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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121호

■ 시선집중

“제일 필요한 건 식량,또 식량”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의 아홉은 “제일 필요한 건 식량 또 식량”이라고 대답한다. 이 시기를 넘기려면 당장 식량이 수급되어야 한다. 식량이 있는 사람들은 팔지 않고 있고, 사려는 사람들은 너무 비싸서 못 산다. 원체 식량 원천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 봄 농사 준비가 제대로 안 되다보니 올해도 추수 전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분위기다. 농업 관계자들은 해마다 한국 정부가 보내주던 비료 덕분에 농사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암담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료를 사들이고 싶어도 돈이 없고, 돈을 끌어 모은다 해도 국제 비료 가격 상승에 따라 수입량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이젠 종자도 싹을 틔워 발아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덮을 비닐 박막이 없다. 이도 저도 부족하기만 하니 도저히 앞날이 안 보인다고 깊은 한숨만 내쉰다.

쌀값 강력 억제 시작, 2,200원 넘으면 무조건 처벌

시장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당국이 쌀값 안정을 위해 강력 단속에 나섰다. 현재 전국 주요 도시의 시장에는 보안원들이 나와 쌀을 2,200원 이상에 파는 상인들을 즉각 처벌하고, 전량 몰수하고 있다. 평양에서는 쌀값이 kg당 2,500원 이상이면 무조건 몰수한다. 해주에서는 쌀값이 최고 2,900원까지 올랐다가 4월 20일 현재 2,200원대에 가까스로 묶여 있는 상태다. 평양, 원산, 사리원 등도 2,500-2,600원대에 거래되다가 당국의 쌀값 인상 억제 정책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2,100-2,200원대에서 일시 주춤해있다. 평양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의 시장 쌀값이 당분간 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언제까지 잡아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며, 쌀 장사꾼들도 얼마 안 있으면 또다시 3,000원까지 올라갈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간부들도 식량 원천이 부족한 상태라 정부에서도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한다. 당국은 직장 회의나 주민 총화 등에서 “나쁜 놈들이 작당하여 3,000원까지 올리려고 한다. 절대 적들의 간계에 넘어가지 말고 식량 장사하는 사람들은 될수록 식량 값을 낮추라”고 지시하고 있다.

■ 논평

조신의 꿈 이야기가 북한 주민에겐 고통스런 현실

강원도 낙산사에는 지금도 조신의 꿈이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나이 어린 조신 스님은 시집을 가는 고을 태수의 딸을 사모해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우연처럼 나타난 그녀와 둘이 외딴 곳으로 도망쳐 부부가 되어 5남매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행복도 잠시, 혹독한 굶주림과 가난의 고통은 이들을 비껴가지 않았다. 먹을 것을 찾아 그들은 전국 도처를 떠돌아다녔고, 그러던 중 15살 난 큰아들이 영양실조에 열병이 겹쳐 그만 숨지고 말았다. 하루 한 끼니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세월은 계속됐다. 늙고 지친 부부도 쇠약해져 몸져눕게 되자 12살 된 딸아이가 동냥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냥 나갔던 딸아이가 동네 개에게 물려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다가는 식구들 모두 굶주려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스러움에 두 부부는 결국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서자며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진다. 헤어지면서 인생살이의 허무함에 너무 슬퍼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조신은 인생사가 일장춘몽임을 크게 깨닫고, 수행에 전념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북한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조신의 가족들이 생겨나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더도 덜도 아닌 조신 설화의 내용 그대로이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어린 아이들이 희생되고, 배워야 할 나이에 장사하거나 구걸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랑하는 부부가 다시 만날 그때를 기약하면서 헤어지고 있다. 부부의 정(情)도, 가족의 사랑도 헐벗은 가난 앞에서는 무의미할 뿐이다.

현재 북한 사회는 국가가 더 이상 가정을 지켜주지 못하고 가정이 더 이상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수행자 조신에게는 쓰디쓴 인생사가 꿈을 깨면서 끝났지만 2천만 북한 주민들은 바로 이 시간에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조신은 큰 깨달음을 얻고 더욱 수행에 매진했으나, 북한 주민들은 가슴 속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분노, 한을 쌓고 있다.

이러한 비극을 목도하면서 언제까지 북한 정부만 탓할 것인가. 그들의 고통을 빤히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우리는 머잖아 만나게 될 2천만 주민들의 원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차라리 남북한이 적당히 외면하고 있는 이 상황이 더 좋다며,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차라리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꿈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부디 이 잔인한 2008년의 봄마저도 사실은 꿈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 꿈에서 깨어나 2,000만 동포의 절규에 하루빨리 응답해야할 때이다.

■ 경제활동

공개재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선전장

공개재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선전장

지난 3월 31일 오후 3시, 함경북도 온성에서는 공개 재판이 열렸다. 온성읍 기계전문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이번 공개재판에서는 마약 밀매, 불법 록화물 유통, 인신매매, 비법월경 등 17명이 처분 받았다. 이를 참관한 주민들은 너나없이 이제 지겹다는 표정들이다. 차미영(38세)씨는 “그냥 보고 싶은 사람만 보게 하면 좋겠다. 왜 강짜로 무조건 보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던 안춘실(43세)씨도 “군중 심판을 보노라면 딱 그 생각밖에 안 난다. 돈 있는 사람은 살고, 돈 없는 사람은 같은 죄를 지어도 죽는다는 것. 그것 말고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다. 막말로 우리 같은 돈 없는 사람들한테 그거 선전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의 말에 함께 가던 동네 사람들도 저마다 “옳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공개재판은 돈 없는 사람들만 불쌍하게 당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수천 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미덕,해칠 수 없다”

“수천 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미덕, 해칠 수 없다”

지난 4월 5일 한식에는 조상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길주에 사는 60대 한 남자가 성묘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맘속의 말을 했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그는 “조상의 묘지를 풍수 좋은 산에 정중히 모시고 해마다 명절날 찾아가 추모하고 산소를 정성스레 가꾸면서 후손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이나 전해져온 우리 민족의 미덕이며 미풍이다. 듣건대 이남에서는 추석이 제일 중한 명절이라고 하고, 중국도 청명한식이나 추석 같은 전통 명절에 금년부터 법적으로 하루씩 휴가를 준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이렇게 사람 중심, 사람을 기본으로 하는 인도주의를 잘 실행한다는데, 어째 우리는 점점 한다는 게 ‘묘지를 축소하오, 규모를 작게 하오’하는 식으로 조상의 제사마저 제 마음껏 지내지도 못하게 하니 정말 리해가 안 된다. 이게 어디 인정에 부합되는 일이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어기는 것이지 않느냐”고 일장 연설을 했다. 이에 함께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이나 지나가던 길손들이 모두 진지하게 듣고선 “진짜 리해 안 되는 일이 점점 많다”고 입을 모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도 조심하며 가려서 했을 텐데, 요즘에는 하는 사람도 거침없이 하고, 듣는 사람도 당 일꾼이나 해당 기관에 보고하는 일이 드물다.

“비석 눕히면 조상 뵐 낯이 없다”

"비석 눕히면 조상 뵐 낯이 없다”

내각결정 24호가 내려졌으나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10년 전부터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도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양에 사는 오중근(63세)씨는 아무리 당국에서 묘지 정리하라고 해도 잘 안된다고 말했다. 봉묘를 하지 말고 애국렬사릉처럼 평평하게 하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이다. “묘비를 세워놓으면 보기 싫다고 비석을 눕혀놓으라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나? 조상들이 노할 일이다”고 강한 반발감을 보였다.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비석을 눕히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고 한다. 고상현(58세)씨도 “그래 둥그런 묘를 좀 깎는 것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비석을 눕히면 나중에 죽어서 조상들을 무슨 낯짝으로 보겠나”고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당국에서는 비석을 눕히기 어려우면 공동묘지로 옮기라고 권고하지만, 이것도 집행이 어렵다. 한 간부는 “차 있는 사람들이야 일 없겠지만, 공동묘지가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못 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까운 산에 너도나도 묘지를 쓴 게 아니냐. 무덤이 산을 뒤덮고 있는 게 보기에 안 좋다고 평평하게 깎거나 비석을 눕히라고 하지만 그건 주민들 반발이 너무 크다. 그래서 공동묘지로 옮기라고 하지만 거긴 또 걸어가기엔 너무 멀다. 이러니 10년 넘게 똑같은 내용으로 말해도 안 되는 거다”라고 이번 내각 결정 24호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묘지 질서에 관한 내각 결정 24호

묘지 질서에 관한 내각 결정 24호

지난 3월 27일자로 묘지 질서 및 정리에 대한 내각 결정 24호가 내려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묘지를 쓰는 질서를 세우고 오랜 묘지들을 정리할 데 대하여”

1. 묘지를 정해진 구역 내에 쓰는 질서를 세워야 한다.

1) 묘지를 공동 묘 구역에 써야 한다.

2) 묘지를 평판 묘를 하여야 한다. 길이 2m, 너비 80cm, 높이 10cm 하여야 한다.

2. 새로 정해진 공동묘지 밖에 있는 묘지들을 몽땅 공동묘지 구역으로 이설하여야 한다.

1) 주요도로, 고속도로 철길 연선에서 보이는 묘지들과 농업 토지, 산림 토지들에 널려 있는 묘지들을 모두 공동묘지 구역으로 이설 하여야 한다.

2) 주인이 없는 묘지들은 상돌과 비석들을 뽑고 평토 정리 하여야 한다.

3. 2008년 4월 5일까지 공동묘지에 옮기지 않은 봉분이 높은 묘지들은 주인이 없는 묘지로 알고 정리, 평토 할 것이다.

4. 특별한 사정으로 옮길 수 없는 묘지들은 비석을 눕히고 우를 깎고 정리 하여야 한다.

주체 97년 2008년 3월 27일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내각

명절 선물 받으러 출생확인 북새통

명절 선물 받으려 출생확인 북새통

올해 태양절에는 인민반별로 술 한 병, 비누 한 장, 양말 한 켤레씩, 아이들에게는 사탕이 공급됐다. 도 전역 지구 보위부나 보안서 등에서는 콩기름 2~5kg, 술, 담배, 돼지고기 2~5kg, 당과류, 속내의 등을 공급했다. 기관, 기업소, 단위에 따라 공급물품의 질과 수량 등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소소한 수준이었다. 아이들에게 공급되는 명절 선물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지만, 이거라도 받아가려고 뒤늦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려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예년에는 아이가 태어나도 국가적으로 별다른 혜택이 없다보니 출생확인서 만드는 일을 등한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요즘엔 출생확인신고를 하려는 주민들로 보안서가 북새통을 이룬다. 순천에 사는 오순영(32세)씨는 얼마 전 자기도 두 해전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를 뒤늦게 했다며, 요즘같이 어려운 살림살이에는 뭐라도 공짜로 생기는 것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기를 쓰게 된다고 말했다.

“4.15 명절 성대하게 치르라” 에 주민들 죽을 고생

"4․15 명절 성대하게 치르라”에 주민들 죽을 고생

4․15명절을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각 기관, 기업소, 학교마다 매우 분주하게 보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체육경기, 문예공연, 집단군무 등에 더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린 아이들은 한 끼니도 변변하게 못 먹는 터에 몸 쓰는 일을 해야 하니 자연히 먹을 것을 더 찾기 마련이다. 점심밥은 물론이고, 사탕, 과자, 과일 등을 찾아 부모들이 골치를 앓았다. 한편 함경북도에서는 학교마다 충성의 외화벌이 운동을 한다고, 토끼가죽을 7매씩 거뒀다. 못 내는 사람은 가죽 1매당 2천원을 내라고 해서 주민들의 원성이 컸다. 예년 같으면 토끼 가죽을 제일 많이 내라고 한 게 5매 정도였는데, 생활이 더 궁핍해진 요즘에 걷는 수량이 왜 더 많아지는지 모르겠다며, 모두들 망할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일본 대북제재 세 번째 연장 발표에 일본 귀국자 절규

일본 대북제재 세 번째 연장 발표에 일본 귀국자 절규

지난 4월 11일 일본은 만경봉 92호 등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 국적보유자 입국 금지, 북한으로부터 수입 금지 등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6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로동신문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일본 귀국자들은 절망에 가득 찬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조금이나마 방조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2006년 일본의 대북경제제재가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들의 현재 생활수준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북한 주민들이야 친척이나 친구 중에 간부가 있거나 이런저런 연줄로 도움을 받지만, 대다수의 일본 귀국자들은 인맥이 없는데다 차별까지 심해 하층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귀국자 1세대들은 대개 후회막심이라고 하고, 2세대들은 그런 부모를 원망하는 분위기다. 특히 귀국자 1세대들은 약소민족으로 태어난 슬픔이라면서 통탄에 통탄을 거듭 표한다. 일본의 가족친지들도 냉담하기 그지없다. “귀국하겠다고 했을 때 그렇게도 반대할 때는 기를 쓰고 가더니, 이제와 후회하면 뭐 하느냐. 네가 좋다고 간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돈 없는 귀국자와 그 자녀들은 일본 가족친지들의 외면과 북한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대북경제제재는 깊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다.

고충현(74세)씨는 “국가적 차원에서 오도 가도 못하도록 완전히 차단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한두 번도 아니고 다시 차단해버리니 또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제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식들 앞에 죄인이다. 나는 죽어도 이제 그만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부모 따라나선 우리 자식들이 무슨 죄인가. 제발 우리 아이들을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2세대인 서규환(42세)씨는 “어렸을 때는 그래도 일본에 계신 큰아버지가 보내주신 옷가지며 당과류며 이런 게 많아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그런 건 꿈같은 과거의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화교를 부러워한다. 모국(중국)이 잘 사니까 그 덕을 많이 보지 않나. 여기 원주민(북한 주민)들도 화교 집에서 심부름일 하는 게 꿈이라고 할 정도다. 모든 것이 우리에겐 꿈같은 일일 뿐이다”라며 절망 섞인 한숨만 길게 쉬었다.

남조선과의 관계 악화, “굶어죽든지,싸워죽든지 둘 중 하나”

남조선과의 관계 악화,“굶어죽든지, 싸워죽든지 둘 중 하나”

요즘엔 조선중앙TV와 로동신문 등 주요 매체와 각종 회의, 강연회 등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해온 간부들이 동요하고 있다. 한 간부는 “김대중, 로무현 대통령 시기에는 이 곳 TV 방송으로 그들을 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남북관계가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고 비관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민간급 거래까지도 완전히 중지되지 않겠나 싶다. 이렇게 긴장 상태가 악화되면 정말 둘 중 하나다. 주위 간부들끼리도 하는 말이 이제는 굶어죽든지 아니면 싸워죽든지 두 갈래 길 밖에 없는 것 같다고 걱정들이 많다”고 했다. “남조선 정부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는 법도 배워야 하는데, 왜 그렇게 말을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관계를 개선하자는 말인지, 후퇴시키자는 것인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 나같이 남조선에 호의적인 사람도 헷갈리는데 적대적인 사람들이야 말해야 무엇 하겠나”고 말하는 간부도 있었다.

“전쟁에서 죽는 게 굶어죽는 것보다 낫지”

“전쟁에서 죽는 게 굶어죽는 것보다 낫지”

굶주림의 고통이 점점 심해짐에 따라 차라리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청진, 신의주, 평성 등 전국 주요 도시의 시장에서 미친 듯 올라가는 식량가격을 두고 사람들이 나누는 절망적인 소리다. 남포에 사는 서경철(49세)씨는 “식량 사정이 좀처럼 펴지지 않고,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 이거 어디 살아 갈 수나 있겠는가. 차라리 전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으로 탈출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니. 하루빨리 북이든 남이든 어느 한 쪽이 통일하면 사정이 좀 달라지려나”라고 하며, “전쟁이 나서 죽는 것이 굶어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했다. 비단 서씨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런 말은 어디를 가든 쉽게 들을 수 있다. 대동군에 사는 김송출(48세)씨도 “오죽하면 사람들이 전쟁을 입에 달고 살겠나. 굶어본 사람들이나 우리 심정을 알까. 간부들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다. 그 사람들이 굶어봤어야 알지. 우리는 나라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이거 하나는 안다. 전쟁보다 굶주림이 더 무섭다는 것을. 이렇게 굶어 죽을 바에야 정말 하늘이라도 무너져 다 같이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수입 곡식 들어온다는 소리 안 믿어

수입 곡식 들어온다는 소리 안 믿어

지난 4월 10일 이후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는 선전부 지도원들이 인민반 회의나 녀맹회의 등에 나와 곧 식량이 들어온다고 선전하고 있다. “식량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잠시뿐이다. 이제 수입곡식이 대량으로 들어오니 모두들 안심하라”고 말한다. 그동안 외부에서 지원 식량이 들어와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던 주민들은 이 말에 전혀 희망을 걸지 않는다. 평북 안주에 사는 김경중(51세)씨는 한 마디로 “허풍이다. 이런 말 너무 들어서 이젠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민심이 많이 흔들려서 이런 선전을 하는 것 같은데, 인차 더 이상 통할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의주에 식량 들어와 평양 일시 배급

신의주에 식량 들어와 평양 일시 배급

지난 4월 초부터 신의주항에 옥수수 8천 톤을 비롯해 수입 식량이 간간이 들어오고 있다. 일단 4천 톤을 하선해 평양으로 이송했다. 이렇게 신의주를 통해 들어온 곡물이 평양에 유입되면서, 평양은 이전에 미달됐던 배급을 옥수수로 얼마간 지급했다. 식량이 들어오다 보니 사고도 생긴다. 신의주 화물역에 쌀 1,200톤을 인수하러 갔던 평양 상원 시멘트 공장의 직원은 밤에 경비를 서다가 9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받았다. 맹렬히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어서 머리를 크게 다치며 중상을 입었다. 그는 그 사람들도 다들 먹고 살려고 도둑질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거라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들어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식량이 들어오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 아니냐”고 했다.

“제일 필요한 건 식량, 또 식량”

“제일 필요한 건 식량, 또 식량”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의 아홉은 “제일 필요한 건 식량 또 식량”이라고 대답한다. 이 시기를 넘기려면 당장 식량이 수급되어야 한다. 식량이 있는 사람들은 팔지 않고 있고, 사려는 사람들은 너무 비싸서 못 산다. 원체 식량 원천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 봄 농사 준비가 제대로 안 되다보니 올해도 추수 전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분위기다. 농업 관계자들은 해마다 한국 정부가 보내주던 비료 덕분에 농사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암담할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료를 사들이고 싶어도 돈이 없고, 돈을 끌어 모은다 해도 국제 비료 가격 상승에 따라 수입량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이젠 종자도 싹을 틔워 발아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덮을 비닐 박막이 없다. 이도 저도 부족하기만 하니 도저히 앞날이 안 보인다고 깊은 한숨만 내쉰다.

쌀값 강력 억제 시작, 2,200원 넘으면 무조건 처벌

쌀값 강력 억제 시작, 2,200원 넘으면 무조건 처벌

시장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당국이 쌀값 안정을 위해 강력 단속에 나섰다. 현재 전국 주요 도시의 시장에는 보안원들이 나와 쌀을 2,200원 이상에 파는 상인들을 즉각 처벌하고, 전량 몰수하고 있다. 평양에서는 쌀값이 kg당 2,500원 이상이면 무조건 몰수한다. 해주에서는 쌀값이 최고 2,900원까지 올랐다가 4월 20일 현재 2,200원대에 가까스로 묶여 있는 상태다. 평양, 원산, 사리원 등도 2,500-2,600원대에 거래되다가 당국의 쌀값 인상 억제 정책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2,100-2,200원대에서 일시 주춤해있다. 평양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의 시장 쌀값이 당분간 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언제까지 잡아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며, 쌀 장사꾼들도 얼마 안 있으면 또다시 3,000원까지 올라갈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간부들도 식량 원천이 부족한 상태라 정부에서도 언제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한다. 당국은 직장 회의나 주민 총화 등에서 “나쁜 놈들이 작당하여 3,000원까지 올리려고 한다. 절대 적들의 간계에 넘어가지 말고 식량 장사하는 사람들은 될수록 식량 값을 낮추라”고 지시하고 있다.

개성 직장인 4개월간 배급 고작 20일 분량

개성시의 직장인들은 지난 1월부터 4월 현재까지 받은 배급이라곤 겨우 20여일 분량뿐이다. 거의 받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다보니, 굶주림에 지쳐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는 세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방랑생활을 시작한 집들도 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술 배낭과 음식을 이고 지고 다니며 한 푼이라도 벌려는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도 우유병을 들고 다니며 장사에 나서고 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굶주림에 지치다보니 각종 사회 병폐가 깊어가고 있다. 살인, 강도, 도적질 등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가정불화도 늘어난다. 특히 노인 천시 현상이 심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개성시는 그나마 치안이 잘 유지되는 편에 속했으나, 요즘에는 밤 9시가 넘으면 아예 길거리를 다니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실제 밤거리를 다니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국 식량난 확산, 너도나도 산으로

지난 해 수해 피해가 심했던 강원도 금강군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하다. 풀죽이라도 하루 세 끼니 먹는 집은 잘 사는 축에 든다. 하루 두 끼니를 간신히 넘기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산으로, 강으로 풀과 약초를 찾아 헤매고 있다. 자강도 전천군 고인리 주민들도 주린 배를 움켜쥐며 괴로워하고 있다. 먹을 것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산에 올라가 닥치는 대로 캐 먹고 있다. 칡뿌리라도 캐먹으며 굶주린 창자를 달래는 사람들을 어느 산엘 가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황해남도 해주시 인근 농촌 지역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 일하러 나오지 않는 농민들이 늘고 있다. 여기서도 농민들이 하루 두 끼니 중 한 끼니를 풀죽으로 때우고 산에 나물 캐러 간다. 이 곳 아이들 역시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 약초 캐는 일을 하거나 집을 지킨다. 농촌 학교들 중에는 출석하는 학생들이 없어 아예 학교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른 곳도 생겼다. 고난의 행군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끼니 걱정에 아이들 교육 걱정까지 주민들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성시 장풍군 장풍리의 농장원들도 식량난에 고생이 막심하다.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에 하루 세 끼니 꼬박 챙겨먹어도 시원찮은데, 겨우 한 끼니 또는 많이 먹어야 풀죽 두 끼니로 배곯는 일이 다반사다. 정부에서 하루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먹을 식량이 완전히 바닥날 지경이다. 농민들은 “이 설움, 저 설움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 참기 힘들다”면서 한숨만 쉬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들 입버릇처럼 “먹어야 일하지. 도저히 일하러 못나가겠다”며 농사일을 미루고 있다.

■ 여성/어린이/교육

식량 이산가족, “꼭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

식량 이산가족, “꼭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

평안남도에서는 식량난 때문에 또 다시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있다. 평안남도 신양, 양덕, 회창, 성천 등지에서는 꽃제비들이 부쩍 늘었다. 하루 한 끼니도 못 먹는 어려운 세대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부부들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다 같이 죽는다면서, 갈라져 살자고 약속하며 각자 자기 살 길 찾아간다. 각자 자신들의 부모집이든 형제집이든 어디든 비빌 언덕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자식들도 어느 한 사람이 모두 맡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눠 데려간다. 제각기 목숨 부지하고 살다가 돈이라도 좀 모으면 꼭 다시 모여 살자며 울면서 헤어진다. 꼭 죽지 말고 살아서 만나자면서 헤어지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도처에 꽃제비들이 넘쳐나다 보니 양덕의 림선옥(48세)씨는 작금의 상황을 “거지 나라를 방불케 한다”고 표현한다. 평안남도의 어느 구제소에서는 꽃제비들을 더 이상 못 받겠다며, 있는 꽃제비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4․15 태양절을 맞아 당국에서는 명절맞이 축하행사로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농민과 일반 주민들은 당장 끼니거리 마련 때문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분위기가 퍽 대조적이었다.

먹을 것 찾아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먹을 것 찾아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4월 들어서면서 식량이 떨어지는 집들이 늘어감과 동시에 집을 떠나는 사람들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함경남도 북청군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친척집을 찾아 간단한 채비만 갖춰 가족들을 모두 앞세우고 고향을 아예 등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가족이 많아지자 북청군에서는 통제하려고 나섰다가 너무 비참한 현실에 차마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있다. 한 간부는 “멀쩡히 앉아서 죽으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느냐. 속은 타지만 어쩌겠느냐”면서 그냥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고 했다.

북청군의 산골 마을에 살았던 농장원 최규철씨(43세) 가족도 그렇게 고향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해 보릿고개 때 가을에 갚아주기로 하고 옥수수를 꿔먹었는데 작년 농사를 망쳐서 빚만 잔뜩 늘었다. 당장 입에 넣을 것은 없지, 올해도 비배관리를 못하게 한다고 하지, 그동안 농사만 지어서 수중에 가진 돈도 없지, 도무지 앞길이 하나도 안 보였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가재도구든 옷이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고, 결국 집의 사용권까지 몰래 처분했다. 빚 독촉이 계속되자, 아직 찬바람이 쌩쌩 이는 2월 말에 최소한의 채비만 갖춰 아이들을 앞세워 아내와 함께 새벽길을 나서 집을 떠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신포에 사는 작은 아버지를 찾아 떠났지만 곧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집도 형편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뭐라도 얻어먹고, 밤에는 역에서 비닐 박막을 덮고 쪼그리고 누워 자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어디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만한 데를 알아볼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올해 7살, 8살 된 연년생 아이들이 칭얼대지 않고 잘 버텨주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다시 버려지는 아이들

다시 버려지는 아이들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어느 기차역엘 가더라도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굶주리다 못한 부모들이 자기 옆에 두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씨 좋은 사람에게 키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고 혹덩이 떼듯 버리고 떠난 비정한 부모도 있었다. 어쨌든 버려진 아이들은 사회에서조차 방치되기 마련이다. 그 때는 누가 누구를 돌봐 줄 여력이 전혀 없을 만큼 사회 전체가 공황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인 시대가 바로 그 때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08년 봄, 그 때처럼 아이를 버리는 가슴 아픈 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순천역에서는 한 무리의 어린 꽃제비들이 이 손님, 저 손님 사이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고 다녔다. 다른 한 쪽에선 꽃제비들 몇몇이 승객이 먹다가 떨어트린 음식 부스러기라도 발견했는지, 앞 다퉈 서로 주워 먹으려고 쟁탈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때 역 한 구석에서는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가 보에 싸여 울고 있었다. 꽃제비 아이에게 물으니 몇 시간 째 그렇게 울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아기를 버리고 간 엄마를 욕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선뜻 아이를 안아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기가 너무 울다가 기진해 울지도 못할 정도에 이르러서야 역 보안원들이 나타나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이를 데려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일말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리곤 곧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각자 자기 볼 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여행자라면 원산, 고원, 평성, 신의주, 함흥 어디를 가든 이런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신의주에 자주 왕래한다는 황보선(49세)씨도 “올해 부쩍 저렇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확실히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