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황해남도 옹진군과 룡연군, 아사자 하루 평균 7-10명

황해남도 옹진군과 룡연군의 식량난이 심각한 가운데 이들 군에서는 하루 평균 아사자가 7-10명씩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농촌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식량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여서 주민들의 아사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한 간부는 “황해남도 안쪽 지역 주민들의 약 65%의 세대가 완전히 풀만 섞은 죽을 먹는데 6월에도 식량을 안 주고 이 상태로 가다가는 백성들이 무리로 죽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평북 룡천군 아사자 발생하자 긴급히 옥수수 10kg씩 배급

평안북도 농촌 전역에서 식량이 떨어진 가운데 룡천군 룡천읍과 주변 리농장에서 일부 아사자가 나타나 룡천군 당국이 비상에 걸렸다. 룡천군은 긴급히 농촌 마을마다 한 세대당 옥수수를 10kg씩 배급했다. 농번기가 한창인 때라 오랜 굶주림으로 죽어가거나 몸져누워 일하러 나오지 않는 농민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농사일에도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장기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이번에 10kg의 옥수수를 받고 잠깐 숨통을 텄으나 조만간 또 식량이 바닥날 것이기에 농사일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농사 동원철이라 통제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새벽녘에는 장사하러 다니고 낮에는 모내기에 참가하러 다니는 농민들이 많다.

■ 논평

어머니 당 역할에 최선 다해주길

황해남북도에 이어 평안북도 농촌 전역에서도 식량이 바닥나 농민들 중에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농촌 지역에서의 아사자 행렬이 계속되는 가운데 평안북도 룡천군에서는 긴급히 옥수수 10kg을 풀어 숨통을 틔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무엇보다 황해남도에서는 농촌 동원을 나온 학생들의 배급이 떨어지자 량정사업소에서 군부대의 양해를 받아 군량미로 쓸 옥수수 일부를 풀어서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도 들린다(133호 기사 참조).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어디가 더 낫고 더 못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군량미로 가져갈 옥수수를 굶주리는 학생들에게 먼저 베푼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민들이 군민 관계를 개선시킨 사례라고 칭송하듯 우리도 그 배급으로 학생들의 건강이 회복되어 농촌 동원을 무사히 마치기를 바란다.

아무튼 각 지역에서는 재량껏 식량을 어떻게든 구해다가 풀기도 하면서 이 시련을 넘기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식량 값은 폭등하고 보릿고개를 해갈할 외부의 지원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지원 여부와는 별도로, 북한 정부가 보다 더 주민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어려운 계층의 주민들을 보살피는 어머니 당의 역할에 힘써주기 바란다. 작년 봄처럼 군량미와 비축미를 돌려서라도 늘어나는 아사자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민 대중들에게 어머니 당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자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 경제활동

한씨 노인 가족이야기,“내가 생전에 덕을 쌓지 못해서인지…”

한정철(76세)씨는 대학교 교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사회부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양비 몇 천 원 받아봤자 한 입 풀칠하기도 힘들다. 슬하에 아들 셋, 딸 하나 있는데 모두들 생활난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라 자식들에게 손 내밀 엄두도 못 낸다. 그는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어찌 내가 낳아서 기른 자식이라고 해서 과분하게 생활 도움을 바라겠는가. 자식들도 제 가정이 있고 아이들 있어 자기들 입살이도 막심하니 참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인제는 늙어서 몸에 여러 가지 잔 질병이 많아서 나가 다니기도 힘들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산에 있는 자그마한 소토지에 매달려 온갖 정성을 부어서 겨우 연명해간다”고 말했다. 한씨 노인은 6.25 전쟁 참전 시 발에 걸린 동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데다 무릎관절염으로 고생이 많다. 한씨 노인의 아내 역시 당뇨병에 걸려 농사를 짓는 게 무척 버거운 형편이다. 그들은 농사일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년마다 궂은 날, 갠 날 따로 없이 한 뙈기도 못되는 땅에 곡식 한 포기라도 더 심으려 애썼다. 땅이 척박하고 비료가 해마다 부족해 농사는 잘 안되지만 가을부터 도둑이 너무 많아 아예 산속에 들어와 살다시피 하며 지킨다. 봄철에는 늙은 두 부부가 산나물을 뜯어 반찬도 하고 시장에 내다팔아 얼마간 식량 장만에 힘써왔다. “이제는 살만큼 살아 조상들 뵈러 갈 날만 남겨두고 있는데 자식들 앞날이 너무 걱정돼 편안하게 눈감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큰아들은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하고 그래도 북한에서는 제일 좋기로 유명한 제강소에 배치됐는데, 생산이 중단돼 로임도 배급도 거의 못 받았다. 두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다보니 제강소 철을 훔쳐내 팔게 됐는데 그만 걸려 절도죄 및 생산설비 파괴죄로 교화형을 받았고, 큰며느리도 구류장에 갇혀 고초를 겪다가 얼마 전에야 풀려났다. 중학교 다니던 손자 녀석들은 부모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면서 한노인의 집에 잠깐 와 있다가 배고파 못살겠다며 집을 나갔다.

둘째 아들은 서비 차량을 운전했다. 몇 년 전에 중국 친척을 방문하고 돌아와 중고 옷들을 팔아넘기는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텔레비전, 냉장고, 녹음기 등 각종 중기(가전제품)는 물론 자전거, 재봉틀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살림살이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잘 산다는 소문이 났는지 얼마 되지 않아 시퍼런 대낮에 강도가 들어 몽땅 털리고 말았다. 텔레비전, 냉장고, 록음기, 옷, 신발 등 가정 집기물과 부엌 도구 등을 모두 털리는 바람에, 한씨의 표현대로라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아들이 운전하던 차량이 험하기로 소문난 마천령을 내려오다가 전복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이 사고로 둘째 아들은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나마 고마운 것은 “생활에 착실하고 무던한 며느리가 이를 악물고 이악스럽게 이 가정을 유지해나간다”는 점이다.

셋째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평안남도 문덕군에서 소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생활 또한 말할 것 없이 어렵다. 배급은 조금씩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나눠준다고 하지만 선생이다 보니 장사도 잘 못해 돈을 못 번다. 명색이 선생이면서 정작 자기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 정도로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 딸은 원산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하급 군관과 결혼했는데, 군부대에 들어오는 후방 물품을 넘기는 장사를 하다가 걸려 교화형 5년을 받고 복역 중이다.

한씨 노인은 “내가 생전에 덕을 많이 쌓지 못했는지, 우리 조상 묘를 잘못 모셨는지 왜 나나 자식들 모두 이런 봉변을 당해야 되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불편한 몸이지만 그래도 절기가 되면 조상님들께 후손들을 잘 돌봐주고 보호해달라고 제사지내러 꼭꼭 성묘하러 간다. 하도 억이 막혀 가만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이켜봐도 남한테 해코지한 일도 없고 그런대로 괜찮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며,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어 “도대체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우리 민족과 이 나라가 이런 책벌을 받는지 모르겠다. 왜놈들한테 반세기동안이나 통치 받았는데 국토마저 분단되어 반세기가 넘었으니 너무도 분통하고 억울하다. 우리가 일떠나 목숨 바치며 혁명할 때는 모두가 나라를 찾고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지금의 조선 실태는 너무나도 한심하다. 대중의 먹고사는 문제야 어떻든지 간에 당과 수령위해 살아서도 영광, 죽어서도 영광이라고 교양하고 당과 수령을 목숨으로 결사옹위 수호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구호만 외치면서, 인민생활에는 전혀 관심을 돌보지 않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인가. 당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과연 지금 몇 명이나 있을 것으로 보는가?”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꿈꾸었던 사회주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며 쭈글쭈글한 손으로 여윈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용히 훔쳤다.

이제 교양할 만큼 했으니 위반하면 엄중하게 처벌할 것

중앙당은 평안북도 신의주, 량강도 혜산시, 함경북도 회령시 등 국경연선지역에 주민 강연회 자료를 내려 보냈다. “국경지역 주민들을 이제는 교양할 대로 다 교양 했으니 이제부터 제기되는 대상들은 이전보다 법을 더 엄중하게 적용할 것이다. 중국에 도강한 여성들이 붙잡혀 나오면 무조건 로동 교화소 3년형, 2회 이상 도강했다가 잡혀 나오면 엄중성 정도에 따라 7년 형까지 준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국경연선 지역의 단골 강연 내용

당국은 해가 바뀐 올해에도 여전히 국경연선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손전화기 사용, 도강, 간첩 행위, 마약 밀매매 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국경 지역 주민들의 강연재료에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 손전화기를 사용하는 행위를 철저히 없앨 데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 허황한 생각을 가지고 중국 비법 월경하는 대상들과 도강을 꿈꾸는 자들을 이제부터는 사형에 이르기까지 극형을 적용할 것이다.

● 돈 몇 푼 받고 류언비어를 유포시키거나 일시적인 란관 앞에 주저앉아 외화에 매수되어 적들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는 자들을 주민들이 경각성을 높여 적발 체포하여야 한다.

● 현 시기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로동 계급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약(빙두)을 사용하는 자들도 비사회주의를 조작시키고 우리의 일심단결을 해치는 적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법적 효력을 강하게 적용한다. 빙두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좀먹고 대중을 리탈시키는 자본주의 사상이므로 빙두를 절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우리식 사회주의에 맞지 않게 불건전한 자본주의 생활 풍습대로 생활하거나 불건전한 생활을 하면서 국가 물자나 공동 재산을 마음대로 탕진하거나 개인 리기주의 목적을 위해 살고 있는 자들도 엄중성 정도에 따라 법적 처리를 할 것이다.

● 중국 화교들의 집에서 머슴살이 식으로 일해주고 몇 푼의 돈을 받고 인간의 자존심을 저버리고 굽신거리는 행위를 철저히 배격하고 없애야 한다.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고아를 맡아 키우느냐”

북한 당국은 각종 강연회와 회의를 통해 어려운 시절에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기르는 미담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따라 배우자고 호소한다. 자강도 성간군 우영일 부부 얘기와 마찬가지로 부모 없는 고아 12명을 데려다 기르는 신의주 신남동 기영옥 여성의 모범을 본받으라고 하기도 했다. 이 말에 신의주 주민들은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이때 어떻게 고아들까지 먹여 살리겠냐” 하면서 모두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정부의 선전을 비웃는다.

평성에 사는 길영복(48세)씨는 “그렇게 키우는 집이 전국적으로 도마다 꼭 두 집씩은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규정이 있는 것 같다. 십몇 년 된 것 같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돈을 거둬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살림이 어려워서. 또 국가에서도 돈을 주고 했지만 지금은 국가적 지원이 없다. 지금은 군이나 시에서 옥수수쌀을 주든지, 국수 만드는 기계를 주든지 해서 자기 절로 벌이를 할 수 있도록 생계지원을 해준다. 그렇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고아를 키우는 것은 요즘처럼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시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거”라고 말했다.

111명 고아 키우는 우영일, 김영옥 부부를 따라 배우자

4월 말 TV에 소개된 자강도 성간군 성간읍에 사는 우영일, 김영옥 부부의 미담 사례를 주제로 각 도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 부부는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지금까지 111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키우기 시작한 아이들 중 9명은 군대에 보냈고, 엄마 김영옥씨가 분조장이 돼 50여 명의 아이들을 청년분조로 조직해 농장일을 하고 있다. 나머지 아이들은 아직 학생이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회의에서는 “자강도 성간군이라면 아주 척박한 고장인데 식량도 없고 일체 생활필수품으로부터 아이들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있는 것이 없는, 국가적으로 아무 혜택도 없는 곳이다. 일반 사람이 현재 자식 하나 키우는 것도 오만 공수가 다 드는데 백여명 키우는 것을 부부의 순수한 공력으로 했다. 세 식구 먹고 살기도 힘든 이때 그들이 이 애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는지 모두들 상상해봐라. 이 부부가 있기에 백여명의 고아들이 꽃제비 신세를 면했다. 어쨌든 집이라는 보금자리가 있고 돌봐주는 엄마 아빠가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모두 한두 명씩이라도 돌봐주면 조선에 꽃제비가 어디 있겠는 가”하면서 모두 이들을 따라 배울 것을 호소했다.

학부모들에게 “자녀를 학교생활을 잘 하게 하라”

5월 들어 전국적으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자녀 교양을 잘 해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나가게 하고, 학교생활을 잘 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자녀를 시장에 내보내거나 다른 곳으로 같이 장사하러 다니거나, 또는 산나물 뜯으러 보내거나 집을 지키게 하는 등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는 현상이 점점 만연해지고 있어서다. 순천의 한 교원은 “해년마다 하는 강연이다. 아이들을 걱정해서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5월 농촌동원 인력이 부족할까봐서다. 농촌지원에 애들을 동원시켜야 하니까 학교에 꼭 보내라 그러는 거다. 이 기간에 빠지면 부모까지 연대책임을 지라면서 학부모 직장에까지 통보하겠다고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황해남도 옹진군과 룡연군, 아사자 하루 평균 7-10명

황해남도 옹진군과 룡연군의 식량난이 심각한 가운데 이들 군에서는 하루 평균 아사자가 7-10명씩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농촌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식량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여서 주민들의 아사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한 간부는 “황해남도 안쪽 지역 주민들의 약 65%의 세대가 완전히 풀만 섞은 죽을 먹는데 6월에도 식량을 안 주고 이 상태로 가다가는 백성들이 무리로 죽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평북 룡천군 아사자 발생하자 긴급히 옥수수 10kg씩 배급

평안북도 농촌 전역에서 식량이 떨어진 가운데 룡천군 룡천읍과 주변 리농장에서 일부 아사자가 나타나 룡천군 당국이 비상에 걸렸다. 룡천군은 긴급히 농촌 마을마다 한 세대당 옥수수를 10kg씩 배급했다. 농번기가 한창인 때라 오랜 굶주림으로 죽어가거나 몸져누워 일하러 나오지 않는 농민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농사일에도 그만큼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장기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이번에 10kg의 옥수수를 받고 잠깐 숨통을 텄으나 조만간 또 식량이 바닥날 것이기에 농사일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농사 동원철이라 통제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새벽녘에는 장사하러 다니고 낮에는 모내기에 참가하러 다니는 농민들이 많다.

“빨리 죽으라고 양로원 세운 거 아니냐”

양로원의 식량 사정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은 “늙은이들의 위생관리를 잘해 오래 살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빨리 죽으라고 양로원을 세운 거 아니냐”고 말한다. 어느 양로원이든지 일단 운신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대부분 같은 호실에 배치한다. 평안남도의 한 양로원에서는 세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옷에 냄새가 심하고 이가 들끓는다. 이들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심정이 매우 착잡하다. “꼭 목숨이 빨리 끊어져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내버려둘 수가 있나”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침과 점심 식사 시간에는 종이 울리는데, 매 호실별로 식당 칸에 와서 죽을 타가라는 소리다. 노인들은 이가 성치 않으니 죽이 오히려 낫다고 하면서 하루 한 두 끼니를 죽으로 배급하는 곳이 많다. 시설도 대체로 낙후하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시설이 좋은 양로원이라고 해도 간단하게 세수와 빨래 할 수 있는 세면장만 있을 뿐 목욕탕이 없는 곳이 많다. 주민들은 식량난에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역시 가장 약한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꽃제비들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곡물가격 억제해도 들은 척 만 척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는 곡물가격을 놓고 당국과 상인들 사이에 신경전이 대단하다. 하루 동안에도 오전과 오후 시시각각 곡물가격이 변동해 주민들이 기절초풍할 정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이 많다. 지난 5월 8일, 평안남도 평성 시장에서는 오전에 3,100원이던 쌀값이 오후 4시쯤 4,100원까지 올라 주민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급기야 평성 시인민위원회 가격과에서 보안서의 협조를 받아 식량 판매자들을 모아놓고 긴급 연설을 하기에 이르렀다. 요지는 쌀을 kg당 2,800원, 옥수수 1,350원 이상으로 판매하는 장사꾼들이 있으면 발견 즉시 전량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엄포에도 불구하고 그 날 오후에 상인들은 아랑곳없이 쌀을 kg당 3,750원까지 판매했다. 아무리 가격과에서 식량 값을 지정해주고 보안원들이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식량 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어느 때는 2,000원대로 내려갔다가 하루도 안 돼 3,000원대로 다시 치솟는 등 가격의 변동 폭이 커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식량 장사꾼인 심호성(47세)씨는 “아무리 간부들이 나와서 식량 가격을 지정해주고 단속원들이 단속해도 다들 어느 집 개가 와서 짖나 하고 그냥 흘러듣는다. 그게 수입 대 지출이 맞아야지 장사꾼이 그런 말 듣다가는 장사가 안 되는데 뻔히 손해 보는 짓을 누가 하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