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방랑자 넘쳐도 당국은 무대책

작년에 비해 올해 들어 꽃제비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 함경남도 함흥, 고원, 평안남도 평성, 순천, 신성천, 간리, 황해남도 해주, 황해북도 사리원, 강원도 원산 등 각 도마다 주요 교통 요충지에는 어김없이 꽃제비들이 모여든다. 다른 지역들도 꽃제비들이 늘고 있으나, 이 지역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꽃제비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꽃제비들이 그나마 적은 곳은 회령과 평양 등 몇 곳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꽃제비들이 모이지 않는다기보다 그만큼 단속을 더 강력하게 하고 있어 꽃제비들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매 군마다 적게는 30명, 많게는 50여 명씩 여러 무리의 꽃제비들이 몰려다닌다. 이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덮치거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꽃제비들이 없는 곳은 없다. 이런 실정임에도 정부에서는 꽃제비들이나 고아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당국은 다만 9.27그루빠를 조직해 꽃제비들을 단속하고 있다. 어린 꽃제비들은 애육원이나 육아원으로 보내고, 어른 꽃제비들은 출신 구역으로 되돌려 보낸다. 매번 이런 식으로 처리해왔으나 이 업무조차 요즘엔 마비될 지경이다. 그만큼 방랑자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9․27그루빠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매일 단속해도 매일 어디선가 새로운 꽃제비들이 쏟아져 나온다. 구제소에 보내도 다시 뛰쳐나오기 때문에 애초부터 단속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구제소와 애육원, 육아원 등의 부담이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원생들도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는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나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해당 인민반에서 돈을 모아 준다고 해도 한 두 번이지 당장 주민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꽃제비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함경남도 고원에 사는 허충현(48세)씨는 “차라리 신경 끄고 사는 게 낫다. 시, 군당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챙기겠나. 지금 굶어 죽어가는 게 어디 한 둘인가. 당장 우리 집 식량이 바닥나 내 새끼 먹일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방랑자들을 도와준단 말인가”라며, 국가적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방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가족들이 함께 죽어가는 상황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이 겹쳐 매일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가슴 아픈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온 가족이 굶주리다가 연달아 죽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5월 초,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 구역에서는 집 식구들이 집단 설사병에 걸려 연이어 죽는 일이 발생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지 못한데다가 풀죽을 잘 못 먹은 데다 오염된 물로 배를 채운 게 큰 탈이 났다.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설사병에 걸려 탈수현상이 심해지면서 조용히 숨을 거뒀고, 하루 만에 아버지가 뒤를 이었다. 곧이어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남포시에서는 군수공장에 다니는 로동자의 가족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의사들에 따르면, 가족들이 집단으로 병원에 실려와 진찰해보면 모두들 먹지 못해 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사망한 것이라고 한다. 세 가족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리희승(53세)씨는 “영양보충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약을 준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가족들 중 누구 하나 남지 않고 한꺼번에 죽는 게 저승 가는 길이 그나마 덜 외롭지 않겠느냐고 내 스스로 위로한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의사들은 집안 식구들이 한꺼번에 죽는 것은 대부분 오랫동안 굶주려서 그런 것이라며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고 한탄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아직 먹을 것이 그런대로 있지만, 식량이 이미 떨어진 사람들은 벌써 두세 달 거의 굶다시피 버텨왔기 때문에 기력이 바닥난 경우가 많다. 같은 인민반에 살던 한 가족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송창국(47세)씨는 “주민들의 생활이 이렇게 비참해지다보니 사람이 죽은 후에 관을 만들 널판자 살 돈이 아름차서 사지 못하고 비닐이나 천으로 뭉쳐 싸서 묻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 경제활동

사상교양에 주민들, 숨 쉴 틈 없다 아우성

식량난이 심각한 와중에도 사상교양은 더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주민들의 표현대로라면, 전국 어디서든 눈만 뜨면 눈 감을 때까지 사상교양으로 정신이 없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사상이 생명이다, 이게 변질되면 곧 사회주의가 망하는 것”이라며 비사회주의그루빠가 1년 열두달 계속 돌아가고 있다. 직장, 가두, 녀맹 등 주민들이 소속된 곳이라면 얼마나 통제를 강화하는지 숨 쉴 틈도 없다고 아우성이다.

남포에 사는 고금이(38세)씨는 “1989년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온 이남의 임수경이 기자회견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선에 대한 악선전만 들은지라 조선사람 그리라고 하면 온통 빨간 크레용 칠하고 머리엔 빨간색 뿔을 그렸다고 하여 모두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실제 각종 회의나 강연을 통해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이 군사적 대결로써는 우리를 못 당할 것 같으니까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보려고 경제가 어려운 조건을 악용해 반공화국 모략책동을 감행한다. 특히 사상을 와해하려고 불순 록화물을 들여보내고 밀수밀매를 조작하고, 자유아세아 소리방송을 설치해 조선 라디오에 파장을 맞춰 온갖 반(反)공화국 선전을 틀어댄다. 이것을 듣게 하려고 소형 반도체 라디오를 헐값으로 대대적으로 들여보내고, 경제적으로는 국경에 인접한 단동지구에 조선 자선단체를 수없이 조직해 합법적, 또는 비합법적인 지원 명목으로 침투하려고 한다. 심리전이나 와해작전을 이렇게 벌리니 최대로 각성하고 긴장하라”고 강조한다.

눈만 뜨면 정치사상 교양을 들이대고 계급교양관을 참관시켜 중국에 사사려행 갔다가 이남 국정원에 흡수돼 간첩 임무를 받고 나와 움직이다 잡힌 실례, 탈북자들이 매수돼 공화국에 도로 나와 잡힌 실례를 들며 교양 사업을 한다. 국가적인 주요내용보다 사회주의 시책을 비방할 수 있는 인민생활의 사소한 사실자료들이 계속 새나간다고 하며 비밀 엄수를 강조한다. 또 손 전화기를 넘겨받다가 발각되거나 전화를 하다가 잡힌 사례, 사진 촬영한 카드를 마른 낙지 갈피 속에 넣고 국경을 넘다가 세관에 단속된 사례들을 폭로하면서 “지금은 어렵지만 이제 곧 강성 대국의 문이 열리니 계급투쟁을 강화해서 사회주의를 지키자”고 강연 때마다 강조한다.

평양 만경대구역, 수돗물 문제로 골치

만성적인 전력난에 수돗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각종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평양의 한 의사는 “해마다 물 때문에 수인성 질병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모른다. 약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기본이 아니겠는가. 수질 위생 방역 여기저기 우물 파고 제각기 길어다 먹는 속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가늠 못한다. 위험은 여기 평양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만경대 구역의 광복거리 금성동지구에서는 겨우 아파트 6동만 감당할 수 있는 양수장의 물을 20동에 끌어 쓰게 하다 보니 물 부족이 심각하다. 한 달에 한 번 수돗물이 나올까 말까한데다 물을 미리 받아놓는다고 집안 구석에 방치해둬 물 오염이 심각하다. 고층 아파트일수록 고생들이 막심하다. 요즘 영양실조자가 많이 생긴데다 물이 깨끗하지 못해 설사병 환자가 늘고 있는데, 물을 끓여 마시라는 등 각별히 주의를 주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이 없다”며 물 부족과 식수오염에 안타까워했다.

평양 만경대구역 금성동 일대 고층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거의 매일 수돗물 전쟁이 벌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한석호(43세)씨는 “보다시피 이 구역에는 25층, 30층 넘는 아파트들이 많다. 위층 사는 사람들은 물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간부들이야 이런 사정을 잘 아니까 절대 이런 데 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한 간부는 “이 곳에 수돗물이 충분히 공급되려면 상수도관이 4개가 있어야 하는데, 자재 부족으로 2개만 건설됐다. 게다가 금성 일동, 이동, 삼동은 맨 구석에 있어 광복거리에서 물을 다 끌어다 쓰기 때문에 수돗물이 오기 힘들다. 그러니 한 달에 한 번 물이 나올까 말까한다”고 했다. 비단 만경대구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도시든 자재부족으로 상수도망이 제대로 건설되지 않은 곳이 많아 수도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남신의주 주민들 이구동성,“우리는 천민이나 마찬가지”

남신의주 주민들은 스스로 천민이나 마찬가지라고 자조한다. 신의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생활수준이 매우 낮고 전기 공급은 물론 수도 공급도 엉망이다. 신의주에 물이 나오는 때라도 남신의주에는 소식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 남신의주에 5만 살림집 건설 과업에 따라 지난 20년 간 3만 세대 벽돌 아파트를 건설했는데, 상수도망을 따로 건설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남신의주 지대가 전반적으로 높아 물을 끌어올리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전력공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수돗물 공급이 안되는 게 당연하다. 가까운 신의주와 비교해볼 때 언제나 전기 공급이 없고 수도 공급도 안 되는 데다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주민들의 소외감이 더 커지고 있다.

허드렛일 구하기도 어려워

신의주 시내에서 단돈 한 푼 없는 사람들은 손수레와 배낭을 들고 시장 앞에 서 있다가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손짐을 들어주는 일을 한다. 한 번 들어줄 때 대체로 500원에서 1,000원까지 받는다. 잘하면 하루 3천원도 벌고, 명절이나 인심 후한 사람을 만나면 5천원까지 벌 때도 있다. 이런 일들은 주로 중학교 여학생들과 50대 넘은 여성들이 한다. 남자들은 이런 일을 꺼리는데, 손님들 입장에서도 남자들을 못 미더워한다. 괜히 잘못 맡겼다가 짐을 강탈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농촌동원령이 내려진 이후 장보는 시간이 제한되면서 이런 일들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돈 벌 수 있는 일거리가 없어 시장 앞은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이제는 젊은 남자들도 까까오 장사

살아남기 위해 남자들이 변하고 있다. 장사하는 일이 천해서 남자들이 할 만한 일이 못된다며 곧 죽어도 체면을 중시했던 남자들도 굶주림에는 장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청진 역에서 평양행 열차가 한 번 떠나면, 중간의 정차 역들에서는 난리가 난다. 열차 승객들에게 하나라도 뭔가를 팔아야 끼니벌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를 쓰고 달려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은 물론이고, 여기에 남자들까지 가세해 더욱 북적거린다. 특히 올해 들어 젊은 남자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젊은이들은 까까오(빙과류)나 간소한 먹거리를 메고 다니며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한다. 객차 승무 보안원들과 열차 안내원들이 단속에 나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가끔 보안원들이나 안내원들이 젊은 남자들에게서 까까오통을 빼앗아 밖으로 내던지기라도 하면, 당장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안원의 위세에 밀리기도 하지만 당장 화나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게 혈기 많은 젊은 청년들의 특징이라, 보안원들도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보안원들은 약간의 뇌물을 받고 구간을 정해준 뒤 그 구간에서만 팔도록 암묵적으로 허용해주기도 한다.

청진역에서 까까오 장사를 하는 최현태(28세)씨는 당장 먹여 살려야 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이 있어 장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친구들 면목도 있고 나중에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안해(아내)될 사람에게 위신도 안 설 것이라는 생각에 부담이 컸으나 집안에 식량이 떨어지자 생각이 싹 바뀌었다. 라남구역 풍곡동에 사는 그는 자기 구역 세대들을 보면 대개 죽을 먹고 산다고 했다. “2월부터 5월 사이에 식량 값이 무섭게 오르면서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한다. 강냉이 묵지가루로 죽을 해먹는 세대가 많고 길거리에 꽃제비들이 많다. 아침 시간이 되면 꽃제비들이 밥을 빌어먹으려 매 집에 돌아다니는데 우리 집에도 들른다. 최근에 꽃제비 수가 더 불어난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풍곡동 주민들의 60% 세대가 죽으로 살고 있다. 죽물이라도 넘기려면 뭐라도 팔아야 산다. 까까오를 파는 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이제는 한 개라도 더 많이 팔아서 옥수수 한 두주머니라도 사들고 가는 게 목표다”고 했다.

식량 부족에 취사 문제도 심각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비단 식량부족만이 아니다. 각종 연료부족으로 취사문제도 심각하다. 땔나무나 석탄을 사서 때려고 해도 너무 비싸서 돈이 없는 집들은 마른 풀을 끌어다 쓰고 있다. 불이 약해 옥수수가 잘 삶아지지 않아 한 끼니의 죽을 쑤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애로가 많다. 게다가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당연히 물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강변 물을 길러갔다 와야 하니, 식량 문제, 물 문제, 전기 문제, 취사 문제 등이 겹쳐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된다. 이런 형편에서 각종 세금이 많아 주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애국미, 군량미, 위문품, 명절마다 거두는 물품 등은 차치하고라도, 거의 중단된 상태에서도 전기세, 물세, 토지세 등 세금이 많다. 자발적으로 내라고 말은 하지만 거의 강제로 거둬간다. 주민들은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나라라고 하더니, 진짜 세상에 둘도 없는 나라”라고 비꼰다.

생계대책 막막해 두 자녀 데리고 동반자살

함경북도 온성군에 사는 최명희(32세)씨는 올해 8살, 4살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생계를 꾸려왔다. 남편은 4년 전에 한국에 가려고 도강하려는 함경남도 사람들에게 길안내를 해주다가 걸려 15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둘째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남편이 잡혀가는 바람에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당장 생계벌이에 나서야 했다. 이리저리 돈을 꿔 장사를 하거나 남의 집 농사를 지어주거나 해서 어찌어찌 살아왔다. 그러다 올해 들어 식량 값이 폭등하고 벌이도 마땅치 않아 돈을 쥐어보지 못한 날이 여러 날 계속됐다. 먹을 것을 살 돈이 없으니 들로 산으로 나가 풀을 뜯어다 풀죽을 해먹었는데 몸에 무리가 심했다. 산후조리를 못해 몸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먹는 것도 없다보니 여러 병이 겹쳐 급기야 운신조차 어려울 지경이 됐다. 산나물을 캐러 나갈 형편도 안 돼 풀죽도 못 먹게 됐다. 마음씨 착한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 줘서 어찌어찌 버텨왔는데 다른 집들도 식량이 떨어져 그렇게 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더 이상 방도가 없어지자 약을 타 두 아이에게 먼저 먹이고 자신도 마셨다.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과 아이들을 데려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만 한 장 남겼다.

굶주린 아버지의 자살에 때늦은 후회

평안남도 성천군에 살던 박금철(69세)씨도 5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슬하에 외아들이 있는데, 옥이야 금이야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 아들은 장가들어 제 살림하면서부터 부모를 잘 모시지 않아, 평소에도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 그러다 올해 들어 식량이 떨어져 한 달 전에 급기야 병든 아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살자고 여러 번 청했다. 아버지는 식량이 없어 풀뿌리를 캐다 먹으면서 근근이 연명해나갔다. 박노인이 자살하기 며칠 전 아들이 시장에서 콩기름을 반병 사가는 것을 보고 아들집에 찾아가 기름 먹어본지 오래됐다면서 콩기름이 너무도 먹고 싶어 그러니 조금만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곧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아버지가 너무도 격분해 아들 내외가 짐승보다 못하다, 개를 키워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 치를 떨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도 아내와 사별한 슬픔에 아들내외로부터 받은 설움, 배고픈 고통 등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하며 울다가 결국 목을 매 자살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아들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생활실태가 이러는데 아버지를 돕고 나면 자식들을 굶겨 죽여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무를 해다 팔면서 허약한 아이들을 먹이려고 산 콩기름을 아버지가 달라고 하니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고,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배고프다고 하실 때 마음이 아팠다. 그냥 그 때 아버지한테 조금이라도 드릴 것을 내가 불효한 죄인이다. 내 자신이 너무 가증스럽다”면서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히며 괴로워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응급치료를 받고 깨어났으나 여전히 죄책감에 얼빠진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이혼하고 자살하고 죽는 것은 모두 식량난 때문이라며 눈물을 찍었다.

방랑자 넘쳐도 당국은 무대책

작년에 비해 올해 들어 꽃제비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 함경남도 함흥, 고원, 평안남도 평성, 순천, 신성천, 간리, 황해남도 해주, 황해북도 사리원, 강원도 원산 등 각 도마다 주요 교통 요충지에는 어김없이 꽃제비들이 모여든다. 다른 지역들도 꽃제비들이 늘고 있으나, 이 지역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꽃제비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꽃제비들이 그나마 적은 곳은 회령과 평양 등 몇 곳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꽃제비들이 모이지 않는다기보다 그만큼 단속을 더 강력하게 하고 있어 꽃제비들이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매 군마다 적게는 30명, 많게는 50여 명씩 여러 무리의 꽃제비들이 몰려다닌다. 이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덮치거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꽃제비들이 없는 곳은 없다. 이런 실정임에도 정부에서는 꽃제비들이나 고아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당국은 다만 9․27그루빠를 조직해 꽃제비들을 단속하고 있다. 어린 꽃제비들은 애육원이나 육아원으로 보내고, 어른 꽃제비들은 출신 구역으로 되돌려 보낸다. 매번 이런 식으로 처리해왔으나 이 업무조차 요즘엔 마비될 지경이다. 그만큼 방랑자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9․27그루빠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매일 단속해도 매일 어디선가 새로운 꽃제비들이 쏟아져 나온다. 구제소에 보내도 다시 뛰쳐나오기 때문에 애초부터 단속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구제소와 애육원, 육아원 등의 부담이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원생들도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는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나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해당 인민반에서 돈을 모아 준다고 해도 한 두 번이지 당장 주민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꽃제비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함경남도 고원에 사는 허충현(48세)씨는 “차라리 신경 끄고 사는 게 낫다. 시, 군당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챙기겠나. 지금 굶어 죽어가는 게 어디 한 둘인가. 당장 우리 집 식량이 바닥나 내 새끼 먹일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방랑자들을 도와준단 말인가”라며, 국가적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방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가족들이 함께 죽어가는 상황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이 겹쳐 매일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가슴 아픈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온 가족이 굶주리다가 연달아 죽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5월 초,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 구역에서는 집 식구들이 집단 설사병에 걸려 연이어 죽는 일이 발생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지 못한데다가 풀죽을 잘 못 먹은 데다 오염된 물로 배를 채운 게 큰 탈이 났다. 어린 자녀들이 먼저 설사병에 걸려 탈수현상이 심해지면서 조용히 숨을 거뒀고, 하루 만에 아버지가 뒤를 이었다. 곧이어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남포시에서는 군수공장에 다니는 로동자의 가족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의사들에 따르면, 가족들이 집단으로 병원에 실려와 진찰해보면 모두들 먹지 못해 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사망한 것이라고 한다. 세 가족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리희승(53세)씨는 “영양보충을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약을 준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가족들 중 누구 하나 남지 않고 한꺼번에 죽는 게 저승 가는 길이 그나마 덜 외롭지 않겠느냐고 내 스스로 위로한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의사들은 집안 식구들이 한꺼번에 죽는 것은 대부분 오랫동안 굶주려서 그런 것이라며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고 한탄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아직 먹을 것이 그런대로 있지만, 식량이 이미 떨어진 사람들은 벌써 두세 달 거의 굶다시피 버텨왔기 때문에 기력이 바닥난 경우가 많다. 같은 인민반에 살던 한 가족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송창국(47세)씨는 “주민들의 생활이 이렇게 비참해지다보니 사람이 죽은 후에 관을 만들 널판자 살 돈이 아름차서 사지 못하고 비닐이나 천으로 뭉쳐 싸서 묻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자식 죽는 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어야지”

평안남도 안주시에 사는 김상희(35세)씨가 얼마 전 생계문제로 결국 목숨을 끊었다. 시장 단속 제한에 걸려 장사를 못하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겨우 풀죽으로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여러 날 먹지 못해 허기져 누워있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백방으로 돌아다녀봤지만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더는 어쩔 수가 없자, 고민 끝에 비상을 먹고 자살했다. 평소 김씨는 “자식들이 죽어가는 것을 도저히 내 눈으로 못 보겠다.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야지”라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망 끝에 자살하는 사람들

전국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도 견뎌왔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무는 사람들 속에서도 끝이 안 보이는 식량대란에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 일찌감치 먹을 것이 떨어진 취약계층 사람들이 절망 끝에 먼저 세상을 저버리고 있다.

■ 논평

남한 정부는 신속히 지원에 나서야 한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북한 주민들이 풀죽으로 연명하다 쓰러져가고 도시마다 꽃제비들이 넘쳐나며, 자살자가 급증하고 시체를 묻을 관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마치 10여 년 전에 수많은 탈북자가 증언한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사회상을 다시 듣고 있는 듯하다.

왜 아직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의 절규를 듣지 못하는가? 왜 아직도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고만 있는가?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남북관계를 구축하는 길인가? 이것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남한 정부는 신속히 대북 지원에 나서야 한다. 햇감자가 나오기 전까지 아사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외부의 지원이 가장 절실한 때가 바로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요즘이다. 미국 정부의 50만 톤 지원에 편승해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보다 남북한이 정면으로 마주앉아 긴급히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북한 정부가 먼저 고개 숙여야만 우리의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부도 외면하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할 때 우리의 도덕성과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물론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실리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 주민들을 도움으로써 민심을 얻어 그 민의를 통해 북한 정부가 비핵개방에 이르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강구하는 것이 남한 정부의 목표 달성에도 부합할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