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논평] 축산업을 유지하려니 사람 목숨이 가축 목숨보다 못해

이번 주엔 북한 정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지도 모를 소식이 전해졌다. 평양 주변구역의 한 축산협동농장에서 먹을 것이 없는 농민들에게 가축 사료를 배급했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이 충격적인 것은 사람에게 가축 사료를 줬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때문에 가축들이 먹을 게 없어져 축산업에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그 농장관리위원장이 6개월 권리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올해 농민들은 가축 사료로 준 옥수수 묵지가루보다도 더 나쁜 풀을 뜯어 먹으며 근근이 연명해왔다. 여름이 지나면서 미국의 지원 식량도 벌써 떨어지고, 햇곡식은 인근 부대나 건설노동자들과의 피 터지는 경쟁 속에 무장경비까지 서 가며 어렵게 지켜내고 있다. 농업성에서 알곡 수확고를 추산하기 위해 각 농장에 사람들을 파견했더니 다들 암울한 보고만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먹을 게 없으면 쓰레기장을 뒤져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게 사람목숨인지라 농장관리위원장 입장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도록 가축사료라도 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목숨을 살리겠다고 가축을 굶겨 죽이는 바람에 축산업에 피해가 생겨 농장 관리위원장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이 소식만으로는 북한 관리들이 축산업을 보호할 책무와 농민들의 목숨을 지킬 책무 사이에서 어떤 갈등과 고민을 겪고 있을지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다. 다만 사람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가축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현실, 또 가축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사람 목숨을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매우 가슴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북한에 조건 없이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로서는 사람 목숨도 살리고 축산업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