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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다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19일

과 20일 이틀간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심의했다. 소속 위원 18명은 이틀간 진행된 심사를 통해 북한이 제출한 2차 정기 보고서를 토대로 지난 90년대 후반에 발생한 북한의 식량부족과 자연재난이 주민의 생활과 보건, 교육, 문화 활동에 미치는 충격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북한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통칭 A규약)’의 비준 당사국으로, 지난 91년 위원회의 심사를 받았으나 2차 보고서는 예정 시한을 훨씬 넘긴 지난해 5월에서야 뒤늦게 제출한 바 있다.

북한에서는 리철 제네바 대표부 대사와 평양의 관계부처 관리들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참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비교적 성실한 태도로 답변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모든 인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계층간 차별은 있을 수없다는, 틀에 박힌 답변을 되풀이해 위원들은 물론 일부 국가와 비정부기구(NGO) 옵서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북한측 답변은 식량난과 경제위기로 북한 주민과 아동의 ‘식량인권’이 제대로보호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을 집중 부각하고 각종 제도가 국제인권협약의 기준을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법적, 제도적 내용을 지루하게 나열하는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위원들이 사용한 일부 인권 관련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적절한 답변이 이뤄지지 않았고 북한측이 내세운 동시통역사가 실수나 고의인지는 알 수없지만 몇차례 부적절한 표현을 생략하거나 순화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위원들은 탈북자 문제도 집중 질의했지만 충실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이에 대한 답변에서 ‘중국’을 전혀 입에 담지 않았다. 중국 국경을 넘어간 여성들의 인신매매와 관련한 어느 위원의 질의에 대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국내인신매매는 이제는 과거사라고 답변하는 등 몇차례 ‘동문서답’식의 답변이 나와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다만 북한이 식량난의 이유를 `외세의 경제제재’ 탓으로 돌리면서도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고 전력난을 인정하면서도 경수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정치적 측면을 크게 고려한 것 아니냐고 옵서버들은 지적했다.

북한측의 어느 대표는 ‘꽃제비’ 문제에 대해서는 식량난이 심각했던 95-96년 사이에 ‘거리의 아이들’이 생겼다면서 국가가 특별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강원도와 함경남도, 함경북도의 산간 지방에서 문제가 발생해 여관에 ‘거리의 아이들’을 수용한 뒤 식량을 긴급 지원하고 특별 지도교사를 보냈다고 말하고 식량공급이 그후 정상화돼 현재로서는 ‘거리의 아이들’이 없다고 답변했다.

A규약 심의를 줄곧 지켜본 옵서버들은 북한이 뒤늦게나마 보고서를 제출했고 10명의 인원을 심사준비에 투입해 나름대로 성의를 보여주었고 비록 표현은 여전히 투박했지만 종전의 적대적인 어조는 사라진 점은 주목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4월 북한이 유엔 인권위의 대북 결의안 채택에 자극을 받았을 수도 있어 우려가 있었지만 일단 유엔의 인권관련 회의에 계속 참가하고 있다는 점도 일단 긍정적이라는 것이 이들의 총평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식량난과 이에 따른 경제, 사회, 문화적 파장을 인정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데 대해서는 국제 지원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한편 심형일 중앙재판소 참사는 이날 종결 발언을 통해 북한의 2차 보고서가 장기간 지연된 이유는 식량난과 자연 재해로 발생한 상황변동 탓도 있었다면서 유감을 표시했으며 앞으로 위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장은 2차 보고서의 지연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3차 보고서는 예정대로 제출할 것과 진전사항을 담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1주일뒤 심사 결과를 요약하고 권고사항을 담은 ‘결론적 관찰’보고서를 발표한다.

이번 회의에는 영국과 덴마크 대표부에서 관계자가 참석했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국제인권연맹(FIDH)과 같은 국제 NGO, ‘좋은 벗들(GOOD FRIENDS)’와 같은 국내 NGO도 참가해 시종 질의와 답변을 주시했다. 특히 국제인권연맹과 ‘좋은 벗들’은 이번 회의에 북한의 경제, 사회,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며 국제적인 주목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의 인권 관련 심사 과정을 처음 지켜봤다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라지브나라얀 박사는 북한측의 이해 부족도 있었지만 위원들 쪽에서도 북한 사정을 숙지하지 못한 듯한 질의가 있었던 것도 문제점이라고 촌평했다.

FIDH와 ‘좋은 벗들’은 유엔 본부에서 한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리철 대사가 전날 NOG의 보고서를 신뢰성이 없으며 북한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말한데 대해 북한측은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대화의 기회를 상실했다고 개탄했다. 시디 카바 FIDH 의장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벽에 대고 말한 듯한 느낌"이라면서 "국경 지역의 인신매매,재해 대책, 남녀평등 같은 주요 문제에 대한 구체적 조치가 결여된 점은 심히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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