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렇습니다.

평화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눈물이 먼저 납니다.

그것은 진정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 때문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참담하고 비참한 고통,

그로 인한 마음의 아픔 때문입니다.

저는 왜 이리 서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리 통곡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리

왜 이리

고통스러운 영상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아마도

‘평화’를 마음에 떠올리는 순간

정반대의 현실세계를 직시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공포에 신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계속 살아야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아니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롭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이를 알까요.

미국의 이라크 전쟁,

한국의 이라크 파병결정,

북핵위기,

천성산, 북한산, 새만금, 부안 핵폐기장 문제…

카드빚 자살, 살인, 친자녀 동반 자살…

각각 별개의 사건들인 것 같지만

사실 동일한 사건입니다.

바로 ‘죽이는 문화’ 속에

우리 모두가 갇혀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이는 문화에서 서로를 살리는 문화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눈물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씨앗은 뿌려야 싹이 트고

수고를 하여야 열매를 얻습니다.

사랑하라고 합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나와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전쟁을 삶의 방편으로 삼고

무기에 기생하여 살아가며

독재철권의 맛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저들 안의 두려움을 연민 하라고 합니다.

제가 짜증내고 성질 내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일 때

그러하듯

그들도 저와 똑같은 사람들일뿐이니…

저들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의

그 강고한 심성을 연민 하라고 합니다.

저들 모두는 곧 나와 연결된 존재들,

곧 내 자신 혹은 우리 자신들이니까요.

때로 우리는 뻔해 보이는 당위 속에서 불현듯 진실을 감지해냅니다.

평화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우리 각자가 절실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각자의 마음 밭에 싹으로 움터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도 이제 눈물을 거두고 제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을 돌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올해는 더 자라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