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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61호

■ 시선집중

백암령, 호송인에 수면제 탄 맥주 먹여 죄수들 도망

지난 6월 27일, 혜산-평양행 열차가 백암령을 지나던 길에 고압선이 끊어져 28시간 동안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열차에는 평안남도 순천시 보안원 3명이 혜산시 여행자집결소에서 도강범 6명을 인계받아 호송 중이었다. 도강범들에 수갑을 채워 일반 칸에 태웠는데, 보안원 3명이 교대로 돌아가며 지켰다. 새벽 2시쯤, 낯선 주민 2명이 맥주 한 상자를 들고 올라와 호송원들에게 권했다. 보안원들은 영문을 모르고, 권하는 맥주를 그대로 받아 마시고는 곧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들이 마신 맥주에는 수면제가 타져있었다. 도강범들은 협조자들의 도움으로 수갑을 풀고 그길로 멀리 달아났다. 맥주를 마시고 잠든 보안원들은 인솔을 잘못한 책임으로 과오 제대되고, 순천지구 탄광련합기업소 채탄공으로 내려갔다. 혜산시와 백암군 보안당국은 달아난 도강자 6명과 도망을 도와준 2명을 잡기 위해 인력을 총동원했다.

“내가 일본 살 때는”추억하던 노인, 발언 엄중 경고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김정배(가명) 노인은 얼마 전 옛날 얘기를 했다가 졸지에 노망난 노인네가 돼버렸다. 신흥1동 사무소 생활총화에 나온 초급당 세포비서들이 대부분 김노인과 비슷한 연배들이어서 어울려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됐다. 김씨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 건너온 귀국자였다. 당시 조선의 선전에 깊은 감명을 받아 조총련을 거쳐 올라왔다며, 당시 일본에 살던 때 얘기들을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 일본 음식들이며, 갖가지 일본 풍습들을 자랑삼아 추억하면서, 일본에 아직 살아있는 여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본과 무역거래가 완전히 중단되면서, 여동생으로부터 더 이상 도움을 못 받게 돼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얘기, 죽기 전에 여동생 얼굴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남은 인생이 남으면 얼마나 남았겠느냐며 여동생이 보내준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얘기 등을 두서없이 풀어놓았다.

그리곤 집에 돌아갔는데, 그날 오후 담당 보위부원이 집을 찾아와, “일본에서 살던 얘기를 군중들 앞에서 망탕 하지 말며, 앞으로 발언과 행동을 잘 하라”고 경고했다. “김정배는 세포비서라는 자각이 전혀 없이 일본과 조선 두 나라에서 살아보고, 일본 살 때가 좋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것은 죽을 나이가 되어서도 조선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고, 정부가 백성들을 계속 악조건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다는 거짓 선전을 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김씨의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늙어서 제정신이 아니다. 아마 로망이 든 것 같다. 이번 한 번은 그냥 봐주겠으니, 집안에서 보양을 잘 하고, 외부에는 가급적 출입을 금지시키라”고 했다.

신흥1동 사무소에도 “초급당 세포비서인 김정배는 너무 년로해서 로망이 들었으니 앞으로 당생활에 참가할 수 없다. 세포비서 자격을 해임하고, 평당원으로 당생활을 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당원자격을 남긴 것은, 각 부문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김씨 자녀들의 장래를 감안해준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그 정도 선에서 끝나 퍽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김노인은 심심풀이삼아 옛날이야기를 풀었다가, 졸지에 노망들어 나라를 욕보인 죄인으로 몰리는 수치를 당했다.

평강협동농장, 청년분조원 8명 달아나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협동농장에는 꽃제비 아이들로 구성된 청년분조가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청년분조원들이 계속해서 달아나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4-5월에는 청년분조원이 8명이나 달아났다. 그동안 잠자는 곳과 일하는 곳을 빼고는 허가 없이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무리지어 달아나자, 농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농장에서는 일단 군당에 보고하지 않은 채, 청년분조원들을 동원해 자체적으로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6월에 추가로 3명이 더 달아나는 바람에 군당에는 물론이고, 도당에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군당 책임비서와 관련 간부들이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농장 관리위원장과 청년분조장은 당 책벌을 피할 수 없었다. 달아난 청년분조원들은 작년에도 식량과 현금분배를 제대로 못 받았는데, 올해도 처우가 나쁜 것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에 따르면 “일하는 재미가 없다. 더 이상 통제와 규율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 보겠다”며 달아났다는 것이다. 현재 달아난 아이들을 찾기 위해, 꽃제비들이 많이 머무르는 철도역과 여행자집결소 등을 중심으로 확인해보고 있지만, 한 번 달아난 아이들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음식 가로채 도망가던 꽃제비, 기차바퀴에 걸려 사망

지난 7월 말, 함경남도 고원 역에서 한 꽃제비 아이가 기차바퀴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광산과 평양시를 왕복하던 평양-금골행 기차가 고원 역에서 한동안 정차했다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열린 창가에 앉아있던 한 승객이 ‘도중식사’를 놔둔 채 한 눈 팔고 있는 것을 어린 꽃제비가 잽싸게 가로채 달아났다. 아이는 승강기 밑으로 도망치다가 겉옷이 그만 객차 걸쇠에 걸렸고, 이미 기차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 때라 그대로 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사고 신호를 받은 기차가 급히 멈춰서긴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람이 기차에 깔렸다는 소리에 승객들이 내려서 한때 소란이 일기도 했다. 철도역 노동자들이 아이를 꺼내 일단 대합실로 옮겼지만, 병원으로 데려가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과다출혈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중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너무 배고파 식사를 훔치다 비참하게 죽은 것을 두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청진역, “꽃제비들 절대 역내 들이지 말라”

함경북도 청진시 역내에서 지난 7월 11일 오후 4시경, 9살 난 꽃제비 아이가 굶어죽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동료 꽃제비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가져와 그 아이 손에 쥐어주었는데, 굶은 지 너무 오래돼 먹을 것을 손에 쥐고도 그냥 죽었다 한다. 보고를 받은 도 철도총국에서는 청진역 관리원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대합실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꽃제비들이 여기에서 굶어죽도록 두었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인데, 이런 모습은 공화국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군중여론을 나쁘게 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청진 역에서는 앞으로 어떤 꽃제비도 대합실 안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어린 꽃제비들은 오갈 데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여전히 역 근처를 방황하고 있다.

김책시 구제소, 인원 증가에 “식량 없으니 인원 줄여 달라”

함경북도 김책시 꽃제비 구제소 인원이 작년 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100여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자에 따르면, 화폐교환 조치 이전에는 초과 인원이 발생하면 인근 초등학원이나 농장의 청년 분조 등에 배치해 전체 인원이 30명을 넘지 않게 조절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3월부터 6월 말까지 새로 들어온 꽃제비들만 벌써 30명이 넘었다. 새로 들어온 꽃제비들 중에 30세에서 50대 중반까지 어른 꽃제비가 10여명이고, 나머지는 중학생들을 포함한 어린이들이었다. 구제소 수용인원이 넘치다보니, 당장 끼니 해결이 문제가 되었다. 책임자는 시당 총화회의 때마다 “구제소는 먹여 살릴 능력이 없으니, 어서 초등학원이나 농장에 배치해서 인원을 축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당에서 초과 인원수만큼 식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더 달라고 사정이라도 할라치면 “국책사업 건설장에 내보낼 식량도 없는 마당에 구제소 줄 식량이 어딨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는 것이다. 구제소에서는 묵지가루밥과 물에 불린 옥수수국수를 끼니로 공급하고 있다.

■ 논평

통일, 말이 아닌 행동에서 출발해야 !!

올해 8.15는 일본의 한반도 강제병합 10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이 되어서야 일본정부는 총리 담화를 통해 한국민의 뜻에 반해 식민지 지배를 했다고 사죄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전쟁 종식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어떤 해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최근 천안함 사건은 남북한이 여전히 전쟁 중이며 다만 휴전상태일 뿐이라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분단의 근본적 해결이 없으면 천안함 같은 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남북한의 평화가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나아가 분단의 문제, 통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에는 언제든 전쟁의 포성이 다시 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8.15 경축사에서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이며 진정한 광복을 이루는 길이라는 기본 전제는 마음에 새길 만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대결이 아닌 공존, 정체가 아닌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분단 관리를 넘어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한 것도 긍정적이다. 통일은 반드시 오기 때문에 통일세 등을 준비하자는 이야기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처방은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남북한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어 있고, 급기야는 천안함 같은 사건이 발생한 상태이다. 북쪽에서는 식량난으로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7천만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더 나아가 아무런 설명 없이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세금부터 걷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현 정부는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밝혀왔으나, 실제 인도주의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 북한의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쌀 한 톨이나 옥수수 한 알조차도 주지 않으면서, 통일세를 걷는다고 하면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한 통일세인 지, 무슨 일을 하기 위한 통일세인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과 수해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지원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는 통일세 제안은 남한 국민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들조차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전쟁을 겪었던 남북한 당사자들로서 신뢰감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분단을 극복하자고 하고 통일을 하자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저 말에 그치고 만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오죽하면 6자회담의 합의내용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었겠는가.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진짜 통일의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따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통일로 가는 행동이란, 굶주림의 고통, 수해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는 일이다. 정부가 먼저 나서고, 민간 차원의 지원도 적극 열어주어야 한다.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서 굶주리는 북한동포의 삶과 생명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동포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통일을 향한 실질적인 첫 번째 행동이어야 한다. 남한 정부의 대북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을 촉구하는 바이다(끝).

■ 사건사고

백암령, 호송인에 수면제 탄 맥주 먹여 죄수들 도망

지난 6월 27일, 혜산-평양행 열차가 백암령을 지나던 길에 고압선이 끊어져 28시간 동안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열차에는 평안남도 순천시 보안원 3명이 혜산시 여행자집결소에서 도강범 6명을 인계받아 호송 중이었다. 도강범들에 수갑을 채워 일반 칸에 태웠는데, 보안원 3명이 교대로 돌아가며 지켰다. 새벽 2시쯤, 낯선 주민 2명이 맥주 한 상자를 들고 올라와 호송원들에게 권했다. 보안원들은 영문을 모르고, 권하는 맥주를 그대로 받아 마시고는 곧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들이 마신 맥주에는 수면제가 타져있었다. 도강범들은 협조자들의 도움으로 수갑을 풀고 그길로 멀리 달아났다. 맥주를 마시고 잠든 보안원들은 인솔을 잘못한 책임으로 과오 제대되고, 순천지구 탄광련합기업소 채탄공으로 내려갔다. 혜산시와 백암군 보안당국은 달아난 도강자 6명과 도망을 도와준 2명을 잡기 위해 인력을 총동원했다.

음식 가로채 도망가던 꽃제비, 기차바퀴에 걸려 사망

지난 7월 말, 함경남도 고원 역에서 한 꽃제비 아이가 기차바퀴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광산과 평양시를 왕복하던 평양-금골행 기차가 고원 역에서 한동안 정차했다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열린 창가에 앉아있던 한 승객이 ‘도중식사’를 놔둔 채 한 눈 팔고 있는 것을 어린 꽃제비가 잽싸게 가로채 달아났다. 아이는 승강기 밑으로 도망치다가 겉옷이 그만 객차 걸쇠에 걸렸고, 이미 기차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 때라 그대로 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사고 신호를 받은 기차가 급히 멈춰서긴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람이 기차에 깔렸다는 소리에 승객들이 내려서 한때 소란이 일기도 했다. 철도역 노동자들이 아이를 꺼내 일단 대합실로 옮겼지만, 병원으로 데려가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과다출혈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중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너무 배고파 식사를 훔치다 비참하게 죽은 것을 두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청진역, “꽃제비들 절대 역내 들이지 말라”

함경북도 청진시 역내에서 지난 7월 11일 오후 4시경, 9살 난 꽃제비 아이가 굶어죽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동료 꽃제비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가져와 그 아이 손에 쥐어주었는데, 굶은 지 너무 오래돼 먹을 것을 손에 쥐고도 그냥 죽었다 한다. 보고를 받은 도 철도총국에서는 청진역 관리원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대합실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꽃제비들이 여기에서 굶어죽도록 두었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인데, 이런 모습은 공화국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군중여론을 나쁘게 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청진 역에서는 앞으로 어떤 꽃제비도 대합실 안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어린 꽃제비들은 오갈 데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여전히 역 근처를 방황하고 있다.

■ 정치생활

“내가 일본 살 때는”추억하던 노인, 발언 엄중 경고

함경남도 함흥시에 사는 김정배(가명) 노인은 얼마 전 옛날 얘기를 했다가 졸지에 노망난 노인네가 돼버렸다. 신흥1동 사무소 생활총화에 나온 초급당 세포비서들이 대부분 김노인과 비슷한 연배들이어서 어울려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됐다. 김씨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 건너온 귀국자였다. 당시 조선의 선전에 깊은 감명을 받아 조총련을 거쳐 올라왔다며, 당시 일본에 살던 때 얘기들을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 일본 음식들이며, 갖가지 일본 풍습들을 자랑삼아 추억하면서, 일본에 아직 살아있는 여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왔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본과 무역거래가 완전히 중단되면서, 여동생으로부터 더 이상 도움을 못 받게 돼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얘기, 죽기 전에 여동생 얼굴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남은 인생이 남으면 얼마나 남았겠느냐며 여동생이 보내준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얘기 등을 두서없이 풀어놓았다.

그리곤 집에 돌아갔는데, 그날 오후 담당 보위부원이 집을 찾아와, “일본에서 살던 얘기를 군중들 앞에서 망탕 하지 말며, 앞으로 발언과 행동을 잘 하라”고 경고했다. “김정배는 세포비서라는 자각이 전혀 없이 일본과 조선 두 나라에서 살아보고, 일본 살 때가 좋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것은 죽을 나이가 되어서도 조선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고, 정부가 백성들을 계속 악조건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다는 거짓 선전을 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김씨의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늙어서 제정신이 아니다. 아마 로망이 든 것 같다. 이번 한 번은 그냥 봐주겠으니, 집안에서 보양을 잘 하고, 외부에는 가급적 출입을 금지시키라”고 했다.

신흥1동 사무소에도 “초급당 세포비서인 김정배는 너무 년로해서 로망이 들었으니 앞으로 당생활에 참가할 수 없다. 세포비서 자격을 해임하고, 평당원으로 당생활을 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당원자격을 남긴 것은, 각 부문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김씨 자녀들의 장래를 감안해준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그 정도 선에서 끝나 퍽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김노인은 심심풀이삼아 옛날이야기를 풀었다가, 졸지에 노망들어 나라를 욕보인 죄인으로 몰리는 수치를 당했다.

김책시 구제소, 인원 증가에 “식량 없으니 인원 줄여 달라”

함경북도 김책시 꽃제비 구제소 인원이 작년 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100여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자에 따르면, 화폐교환 조치 이전에는 초과 인원이 발생하면 인근 초등학원이나 농장의 청년 분조 등에 배치해 전체 인원이 30명을 넘지 않게 조절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3월부터 6월 말까지 새로 들어온 꽃제비들만 벌써 30명이 넘었다. 새로 들어온 꽃제비들 중에 30세에서 50대 중반까지 어른 꽃제비가 10여명이고, 나머지는 중학생들을 포함한 어린이들이었다. 구제소 수용인원이 넘치다보니, 당장 끼니 해결이 문제가 되었다. 책임자는 시당 총화회의 때마다 “구제소는 먹여 살릴 능력이 없으니, 어서 초등학원이나 농장에 배치해서 인원을 축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당에서 초과 인원수만큼 식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더 달라고 사정이라도 할라치면 “국책사업 건설장에 내보낼 식량도 없는 마당에 구제소 줄 식량이 어딨느냐”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는 것이다. 구제소에서는 묵지가루밥과 물에 불린 옥수수국수를 끼니로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