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어머니, 누이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준 게 한이 됩니다”

함경남도 단천시 해안2동에 사는 김길수(40대)씨의 가족은 여섯 명이다. 그중 올해 일흔이 넘은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서, 그리고 스물여덟살 된 여동생은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두 사람 다 집밖에 한 번 나가자면 김씨가 업거나 안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김씨의 아내가 시장에서 잡화장사를 하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 배곯는 날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그 어느 해보다 식량난이 혹독했던 작년 춘궁기에 결국 어머니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한 달도 못 돼 이번에는 여동생이 눈을 감았다. 김씨는 앓고 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누이동생이 제일 불쌍하다. 기운이 딸려서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깥세상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죽었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더라면, 빚을 내서라도 이밥(쌀밥) 한 번 해먹일 것을 그냥 보냈다. 못난 오라비 만나 고생만 하다가 갔다. 먼저 가신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이 불효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나. 다시 태어나면 굶지 말고, 마음대로 뛰어다니면서 다닐 수도 있고, 좋은 남자 만나 시집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다”며 애써 울음을 삼켰다.

장애인 가족 이야기

함경남도 단천시 내문동에 사는 장경희 양은 올해 10살이지만 보기에는 예닐곱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랜 영양실조로 키가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야할 장양은 매일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 주요 일과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직장에서 오른쪽 팔을 다시 못 쓸 정도로 크게 다쳐 일을 하지 못한다. 집도 없이 먹을 것과 잠자리를 찾아다니며 목숨을 유지해가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신체 멀쩡한 사람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시절에 세 가족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있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건강한 사람도 마지막에는 가정이 파탄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형편에 어린아이가 세 가족을 이끌고, 아무런 물질적 지원 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것이다. 어린 딸이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이곳저곳으로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보는 이들마다 동정은 하지만 선뜻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머니는 혼자 동냥하러 다니고, 딸이 아버지와 함께 다니면서 끼니를 구한다. 그러다 저녁 무렵에 서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잠자리를 또 찾아다녀야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돌아다니며 생명을 유지해 왔는데,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소식이 끊겼다. 어머니를 찾아다니던 중 급기야 아버지가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이 이번 달 들어 연달아 일어났다. 장양은 동네 주민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도 그 동네를 뜨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장경희양은 어머니 소식을 기다리며, 꽃제비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

공장에서 부상당한 뒤 꽃제비 신세

함경남도 단천시 덕흥동에서 사는 김순녀(40대)씨는 남편이 심장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 딸을 데리고 꽃제비 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는 가두여성(전업주부)이 아니라, 목재가공공장 노동자였다. 그러던 중 작년 3월 말에 제재기 톱에 한 쪽 팔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공장에서 보상이 좀 나왔지만 먹고 살 길은 막막해졌다. 미미한 보상금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했기에 그냥 공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생활이 더 말할 수 없이 곤란하게 되어 어린 딸을 데리고 떠돌아다니면서 살게 됐다. 그저 한 끼 한 끼 빌어먹었다.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조건에서 입을 것도 없어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다섯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빌어 다녔다”고 했다. 팔목 한 쪽 없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줄 미처 몰랐다며, “우리 딸아이가 제일 걱정이다. 한참 먹어야 할 아이가 굶는 날이 많다나니 자라지를 않는다. 누가 우리 애를 돌봐주기만 한다면 내 남은 팔목이라도 주고 싶다”고 울었다.

■ 식량소식

강동군탄광기업소, 매달 보름식량만 배급

평안북도 강동군 탄광련합기업소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매달 상순(15일분) 배급만 주고 있다. 이것으로는 식량이 충분하지 않아 출근하지 않는 탄부들이 점점 늘고 있다. 2월과 비교해 3월에는 각 소대마다 3-5명의 결근자가 더 생기고 있다. 소대장들은 “노력(노동자)들이 안 나와 작업 배치를 하기가 어렵고, 석탄 생산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고 했다. 탄광참모부 일꾼들은 참모 회의에서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관철할 것에 대해 거듭 결의하고, 석탄 매장량이 많은 혁신갱 구역에 채탄장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이에 따라 기술 굴진 소대들을 새로운 채탄광에 배치한 것이었으나, 식량이 충분치 않아 결근률이 높아지면서 생산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참고 견디라”는 얘기만 하는 중앙당

평안남도 순천석회질비료공장의 식량 배급이 4월에야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식량 공급을 하지 못했던 공장 측은 4월부터 15일 분량의 통옥수수와 밀을 공급하겠다고 예고했다. 중앙당에서는 올해 비료 생산을 위해 지도 일꾼들을 연달아 파견해 비료 증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앙당의 관심에도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 공장 일꾼에 따르면, “농업성 간부들이 자주 내려와 비료 공장 일꾼들을 모아놓고 협의를 계속하는데, 현재 공장 형편이 어려워 경제 관리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만 되풀이 한다. 내려온 간부들은 로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보장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라 실태가 바쁜데 하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니들이 참고 견디라’고만 한다. 그러니 로동자들의 생활이 해결되기 힘들다”고 했다. 식량 문제로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한 직장 당 5명 선이다.

■ 경제활동

황해남도 연안군, 흙보산 비료 확보 주력

황해남도 연안군에서는 흙보산 비료 확보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군당, 행정, 농촌 경영 일꾼들은 “올해 우리 군이 자체로 농사를 잘 지어 자급자족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료 문제가 제일 걸린다”고 말하면서, 녀맹원과 노동자들을 흙보산 비료 생산 계획에 따라 ‘니탄(이탄(泥炭)) 생산 전투’에 내보내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니탄은 하루 약 3만 톤에 달한다. 한편 풍천협동농장에서는 니탄 캐기를 나선 농민들이 흙무더기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평안북도 지역, 매일 아침 퇴비반출 전투

평안북도 도인민위원회에서는 농촌 지원 조직 사업의 일환으로 각 시, 군에 퇴비 반출 전투를 벌이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주시, 염주군, 삭주군 등 도내 각 시, 군에서는 인민반마다 퇴비반출문제로 매일 아침 시끄럽다. 인민반장들이 확성기를 들고 나와 퇴비반출을 하지 않은 세대들을 닦달한다. 또 공장, 기업소, 학교, 병원 등에서도 퇴비반출을 요구해 한 세대마다 2중, 3중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편 평안남도 덕천시에서도 시당과 시인민위원회, 각 공장, 기업소, 단위 등에서 대대적으로 퇴비 반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들은 일인당 700kg이나 되는 퇴비를 바쳐야 한다. 시에서 조직한 퇴비 반출원들이 직접 저울로 잰 뒤에야 일일이 확인증을 주는 방식으로 퇴비를 모으고 있다.

어랑천발전소 돌격대, 지원자 없어 난감

전국적으로 어랑천발전소 돌격대 모집 사업이 실시되는 가운데, 지원자 부족으로 각 지역, 기업소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일부 공장, 기업소에서는 한 달에 10만 원씩 3개월 동안 지원해주겠다면서 지원자를 모집했지만, 중간에 도주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지난 3월달에 청진시 돌격대 지휘부 중대와 소대에서 도주한 사람은 총 8명이다. 이 중 4명은 교대 날짜가 지났는데도 후임 노동자가 오지 않아 지휘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경우다. 건설장에서 돌아온 최명덕(가명, 40대)씨는 “(건설장 일이) 동원자들이 견뎌내기 바쁠 정도(힘들 정도)였다. 마치 범죄를 지어 단련대에 들어간 죄인들처럼 강도 높게 일을 시킨다”고 했다. 이런 말들이 퍼지면서 발전소 현장 동원에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력 동원부 일꾼들은 건설장에 동원자로 나서기만 하면, 30만 원이 생기는 거라며 동원에 동참할 것을 강권하고 있다.

청암구역 혁명사적지관리소에서는 노동자들이 서로 가지 않겠다고 해서, 마지못해 초급일꾼들부터 나가기로 결의했다. 돌격대 교체 기한은 2개월에 한 번으로 정하고, 이들이 나가있는 동안 매달 15만원씩 거둬주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돌격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주기로 하고 지원자를 받는 곳이 많으나 진척이 잘 안 된다. 량강도 혜산에서는 어랑천 발전소에 박토 처리하러 떠나기로 했던 녀맹돌격대가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했다. 지원금이 1/3도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맹원들은 당장 입에 들어갈 식량 구할 돈도 없는데, 지원금을 어디서 만들어 내느냐며 버티고 있다.

■ 정치생활

개천시, 경제범 6명 군중심판

평안남도 개천시는 지난 3월 중순 경제범 6명을 군중 심판에 올렸다. 이들은 대체로 도둑, 강도, 살인 등 생계형 강력 범죄를 저질러왔다. 지난 2년 동안 개인 매대나 국영 수매상점 등을 돌아다니며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도 있었고, 2007년 11월에 국영 수매 상점을 털다가 판매원을 살해한 사람도 있었다. 또 무역회사를 돌아다니며 외화벌이 상품을 털어 붙잡힌 경우도 있었다. 이 날 살인자와 공범자는 무기형에, 그리고 나머지는 교화형 12년에 처해졌다. 한편 자강도 강계시에서는 간첩죄로 5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3월 8일 선거일 전에 돈을 받고 국내 소식을 해외에 알린 혐의로 걸렸다. 이들이 체포된 며칠 뒤인 11일, 관련자 9명이 추가로 구속됐다. 예심 결과 4명은 석방되고, 나머지는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불법록화물 단속 빠지려고 50만 원 뇌물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돈 있는 간부(40대)가 불법록화물을 보다가 단속에 걸려 막대한 뇌물을 바치고 빠져나왔다. 요즘에는 중국 영화중에 불법록화물에 들어가는 영화가 있는데,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해 이 간부는 검열일꾼에게 돈 10만 원을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이것도 돈인가. (상부에) 통보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와 하는 수 없이 50만원으로 올려주었더니 그제야 웃으며 돌아섰다고 한다. 그 간부는 “보안원들, 그 가족들, 보위부 사람들 중에 이거 안 본 사람이 얼마 없다는데,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사회

군인들, 외상으로 사먹고 갚지 않아 문제

평안남도 순천시 비행구분대에서는 사병들의 외상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했다. 사병들이 외상으로 음식을 사먹고 갚지 않아 주민들의 신소가 잇따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외상한 사병들을 불러다 혼쭐을 내고, 몇 배로 갚으라고 하겠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할 형편이 못된다. 사병들이 식량난으로 잘 못 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대도 작년 6월부터 8월까지 식량 위기가 심각해지자, 군관들은 하루에 옥수수쌀 300g, 감자 100g, 콩 30g, 시래기 1,500g, 기름 3수저 분량을 받았다. 일반 하전사(사병)들은 옥수수 100g, 감자 30g, 콩 10g, 시래기 500g, 기름 한 수저 분량을 배급받았다. 이 정도의 식사량으로는 군복무 생활을 하기 힘들어, 배고픔을 참지 못한 군인들이 시장에 나가 외상으로 빵이나 꽈배기 등 음식을 사먹는 일이 많아졌다. 5만 원 이상의 빚을 지게 된 군인들이 비일비재하다. 음식 상인들은 군부대에 외상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러 가면 십중팔구 돈을 받지 못한다. 군관들이 대대정치부에, 대대정치부는 련대정치부에까지 보고가 올라가게 됐다. 이에 외상 문제에 대해 토론한 결과, “우리가 해결해줄 수는 없으니 주민들이 부대에 찾아오면 설복 교양하는 방법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구성시 닭공장, 4.15 명절 앞두고 통옥수수 갹출

평안북도 구성시 닭공장은 4월 15일 ‘태양절’(고(故) 김일성 주석 출생일)을 앞두고 달걀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 일인당 달걀 한 알씩 공급하겠다고 결의했는데,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알 낳는 닭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알을 많이 낳지 못하고 있다. 공장 일꾼들은 대책 회의를 한 뒤, 초급일꾼들이 통옥수수 20kg씩 갹출할 것을 결의했다. 초급일꾼들이 모범을 보여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닭 먹이를 내게 하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당장 내 배가 고픈데, 닭을 안 잡아먹는 게 용하지 내 입에 들어올 것을 닭한테 줄 게 어딨는가?”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여성/어린이/교육

혜산시, 타지역 꽃제비들도 중등학원 입학시켜

량강도 혜산시에는 유독 다른 지역에서 온 꽃제비들이 많이 모여든다. 주민들에 따르면, “장사 류통이 잘 되고, 막 벌어 사는 게 좋은 편”이라 이곳에 모인다고 한다. 량강도 꽃제비 구제소와 도청년동맹단속그루빠 등이 보안서 순찰대와 합동으로 꽃제비들을 단속하고 있는데, 멀리 함경북도 청진, 길주 등지에서까지 찾아온다. 얼마 전 열린 혜산시당 조직부 회의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온 꽃제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토론됐다. 그 결과 아이들이 모두 부모가 없거나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점을 정상 참작해,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라도 혜산 중등학원에 입학시키기로 결정됐다.

해주시, 공부 잘 하는 학생들만 새 교과서 지급

황해남도 해주시 교육당국은 종이 부족으로 교과서가 부족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만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소학교 2학년과 4학년의 경우 국어, 음악, 수학 3과목만 겨우 제 수량대로 인쇄됐고, 나머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각 소학교에서는 한 학급에 한 교과목당 10권씩 돌아가도록 배분하고 있다.

학생들, 빈부격차에 따라 ‘끼리끼리’

학생들 사이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갈등도 생기고 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정경미(21세)씨는 “나는 직통생(1)이라 별로 싸울 일이 없지만, 합숙 생활하는 동무들 보면 가끔 살벌할 정도”라고 했다. 직통생들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갈등을 겪을 일이 별로 없다. 주로 하숙을 하는 돈 많은 집 자제들도 숫자가 적어 눈에 띄게 갈등을 일으키는 편이 아니다. 동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합숙 생활(기숙사 생활)을 하는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다. 집에서 돈을 제법 보내주는 학생들은 학교 식당 밥으로는 허기를 면할 수 없어 주로 바깥 식당에 나가 외식을 한다. 외식할 돈이 없는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합숙소에서 몰래 끼니를 지어먹기도 한다.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당장 허기를 면하자면 어쩔 수 없다. 이때 외식하는 학생들이 규율 위반이라며 총화시간에 걸고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씨는 “남학생들은 자기네끼리 뺏어먹기도 하고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 같다. 녀학생들이 더 무섭다. 어찌나 강하게 비판하는지 저러다 머리 맞잡고 싸우겠다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합숙생인 리명숙(20세)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길주에서 온 명화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작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고 말았다. 같은 호실 쓰던 동무들이 너무 못살게 괴롭혔다. 배고파서 뭐라도 좀 지어먹으려고 하면, 자꾸 방에서 뭘 태우느냐고 그러고, 냄새난다고 그러고, 못 산다고 깔보고 무시했다. 참다 참다 못 참은 명화가 울면서 뛰쳐나가더니 그 뒤로는 안 돌아왔다”고 했다. 리씨는 “(학생들) 보면 끼리끼리 산다. 하숙하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외식하는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심지어 몰래 밥 해먹는 아이들도 옥수수쌀인지 죽인지에 따라 다르다”며, 빈부격차에 따라 친구 관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1)대학 입학생은 직통생과 제대군인으로 이뤄진다. 직통생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진학한 학생을 말한다. 제대군인 학생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말한다.

경성의학전문학교, 50만원이면 합격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 입학시험이 끝났다. 입학생 수요가 많아 시험 수준이 전년도보다 높았다.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돈 있는 집 자제들은 시험 성적과 관계없이 뒷돈을 써 합격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 교원들 중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뒷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에 성적이 밑바닥인 학생들은 50만원을 바치고 합격됐고, 합격권에는 들지 못했으나 중간 수준인 학생들은 30만 원을 바쳤다. 학교의 한 일꾼은 의학대학교의 경우 몇 백 달러가 들겠지만, 전문학교라 비교적 돈이 적게 든 축이라고 했다.

■ 사건사고

온성군, 빚 독촉에 자살자 늘어

함경북도 온성군에서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25일에는 온성읍에서 38세 한 여성이 100여알이 넘는 알약을 먹고 죽어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웃들에 따르면 장사하느라 300만 원 넘는 빚이 있었다고 한다. 당국은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으로 보고, 가족과 친지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46세 남성도 28일 밤 길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그는 집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가지런히 펴고 그 위에 조용히 누워 잠자듯이 죽어있었다. 수사당국은 피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수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이웃들은 “평소 아픈데도 없고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 갑자기 죽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면서도, “며칠 전에 빚이 더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해 빚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량강도 유조차 전복 사고로 디젤유 28톤 손실

지난 3월 21일, 량강도 도 림업관리국 121호 림업 련합기업소에서 철도 차량을 이용해 디젤유를 싣고 가다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당시 차량에 실었던 디젤유 28톤이 쏟아져 피해가 막심했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에 제시된 지침에 따라 통나무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어렵게 확보한 디젤유였다.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됨에 따라 앞으로 통나무 생산 계획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

■ 논평

장애인 보호, 먹고 사는 생존권 보장부터

가끔 새터민들로부터 신기하다는 듯이 듣는 질문이 있다. “남조선에는 왜 이렇게 ‘불구자’(장애인)들이 많냐?”는 것이다. 서울 전철역,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지에서 그리고 번화가에서 보게 되는 장애인들이 무척 놀라웠나 보다. 그러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 조선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없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영예군인들은 있지만, 여기처럼 일반 장애인들이 거리에 활보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의 장애인 실태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장애인의 규모와 생활 실태, 보호 정책 등은 단편적인 소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북한소식’에서도 장애인 소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예군인 소식이 그나마 많고, 그 외에는 온성 삼봉구의 롱아 학원 학생들이 배고파 매일 담을 뛰쳐나가 구걸하거나 도적질한다는 소식이 전부였다(제133호).

물론 북한은 2003년 6월 18일, 조선장애자보호법을 제정해 장애인 권익 보호의 법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장애인 노동자들을 위한 별도의 경로동 직장과 특수 교육시설 설치, 그리고 노동력이 없는 장애인을 돌보는 기관 등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온성 삼봉구 롱아학원 사례처럼,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과연 몇이나 될 지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반인권적인 증언들이 꾸준히 들려온다. “장애인들은 평양에 살 수 없다, 거주 지역을 제한한다, 집단수용소에 격리한다, 불임을 강요한다” 등의 증언이 그것이다. 사실이야 어떻던, 오랜 경제난 속에 모든 사회보장제도가 무너진 지금 장애인들이 보호받고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번 소식에서 장애인들의 생활 실태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신체 부자유가 곧바로 생존 위기로 이어지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성한 사람들도 마지막에는 가정이 파탄 나고 세상을 등지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 팔목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생계유지가 힘들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구걸하러 다녀야 한다. 또 어린 딸이 손목을 이끌어주지 않았으면, 앞을 못 보는 아버지는 구걸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빠 등에 업히지 않고선 바깥구경조차 한 번 하기 힘든 소아마비 여동생은 어떤가? 그 여성은 오랜 영양실조로 방 그늘 속에서만 살다가 죽어야 했다. 이렇듯 장애인들은 매일 죽음의 위기 속에 방치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장애인들은 자유로운 이동권을 보장하라거나, 장애인을 위한 전용 의료시설, 교육시설 및 각종 편의시설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아예 상상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다른 일반 주민들과 다르지 않다. 그저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장애인 직장이 제대로 돌아가서 다른 부업을 하지 않고도 배급과 로임이 잘 나온다면 그걸로 족하다. 끼니를 제 때 잘 먹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장애인 인권 보장은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에 마련됐던 장애인 보호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 북한 당국의 강력한 시행 의지를 기대해본다.

■ 집중탐구

신의주에서 온 편지-“군인들 술값 외상?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군인들 술값 외상?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태어난 곳은 신의주인데, 1994년도에 개성시 개풍군에서 복무하던 군관에게 시집갔다. 아들 둘 낳고 살다가 2005년도에 남편이 제대하자마자 다시 신의주로 돌아왔다. 올해로 만 4년째인데 그 사이 집이 없어 남의 집에 동거 살이 했다. 개성에서 이사 올 때 가정집기물을 다 팔고 돈으로 가져왔는데 오자마자 환율이 하늘 값이 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쫄딱 녹았다(망했다). 그래서 집도 못 구하고 살았다. 얼마 전에 겨우 13평짜리 사무실을 구해서 집이라고 꾸려놓고 산다. 이것도 몇 번이고 빼앗길 뻔 했지만, 남편이 제대군관이어서 그때마다 모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공장 노동자로 배치 받았는데, 일년에 100달러 내고 적만 걸어놓고 다른 일을 했다. 도보위부 군상업관리소에서 일공 노동으로 삯벌이를 해서 한 달에 20만 원 좀 벌었댔는데, 요즘에는 중국 도강길이 끊겨서 하루 1천원도 못 번다. 나는 옥수수가루 1kg를 950원에 사서 밀주를 만들어 판다. 술은 직접 매대에 넘겨 팔고, 모주는 돼지를 먹인다. 술을 뽑자면 불이 좋아야 하니까 석탄을 한번에 50장 또는 1백장씩 샀댔는데, 최고 한 장 200원까지 했던 것이 지금 좀 내려서 160-170원 한다. 그런데 벌이가 시원치 않다. 하도 외상이 많아서 그렇다.

집 근처에는 교도대 청사가 있어 병사들이 주로 외상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도무지 돈을 받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직접 가서 사정도 하고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다음에는 남편이 가서 으름장도 놓고 협박도 하고 그래도, 하전사들이 무슨 돈이 있어 물어주겠는가? 그냥 돈 빌려간 군인들이 아무 재산이나 훔쳐서 돈 만들어 갖다 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지난번에는 2월 16일 명절 대목을 앞두고 당장 술 만들 돈이 없어 아는 집에 20만 원을 꾸러갔다. 사정을 설명하니 대뜸 “차라리 개성에서 군관 가족생활을 하면 좀 낫지 않았는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이냐”고 묻더라.

거기(개성)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개성 사람들이 제일 많이 죽었을 거다. 고려 수도였으면 뭐하나. 먹을 게 없는데. 쑥이랑 능쟁이 풀 뜯어먹고 병신 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내가 살던 부락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꽃제비처럼 살아도 신의주가 차라리 낫다. 지금 하루에 비지밥으로 한 끼니를 때우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인정은 함정, 외상은 무상, 후불은 행불’이라는 말이 류행하는데, 이 말이 딱 맞다. 나도 군대들 빚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힘들게) 살지만, 사촌언니도 ‘인정은 함정’이라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평양에서 벤츠 타면서 큰 간부를 하다가, 신의주에 배치 받고 온 가족이 있었다. 그 집 맏아들은 군대에 가고, 이사 올 때는 중학교 졸업반 아들과 25살 먹은 딸이 함께 왔다. 아무리 간부로 잘 살았어도 지방으로 내려오면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그 집 딸은 간호원으로 복무했었지만 도 산원에서 주는 배급과 로임으로는 도저히 시집 갈 수가 없다며 장사를 했다. 직장에는 한 달에 1만원씩 내고 적만 걸어놓고 있다. 그 딸이 사촌언니에게서 물건을 받아갔다. 사촌언니는 솜옷장사를 했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 집 딸이 열심히 장사하는 게 기특해 물건을 외상으로 주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 달이 지나도록 물건 값을 받지 못했다. 집에 찾아갔더니 요즘에는 집에도 안 들어온다고 한다. 비싼 솜옷을 10벌 이상 때인 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언니는 “인정이 함정이 되었다”며 끙끙 앓고 있다.

요즘은 이렇게 모두 장사하다 먹혔다는 소리뿐이고, 협잡을 해야 리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생각만 하는 백성들의 정신력으로, 과연 2012년 강성대국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는지 근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