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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36호

■ 시선집중

농장원 김씨 할아버지의 하루

김씨 할아버지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전기를 못 본지 벌써 여러 날 되었다. 아직 세상이 어둠 속에 잠겨있어 깜깜한 사방을 더듬으며 부엌에 내려가 불을 지핀다. 깊은 산골이라 자기만 부지런하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 어제 저녁에 삶아 두었던 옥수수쌀 두 공기를 앉히고 아침을 짓는다. 반찬은 어제 산에서 잡아 온 산토끼 한 마리다. 기름도 간장도 없고, 다른 양념도 없으니 맹물에 삶았다가 칼로 썰어서 소금에 찍어먹으면 된다. 토끼를 삶고 남은 국물에는 밥을 말아 먹을 생각이다. 오래간만에 고기를 맛보니 마치 명절을 쇠는 기분이다. 돈 벌러 가겠다고 집을 나간 아들애와 며느리는 어디가 있는지 소식도 없다. 올해 아홉 살인 손자 아이가 토끼 고깃국 끓는 구수한 냄새에 언뜻 잠에서 깨어 세수도 안 하고 숟가락부터 찾아들고 가마 목에 앉는다. 맨 옥수수밥 한 공기를 떠놓고, 삶은 토끼를 건져 내어 고기를 썰어서 상에 올리자마자, 손자놈이 냉큼 맨 손으로 입에 넣는다. 한 달 넘게 고기 맛을 못 봐서인지 토끼 한 마리를 금새 다 먹어버린다. 할아버지 몫으로는 엉성한 대가리와 갈비 한 짝만 남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허허롭게 웃고는 토끼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지난해 가을, 먼저 떠난 로친(할머니) 생각이 난다. 로친은 식량에 보태려고 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멧돼지에게 몰려 산에서 굴러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산토끼인데, 살아있을 때는 산토끼 한 마리 잡기가 그렇게 어렵더니, 지금은 있어도 못 먹는구나 싶어 눈물이 저도 모르게 핑 돈다.

아침식사를 마친 김씨 할아버지는 농장에 출근한다. 작업반장이 불어대는 호각 소리에 농장원 몇 명이 보인다. 다들 머리가 아프다는 둥, 배가 아프다는 둥 많은 사람들이 안 나왔다. 경비실에 들려 출근 등록을 하고 작업반장이 시키는 대로 연장을 들고 나섰지만 날씨가 하도 추워 모두들 웅성거리고 서서 두 손을 싸쥐고 호호 불기만 하니 일은 하나도 안 된다. 반시간도 못 되어서 모두 경비실에 도로 들어와서 부엌 아궁이에 손도 쬐고 발도 쬐고 귀도 녹인다. 더러는 신문 종이로 염초를 말아 피우면서 한담을 주고받는다. 12시가 되자 모두 흩어져 제집으로 간다. 대충 점심 요기를 하고 집안을 치우고 나니 1시가 되었다. 손자 애를 조금이라도 온기 있는 가마 목에 눕힌 다음 헌 이불로 잘 덮어 주었다. 다 해어져서 꿰맨 양말을 2개 껴 신고 역시 꿰맨 군화를 신고, 산을 향해 바삐 움직인다. 놓은 지 오래 된 노루와 토끼 옥노(덫의 일종)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노루나 토끼가 걸렸다 해도 제때에 가보지 않으면 다른 산 짐승들의 먹이가 되거나 다른 사냥꾼들의 포획물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3시간 가까이 돌아보았지만 오늘은 헛물만 켰다. 돌아오는 길에 마른 장작을 몇 개 주어서 가는 오래기로 묶은 다음 어깨에 지고 내려온다. 농장 포전을 지날 때 아직 눈 속에 묻혀있는 옥수수단에서 옥수수를 다섯 이삭 가량 따서 나뭇단 곳에 넣어가지고 오니, 그나마 내일 식량은 해결한 셈이다. 5시가 되어 집에 도착하니 주위가 이미 새까맣다.

인민학교 2학년 은실이의 하루

은실이는 인민학교 2학년 학생이다. 아침6시가 되면 어머니가 깨우기 전에 알아서 착착 일어난다. 어머니가 차려준 옥수수밥을 먹고, 세수한 다음 책가방을 챙겨 메고 학교에 가면 7시다. 학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빗자루와 걸레를 찾아 청소를 한다.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운동장은 그만 두고 복도만 대충 쓸어둔다. 물이 없으니 책걸상과 유리 창문은 마른 걸레로 닦는다. 7시 반이 되면 수업을 시작하는데 오늘도 14명이 결석했다. 감기에 걸린 애가 12명이고 다리뼈가 골절되었다는 애가 한 명 그리고 엄마가 앓아서 어제 돌아가셨다는 애가 한 명이다. 절반이 줄어든 반은 가뜩이나 추운 겨울, 더 춥게 느껴진다. 난로를 피우지 못하니, 선생님도 손이 시린지 말로만 잠깐 설명하고 흑판에는 별로 글을 쓰지 않는다. 교실에서는 애들이 손을 모아 쥐고 입김으로 후우 후우 녹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12시가 점심시간이지만 밥을 가지고 온 애는 몇 명 안 된다. 일부는 구운 옥수수 알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씹어 삼키고, 더러는 옥수수떡을 품에서 꺼내어 쪼개 먹는다. 절반 더 되는 애들은 그저 덤덤히 앉아 있거나 시린 책상 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 아버지가 보위부원, 보안원이거나 간혹 당 간부라는 몇몇 애들만 한쪽에 몰려 앉아 밥다운 밥을 먹는다.

오후에는 수업이 없고 전교생이 마을 청소를 나간다. 영하 18도 날씨에 옷들도 별로 껴입지 못했으니 말이 청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면서 군데군데 서있을 뿐이다. 너무 배고프고 추워서 아이들은 떠들지도 않는다. 4시가 되어서야 하는 둥 마는 둥 청소가 끝난다. 두 손을 팔소매에 마주 껴 넣고, 그 사이에 빗자루를 끌어안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교실 안이 컴컴하다. 전기도 없으니 선생님도 별 수 없어 그대로 하학(하교)시킨다. 5시쯤 집에 도착하니 집안도 캄캄하다. 빈 집안을 청소하고 장에 나간 어머니 대신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어머니가 말아놓고 간 옥수수국수를 데우는 일이라 간단하다. 밖은 컴컴하여 전혀 앞이 안 보인다. 이를 덜덜 떨며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8시다. 전기도 안 오고 등잔불도 기름이 없으니 숙제고 뭐고 할 생각이 없다. 따뜻한 어머니 품에 파고들어 추운 몸을 녹이며 잠을 청하려 하나 너무 배고파서 잠이 잘 안 온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진다. 은실이는 내일 아침에는 뭘 먹을 수 있을까 온통 그 생각만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땔감 넘겨 파는 정옥이 엄마

올해 스물여덟 살인 정옥이 엄마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역 광장에 나간다. 촌에서 온 사람들에게 땔나무를 넘겨받기 위해서다. 3년 전만 해도 남편과 딸을 낳고 오순도순 살았는데, 지금은 남편과 딸을 모두 잃고 혼자 산다. 새벽 길목에 나뭇짐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땔나무를 넘겨받아 장마당에 팔면, 정옥이 엄마에게 떨어지는 건 겨우 천 원 남짓이고, 운이 좋아야 2천원 떨어진다. 오늘은 마음씨 고운 아저씨를 만나 별 흥정 없이 땔감을 8주머니나 넘겨받았다. 이걸 다 팔면 1,600원은 벌 수 있다. 밀차에 차곡차곡 쌓아 시장 어귀에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을 찾느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허리를 펴고 여유 있게 걷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절반은 뛰다시피 잰 걸음이다. 잔뜩 옹크린 채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다니는데 고되고 애타는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장사 나선 지 한 시간 만에 한 남자가 땔감을 사러 다가온다. 바지 무릎은 다 해어져서 꿰맸는데도 거무스름한 솜이 삐어져 나오고, 다 해진 군용 장화 뒷발축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거무튀튀한 얼굴을 보니 아마 한 달 넘게 안 씻은 모양이다. 눈빛은 초점 없이 퀭하다. 뭘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 같지 않다. 정옥이 엄마는 땔감을 내밀면서도, 이 돈이면 옥수수죽이라도 한 사발 사먹을 것이지 괜한 걱정을 한다.

옥수수죽은 자신도 먹고 싶다. 아침도 거른 채 나왔으니 벌써 배가 고프다. 찬바람이 옷깃으로 시리게 파고든다. 낡은 실로 뜬 속바지에다가 엷은 여름 군복색 바지를 입고, 팔부 적삼 위에는 역시 낡은 실로 뜬 스웨타 한 벌을 걸쳤다. 그 위에 다시 남편이 생전에 입던 동복을 입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선물로 준 러시아산 굵은 실로 짠 수건을 머리와 얼굴 절반에 칭칭 둘러 목까지 감았으나, 강풍이 불면 온몸이 덜덜 떨린다. 오전 11시쯤 되어서야 옥수수떡 한 덩이와 얼어버린 무 한 개를 사서 주린 배를 달랜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장사가 시원치 않다. 그럭저럭 7주머니를 팔았다. 땔감을 넘겨준 사람들에게 값을 치러주고 나니 1,200원 정도 남는다. 그래도 오늘은 나무 한 주머니를 남겼으니, 며칠 땔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옥수수국수 한 타래를 물에 불려 놓았다. 점심에 먹다 남긴 무 꽁다리를 채칼로 썰어서 양념을 하고 나서 국수를 삶으면 저녁 식사 준비 끝이다. 약간 물기가 있는 나무를 아궁이에 집어넣었더니 좀처럼 가마가 끓지 않는다. 남편이 있었으면 아궁이에 불이라도 때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진다. 외화벌이 돌격대원 채벌공으로 일하던 남편이 작년에 사고로 크게 다친 뒤 별 치료도 못 받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2주일도 안 돼 두 돌이 갓 지난 딸아이도 펄펄 끓는 고열에 구토와 설사가 심해 병원에 데려갔지만 약 한 알 써보지 못하고 보냈다. 남편과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아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하루하루 땔나무 넘겨받아 살고 있는 신세가 가련해진다. 그래도 리순금이라는 자기 이름보다는 정옥이 엄마라고 불러주는 게 좋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옆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잘 데워지지 않은 물에 덜 익은 국수라도 대충 한 그릇 때우고 나니 세상은 이미 암흑 속이다. 온 몸이 나른해지고 뼈마디가 쑤신다. 옷도 벗지 못하고, 얼굴 씻을 생각도 못한 채 가마 목에 이불을 덮고 나동그라진다. 까무룩 잠이 드는 순간에도 내일은 장사가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나간다.

땔감 팔아 연명하는 현숙씨의 하루

농장원 현숙씨는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눈곱을 뗄 생각도 못하고 옥수수쌀 한 공기에 언 배추 시래기 덩어리 2개를 넣어 옥수수시래기죽부터 쑨다. 얼마 전에는 중국산 맛내기를 조금 넣어서 간을 맞추었는데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후루룩 먹고 대충 세수한 뒤 문밖을 나서니 어느새 날이 밝아있다. 창고 자물쇠를 열고 밀차를 꺼낸다. 어제 남편이 해온 땔나무를 밀차에 싣고는 밧줄로 단단히 동여맨다. 족히 2시간은 밀어야 읍내에 도착한다. 걷는 동안 주린 창자가 몇 번이고 무섭게 요동친다. 역 광장에 도착하니 춥고 배고프다. 한낮이 되어서야 나무를 다 팔고, 그 돈으로 장마당에 가서 옥수수쌀을 몇 키로 산다. 점심을 거르고 너무 추워서 몸이라도 잠깐 녹이려고 친척 집에 들어가니 밥은 없어도 가마 목에 온기가 있다. 어린 조카의 조끼를 덮고 한참 누워 있다가 조금 움직일 만해 빈 밀차를 밀고 집으로 향한다. 도착하니 날은 벌써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옥수수쌀이라도 사오기를 기다리는 식구들을 생각해 서둘러 저녁을 지으러 부엌부터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옥수수밥을 용케 챙겨들고는 식구들을 먹인다. 전기도 없는 방안에 누웠지만, 몸이 아무리 고단해도 내일 끼니 걱정 때문에 쉬 잠이 들지 못한다.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만 해도 “우리 부지런히 일해서 꼭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는데, 결혼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하루 끼니 장만하기가 힘들다. 몸에 들어선 아기도 남편 몰래 몇 번 지웠다. 언제면 먹는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날이 올지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속도 모르고 걱정 없이 자는 듯한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진다.

인민갱 노동자 정학씨의 하루

탄광 노동자 정학씨는 아침 6시쯤 눈을 뜬다. 날이 채 밝지 않아서인지 하늘도 뿌옇고 추위도 맵짜다. 아내가 지어준 옥수수밥 한 그릇을 중국산 맛내기를 탄 따뜻한 물에 말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윗집 영삼이를 불러 여섯시 반에 집을 나선다. 아침 7시쯤 탄갱 입구에 도착하니, 동료 철호가 마침 와 있다. 그들은 탄광에 출근하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는 폐갱에 들어선다. 날마다 다니는 길이라 불을 밝히지 않아도 작업장에는 금방 도착한다. 폐갱인데다가 동발목을 다 끌어내어 화목(땔감)으로 써버렸으니, 언제 어디서 락석에 머리를 다칠지 모르지만 별 안전장치는 하지 못했다. 곁굴을 뚫어서 한 뼘 정도 되는 석탄층을 캐는 일인데, 오늘은 운이 좋다. 다 캐기만 하면 버럭이 다섯 지게는 되어 보인다. 희미한 초롱불빛을 빌어 한참 씨근거리며 일하여 겨우 한쪽 지게를 만들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옥수수 떡 2개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석탄을 굴 입구까지 메어 올리는데, 한 300kg쯤 한 것 같다. 오늘 벌이는 한 셈이다. 세 사람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서로 등짐에 나눠 이고 집으로 향한다. 평소에는 집에서 아내들이 나와서 석탄 버럭을 받아 바로 장마당으로 가곤 하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추워 나오지 말라고 했다. 버럭 무게가 상당해 여자들이 들기도 어려웠다. 정학씨의 아내는 탄을 받자마자 잽싸게 밀차에 싣고 장마당에 나간다. 날이 추워서 탄이 빨리 나가는데, 보통 석탄 한 양동이에 6천 원에서 7천 원 한다. 석탄을 더 많이 파는 사람들은 톤 단위로 팔기도 하는데, 1톤에 9-1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땔감은 한 주머니에 2천5백 원에서 3천원 하고, 1달구지에는 3만5천-3만6천 원 정도 한다. 정학씨네는 석탄 덕분에 옥수수밥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고 살기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폐갱을 찾아 나선다.

노모와 어린 딸 키우는 노동자 호석씨의 하루

호석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물통을 들고, 마을에서 300미터 떨어진 냇가에 물을 길러 나선다. 새벽 날씨라 혹독하게 추운데다 날이 밝지 않아 어둠 속을 더듬어 20여 분만에 냇가에 도착한다. 벌써 물을 길러 나온 사람이 보인다. 강기슭의 얼음장을 딛고 서서 한 물통 가득 물을 퍼 담는다. 언 손이 꼬부라져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물통 2개를 들고 제방 둑에 올라섰다가 휘청거리면서 물을 거의 절반 정도 쏟아버리고 만다. 떨리는 몸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한 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딸이 가마 목에 쪼그리고 누워 아직 깨지 않았다. 가냘픈 두 몸을 감싸고 있는 건 누더기 이불 한 채뿐이다. 자기가 덮고 자던 이불을 끄집어 그 위에 덮어보지만 무겁고 엉성하기만 한 이불이 처량하게 보일 뿐 온기는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부엌에 마른 나뭇잎과 삭정이를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 강냉이가루 두 사발과 배추 한 포기를 잘게 썰어 가마에 넣고 한 끼를 장만한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모진 생명만 질길 뿐이다.

호석씨의 아내는 2007년 어느 여름 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간 뒤 4년째 감감 무소식이다. 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도무지 기별이 없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날이 밝기 시작해 노모와 딸아이도 일어났다. 옥수수죽 한 사발로 아침을 요기하고 서둘러 출근한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장에 나가서 땔나무를 팔아야 하고 딸애는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 온종일 집에서 뒹굴면서 망을 봐야 한다. 8시가 되어 기업소 출근 등록부에 제 이름 석자를 적어놓고는 집에 들어왔다. 연장을 들고 앞산에 오른다. 장마당에 내다 팔 땔나무를 하기 위해서다. 세 식구의 명줄이 여기에 달려있다.

거의 두 시간을 걸어 산기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땔나무를 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나무를 하기도 쉽지 않다. 산림경비대를 피하느라 마음 놓고 굵은 나무를 하지도 못한다. 나무를 찍어서 잘게 끊고 쪼개 주머니에 채우기 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배가 고프고 덜덜 떨린다. 약한 바오라기(짧은 막대기)로 나뭇짐을 지고 다섯 번을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가 다시 지고 걷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어머니와 딸애가 나와서 나뭇단 내리는 데 손을 거든다. 아침에 먹던 옥수수죽 한사발로 끼니를 때우고 자리에 누었더니 인차 잠에 곯아떨어진다. 어머니는 아들의 곤히 자는 모습에 오늘 땔나무를 얼마나 팔았는지, 내일 먹을거리는 장만하였는지 묻지 않는다. 설거지를 끝낸 어머니와 딸아이도 가마 목에 누워 한 이불을 덮은 채 인차 잠이 든다. 온기 하나 없는 냉구들에서 하루가 또 지나간다.

2012년,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희망이 되자

칠흑 같은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물을 기르거나, 땔감이나 석탄을 캐기 위해서다. 엄동설한 눈길을 헤쳐 나무 한 단이라도 해오면 식구들 옥수수 죽이라도 먹일 수 있다며, 죽을병이 아니라면 잠시 쉴 생각도 못한다. 절대권위를 누리던 최고지도자가 사망하고, 해가 바뀌었어도 그들의 삶은 똑같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자기는 굶더라도 자식은 먹여 살리고 싶은 어미의 마음으로 버틸 뿐이다. 새해 첫 호를 맞아 특별히 몇 주민의 일과를 밀착소개 한다. 멈춰버린 공장과 농장에 나가도 할 일이 없는 많은 주민들이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단면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관계가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이다. 매일 무얼 먹을까 걱정하며 하루를 버티는 그들에게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으로 먹을 것을 줄 수 있고, 농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게 농자재와 비료를 지원할 수 있다. 남북경제교류협력을 활성화해서 북한 경제 전반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는 2012년을 만들자. 평화통일은 멀리 있지 않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설레는 일이 아닌가.

■ 식량소식

농장원 김씨 할아버지의 하루

김씨 할아버지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전기를 못 본지 벌써 여러 날 되었다. 아직 세상이 어둠 속에 잠겨있어 깜깜한 사방을 더듬으며 부엌에 내려가 불을 지핀다. 깊은 산골이라 자기만 부지런하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 어제 저녁에 삶아 두었던 옥수수쌀 두 공기를 앉히고 아침을 짓는다. 반찬은 어제 산에서 잡아 온 산토끼 한 마리다. 기름도 간장도 없고, 다른 양념도 없으니 맹물에 삶았다가 칼로 썰어서 소금에 찍어먹으면 된다. 토끼를 삶고 남은 국물에는 밥을 말아 먹을 생각이다. 오래간만에 고기를 맛보니 마치 명절을 쇠는 기분이다. 돈 벌러 가겠다고 집을 나간 아들애와 며느리는 어디가 있는지 소식도 없다. 올해 아홉 살인 손자 아이가 토끼 고깃국 끓는 구수한 냄새에 언뜻 잠에서 깨어 세수도 안 하고 숟가락부터 찾아들고 가마 목에 앉는다. 맨 옥수수밥 한 공기를 떠놓고, 삶은 토끼를 건져 내어 고기를 썰어서 상에 올리자마자, 손자놈이 냉큼 맨 손으로 입에 넣는다. 한 달 넘게 고기 맛을 못 봐서인지 토끼 한 마리를 금새 다 먹어버린다. 할아버지 몫으로는 엉성한 대가리와 갈비 한 짝만 남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허허롭게 웃고는 토끼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지난해 가을, 먼저 떠난 로친(할머니) 생각이 난다. 로친은 식량에 보태려고 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멧돼지에게 몰려 산에서 굴러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산토끼인데, 살아있을 때는 산토끼 한 마리 잡기가 그렇게 어렵더니, 지금은 있어도 못 먹는구나 싶어 눈물이 저도 모르게 핑 돈다.

아침식사를 마친 김씨 할아버지는 농장에 출근한다. 작업반장이 불어대는 호각 소리에 농장원 몇 명이 보인다. 다들 머리가 아프다는 둥, 배가 아프다는 둥 많은 사람들이 안 나왔다. 경비실에 들려 출근 등록을 하고 작업반장이 시키는 대로 연장을 들고 나섰지만 날씨가 하도 추워 모두들 웅성거리고 서서 두 손을 싸쥐고 호호 불기만 하니 일은 하나도 안 된다. 반시간도 못 되어서 모두 경비실에 도로 들어와서 부엌 아궁이에 손도 쬐고 발도 쬐고 귀도 녹인다. 더러는 신문 종이로 염초를 말아 피우면서 한담을 주고받는다. 12시가 되자 모두 흩어져 제집으로 간다. 대충 점심 요기를 하고 집안을 치우고 나니 1시가 되었다. 손자 애를 조금이라도 온기 있는 가마 목에 눕힌 다음 헌 이불로 잘 덮어 주었다. 다 해어져서 꿰맨 양말을 2개 껴 신고 역시 꿰맨 군화를 신고, 산을 향해 바삐 움직인다. 놓은 지 오래 된 노루와 토끼 옥노(덫의 일종)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노루나 토끼가 걸렸다 해도 제때에 가보지 않으면 다른 산 짐승들의 먹이가 되거나 다른 사냥꾼들의 포획물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3시간 가까이 돌아보았지만 오늘은 헛물만 켰다. 돌아오는 길에 마른 장작을 몇 개 주어서 가는 오래기로 묶은 다음 어깨에 지고 내려온다. 농장 포전을 지날 때 아직 눈 속에 묻혀있는 옥수수단에서 옥수수를 다섯 이삭 가량 따서 나뭇단 곳에 넣어가지고 오니, 그나마 내일 식량은 해결한 셈이다. 5시가 되어 집에 도착하니 주위가 이미 새까맣다.

인민학교 2학년 은실이의 하루

은실이는 인민학교 2학년 학생이다. 아침6시가 되면 어머니가 깨우기 전에 알아서 착착 일어난다. 어머니가 차려준 옥수수밥을 먹고, 세수한 다음 책가방을 챙겨 메고 학교에 가면 7시다. 학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빗자루와 걸레를 찾아 청소를 한다.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운동장은 그만 두고 복도만 대충 쓸어둔다. 물이 없으니 책걸상과 유리 창문은 마른 걸레로 닦는다. 7시 반이 되면 수업을 시작하는데 오늘도 14명이 결석했다. 감기에 걸린 애가 12명이고 다리뼈가 골절되었다는 애가 한 명 그리고 엄마가 앓아서 어제 돌아가셨다는 애가 한 명이다. 절반이 줄어든 반은 가뜩이나 추운 겨울, 더 춥게 느껴진다. 난로를 피우지 못하니, 선생님도 손이 시린지 말로만 잠깐 설명하고 흑판에는 별로 글을 쓰지 않는다. 교실에서는 애들이 손을 모아 쥐고 입김으로 후우 후우 녹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12시가 점심시간이지만 밥을 가지고 온 애는 몇 명 안 된다. 일부는 구운 옥수수 알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씹어 삼키고, 더러는 옥수수떡을 품에서 꺼내어 쪼개 먹는다. 절반 더 되는 애들은 그저 덤덤히 앉아 있거나 시린 책상 위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 아버지가 보위부원, 보안원이거나 간혹 당 간부라는 몇몇 애들만 한쪽에 몰려 앉아 밥다운 밥을 먹는다.

오후에는 수업이 없고 전교생이 마을 청소를 나간다. 영하 18도 날씨에 옷들도 별로 껴입지 못했으니 말이 청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면서 군데군데 서있을 뿐이다. 너무 배고프고 추워서 아이들은 떠들지도 않는다. 4시가 되어서야 하는 둥 마는 둥 청소가 끝난다. 두 손을 팔소매에 마주 껴 넣고, 그 사이에 빗자루를 끌어안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교실 안이 컴컴하다. 전기도 없으니 선생님도 별 수 없어 그대로 하학(하교)시킨다. 5시쯤 집에 도착하니 집안도 캄캄하다. 빈 집안을 청소하고 장에 나간 어머니 대신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어머니가 말아놓고 간 옥수수국수를 데우는 일이라 간단하다. 밖은 컴컴하여 전혀 앞이 안 보인다. 이를 덜덜 떨며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8시다. 전기도 안 오고 등잔불도 기름이 없으니 숙제고 뭐고 할 생각이 없다. 따뜻한 어머니 품에 파고들어 추운 몸을 녹이며 잠을 청하려 하나 너무 배고파서 잠이 잘 안 온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피곤했는지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진다. 은실이는 내일 아침에는 뭘 먹을 수 있을까 온통 그 생각만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땔감 넘겨 파는 정옥이 엄마의 하루

올해 스물여덟 살인 정옥이 엄마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역 광장에 나간다. 촌에서 온 사람들에게 땔나무를 넘겨받기 위해서다. 3년 전만 해도 남편과 딸을 낳고 오순도순 살았는데, 지금은 남편과 딸을 모두 잃고 혼자 산다. 새벽 길목에 나뭇짐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땔나무를 넘겨받아 장마당에 팔면, 정옥이 엄마에게 떨어지는 건 겨우 천 원 남짓이고, 운이 좋아야 2천원 떨어진다. 오늘은 마음씨 고운 아저씨를 만나 별 흥정 없이 땔감을 8주머니나 넘겨받았다. 이걸 다 팔면 1,600원은 벌 수 있다. 밀차에 차곡차곡 쌓아 시장 어귀에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을 찾느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허리를 펴고 여유 있게 걷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절반은 뛰다시피 잰 걸음이다. 잔뜩 옹크린 채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다니는데 고되고 애타는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장사 나선 지 한 시간 만에 한 남자가 땔감을 사러 다가온다. 바지 무릎은 다 해어져서 꿰맸는데도 거무스름한 솜이 삐어져 나오고, 다 해진 군용 장화 뒷발축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거무튀튀한 얼굴을 보니 아마 한 달 넘게 안 씻은 모양이다. 눈빛은 초점 없이 퀭하다. 뭘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 같지 않다. 정옥이 엄마는 땔감을 내밀면서도, 이 돈이면 옥수수죽이라도 한 사발 사먹을 것이지 괜한 걱정을 한다.

옥수수죽은 자신도 먹고 싶다. 아침도 거른 채 나왔으니 벌써 배가 고프다. 찬바람이 옷깃으로 시리게 파고든다. 낡은 실로 뜬 속바지에다가 엷은 여름 군복색 바지를 입고, 팔부 적삼 위에는 역시 낡은 실로 뜬 스웨타 한 벌을 걸쳤다. 그 위에 다시 남편이 생전에 입던 동복을 입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선물로 준 러시아산 굵은 실로 짠 수건을 머리와 얼굴 절반에 칭칭 둘러 목까지 감았으나, 강풍이 불면 온몸이 덜덜 떨린다. 오전 11시쯤 되어서야 옥수수떡 한 덩이와 얼어버린 무 한 개를 사서 주린 배를 달랜다. 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장사가 시원치 않다. 그럭저럭 7주머니를 팔았다. 땔감을 넘겨준 사람들에게 값을 치러주고 나니 1,200원 정도 남는다. 그래도 오늘은 나무 한 주머니를 남겼으니, 며칠 땔감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옥수수국수 한 타래를 물에 불려 놓았다. 점심에 먹다 남긴 무 꽁다리를 채칼로 썰어서 양념을 하고 나서 국수를 삶으면 저녁 식사 준비 끝이다. 약간 물기가 있는 나무를 아궁이에 집어넣었더니 좀처럼 가마가 끓지 않는다. 남편이 있었으면 아궁이에 불이라도 때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진다. 외화벌이 돌격대원 채벌공으로 일하던 남편이 작년에 사고로 크게 다친 뒤 별 치료도 못 받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2주일도 안 돼 두 돌이 갓 지난 딸아이도 펄펄 끓는 고열에 구토와 설사가 심해 병원에 데려갔지만 약 한 알 써보지 못하고 보냈다. 남편과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아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하루하루 땔나무 넘겨받아 살고 있는 신세가 가련해진다. 그래도 리순금이라는 자기 이름보다는 정옥이 엄마라고 불러주는 게 좋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옆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잘 데워지지 않은 물에 덜 익은 국수라도 대충 한 그릇 때우고 나니 세상은 이미 암흑 속이다. 온 몸이 나른해지고 뼈마디가 쑤신다. 옷도 벗지 못하고, 얼굴 씻을 생각도 못한 채 가마 목에 이불을 덮고 나동그라진다. 까무룩 잠이 드는 순간에도 내일은 장사가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나간다.

땔감 팔아 연명하는 현숙씨의 하루

농장원 현숙씨는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눈곱을 뗄 생각도 못하고 옥수수쌀 한 공기에 언 배추 시래기 덩어리 2개를 넣어 옥수수시래기죽부터 쑨다. 얼마 전에는 중국산 맛내기를 조금 넣어서 간을 맞추었는데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후루룩 먹고 대충 세수한 뒤 문밖을 나서니 어느새 날이 밝아있다. 창고 자물쇠를 열고 밀차를 꺼낸다. 어제 남편이 해온 땔나무를 밀차에 싣고는 밧줄로 단단히 동여맨다. 족히 2시간은 밀어야 읍내에 도착한다. 걷는 동안 주린 창자가 몇 번이고 무섭게 요동친다. 역 광장에 도착하니 춥고 배고프다. 한낮이 되어서야 나무를 다 팔고, 그 돈으로 장마당에 가서 옥수수쌀을 몇 키로 산다. 점심을 거르고 너무 추워서 몸이라도 잠깐 녹이려고 친척 집에 들어가니 밥은 없어도 가마 목에 온기가 있다. 어린 조카의 조끼를 덮고 한참 누워 있다가 조금 움직일 만해 빈 밀차를 밀고 집으로 향한다. 도착하니 날은 벌써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옥수수쌀이라도 사오기를 기다리는 식구들을 생각해 서둘러 저녁을 지으러 부엌부터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옥수수밥을 용케 챙겨들고는 식구들을 먹인다. 전기도 없는 방안에 누웠지만, 몸이 아무리 고단해도 내일 끼니 걱정 때문에 쉬 잠이 들지 못한다.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만 해도 “우리 부지런히 일해서 꼭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는데, 결혼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하루 끼니 장만하기가 힘들다. 몸에 들어선 아기도 남편 몰래 몇 번 지웠다. 언제면 먹는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날이 올지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속도 모르고 걱정 없이 자는 듯한 남편이 야속하고 미워진다.

인민갱 노동자 정학씨의 하루

탄광 노동자 정학씨는 아침 6시쯤 눈을 뜬다. 날이 채 밝지 않아서인지 하늘도 뿌옇고 추위도 맵짜다. 아내가 지어준 옥수수밥 한 그릇을 중국산 맛내기를 탄 따뜻한 물에 말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윗집 영삼이를 불러 여섯시 반에 집을 나선다. 아침 7시쯤 탄갱 입구에 도착하니, 동료 철호가 마침 와 있다. 그들은 탄광에 출근하는 대신, 아무도 가지 않는 폐갱에 들어선다. 날마다 다니는 길이라 불을 밝히지 않아도 작업장에는 금방 도착한다. 폐갱인데다가 동발목을 다 끌어내어 화목(땔감)으로 써버렸으니, 언제 어디서 락석에 머리를 다칠지 모르지만 별 안전장치는 하지 못했다. 곁굴을 뚫어서 한 뼘 정도 되는 석탄층을 캐는 일인데, 오늘은 운이 좋다. 다 캐기만 하면 버럭이 다섯 지게는 되어 보인다. 희미한 초롱불빛을 빌어 한참 씨근거리며 일하여 겨우 한쪽 지게를 만들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옥수수 떡 2개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석탄을 굴 입구까지 메어 올리는데, 한 300kg쯤 한 것 같다. 오늘 벌이는 한 셈이다. 세 사람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서로 등짐에 나눠 이고 집으로 향한다. 평소에는 집에서 아내들이 나와서 석탄 버럭을 받아 바로 장마당으로 가곤 하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추워 나오지 말라고 했다. 버럭 무게가 상당해 여자들이 들기도 어려웠다. 정학씨의 아내는 탄을 받자마자 잽싸게 밀차에 싣고 장마당에 나간다. 날이 추워서 탄이 빨리 나가는데, 보통 석탄 한 양동이에 6천 원에서 7천 원 한다. 석탄을 더 많이 파는 사람들은 톤 단위로 팔기도 하는데, 1톤에 9-1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땔감은 한 주머니에 2천5백 원에서 3천원 하고, 1달구지에는 3만5천-3만6천 원 정도 한다. 정학씨네는 석탄 덕분에 옥수수밥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고 살기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폐갱을 찾아 나선다.

노모와 어린 딸 키우는 노동자 호석씨의 하루

호석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물통을 들고, 마을에서 300미터 떨어진 냇가에 물을 길러 나선다. 새벽 날씨라 혹독하게 추운데다 날이 밝지 않아 어둠 속을 더듬어 20여 분만에 냇가에 도착한다. 벌써 물을 길러 나온 사람이 보인다. 강기슭의 얼음장을 딛고 서서 한 물통 가득 물을 퍼 담는다. 언 손이 꼬부라져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물통 2개를 들고 제방 둑에 올라섰다가 휘청거리면서 물을 거의 절반 정도 쏟아버리고 만다. 떨리는 몸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한 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딸이 가마 목에 쪼그리고 누워 아직 깨지 않았다. 가냘픈 두 몸을 감싸고 있는 건 누더기 이불 한 채뿐이다. 자기가 덮고 자던 이불을 끄집어 그 위에 덮어보지만 무겁고 엉성하기만 한 이불이 처량하게 보일 뿐 온기는 별로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부엌에 마른 나뭇잎과 삭정이를 집어넣고 불을 지핀다. 강냉이가루 두 사발과 배추 한 포기를 잘게 썰어 가마에 넣고 한 끼를 장만한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모진 생명만 질길 뿐이다.

호석씨의 아내는 2007년 어느 여름 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간 뒤 4년째 감감 무소식이다. 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도무지 기별이 없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날이 밝기 시작해 노모와 딸아이도 일어났다. 옥수수죽 한 사발로 아침을 요기하고 서둘러 출근한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장에 나가서 땔나무를 팔아야 하고 딸애는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 온종일 집에서 뒹굴면서 망을 봐야 한다. 8시가 되어 기업소 출근 등록부에 제 이름 석자를 적어놓고는 집에 들어왔다. 연장을 들고 앞산에 오른다. 장마당에 내다 팔 땔나무를 하기 위해서다. 세 식구의 명줄이 여기에 달려있다.

거의 두 시간을 걸어 산기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땔나무를 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나무를 하기도 쉽지 않다. 산림경비대를 피하느라 마음 놓고 굵은 나무를 하지도 못한다. 나무를 찍어서 잘게 끊고 쪼개 주머니에 채우기 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배가 고프고 덜덜 떨린다. 약한 바오라기(짧은 막대기)로 나뭇짐을 지고 다섯 번을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가 다시 지고 걷어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어머니와 딸애가 나와서 나뭇단 내리는 데 손을 거든다. 아침에 먹던 옥수수죽 한사발로 끼니를 때우고 자리에 누었더니 인차 잠에 곯아떨어진다. 어머니는 아들의 곤히 자는 모습에 오늘 땔나무를 얼마나 팔았는지, 내일 먹을거리는 장만하였는지 묻지 않는다. 설거지를 끝낸 어머니와 딸아이도 가마 목에 누워 한 이불을 덮은 채 인차 잠이 든다. 온기 하나 없는 냉구들에서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