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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386호

■ 시선집중

“감옥에 보낼지언정 군대에는 안 보내겠다”

강원도 원산시에서는 군대 간 지 7년 만에 새해를 맞아 첫 표창 휴가를 나온 군인을 보고, 너도나도 원통해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휴가 나온 장병의 사연을 듣고는 “내 아들은 절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사연인즉, 표창 휴가를 나온 김석출(가명)씨는 앞뒤가 산으로 꽉 막힌 산골짜기에 배치된 뒤 7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수직갱에 들어가 탄 캐는 일만 했는데,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출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김씨의 얘기다.

“총을 잡아본 것은 신병 훈련 때뿐이고, 그 뒤로는 줄곧 곡괭이를 들었다. 지난 7년은 오직 낮과 밤을 새며 갱 안에서 일한 나날이었다. 일이 많은 날은 갱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갱 안에 마련된 휴게실 안에서 잠잘 때도 있었다. 수직갱이 너무 깊어 아침에 들어가면 도중에는 물론 저녁때까지 나올 수 없어 휴식을 주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똥오줌도 그 안에서 처리하고, 밥도 거기서 먹는다. 밥이라곤 이동 식사로 들어오는 옥수수밥과 염장 무가 전부였다. 갱 막장 안에 똥오줌이 섞인 질벅한 물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옥수수밥 한 덩이로 허기를 면한다. 막장 곳곳에 고인 물에 똥오줌이 섞여 있는 것을 그대로 첨벙첨벙 걷거나 털썩 주저앉다보니 자연히 살에는 독이 오른다. (실제 김씨의 발이며 다리며 엉덩이는 시꺼멓게 독이 올라, 사람 피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있었다.) 처음 독이 오를 때는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지만 별다른 치료도 못 받고 계속 똑같은 상황에 노출되다보니 나중에는 쩍쩍 갈라지고 터지다가 결국엔 시꺼멓게 죽어버린다. 명절날에는 돼지고기 2-3점 정도가 뜬 고깃국에 이밥이 나오기 때문에 그나마 유일하게 기다리는 시간이다.”

2007년에는 하도 폐병 환자들이 많아져서 퇴근할 때 일인당 소주를 반병씩 주었다고 한다. 자기 중대 인원이 80명인데 해마다 영양실조나 사고로 죽는 사람이 10여명 안팎이라고 했다. 김씨는 인간으로 생지옥과 같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며 다시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군인들의 후방 보장 사업은 전혀 없이 오로지 “결사옹위다 총폭탄정신이다 떠들고, ‘참된 혁명전사가 되자!’거나 ‘장군님 전사는 살아도 죽어도 영광!’등의 구호만 외치니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나온 게 다행이라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김씨의 처참한 몰골과 사연을 들은 이웃들은 “내 아들은 차라리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보냈으면 보냈지, 군대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분개했다.

함흥시 제일 용하다는 점쟁이에 보안원들도 벌벌

새해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용한 점쟁이를 찾아나서는 현상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함흥시에서는 제일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가 작년 연말에 붙잡히는 바람에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소문의 주인공은 성천강구역 신흥1동에 사는 김성희씨(43세)로, 작년 11월 29일에 미신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보안서에서는 가택수사를 벌여 점을 봐주는 책자를 압수했는데, 그 중에는 성경책도 포함돼 있어 정치적 성격을 띠었는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를 심문하는 보안원들이 그녀의 신기에 가까운 점술에 감탄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김성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신기가 있었는데,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무슨 이유로 찾아 왔는지 딱 알아 맞췄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9년 때, 헤어진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생사를 말해주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찾을 수 있다, 멀리 갔으니 당분간 만날 수 없다는 등 답변을 해주면서 인근에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무슨 장사를 해야 성공하느냐, 올해 (소토지) 농사를 얼마나 지어야 잘 될 것 같으냐 등 점점 생활문제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김씨가 알려준 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용하다는 얘기가 돌았고, 보안서에서도 보고를 받고 몇 차례 김씨를 불러 비판서를 쓰게 하기도 했지만 미신행위는 계속됐다. 김씨 자신이 특별한 생계벌이가 없기도 하지만, 고위간부들까지 김씨를 찾으면서 김씨의 방패막이 되어주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였다. 심지어 보안서에 붙잡혀 가서도, 보안원들의 관상을 봐주고 꿈풀이(해몽)를 해주어 그 자리에서 풀려난 적도 있다. 붙잡혔다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름만 더 날려 함흥시에서 용한 점쟁이로 소문이 자자해졌다. 그 뒤 도당 간부들과 보위부, 보안원들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근심 걱정이 생기면 김씨 집을 자주 출입하곤 했다.

소문이 크게 나면서 자연히 수입도 좋아졌다.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점을 보는데 현금 5만원씩 주기도 하고, 쌀을 몇 가마 들여 주기도 한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되는 만큼 1천원이든 5천원이든 주고, 다만 쌀 몇 kg라도 주고 가기도 한다. 정 줄 게 없는 사람들은 성의표시로 달걀 한 줄이라도 가지고 간다. 김씨가 잘 맞추기도 하지만, 이처럼 값을 딱히 정하지 않고 사람 형편에 따라 받기 때문에 평판이 좋다. 그러다 작년 말, 중앙당에서 “미신을 타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시당에서 눈치 보면서 머뭇거리자 도당 차원에서 검거 명령을 내렸다. 보안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는 7년 이상의 교화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를 담당하는 법관들이 괜히 잘 못 했다가 무슨 해를 당할지 모른다며, 그녀를 심문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2010년 김책제철소 배급 실태

2010년 김책제철소 배급 실태

배급량식량비고
110일옥수수도토리를 섞어 먹음. 노동자 9명 아사
210일옥수수굶어죽는 노동자 생기자, 회령시에 옥수수 타진.

선철을 중국에 팔아 비료와 비닐박막을 받고, 이것을 회령시에 넘겨주고 대가로 옥수수를 받으려고 했음.

330일입쌀과 옥수수일부 주강직장 등 배급 안 됨.
415일 입쌀과 옥수수4.15태양절 맞이 특별배급,

강철직장 월급 9천원 지급

515일 옥수수강철, 단조직장 등 일부 직장에만 배급됨.

주강직장에서는 130명 중 출근자 75명에 불과. 식량문제로 결근자 속출

610일 옥수수식량배급 확보 방안이 미흡해 중앙 성 기관과 여러 차례 논의.

선철을 팔아 배급을 확보하라 지시.

옥수수 10일 분량 정도에서 가까스로 배급량을 맞추고 있음.

710일옥수수
810일옥수수
910일옥수수
1010일옥수수
1110일옥수수
1210일옥수수

김책제철소, 새해에도 10일치 옥수수만 배급

함경북도 청진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한 달 식량 배급이 여전히 10일치 분량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배급이 입쌀이 아니라 옥수수로 바뀐 지는 이미 여러 해 됐고, 1개월 분량에서 보름 분량으로, 다시 열흘 분량으로 계속 줄더니 이제는 10일 분량이 최대치로 굳어진 상황이다. 강철직장이나 단조직장처럼 배려를 많이 받는 직장들의 사정이 이 정도이고, 주강직장처럼 힘없는 직장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남들 보름치 나올 때 아예 건너뛰는 경우도 생긴다. 련합기업소 당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먹는 문제를 풀려고 성 기관과 여러 차례 토의했지만, 지금까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당에서는 주체철을 팔아 식량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그러나 해가 바뀐 지금도 식량문제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식량 배급이 잘 안 되면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소토지 농사를 짓거나 삯벌이 낙지잡이(오징어잡이) 등 다른 벌이를 찾아나서는 노동자가 는다. 기업소 측에서는 한 명이라도 아쉬운 판이라 결근자들을 어떻게든 찾아 나선다. 작년 12월 10일에는 이 문제로 보안서와 합동 비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대책이라는 것이 결국 무단결근자들을 강제로 출근시키는 방법인데, 1개월 이상 무단결근자는 최소 3개월을 단련대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하고, 2개월 이상이면 6개월로 단련대 기한이 2배로 늘어난다. 한편, 공장 설비들이 도둑맞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5일에는 용접기 3대를 도난당했는데, 얼마 못 가 5명의 범인들이 붙잡혔다. 붙잡힌 이들은 김책제철소 노동자들로 “용접기를 해체하면 동으로 만들어진 변압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동 밀수업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돈으로 식량을 사먹었다”고 진술했다.

청진 달러, 한 달 전보다 약 1.6배 상승

인민폐와 달러 가격 상승률은 더 급격하다. 지난 1월 5일에서 7일까지 평양, 신의주, 청진, 함흥 등지에서 달라는 2,600-2,700원에, 인민폐는 430-450원에 거래됐다. 12월 연말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달라는 1,800원대, 그리고 인민폐는 290원대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승폭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청진의 경우, 16일 달러가 3,510원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바로 다음날 3,300원으로 떨어진 데 이어 18일 어제 2,800원대로 다시 떨어져 최근 이상 오름세가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18일 현재, 달러 가격은 지난달과 비교하면 여전히 약 1.6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참고로, 인민폐는 지난달과 비교해 약 1.5배 올랐다.

청진 곡물가격과 외환가격 동향

옥수수인민폐(1위안)달러(1달러)
2011/1/71,7507804402,625
2011/1/161,8508504753,510
2011/1/171,9808004703,300
2011/1/181,6007504302,795

전국 식량 값 연일 폭등세

지난 1월 7일, 평양에서는 쌀이 kg당 2,100원에 거래됐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1,600원에서 거래되던 것이 해를 넘기자마자 2,000원대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1월 중순까지 2,000원대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쌀값은 최근 상순 배급이 풀리면서 1,500원대로 떨어졌다. 각 기관 및 단위들에서도 뒤늦게 명절 공급을 마련하면서 식량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배급이 풀리지 않는 다른 지역들에서 곡물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1월 1일, 쌀이 kg당 1,500원에 거래됐던 함흥시의 경우 지난 1월 7일에는 1,800원대로 뛰었다. 같은 날 청진에서는 1,750원, 신의주에서는 1,800원에 거래됐다. 약 열흘 뒤인 1월 17일, 청진의 경우 쌀이 kg당 1,980원에 거래돼 2,000원에 육박했다. 한편, 옥수수는 지난 1월 7일 기준으로 평양이 kg당 950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진이 780원, 함흥과 신의주, 평성 등지에서 850원에 거래됐다. 열흘이 지난 1월 17일에도 옥수수는 750원에서 800원 사이를 오갔다. 상순 배급이 풀린 평양과 일부 농촌 지역에서만 옥수수가 600원대에 팔리고 있다. 새해 곡물 값 폭등에 대해, 중앙당의 몇몇 간부들은 외부에서 곡물 수입이 늦어지고 있고,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뛰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최근 평양 곡물가격

(단위: 북한 원/kg)

옥수수
2010/12/201,600650
2011/1/72,100950
2011/1/171,500600

■ 경제활동

전국 식량 값 연일 폭등세

지난 1월 7일, 평양에서는 쌀이 kg당 2,100원에 거래됐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1,600원에서 거래되던 것이 해를 넘기자마자 2,000원대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1월 중순까지 2,000원대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쌀값은 최근 상순 배급이 풀리면서 1,500원대로 떨어졌다. 각 기관 및 단위들에서도 뒤늦게 명절 공급을 마련하면서 식량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배급이 풀리지 않는 다른 지역들에서 곡물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1월 1일, 쌀이 kg당 1,500원에 거래됐던 함흥시의 경우 지난 1월 7일에는 1,800원대로 뛰었다. 같은 날 청진에서는 1,750원, 신의주에서는 1,800원에 거래됐다. 약 열흘 뒤인 1월 17일, 청진의 경우 쌀이 kg당 1,980원에 거래돼 2,000원에 육박했다. 한편, 옥수수는 지난 1월 7일 기준으로 평양이 kg당 950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청진이 780원, 함흥과 신의주, 평성 등지에서 850원에 거래됐다. 열흘이 지난 1월 17일에도 옥수수는 750원에서 800원 사이를 오갔다. 상순 배급이 풀린 평양과 일부 농촌 지역에서만 옥수수가 600원대에 팔리고 있다. 새해 곡물 값 폭등에 대해, 중앙당의 몇몇 간부들은 외부에서 곡물 수입이 늦어지고 있고,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뛰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최근 평양 곡물가격

(단위: 북한 원/kg)

옥수수
2010/12/201,600650
2011/1/72,100950
2011/1/171,500600

청진 달러, 한 달 전보다 약 1.6배 상승

인민폐와 달러 가격 상승률은 더 급격하다. 지난 1월 5일에서 7일까지 평양, 신의주, 청진, 함흥 등지에서 달라는 2,600-2,700원에, 인민폐는 430-450원에 거래됐다. 12월 연말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달라는 1,800원대, 그리고 인민폐는 290원대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승폭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청진의 경우, 16일 달러가 3,510원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바로 다음날 3,300원으로 떨어진 데 이어 18일 어제 2,800원대로 다시 떨어져 최근 이상 오름세가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18일 현재, 달러 가격은 지난달과 비교하면 여전히 약 1.6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참고로, 인민폐는 지난달과 비교해 약 1.5배 올랐다.

청진 곡물가격과 외환가격 동향

옥수수인민폐(1위안)달러(1달러)
2011/1/71,7507804402,625
2011/1/161,8508504753,510
2011/1/171,9808004703,300
2011/1/181,6007504302,795

■ 사회

김책제철소, 새해에도 10일치 옥수수만 배급

함경북도 청진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한 달 식량 배급이 여전히 10일치 분량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배급이 입쌀이 아니라 옥수수로 바뀐 지는 이미 여러 해 됐고, 1개월 분량에서 보름 분량으로, 다시 열흘 분량으로 계속 줄더니 이제는 10일 분량이 최대치로 굳어진 상황이다. 강철직장이나 단조직장처럼 배려를 많이 받는 직장들의 사정이 이 정도이고, 주강직장처럼 힘없는 직장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남들 보름치 나올 때 아예 건너뛰는 경우도 생긴다. 련합기업소 당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먹는 문제를 풀려고 성 기관과 여러 차례 토의했지만, 지금까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당에서는 주체철을 팔아 식량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그러나 해가 바뀐 지금도 식량문제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식량 배급이 잘 안 되면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소토지 농사를 짓거나 삯벌이 낙지잡이(오징어잡이) 등 다른 벌이를 찾아나서는 노동자가 는다. 기업소 측에서는 한 명이라도 아쉬운 판이라 결근자들을 어떻게든 찾아 나선다. 작년 12월 10일에는 이 문제로 보안서와 합동 비상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대책이라는 것이 결국 무단결근자들을 강제로 출근시키는 방법인데, 1개월 이상 무단결근자는 최소 3개월을 단련대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하고, 2개월 이상이면 6개월로 단련대 기한이 2배로 늘어난다. 한편, 공장 설비들이 도둑맞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5일에는 용접기 3대를 도난당했는데, 얼마 못 가 5명의 범인들이 붙잡혔다. 붙잡힌 이들은 김책제철소 노동자들로 “용접기를 해체하면 동으로 만들어진 변압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동 밀수업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돈으로 식량을 사먹었다”고 진술했다.

2010년 김책제철소 배급 실태

배급량식량비고
110일옥수수도토리를 섞어 먹음. 노동자 9명 아사
210일옥수수굶어죽는 노동자 생기자, 회령시에 옥수수 타진.

선철을 중국에 팔아 비료와 비닐박막을 받고, 이것을 회령시에 넘겨주고 대가로 옥수수를 받으려고 했음.

330일입쌀과 옥수수일부 주강직장 등 배급 안 됨.
415일 입쌀과 옥수수4.15태양절 맞이 특별배급,

강철직장 월급 9천원 지급

515일 옥수수강철, 단조직장 등 일부 직장에만 배급됨.

주강직장에서는 130명 중 출근자 75명에 불과. 식량문제로 결근자 속출

610일 옥수수식량배급 확보 방안이 미흡해 중앙 성 기관과 여러 차례 논의.

선철을 팔아 배급을 확보하라 지시.

옥수수 10일 분량 정도에서 가까스로 배급량을 맞추고 있음.

710일옥수수
810일옥수수
910일옥수수
1010일옥수수
1110일옥수수
1210일옥수수

함흥시 제일 용하다는 점쟁이에 보안원들도 벌벌

새해가 시작되자 주민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용한 점쟁이를 찾아나서는 현상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함흥시에서는 제일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가 작년 연말에 붙잡히는 바람에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하고 있다. 소문의 주인공은 성천강구역 신흥1동에 사는 김성희씨(43세)로, 작년 11월 29일에 미신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보안서에서는 가택수사를 벌여 점을 봐주는 책자를 압수했는데, 그 중에는 성경책도 포함돼 있어 정치적 성격을 띠었는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를 심문하는 보안원들이 그녀의 신기에 가까운 점술에 감탄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소문이다.

김성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신기가 있었는데,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무슨 이유로 찾아 왔는지 딱 알아 맞췄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9년 때, 헤어진 가족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생사를 말해주고, 어느 방향으로 가면 찾을 수 있다, 멀리 갔으니 당분간 만날 수 없다는 등 답변을 해주면서 인근에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무슨 장사를 해야 성공하느냐, 올해 (소토지) 농사를 얼마나 지어야 잘 될 것 같으냐 등 점점 생활문제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김씨가 알려준 대로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용하다는 얘기가 돌았고, 보안서에서도 보고를 받고 몇 차례 김씨를 불러 비판서를 쓰게 하기도 했지만 미신행위는 계속됐다. 김씨 자신이 특별한 생계벌이가 없기도 하지만, 고위간부들까지 김씨를 찾으면서 김씨의 방패막이 되어주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였다. 심지어 보안서에 붙잡혀 가서도, 보안원들의 관상을 봐주고 꿈풀이(해몽)를 해주어 그 자리에서 풀려난 적도 있다. 붙잡혔다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름만 더 날려 함흥시에서 용한 점쟁이로 소문이 자자해졌다. 그 뒤 도당 간부들과 보위부, 보안원들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근심 걱정이 생기면 김씨 집을 자주 출입하곤 했다.

소문이 크게 나면서 자연히 수입도 좋아졌다.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점을 보는데 현금 5만원씩 주기도 하고, 쌀을 몇 가마 들여 주기도 한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되는 만큼 1천원이든 5천원이든 주고, 다만 쌀 몇 kg라도 주고 가기도 한다. 정 줄 게 없는 사람들은 성의표시로 달걀 한 줄이라도 가지고 간다. 김씨가 잘 맞추기도 하지만, 이처럼 값을 딱히 정하지 않고 사람 형편에 따라 받기 때문에 평판이 좋다. 그러다 작년 말, 중앙당에서 “미신을 타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시당에서 눈치 보면서 머뭇거리자 도당 차원에서 검거 명령을 내렸다. 보안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는 7년 이상의 교화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를 담당하는 법관들이 괜히 잘 못 했다가 무슨 해를 당할지 모른다며, 그녀를 심문하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감옥에 보낼 지언정 군대에는 안 보내겠다”

강원도 원산시에서는 군대 간 지 7년 만에 새해를 맞아 첫 표창 휴가를 나온 군인을 보고, 너도나도 원통해했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휴가 나온 장병의 사연을 듣고는 “내 아들은 절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사연인즉, 표창 휴가를 나온 김석출(가명)씨는 앞뒤가 산으로 꽉 막힌 산골짜기에 배치된 뒤 7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수직갱에 들어가 탄 캐는 일만 했는데, 그동안 단 한 번의 외출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김씨의 얘기다.

“총을 잡아본 것은 신병 훈련 때뿐이고, 그 뒤로는 줄곧 곡괭이를 들었다. 지난 7년은 오직 낮과 밤을 새며 갱 안에서 일한 나날이었다. 일이 많은 날은 갱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갱 안에 마련된 휴게실 안에서 잠잘 때도 있었다. 수직갱이 너무 깊어 아침에 들어가면 도중에는 물론 저녁때까지 나올 수 없어 휴식을 주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똥오줌도 그 안에서 처리하고, 밥도 거기서 먹는다. 밥이라곤 이동 식사로 들어오는 옥수수밥과 염장 무가 전부였다. 갱 막장 안에 똥오줌이 섞인 질벅한 물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옥수수밥 한 덩이로 허기를 면한다. 막장 곳곳에 고인 물에 똥오줌이 섞여 있는 것을 그대로 첨벙첨벙 걷거나 털썩 주저앉다보니 자연히 살에는 독이 오른다. (실제 김씨의 발이며 다리며 엉덩이는 시꺼멓게 독이 올라, 사람 피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있었다.) 처음 독이 오를 때는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지만 별다른 치료도 못 받고 계속 똑같은 상황에 노출되다보니 나중에는 쩍쩍 갈라지고 터지다가 결국엔 시꺼멓게 죽어버린다. 명절날에는 돼지고기 2-3점 정도가 뜬 고깃국에 이밥이 나오기 때문에 그나마 유일하게 기다리는 시간이다.”

2007년에는 하도 폐병 환자들이 많아져서 퇴근할 때 일인당 소주를 반병씩 주었다고 한다. 자기 중대 인원이 80명인데 해마다 영양실조나 사고로 죽는 사람이 10여명 안팎이라고 했다. 김씨는 인간으로 생지옥과 같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며 다시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군인들의 후방 보장 사업은 전혀 없이 오로지 “결사옹위다 총폭탄정신이다 떠들고, ‘참된 혁명전사가 되자!’거나 ‘장군님 전사는 살아도 죽어도 영광!’등의 구호만 외치니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나온 게 다행이라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김씨의 처참한 몰골과 사연을 들은 이웃들은 “내 아들은 차라리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보냈으면 보냈지, 군대에는 보내지 않겠다”고 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