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오늘의 북한소식 395호

■ 시선집중

상급간부에게 바치는 선물이 더 부담돼

해외공관 일군들의 속앓이에는 본사 간부들에게 바치는 선물도 한 몫 한다. 해외에 상주하는 한 무역일군은 “국가로부터 희천발전소에 지원하라는 임무를 받은 것은 우리가 응당 해야 하는 과제이므로 별 불만이 없다. 그러나 평양에 있는 본사 간부들에게 몇 달에 한 번씩 많은 뢰물을 바치지 않으면 임기 중에 본사로 소환되거나 다른 압력을 받는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며 뇌물 마련이 더 부담이라고 했다. 이번 군량미 징수도 처음에는 자원이라더니 갑자기 강제성을 띠게 된 것이 중간에 어디에서 생긴 문제인지 의아하다고 했다. 한편 중앙당에서는 이번 군량미 징수를 책임진 각 해외공관의 총영사와 대사관급 일군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혹시 개인적인 이유로 강압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 처벌하도록 했고, 기타 국가 계획 이외에 부과된 품목들이 어떤 명목인지 다시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군량미 과제, 자발적으로 하라지만 강제적”

해외대표부 일군들과 무역일군들은 해외 생활의 어려움 중에 세외부담을 가장 많이 꼽았다. 말로는 자원해서 하라지만 사실은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평양의 한 간부는 “구라파에 무역을 나간 대표들은 현재 국가 과제를 수행하기도 힘든 처지다. 대표로 나간 지 1-2년도 안 된 사람들에게 계속 돈을 내라고 과제를 주니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중앙당에서 무조건 내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각 단위별, 부서별로 총화를 할 때 어디는 쌀을 몇 백 톤 구했는데, 어디는 몇 십 톤도 못 구했다고 보고되면 열악한 부서들의 상급간부들이 낯이 서겠나. 당연히 자기들 얼굴이 안서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을 닦달하는 거다. 누가 꼭 경쟁을 하려 해서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위에서 이런 분위기면 아래는 당연히 압박을 받는다.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 하다하다 끝이 없으니까 터지는 거다. 그러면 위에서도 좀 심했나 하면서 고삐를 늦추게 된다. 비서들이나 부장들이야 자기들끼리 호상(상호) 소통하니까 이런 것을 좀 완화시키자 이러는 것”이라고 이번 군량미 중단 지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외공관 하소연에 “군량미 모집 중단” 지시

지난 3월 1일자로 각국 해외공관에 군량미 모집 운동을 중단하라는 내각 지시문이 내려졌다. 지난달, 해외대표부 총화를 위해 평양에 모인 일부 대표들이 중앙당에 의견서를 제출한 결과다. 본국에서 내려지는 각종 세외부담에 대한 압박감이 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해외대표부의 한 간부에 따르면,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하라고 해 기존처럼 대충 성의 표시를 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당의 단순한 권고 차원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침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뒤에는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과와 실적을 보여주어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 본국의 상부단위에서 자발적으로 하라는 것은 말 뿐이고, “국가 생존이 걸린 중대한 정치적 임무”라며 충성심을 보이라 강요했기 때문이다. 각 부서, 단위마다 알게 모르게 경쟁이 붙으면서 상부단위에서 소속 단위 대표부들을 닦달했던 것이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이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경제수준도 천차만별인데, ‘해외’라는 이름만 들어가면 모두 외화벌이를 잘 하는 줄 착각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현지 국가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무역건수가 적은 해외대표부들의 고충이 컸다.

동유럽에 파견된 한 일군은 “해외에 나갈 때도 국가 재정이 어려워 맨 몸으로 나갔다. 현지 생활비는 먼저 나가서 자리 잡은 사람들한테서 조금씩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본국 지원은 바라지도 않은 채 알아서 무역 건수를 잡아서 국가에 상납금도 바치고, 상부 간부들에게 선물도 보내줄 수 있었다. 거기에 희천발전소 건설에 평양 10만 호 살림집 건설한다고 1년에 수차례씩 떨어지는 임무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집행해왔다. 이번에는 군량미를 자발적으로 헌납하라고 해서 일정액을 바쳤다. 그랬는데도 정치 임무라고 하면서 또 다시 바치라고 하니 이게 끝이 없다. 지금 여기도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 무역 건수 올릴만한 게 없다. 돈이 나올 데는 없는데 말로만 자원해서 하라고 하고는 계속 강박하니까 못 살 지경이다. 무역을 잘하는 일군들과 회사들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경제가 침체된 나라나 지방에 파견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장 자기들의 생활비도 부족하다. 냈는데도 다시 거두고 또 거두고 하니 이번에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이번 평양 총화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살펴보면, 2차 징수에 대한 의견이 가장 많았고, 현지 경제 형편이 어려운 실례를 들면서 개인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 어떤 이들은 각기 다른 명목으로 내려지는 과제와 품목들을 열거하기도 했는데, “1년 사이 세외부담 징수가 13차에 달해 도저히 못 살겠다”는 의견들도 제기됐다. 중앙당에서는 해외공관 일군들의 생활총화에서 나온 얘기들을 청취한 뒤 군량미 중단을 결정하고, 내각 지시문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장사 밑천까지 탈탈 털어 원성 자자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장사밑천까지 털어가는 바람에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수남구역 청남동 동사무소에서는 “군량미 원호사업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자”며 동당비서와 녀맹위원, 초급 일군들은 일인당 50-100kg 이상씩 내라고 했다. “애국자 마음을 안고 군량미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일군들은 “자기 자식이 군대에 나가 배곯으면 좋겠는가? 자식이 인민군대에 나가 있는 집들은 우선적으로 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전해도 원호 사업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강제로 거두기 시작했다. 수남시장에서 장사하는 올해 서른여덟살 김명숙씨는 “우리 큰 애는 8살 밖에 되지 않아 군대에 나가지 않았으니 원호미를 못 하겠다”고 했다. “시장에 나가 하루 종일 떨면서 장사를 해도 겨우 옥수수 1kg 정도나 사서 먹는 신세에 무슨 식량이 있어 바치겠는 가?”라고 야단했다. 일군들이 김씨에게 “아이가 어려서 군대에 못나가니 군량미를 못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상적으로 틀려먹었다”고 비난하자, 김씨는 “나도 장사가 잘 되고 식량이 여유가 있으면 응당 하겠는데 지금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초급 일군들이 “앞으로 나라가 부흥해지면 응당 배려해줄 것”이라고 큰 소리 치자, 김씨는 압박감에 못 이겨 다음 날 장사 밑천을 탈탈 털어서 5kg의 옥수수를 사서 바쳤다. “이 돈이면 우리 식구들은 열흘을 굶어야 한다”면서 젖먹이 애를 안고 울면서 주었다.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군량미가 사람 잡는다며 “잘 사는 사람들한테서 많이 걷고, 못 사는 사람들은 봐주어야 하지 않냐. 어머니당이 그런 배려도 없으면 어머니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한 마디씩 했다. 청진시 관개관리소 로동자들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조명순(가명)씨는 “배급도 안 주고 출근만 하라고 강요하면, 로동자들이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쌀을 바치겠는가. 하늘이 바뀌면 뭔가 좀 달라질까 했더니, 우리같이 힘없는 로동자들은 살길이 정녕 없는 게로 구나. 천지개벽이 바뀐다 한들 우리 백성들 살길이 따로 있겠는 가. 잘 먹고 사는 놈들은 나라 팔아먹어도 칭찬받으면서 잘나가고, 못 사는 우리들은 배곯으면서도 과제를 하나라도 못 내면 당장 제구실도 못하는 놈들이라고 욕만 먹는다. 우리가 이렇게 중국 개들보다 못사는 게 도대체 누구 탓이냐?”며 군량미 원호과제를 못했다고 질책하는 공장 일군들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군량미 60% 달성?”

지난 1월부터 대대적으로 거두었던 군량미 계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중앙당에는 애초에 계획했던 군량미 수량의 약 60%를 달성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중앙당의 한 간부는 “60% 달성했다고 보고는 올라갔지만, 그것의 절반밖에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량미 원호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극히 적었다는 말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군대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올해 1월부터 전국적인 군량미 지원 사업이 실시됐다. 농민들 역시 분배량을 대폭 덜어내야 했다. 농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농사가 그럭저럭 잘 된 농장에서는 최고 7-8개월의 분량을 배분해주었고, 보통 4-5개월 정도를 분배했다. 그런데 군량미 지원 재개로, 순식간에 2-3개월 분량이 날아가 버리게 된 것이다. 한 번 들어온 식량을 다시 내주기는 어려운 법이라 평안남도 강서군의 농장들에서는 농민들이 식량을 감추느라 분주했다. 식량을 땅에 파묻거나 멀리 내다파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농민들은 특별히 현금이 없기 때문에 얼마간 식량을 시장에 내다팔아 생필품을 구입하곤 했는데, 이번엔 무역일군들에게 대량으로 넘겨주는 일도 있었다. 군량미로 바치느니 돈으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심사였다. 도시 주민들에게는 돈이 없어 시장의 쌀이 그림의 떡이지만, 요즘 시장 매대 마다 쌀이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평양시, 구역마다 방랑자숙소 생겨

최근 들어 평양시에는 매 구역마다 방랑자숙소가 생기고 있다. 작년 말부터 꽃제비와 노인, 방랑자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시당에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숙소이다. 지방에 마련된 방랑자숙소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평양시라고 해도 전기부족에 식량난을 겪고 있어 환경이 열악하다. 3월 초, 선교구역에서는 한 치매 노인이 산보하러 밖에 나갔다가 5일 동안 실종된 일이 있었다. 가족들이 사방에 수소문해 찾아다니다가 혹시나 해서 방랑자숙소에 갔다가 발견하고는 집에 데려갔다. 3월이라 날씨가 좀 풀렸지만 밤이 되면 아직 쌀쌀한데 몸이 성치 못한 노인이 얼마나 춥게 지냈는지,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심하게 떨었다. 집에서 물을 펄펄 끓여 몸을 덥혀주었지만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족들은 방랑자숙소가 당의 배려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실제 제공되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아버지를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슬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도, 방랑자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방랑자숙소를 늘여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평양도 배급 없어진 거 아닌가?”

올해 1월 1일부터 3월 15일 현재까지 평양 주민들에게 배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평양 시민들 사이에는 “평양도 배급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물론 중앙당과 시당 간부들은 중앙당 공급소에서 나오는 배급들을 받고 있지만, 구역당 간부들만 해도 가족들 몫의 배급은 받지 못하고 있다. “뒤에서 얻어먹지 않으면 살기 바쁘게 됐다”는 것이 요즘 구역당 간부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니 일반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식량 배급을 꿈도 못 꾼다. 공장들도 외화벌이가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일반 공장들은 자체 식량벌이가 쉽지 않은 상태다. 당에서는 “식량 해결을 자체로 할 데 대한” 지시를 연이어 내리고 있다. 평양 시장에서는 3월 초만 해도, 쌀이 kg당 1,600원에 거래되다가 20일 현재 2,000원으로 올랐다. 매대 마다 식량은 눈에 보이는데, 일반 주민들은 수중에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평양시에서는 굶어죽었다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지만, 생활비를 스스로 벌지 못하는 노인들이 굶어죽는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명절은 유례없이 썰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방은 차치하고라도, 평양 시민들마저 식량 공급을 받지 못했다. 겨우 명절공급이라고 받은 것이 세대당 수산물 200g 정도에 불과했는데 명태 1마리, 청어 1마리 정도였다. 4인 가족은 수산물 800g이 공급됐는데, 명태 2마리에 청어 1마리가 공급됐다. 평양의 중간간부들조차 이렇게 빈약한 명절 공급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올해 식량난, 목숨 걸고 장군님께 보고 드려야”

“2011년은 기생이 호미 들고 밭일을 하는 해이며, 쥐가 먹을 것이 없어 돌을 깎아 먹는 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 3월 현재 전국적으로 아사자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주로 도시 빈민층과 노약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올 겨울을 어렵게 버텨낸 농민들이라고 해도, 식량이 떨어지는 춘궁기가 되면 여느 해처럼 고난의 시기를 보낼 전망이다. 군량미를 거두지 않겠다고 한 뒤 다시 걷는 바람에 분배량이 춘궁기를 넘기지 못할 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평양에서 각계 경제 분야 성원들이 모여 긴급회의가 열렸다. 1월에 전국 각지에 실시했던 식량난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열린 회의였다. 이 자리에는 경제학자와 경제 일군, 무역 일군 등이 참석했다. 당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현 상황을 개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관해 답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당의 지시를 따르겠다, 당이 결심하면 그대로 목숨 걸고 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숱하게 쏟아졌지만, 뾰족한 방안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 특별한 정책 제안이 나오지 않자, 내각에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 및 투자 유치에 전력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회의는 별 성과 없이 끝이 났다. 그런데 회의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참가자들이 돌아가서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물으면 어떡하나? 우리보다 자기들이 더 잘 알지 않으냐?”고 한 마디씩 했다는 후문이다. 한 경제학자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또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 누가 아는가? 좋은 방안이 있어도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대로는 정말 위험하다. 이 상황을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장군님께 보고 드려야 하는데 아직 용기가 없다”고 어려움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 식량소식

“올해 식량난, 목숨 걸고 장군님께 보고 드려야”

“2011년은 기생이 호미 들고 밭일을 하는 해이며, 쥐가 먹을 것이 없어 돌을 깎아 먹는 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다. 3월 현재 전국적으로 아사자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주로 도시 빈민층과 노약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올 겨울을 어렵게 버텨낸 농민들이라고 해도, 식량이 떨어지는 춘궁기가 되면 여느 해처럼 고난의 시기를 보낼 전망이다. 군량미를 거두지 않겠다고 한 뒤 다시 걷는 바람에 분배량이 춘궁기를 넘기지 못할 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평양에서 각계 경제 분야 성원들이 모여 긴급회의가 열렸다. 1월에 전국 각지에 실시했던 식량난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열린 회의였다. 이 자리에는 경제학자와 경제 일군, 무역 일군 등이 참석했다. 당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현 상황을 개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관해 답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당의 지시를 따르겠다, 당이 결심하면 그대로 목숨 걸고 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숱하게 쏟아졌지만, 뾰족한 방안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 특별한 정책 제안이 나오지 않자, 내각에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 및 투자 유치에 전력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회의는 별 성과 없이 끝이 났다. 그런데 회의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참가자들이 돌아가서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물으면 어떡하나? 우리보다 자기들이 더 잘 알지 않으냐?”고 한 마디씩 했다는 후문이다. 한 경제학자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또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 누가 아는가? 좋은 방안이 있어도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대로는 정말 위험하다. 이 상황을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장군님께 보고 드려야 하는데 아직 용기가 없다”고 어려움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평양도 배급 없어진 거 아닌가?”

올해 1월 1일부터 3월 15일 현재까지 평양 주민들에게 배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평양 시민들 사이에는 “평양도 배급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물론 중앙당과 시당 간부들은 중앙당 공급소에서 나오는 배급들을 받고 있지만, 구역당 간부들만 해도 가족들 몫의 배급은 받지 못하고 있다. “뒤에서 얻어먹지 않으면 살기 바쁘게 됐다”는 것이 요즘 구역당 간부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니 일반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식량 배급을 꿈도 못 꾼다. 공장들도 외화벌이가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일반 공장들은 자체 식량벌이가 쉽지 않은 상태다. 당에서는 “식량 해결을 자체로 할 데 대한” 지시를 연이어 내리고 있다. 평양 시장에서는 3월 초만 해도, 쌀이 kg당 1,600원에 거래되다가 20일 현재 2,000원으로 올랐다. 매대 마다 식량은 눈에 보이는데, 일반 주민들은 수중에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평양시에서는 굶어죽었다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지만, 생활비를 스스로 벌지 못하는 노인들이 굶어죽는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명절은 유례없이 썰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방은 차치하고라도, 평양 시민들마저 식량 공급을 받지 못했다. 겨우 명절공급이라고 받은 것이 세대당 수산물 200g 정도에 불과했는데 명태 1마리, 청어 1마리 정도였다. 4인 가족은 수산물 800g이 공급됐는데, 명태 2마리에 청어 1마리가 공급됐다. 평양의 중간간부들조차 이렇게 빈약한 명절 공급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군량미 60% 달성?”

지난 1월부터 대대적으로 거두었던 군량미 계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중앙당에는 애초에 계획했던 군량미 수량의 약 60%를 달성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중앙당의 한 간부는 “60% 달성했다고 보고는 올라갔지만, 그것의 절반밖에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량미 원호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극히 적었다는 말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군대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올해 1월부터 전국적인 군량미 지원 사업이 실시됐다. 농민들 역시 분배량을 대폭 덜어내야 했다. 농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농사가 그럭저럭 잘 된 농장에서는 최고 7-8개월의 분량을 배분해주었고, 보통 4-5개월 정도를 분배했다. 그런데 군량미 지원 재개로, 순식간에 2-3개월 분량이 날아가 버리게 된 것이다. 한 번 들어온 식량을 다시 내주기는 어려운 법이라 평안남도 강서군의 농장들에서는 농민들이 식량을 감추느라 분주했다. 식량을 땅에 파묻거나 멀리 내다파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농민들은 특별히 현금이 없기 때문에 얼마간 식량을 시장에 내다팔아 생필품을 구입하곤 했는데, 이번엔 무역일군들에게 대량으로 넘겨주는 일도 있었다. 군량미로 바치느니 돈으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심사였다. 도시 주민들에게는 돈이 없어 시장의 쌀이 그림의 떡이지만, 요즘 시장 매대 마다 쌀이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 사회

평양시, 구역마다 방랑자숙소 생겨

최근 들어 평양시에는 매 구역마다 방랑자숙소가 생기고 있다. 작년 말부터 꽃제비와 노인, 방랑자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시당에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숙소이다. 지방에 마련된 방랑자숙소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평양시라고 해도 전기부족에 식량난을 겪고 있어 환경이 열악하다. 3월 초, 선교구역에서는 한 치매 노인이 산보하러 밖에 나갔다가 5일 동안 실종된 일이 있었다. 가족들이 사방에 수소문해 찾아다니다가 혹시나 해서 방랑자숙소에 갔다가 발견하고는 집에 데려갔다. 3월이라 날씨가 좀 풀렸지만 밤이 되면 아직 쌀쌀한데 몸이 성치 못한 노인이 얼마나 춥게 지냈는지,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심하게 떨었다. 집에서 물을 펄펄 끓여 몸을 덥혀주었지만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가족들은 방랑자숙소가 당의 배려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실제 제공되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아버지를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슬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도, 방랑자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방랑자숙소를 늘여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상급간부에게 바치는 선물이 더 부담돼

해외공관 일군들의 속앓이에는 본사 간부들에게 바치는 선물도 한 몫 한다. 해외에 상주하는 한 무역일군은 “국가로부터 희천발전소에 지원하라는 임무를 받은 것은 우리가 응당 해야 하는 과제이므로 별 불만이 없다. 그러나 평양에 있는 본사 간부들에게 몇 달에 한 번씩 많은 뢰물을 바치지 않으면 임기 중에 본사로 소환되거나 다른 압력을 받는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며 뇌물 마련이 더 부담이라고 했다. 이번 군량미 징수도 처음에는 자원이라더니 갑자기 강제성을 띠게 된 것이 중간에 어디에서 생긴 문제인지 의아하다고 했다. 한편 중앙당에서는 이번 군량미 징수를 책임진 각 해외공관의 총영사와 대사관급 일군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혹시 개인적인 이유로 강압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 처벌하도록 했고, 기타 국가 계획 이외에 부과된 품목들이 어떤 명목인지 다시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 정치생활

장사 밑천까지 탈탈 털어 원성 자자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장사밑천까지 털어가는 바람에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수남구역 청남동

동사무소에서는 “군량미 원호사업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자”며 동당비서와 녀맹위원, 초급 일군들은 일인당 50-100kg 이상씩 내라고 했다. “애국자 마음을 안고 군량미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일군들은 “자기 자식이 군대에 나가 배곯으면 좋겠는가? 자식이 인민군대에 나가 있는 집들은 우선적으로 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전해도 원호 사업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강제로 거두기 시작했다. 수남시장에서 장사하는 올해 서른여덟살 김명숙씨는 “우리 큰 애는 8살 밖에 되지 않아 군대에 나가지 않았으니 원호미를 못 하겠다”고 했다. “시장에 나가 하루 종일 떨면서 장사를 해도 겨우 옥수수 1kg 정도나 사서 먹는 신세에 무슨 식량이 있어 바치겠는 가?”라고 야단했다. 일군들이 김씨에게 “아이가 어려서 군대에 못나가니 군량미를 못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상적으로 틀려먹었다”고 비난하자, 김씨는 “나도 장사가 잘 되고 식량이 여유가 있으면 응당 하겠는데 지금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초급 일군들이 “앞으로 나라가 부흥해지면 응당 배려해줄 것”이라고 큰 소리 치자, 김씨는 압박감에 못 이겨 다음 날 장사 밑천을 탈탈 털어서 5kg의 옥수수를 사서 바쳤다. “이 돈이면 우리 식구들은 열흘을 굶어야 한다”면서 젖먹이 애를 안고 울면서 주었다. 이를 지켜본 주민들은 군량미가 사람 잡는다며 “잘 사는 사람들한테서 많이 걷고, 못 사는 사람들은 봐주어야 하지 않냐. 어머니당이 그런 배려도 없으면 어머니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한 마디씩 했다.

청진시 관개관리소 로동자들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조명순(가명)씨는 “배급도 안 주고 출근만 하라고 강요하면, 로동자들이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쌀을 바치겠는가. 하늘이 바뀌면 뭔가 좀 달라질까 했더니, 우리같이 힘없는 로동자들은 살길이 정녕 없는 게로 구나. 천지개벽이 바뀐다 한들 우리 백성들 살길이 따로 있겠는 가. 잘 먹고 사는 놈들은 나라 팔아먹어도 칭찬받으면서 잘나가고, 못 사는 우리들은 배곯으면서도 과제를 하나라도 못 내면 당장 제구실도 못하는 놈들이라고 욕만 먹는다. 우리가 이렇게 중국 개들보다 못사는 게 도대체 누구 탓이냐?”며 군량미 원호과제를 못했다고 질책하는 공장 일군들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해외공관 하소연에 “군량미 모집 중단” 지시

지난 3월 1일자로 각국 해외공관에 군량미 모집 운동을 중단하라는 내각 지시문이 내려졌다. 지난달, 해외대표부 총화를 위해 평양에 모인 일부 대표들이 중앙당에 의견서를 제출한 결과다. 본국에서 내려지는 각종 세외부담에 대한 압박감이 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해외대표부의 한 간부에 따르면,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하라고 해 기존처럼 대충 성의 표시를 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당의 단순한 권고 차원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침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뒤에는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과와 실적을 보여주어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 본국의 상부단위에서 자발적으로 하라는 것은 말 뿐이고, “국가 생존이 걸린 중대한 정치적 임무”라며 충성심을 보이라 강요했기 때문이다. 각 부서, 단위마다 알게 모르게 경쟁이 붙으면서 상부단위에서 소속 단위 대표부들을 닦달했던 것이다. 해외대표부 일군들이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경제수준도 천차만별인데, ‘해외’라는 이름만 들어가면 모두 외화벌이를 잘 하는 줄 착각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현지 국가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무역건수가 적은 해외대표부들의 고충이 컸다.

동유럽에 파견된 한 일군은 “해외에 나갈 때도 국가 재정이 어려워 맨 몸으로 나갔다. 현지 생활비는 먼저 나가서 자리 잡은 사람들한테서 조금씩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본국 지원은 바라지도 않은 채 알아서 무역 건수를 잡아서 국가에 상납금도 바치고, 상부 간부들에게 선물도 보내줄 수 있었다. 거기에 희천발전소 건설에 평양 10만 호 살림집 건설한다고 1년에 수차례씩 떨어지는 임무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집행해왔다. 이번에는 군량미를 자발적으로 헌납하라고 해서 일정액을 바쳤다. 그랬는데도 정치 임무라고 하면서 또 다시 바치라고 하니 이게 끝이 없다. 지금 여기도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 무역 건수 올릴만한 게 없다. 돈이 나올 데는 없는데 말로만 자원해서 하라고 하고는 계속 강박하니까 못 살 지경이다. 무역을 잘하는 일군들과 회사들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경제가 침체된 나라나 지방에 파견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장 자기들의 생활비도 부족하다. 냈는데도 다시 거두고 또 거두고 하니 이번에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이번 평양 총화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살펴보면, 2차 징수에 대한 의견이 가장 많았고, 현지 경제 형편이 어려운 실례를 들면서 개인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 어떤 이들은 각기 다른 명목으로 내려지는 과제와 품목들을 열거하기도 했는데, “1년 사이 세외부담 징수가 13차에 달해 도저히 못 살겠다”는 의견들도 제기됐다. 중앙당에서는 해외공관 일군들의 생활총화에서 나온 얘기들을 청취한 뒤 군량미 중단을 결정하고, 내각 지시문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군량미 과제, 자발적으로 하라지만 강제적

해외대표부 일군들과 무역일군들은 해외 생활의 어려움 중에 세외부담을 가장 많이 꼽았다. 말로는 자원해서 하라지만 사실은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평양의 한 간부는 “구라파에 무역을 나간 대표들은 현재 국가 과제를 수행하기도 힘든 처지다. 대표로 나간 지 1-2년도 안 된 사람들에게 계속 돈을 내라고 과제를 주니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중앙당에서 무조건 내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각 단위별, 부서별로 총화를 할 때 어디는 쌀을 몇 백 톤 구했는데, 어디는 몇 십 톤도 못 구했다고 보고되면 열악한 부서들의 상급간부들이 낯이 서겠나. 당연히 자기들 얼굴이 안서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을 닦달하는 거다. 누가 꼭 경쟁을 하려 해서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위에서 이런 분위기면 아래는 당연히 압박을 받는다.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 하다하다 끝이 없으니까 터지는 거다. 그러면 위에서도 좀 심했나 하면서 고삐를 늦추게 된다. 비서들이나 부장들이야 자기들끼리 호상(상호) 소통하니까 이런 것을 좀 완화시키자 이러는 것”이라고 이번 군량미 중단 지시의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