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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25호

■ 경제활동

2006년 7월호 군관들, 배급과 월급만으로 생계 곤란

군관들, 배급과 월급만으로 생계 곤란

북한 인민군 생활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일부 특수부대, 훈련소, 연락소, 비행사, 잠수 승조원, 후방부문 군부대 등을 제외한 일반 병사와 군관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공급품이 군단, 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로 내려오는 과정 중에 빼돌려져 일반 사병과 직급 낮은 군관들에까지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늘 허기진 군인들이 민간인 집을 털거나 돼지, 닭, 소 등 가축을 팔아먹는 일을 종종 벌이기 때문에 민심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특히 군관 지위란 체면 때문에 배급과 월급만으로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대부분의 군관들은 생계유지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옥수수밥에 소금국을 먹는 게 전부이고, 자녀들 옷도 시장에서 사주지 못해 그저 군에서 주는 옷만 겨우 입히고 있다. 군인 생활 개선을 위한 대책으로 자체 부업지, 후방기지를 꾸려 스스로 알아서 개선하라고 하지만 좀처럼 군관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또 군인 신분이면 버스나 기차 등을 후불권으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출장이 잦은 군인들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을 윽박질러 무임승차하는 불법적인 방법을 종종 쓰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보위원이나 후방부문에 자리가 나면 뇌물을 써서라도 자리를 옮길 기회를 엿보는 군관들이 부쩍 늘고 있다.

2006년 7월호 그래도 ‘먹을 날이 있는’ 국경수비대

그래도 ‘먹을 날이 있는’ 국경수비대

국경수비대는 그래도 ‘먹을 날이 있는’ 직업군에 속한다. 하루 한 끼니 먹기도 힘든 사회에서 계급 낮은 병사들도 살기가 어렵지만, 국경수비대는 그나마 먹을 것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수비대의 대원들은 겨울철이 되면 중국 농촌 마을 한 집을 정해 순번제로 드나들며 훔친 닭이나 음식을 먹고 다시 되돌아가곤 한다. 또 비법월경자들로부터 몰수한 골동품이나 기계부속품 등을 중국 사람에게 넘기고 대신 술, 담배, 기타 필수품을 얻기도 한다. 밀수, 도강, 탈북 등을 직접 도와주고 돈을 받는 국경수비대의 행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국경수비대에 근무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챙길 것이 생기기 때문에 여기에 배치 받기 위해 끈을 대거나 뇌물을 고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또 주둔기간을 늘리고, 주둔 기간 동안 더 많이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장사도 하기 힘든 시골에서 올라온 군인들은 자원병이 되어 제대기한을 넘기면서까지 몇 해씩 더 근무하기도 한다. 제대해서 집에 돌아가면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6년 7월호 “저 보안원, 몇 달은 잘 살겠네”

“저 보안원, 몇 달은 잘 살겠네”

안전보위 일꾼들(보안원, 보위부원 등)의 주민 검열과 단속이 심해지는 가운데 무상몰수 등으로 인한 주민 피해도 계속 늘고 있다. 청진에서 국경연선지역으로 올라 온 한 중년 여성은 역 근처 골목길에서 손님과 마른 해삼 2kg을 놓고 흥정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해삼은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물건이란 이유로 그리고 장사를 아무 곳에서나 한다는 이유로 보안원으로부터 공민증을 요구받았다. 단속에 걸린 그 여성은 “변경지구에 가격이 좋다고 하니 세 집의 돈을 모아서 내가 부탁받고 왔는데, 처음이고 몰라서 이런 곳에서 흥정했으니 잘못 했다”고 사정했다. “이 해삼을 몰수하면 나는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돌아가도 다른 사람을 대할 면목이 없다”면서 다리를 부둥켜안고 애걸복걸했으나, 오히려 발로 걷어차이면서, 잡아가두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라는 핀잔만 들었다.

결국 몰수한 해삼을 들고 보안원은 사라지고, 큰 돈 들여 멀리까지 장사하러 온 여성은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주위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 보안원, 몇 달은 잘 살겠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리 뺏어가는 가”라며 수군덕거렸다. 이런 사례처럼 몰수한 물품은 국가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들이 나누어 가지거나 혼자 독식한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빼앗기면 그 물건 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금의 뇌물을 들여서라도 물건을 찾아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재산을 날릴 수밖에 없다.

평양행 열차에서 철도 보안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물건을 몰수하거나 뇌물로 살아간다. 수시로 수상한 짐을 검열하는데 그 때마다 수십 명씩 단속에 걸린다. 가치가 높은 물건일수록 물건의 내역, 출처, 용도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러다보면 검열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울며불며 사정하고 손발이 닳도록 빌어도 한 번 몰수한 물건을 쉽게 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뭇매를 당하기 쉽다. 여기에서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전에 술이나 담배 등을 뇌물로 주면서 단속을 피해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검열이 끝난 뒤에 자기들끼리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한 채 속으로 분을 삭이며 그들을 원망한다. 이런 식으로나마 자기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보안원들과 국가에서 금지한 물품이라도 팔아야 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먹고사는 것이 원수”일 뿐, 누구의 잘못이라 일방적으로 탓하기 어려운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2006년 7월호 같은 도시도 구역마다 빈부차이 달라

같은 도시도 구역마다 빈부차이 달라

북한 사회가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은 빈부차이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또 빈부의 차이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농촌과 도시가 다르고, 도시 내에서도 중심 구역과 다른 여타 구역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공장 기업소의 생산 여부, 전기 사정, 철도 및 자동차 운행 상태 등에 따른 유통의 차이와 지역마다 식량, 공업품, 필수품 수요에 대한 차이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5호)

일례로 농촌에서는 물건이 거의 없어 필요한 옷과 신발, 필수품 등을 구입하려면 멀리 시내까지 나와야 한다. 돈이 없어서 식량이나 텃밭에서 가꾼 채소, 또는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 약초 등을 시장에 내다 팔지만, 이것만으로 정작 필요한 소비품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시내 시장까지 나오려고 해도 자전거가 없으면 보통 100리 이상 걸어 다녀야 하므로 농촌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힘든 편이다. 일반 농민들은 한여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은 귀한 농작물을 필요한 것과 조금씩 바꾸어 살아가므로 도시 하층민의 생활수준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어렵다. (25호)

다만 농촌에서 간부를 하는 관리위원장, 당비서, 부기장(회계담당자), 사무장(농장내 행정처리, 대외업무), 작업반장, 마당장(탈곡장 책임자), 보위원 및 보안원 등은 그래도 국가 공직에 있는 관계로 식량과 고기, 채소 등을 싼 값(국정가격)으로 구할 수 있어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도시의 중간 계층민들에 비하면 생활 형편이 못한 편이다.

도시에서도 구역이나 동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하다. 회령시를 예로 들면, 역전동, 강안동, 남문동, 성천동, 오산덕동, 수북동, 7.8일동, 망양동, 유선동, 보을동, 계림동 가운데 역전동에는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 살고, 수북동이나 7.8일동은 하층민들이 주로 산다. 역전동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20~40평 아파트나 땅집이 400~700만 원선에 거래된다. 반면 수북동은 50~100만 원이면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있다. 만약 같은 집을 청진 수남 구역에서 구한다면 800~1,300만 원(3,000~5,000달러*)를, 평양시 중구역에서 방 2개짜리 집을 사려면 1,300~4,000만 원(5,000~15,000달러)까지 올라간다. 도시 내부의 차이도 차이지만 각 지역마다의 차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중에서도 평양이 제일이라면 사리원, 함흥, 청진, 회령, 라진, 신의주, 평성 등이 그 뒤를 따르는 잘 사는 도시들이고, 그 이외의 도시들은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 (*시장 환율: 1달러=2,700~2,800원)

2006년 7월호 상층 주민, 가정부 두고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상 지출

상층 주민, 가정부 두고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상 지출

한편, 북한 사회의 잘 사는 상층 주민들은 대체로 2,700~4,000만 원(10,000~15,000달러) 이상의 집에서 산다. 냉장고, 세탁기, TV, VCR, 녹음기, 열풍기, 흡진기(청소기) 등 각종 전자제품들을 갖춰 놓고, 30만 원짜리 침대에 80만 원짜리 가구를 들여놓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가정부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3~4인 가족 기준에 쌀 1kg 900원, 돼지고기 2kg 5,000원, 달걀 10알 1,700원, 명태 3마리 6,000원, 각종 과일 5,000원, 채소 3,000원 등 하루 평균 식비로 약 3만 원 정도 소비한다. 식비 외에 이러저러한 가계지출을 합치면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한다. 함경북도의 경우 이들의 수입원은 대체로 암거래, 마약 밀매매, 골동품 장사, 자동차로 식량이나 공업품을 나진이나 청진 등으로 실어 나르는 도매장사 등이다. 이들은 대체로 법일꾼(보위원, 검찰, 재판관 등)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2006년 7월호 중간층 주민, 한 달 평균 9만~15만 원 지출

중간층 주민, 한 달 평균 9만~15만 원 지출

함경북도의 경우 중간층 주민들은 150~400만 원 가량 되는 집에서 산다. 이들은 입쌀밥, 고기, 달걀, 채소, 술 등으로 하루 평균 약 3~5천 원 정도를 식비로 사용하며, 월 생활비로 10~15만 원 정도 지출한다. 이들의 수입 원천은 약간의 암거래와 도강, 중국 친척의 도움과 시장의 장사 등이다.

2006년 7월호 하층 일반주민 한달 평균 3~4만 원 지출

하층 일반주민 한달 평균 3~4만 원 지출

한편, 하층 일반 주민들은 20~150만 원 가량 되는 집에서 살고, 하루 평균 1천~1천 500원 가량을 끼니 해결에 쓴다. 이들은 입쌀밥 구경하기가 어려워 대체로 옥수수가 섞인 5대 5밥, 옥수수 국수, 채소 죽 등을 주로 먹는데, 이런 식으로 사는데도 한 달에 약 3~4만 원 가량의 생활비가 든다. 이들은 대체로 채소 장사나 남의 집 방구들 수리, 집수리, 오물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장사를 하고 싶어도 장사 밑천이 없어서 장사를 할 형편이 못 된다. 그나마 직장 월급이 유일한 현금 통로이지만 월급이 제 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애로점이 많다. 제 때 나오지 않는 1천 500~3천 원 하는 월급도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 살아가는 일이 무척 힘들다.

2006년 7월호 극빈층 주민, 빌어먹든지 훔쳐 먹든지

극빈층 주민, 빌어먹든지 훔쳐 먹든지

북한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가장 암담한 사람들이 바로 노약자, 장애자, 꽃제비 등의 취약계층이다. 자녀 없이 생계유지가 곤란한 노인들은 양로원에 가도록 되어 있는데, 가서도 곧 뛰쳐나와 걸식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에서 주는 약간의 배급과 돈으로는 배고픔을 달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로원에서의 생활 보장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인지라, 양로원에 들어오자마자 자기가 죽어 묻힐 무덤부터 파놓고 사는 노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집이 없거나 부모가 없는 꽃제비들도 구제소가 있지만 감옥과 마찬가지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경우가 많아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도적질을 하거나 시장에서 구걸하며 살아간다. 잠은 주로 허물어진 건물, 다리 밑, 쓰레기장, 강가에서 자는데,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매일 늘어나고 있어 문제이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해 이들도 먹고 살기 위해 걸식하며 산다. 시력 회복 가능성이 있는 맹인들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30만 원이 필요한데, 맹인 공장에 다녀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다리를 못 쓰는 사람들, 팔이 없는 사람들 등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소토지 농사를 짓기도 힘들어 빌어먹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이들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최하층민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걸식자가 늘다보니 길거리에 굶어 죽거나 쓰러져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다.

2006년 7월호 농촌 총동원령으로 꽃제비들 살아가기 힘들어져

농촌 총동원령으로 꽃제비들 살아가기 힘들어져

농촌 총동원기간에 시장이 서는 시간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으로 제한되는 바람에 꽃제비들이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저녁 6시가 되기 전까지는 시장에도 못 나가고, 길거리에도 다니지 못해 꼼짝 못하고 있어야 한다. 행여 길거리에 잘못 나섰다가는 구제소나 인근 농촌 지역으로 붙들려가기 쉽기 때문이다. 구제소에서는 음식을 준다고 하지만 옷이나 생활필수품은 지급되지 않고 있고, 음식의 질량이 형편없어 들어가는 즉시 뛰쳐나오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 구걸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꽃제비들에게 농촌 총동원 기간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 기간이다.

■ 논평

취약계층에 맞춤형 지원을 하자-2006년 7월호

취약계층에 맞춤형 지원을 하자

농촌 총동원으로 장사를 못해 힘들어하는 것은 일반 주민들만이 아니다. 그보다 오히려 당장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아야 하는 꽃제비들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꽃제비들이 누구인가?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들이다. 사회에서 더 이상 품어주기 버거운 장애인들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하는 연로한 노인들이다. 멀쩡한 대낮에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있어도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오늘도 그들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내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취약계층인 꽃제비, 장애인, 노약자, 고아, 노인, 산모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북한 당국에 각각의 대상자들에게 지원을 해달라고 지정기탁을 하자. 직접 지원을 할 수 있는 단체는 북한당국과 취약계층 사업을 구체적으로 타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른바 맞춤형 지원으로 각 수요자를 지정해서 최소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기대목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필요를 알아야 한다. 이는 북한 당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한 당국은 취약계층의 증가로 사회의 불안정성이 높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외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환영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하루빨리 북한이 요청한 식량 50만 톤을 지원해 긴박한 식량 사정을 풀어주기 바란다. 앞으로는 북한에서 먼저 지원을 요청하기 전에 해마다 예상 필요량을 상정해 조건 없이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충분히 지원해주면서 일반 주민 및 극빈층에게 배급이 되도록 요구하고 감독하자. 조금 지원해서 상층부 사람들에게 끝나도록 하지 말자. 일반 주민들에게 도달할 때까지 넘치도록 지원하자. 그렇지 않으면 취약계층을 구제할 길이 없다.

저곳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언젠가는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동포, 한 형제들이다. 정치적 잣대로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삼는 일만큼은 더 이상 하지 말자. 통일을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민생부터 해결하자.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민족과 통일을 외치는 자들은 다 거짓일 뿐이다. 북한 정부도 남한 정부도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하루빨리 해결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는 정책을 펴라.

■ 시선집중

빈부격차 갈수록 커지는 북한 사회1-2006년 6월

빈부 격차 갈수록 커지는 북한 사회 같은 도시도 구역마다 빈부차이 달라

북한 사회가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은 빈부차이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또 빈부의 차이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농촌과 도시가 다르고, 도시 내에서도 중심 구역과 다른 여타 구역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공장 기업소의 생산 여부, 전기 사정, 철도 및 자동차 운행 상태 등에 따른 유통의 차이와 지역마다 식량, 공업품, 필수품 수요에 대한 차이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농촌에서는 물건이 거의 없어 필요한 옷과 신발, 필수품 등을 구입하려면 멀리 시내까지 나와야 한다. 돈이 없어서 식량이나 텃밭에서 가꾼 채소, 또는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 약초 등을 시장에 내다 팔지만, 이것만으로 정작 필요한 소비품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시내 시장까지 나오려고 해도 자전거가 없으면 보통 100리 이상 걸어 다녀야 하므로 농촌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힘든 편이다.

일반 농민들은 한여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은 귀한 농작물을 필요한 것과 조금씩 바꾸어 살아가므로 도시 하층민의 생활수준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어렵다. 다만 농촌에서 간부를 하는 관리위원장, 당비서, 부기장(회계담당자), 사무장(농장내 행정처리, 대외업무), 작업반장, 마당장(탈곡장 책임자), 보위원 및 보안원 등은 그래도 국가 공직에 있는 관계로 식량과 고기, 채소 등을 싼 값(국정가격)으로 구할 수 있어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도시의 중간 계층민들에 비하면 생활 형편이 못한 편이다. 도시에서도 구역이나 동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하다.

회령시를 예로 들면, 역전동, 강안동, 남문동, 성천동, 오산덕동, 수북동, 7.8일동, 망양동, 유선동, 보을동, 계림동 가운데 역전동에는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 살고, 수북동이나 7.8일동은 하층민들이 주로 산다. 역전동에서 집 한 채를 사려면 20~40평 아파트나 땅집이 400~700만 원선에 거래된다. 반면 수북동은 50~100만 원이면 비슷한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있다. 만약 같은 집을 청진 수남 구역에서 구한다면 800~1,300만 원(3,000~5,000달러*)를, 평양시 중구역에서 방 2개짜리 집을 사려면 1,300~4,000만 원(5,000~15,000달러)까지 올라간다. 도시 내부의 차이도 차이지만 각 지역마다의 차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중에서도 평양이 제일이라면 사리원, 함흥, 청진, 회령, 라진, 신의주, 평성 등이 그 뒤를 따르는 잘 사는 도시들이고, 그 이외의 도시들은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 (*시장 환율: 1달러=2,700~2,800원)

빈부격차 갈수록 커지는 북한사회2-2006년 6월

상층 주민, 가정부 두고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상 지출

한편, 북한 사회의 잘 사는 상층 주민들은 대체로 2,700~4,000만 원(10,000~15,000달러) 이상의 집에서 산다. 냉장고, 세탁기, TV, VCR, 녹음기, 열풍기, 흡진기(청소기) 등 각종 전자제품들을 갖춰 놓고, 30만 원짜리 침대에 80만 원짜리 가구를 들여놓고 사는 것이 보통이다. 가정부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3~4인 가족 기준에 쌀 1kg 900원, 돼지고기 2kg 5,000원, 달걀 10알 1,700원, 명태 3마리 6,000원, 각종 과일 5,000원, 채소 3,000원 등 하루 평균 식비로 약 3만 원 정도 소비한다. 식비 외에 이러저러한 가계지출을 합치면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한다. 함경북도의 경우 이들의 수입원은 대체로 암거래, 마약 밀매매, 골동품 장사, 자동차로 식량이나 공업품을 나진이나 청진 등으로 실어 나르는 도매장사 등이다. 이들은 대체로 법일꾼(보위원, 검찰, 재판관 등)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중간층 주민, 한 달 평균 9만~15만 원 지출

함경북도의 경우 중간층 주민들은 150~400만 원 가량 되는 집에서 산다. 이들은 입쌀밥, 고기, 달걀, 채소, 술 등으로 하루 평균 약 3~5천 원 정도를 식비로 사용하며, 월 생활비로 10~15만 원 정도 지출한다. 이들의 수입 원천은 약간의 암거래와 도강, 중국 친척의 도움과 시장의 장사 등이다. 하층 일반주민 한달 평균 3-4만 원 지출 한편, 하층 일반 주민들은 20~150만 원 가량 되는 집에서 살고, 하루 평균 1천~1천 500원 가량을 끼니 해결에 쓴다. 이들은 입쌀밥 구경하기가 어려워 대체로 옥수수가 섞인 5대 5밥, 옥수수 국수, 채소 죽 등을 주로 먹는데, 이런 식으로 사는데도 한 달에 약 3~4만 원 가량의 생활비가 든다. 이들은 대체로 채소 장사나 남의 집 방구들 수리, 집수리, 오물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장사를 하고 싶어도 장사 밑천이 없어서 장사를 할 형편이 못 된다. 그나마 직장 월급이 유일한 현금 통로이지만 월급이 제 때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애로점이 많다. 제 때 나오지 않는 1천 500~3천 원 하는 월급도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 살아가는 일이 무척 힘들다.

극빈층 주민, 빌어먹든지 훔쳐 먹든지

북한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가장 암담한 사람들이 바로 노약자, 장애자, 꽃제비 등의 취약계층이다. 자녀 없이 생계유지가 곤란한 노인들은 양로원에 가도록 되어 있는데, 가서도 곧 뛰쳐나와 걸식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에서 주는 약간의 배급과 돈으로는 배고픔을 달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로원에서의 생활 보장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인지라, 양로원에 들어오자마자 자기가 죽어 묻힐 무덤부터 파놓고 사는 노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집이 없거나 부모가 없는 꽃제비들도 구제소가 있지만 감옥과 마찬가지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경우가 많아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도적질을 하거나 시장에서 구걸하며 살아간다. 잠은 주로 허물어진 건물, 다리 밑, 쓰레기장, 강가에서 자는데,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매일 늘어나고 있어 문제이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해 이들도 먹고 살기 위해 걸식하며 산다. 시력 회복 가능성이 있는 맹인들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30만 원이 필요한데, 맹인 공장에 다녀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다리를 못 쓰는 사람들, 팔이 없는 사람들 등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소토지 농사를 짓기도 힘들어 빌어먹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이들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최하층민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걸식자가 늘다보니 길거리에 굶어 죽거나 쓰러져 있어도 쳐다보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