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벗들의 독서 모임
글·사진 김용안 (대전지역 활동가)
통일과 평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좋은벗들 활동가 김용안 님은 서울 노원에서 대전으로 이사한 뒤, 대전 활동가들과 함께 그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독서 모임을 열었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와 실제 방문 가정의 삶을 포개어 보며, 가깝고도 멀었던 이웃에게 한 걸음 다가간 그 따뜻한 여정을 전합니다.
가깝고도 먼 그대들
자식의 등짝에 힘껏 스매싱을 날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일해 등허리가 아파 끙끙거리다가도 다음 날이면 다시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 단단한 마음이 마냥 억세 보이는데, 원래 그런 것인지, 살면서 억세진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그대들.
그대들을 알아 온 지 10년이 되었어요. 어릴 적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하지만 내가 그대들의 속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어요. 내게는 그대들과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어요.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누군가를, 뒤에 남겨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서울 노원에서는 일상적으로 자주 오가며 좋은벗들 활동을 해 왔는데, 대전은 그동안 좋은벗들의 명절 방문만 이루어지던 곳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처음 찾아갔을 때는 얼굴은 보여 주지 않고 선물만 놓고 가라는 분, 선물만 받고 얼른 문을 닫는 분도 있었어요. 다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눈치였어요.
관계의 벽을 허무는 데는 일상 방문이 최고라고 생각해, 대전에서도 좋은벗들 일상 방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그대들의 삶을 좀 더 깊이 알아볼 방법을 찾아보기로!
사실 모든 관계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대들과의 만남에서는 늘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조차 제대로 만지지 못한 기분이었거든요. 그대들을 이해하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삶을 다룬 책을 읽어 보기로 했어요. 그러면 적어도 코끼리의 대략적인 모습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대전 좋은벗들 활동가들과 함께 두 권의 책을 골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책에서 만난 그대들의 모습
처음 읽은 책은 조천현 감독의 『탈북자』(보리, 2021)였어요. 첫 모임에는 좋은벗들 활동가 아홉 명이 참여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남한에서 고향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을 품고 사시는 분,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탈북하신 분,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서 가족에게 돈을 부치시는 분…… 막연하게 알고 있던 북한이탈주민의 상황과 마음을 책을 통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 일부 NGO 중에는 돈을 벌기 위해 탈북자를 모집하거나 기획 입국을 시도하는 곳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너무 화가 나요.”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마음을 나눴어요. 사람의 머릿수가 곧 돈이 되는 세상이 거기 있었어요. 돈을 받고 국경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 놓고는 어느 목장 앞에 내려놓고 가버리거나, 무작정 남한으로 갈 사람을 모집하는 단체에 걸려 공안에게 붙잡혀 갔어요. 한 사람의 탈북 과정에 여러 사람의 욕망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지요. 타인의 절박함을 돈벌이로 삼는 이들 탓에 그대들은 더욱 위태로운 처지에 놓였어요.
다만 저자는 이 책이 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들의 기록이며, 현재의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고 밝혔어요. 이런 일들은 나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벌어진 일이었어요. 통일이 되면 이런 아픔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에 또다시 통일을 꿈꾸게 되었어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그대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들려왔어요. 나이가 들수록 돌아가도 만날 사람은 줄어드는데, 죽기 전에 그 땅을 한 번 밟아 보고 친구를 얼싸안고 기쁨의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가 모두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요. “지금 남한에 오신 분들이 이런 마음이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고 왔구나.” 책을 함께 읽은 활동가들은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앉은 자리가 꽃방석이나 다름없음을 깨달았어요.

두 번째로 읽은 책은 김성경 교수의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창비, 2023)였어요. 저자는 북한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자료를 찾아보고 직접 인터뷰했어요. 여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소설처럼 풀어냈지요.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지요.
책 속 첫 번째 이야기는 천리마 시대의 노동 영웅 ‘길확실’의 삶을 보여 줘요.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가 인민군에 차출되고, 길확실 자신도 공장 노동자가 되어 고된 노동을 견뎠어요. 그의 삶을 따라가며, 당시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겹게 일하며 공장을 꾸려 갔는지 알게 되었어요. 노동 영웅을 세워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는 방식도 낯설고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당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컸다는 대목에서 문득 그대들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말이 겹쳐 떠올랐어요.
“야야, 얘는 집안이 당원 집안이라 편히 살았다. 나는 가난하고 힘도 없어 당원 되려고 죽어라 애썼지.”
책을 읽고 나니 그대들의 말이 한결 깊이 이해되었어요. 전쟁으로 평화로운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았어요. 남한이 겪은 고통만 생각했는데, 북한도 그만큼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더군요. 전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뼛속 깊이 깨달았어요.
다정한 이웃이 되어 가는 길
독서 모임을 통해 좋은벗들 활동가들은 지금 방문하는 가정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어요. 낯설게 보였던 말과 행동 속에서 그대들이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배경을 알게 되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책에서 얻은 이해는 가정 방문에서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세심하게 듣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힘이 되었어요.
“남한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대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당원으로, 노동자로, 군인으로, 무역상으로 살아온 그대들의 이력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생한 삶으로 다가왔어요. 마을 단위로 함께 노동하고 학습하는 공동체 중심의 삶이, 일부 북한이탈주민의 행동 양식과 관계 맺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내가 만난 그대들이 함께 모여 노래하기를 좋아한다든지, 친구 집에서 몇 달씩 지낸다든지, 친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모신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대들의 삶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이해가 깊어지면서 우리의 관계도 어느새 다정해졌어요. 처음에는 경계심 가득했던 분이 두 손을 꼭 잡고 “누님, 우리 누님 같아요.”라고 하거나, “내 여기저기 다녀 봐도 좋은벗들 선생님들이 제일 귀해요.”라고 할 때면 마음이 벅차올라요. 정 많은 그분들에게 좋은벗들이 좋은 이웃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껴요.

분단된 지 81년, 남과 북에는 서로 다른 관습과 풍습이 자리 잡았어요. 그러나 남과 북 모두 흥이 있고 함께 뭉치는 힘을 지녔다는 점은 분명 닮았어요. 통일축전에서 노래와 춤이 절로 어우러지고, 응원의 함성이 뜨겁게 터져 나오지요. 그 현장이 바로 증거예요. 남과 북이 더 많이 달라지기 전에, 서로 못 알아보기 전에 통일이 되어야 해요. 그게 어렵다면 교류라도 트여, 민족의 동질성을 되찾아 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지금 만나는 분들과 같은 분들이 북한에도 살고 있겠지요. 우리가 평양이든 서울이든 어디서든 만난다면 분명 좋은 이웃이 될 거예요. 그러면 백두산과 한라산이 만나 흥겹게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요. 두만강, 압록강과 한강이 만나 흔들흔들 섞이며 먼바다로 나아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