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원산 수산사업소, 조업 사실상 중단

노동자 수가 2,500명 정도 되는 원산 수산사업소는 동해안 지구에서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지만, 원산에서는 세 번째로 큰 기업소에 꼽힌다. 그동안 가자미 잡이가 제법 쏠쏠했는데, 해군이 어장을 차지하면서부터 수산사업소는 아예 문을 닫아야할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해군사령부에서 고기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씨가 마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흥총국에서 일본에 어획권을 주어 일본 어선과 경쟁해야 했던 것도 이유다. 원양 어업을 해보려고 했지만 설비 투자가 어려워 실패하고, 지금은 고기를 잡아 평양에 보내는 9호 작업반만 작업하고 있다. 수산사업소의 어획활동이 사실상 마비된 셈이다. 현재 원산시에는 약 250여 척의 크고 작은 배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군부대와 외화벌이 무역회사, 그리고 일부 돈주들의 부업 배들이다. 자체적으로 기름을 해결할 수 있는 단위나 개인만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전체로 보면, 소형 배인 8마력과 28마력 배들은 통천군과 고성군에 집중돼있는데 그나마 기름이 적게 들어 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원산조선소, 기계들 녹슬어 폐기 직전

원산조선소는 1985년경에 3천 700톤급 룡남산호를 건조한 것을 끝으로 지금까지 생산이 멈춘 상태이다. 요즘은 생산보다는 배 수리를 위주로 작업을 하는데, 수리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배를 끌어 올리는 기계를 비롯한 주요 설비들이 대부분 녹이 슬어 폐기됐기 때문이다. 6.4차량 공장과 조선소는 중공업 부문이기에 노동자들이 일단 한 번 들어가면 다른 공장에 전근하기가 어렵다. 전에는 공장 대우가 좋아 서로 들어오려고 해서 제대군인들과 중학교 졸업생들을 우선으로 배치시켰으나, 요즘엔 지원자가 거의 없다. 현재 3,000여 명이었던 조선소 노동자는 500명 정도만 출근한다.

원산 6.4 차량공장, 열차 대신 가정집 문 만들어

원산 6.4차량공장은 일제 때부터 화물 열차를 생산하던 공장으로 노동자가 6천여 명에 이른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해마다 200~300대까지 생산하는 큰 공장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재와 전기 부족으로 공장이 거의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로임과 배급 역시 중단됐다. 각자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은 부업거리를 하느라, 점차 공장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됐다. 6천여 명 중에 현재 출근하는 인원은 1천여 명 안팎이다. 국가에서 철판을 공급해 줄때마다 화차 몇 개씩 생산하던 것도 지금은 거의 중지된 상태다. 대신 전국 각지에서 파손된 화차들을 실어오면 수리를 하거나 8.3제품으로 생필품들을 생산해 판다. 주로 살림집과 창고의 문들을 주문받아 생산하는데 건당 18만~20만 원씩 한다.

원산 대부분의 기업소, 가동 중단

강원도 원산시 주요 기업소들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렵다. 식량난이 오래 계속되다보니, 옛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다. 출근자 수만 따져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물 열차를 생산하는 6.4차량공장은 종업원 총 6,000명 중 출근자가 1,200명 이하로 줄었고, 원산 조선소는 종업원 3,000명에 출근자는 500명 수준이다. 또 수산사업소는 2,500명 중 출근자가 700여 명에 불과하다.

원산의 3대 기업소라 할 만한 기업소가 이 지경이니 다른 일반 기업소들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최근 원산청년발전소 완공 덕분에 전기 사정이 어느 정도 풀렸지만, 합영을 하고 있는 애국 피복 공장, 수출 피복 공장 등 몇 곳만 돌아가고 있다. 그 외 일반 공장, 기업소들은 여전히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원자재가 턱없이 부족해서 8.3작업반이나 생필품을 생산하는 작업반 정도만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원산시 주민들은 그간 일본에서 들어오는 중고품을 도매로 넘기는 일을 하며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일본 상품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주민들은 만나면,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식량가격이 점점 오르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고 근심을 서로 주고받는 게 안부 인사가 됐다.

■ 여성/어린이/교육

가난한 처녀들, 밤낮으로 일하거나 중국에 시집가거나

함경북도 청진에 살고 있는 김은희(20세)씨는 야간 직장에서 반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녁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9시에 퇴근한다. 밤새 일했으니 좀 쉬어야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씨는 바로 국수부터 챙긴다. 아침 10시가 되면 전날 주문해 놓은 국수(40kg)를 자전거에 싣고, 청진 교외에 나가 집집마다 다니며 국수를 판다. 눈 한 번 제대로 못 붙이고, 하루 온종일 뛰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 김씨처럼 많은 여성들이 결혼유무와 상관없이 이렇게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면, 불법으로 중국에 넘어가기도 한다.

김혜영(가명)씨는 2001년에 중국 료녕성 심양시 인근 농촌에서 자그마한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는 한족 남자와 결혼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몇 년 지내면서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아들도 태어나 남편과 재미나게 살았다고 한다. 김씨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송환되면서 김씨의 작은 행복은 끝이 났다. 지금은 교화형을 끝내고 제 원래 살던 곳에 돌아와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중국에 두고 온 자식이 보고 싶어 자주 눈물짓는다. 이웃 주민들은 가난한 집 처녀들이 살아가려면, 눈도 제대로 못 붙이고 하루 종일 장사를 다니거나, 몸을 팔든지, 아니면 중국에 시집가는 방법밖에 없는 세상이라며 마치 제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있다.

병원비에 피멍든 어머니,“자식 감자 먹이면서, 나 살자고 병원 못 가”

함경북도 온성군 룡남리에 사는 권명숙(가명)씨는 올해 30대의 젊은 여성이다. 그는 남편과 함께 농장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어린 아들 셋을 두고 있다. 권씨는 올해 초에 겨드랑이 밑에 생긴 종양 때문에 걱정이 크다. 군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비는 5만 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술비 이외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부담스러워 아직까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씨에 따르면, 병원에 있는 동안 식비와 각종 기초 의료물품을 준비하는데 돈이 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술하기 전에는 수술에 필요한 알콜이나 붕대, 주사약이 필요하고, 수술이 끝나면 의사와 간호원들에게 고맙다고 술과 음식, 담배 등을 사주며 인사해야 한다. 회복하는 중에 복용하게 되는 포도당, 페니실린을 비롯한 각종 약도 환자가 자체로 부담한다. 퇴원할 때는 담당 의사선생이 호실을 꾸려야 한다며 돈 1만원을 요구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수술 전부터 퇴원 후까지 돈이니, 도저히 병원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권씨는 “어린 자식 놈들에게 겨우 먹이는 거라곤 감자밖에 없는 형편에 어디서 그만한 돈을 장만할 수 있겠는가?”라며 병원에 갈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농장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끙끙 앓다보니, 가을 분배 몫도 잘릴 수밖에 없다. 권씨는 “내 이러다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죽으면 우리 자식들은 누가 거둔단 말인가. 그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빚이라도 내서 병원에 가 빨리 털고 일어나고 싶지만, 당장 한 끼가 아쉬운 마당이라 가슴만 때리고 있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 사건사고

옥수수 훔치다 다리 잃은 군인

강원도 철원군에서 복무중인 군인들이 농장에서 옥수수를 훔쳐 달아나다가 사고를 당했다. 가끔 멧돼지가 내려와 농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가기 때문에, 농민들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창을 설치해 놓았는데, 군인 한 명이 그만 창에 깊이 찔리고 말았다. 병원에 호송됐지만, 쇠의 독성이 이미 퍼진 뒤였다. 의사는 나중에 독으로 고생할 바에는 다리를 절제하는 것이 낫다고 진단 내렸다. 사고를 당한 군인은 결국 옥수수 몇 개 따러 갔다가 졸지에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 한편 그의 부대에서는 군사 임무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영예군인 증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 사회

간부 승진하려면 친인척 관리도 잘해야

황해도 OO군에 있는 행정부 사업을 하는 일군이 올해 7월 온성 교화소에 있는 사촌동생을 출소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주고 가서 이 곳 주민들의 화제에 올랐다. 그 일군은 당의 배려로 도당 행정부에 발탁돼 중앙당 학교에 가게 됐다. 그런데 가계 검증에서 형제나 친인척 중에 행불자가 있거나 탈북자, 또는 범법자가 있을 경우 발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에 1년 전 붙잡힌 사촌동생이 문제가 됐다. 그의 사촌동생은 중국에 갔다가 6년 만에 붙잡혀 교화형 4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었다. 그는 서둘러 돈을 마련하여 동생을 출소시키고, 다른 위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결혼까지 시켰다. 결혼식이 끝난 후 그는 동생에게 “절대 다시는 중국에 가지 말라, 앞으로 살기 어려우면 형이 도와주겠다”고 신신당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주민들은 “도 행정부장 정도면, 장밥에 고기는 매일 끊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자리니, 동생 챙겨주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라며, 온 집안 식구들 먹여 살리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니 그렇게라도 승급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 중독 전문 병원, 치료약 없어 환자 방치

함경남도 함흥시 의대병원 49호 치료 예방과에는 올해 2월부터 9월 현재까지 정신분열 증상으로 입원한 마약 중독자가 90여 명에 이른다. 남자가 40여 명, 여자는 50여 명인데, 조만간 고원군 조막산 49호 전문 병원으로 호송될 예정이다. 그러나 조막산 병원에 있는 환자들도 약이 없어 방치된 상태라 전문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올해 전국적으로 1월부터 약물 부작용이나 얼음(빙두) 과다복용 등으로 죽은 사람은 70여 명으로 알려졌다.

■ 식량소식

강원도 이천군 채종농장, 절반 이상이 옥수수풀죽 연명

강원도 이천군 성북리 채종농장에는 80세대 정도가 살고 있는데, 절반 이상이 옥수수를 약간 섞은 풀죽으로 살아가고 있다. 손님이 와도 입쌀밥을 대접할 생각을 못하는 형편이다. 농민들은 “지금 이런 식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병에 걸려 죽기 딱 좋은 형편”이라고 말한다. 채종농장 농장원인 리미혜(가명)씨는 “소문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 달에 몇 명꼴이다. 이제는 누구네가 죽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뭣 때문에 죽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냥 못 먹어서 죽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원도 고산군 석왕사 인근 농가, 식량난에 결근 증가

강원도 고산군 석왕사 인근 농가를 보면, 식량난에 죽으로 끼니를 연명하는 세대가 많다. 이렇게 생활이 어렵다보니 농장원 세대 총 300여 세대 중 출근을 못하는 세대가 30%를 넘는다. 이들을 찾아가 결근사유를 물으면, 다들 “먹지 못하니 나갈 맥(기운)이 없다”고 대답한다. 밭에 안 나갈 때는 뭘 하느냐고 물으면, 다 자기들 부업일 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농민들은 죽이라도 쒀먹으려고, 산에 올라 뙈기밭을 가꾸거나, 약초라도 캐서 장마당에 내다파는 등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하고 있다고 했다. 농장에서 150일 전투를 잘 마감하자고 아무리 선전해도, 이젠 마이동풍이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모두들 외면하는 분위기다.

강원도 통천군, 가을걷이 농촌 지원자 시급

강원도 통천군 신대리 주민들은 올해 4월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옥수수죽으로 연명해오고 있다. 그나마 죽도 없는 집은 농장에 출근을 못하고 있다. 원산에서 농촌 지원자가 가지 않으면 추수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워낙 가난한 동네다보니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15세대도 안 된다. 냉동기(냉장고)가 있는 집은 더 찾아보기 어렵다. 네 세대 정도가 냉동기를 갖고 있는데 그나마 전기가 끊겨 쓸모가 없다.

■ 정치생활

일본차량 폐기 사업 재추진

최근 현재 운행 중인 일본차량을 없애라는 사업 방침이 다시 내려졌다. 2007년에도 시행된 바 있으나,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방침이다. 북한 전체 차량의 약 70%가 일본차량이라, 간부들 사이에는 실행 불가능한 방침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당국은 올해 6월, 폐기 사업을 다시 시작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이번에는 2011년 10월 8일까지로 완료 시점도 분명히 적시했다. 2012년 강성대국 문을 여는 시기 전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검찰소 1처부터 8처 부서들은 각 공장, 기업소의 일본차량을 종류별로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대형화물차량을 제외하고, 10톤급 화물차량, 2톤 반 짐차, 일반 승용차 등 모든 종류의 일본산 차량을 모두 없애라고 거듭 지시했다. 량강도 혜산시 도검찰소의 각 처들은 7월부터 8월 사이, 일본 화물차량 17대, 반짐 차량 22대, 승용차량 10대를 폐기시켰다. 이렇게 폐기된 차량의 껍데기는 고금속 고철장에 가져가고, 부속품들은 헐값으로 장사꾼들에게 넘겨져 시장에 팔리고 있다. 이에 중앙당에서는 량강도 검찰소가 이 사업을 선도적으로 잘 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양, 보안원과 결탁한 대규모 도적 집단 검거

평양시 서성구역에서 30여 명으로 구성된 전문 도적집단이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 6년간, 잘사는 집이나 은행, 상점들을 털거나 길가는 여성들을 상대로 금품을 약탈해왔다. 이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범죄행각을 이어온 데에는 서성구역 보안원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성구역 보안서 일군들은 크고 작은 명절마다 뇌물을 받거나, 축구경기를 할 때 식사와 선물 등을 챙겨 받기도 했다. 대신 각종 도난사고는 유야무야 처리되곤 했다. 이렇게 보안원들과의 결탁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보안원들도 함께 조사받고 있다. 이 사건은 150일 전투 기간을 맞아 평양시검찰소에서 과거 미결사건을 재수사하면서 밝혀지게 됐다.

■ 경제활동

함경북도 도당, 불법 송이무역 엄중 처벌 방침

함경북도 도당은 국경연선지역의 불법 송이무역 실태를 파악하고 단속하기로 했다. 단속에 나선 도검찰소와 도보안서 일군들은 무역회사들이 불법으로 송이를 중국에 넘겨 판돈으로 회사 자금을 메우는데 사용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한다. 송이 수매장에 들어가야 할 송이를 도중에 더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이는 사람들도 단속 대상이다. 특히 칠보산 지역에서 1등품과 2등품 송이들이 5호 관리소 소속의 수매장에서 수매되지 않고, 개인 손에 넘어가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도당은 “송이가 개인에 넘어가는 것은 혁명자금을 모으는 사업에도 지장을 주고, 도적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국의 이 같은 단속의지에도 불구하고, 송이 불법 채취 및 무역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함경북도 온성군 동포리 주민들은 국가 보위부 산하 22호 정치범 관리소 인근에 송이가 많이 나와 송이를 채취하러 관리소 구역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철조망에 설치된 고압선을 지나는 사람도 있다. 지난 9월 3일부터 8일 사이에 송이를 채취하러 들어갔던 세 사람이 고압선 전류에 감염돼 죽었다. 그런데도 관리소 구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줄지 않아 하루에도 몇 명씩 붙잡히고 있다.

전국 곡물가격 9월 들어 급상승

전국적으로 곡물가격이 9월 들어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의 경우 쌀값을 보면 6월까지만 해도 1,900원대를 고르게 유지하더니, 7월 들어 2,000원대로 올라섰고, 8월 말부터 곡물가격이 서서히 오르는 조짐을 보였다. 그러던 것이 9월 중순 현재, 2,600원까지 올랐다. 옥수수는 700-800원대를 유지하다가 1,200원으로 껑충 뛰었다(표 참조). 온성과 회령의 쌀값은 kg당 2,500원, 옥수수는 900-1,150원선을 오르내린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쌀은 kg당 2,400원, 옥수수는 1,000-1,1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황해북도 사리원에서는 쌀이 kg당 2,200원, 옥수수가 1,000원에 거래된다. 사리원의 경우 그동안 쌀이 1,600-1,800원, 옥수수가 600-700원 선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식량가격은 예년에도 가을 추수 직전까지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춘궁기 때보다 식량가격이 더 오르는 것은, 민가에 식량이 거의 바닥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저장해두었던 식량으로 춘궁기를 겨우 넘겼지만, 지금은 그마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농민을 포함한 빈민층이야 춘궁기 때 이미 식량이 떨어졌지만, 그럭저럭 춘궁기를 넘길 수 있었던 집들에서도 이제는 식량 사정이 더없이 곤란해졌다는 것이다. 청진에 사는 리경애씨는 “먹을 게 없어 장마당에 나오던 사람들도 이제는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며, 식량 근심을 털어놓았다.

2009년 5-9월 청진 곡물 가격표

(단위: kg/북한 원)

지역

56789
1,9001,9002,0002,0002,600
옥수수850730800850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