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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69호

■ 집중탐구

탈북 브로커를 만드는 사회 : 김광호 이야기

함경북도 회령시 남문동에 사는 김광호는 올해 33세의 노총각이다. 가족으로는 홀아버지와 누이동생이 있는데, 워낙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밑바탕이 없어 오랫동안 가난한 살림을 면하지 못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광호씨는 동네 사람들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얼마간의 돈이나 식량을 받아 생계에 보태왔다. 광호씨 친구들에 따르면, 동네에서는 경제토대가 없는 그를 ‘머슴처럼’ 일을 부려먹고 얼마간의 끼니를 때울 정도의 식량을 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대덕리 순안골에서 소토지 농사를 지으며 끼니에 보탰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광호씨는 집 살림이 워낙 가난하다보니 결혼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그저 돈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벌지만 궁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생계 상담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나라의 법을 어기는 큰일이라고 해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할 방법이 없어 못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종종 털어놓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1년 전 어느 날, 사람 찾는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게 됐다. 전국 각지에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찾아 주면 약간의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사람 찾기가 아니었다. 일종의 탈북브로커 일이었는데, 광호씨가 가장 끄트머리에서 적은 돈을 받고 직접 발로 뛰는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위험부담이 높은 일을 맡게 된 것은 아니었다. 광호씨가 얼마나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하는지 점검 차원에서 소소한 일거리들을 먼저 시켰다. 광호씨는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돈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지덕지하며 하나둘 맡은 일들을 해나갔고, 점점 위험부담이 높은 일들이 맡게 되었다.

올해에는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을 찾아내는 일이 유독 많았다. 올해 6월에는 평안남도 순천시 강안동에 사는 리호구(68세)씨를 찾는 일을 맡아했다. 리씨는 1970년대 초 서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태풍으로 북조선 영해에 넘어갔다가 나포된 뒤 남한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었다. 남한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려고 탈북 브로커에게 의뢰한 일이 광호씨에게 떨어진 것이다. 광호씨는 리씨를 찾으려고 한 달 동안이나 순천을 샅샅이 뒤져 리씨를 찾아냈다. 워낙 납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가 심하다보니, 감시자의 눈을 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광호씨는 리씨의 아들이 보낸 사진과 편지, 소개장들과 함께, 만의 하나 붙잡힐 경우 줄줄이 엮여있는 다른 브로커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며 건네받은 약도 가져갔다. 광호씨가 보위부에 붙잡혀 자살을 하더라도, 뒤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는 철저히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태였다. 그 후 련봉동에 사는 노인 한 명을 데려가는 일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노인들을 감시하던 보위부원 끄나풀 한 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저지른 살인이었다. 광호씨 친구들에 따르면, 어렸을 때 동네에서 주먹질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만큼 착했던 친구가 매섭게 변한 것도, 집안 살림 형편이 눈에 띄게 펴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고 한다.

사람 찾는 일을 한 건 1년 전부터였지만, 그동안에는 일거리를 소개해준 사람들이 큰돈을 가져가고 광호씨는 푼돈만 손에 쥐었다면, 납북 어부를 찾은 뒤에는 광호씨에게도 드디어 목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생활에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는’ 날이 도래한 것이다. 집에 없던 TV와 록화기가 생기고, 중고자전거도 들이고, 해진 옷 대신 시장 매대에 걸려있던 중국산 기성복을 입고 다니게 됐다. 그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 아버지는 소토지 농사를 계속 짓는 시늉을 했다. 갑자기 농사를 안 지으면 사람들이 “저 집은 버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저리 잘 사는가?”라며, 당장 의심 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화폐교환 조치 이후에 다들 사람들 살림살이가 곤궁해진 처지에, 전 같으면 이미 굶어죽었을 집에서 기름 냄새가 풍기니 주시하는 눈들이 많았던 것이다. 특히 광호씨네 인민반을 담당하는 보위부의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7월 초부터 보위부원들은 광호씨가 소속된 기업소에 가서 출근 상태를 확인하고, 가난한 집에서 어떻게 한 달에 12,000원이나 내고 직장에 안 나올 수 있는지 뒷조사를 했다. 또 광호씨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보위부에서 뒷조사를 하는 것 같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이웃이 있어 가족 전체가 바짝 긴장한 것은 7월 중순쯤이었다.

그러다 7월 말에는 보안서에서 가족들을 직접 호출했다. 보안서에서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불러 7년 전에 도강했다는 소문만 돌 뿐 행처를 모르는 누나의 소식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갑자기 생겨난 TV며 록화기 등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어떻게 수입 대 지출이 맞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됐느냐고 추궁했다. 아버지는 큰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말 모르며, 지금 돈이 좀 있는 것은 아들이 군대 가 있는 동안에도 소토지 농사를 열심히 지어 돈을 얼마간씩 마련해왔다고 했다. 보안원들은 화폐 개혁한 지가 언제인데 그런 말로 속이느냐며 다시 다그쳤고, 아버지는 인민폐로 바꾸어 간직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보안원들은 “중국에 간 딸이 돈을 부쳐준 것이 아니냐, 언제 몇 번이나 부쳤는지 대라”며, 도강한 큰딸이 보낸 것이라 믿고 심문을 계속했다. 아버지는 완강히 부정하면서 버텼다. 급기야 보안서에서는 가택수사 영장을 받아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큰딸과 연계를 가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현금 12만 원 정도만 나왔다.

이 무렵 광호씨는 산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는데 다시 사람 찾는 일을 의뢰받았다. 9년 전 탈북한 여성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데, 자신이 두고 온 아들을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탈북한 여성의 사진과 편지를 받아 은덕군에 있는 그 집을 찾아갔더니, 아이 아버지가 쉽사리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5살 되던 해 떠난 아내를 대신해 지금껏 고생하며 키웠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자신이 따라가겠다고 했다. 말로는 키운 대가로 뭘 바라서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사는 게 너무 힘드니 뭐라도 도움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광호 씨는 아이만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멋모르고 남편까지 데려갔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 엄마와 통화하면서, 인민폐 1만 위안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돈말이 오가며 통화가 잦아지고 길어지다 보니 보위부의 감시망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은덕군에서부터 통화를 해온데다 국경연선지역의 손전화기 단속이 매우 삼엄해서 조심했지만, 그만 꼬리를 잡히고 만 것이다.

그동안에도 광호씨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장사꾼과 아이 아버지를 연계해주었다. 아이 아버지는 인민폐 8천 위안으로 합의를 보고, 돈을 챙긴 뒤 은덕군으로 돌아가다가 보위부원들에게 붙들렸다. 아이는 사람장사꾼과 같이 두만강을 건너려다 현장에 매복해있던 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됐다. 광호씨도 산에서 숨어 있다가 집에 잠깐 들르던 차에 붙잡혔다. 이들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청진시 수성교화소에 보내졌다. 이 소식은 “아버지가 자기 친아들을 인민폐 8천 위안에 팔아넘긴,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악질적인 인신매매 행위”라며 주민들에게 공개됐다.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광호씨 친구와 이웃들은 한 평범하고 착했던 사람이 먹고 살려고 심부름을 하다가 이렇게 큰일까지 당하게 됐다며, 광호가 나쁜 게 아니라 광호를 그렇게 만든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며 개탄해마지 않고 있다. 결국 ‘반동분자’라는 것이 어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는 것이다.

■ 시선집중

전기 사용 줄이려고 “전기밥솥 사용하지 말라”

함경북도 도 인민위원회 전력 감독처에서는 올 상반기부터 불필요한 전력낭비를 줄이기 위해 집중적으로 전력사용실태 점검에 나섰다. 2경제 산하 공장, 기업소들을 제외한 모든 부문이 사실상 점검대상에 들어간다. 전력당국은 전력이 낭비되는 부문을 찾아낸 뒤 전기선을 아예 끊어버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주민 세대들의 경우, 전등과 텔레비전 등 최소한의 조명용을 제외하고 취사용이나 난방용 전기는 사용하면 안 된다. 전기밥솥이나 채가마(프라이팬) 등을 사용하다 걸리면 바로 몰수하고 경우에 따라 벌금을 물어야한다. 주민들은 평소에는 취사를 위해 석탄을 주로 사용하지만, 석탄을 아끼기 위해 전기가 들어올 때는 전기밥솥이나 채가마를 숨겨놓았다가 꺼내서 사용해 해왔다. 공장, 기업소들의 애로 사항도 만만치 않다. 함경북도 관내 지역에서 전기선 절단 조치가 취해진 곳은, 지난 7-8월 두 달 동안에만 무려 200여 곳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공동변압기가 100여대 넘게 고장이 나서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원래 주민 세대엔 하루 2-3시간 정도만 전력이 공급되었는데 그마저 변압기를 사용해 끌어올려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전력감시 기간 동안 전기선을 무차별적으로 끊어버리자, 일부 전선에 과부하가 생기면서 변압기가 고장 난 곳이 많았다. 변압기가 고장 났다는 신고만 100여 곳이 넘었다.

환자 한 명 생기면 집안 파산

함경북도 도인민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올해 5-6월 들어 환자 수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작년보다 식량 사정이 악화되면서 춘궁기를 맞아 병자들이 급증한 것 같다고 했다. 환자 한 명이 생기면, 그 집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환자가 있는 집에서 모든 의료 부담을 져야 한다. 입원해도 병원에 약이 없기 때문에 약값을 따로 대야한다. 장사 밑천까지 탈탈 털어 약을 대다가, 그마저 떨어지면 집기물을 이것저것 내다팔다가 결국 가정경제는 파탄에 이른다. 그렇게 애를 써도 완치해서 퇴원하는 환자들은 대개 간부 집안뿐이다.

도병원에 환자를 입원시키고, 돈을 끌어다가 병수발을 드는 집은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시, 군 인민병원에서 위중한 환자는 파송증을 떼 주어 도병원에 보내는데 외래동 입원접수과에서 일단 걸러지기 마련이다. 환자 가족에게 “입원한 뒤 의약품을 전부 부담할 수 있는가?” 물어 부담할 수 있다고 하면 입원시키고, 그렇지 못하면 아예 접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허울만 무상치료 일뿐, 실제로는 환자 측에서 거의 모든 치료비를 대는 구조인 것이다. 병동 식당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환자 가족들에게 부담이다. 입원한 환자를 돌보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상주해야 하는데, 먹을 쌀과 부식물 등을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일정하지 않아 밥을 해먹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밥솥을 쓰기는커녕 조명등 켜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아 환자 가족들은 대부분 가스 곤로를 이용한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 입원 환자들이 매달 늘고 있는데, 입원 기간은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 9월에도 환자가 증가했지만, 약값과 병수발 드는 데 드는 돈을 감당하지 못해 일주일도 못 버티고 퇴원하는 환자들이 늘었다. 예전에도 환자 측에서 의약품 비용이나 보호자 급식 문제를 다 부담했지만, 소독약이나 항생제, 붕대 등 기본적인 것은 그래도 제공됐었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는 그마저 모두 끊겼다. 그렇다보니 아주 작은 상처를 제때 소독하지 못해 감염부위가 커져 병을 심각하게 키우거나,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도 생기고 있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해도 혜택 받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의사들이 실력은 없으면서 뇌물만 요구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족을 살려보겠다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입원을 시켜보지만, 병원은 돈 먹는 하마일 뿐 사람을 낫게 해주지 못한다며 병원 치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강원도 대학생, “화폐개혁 아니었으면 중퇴 안 했을 것”

올해 들어 학교를 그만두는 강원도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일부 학교의 몇몇 학생들에 국한됐다면, 올해는 강원도 내 대학교마다 중퇴자가 속출하고 있다. 모두 화폐교환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돈이 종잇조각이 돼버리자 장사로 먹고 살았던 집일수록 피해가 컸다. 식량문제까지 악화되니 식구들의 끼니 연명이 어려워진 처지에 돈이 많이 드는 대학공부를 계속 할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마음은 아프지만, 장사 밑천까지 다 잃어버린 뒤라 자녀들에게 뒷바라지를 해주기 어려우니 자퇴를 넌지시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원산시 조군실사범대학의 경우, 자퇴한 학생이 올 4월에만 16명이었다. 아끼던 제자들이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자, 교수들도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담당 교원들이 어떻게든 힘든 시기를 넘겨보라며 중퇴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굶게 된 학생들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학교 측이 요구하는 각종 사회 과제(세외부담)들도 그렇고, 기숙사 식당 밥만으로 한창 때인 젊은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는 무상교육을 당의 큰 배려인양 선전하지만,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이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실정이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8월 27일에도 15명이 무더기로 중퇴했다. 사정은 정준택원산경제대학 학생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정준택원산경제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리성희(가명)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생활이 괜찮던 동무들이 올해 중퇴를 해서 주위에서 다들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화폐 교환조치로 생활수준이 급락한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중퇴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리씨는 “화폐 개혁만 없었어도, 중퇴까지는 안하고 그냥 공부를 했을 것이라며 국가 정책을 원망하는 동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신포 양화리 농장, 9월에도 풀죽 못 면해

함경남도 신포시 양화리 농장의 농가들은 9월이 되어서도 풀죽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분배받은 식량을 아무리 아껴먹었어도 춘궁기를 거치면서 식량이 바닥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7-8월이 되면 햇곡식이 나올 때라 한숨 돌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폭우와 폭염에 감자나 보리, 옥수수가 잘 나지도 않고, 그나마 썩어버리는 통에 식량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농장 관리일군들은 작년에 이미 올해 9월까지 먹을 수 있는 양을 다 주었기 때문에 농장에서 더 줄 양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식량분배를 받을 당시부터 군량미에 인민군대 지원용 돼지고기 등 이것저것 떼고 나니 손에 들어온 게 얼마 없었다고 했다. 올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식량분배를 또 받겠지만, 이번에도 분배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벌써부터 낙심하고 있다.

농장측은 가을걷이 시기가 다가오면서 출근일수 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출근일에 따라 분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출근날짜가 얼마나 되는지 농민들마다 엄정하게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춘궁기 때 배가 너무 고파 풀뿌리라도 캐먹으려고 들로 산으로 헤매느라 결근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은 이제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병결로 처리된 농민들은 결근 처리가 되지 않는다.

■ 사회

전기 사용 줄이려고 “전기밥솥 사용하지 말라”

함경북도 도 인민위원회 전력 감독처에서는 올 상반기부터 불필요한 전력낭비를 줄이기 위해 집중적으로 전력사용실태 점검에 나섰다. 2경제 산하 공장, 기업소들을 제외한 모든 부문이 사실상 점검대상에 들어간다. 전력당국은 전력이 낭비되는 부문을 찾아낸 뒤 전기선을 아예 끊어버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주민 세대들의 경우, 전등과 텔레비전 등 최소한의 조명용을 제외하고 취사용이나 난방용 전기는 사용하면 안 된다. 전기밥솥이나 채가마(프라이팬) 등을 사용하다 걸리면 바로 몰수하고 경우에 따라 벌금을 물어야한다. 주민들은 평소에는 취사를 위해 석탄을 주로 사용하지만, 석탄을 아끼기 위해 전기가 들어올 때는 전기밥솥이나 채가마를 숨겨놓았다가 꺼내서 사용해 해왔다. 공장, 기업소들의 애로 사항도 만만치 않다. 함경북도 관내 지역에서 전기선 절단 조치가 취해진 곳은, 지난 7-8월 두 달 동안에만 무려 200여 곳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공동변압기가 100여대 넘게 고장이 나서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원래 주민 세대엔 하루 2-3시간 정도만 전력이 공급되었는데 그마저 변압기를 사용해 끌어올려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전력감시 기간 동안 전기선을 무차별적으로 끊어버리자, 일부 전선에 과부하가 생기면서 변압기가 고장 난 곳이 많았다. 변압기가 고장 났다는 신고만 100여 곳이 넘었다.

환자 한 명 생기면 집안 파산

함경북도 도인민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올해 5-6월 들어 환자 수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작년보다 식량 사정이 악화되면서 춘궁기를 맞아 병자들이 급증한 것 같다고 했다. 환자 한 명이 생기면, 그 집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환자가 있는 집에서 모든 의료 부담을 져야 한다. 입원해도 병원에 약이 없기 때문에 약값을 따로 대야한다. 장사 밑천까지 탈탈 털어 약을 대다가, 그마저 떨어지면 집기물을 이것저것 내다팔다가 결국 가정경제는 파탄에 이른다. 그렇게 애를 써도 완치해서 퇴원하는 환자들은 대개 간부 집안뿐이다.

도병원에 환자를 입원시키고, 돈을 끌어다가 병수발을 드는 집은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시, 군 인민병원에서 위중한 환자는 파송증을 떼 주어 도병원에 보내는데 외래동 입원접수과에서 일단 걸러지기 마련이다. 환자 가족에게 “입원한 뒤 의약품을 전부 부담할 수 있는가?” 물어 부담할 수 있다고 하면 입원시키고, 그렇지 못하면 아예 접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허울만 무상치료 일뿐, 실제로는 환자 측에서 거의 모든 치료비를 대는 구조인 것이다. 병동 식당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환자 가족들에게 부담이다. 입원한 환자를 돌보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상주해야 하는데, 먹을 쌀과 부식물 등을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일정하지 않아 밥을 해먹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밥솥을 쓰기는커녕 조명등 켜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아 환자 가족들은 대부분 가스 곤로를 이용한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 입원 환자들이 매달 늘고 있는데, 입원 기간은 오히려 짧아지고 있다. 9월에도 환자가 증가했지만, 약값과 병수발 드는 데 드는 돈을 감당하지 못해 일주일도 못 버티고 퇴원하는 환자들이 늘었다. 예전에도 환자 측에서 의약품 비용이나 보호자 급식 문제를 다 부담했지만, 소독약이나 항생제, 붕대 등 기본적인 것은 그래도 제공됐었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는 그마저 모두 끊겼다. 그렇다보니 아주 작은 상처를 제때 소독하지 못해 감염부위가 커져 병을 심각하게 키우거나,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도 생기고 있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해도 혜택 받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의사들이 실력은 없으면서 뇌물만 요구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족을 살려보겠다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입원을 시켜보지만, 병원은 돈 먹는 하마일 뿐 사람을 낫게 해주지 못한다며 병원 치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신포 양화리 농장, 9월에도 풀죽 못 면해

함경남도 신포시 양화리 농장의 농가들은 9월이 되어서도 풀죽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분배받은 식량을 아무리 아껴먹었어도 춘궁기를 거치면서 식량이 바닥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7-8월이 되면 햇곡식이 나올 때라 한숨 돌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폭우와 폭염에 감자나 보리, 옥수수가 잘 나지도 않고, 그나마 썩어버리는 통에 식량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농장 관리일군들은 작년에 이미 올해 9월까지 먹을 수 있는 양을 다 주었기 때문에 농장에서 더 줄 양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식량분배를 받을 당시부터 군량미에 인민군대 지원용 돼지고기 등 이것저것 떼고 나니 손에 들어온 게 얼마 없었다고 했다. 올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식량분배를 또 받겠지만, 이번에도 분배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벌써부터 낙심하고 있다.

농장측은 가을걷이 시기가 다가오면서 출근일수 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출근일에 따라 분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출근날짜가 얼마나 되는지 농민들마다 엄정하게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춘궁기 때 배가 너무 고파 풀뿌리라도 캐먹으려고 들로 산으로 헤매느라 결근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은 이제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병결로 처리된 농민들은 결근 처리가 되지 않는다.

■ 여성/어린이/교육

강원도 대학생, “화폐개혁 아니었으면 중퇴 안 했을 것”

올해 들어 학교를 그만두는 강원도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예전에는 일부 학교의 몇몇 학생들에 국한됐다면, 올해는 강원도 내 대학교마다 중퇴자가 속출하고 있다. 모두 화폐교환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돈이 종잇조각이 돼버리자 장사로 먹고 살았던 집일수록 피해가 컸다. 식량문제까지 악화되니 식구들의 끼니 연명이 어려워진 처지에 돈이 많이 드는 대학공부를 계속 할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마음은 아프지만, 장사 밑천까지 다 잃어버린 뒤라 자녀들에게 뒷바라지를 해주기 어려우니 자퇴를 넌지시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원산시 조군실사범대학의 경우, 자퇴한 학생이 올 4월에만 16명이었다. 아끼던 제자들이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자, 교수들도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담당 교원들이 어떻게든 힘든 시기를 넘겨보라며 중퇴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굶게 된 학생들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학교 측이 요구하는 각종 사회 과제(세외부담)들도 그렇고, 기숙사 식당 밥만으로 한창 때인 젊은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는 무상교육을 당의 큰 배려인양 선전하지만,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이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실정이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8월 27일에도 15명이 무더기로 중퇴했다. 사정은 정준택원산경제대학 학생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정준택원산경제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리성희(가명)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생활이 괜찮던 동무들이 올해 중퇴를 해서 주위에서 다들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화폐 교환조치로 생활수준이 급락한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중퇴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리씨는 “화폐 개혁만 없었어도, 중퇴까지는 안하고 그냥 공부를 했을 것이라며 국가 정책을 원망하는 동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 식량소식

신포 양화리 농장, 9월에도 풀죽 못 면해

함경남도 신포시 양화리 농장의 농가들은 9월이 되어서도 풀죽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분배받은 식량을 아무리 아껴먹었어도 춘궁기를 거치면서 식량이 바닥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7-8월이 되면 햇곡식이 나올 때라 한숨 돌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폭우와 폭염에 감자나 보리, 옥수수가 잘 나지도 않고, 그나마 썩어버리는 통에 식량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농장 관리일군들은 작년에 이미 올해 9월까지 먹을 수 있는 양을 다 주었기 때문에 농장에서 더 줄 양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식량분배를 받을 당시부터 군량미에 인민군대 지원용 돼지고기 등 이것저것 떼고 나니 손에 들어온 게 얼마 없었다고 했다. 올해 가을걷이가 끝나면 식량분배를 또 받겠지만, 이번에도 분배량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벌써부터 낙심하고 있다.

농장측은 가을걷이 시기가 다가오면서 출근일수 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출근일에 따라 분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출근날짜가 얼마나 되는지 농민들마다 엄정하게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춘궁기 때 배가 너무 고파 풀뿌리라도 캐먹으려고 들로 산으로 헤매느라 결근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은 이제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병결로 처리된 농민들은 결근 처리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