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편집자의 글-2006년1월호

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의욕과 기대가 한층 고조될 시점이다. 아직은 얼어붙은 겨울이지만 겨울은 곧 봄을 약속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현실은 계속되고 있지만,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북한 정부가 새로운 배급제를 실시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완전하게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단 며칠 분량이라도 식량판매소에서 쌀을 구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주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시장에서의 쌀 판매를 단속하면서 쌀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틈새를 이용해서 발 빠르게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타지에서 쌀을 구하러 온 장사꾼들에게 쌀을 구할 수 있는 개인 집을 소개시켜주고 돈을 받고 있었다. 어디든지 틈새공략이 중요한 것 같다.

2006년 새해 벽두부터 귀한 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중국에서 건너온 구제역이 함경북도 국경지역의 소들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각 도시의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병든 소들을 집단 매장하며 소 우리를 소독하는 등 방역작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매장된 소들을 몰래 빼내어 먹거나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인체에 해는 없다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2004년도에 중국으로 건너 간 여성들을 만난 이야기도 실었다. 그들은 가난한 산골 농촌 마을에서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집 한 칸밖에 없는 어려운 살림인데도 해마다 중국공안에게 뇌물로 들어가는 돈이 한 해 가계 수입을 웃돌았다. 달아날까봐 불안해하는 시집식구들의 감시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의 세계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더 이상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북한보다 자유로운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에게서 도리어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중국 정부는 강제송환을 중단하고, 중국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에게는 체류 인정을, 그 자녀들은 호구 등록과 적절한 교육 지원을, 북한 정부는 강제 송환되어 온 도강자들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시선집중

식량 배급-2006년 1월

회령 12월에 10일 분량 식량 유상공급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12월 16일부터 강연을 통해 12월 하순경 보름(15일)분량의 식량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1월에도 식량공급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공급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12월 말에는 배급표를 식량판매소에 가져 온 사람에 한해 10일 분량의 쌀을 공급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12월 16일부터 강연을 통해 12월 하순경 보름(15일)분량의 식량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1월에도 식량공급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공급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12월 말에는 배급표를 식량판매소에 가져 온 사람에 한해 10일 분량의 쌀을 공급했다.

2002년 7. 1 경제조치 이후에는 쌀을 국정가격(주. 쌀 44원)에 유상 공급하기로 했었다면, 이번에는 시장 거래 가격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였다. 12월 공급당시 시장에서 쌀의 암거래 가격이 850원선이었는데 780원 가격에 공급하였다.

절약미, 애국미 등등의 명분으로 세금처럼 떼고 정량보다 적게 주었는데 이번에는 정량 그대로 채워서 주었다. 예를 들면 하루 배급 700g을 받는 노동자들은 예전 같으면 560g정도 받을 텐데, 이번에는 700g 정량을 그대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때 공급한 쌀은 한국에서 지원한 것으로, 식량판매소에서도 한국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쌀 공급량이 부족해서 배급표를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쌀을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식량의 경우 국가가 개인들의 시장 거래를 막으면서 독점으로 식량을 판매하려고 하는 게 아닌 가 추정된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쌀 판매를 완전히 단속하는 것도 아니다. 함경북도 함흥은 쌀 판매를 단속하지 않으면서도 식량 공급을 한 사례이다.

지난 해 10월과 11월, 함흥에서도 쌀과 옥수수를 완전히 탈곡한 형태로 두 달 분량을 정상 공급하였다. 쌀은 입쌀, 옥수수는 통옥수수가 아니라 옥수수쌀로 가공한 것이다. 미공급이 되면서부터 가공을 하지 못해 통옥수수를 그대로 내준 것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정상 배급을 받은 일부 주민들은 15년 전으로 돌아가나 보다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 함흥시장의 쌀 가격은 타지역에 비해 한동안 하향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2월부터 공급이 안 되면서 쌀 가격도 올랐다.

쌀 판매 단속 정황-2006년 1월

시장에서의 쌀 단속 이후

시장에서의 쌀 판매 단속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시행되고 있다. 아예 시행되고 있지 않은 지역들이 많고, 시행지역이라 하더라도 한 지역 안에서도 시장에 따라 다르다. 함경북도 청진의 경우 수남 시장은 단속을 하지만 수남 시장을 제외한 작은 시장들은 단속을 하고 있지 않다. 그밖에 함경북도 라남 시장을 비롯하여 함흥, 안주, 숙천, 희천, 북창, 대관, 신의주 등에서는 쌀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반면 단속이 들어간 대표적인 지역은 주로 중국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함경북도 무산, 회령, 온성 등지이다. 이 지역들에서는 쌀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강연이 수차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단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온성 시장에서는 메뚜기 판매처럼 단속이 뜨면 바로 철수하는 식으로 장사를 계속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속을 피해가는 쌀 거래 모습-2006년 1월

쌀 파는 집 가르쳐주고 소개비 받아

시장 판매를 금지하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쌀 매매 장소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개인 집들로 옮겨졌다. 한 마을에서 쌀 1-2kg 사는 사람들이야 서로 어느 집에 가면 쌀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주. 대부분 쌀 되거리 장사꾼)은 어디로 가야 쌀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구매자들은 쌀 파는 집을 수소문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판매인들에게 연계를 해주고 소개비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만약 시장 매매가격이 kg당 800-900원이면 이들은 소개비로 대략 50-100원 가량을 챙긴다. 쌀을 구매하는 사람은 시장가격보다 그만큼 웃돈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쌀을 판매하는 사람도 예전의 시장 가격보다 가격을 더 높게 부르기 마련이다. 이 때 구매자들은 판매자와 가격 흥정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와서 쌀을 구하기 어려운 구매자들이 불리한 입장이다. 판매자들이야 당장 쌀을 팔지 못하더라도 수요는 있기 때문에 느긋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쌀을 사더라도 되거리 장사하러 비싼 교통비까지 감수하고 온 구매자들로서는 장사할 쌀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최소 대여섯 집은 더 돌아야 한다. 이렇듯 쌀 가격 상승도 상승이지만 쌀장사하는 일이 그만큼 번거로워졌다.

단골 거래를 트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에 다시 가보면 쌀이 떨어진 경우가 많고, 더 높은 이윤을 남기려고 판매자들이 같은 가격에 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개를 해주는 사람에게 가서 소개비를 다시 지불하고 새로운 판매자를 소개받는다. 되거리 장사꾼들은 이런 식으로 쌀을 사들여 단속이 아직 시행되지 않은 지역의 시장에 내다판다. 이들도 이윤을 남기려다보니 가격을 올려서 팔게 되고, 결국 그 지역 시장의 쌀 가격은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유통이 되다 보니 청진의 경우에도 수남 시장보다 라남 시장이 100~200원 더 비싸게 거래된다. 이렇듯 쌀 거래가 시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집에서 각자 흥정하면서 이루어지다보니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편차가 심해지고 있다. 쌀장사를 하면서 누구와 거래를 터서 얼마나 쌀을 재빨리 확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장사의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 또 국가의 양정국에서 언제 배급을 하느냐도 재빨리 알아내야 한다. 배급이 풀리면 쌀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그 전에 사두었던 쌀을 처분해야 해서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배급이 풀려 쌀 가격이 내려간 뒤에 팔려고 하면 수지가 안 맞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장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쌀장사는 무엇보다 정보가 관건이다. 웬만한 큰 장사꾼들은 지역 양정국 일꾼들과 친분을 두텁게 맺으면서 정보를 듣고 있다.

한편 새로운 배급제 실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지도원급이나 과장급 간부들조차 현재 북한에서 생산된 식량으로는 전국적인 배급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05년도 곡물 생산량이 450만톤이라고 하지만 그 중 150만톤 이상은 허위보고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생산량은 최대 300에서 350만톤 가량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배급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나지 않았냐며, 다들 쌀을 사놓을 수 있을 때 많이 사놓는 게 좋다고 쉬쉬하며 말하기도 한다.

함경북도의 구제역 발생-2006년 1월

1월 초 함경북도 국경 지역 구제역 발생

지난 1월 초순부터 회령, 온성, 새별 등 국경지역에 구제역이 퍼지고 있다. 이 지역 소들 중에 발톱이 쪼개지고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생기며 혀가 나온 상태에서 들어가지 않고 침을 많이 흘리는 증상을 보이는 소들이 생겼다. 북한 현지에서는 “소병”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연길의 소하룡에서 한 달 전에 발생했었는데 이것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삼합에서는 이미 12월초부터 한 달 동안 돌아 거의 마무리되었고 온성 삼봉은 아직 마무리가 덜 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방약이 1대에 300위안으로, 주사를 맞은 소는 괜찮지만 미처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소는 병에 걸리면 먹지 못해 죽게 된다. 삼합에서는 11마리가 구제역으로 죽었다.

북한은 온성에서 새별로, 그리고 회령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 현재 라선 지역까지 전염이 퍼진 상태이다. 라선지역은 1월 17일까지는 전혀 발생하지 않다가 19일에 28마리가 죽었다.

북한 당국은 구제역 처리를 비교적 신속하게 하고 있다. 회령에서는 1월 10일 경 원산리에서 먼저 발생했다. 구제역 처리를 하는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발생한 병이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며, 90마리가 병에 걸려 도살했다고 전했다. 일단 비슷한 증상을 보이거나 단 한 마리만 발생해도 주변의 모든 소들을 즉시 매장시켰다고 한다. 구덩이를 깊게 파서 매장했는데, 이는 병균이 10년이 지나도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병을 현지에서는 조류독감과 비슷한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전염속도가 빨라 공기전염뿐만 아니라 관리를 하는 사람에 의해서도 전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소를 매장하는 것 외에 각 마을에서는 특별히 다른 방역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회령시는 외국인이나 타지인의 경우 돌려보내고 있으며 출입을 차단했다. 1월 19일까지는 완전히 봉쇄된 상태는 아니나 봉쇄를 선포한 상태이다.

라선시에서는 버스나 사람을 일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특히 청진쪽에서 들어오는 것은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다. 아직까지 청진쪽으로 퍼지지는 않은 것 같다. 1월 21일경에는 감염추세가 점차 하향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함경북도의 구제역 처리-2006년 1월

매장 된 소 2마리 사라져

지난 1월 23일 회령 인계리에서는 구제역 때문에 소를 40마리 매장시켰다. 그런데 마흔 마리 중에서 2마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북한 당국에서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5세 이하 어린이가 감염된 소를 먹으면 면역력이 약해 죽을 수도 있으니 먹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긴급 공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매장된 소를 몰래 꺼내 먹거나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해 3월경 평양 하당 닭 공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해서 집단 폐사시킬 때에도 닭을 훔쳐가는 사례들이 많았었다. 도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은 일단 조류독감의 인체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가 되지 않은 이유가 크다. 또한 쌀 한 톨, 옥수수 한 알이 귀한 북한 주민들에게 닭과 소고기는 감히 꿈꿔보지 못할 고급 식품이다.

당장 한 끼니 해결하는 것이 급한 주민들에게는 감염 위험성보다 내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질병의 사전예방과 발생 시 긴급하고 확실한 사후처리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염된 가축이라도 훔쳐 먹으려는 것은 전반적으로 식생활 안정이 더 우선되어야 함을 뜻한다.

함경북도 국경 지역의 전세 성행-2006년 1월

함경북도 국경지역 전세 성행

함경북도에서는 최근에 개인 집을 세놓는 사람들이 있다. 청진의 경우 집값이 1달에 3,000원 정도 하는데 국경 도시인 무산, 회령, 새별은 훨씬 더 비싸다. 국경 지역인데다 전문 밀수꾼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가격이 비싼 편이다. 가격은 한국 평수로 12평짜리가 10,000원 정도 한다. 임차하는 세대는 아파트보다는 주로 단층집이 많다.

임대를 해주는 세대는 대체로 한 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 무산과 새별에는 2채씩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7채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다든지, 아니면 양친 중 한분만 계실 경우 부모님을 모셔오고 빈 집을 임대한다.

세를 얻는 사람들은 두만강 연선 작업(밀수, 보따리 무역 등)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주로 한 달 단위로 계약한다. 전문적으로 국경변에 머물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6개월치를 선불하고 자기 집처럼 드나든다. 국경변 마을은 안전원들이 숙박검열을 자주 나오는데 이렇게 빌린 집들은 숙박검열을 하지 않는다. 숙박검열에 걸려도 보위부와 연줄이 닿는 집안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무산 주민의 5%는 세를 놓는다고 알려져 있다. 공공연하게 파악된 수는 약 열 세대 가량이지만,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집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임대가 제일 활발한 곳은 새별군이다. 예전에는 국경 연선작업이 남양, 온성 지역에서 제일 활발했다면 이제는 새별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이나 온성이 새별에 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일단 대기 숙박을 하거나 집을 잠시 이용하는 데에도 타 지역에 비해 비싼 돈을 요구한다. 외지에서 오면 돈이 얼마 있고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중국에 다녀오면 안전부에 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도강하는 곳은 무산이나 남양 쪽에서 하더라도 잠자리를 제공받거나 도강을 도와 줄 사람을 연결하는 일체 거래는 다 새별에서 이루어진다. 새별에서 도강을 의뢰하는 것이 무산, 온성 등에서 알아보는 것보다 경비를 절반 이상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시장에서의 식량 거래를 단속한 이후로는 5-6명의 북한 주민들이 집단으로 두만강을 건너가 중국 쪽 민가를 덮치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다.

■ 경제활동

2006년 1월 식량 배급

회령 12월에 10일 분량 식량 유상공급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12월 16일부터 강연을 통해 12월 하순경 보름(15일)분량의 식량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1월에도 식량공급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공급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12월 말에는 배급표를 식량판매소에 가져 온 사람에 한해 10일 분량의 쌀을 공급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12월 16일부터 강연을 통해 12월 하순경 보름(15일)분량의 식량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1월에도 식량공급을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공급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12월 말에는 배급표를 식량판매소에 가져 온 사람에 한해 10일 분량의 쌀을 공급했다.

2002년 7. 1 경제조치 이후에는 쌀을 국정가격(주. 쌀 44원)에 유상 공급하기로 했었다면, 이번에는 시장 거래 가격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였다. 12월 공급당시 시장에서 쌀의 암거래 가격이 850원선이었는데 780원 가격에 공급하였다.

절약미, 애국미 등등의 명분으로 세금처럼 떼고 정량보다 적게 주었는데 이번에는 정량 그대로 채워서 주었다. 예를 들면 하루 배급 700g을 받는 노동자들은 예전 같으면 560g정도 받을 텐데, 이번에는 700g 정량을 그대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때 공급한 쌀은 한국에서 지원한 것으로, 식량판매소에서도 한국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쌀 공급량이 부족해서 배급표를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쌀을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식량의 경우 국가가 개인들의 시장 거래를 막으면서 독점으로 식량을 판매하려고 하는 게 아닌 가 추정된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쌀 판매를 완전히 단속하는 것도 아니다. 함경북도 함흥은 쌀 판매를 단속하지 않으면서도 식량 공급을 한 사례이다.

지난 해 10월과 11월, 함흥에서도 쌀과 옥수수를 완전히 탈곡한 형태로 두 달 분량을 정상 공급하였다. 쌀은 입쌀, 옥수수는 통옥수수가 아니라 옥수수쌀로 가공한 것이다. 미공급이 되면서부터 가공을 하지 못해 통옥수수를 그대로 내준 것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정상 배급을 받은 일부 주민들은 15년 전으로 돌아가나 보다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 함흥시장의 쌀 가격은 타지역에 비해 한동안 하향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2월부터 공급이 안 되면서 쌀 가격도 올랐다.

2006년 1월 쌀 판매 단속 정황

시장에서의 쌀 단속 이후

시장에서의 쌀 판매 단속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시행되고 있다. 아예 시행되고 있지 않은 지역들이 많고, 시행지역이라 하더라도 한 지역 안에서도 시장에 따라 다르다. 함경북도 청진의 경우 수남 시장은 단속을 하지만 수남 시장을 제외한 작은 시장들은 단속을 하고 있지 않다. 그밖에 함경북도 라남 시장을 비롯하여 함흥, 안주, 숙천, 희천, 북창, 대관, 신의주 등에서는 쌀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반면 단속이 들어간 대표적인 지역은 주로 중국과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함경북도 무산, 회령, 온성 등지이다. 이 지역들에서는 쌀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강연이 수차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단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온성 시장에서는 메뚜기 판매처럼 단속이 뜨면 바로 철수하는 식으로 장사를 계속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6년 1월 단속을 피해가는 쌀 거래 모습

쌀 파는 집 가르쳐주고 소개비 받아

시장 판매를 금지하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쌀 매매 장소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개인 집들로 옮겨졌다. 한 마을에서 쌀 1-2kg 사는 사람들이야 서로 어느 집에 가면 쌀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주. 대부분 쌀 되거리 장사꾼)은 어디로 가야 쌀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구매자들은 쌀 파는 집을 수소문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판매인들에게 연계를 해주고 소개비를 받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만약 시장 매매가격이 kg당 800-900원이면 이들은 소개비로 대략 50-100원 가량을 챙긴다. 쌀을 구매하는 사람은 시장가격보다 그만큼 웃돈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쌀을 판매하는 사람도 예전의 시장 가격보다 가격을 더 높게 부르기 마련이다. 이 때 구매자들은 판매자와 가격 흥정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와서 쌀을 구하기 어려운 구매자들이 불리한 입장이다. 판매자들이야 당장 쌀을 팔지 못하더라도 수요는 있기 때문에 느긋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에서 쌀을 사더라도 되거리 장사하러 비싼 교통비까지 감수하고 온 구매자들로서는 장사할 쌀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최소 대여섯 집은 더 돌아야 한다. 이렇듯 쌀 가격 상승도 상승이지만 쌀장사하는 일이 그만큼 번거로워졌다.

단골 거래를 트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에 다시 가보면 쌀이 떨어진 경우가 많고, 더 높은 이윤을 남기려고 판매자들이 같은 가격에 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개를 해주는 사람에게 가서 소개비를 다시 지불하고 새로운 판매자를 소개받는다. 되거리 장사꾼들은 이런 식으로 쌀을 사들여 단속이 아직 시행되지 않은 지역의 시장에 내다판다. 이들도 이윤을 남기려다보니 가격을 올려서 팔게 되고, 결국 그 지역 시장의 쌀 가격은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유통이 되다 보니 청진의 경우에도 수남 시장보다 라남 시장이 100~200원 더 비싸게 거래된다. 이렇듯 쌀 거래가 시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집에서 각자 흥정하면서 이루어지다보니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편차가 심해지고 있다. 쌀장사를 하면서 누구와 거래를 터서 얼마나 쌀을 재빨리 확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장사의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 또 국가의 양정국에서 언제 배급을 하느냐도 재빨리 알아내야 한다. 배급이 풀리면 쌀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그 전에 사두었던 쌀을 처분해야 해서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배급이 풀려 쌀 가격이 내려간 뒤에 팔려고 하면 수지가 안 맞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장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쌀장사는 무엇보다 정보가 관건이다. 웬만한 큰 장사꾼들은 지역 양정국 일꾼들과 친분을 두텁게 맺으면서 정보를 듣고 있다.

한편 새로운 배급제 실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지도원급이나 과장급 간부들조차 현재 북한에서 생산된 식량으로는 전국적인 배급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05년도 곡물 생산량이 450만톤이라고 하지만 그 중 150만톤 이상은 허위보고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생산량은 최대 300에서 350만톤 가량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배급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나지 않았냐며, 다들 쌀을 사놓을 수 있을 때 많이 사놓는 게 좋다고 쉬쉬하며 말하기도 한다.

2006년 1월 함경북도의 구제역 발생

1월 초 함경북도 국경 지역 구제역 발생

지난 1월 초순부터 회령, 온성, 새별 등 국경지역에 구제역이 퍼지고 있다. 이 지역 소들 중에 발톱이 쪼개지고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생기며 혀가 나온 상태에서 들어가지 않고 침을 많이 흘리는 증상을 보이는 소들이 생겼다. 북한 현지에서는 “소병”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 연길의 소하룡에서 한 달 전에 발생했었는데 이것이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삼합에서는 이미 12월초부터 한 달 동안 돌아 거의 마무리되었고 온성 삼봉은 아직 마무리가 덜 되었다. 중국에서는 예방약이 1대에 300위안으로, 주사를 맞은 소는 괜찮지만 미처 예방주사를 맞지 못한 소는 병에 걸리면 먹지 못해 죽게 된다. 삼합에서는 11마리가 구제역으로 죽었다.

북한은 온성에서 새별로, 그리고 회령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 현재 라선 지역까지 전염이 퍼진 상태이다. 라선지역은 1월 17일까지는 전혀 발생하지 않다가 19일에 28마리가 죽었다.

북한 당국은 구제역 처리를 비교적 신속하게 하고 있다. 회령에서는 1월 10일 경 원산리에서 먼저 발생했다. 구제역 처리를 하는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발생한 병이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며, 90마리가 병에 걸려 도살했다고 전했다. 일단 비슷한 증상을 보이거나 단 한 마리만 발생해도 주변의 모든 소들을 즉시 매장시켰다고 한다. 구덩이를 깊게 파서 매장했는데, 이는 병균이 10년이 지나도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병을 현지에서는 조류독감과 비슷한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전염속도가 빨라 공기전염뿐만 아니라 관리를 하는 사람에 의해서도 전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소를 매장하는 것 외에 각 마을에서는 특별히 다른 방역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회령시는 외국인이나 타지인의 경우 돌려보내고 있으며 출입을 차단했다. 1월 19일까지는 완전히 봉쇄된 상태는 아니나 봉쇄를 선포한 상태이다.

라선시에서는 버스나 사람을 일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특히 청진쪽에서 들어오는 것은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다. 아직까지 청진쪽으로 퍼지지는 않은 것 같다. 1월 21일경에는 감염추세가 점차 하향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1월 함경북도의 구제역 처리

매장 된 소 2마리 사라져

지난 1월 23일 회령 인계리에서는 구제역 때문에 소를 40마리 매장시켰다. 그런데 마흔 마리 중에서 2마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북한 당국에서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5세 이하 어린이가 감염된 소를 먹으면 면역력이 약해 죽을 수도 있으니 먹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긴급 공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매장된 소를 몰래 꺼내 먹거나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해 3월경 평양 하당 닭 공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해서 집단 폐사시킬 때에도 닭을 훔쳐가는 사례들이 많았었다. 도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은 일단 조류독감의 인체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가 되지 않은 이유가 크다. 또한 쌀 한 톨, 옥수수 한 알이 귀한 북한 주민들에게 닭과 소고기는 감히 꿈꿔보지 못할 고급 식품이다.

당장 한 끼니 해결하는 것이 급한 주민들에게는 감염 위험성보다 내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질병의 사전예방과 발생 시 긴급하고 확실한 사후처리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염된 가축이라도 훔쳐 먹으려는 것은 전반적으로 식생활 안정이 더 우선되어야 함을 뜻한다.

2006년 1월 함경북도 국경 지역의 전세 성행

함경북도 국경지역 전세 성행

함경북도에서는 최근에 개인 집을 세놓는 사람들이 있다. 청진의 경우 집값이 1달에 3,000원 정도 하는데 국경 도시인 무산, 회령, 새별은 훨씬 더 비싸다. 국경 지역인데다 전문 밀수꾼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가격이 비싼 편이다. 가격은 한국 평수로 12평짜리가 10,000원 정도 한다. 임차하는 세대는 아파트보다는 주로 단층집이 많다.

임대를 해주는 세대는 대체로 한 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 무산과 새별에는 2채씩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7채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다든지, 아니면 양친 중 한분만 계실 경우 부모님을 모셔오고 빈 집을 임대한다.

세를 얻는 사람들은 두만강 연선 작업(밀수, 보따리 무역 등)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주로 한 달 단위로 계약한다. 전문적으로 국경변에 머물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6개월치를 선불하고 자기 집처럼 드나든다. 국경변 마을은 안전원들이 숙박검열을 자주 나오는데 이렇게 빌린 집들은 숙박검열을 하지 않는다. 숙박검열에 걸려도 보위부와 연줄이 닿는 집안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무산 주민의 5%는 세를 놓는다고 알려져 있다. 공공연하게 파악된 수는 약 열 세대 가량이지만,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집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임대가 제일 활발한 곳은 새별군이다. 예전에는 국경 연선작업이 남양, 온성 지역에서 제일 활발했다면 이제는 새별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이나 온성이 새별에 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일단 대기 숙박을 하거나 집을 잠시 이용하는 데에도 타 지역에 비해 비싼 돈을 요구한다. 외지에서 오면 돈이 얼마 있고 무슨 장사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중국에 다녀오면 안전부에 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 집이나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도강하는 곳은 무산이나 남양 쪽에서 하더라도 잠자리를 제공받거나 도강을 도와 줄 사람을 연결하는 일체 거래는 다 새별에서 이루어진다. 새별에서 도강을 의뢰하는 것이 무산, 온성 등에서 알아보는 것보다 경비를 절반 이상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시장에서의 식량 거래를 단속한 이후로는 5-6명의 북한 주민들이 집단으로 두만강을 건너가 중국 쪽 민가를 덮치는 일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6년 1월 함경북도의 물가 동향

2006년 1월 함경북도의 물가 동향입니다.

2006년 1월 평안북도 태천군의 대기숙박소

태천군 유동인구 많아 대기 숙박집 성행

평안북도 태천군은 유동 인원이 많아 태천군 주민의 약 10% 가량은 대기 숙박(주. 일종의 여관. 숙박을 하거나 시간 단위로 잠시 들어가 쉴 수 있음. )을 한다. 대기 숙박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일반 집들도 돈을 주면 재워준다. 대기 숙박 전문집의 숙박비용 계산은 대체로 현금 대신 쌀이나 옥수수가루 등 현물로 거래하는 경우가 약 80%에 이른다. 다른 지역의 대기 숙박비는 700원 정도 하는데 태천은 그 가격의 두 배인 쌀 2kg 정도를 주어야 한다. 외지에서 온 손님이 많은 곳이라 비싼 편이다. 주인들은 이런 현물을 받아서 시장에 내다판다. 보통 손님을 한 명 받으면 그 돈으로 일주일을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대기 숙박소는 잠자리만 제공하고 식사는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손님이 들어오면 남는 장사가 된다.

한편 순천에서는 세 끼 식사를 포함해서 숙박비 1천원을 하는 대기 숙박집들이 있다. 식사는 안남미와 옥수수를 5 : 5로 섞은 밥을 110g 정도 준다. 미역국에 염장 무와 고추조림이 국과 반찬으로 나온다.

운산군에서는 태천에 비하면 대기 숙박집이 거의 없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민간 집들도 숙박 손님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운산은 금을 갖고 있는 집이 많아 정체모를 외부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숙박을 하려면 운산 급양관리소에서 운영하는 운산 여관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은 개인집인데 국가에서 승인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여관에서는 식사 세 끼 포함해서 하루 숙박비가 250원이다. 식사는 옥수수밥 150g을 정량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양을 보면 110g 남짓 되어 보인다. 반찬은 소금에 절인 무 한 조각뿐이다. 만약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숙박비는 250원으로 숙박비를 지급할 때 식권을 함께 준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한 방에 네 명이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2006년 1월 평안북도 운산군 소식

운산 공구공장 공정의 2/3 가동 중단

운산 공구공장은 펜치, 스패너, 드라이버, 손칼 등의 공구를 만든다. 원래 공구공장의 노동자 수가 약 11,000명이었는데 현재 7-8,000명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공장의 2/3 정도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현재 작업을 하는 직장은 두 군데밖에 없다. 이 공장에서 펜치와 스패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식량 배급을 보름에 한 번씩 주고, 후방부대의 노동자들에게는 2~3달에 한번 정도 주고 있다.

운산군, 농장원들도 일본산 자전거 소유

운산군은 금광으로 매우 유명한데 총 매장량이 1,000톤 이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북한 당국에서도 운산 금광을 매우 중요한 기간산업으로 보고 있어 운산군 북진리 금광에는 금을 캐려고 현재 군부대(공병국)만 3개 여단이 들어가 있다. 또 군부 계통은 물론 보위부와 중앙당 8과 외화벌이 단체들 등 전국 각지에서 금 생산과 매매를 위해 이곳에 드나들고 있다. 금을 캐다보면 농경지를 침범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해서 농장원들과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듯 운산은 금을 생산하는 곳이어서 생활수준이 다른 농촌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웃 지간에 금 몇 그램 정도 서로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이 마치 쌀이나 옥수수를 서로 빌려주고 받는 것처럼 예삿일에 속한다. 그래서 농장원들은 농사 작황이 좋지 않아도 금을 캐서 팔기 때문에 다른 지역 농촌 사람들보다 잘 사는 편이다. 옷도 잘 차려입고 다니고, 농장원들도 일본산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일본산 자전거는 약 15-30만원(북한 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어 전문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구입하려면 여러 달에 걸쳐 돈을 모으거나 큰마음 먹고 장만해야 한다. 게다가 다른 지역 농장원들은 식량구입도 곤궁한 처지라 일본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은 차마 꿈꾸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비해 이 곳 농장원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산 주민들은 시장에서 쌀을 사서 먹을 때보다 쌀을 단속하는 요즘 고통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들 말한다. 이러다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가 또 돌아오지 않겠냐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2006년 1월 평안북도 향산군 소식

향산군 공병국은 괴뢰군?

평안북도 향산군과 운산군에도 공병국 군인들이 많다. 이들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한 편이다. 일부 주민들은 공병국 군인들이 나타나면 괴뢰군이 왔다고까지 말한다. 늘 거친 일만 하다 보니 성격이 괴팍하고 주민들에게 끼치는 횡포가 심해서이다. 어떤 공병국 소속 군인은 지나가는 서비차를 타려고 강제로 세우다가 그냥 지나치면 쫓아가서 차를 부수고 운전수를 때리는 등의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지역 운전수들은 공병국 군인이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태워주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비를 내지 않으려는 일반인들이 가짜로 공병국 군인 행세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시장에서 군복과 군화를 구입하고 견장, 혁대 등 군인 표식을 달고 다니는 것이다.

묘향산, 시장 대신 기념품 매대로 탈바꿈

향산군은 늘 사람이 붐빈다. 주로 학생, 군인, 체육인, 모범 농장원들과 광복의 천리길 답사대 등의 견학단이 이곳을 찾는다. 묘향산을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2005년에 시장을 없애고, 대신 기념품 판매대가 들어섰다. 기념품 매대에서는 북한산 술, 북한산 담배, 나무 지팡이, 모자, 장갑, 백두산 현무암 돌조각, 나무 공예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런 상품은 묘향산 답사관리소 8.3제품 공장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매대들은 묘향산으로 가는 길에 드문드문 배치되어있다.

운산-향산, 미니열차 운행

운산과 향산 사이에는 통근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이 열차는 보통 여객용 차량 세 대와 석탄을 실은 화물칸 차량 다섯 대 정도를 달고 움직인다. 다른 열차는 94-96석이지만 이 통근열차는 20석으로 차량규모가 작다. 여기에 보통 40-50명 정도가 빼곡히 타고 다닌다. 승객들은 차비대신 기업소에서 발급해주는 통근 표를 이용한다.

2006년 1월 평안북도 태천 수력발전소

평북 태천군은 공병국판

태천군은 수력발전소 건설 및 보수공사 때문에 외지에서 온 공병국 인구가 많다. 이곳에는 현재 공병국 1개 여단(약 5천여 명)이 들어가서 건설을 하고 있다. 1-2호 발전소는 완공이 되었지만 7-8년가량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예전의 제10건설사업소라는 단위가 해산된 후 공병건설여단 소속으로 꾸려졌다. 이 건설여단의 본부는 원래 자강도 희천시 갈현리에 있었는데 태천으로 이동해 왔다. 여단 본부는 태천에 두고 전체 인원의 40%는 태천 발전소 건설에, 나머지 60%는 평안북도 운산군의 금광이나 다른 지역의 발전소 건설, 기타 외화벌이 사업 등에 투입되어 유동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발전소 부근에 단층 건물을 길게, 경사진 곳을 다락밭 식으로 합숙소를 지어서 절반 이상은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합숙소의 첫 번째 줄에는 이발소, 목욕탕,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있다. 그 다음부터 합숙지로, 한 동에 두 개 분대 정도가 들어가는데 한 분대에 8명으로 보면 방 한 개에 16명씩 생활한다고 볼 수 있다. 방안에 들어가 보면 한 켠에 일렬로 2층 침대가 늘어서있고, 머리맡에는 개인 옷장이 놓여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30-40대 독신자들이다. 합숙생활을 하지 않는 50-60대 이상의 기술자나 지휘관들은 가족과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개 동에 보통 7-8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 곳 노동자들은 식량배급을 잘 받는 편이다.

2006년 1월 평안남도 북창, 순천 소식

물 좋은 북창 술, 연간 생산량 300톤

북창에 위치한 술 공장은 연간 생산량이 300톤가량 된다. 원료는 주로 수수와 보리를 쓴다. 공장 노동자들에게 배급은 주지 않고 기업소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하고 있다. 이에 각 기업소들은 직원들을 조별로 나누어 증명서를 떼 주고 일주일마다 돌아가면서 식량을 알아서 구하도록 하고 있다. 공장 노동자의 60% 가량이 보리와 수수 장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술 판매로 얻은 공장 수입에서 식량비로 충당한다. 기업소에서는 1년 목표가 할당되면 그 목표보다 더 생산해서 국가지표를 바치고 남은 생산물을 팔아서 운영을 한다. 정기적 배급은 없지만 54명의 직원들이 세대주 역할은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씩은 배급을 해 주고 있다. 한편 덕천 수력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된 것과 대조적으로, 북창 화력발전소는 북한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발전용량 160만 kw)답게 계속 가동 중이다.

순천의 시장 인원 절반이 꽃제비

평안남도 순천 시장에는 장애인, 영예군인(주. 상이군인) 등 어른 꽃제비들도 많다. 열 명씩 무리지어 다니는데 시장 유동인구의 절반이 꽃제비라고 할 정도로 대단히 많다. 순천 지역은 전국 각지로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꽃제비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그래서 순천역에서는 이들을 단속하려고 1~2시간 간격으로 역 주변을 다니면서 행인들의 신분증과 여행증을 검사하고 있다. 한편 순천 시장에서도 쌀을 단속하고 있다. 판매되는 곡물류는 옥수수나 감자전분 등에 불과하다.

2006년 1월 함경남도 함흥 동흥산 시장

동흥산 시장의 다양한 돈벌이

함경북도 함흥의 동흥산 시장과 함주 시장을 2년 전에 통합했다. 함흥과 함주의 경계지점에 새로 지어졌다. 함흥 사람들은 원래대로 동흥산 시장이라고 부르고 함주 사람들은 함주 시장이라고 부른다. 동흥산 시장에서는 쌀을 내놓고 팔고 있다. 동흥산 시장에는 대략 50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서 장사진을 이룬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돈벌이 행위도 다양해지고, 분화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상인들이 일일이 짐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역에 가져가 짐을 부치는 일을 직접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만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시장에서 짐을 부치려는 상인들을 물색하는 사람, 물건을 포장해서 역에 운반해주는 사람, 기차 화물칸에 실어주는 사람 등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다.

대기숙박업자들은 손님의 차표 대행편의를 봐주면서 소개비를 받기도 한다. 외지인들이 드나들기 쉽고 교통이 좋은 역 앞에 위치한 집들이 돈벌이가 잘 된다. 이런 대기 숙박 집들은 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친분을 맺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손님의 차표를 직접 끊어주면서 소정의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이외에도 돈 버는 명목은 만들기 나름이다. 자기 집이 보통 하루에 5~6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는데 이미 다 찼다면, 찾아온 손님을 다른 대기 숙박집에 연계를 해주고 소개비 명목으로 1인당 50원을 받기도 한다. 이렇듯 경제관념이 생기면서 손님의 편의를 봐주는 일들이 경제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2006년 1월 함경북도 김책시의 가정 난방 소식

“부엌 아궁이가 이밥을 먹는 세상”

함경북도 김책시의 주민들은 겨울 난방을 주로 땔감 나무를 사용하고, 인근 길주군의 일신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은 거의 취사할 때만 사용한다. 난방으로 석탄을 때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석탄 1kg에 100원인데 중간 크기의 양동이에 담으면 약 1,000원 상당의 10kg 가량이 들어간다. 이 분량으로 밥을 두 번 정도 지을 수 있다. 석탄을 아껴 쓰기 위해 어떤 집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고 작은 풍로를 사용한다. 화력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풍로를 사용하면 석탄 10kg로 최소 열 끼니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김책의 쌀이 kg당 약 1,00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부엌 아궁이로 밥 두 번 짓는데 쌀 1kg이 그냥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궁이가 이밥(쌀밥)을 먹는다”는 한탄어린 우스개 소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