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갑문님의 생활 속 통일이야기

동포와 나누는 이웃의 정

목요일 저녁, 설갑문님을 뵈었다. 마침 오늘은 정토회관 저녁 당직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환하게 인사하고 마주 잡은 손이 유난히 검고 까칠까칠하다. 10년째 레미콘 운전을 하고 계시는 고되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자이크 붇다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회관지킴이 요일당번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저는 정말이지 내세울거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시는 설갑문님. 하지만 수년째 북한동포들과 이웃사촌으로 교류하고 계신다는 사연을 듣지 않고서는 베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좋은벗들이 200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동포 좋은이웃되기’를 이미 당신의 생활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해 나가고 계셨다.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설갑문님께서 현재의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에 이사 오신 것은 97년의 일이라고 하셨다. 현재 양천구는 국내에 정착하는 북한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지로 배정받는 지역으로서 약 500여명의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 이사오실 때만 해도 동포들의 수는 매우 소수였고, 사는지조차 모르는 주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바로 위층에 사셨던 한 동포청년에게 먼저 문을 두드린 것은 설갑문님이셨다.

“처음에는 북한동포라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고 떨리더라구요. 하지만 불자로서 떳떳하고 당당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지요. 불자로서 두려울게 없다는 마음가짐이었지요”

망설임끝에 용기를 내어 먼저 두드린 문은 진심으로 이어져 마음의 빗장도 조금씩 열어갈 수가 있었다. 동포청년도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피하려는 시선으로 한창 주눅들었던 차에 설갑문님과의 만남이 뜻밖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삼촌이라 부르며 마음을 주었던 것은 그만큼 거사님의 사심없는 본심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청년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북한동포와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하신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동포분들의 수가 양천지역에 늘어났고 이제는 길거리에서 만나도 먼저 인사를 하고, 이사 온 소식을 전해 들으면 여전히 먼저 아파트 문을 두드린다고 하셨다. 그렇게 인연 맺으시면서 혹여 실망해 본 적은 없으신가고 넌지시 여쭈어 보았더니 한마디로 잘라 말씀하신다.

‘아직까지 실망해 본 적은 없어요. 혹여 실망했다하더라도 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공부꺼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동포를 돕고 교류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된 큰 계기는 99년도에 법륜스님의 민족사강좌를 듣고 나서였다고 하셨다. 강의를 새겨들으며 서서히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모두가 한 핏줄이고 한 가족처럼 여겨졌다 하신다. 그래서 사람들과 처음 인연을 맺을 때도 의례히 묻는 고향이야기를 즐겨하시지는 않는다고 하신다. 애향심을 가지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출신처를 분별삼아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심고, 편가르기를 하는 빌미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북한출신’, 이 꼬리표도 우리사회에서 조금씩 ‘열등’과 ‘이등’이라는 낙인의 증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어 가고 있기도 하다.

북한동포들과 교류하는 모임을 만들고자 할 때 주변에서 많은 걱정과 만류가 심했다고 하셨다. 북한동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결국엔 만남과 대화의 노력마저도 등돌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현실을 걱정하시고 하셨지만 결국엔 당신의 몫을 강조하셨다.

“사람들이 등 돌리고 대화자체를 안하려고 할수록 제 할 일이 많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여러 면들이 있겠지만, 많은 동포분들이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슴의 응어리를 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설갑문님께서는 충분한 시간과 이해의 과정을 여러차례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찌보면 ‘좋은이웃되기‘가 지향하는 통일의 과정은 그것이 전부일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단 50년 세월이었지만 우리가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 하지만 통일된 이 땅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이웃사촌임을 자각하는 것’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그 일을 지난 7년간 묵묵히 실천해 오신 것이었다. 동포분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당신이 그런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염원하시는 것이리라.

설갑문님께서는 동포분들과의 일상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2년 전부터 거리모금도 실천하고 계셨다. 워낙 직장일이 정해진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 일주에 한번은 시간을 내어 거리모금을 하는 것을 스스로 약속하시고 출퇴근 지하철에서 하고 계신다.

“기도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거리모금을 하고 나면 제 스스로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도 수행삼아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하실 건데요?” 하고 여쭙자 당당하고 시원한 대답이셨다.

“만일결사 기간동안은 해야지요.”

그렇게 원을 세우셨다 하신다.

정토회를 만나 봉사를 통해 수행의 기초를 다지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셨고, 이제는 그것을 ‘모자이크 붇다 운동’으로, ‘남북한동포 좋은이웃되기’로, ‘거리모금’으로 실천하고 계셨다. 어찌보면 설갑문님께는 그렇게 굳이 이름붙일 만한 것들이 아닌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당신의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벗들이 추구하는 ‘좋은이웃되기‘ 또한 그러한 이치와 다르지 않다. 친구에게 손 내밀 듯이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동포들에게 이웃의 정을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은 이미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린지 오래이고, 남은 것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먼 길 에들러(?) 돌아 온 이웃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일일 것이다.

“양천에 오실 일 있으시면 바쁘신테 부러 시간내지 마시고 저한테 시켜주세요.

무엇이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설갑문님의 흔쾌한 말씀에 마음은 더없이 환해진다.

취재, 정리 : 좋은벗들 좋은이웃되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