탄광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도 있다. 아무리 석탄의 질이 좋아도, 전력 공급부터 도로 정비, 운반비용 부담 및 설비와 자재 공급 등 거의 모두를 자부담하려는 기업은 없다. 게다가 납기일을 번번이 어기고, 같은 탄광을 두고 이중삼중으로 계약해 약속한 양을 못 맞추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도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제도의 개선 없이 투자 유치가 어렵고, 투자 없이 생산성을 높일 수 없으며, 내수물량 확보 없이 전력난은 개선하기 어렵다. 난마처럼 얽힌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광물자원은 남북한 공동의 이익이 되는 대표적인 협력부문이 될 만하다. 북한 정부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신뢰를 심어 주고, 남한 정부는 장기 구상 속에 지금부터라도 북한의 광물자원을 적극 관리해야 한다.

■ 식량소식

평양 쌀값 kg에 3,000원대

평양 쌀값이 좀처럼 3,000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평양에서는 지난 11월 초, 시장에서 쌀 1kg가 최고 3,800원에 거래됐다. 옥수수는 2,300원으로 다른 지역의 쌀값만큼이나 비쌌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황해도와 평안남도에서 식량이 유입되면서 쌀값이 떨어지는데, 올해는 곡창지대의 생산량이 매우 저조한 탓이다. 추수가 끝나고 식량 유입량이 늘어도 평양의 쌀값은 여전히 3,300원대다. 쌀보다 옥수수가 주로 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옥수수값은 11월 초 2,300원에서 현재 1,300원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집중폭우 피해가 적었던 함경북도 지역에서는 11월 초 3,600원까지 올랐던 쌀값이 청진에서는 11월 말 현재 2,900원, 그럭저럭 배급이 나오는 회령에서는 kg당 2,700-2,800원까지 내렸다. 옥수수는 청진과 회령에서 750-76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다른 지방 도시들도 함경북도와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11월 말 평양 식량과 달러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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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월 초 11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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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3,450 4,000 3,900

쌀 kg 3,200 3,800 3,300

옥수수 kg 1,700 2,30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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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활동

화폐 교환 2년째 평성, 후유증 지속

화폐 교환을 한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충격과 혼란의 시기가 지나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을 찾은 듯 보인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살기가 좋아졌다고 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려워졌다고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소수요, 돈 없는 사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사회가 전체적으로 불안한 이유이다. 화폐 개혁 이전에 조선 최대 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평성 시장은 옛 명성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평성 주민들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있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외환을 보유하고 있던 세대에서는 지금이 더 낫다고 한다. 중국산 일색이던 물건들도 점차 유럽산, 동남아산, 간간이 미국산까지 접할 수 있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평성 시장에서는 평양 통일거리 시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세련된 옷차림을 한 중년 여성들이 고급 물건과 열대과일처럼 쉽게 구하기 어려운 먹을거리를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만 보면 2년 전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평성은 시장 거래가 매우 활발해서 평양 다음으로 전국에서 돈주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평성시의 한 간부는 “무역회사나 공장, 기업소들은 저마다 우리 평성에 창고를 마련해놓고 많은 물량을 쌓아두면서 필요할 때 가져가거나 다른 지역에 넘겨 팔았다. 우리 평성 시장이 도매시장이라는 것은 일반 매대 장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대형 창고들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을 말한다. 평성시장이 폐쇄되고, 화폐교환조치로 일반 공장, 기업소들이 대거 무너지다나니까 자연 우리 시에 있던 창고들도 텅텅 비게 되고, 도매시장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일부 돈주들의 소비가 살아난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회복은 아니다. 그는 화폐 개혁으로 일단의 시장 세력이 몰락했는데, 살아남은 건 화교 세력과 일부 외화벌이 세대뿐이라고 했다. 평성시 전반적으로 볼 때 오히려 급격한 하락을 경험한 세대가 많다. 하루걸러 이밥을 먹을 정도로 비교적 잘 먹고 살던 집들에서는 이제 옥수수밥 차려 먹기가 힘들다. 옥수수밥 먹던 세대는 옥수수국수를, 옥수수국수 먹던 세대는 죽을 먹는 식으로 식생활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몇몇 인민반장들에 따르면 옥수수밥이 없어 국수나 죽으로 때우는 세대는 화폐 개혁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인민반장 김수정(가명)씨는 “잘 사는 사람들이야 돈 못 써서 안달 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우리 인민반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옥수수밥이라도 꼬박꼬박 먹고 사는 집이 손에 꼽고, 아파트마다 칼바람 막을 비닐박막도 못 구해서 걱정하는 집들이 태반”이라며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신 것 같다고 해서 예전처럼 이밥 먹던 시절이 다시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석탄 수출 줄이면, 전력난 해소되나?”

중앙당 간부들은 최근 석탄 수출을 줄이라는 방침이 내려온 것은 전력난 악화 때문이라고 했다. 내수용 석탄이 대거 수출로 전환되고 화력발전소를 돌리지 못하면서 전력부문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외국의 투자 없이 탄광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에 그나마 생산되는 것들도 모두 중국에 팔리고 있어 대책이 없는 상태다. 중앙당에서는 전력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풀려고 할까? 중앙당의 한 간부는 답이 안 나온다고 한숨부터 쉬었다.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풀자고 전력공업 부문 일군들과 전력 생산자들이 나름 애쓰고 있으나 필요한 설비자재가 원만히 보장되지 못해 발전소들을 만보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력생산을 누리는데서 제일 걸리고 있는 것은 석탄이다. 당에서는 석탄공업 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더 열심히 석탄을 생산해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애로와 난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손 놓고 주저앉아 조건이 마련되기만 기다린다면 석탄 생산을 늘릴 수 없으며, 나라의 긴장한 문제를 풀 수가 없으니, 일군들이 더 책임성 있게 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문한다. 석탄공업부문 일군들이 혁명의 선풍기가 되고 가속기가 되어 대중의 정신력을 총 발동시켜나가야 한다며, 결국 책임을 개인에게 지운다. 여기서도 사상을 강조하는데, 한 마디로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정신만 차리면 서 있는 전차도 움직이고 탄차도 다시 끌어내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는 식이다. 전력난 해소를 위해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석탄을 원만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책면이나 제도 면에서 여건을 조성할 생각은 안 한다. 그저 중국에 석탄 수출량을 줄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석탄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내수용이 심각하게 부족해서 취해진 조치라고 하는데 표면상으로는 중국의 탄광 투자가 대부분 국경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더 깊이 있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유이다. 국경지역은 중국 정부에서 전력 공급이 쉽고, 도로를 닦아주고 철길도 내주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려고 하지만, 아직 안쪽 지역에는 투자가 소극적이다. 외국의 투자 없이 우리 힘으로는 석탄을 많이 생산하기가 어렵다. 전력 문제를 푸는데 걸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연료부족 위기의식, 석탄 수출에 제동

석탄 채굴권과 경영개발권을 중국에 넘겨주다시피 하던 북한 당국이 석탄 수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외화를 얻기 위해 내수물량까지 수출하면서 석탄을 헐값에 팔아넘겨왔으나 석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갈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채굴권과 경영권에 투자제한을 둘 것이라는 애초의 방침과 달리 최근에는 석탄 수출량까지 감소시켰다. 이미 체결된 계약에 따른 수출이 계속되고 있어 아직 감소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최대 1/10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자원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계약이 끝났거나 투자가 정해진 회사 외에는 수출을 제한하라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철광석이나 동, 금 등 다른 광물 자원들의 경우 투자는 받되 경영권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모두 막아 버리면 외화벌이 원천이 막히므로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은 석탄으로 국한했다”고 전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광물자원 수출 외에 다른 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사회

인민탄광에서 노(老)부부가 사는 법

탄광 지역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숨 걸고 인민탄광 일에 매달리고 있다. 인민탄광은 사굴(私掘) 또는 인민갱이라고도 하는데 탄부들이 직장별, 가족별, 동네별로 수직갱을 파고 들어가 직접 석탄을 캐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캔 것이라 해서 ‘자체탄’ 또는 ‘인민탄’이라고 부른다. 올해 70세인 송학성(가명)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새별군 고건원 탄광 부근 인민탄광에서 탄벌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탄광에서 평생 잔뼈가 굵어 굴진할 때 동발을 시공하는 능력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송할아버지를 서로 모셔가려고 한다. 송할아버지는 오랜 경험으로 탄맥을 찾아내는 데도 귀신같은 감각을 자랑한다. 이런 능력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석탄을 나눠주면 그것으로 끼니 걱정을 던다. 할머니는 등짐가방을 메고 갱입구에서 기다리다가 버럭이 섞인 탄을 가져나오면 등짐으로 이고 날라주고 푼돈을 번다. 인민갱 일이 없는 날에는 노부부가 함께 석탄 되거리장사에 나선다. 이웃들은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을 70대 노부부가 별 힘든 내색도 않고 오순도순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송할아버지 내외를 잘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