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만성 영양실조, 해결책은 없는가?

북한의 아사 현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북한 주민들은 현재의 아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1998년처럼 길거리에서, 역에서, 그리고 시장에서 쓰러져 죽어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진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산에서, 들에서, 집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성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굶어죽을 정도로 극심한 허기짐에 시달리다보면,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증언이 많았다. 결국 사람을 잡아먹었던 이들은 공개처형을 당했다. 또 제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걸리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량미에 손대고, 전화선을 자르고, 부림소를 잡아먹는 일 등이 그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런 일 자체가 극형감이었는데도, 그런 행위로 아까운 목숨들이 형장에서 스러져 갔다. 그런데 그때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2009년에 다시 전해지고 있어 우려감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굶주림에 정신이 미쳐버린, 어느 극빈층에서 벌어진 개별 사건에 불과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한 건이든 두 건이든 관계없이, 문제는 오랜 식량난의 연장선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춘궁기 때보다 수확기인 가을에 사람들이 더 많이 죽었다는 증언도 유심히 살펴보면 다 만성 영양실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오랜 굶주림 탓에 위장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갑자기 먹으면 탈이 생기고 결국 목숨을 잃는 사고가 생긴다는 얘기다.

‘사람을 잡아먹는 일’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은 눈에 잘 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사건이 눈에 띄기 전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이렇듯 북한의 식량난이 20년 가까이 장기화되면서, 만성 영양실조의 폐해도 그만큼 커지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대규모 기아사태가 눈으로 확인된, 이른바 ‘공인된 현장’에는 즉각적인 원조를 실시해왔지만, 보이지 않는 ‘만성 영양실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렇기에 실상 파악조차 어려운 북한에 국제 사회의 대량 원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 국제금융위기로 재정이 급감해 WFP의 지원 규모가 전체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실정에, 설상가상 북한의 핵실험으로 대북지원 규모는 더더욱 줄어들어 기존 계획 대비 1/3로 축소됐다고 한다. 또, 지난 7월 1일 미 국무부는 모니터링과 접근이 어려운 점을 이유로 대북 추가 지원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은 현재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북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떠나, 주민들의 생존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주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때이다. 남북한 당국은 2,000만 북한 주민의 고통과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이보다 더한 인류애, 민족애가 어디 있겠는가.

남한 정부는 일단 춘궁기를 넘길 수 있도록 긴급지원을 하고, 만성 영양실조에 대한 장기 대책을 남북한 당국이 힘을 합쳐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남북한 상황으로 볼 때는 요원해보이기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겐 우리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마저 희망을 버린다면, 그들에게는 정말 절망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 시선집중

“위험한 일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함경북도 화성군에 사는 정초옥(43세)씨는 지난 1월에 있었던 군량미 도둑 사건을 들려주었다. 평소 서로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직도 안타깝다며, 다음 얘기를 전했다.

“병일(가명, 23세)이는 생긴 게 깔끔하고 깨끗하고 잘 까부는 형이다. 부모가 다 고난의 행군 때 죽고, 저 혼자 살아남았다. 내가 먹을 걸 갖다 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얼마나 신경써주고 살았겠나. 그러니 애가 어릴 때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 먹고 살았다. 그렇게라도 살라며 나도 그러려니 별 말 안했다.

생활의 쓴맛을 다 보지도 못한 어린 것이 작년에 18살짜리 여자와 결혼했다. 애가 애랑 결혼했으니 뭐가 있겠냐. 아무 것도 없이 결혼식도 못하고 사진 한 장 못 남기고 그냥 살았다. 올해에는 딸애가 태어났는데, 제 아버지 닮아 귀엽게 생겼다. 그때가 제일 행복해보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장사하는 사람들 물건을 훔쳐서 그걸로 먹고 살았는데, 점점 장사가 잘 안돼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적어지고, 짐도 적어지니 훔칠 것이 없다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차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룡반역에 평양으로 가는 군량미 빵통이 도착했다. 나중에 그 집 각시 얘기를 들으니, 병일이가 며칠 동안 쌀을 훔칠 생각에 잠을 다 못 이뤘다고 한다. 하여간 군량미 빵통은 룡반역에서 한 3일인가 머물다 떠났다. 그 때가 새벽 2시였다고 한다.

병일이가 제 동료 두 명을 더 불러다가 떠나는 차에 매달려 타고 그 다음 역에 서기 전에 쌀 마대를 20개 이상 밖으로 내던졌다고 한다. 그러고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는데 얼마나 속도가 세던지 지하족 바닥이 다 끊어질 정도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공한 기쁨에 밤새 그걸 다 나르고, 온 낮을 셋이서 푹 자고, 다음날엔 쌀 두 마대를 팔아 술과 불고기판을 벌리고 승리가를 부르며 만사태평을 보냈다. 그러던 것이 (1월) 25일날 다 들창나고야(들통 나고야) 말았다.

글쎄 떠나간 줄로만 알았던 기차가 돌아 올 줄이야. 한 알도 다쳐서는 안 될 군량민데 너무 자리가 나서(비어서), 그냥 돌아가면 호송원은 응당 죽어야 된다는 것이다. 밤에 한 짓이라 마대를 땅에 던졌으니 쌀이 터져 흔적이 땅바닥에 남아있었다. 하필 또 그날 밤에 한 농장원이 훔치는 걸 보고 말았다. 그 사람이 ‘비밀을 지키겠으니, 쌀 5마대만 달라’ 했는데, 병일이는 이미 빵통이 지나갔는데 무슨 일 있겠냐며 아무 일 없다고 코웃음치고는 한 알도 안 줬다고 한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그 때 조금이라도 줬다면 일없겠는데, 그 농장원이 뿔이 나서 신소해버렸다. 병일이는 도망가고 나머지 둘은 잡혔는데, 병일이는 주동이라 잡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철없는 나이에 애까지 딸린 각시만 불쌍하게 됐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 병일이 욕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병일이가 나빠서가 아니다. 자기 일생을 망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위험한 일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게 지금 우리 조선의 현실이다. 요즘에는 멀쩡한 사람들도 장사 못하게 하지, 소토지 농사도 못하게 하니 다 범죄의 길에 빠지는 때다. 그렇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앞으로 이러다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먹을 것 때문에 살인하니 불쌍하다”

지난 6월 초,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한 부부가 살인 혐의로 공개처형을 당했다. 수북동의 같은 인민반에 살던 김재금(가명, 50대)씨는 이들이 사람을 죽인 것은 먹을 게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 집에 먹을 것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매일 배곯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 그 날 밤 9시경에 지나가는 사람을 몽둥이로 까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돈이 없자 사람고기라도 먹자고 들여가 끓여 먹는 사단이 났다. 며칠 후에 붙잡혔는데, 이 사람들 본심이 나빠서가 아니라 산 입에 거미줄을 못 친다고,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 할 수 없어 그런 거다. 사람을 죽였으니 죄 값을 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리 착한 사람들이 먹는 것 때문에 살인까지 할 정도니 정말 불쌍두 하다.”

이 부부의 공개처형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사람 잡아먹고 공개처형 당하는 일은 고난의 행군 시절에 많았는데, 요즘 들어 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더 무섭다”

강원도 원산의 한 간부는 올해에도 굶어죽어 가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보이지 않게 죽어가는 것이 더 무섭다”고 했다.

“강원도는 작년도부터 지금껏 사람 죽는 게 끊이지 않는다. 작년 봄에 아사가 시작돼 여름까지 이어지더니, 가을에는 9월말부터 시작하여 10월 말까지 죽는 사태가 고봉에 올랐댔다. 민심이 황황해지고 주민들이 불안해하며 소란스러웠다. 먹지 못하던 사람들이 허약에 비틀거리다가, (가을이 되자) 먹을 것이 생겨 배를 채우니 소화가 안 되고 지쳐서 많이 죽어 나갔다. 11월 말에 다소 완화되고, 시와 군들에서 (아사) 사태가 멈췄지만, (6월) 현재에도 강원도 전 지역 농촌들에서 아직도 굶어 죽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병원 의사들의 말이, 농촌에서 오는 환자들은 100이면 100 모두 영양실조나 허약증세로 생긴 기타 병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약보다 단백질이 높은 음식을 먹으면 능히 치료될 수 있는 증상들이라고 했다. 작년처럼 무리죽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게 죽어가는 게 더 무서운 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실제 얼마나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 모른다.”

시병원의 한 의사는 “장기 영양결핍으로 위장기능이 저하돼 몸이 붓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겐 탈수현상이 생기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먹는 게 없어도 새빨간 소변이 나온다. 이렇게 부은 상태가 되면 먹을 게 생겼다고 뭐든 먹으면 절대 안 된다. 작년 가을에 사람들이 많이 죽어간 건 이렇게 영양실조가 심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수액제(링겔) 주사를 놓아서 회복을 시켜야지, 처음부터 바로 먹으면 안 된다. 우리 병원에서는 순두부 만드는 물을 먹이다가 점차 죽을 먹이는 식으로 차츰 몸을 회복시켜 주고 있다. 작년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간 것은 이런 이유였다. 올해도 영양상태가 안 좋아 위장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걱정했다.

■ 식량소식

정주군 농장원들 한 끼, 닭 모이만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는 일부 농장원들이 배고파 일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농장원들은 “한창 농번기라 힘을 써야 하지만 먹는 수준은 닭 모이 쫓듯 하는 수준”이라 기력이 없다고 말한다. 농장원 김정국(50대)씨는 “우리 농장원들이 하도 배고파서 하는 말이, 온 집안 식구가 한 끼에 옥수수 30g을 겨우 먹는 정도니, 이것이 닭이 모이 쫓아 먹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고 전했다. 굶주림에 지친 농장원들 중에는 결근자도 생기고 있는데, “일을 계속 안 나오면, 리 자체에서 조직한 깡판에 끌려가 강제 로동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농장일꾼은 “누가 그것만 먹으라고 주는 거냐. 작년 말에 이미 자기들 식량 분배를 받아가지 않았냐. 거기에 점심때 보태서 먹으라고 30g씩 주는 거”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농장원들은 “지금까지 식량이 남아있는 집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일꾼들이야 몇 개월씩 먹고도 남을 만큼 식량을 가져갔겠지만, 우리야 군량미 거둬가고 분배량이라고 받은 게 얼마 되지도 않았다. 식량 떨어진 집들에선 지금 먹을 게 없다”고 지적했다.

희천시 공작기계공장 4월부터 배급 중단

자강도 희천시 공작기계공장은 올해 4월부터 지금까지 배급이 중단된 상태다. 이 공장에는 군수용품을 만드는 군수 직장이 있어 비교적 정상적으로 배급이 이뤄져왔다. 그러다 배급이 중단되자, 로동자들은 부랴부랴 소토지 농사라도 해보려고 산림반 소토지를 구했다. 소토지 농사를 짓느라 출근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제2경제위원회 해당 기계관리총국 담당처장은 150일 전투 현장 지도를 나와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하고, “로동자들이 일은 안하고 소토지 농사지으러 밭에 나가, 150일 전투 분위기가 서지 않는다”며 도당에 료해사업 보고를 올렸다. 이에 자강도 도당은 도검찰소 국토삼림검열부를 통해 이들에게 소토지 농사를 짓도록 허락해 준 삼림보호원들을 조사 및 처벌하도록 했다. 그 결과 공업림 산림이용반 삼림감독원 4명이 걸려 직위 해제되고, 6개월간 무보수 로동 처벌을 받았다. 희천공작기계공장 노동자들이 농사짓던 밭은 당국에 몰수돼 인근 농장이나 부대에 넘겨졌다. 소토지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야 노동자들이 출근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노동자들은 “배급이 없어 당장 먹을 게 궁한데, 소토지 농사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대체 어쩌자는 거냐? 우리보고 굶어죽으라는 소리냐?”며 당국의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 경제활동

흥남비료공장 비료 각 도에 배분 완료

함경남도 흥남비료공장에서 생산된 비료가 각 도마다 분배 완료됐다. 지난 6월 10일, 평안남도 농촌경영위원회에는 비료 1만 3천 톤이 전달됐고, 황해남도 1만 6천 5백 톤, 함경북도 1만 톤, 량강도 7천 톤, 그리고 자강도 8천 5백 톤이 각각 분배됐다. 각 도당 조직비서들은 시, 군당에 “비료를 개인 소비와 허실이 없도록, 철저하게 안전 대책을 세워 호송할 데 대한” 전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비료가 도착한 각 철도역마다 무장한 분주소 보안원과 보위부원들이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농장까지 호송을 전담하기로 했다. 만일 비료를 분실하게 될 경우 해당 농장일꾼과 호송을 담당했던 보안원 및 보위부원 등에 법적 처벌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할머니가 탁아소 차려 하루 6천원 수입

평안남도 평성시 주례동에 사는 리분순(70대, 가명)할머니는 집에서 탁아소를 운영해 하루 6천 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아이 한 명당 300원씩 받는데, 보통 하루에 20명의 아이를 봐준다. 아이를 왜 탁아소나 유치원에 맡기지 않느냐는 물음에 리할머니는 “탁아소나 유치원에 보내면 내라는 게 많아서 엄마들이 거기에 안 간다. 나처럼 개인들이 하면 그 돈(300원)만 받고는 다른 내라는 것이 없으니, 엄마들이 이리 온다”고 했다.

■ 정치생활

“간부들 반성문은 면죄부를 주려는 것”

평양의 한 간부는 반성문 쓰기가 꼭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간부들이 저지른 비법행위에 대해 일종의 자수하는 기간을 주어 면죄부를 주려는 성격이 있다고 했다. “자수하면 당위원회에서 자료를 보관하고는 불문에 붙인다. 큰 간부들은 돈을 많이 먹으니까 폭로 요소가 많다. 자수하면 법 취급을 받지 않아 무죄나 마찬가지가 된다. 간부들이 새 출발 하도록 면죄부를 주는 거다. 그러니 간부들에게 반성문 쓰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새로운 방식으로 또 다시 뇌물을 받기 때문에 진정한 새 출발을 하는 간부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간부들, 반성문 쓰고 또 쓰고

요즘 간부들은 반성문 쓰느라 정신이 없다. 자신들의 생활과 관련한 반성문을 매일 3장씩 쓰고 또 쓰고, 잘 못쓰면 다시 써야 한다. 평양의 한 간부는 “이미 다 찌그러진 거 이런다고 바로 될까?”라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전체 간부들과 당원들에게 보낸 비공개 붉은편지를 본 뒤, 3년 전부터 각자가 범한 사소한 과오도 빠짐없이 비판하는 반성문 쓰기가 벌어졌어요. 참 따분한 일인걸요. 특히 간부사업에서 뢰물현상을 위주로 쓰라고 합니다. 간부는 나라의 기둥인데 실력본위가 아니라, 무슨 일이든 돈과 권세, 그리고 안면관계로 해치우니까 인재들은 썩고, 나라는 발전을 못하고 그런다면서요. 근데 강연내용 듣고 난 사람들 말이 ‘놀랄 건 하나도 없고 이미 아주 보편적인 사회 흐름인데, 이런다고 누가 바뀌겠느냐. 이미 기울어진 것이 바로 되겠느냐’ 야유해요. 뭐 150일 전투 사업료해차 중앙에서 지도 소조들이 지역마다 내려갔는데, 그 사람들조차 뢰물 받아먹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평안남도 평성시 시당 선전부에서도 지난 6월 19일, 전체 간부들과 당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보 강연을 했다. “현 시기 간부들과 법관들이 돈을 받고 비법과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조성시키고, 법적 통제 폭압을 주고 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모든 간부와 당원들은 3년 전부터 자신이 저지른 비법행위를 비판서 형식으로 적어내라고 했다. 전당 운동 차원에서 자체 반성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모든 간부들은 낮에는 150일 전투 현장에 나가고, 저녁에는 반성문을 쓰고 있다.

150일 전투 총화에 걸리면 ‘십일 교양대’처벌

전국 녀맹은 ‘150일 전투영예기록장’을 매일 기록해서 총화에 반영한다. 제대로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탈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총화가 끝나자마자 ‘십일교양대’에 들어가 사상교양을 받게 된다. ‘십일교양대’란 생활을 잘 하지 못한 대상들을 모아 각종 사상학습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십일교양대 처벌을 받는 사람들은 아침 8시부터 김일성 수령님 교시와 장군님 말씀 등 각종 사상교육을 받고, 3일간은 자기 비판서를 쓰고, 결의문도 매일 쓴다. 오후에는 로동단련도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사는 김성숙(40대)씨는 “얼마나 달달 달구는지 한 번 달겨 본 녀맹원들은 다시 끌려가지 않게 노력한다”며 진저리 쳐질 정도라고 했다.

“온 세계가 우리나라를 지켜 본다”군중강연

150일 전투가 한창인 가운데, 한 군중강연에서는 “지금 온 세계가 우리나라를 지켜본다”며, “과연 조선에서 어떤 걸 가지고, 150일 전투를 하는 가 관심이 많다. 우리는 이제 국방력 강화에 힘을 그만 돌리고, 인민 생활에 모든 걸 집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농촌 지원도 잘 하고, 맡은 일들을 잘하자”고 했다. 또 “1974년에 70일 전투, 200일 전투를 우리 장군님께서 승리에로 이끄시였는데, 오늘의 150일 전투도 우리 당 력사에 아로새겨질 강성대국의 대문을 두드리는 력사적인 의의를 가지는 전투”라며 추켜올렸다.

■ 사회

이혼당할 위기의 군관들, 아내 데려오는 휴가 다시 받아

강원도 5군단 5사단 10련대와 7련대에서는 이혼 당할 위기에 처한 군관이 약 20명에 이른다. 작년 3월 식량 사정이 매우 곤란해지자, 각 부대에서는 38세 미만 젊은 군관들에게 아내를 아내의 본가(친정)로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하는 수 없이 기약 없는 별거 생활을 하다가, 5개월이 지나서야 아내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돌아왔으나, 일부 여성들이 “더 이상 먹을 게 안 나오는 군관들과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남편에게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군관들이 아내를 찾아 처가에 다녀가기도 했으나, 혼자 돌아온 사람이 18명이나 됐다. 지난 6월 10일, 각 사단 정치위원들은 이혼 당할 처지에 놓인 18명의 군관들을 모아 각자 자신의 아내를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선군정치로 온 나라가 군대를 받들고 있는데 왜 자기 안해(아내)를 못 데려오는가. 모두 다시 한 번 외출 승인을 해주겠으니, 안해들을 데려오라. 선군 정치 령도로 인민군대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데 인민군 군관들에겐 결코 이혼이란 있을 수가 없다”며 휴가를 내주었다.

6.25 군중집회에 더위 먹은 주민들 졸도

황해북도 사리원에서는 지난 6월 24일 군중집회를 했다. 6.25 전쟁을 도발한 미제 침략자들은 조선에서 나가라는 것과, 남조선 리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였다. 이 날 군중집회장에서는 햇빛에 더위를 먹고 5명이나 졸도했다. 여자 3명과 남자 2명이 쓰러졌는데, 현장 치료대가 응급처치를 했다.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은 “10분만 더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을 것이다. 가뜩이나 먹은 게 없는 사람들을 장시간 햇빛에 세워두니 쓰러지는 게 아니냐. 이런 집회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 쓰러졌던 서미정(30대, 가명)씨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주사를 또 한 대 맞았는데, 부작용이 왔는지 다음날 오전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했다.

같은 날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구역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서도 같은 내용의 군중집회가 열렸다. 이곳에서도 더위 먹고 의식을 잃은 사람이 12명이나 됐다. 그 중 남강2동에 사는 55세의 한 주민은 뇌출혈이 심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돈 없으면 남의 집 머슴질 해야”

요즘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돈을 벌고, 돈 없는 사람은 남의 집 머슴질이나 해야 한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함경북도 청진시에 사는 함봉순(45세)씨는 자신이 목격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청진) 수북동 48반에는 과자 만드는 집이 있다. 그 집에서는 직업 없이 노는 여자들이나, 집이 너무 가난하여 죽도 못 먹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품값을 준다. 대체로 나이들은 15~22살이다. 하루는 과자를 사러갔댔는데 일을 시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찬밥에 국도 없이 몇 술 먹고 온 하루 한 번도 쉬지 못하게 하고, 저녁엔 10시까지 일을 시키고 11시에 재운다. 그래 번다는 돈이 하루에 890원~1,000원 번다는 것이다.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일해서 쌀 반kg도 못 버는 거다. 거기서 일하던 아이들 중에는 결핵 걸린 아이들도 있고, 변비에 걸린 아이들도 있다. 따지고 보면 얻은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그런데 비해 그 집은 품값을 눅게(싸게) 주고 시켜 만든 과자를 비싸게 팔아 돈을 곱절 벌어들였다. 그 집 딸들을 시집보낼 때 얼마나 잘해 갔는지 모른다. 딸애는 생긴데도 없는데다가 머리도 나쁘다고 소문났는데, 돈이 많으니까 남자는 어디서 퍽 괜찮은걸 데려 왔다. 살다보니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된다.”

■ 여성/어린이/교육

원산경제대학 교직원 실력 점검

지난 6월 15일부터 강원도 원산시 정준택원산경제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실력 수준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일부 과목 교원들의 자질이 부족하고 실무 능력이 떨어진다며, 전체 교수들에 대한 실력 점검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 교직원들과 박사, 그리고 수재 양성 교수 등에 대한 판정 검열이 실시됐다. 교육성 판정 검열 일꾼에 따르면, 28-35세 사이 교원들의 수준이 높고, 35세 이후 교원들은 대학생들과 실력 면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 교육일꾼은 “2년에 한 번씩 판정사업을 하는데, 교육성 심사위원들이 내려올 때는 벌써 이번에는 어느 부류의 교원들을 제거해야겠다는 과업을 가지고 내려온다. 물론 이렇게 로골적으로 말하지는 않고 그저 ‘이러이러한 사람을 잘 판정해서 당위원회를 잘 도와줘라’ 이런다. 이러면 벌써 심사하는 일꾼들은 ‘제명해야 되는 구나’ 이렇게 알게 된다. 올해는 젊은 세대 교원들을 진급시키고, 나이 많은 교원들을 퇴출시키라는 과업이 내려진 것 같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나이가 안 되지만 나이가 많은 교원들이 이번에 많이 떨어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세대와 구세대를 교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번 심사를 한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사건사고

보안원 행세 해오던 강도무리 붙잡혀

황해남도 장연군 장연읍 보안서에서는 보안원 행세를 하며 강도짓을 해온 한 무리를 붙잡았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그동안 보안원 복장을 입고, 장사꾼들과 길가는 사람들에게 단속을 벌여 뇌물을 받아 챙기고, 물건을 강탈하는 수법으로 강도짓을 해왔다. 남자 3명이 주로 보안원 복장을 하고 거짓 단속을 했고, 나머지 6명은 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물건을 챙기거나, 다른 지역에 가서 판매하는 판매망 역할까지 했다. 황해남도뿐만 아니라 황해북도까지 오가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이들은 지난 6월 8일,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결국 꼬리를 붙잡혀 바로 구속됐다. 이 소식에 장연읍 주민들은 “그동안 보안원들이 얼마나 쉽게 돈 벌어왔는지 알리는(알 수 있는) 일이지 않냐. 보안원들이 하도 백성들 등쳐먹다 보니 이런 사람들도 생기는 거”라고 한 마디씩 했다.

감자 지키려다 군인들에게 맞은 경비원 사망

지난 6월 2일,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 협동농장에서 경비원 한 명이 군인 도적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4.25훈련소 군인 4명은 훈련소 보위부에 곧 체포됐다. 군인들은 “2작업반 감자밭 경비원에게 처음에는 좋은 말로 감자를 달라고 사정했다. 우리 분대 동료 생일이니 감자를 2배낭만 달라고 했는데 우리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자꾸 맞서자 홧김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이들에게 구타당한 경비원은 치료받는 도중 이틀 만에 장 파열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