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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가정을 위한 한국어 수업

글, 사진 : 신윤희/충주지역

안녕하세요. 저는 충주의 고려인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활동가입니다.
작년 10월부터 현재까지 4명의 활동가들이 일주일에 한 번, 가장이자 세 아이 엄마인 비올레따
(가명)의 한국어 수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비올레따가 퇴근 후 50분 정도 한국어 교재로 수업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국에 친구도 친척도 없어 활동가가 방문하면 친구가 온 듯 반가워합니다.
점점 더 좋은 이웃이 되어 가니 편한 만남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저에게도 따뜻한 이웃이 생겨 감사한 마음으로 활동합니다.

비올레따 가족과는 몇 년 전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국제구호단체 JTS가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초등학생과 다문화 가정에 방학동안 영양 꾸러미를 지원하는 활동을 통해 비올레따 가족과 인연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년에 두 번, 방학 기간에만 지원을 하다보니 만나면 어색하기도 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가정 형편을 상세히는 몰랐습니다.
이후 행복시민 모임에서 좋은 이웃되기 활동을 제안한 활동가로부터 비올레따 가족의 세세한 상황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올레따 가족이 한국에 잘 정착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소통이 잘 되어야 꼭 필요한 것들을 지원할 수 있으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려인 3세대인 비올레따의 남편은 러시아에서 생활했습니다.
큰 아들이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자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고, 2019년 가족 모두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2년간 정착에 애쓰며 열심히 일하던 중 비올레따 남편은 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러시아인인 비올레따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아이들의 보호자 신분으로 한 주에 7일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합니다.
자녀 셋 모두가 성인이 되면 비올레따는 보호자 비자로 더이상 한국에 체류할 수 없어 러시아로 돌아가야 합니다.
비올레따 가족들은 전쟁 등 어려운 러시아 상황 때문에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비올레따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며 귀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국어 공부 중인 비올레따>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한국어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지만 비올레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해 한국어를 배우러 갈 짬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 충주지역 활동가 한 분이 한국어 수업을 해주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뜻을 함께할 네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다문화센터 한국어 선생님께 교재와 수업 방식에 대해 자문을 구했고 활동가들이 모여 회의도 하며 수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주 1회,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한국어를 가르쳤고 공부한 내용, 평가와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처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라 잘 할 수 있을까 부담도 되었지만 모국어이기에 차츰 가르치는 게 편안해졌습니다. 지금은 첫번째 교재 수업을 마쳤고, 두번째 교재까지 준비한 상태입니다.
일상적인 안부도 묻고 친구와 대화하듯 즐겁게 봉사합니다.

비올레따도 한국어 수업을 할 때는 가장이 아닌, 학생이 되어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며 즐거워합니다.
잠시나마 고단한 일상을 잊고, 무언가를 배우는 순수한 기쁨으로 휴식하는 것 같아 저도 기뻤습니다.
저의 가르침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보람으로 고려인 가정이 필요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아가면서도 성실하게 일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비올레따의 의지력을 저도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제 아이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배운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올레따는 러시아에서 아이스 스케이트를 많이 탔다고 옛날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비올레따뿐만 아니라 사춘기 큰 딸과 막내 아들까지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비올레따가 쉬지 않고 일을 해야해 몇년간 휴가를 거의 가지 못했다 합니다.
자가용도 없고 휴가 시간을 내기도 힘든 형편이라 다 같이 청주로 아이스 스케이트 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육상선수 훈련 일정과 체육대회로 바빠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아직 가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고려인 가정과의 아이스 스케이트장 나들이를 꿈꿔봅니다.

비올레따 가족들은 러시아에 여권 재발급을 하러 다음달 잠시 다녀온다 합니다.
한국에서 비자 연장 신청을 하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방문하다 합니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 가는 것이 무섭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부담스러워 합니다.
고려인 가정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한국 국적 취득입니다. 법이 개정되거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사항이라 지금 당장 저의 힘으로 도울 수는 없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고려인 사례 등을 알아보며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국적 문제가 해결되어 한국에서 비올레따 가족들이 평화롭게 정착하길 바라봅니다.

나의 작은 마음과 노력으로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나도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이 가정이 평화롭게 한국에 정착하여 행복하게 지내길 기원하며 언제나 좋은 벗이 되어 함께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