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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78호

■ 시선집중

[화폐 교환 조치 1년] “당시 주민들 불만 최고조에 중앙당도 당황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주민들의 불만이 당시 외부에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강도가 셌다고 말한다. 평양 시민들마저 “이런 (암담한) 실정과 현실에 직면한 주민들 모두 다 멍해졌다. 사람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며 사상적으로 혼란해졌다. 이러지 않아도 고통이 심한 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의 분노 정서가 더 커져갔고, 현실을 더 저주했다”고 했다. 함흥과 원산을 오가는 한 무역일군은 “다른 지방들도 언제 폭발할지 모를 정도로 무서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사람들은 “화폐 교환 조치는 사람을 더 못살게 구는 조치”라고 단정 지었다. “공급제도 없는 현실에서 시장마저 폐쇄하라니 우리들을 죽이려는 조치가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어느 나쁜 놈이 내놓은 작간이냐?”고 거칠게 불만을 표시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하루아침에 대부분의 재산을 잃어버린 장사꾼들과 돈주들이 억울한 마음에 시당 행정위원회에 찾아가 “물가를 왜 당초 약속했던 가격대로 실시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소동들도 벌어졌다. 한두 명이 그저 홧김에 불만을 내뱉는 수준이 아니라, 집단으로 몰려가 “물가를 떨어뜨리지 못하겠으면, 교환했던 화폐를 1대 1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집단 항의에 당황한 군당에서는 시당에 보고하고, 시당에서는 도당에, 도당에서는 다시 중앙당에 회보하는 일이 반복됐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1월 내내 함흥, 청진, 평성, 원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이런 비슷한 소동들을 끊임없이 보고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각에서 김영일 전 총리가 사과 발언을 하고, 5.26 지시가 내려진 배경에는 아사자 속출과 국가 경제 전반 몰락이라는 큰 문제들도 있었지만, 궁지에 몰린 주민들의 지속적인 항의를 더 이상 무시하지 못했던 것도 한 이유”이라고 해석했다. 아사자 속출과 사회경제혼란 속에 주민들의 불만수위가 예상보다 커지자, 중앙당에서도 시장 강경 조치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화폐 교환 조치 1년] 쌀 장사꾼도 예측 불가능했던 물가폭등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식량을 비축해두고 살던 평성 주민들은 일주일 분량도 구하지 못할 만큼 식량 상황이 열악해졌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진 세대들도 급속히 늘어났다. 한때 평성시장 덕에 평양 다음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산다던 평성 주민들로선 엄청난 악재를 만난 셈이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겠기에, 주민들은 암암리에 식량을 사고팔았다. 주례동에서 쌀장사를 하던 김경옥(가명)씨는 “화폐 교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당시에는 국가에서 식량 가격을 바로 안 정해줘서, 옛날 화폐를 새 화폐로 환산해서 우리끼리 알아서 사고팔았다. 얼마 지나서 시장관리소에서 제정한 가격대로 팔아야 한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그때도 새 가격으로 식량을 파는 장사꾼들은 별반 없었다. 쌀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올라갔다. 시장에서 쌀을 팔지 말라고 하고, 단속을 심하게 하니 쌀 파는 일이 더 어려워졌고, 조금만 더 갖고 있으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시장에 쌀을 내놓지 않고 한동안 계속 갖고 있었다. 쌀값은 계속 뛰었다. 대체 언제 팔아야 리득을 많이 볼 것인지, 나조차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불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쌀 장사꾼도 짐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소비자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어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화폐 교환 조치 1년]“화폐 교환, 왜 100대 1인지 아직도 몰라”

북한 최대 도매시장인 평성시장이 전격 폐지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던 주민들은 화폐 교환 조치에 대해 아직도 의구심이 많다고 말한다. 평성동에 사는 강지영(가명)씨는 “화폐 교환을 실시하기 전과 이후에 나라에서 이 방면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이 기본상 없었다. 그저 하루아침에 세대당 구화폐 10만 원을 새 화폐 1천원으로 바꿔준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뿐이었다. 왜 10만원에 10만원씩 동등한 비례로 교환하지 않고, 100 대 1의 비례로 화폐를 교환해 주는가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었다”고 했다. 은덕동에 사는 장일학(가명)씨도 “화폐 교환 일군들이 이제부터 식량을 포함한 모든 상품들의 가격을 원래 가격의 100분제 1로 제정하기 때문에 새 화폐를 100대 1로 바꿔준다고 할 뿐이었다. 듣고서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설명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반신반의했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게다가 시장을 철폐하여 모든 물품들은 직매점에서만 사고팔게 하고, 식량은 량정사업소에서만 판매한다고 하자 사람들 의견이 많았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히자,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 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도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수매상점이나 량정사업소에서 물건이나 식량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폐 교환 조치 1년] 주민들 평가, “있는 놈들만 더 가져간 정책”

화폐 교환 조치가 전격 단행된 지 어느새 1년이 다 되간다. 주민들로부터 당시 회상을 들어보았더니, 지금도 자다가도 몸서리치며 일어나게 되는 악몽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평성시의 김영만(가명)씨는 “있는 놈들만 더 가져간 나쁜 정책”이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김씨는 “작년 11월 말에 실시된 화폐 교환 조치로, 각 도에서 화폐를 교환하라고 파견한 일군과 지방 간부들, 보위부원과 보안원들은 벼락부자가 됐거나 더 많은 돈을 챙기는 일이 일어났다. 한 세대 당 옛날 화폐로 10만원까지 제한을 두니 지방의 많은 장사꾼들과 돈주들은 서둘러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던 간부들과 관계망을 이용해 화폐 교환을 집행하러 내려온 간부들과 직접 거래를 했다. 간부와 법일군, 은행일군들은 이들과 암거래를 하는 대가로 20% 이상의 사례금을 챙겼다. 돈이 많지 않는 장사꾼들은 ‘불가마 속의 개미’신세가 돼 돈 없는 주민들을 찾아가 돈을 대신 바꿔주면 사례금으로 교환금액의 30% 내지는 50%까지 주고 화폐를 교환했다. “있는 놈들은 다 빠져 나가고, 없는 놈들만 죽어난 나쁜 정책”이라고 다시 한 번 분개심을 표했다.

“대홍단군 간부 80%가 능력 없는 인간들”

김영일처럼 두드러지게 악행을 일삼아 구설수에 오르는 인물들 외에도 대홍단군 주민들의 간부 불신은 매우 심했다. 대홍단군의 한 간부는 보고서에 차마 올리지 못하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그는 “무식한 인간들이 돈을 휘두르며 권력을 타고 앉아 백성들이 죽든 살든 관계없이 큰소리만 친다. 대홍단 간부의 80%가 능력 없는 인간들인데 맡은바 사업은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소리나 치며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말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김영일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간부 전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에 나타난 변화이기도 한데, 예전 같으면 간부들 눈치를 살피면서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거침없이 비난한다고 했다. 아무리 온건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무식한 인간들이 인테리 흉내를 내고 간부 흉내를 내니 이 사회가 언제까지 유지 되겠느냐”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대홍단 젖소목장의 악질 지배인에 주민 원성 높아

량강도 대홍단군 젖소목장 지배인의 악행에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지배인이 된 지 5개월 도 안 돼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람은 김영철로, 어려서는 집이 가난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젊어서는 주먹 꽤나 쓰며 거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양봉에 손을 댄 게 일이 잘 풀려 꽤 많은 돈을 모으게 됐다. 그는 돈 몇 푼 더 모아봤자 인생이 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은밀히 군당 간부들을 접촉해 뇌물을 바치고 현재의 지배인 자리를 얻었다. 내내 바닥 생활을 하다가 권세 아닌 권세를 처음 누려본 그는 지배인이 되자마자 엉뚱한 데 자기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제대군인 리천명이 그 첫 번째 희생자였다. 리천명은 목장 가축분뇨가 자기 집 옆에 난 도랑으로 계속 흘러내려오자, 분뇨처리 하수구를 다른 곳으로 돌려달라고 계속 제기해왔다. 김영일은 계속 제기를 묵살하는데도 신소가 끊이지 않자,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다짜고짜 보복을 감행했다. 힘쓰는 사내 둘을 고용해 리씨의 집에 들어가 부부를 때려눕히고, 살림살이를 모두 깨부수었다. 두 사내는 복면을 쓰고 들어갔지만, 김영철의 사주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목장과 인근 마을에 소문이 퍼졌고, 리씨가 군당은 물론 도당에까지 신소하면서 사건이 커지자 김영일은 군당 책임비서를 만나 뇌물을 바치고 없었던 일로 수습하려고 했다. 군당 책임비서가 자신이 책임지고 교양시키겠다고 도당에 보고해주어 김영일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영일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커져만 갔다. 리옥화(가명)씨는 “자기(김영일)가 여기서 범이라면 범인 줄 알라고 큰 소리 치면서 종업원들을 개 다루듯 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이 새끼, 저 새끼 천대하고, 나이가 어리든 많든 처녀, 유부녀 상관 안 하고 자기 마음껏 데리고 놀고, 그 대가로 쉬운 일을 골라 주고 어찌나 추하게 노는지 입에 담을 수가 없다. 다른 간부들 같으면 눈치라도 볼 텐데, 누구 말도 안 듣고 막무가내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너무 기가 막혀 세상을 한탄한다”고 고발했다. 같은 목장에서 일하는 림영분(가명)씨는 “자기 종업원 가정을 갈라놓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남편에게 아내와 갈라지면 입당도 시키고 집도 주고 재산까지 해줄 수 있다, 리혼은 걱정 말라, 자기가 나서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구슬려 리혼까지 시켰다. 그 집 여자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이런 수작을 했다”고 했다. 복잡한 여자 문제, 가정 파탄은 기본이고, 목장 재산 빼돌리기, 종업원들 부려먹기, 입에서 나오는 건 모두 욕이고,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날리기, 사람 사서 손봐주기 등 온갖 행패는 다 부리고 다니니 주민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목장 종업원들은 전(前) 지배인은 능력 있는 기술 일군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며, 다만 너무 고지식하고, 자기 목장 일만 하고 상부에 아첨할 줄 몰라 결국 간부들의 눈 밖에 나서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기술도 없는 사람이 뇌물을 고여 지배인 자리를 차지하더니 목장 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저런 것이 어째 당원이고, 지배인인가. 겉만 사회주의지 안팎이 다 썩었다는 증거”라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이 목장에서는 큰 젖소 8마리, 새끼 젖소 10마리, 양 15마리 등 가축들이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어 운영 상태도 썩 좋지 않은 편이다.

희천발전소 건설 추가 비용에 해외 대표부들 전전긍긍

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중앙당은 희천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해외 대표부들과 무역회사들에 추가 비용을 부담하라고 지시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총 1천만 달라에 달하는 물자와 현금을 마련해내라고 하자, 해외 대표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희천발전소 건설을 위해 여러 차례 이미 막대한 현금과 물자를 바친 상태기 때문이다. 한 무역 일군은 “이번에 적지 않은 현금과 물량을 다시 내야 한다고 하니, 이거 어디 속이 타서 살겠는 가. 과제는 과제대로 거두고 해마다 내야 하는 돈도 많은데, 장사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초기 타산을 세밀하게 하지 못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100만 불 정도면 되겠다고 해서 단동 어느 회사에 10만 달라, 어느 회사 얼마 이렇게 나눠서 거뒀는데 하다 보니 모자라니까 또 내라고 한다. 아마 이런 식이라면 공사 끝날 때까지 돈이 계속 필요하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해외 주재 간부들 역시 “청년 대장께서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의 뒤를 이어 경제를 발전시켜 주시리라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외 대표부들의 재정 부담이 증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빨리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해서, 나라 형편을 곧추세워주시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새로운 과제에 난색을 표하는 동시에 새 지도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표했다.

■ 사회

“대홍단군 간부 80%가 능력 없는 인간들”

김영일처럼 두드러지게 악행을 일삼아 구설수에 오르는 인물들 외에도 대홍단군 주민들의 간부 불신은 매우 심했다. 대홍단군의 한 간부는 보고서에 차마 올리지 못하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그는 “무식한 인간들이 돈을 휘두르며 권력을 타고 앉아 백성들이 죽든 살든 관계없이 큰소리만 친다. 대홍단 간부의 80%가 능력 없는 인간들인데 맡은바 사업은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큰소리나 치며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말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김영일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간부 전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에 나타난 변화이기도 한데, 예전 같으면 간부들 눈치를 살피면서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거침없이 비난한다고 했다. 아무리 온건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무식한 인간들이 인테리 흉내를 내고 간부 흉내를 내니 이 사회가 언제까지 유지 되겠느냐”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 사건사고

대홍단 젖소목장의 악질 지배인에 주민 원성 높아

량강도 대홍단군 젖소목장 지배인의 악행에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지배인이 된 지 5개월 도 안 돼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람은 김영철로, 어려서는 집이 가난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젊어서는 주먹 꽤나 쓰며 거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양봉에 손을 댄 게 일이 잘 풀려 꽤 많은 돈을 모으게 됐다. 그는 돈 몇 푼 더 모아봤자 인생이 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은밀히 군당 간부들을 접촉해 뇌물을 바치고 현재의 지배인 자리를 얻었다. 내내 바닥 생활을 하다가 권세 아닌 권세를 처음 누려본 그는 지배인이 되자마자 엉뚱한 데 자기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제대군인 리천명이 그 첫 번째 희생자였다. 리천명은 목장 가축분뇨가 자기 집 옆에 난 도랑으로 계속 흘러내려오자, 분뇨처리 하수구를 다른 곳으로 돌려달라고 계속 제기해왔다. 김영일은 계속 제기를 묵살하는데도 신소가 끊이지 않자,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다짜고짜 보복을 감행했다. 힘쓰는 사내 둘을 고용해 리씨의 집에 들어가 부부를 때려눕히고, 살림살이를 모두 깨부수었다. 두 사내는 복면을 쓰고 들어갔지만, 김영철의 사주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목장과 인근 마을에 소문이 퍼졌고, 리씨가 군당은 물론 도당에까지 신소하면서 사건이 커지자 김영일은 군당 책임비서를 만나 뇌물을 바치고 없었던 일로 수습하려고 했다. 군당 책임비서가 자신이 책임지고 교양시키겠다고 도당에 보고해주어 김영일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영일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커져만 갔다. 리옥화(가명)씨는 “자기(김영일)가 여기서 범이라면 범인 줄 알라고 큰 소리 치면서 종업원들을 개 다루듯 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이 새끼, 저 새끼 천대하고, 나이가 어리든 많든 처녀, 유부녀 상관 안 하고 자기 마음껏 데리고 놀고, 그 대가로 쉬운 일을 골라 주고 어찌나 추하게 노는지 입에 담을 수가 없다. 다른 간부들 같으면 눈치라도 볼 텐데, 누구 말도 안 듣고 막무가내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너무 기가 막혀 세상을 한탄한다”고 고발했다. 같은 목장에서 일하는 림영분(가명)씨는 “자기 종업원 가정을 갈라놓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남편에게 아내와 갈라지면 입당도 시키고 집도 주고 재산까지 해줄 수 있다, 리혼은 걱정 말라, 자기가 나서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구슬려 리혼까지 시켰다. 그 집 여자가 마음에 들었던 건지 이런 수작을 했다”고 했다. 복잡한 여자 문제, 가정 파탄은 기본이고, 목장 재산 빼돌리기, 종업원들 부려먹기, 입에서 나오는 건 모두 욕이고,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날리기, 사람 사서 손봐주기 등 온갖 행패는 다 부리고 다니니 주민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목장 종업원들은 전(前) 지배인은 능력 있는 기술 일군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며, 다만 너무 고지식하고, 자기 목장 일만 하고 상부에 아첨할 줄 몰라 결국 간부들의 눈 밖에 나서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기술도 없는 사람이 뇌물을 고여 지배인 자리를 차지하더니 목장 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저런 것이 어째 당원이고, 지배인인가. 겉만 사회주의지 안팎이 다 썩었다는 증거”라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이 목장에서는 큰 젖소 8마리, 새끼 젖소 10마리, 양 15마리 등 가축들이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어 운영 상태도 썩 좋지 않은 편이다.

■ 경제활동

희천발전소 건설 추가 비용에 해외 대표부들 전전긍긍

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중앙당은 희천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해외 대표부들과 무역회사들에 추가 비용을 부담하라고 지시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총 1천만 달라에 달하는 물자와 현금을 마련해내라고 하자, 해외 대표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희천발전소 건설을 위해 여러 차례 이미 막대한 현금과 물자를 바친 상태기 때문이다. 한 무역 일군은 “이번에 적지 않은 현금과 물량을 다시 내야 한다고 하니, 이거 어디 속이 타서 살겠는 가. 과제는 과제대로 거두고 해마다 내야 하는 돈도 많은데, 장사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초기 타산을 세밀하게 하지 못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100만 불 정도면 되겠다고 해서 단동 어느 회사에 10만 달라, 어느 회사 얼마 이렇게 나눠서 거뒀는데 하다 보니 모자라니까 또 내라고 한다. 아마 이런 식이라면 공사 끝날 때까지 돈이 계속 필요하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해외 주재 간부들 역시 “청년 대장께서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의 뒤를 이어 경제를 발전시켜 주시리라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외 대표부들의 재정 부담이 증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빨리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해서, 나라 형편을 곧추세워주시기를 바랄 뿐이다”라며 새로운 과제에 난색을 표하는 동시에 새 지도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