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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46호

■ 시선집중

이복형제끼리 결혼한 사연

금숙씨는 함경북도 연사군에 사는 서른세 살 가정주부이다. 남편과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고, 친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원래 그의 집은 무산군에 있었다. 비록 잘 갖추지는 못했어도 햇볕도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5층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서거하시던 1994년, 어머니는 끝내 홀로 세상을 뜨셨다. 1년 후에는 남동생이 인민학교 문턱도 못 가보고, 어머니 뒤를 이었다. 네 식구에서 단숨에 둘만 남게 됐다. 얼마 안 가 아버지는 맘씨고운 지금의 어머니를 집에 데려왔다. 새어머니에게는 금숙씨보다 한 살 더 많은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네 식구가 되었지만 살림은 더 어려워져서 원래 살던 아파트를 팔고, 지금 살고 있는 연사군으로 이사해왔다.

금숙씨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스물여덟살이 되었는데,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다가 145cm도 안 되는 왜소한 체격에 인물도 변변치 못하니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오빠도 서른이 가까워오는데 혼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멀쩡한 아들, 딸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둘을 혼인시키기로 결심했다. 쓸데없는 격식을 따지지 않아도 되고, 원래 살던 집에서 그냥 살면 되니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금숙씨의 부모님은 친척과 이웃들이 비웃고, 천하에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귀한 아들, 딸을 처녀총각 귀신 만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역시나 친척들은 남부끄럽다며 혼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인민반 반장과 가까운 지인 몇 명만 참가한 가운데 예복이나 예장도 없이, 그저 입쌀밥 한 그릇씩에 닭 한 마리 잡아 술상을 보고 혼례를 올렸다. 그날 신방은 비워줘야 한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민반 반장네 가서 주무셨다. 아무리 피 한 방울 안 섞여있다고 해도, 어제까지만 해도 친오빠처럼 따르던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하자니 금숙씨는 얼떨떨했다. 남편은 부모님 모시고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고 손을 잡아주었다. 결혼한 지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 아들 둘이 연달아 태어났다. 올해 세 살과 네 살이 되는 아이들을 맘껏 못 먹이는 것이 가슴 아파도 금숙씨는 가족들이 뿔뿔이 안 흩어지고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뙈기밭이야말로 ‘나의 포전’

량강도 혜산시 인근 농촌마을에 사는 최지석(가명)씨는 초급당 비서로 있는 매부 덕에 화전이라도 부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고맙다. 화전을 일군 것은 5년 전, 매부가 초급당비서로 진급하면서 겨우 한 자리 비비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뙈기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짜기였는데, 경사 70도 가까이 되는 곳으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산이었다. 그래도 그곳에 감자와 무 농사를 지은 덕분에 세 식구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산림반에 등록된 밭이라 3년이 지나면 다시 국가에 돌려주어야 해서 마지못해 바치고 걱정이 많았는데, 다시 매부의 힘을 빌려 지금의 야산 한 귀퉁이를 얻게 됐다. 뙈기밭으로 만드는 게 말로 설명하면 쉽지만, 해본 사람은 두 번 할 것이 못된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로 고되고 힘들지만, 일단 만들어놓으면 식량자급이 가능해진다. 성철씨는 큰 나무는 베어 장작으로 패서 땔감으로 내다 팔고, 가시나무와 엉겅퀴 같은 잡목과 나무뿌리를 하나 둘 제거하고, 돌덩이를 헤치면서 매일 허리가 부러지도록 밭을 만들었다.

얼마 전 건너편 산에서 화전을 일구던 사람이 검불에 불을 지핀 게 산불로 번져 크게 화상을 입었다. 겨우 목숨만 부지했을 뿐, 얼굴과 손이 다 녹아들어 그나마 밭일도 못하게 됐다. 잡목이나 가시덤불 같은 건 불살라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산불 위험이 있어서 성철씨는 일일이 골짜기에 던졌다. 화전을 일구는 것도 다 요령이 필요한 법인데, 그 사람들은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성철씨는 최근 부쩍 출퇴근을 엄격하게 점검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작년까지는 얼마간 돈을 찔러주면 출근만 하고 바로 집에 돌아와 뙈기밭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퇴근 시간까지 꼼짝 못하게 한다. 겨울 농한기라서 괜찮았지만, 봄이 다가오고 있어 마음이 바빠졌다. 농사 준비를 하려면 밭을 다시 손봐야 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가짜 진단서를 떼다가 직장에 제출하고 사흘 말미를 얻었다. 돌산이라서 아직 손이 더 가야할 곳이 많았다. 아내와 부지런히 돌멩이를 소쿠리에 담아 걷어내고, 나무뿌리를 뽑았다.

지대가 높아 봄에 감자를 심으면 한 300kg 정도, 가을에는 무를 한 500kg 정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멧돼지 같은 산짐승이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사람들이 몰래 훔쳐가는 양이 많아서 도둑을 얼마나 잘 막을지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질 것이다. 성철씨는 유실량을 각각 100kg씩 잡아 올해 최소한 감자 200kg에 무 400kg 정도만 얻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면 겨우내 집에서 먹고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것이다. 성철씨는 “농장 포전은 나의 포전이라지만, 급경사 돌산에 일군 뙈기밭이야말로 온전하게 나의 포전이다. 나의 포전만 있으면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직생활 더 세졌다”

올해 들어 각 직장인과 농장원 등의 조직생활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퇴근 시간 엄수는 물론이고, 강연회와 학습, 생활총화 등의 참석점검이 엄격하다.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노동자 김철웅(가명)씨는 “직장에 나가도 할 일이 없는데, ‘나오라, 들어가라’성화를 부리고, 학습이요, 선서요 하는 행사가 유독 많아졌다. 노동자들한테 조금이라도 한가한 시간이 안 생긴다. 전에는 그래도 직장에 출근표만 내고 집에 들어가서 안해를 도와 장사라도 거들어줄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럴 시간이 없다. 장군님이 돌아가신 뒤에 부쩍 그런 것 같다. 조금도 틈을 안 주니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녀맹원 리소영(가명)씨도 “노력동원을 할 때 무슨 선서를 한 적이 없는데, 김정은 동지를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겠다”는 선서를 하고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충성의 선서 모임은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혁명과업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으로, 국가 명절이 끝나고 난 이튿날 출근 첫 시간에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제는 돌격대를 조직해 전투(각종 과업)를 시작할 때에도 김정은 부위원장의 혁명과업을 달성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있다.

주민들, 중간간부 불신 심각

중앙당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주민동향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중간간부층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하다고 결론 내렸다. 중앙당이나 고위간부층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는 편이었지만, 중간간부들이 허위보고를 올리거나 폭압 정치를 펴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호위사령부와 보위부에서 수집한 내용에 따르면, “중간에서 기만적인 보고서를 올려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이만큼이나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활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리보전에만 급급하고 자기 배만 채우는 중하층 간부들은 없어져야 한다. 중간간부들이 나라와 수령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머니와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간부를 누구로 바꾸든 이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중간 간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고도 올라갔다. “전쟁만 나면 보안원들부터 손 봐 주겠다”는 식으로 보안원이나 보위부에 대한 반감도 전국 각지에서 수집됐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함흥의 한 시장에서 로친 한 명이 장사꾼과 가격이 싸다, 비싸다 한창 언쟁하다가 격분해서 ‘이거 어디 돈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전쟁이나 콱 나버려라’고 말했다. 그때 바로 뒤에 서있던 보안원을 본 로친은 ‘전쟁을 하더라도 우리가 이길 게 분명하지 않냐’며 얼른 수습했다. 보안원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상당히 높은데, 아마 그때 보안원이 없었으면 어떤 말이 더 나왔을지 모른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들 그 로친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빨리 무슨 일이 터졌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살기는 어려운데 통제가 점점 심해져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단속하는 보안원들이 주민들의 직접적인 불만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국 돼지목장 건설 바람

올해는 어떻게든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취지에서 전국에 돼지목장 건설 바람이 불고 있다. 인민에게 이밥과 고깃국을 마련해주자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각 시, 군에서는 돼지목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있던 축사를 정비하는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축사를 새로 마련해야 하는 지역에서는 건설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축사는 어찌해본다고 해도, 분뇨처리시설을 마련하거나, 방역시설이나 상하수도 시설, 사료제조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작년에 완공된 몇몇 돼지목장에서는 옥수수사료와 24시간 전력 보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돼지목장 추가 건설은 당장 주민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인민은 굶고 있는데, 돼지들은 옥수수 사료를 먹는다. 또 돼지목장에는 24시간 전기를 주면서 주민 세대에는 전기를 안 준다”며 사람이 돼지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속속 접수되기도 했다. 중앙당은 고심 끝에 지난 2월 18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민 세대에 전기를 공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단백질 공급원이자 대체 식량이기도 한 돼지 축산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불안정한 전력 공급을 일부 정기적으로 공급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일부 간부들은 아직 돼지목장 건설은 시기상조라며, 토끼, 염소, 산양 같은 초식가축 사육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내 포전’으로 식량 자급 가능

올해 이밥에 고깃국을 실현해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포부가 곳곳에서 읽혀진다. 돼지목장 건설을 다그치고, 전력과 옥수수사료를 우선 공급하는 것도 대체식량을 확보하려는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장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돼지 먹일 식량이 어디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대신 깎아지른 산골짜기 절벽에라도 농사를 짓게만 해준다면 자력으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모지라도 진정한‘나의 포전’을 허용해주면 이밥에 고깃국까지는 몰라도 감자와 옥수수밥은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금력이 딸리는 지방당으로서도 돼지목장건설은 무리다. 여건이 좋은 농장과 목장을 선택해 집중하고, 생산성이 낮은 농장은 과감하게 포전제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농업문제를 해결하려면 영농자재와 에너지 수급, 관개수로 확충 등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데, 결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농업 생산성을 늘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기가 농사지은 만큼 수확물을 가져가게 하면 된다. 새 시대에 맞는 농업혁명을 일으켜야할 때이다. 농업혁명은 바로 농장원들에게 자기 땅을 주고 제 맘대로 농사짓게 하고, 생산물을 제 마음대로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사회

이복형제끼리 결혼한 사연

금숙씨는 함경북도 연사군에 사는 서른세 살 가정주부이다. 남편과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고, 친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원래 그의 집은 무산군에 있었다. 비록 잘 갖추지는 못했어도 햇볕도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5층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서거하시던 1994년, 어머니는 끝내 홀로 세상을 뜨셨다. 1년 후에는 남동생이 인민학교 문턱도 못 가보고, 어머니 뒤를 이었다. 네 식구에서 단숨에 둘만 남게 됐다. 얼마 안 가 아버지는 맘씨고운 지금의 어머니를 집에 데려왔다. 새어머니에게는 금숙씨보다 한 살 더 많은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네 식구가 되었지만 살림은 더 어려워져서 원래 살던 아파트를 팔고, 지금 살고 있는 연사군으로 이사해왔다.

금숙씨도 어느새 나이가 들어 스물여덟살이 되었는데,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다가 145cm도 안 되는 왜소한 체격에 인물도 변변치 못하니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오빠도 서른이 가까워오는데 혼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멀쩡한 아들, 딸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둘을 혼인시키기로 결심했다. 쓸데없는 격식을 따지지 않아도 되고, 원래 살던 집에서 그냥 살면 되니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금숙씨의 부모님은 친척과 이웃들이 비웃고, 천하에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귀한 아들, 딸을 처녀총각 귀신 만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역시나 친척들은 남부끄럽다며 혼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인민반 반장과 가까운 지인 몇 명만 참가한 가운데 예복이나 예장도 없이, 그저 입쌀밥 한 그릇씩에 닭 한 마리 잡아 술상을 보고 혼례를 올렸다. 그날 신방은 비워줘야 한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민반 반장네 가서 주무셨다. 아무리 피 한 방울 안 섞여있다고 해도, 어제까지만 해도 친오빠처럼 따르던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하자니 금숙씨는 얼떨떨했다. 남편은 부모님 모시고 오순도순 잘 살아보자고 손을 잡아주었다. 결혼한 지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 아들 둘이 연달아 태어났다. 올해 세 살과 네 살이 되는 아이들을 맘껏 못 먹이는 것이 가슴 아파도 금숙씨는 가족들이 뿔뿔이 안 흩어지고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뙈기밭이야말로 ‘나의 포전’

량강도 혜산시 인근 농촌마을에 사는 최지석(가명)씨는 초급당 비서로 있는 매부 덕에 화전이라도 부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고맙다. 화전을 일군 것은 5년 전, 매부가 초급당비서로 진급하면서 겨우 한 자리 비비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뙈기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짜기였는데, 경사 70도 가까이 되는 곳으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산이었다. 그래도 그곳에 감자와 무 농사를 지은 덕분에 세 식구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산림반에 등록된 밭이라 3년이 지나면 다시 국가에 돌려주어야 해서 마지못해 바치고 걱정이 많았는데, 다시 매부의 힘을 빌려 지금의 야산 한 귀퉁이를 얻게 됐다. 뙈기밭으로 만드는 게 말로 설명하면 쉽지만, 해본 사람은 두 번 할 것이 못된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로 고되고 힘들지만, 일단 만들어놓으면 식량자급이 가능해진다. 성철씨는 큰 나무는 베어 장작으로 패서 땔감으로 내다 팔고, 가시나무와 엉겅퀴 같은 잡목과 나무뿌리를 하나 둘 제거하고, 돌덩이를 헤치면서 매일 허리가 부러지도록 밭을 만들었다.

얼마 전 건너편 산에서 화전을 일구던 사람이 검불에 불을 지핀 게 산불로 번져 크게 화상을 입었다. 겨우 목숨만 부지했을 뿐, 얼굴과 손이 다 녹아들어 그나마 밭일도 못하게 됐다. 잡목이나 가시덤불 같은 건 불살라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지만, 산불 위험이 있어서 성철씨는 일일이 골짜기에 던졌다. 화전을 일구는 것도 다 요령이 필요한 법인데, 그 사람들은 너무 서둘렀던 것 같다. 성철씨는 최근 부쩍 출퇴근을 엄격하게 점검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작년까지는 얼마간 돈을 찔러주면 출근만 하고 바로 집에 돌아와 뙈기밭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퇴근 시간까지 꼼짝 못하게 한다. 겨울 농한기라서 괜찮았지만, 봄이 다가오고 있어 마음이 바빠졌다. 농사 준비를 하려면 밭을 다시 손봐야 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가짜 진단서를 떼다가 직장에 제출하고 사흘 말미를 얻었다. 돌산이라서 아직 손이 더 가야할 곳이 많았다. 아내와 부지런히 돌멩이를 소쿠리에 담아 걷어내고, 나무뿌리를 뽑았다.

지대가 높아 봄에 감자를 심으면 한 300kg 정도, 가을에는 무를 한 500kg 정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멧돼지 같은 산짐승이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사람들이 몰래 훔쳐가는 양이 많아서 도둑을 얼마나 잘 막을지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질 것이다. 성철씨는 유실량을 각각 100kg씩 잡아 올해 최소한 감자 200kg에 무 400kg 정도만 얻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면 겨우내 집에서 먹고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것이다. 성철씨는 “농장 포전은 나의 포전이라지만, 급경사 돌산에 일군 뙈기밭이야말로 온전하게 나의 포전이다. 나의 포전만 있으면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직생활 더 세졌다”

올해 들어 각 직장인과 농장원 등의 조직생활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퇴근 시간 엄수는 물론이고, 강연회와 학습, 생활총화 등의 참석점검이 엄격하다.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노동자 김철웅(가명)씨는 “직장에 나가도 할 일이 없는데, ‘나오라, 들어가라’성화를 부리고, 학습이요, 선서요 하는 행사가 유독 많아졌다. 노동자들한테 조금이라도 한가한 시간이 안 생긴다. 전에는 그래도 직장에 출근표만 내고 집에 들어가서 안해를 도와 장사라도 거들어줄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럴 시간이 없다. 장군님이 돌아가신 뒤에 부쩍 그런 것 같다. 조금도 틈을 안 주니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녀맹원 리소영(가명)씨도 “노력동원을 할 때 무슨 선서를 한 적이 없는데, 김정은 동지를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겠다”는 선서를 하고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충성의 선서 모임은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혁명과업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으로, 국가 명절이 끝나고 난 이튿날 출근 첫 시간에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제는 돌격대를 조직해 전투(각종 과업)를 시작할 때에도 김정은 부위원장의 혁명과업을 달성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있다.

주민들, 중간간부 불신 심각

중앙당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주민동향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중간간부층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하다고 결론 내렸다. 중앙당이나 고위간부층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는 편이었지만, 중간간부들이 허위보고를 올리거나 폭압 정치를 펴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호위사령부와 보위부에서 수집한 내용에 따르면, “중간에서 기만적인 보고서를 올려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이만큼이나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들의 생활이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리보전에만 급급하고 자기 배만 채우는 중하층 간부들은 없어져야 한다. 중간간부들이 나라와 수령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머니와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간부를 누구로 바꾸든 이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중간 간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했다.

주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고도 올라갔다. “전쟁만 나면 보안원들부터 손 봐 주겠다”는 식으로 보안원이나 보위부에 대한 반감도 전국 각지에서 수집됐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함흥의 한 시장에서 로친 한 명이 장사꾼과 가격이 싸다, 비싸다 한창 언쟁하다가 격분해서 ‘이거 어디 돈 없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전쟁이나 콱 나버려라’고 말했다. 그때 바로 뒤에 서있던 보안원을 본 로친은 ‘전쟁을 하더라도 우리가 이길 게 분명하지 않냐’며 얼른 수습했다. 보안원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상당히 높은데, 아마 그때 보안원이 없었으면 어떤 말이 더 나왔을지 모른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들 그 로친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빨리 무슨 일이 터졌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살기는 어려운데 통제가 점점 심해져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단속하는 보안원들이 주민들의 직접적인 불만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국 돼지목장 건설 바람

올해는 어떻게든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취지에서 전국에 돼지목장 건설 바람이 불고 있다. 인민에게 이밥과 고깃국을 마련해주자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각 시, 군에서는 돼지목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있던 축사를 정비하는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축사를 새로 마련해야 하는 지역에서는 건설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축사는 어찌해본다고 해도, 분뇨처리시설을 마련하거나, 방역시설이나 상하수도 시설, 사료제조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작년에 완공된 몇몇 돼지목장에서는 옥수수사료와 24시간 전력 보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돼지목장 추가 건설은 당장 주민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인민은 굶고 있는데, 돼지들은 옥수수 사료를 먹는다. 또 돼지목장에는 24시간 전기를 주면서 주민 세대에는 전기를 안 준다”며 사람이 돼지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속속 접수되기도 했다. 중앙당은 고심 끝에 지난 2월 18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민 세대에 전기를 공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단백질 공급원이자 대체 식량이기도 한 돼지 축산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불안정한 전력 공급을 일부 정기적으로 공급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일부 간부들은 아직 돼지목장 건설은 시기상조라며, 토끼, 염소, 산양 같은 초식가축 사육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