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염원을 이어 온 활동가 이야기
울산 남구 지역 활동가 전소현 님은 2017년 무렵부터 10년째,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통일기도를 이어 오며, 역사학교와 역사기행 돕는이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통일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과 함께해 온 활동가들에 대한 감사가 전해졌습니다. 꾸준한 실천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어 가는 전소현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허허벌판에서 시작된 기도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 있으니, 그 아픔을 풀고 통일의 원을 이루는 데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17년 무렵, 당시 저를 담당하던 활동가께서 사천왕사지 통일기도에 함께 가자고 여러 차례 권하셨습니다. 새벽에 일부러 저를 태우러 오시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을 지나 다른 분도 태워야 하니 어차피 이 길로 오셔야 한다는 말씀에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방은 허허벌판이었고, 깜깜한 새벽에 몇몇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기도를 이어 갈수록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아졌습니다. 함께하는 활동가들도 참 좋았습니다.
경주 사천왕사지는 신라 때 명랑 법사가 이곳에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 비법을 행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곳에서 하는 기도가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꾸준히 기도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품어 온 통일의 원
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학창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역사 시간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일을 배우며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니,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이거 배우고 싶지 않아요. 왜 우리 집인데 남의 집에 와서 자꾸 이렇게 해요? 우리는 왜 이렇게 약해요? 저는 이런 게 너무 싫어요.”
갑작스러운 행동에 선생님께서 무척 놀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가 강하고 튼튼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단군신화를 배울 때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보다. 나라를 세운 뜻이니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큰아버지께서는 전쟁에 나가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이 제 마음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원래 한민족인데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이 참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통일이 되어 북으로 길이 열려야 미래 세대가 더 넓은 세상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통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이어 온 통일기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태풍이 몹시 심하게 불던 일요일입니다. 기도하려고 몸을 숙이면 바람에 밀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 또 넘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옆 사람도 저도 자꾸 넘어지는 모습에 나중에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추운 날에는 오히려 기도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춥고 힘들수록 간절한 마음이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는 궂은 날씨에 어떻게 기도하느냐며 걱정했지만, 저희에게는 그런 날의 기도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론 기도를 이어 가는 일이 언제나 수월했던 것은 아닙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추운 기도터에 서 있으면 발이 동상에 걸릴 것처럼 아려 왔습니다.
한번은 ‘내가 왜 이 새벽에, 이렇게 추운 곳까지 와서 기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다시 기도를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다. 나는 한다.’
그 후로는 ‘나는 가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씨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째 이어 온 기도, 함께한 활동가들
지금까지 통일기도를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동료 활동가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저를 이끌어 주신 활동가께서는 “편안하게 그냥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며 매주 차로 태워 주셨습니다. 함께 기도한 뒤에는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 함께 먹으려고 새벽 2시에 일어나 갓 지은 밥과 새로 만든 반찬으로 김밥을 싸 오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변함없이 김밥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오랫동안 사비로 사진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통일기도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카메라가 고장 나거나 준비하던 일이 바뀌어도 서로 도우며 해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걱정과 불안이 많았던 저에게도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웁니다. 저는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목탁을 치고, 차량 봉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함께해 주신 모든 활동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서
통일기도를 이어 오는 동안 역사학교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역사학교와 역사기행은 온라인에서 우리 역사를 배우고, 역사 현장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입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대해 위축된 마음과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교를 통해 우리 역사를 배우며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다른 분들도 우리 역사를 배우고, 후대에도 이 소중한 역사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 담당 활동가님께 봉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약 2년 전부터 역사학교와 역사기행 돕는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함께 배우며
역사기행을 하면서는 주제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습니다. 정조 이야기를 배울 때는 깊은 감명을 받고 참 좋았는데, 제주 4·3의 역사를 접했을 때는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제주와 광주, 정조 등 주제가 바뀔 때마다 제 안에서도 희로애락이 오갔습니다.
역사기행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궁금한 점을 여쭤보면 그곳에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해외에 계신 분들이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역사를 배우며 자부심을 느끼고, 아픈 역사 앞에서는 함께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 살면서도 우리 역사를 함께 배우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작게 시작하며, 더 큰 원으로
통일축전에서 북한이탈주민분들과 다 함께 응원하고 어우러져 춤을 추었던 일도 기억납니다. ‘꼭 진짜 통일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습니다. 정신없이 추다 눈을 떠 보니, 북한에서 오신 분들 한가운데에서 제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뭐 어때’하며 함께 어울렸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활동하면서 예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던 일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큰 기도를 하다 보면, 일상의 작은 일들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일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가정과 일터에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이어 가다 보니, 제가 가고자 하는 삶의 길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마음에 새겼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뜻을 지금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뜻을 우리가 이어받아 널리 펼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이롭게 하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금강산에 가서 정말 통일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때는 이미 통일이 이루어졌을 테니 세계를 위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