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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좋은이웃되기(2)/오태양

경주 달빛 아래 이야기꽃 피었습니다.

– 2003 좋은이웃되기 전국송년모임 –

오태양(통일사업부 간사)

12월 13일, 2003년 남북한동포 좋은이웃되기 전국송년모임이 열렸던 탑곡의 밤공기는 유난히 차가웠습니다. 대형차는 들어갈 수 없는 마을 입구에 내려 겨울 달빛이 일러주는 오솔길을 따라 삼삼오오 걸으며 이야기꽃이 소곤소곤 피어납니다. 이런 길을 따라 걷노라면 삼엄한 감시를 피해 목숨걸고 넘나들던 오래지 않은 고향의 밤길도 떠오른다고도 하였습니다. 고향의 겨울밤도 오늘처럼 차고 아득했었겠지요.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등 전국에서 좋은벗들 자원봉사자와 북한동포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좋은이웃되기’ 활동을 통해 낯익은 얼굴들도 있었고, 처음 얼굴 마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2003년 한해동안 ‘남북한동포 좋은이웃되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인연이 참으로 소중하니 해를 넘기기 전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한해를 함께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더욱 뜻깊게 맞이하자는 취지가 먼길 달려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의 전부라고 하겠습니다.

함께 둘러앉아 통일체육축전 영상비디오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애틋하기도 하고, 화면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에 쑥쓰러워 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올해 처음 치루어진 통일체육축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큰 행사였습니다. 전국에서 북한동포와 자원봉사자 75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신명나는 대동의 장을 마련했으니까요. 많은 동포분들께서 한국땅에 발을 들여놓은지 참으로 오랜만에 걱정없이 즐겨보았다고 했고, ‘우리도 이렇게 힘을 모으면 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구나’ 하는 자긍심도 생겼다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함께 준비했던 많은 자원봉사자 분들도 서로가 하나되어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봉사한 보람과 의미를 느꼈고 ‘남과 북이 장차 평화롭게 통일된 모습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라는 잔잔한 감동을 체험했다고도 하셨습니다. 통일체육축전을 통해 통일된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갈 미래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에 담아두었던 묵은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동포들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하셨고, 가족을 도우러 중국에 갔다가 행방불명된 친구의 사연을 내어놓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같은 동포의 처지에서 북한에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는 일에 얼마라도 보태고 싶다는 소박한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동포들을 위해 애쓰는 좋은벗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자신도

한달에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씀하셨지요. 나이 지긋하신 동포분은 ‘탈북자’라는 용어가 동포들을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호칭이라며 토론해 볼 만한 주제를 던지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픈 사연들, 소박한 소망들, 사회적 현안들이 경계없이 오고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픈 사연일랑 보다듬고 함께 나누어 그 짐을 덜어내고, 소박한 소망들은 모으고 모아 통일의 작은 물줄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현안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좋은벗들이 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고, 그 길에 동포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이른 아침 새벽공기를 가르며 천년의 고도인 경주탐방길에 나섰습니다. 겨울 바람이 다소 매서웠지만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을 보았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은 불국사에 들러 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지혜와 철학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북한의 식량난과 그로인한 북한민중의 고통은 모두 전쟁과 분단이 낳은 우리 민족의 아픈 생채기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역사적 과오와 회한으로 남아 우리를 짓누르는 과거사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평화로운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새겨진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교훈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1박 2일동안 함께 하셨던 좋은벗들 대표 유수스님의 말씀처럼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돌들이 버릴 것 없이 쓰여져 아름답고 정교한 불국사를 이룬 것처럼, 우리 모두도 서로 생김과 재능과 성격이 다르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의지해 조화로운 하나를 지향해 간다면 우리 각자도 통일을 일구어 가는데 기여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북한동포들도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벗어나, 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누고 봉사하며 통일을 위해 무엇 하나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보았습니다. 남북한 동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통일 한반도, 이것이 좋은벗들이 추구하는 통일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룻밤 함께 지냈을 뿐인데도 정이 들었는지 작별인사가 길어집니다.

2003년 ‘좋은이웃되기‘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과 애정이 2004년 새해에는 통일꽃으로 만개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