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평양 주민들도 하루 1-2끼만

평양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마다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구매력이 떨어져, 시장에 쌀이 나와도 사가는 사람들이 없다. 국경연선지역에서는 각 세관을 통해 식량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평양을 비롯한 내륙지역에서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급 기업소를 비롯한 힘 있는 단위와 직장들, 군대 중에서도 특수부대 등에 우선 공급되고 있어서다. 일반 주민들에게 돌아갈 식량이 없어, 평성시와 같은 큰 도시들은 하루 2끼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평양시조차 하루 한두 끼로 연명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작년부터 배급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통에 그 전에 비축해두었던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늘고 있어서다. 아무리 형편이 안 좋은 세대라도 평양에서는 최소 6개월 식량은 비축해두는 것이 보통인데, 그마저 떨어질 정도로 평양시의 식량 배급 사정이 악화되었다. 올해 9월까지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해결하라는 지시도 이미 내려진 바 있어, 평양 주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도 나온다.

평양 대동강구역에 사는 한정선(가명)씨는 시장에서 중고옷 장사를 하며 제법 잘 살았다고 한다. 화폐 개혁 전에는 하루 번 돈으로 쌀과 물고기, 돼지고기 등을 다만 1kg씩이라도 매일 사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내라는 돈에 녀맹, 세대주의 직장 등에서 거둬가는 각종 사회 과제들을 다 내고도 이런 부식물들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제 수행도 못하고, 먹는 수준도 완전히 떨어졌다. 매일 먹던 돼지고기는 이제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 명절에도 고기 1kg 사먹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도 한씨는 5대5밥이라도 먹으니 사정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자기 인민반에는 장사 밑천을 다 날려 하루 한 두끼 먹는 것을 이마저 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흥1동에 사는 김혜란씨 가족들은 작년 가을부터 하루 두 끼만 먹고 살고 있다. 식량을 아끼느라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에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김씨는 대동강구역 시장에서 중국산 식품을 팔고 있는데, 장사가 잘 안 돼 4.15 명절 때 애들 사탕 한 알도 못 사 먹였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명절 때가 되면 쌀밥에 두부 국에 돼지고기와 계란 반찬 등을 먹었지만, 이제는 엄두를 못 낸다. 김씨는 “당에서도 배려가 많이 없어졌다. 올해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탄생 99돐을 맞는 4월 15일 명절에도, 중심구역 사람들에게만 세대 당 500g 과자 1봉지와 사탕 1봉지를 주고, 주변 구역에는 일체 배급이 없었다”고 했다. 평양시 주변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는 수도 시민도 아니다. 중심구역이나 주변구역이나 평양은 매한 가지인데, 어째 중심구역만 명절 공급을 주는 가”라고 의견들이 많았다. 현재 평양시에서 생활수준이 제일 낮은 구역은 선교구역, 대상구역, 동대원구역, 력포구역 등이다. 력포구역의 구역당 간부는 “실태 조사하러 집에 들어가 보면, 온 식구가 죽을 떠놓고 부식물도 아무 것도 없이 간장 하나 놓고 먹고 사는 집들이 많다. 죽이라도 배불리 먹어 보면 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영양상태가 나쁘니 각종 병들로 고생하거나 죽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앓아 죽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도인 평양시도 이런데, 다른 지방은 말 할 것이 없이 어렵지 않겠나”고 말했다. 평양 시당의 한 간부는 “현재 평양시에서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하루 세 끼를 꼭꼭 챙겨 먹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식량 걱정 없을 것 같던 함주군도 춘궁기 불안

함주군은 함경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이 지역은 작년 수해 피해에도 식량 분배량이 기본 6개월 이상이었다. 많게는 7-8개월까지 받은 농민도 있었다. 그러나 함주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한 일군은 춘궁기 불안정한 식량 상황은 함주군도 마찬가지라며 우려했다. 벌써 몇몇 협동농장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출근을 못하는 농민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식량 분배를 6개월 치 받았다고 해도, 생필품 구입에 아이들 교육비 등을 해결하려면 식량을 교환해야 한다. 물물 교환하는 식량이 많다보니 실제 먹는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농장 일군은 “작년 가을(추수) 끝나고 예상보다 많이 분배 받아서 올해는 춘궁기 걱정을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작년 봄에 꾸어 먹은 빚을 갚느라 일찌감치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많다”며 고리대 형식으로 빌린 식량을 갚아야 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5월 단오 전에 나오는 풀은 독이 없기 때문에 아무거나 캐 먹어도 된다”는 속설대로, 현재 함주군의 농민들도 각종 산나물과 풀을 뜯어 식량에 보충해 먹고 있다.

은덕군‘7월7일 공장’군수직장도 배급 없어

함경북도 은덕군 ‘7월7일 공장’의 군수 직장에서 식량 배급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생산 공정은 오래전에 중단되다시피 했지만, 군수직장만큼은 원료를 최우선 공급해 생산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에서 받기로 한 원료가 들어오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배급과 생활비도 끊겼다. 죽물로 버텨오다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공장 당위원회에서는 아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소토지 농사를 지으라고 할 뿐이다. 공장 노동자인 리명근(가명)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출근을 못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희천발전소다 어랑천발전소다 하면서 과제를 내라고 야단이다. 국가 건설장 지원에 자발적으로 나서라고 하는데, 우리가 거기 줄 돈이 어디 있느냐. 그 돈이면 내 새끼 입에 옥수수라도 몇 알 더 넣어주고 싶지. 다른 공장 지배인들은 중국에 나가서 투자도 끌어오고, 밀가루도 들여오고 그런다는데, 우리는 군수직장인데도 파리 날리는 신세니 우리 공장 일군들은 정말로 한심하다”며 무능력을 질타했다. 은덕군에서도 중국 돈을 갖고 있거나, 탈북한 가족이 있거나, 혹은 소토지 농사를 500평 넘게 짓는 사람들은 먹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저 산나물이나 풀을 채취하러 다닐 수밖에 없다. 또 다시 고통스러운 춘궁기를 버텨야 하는 것이다.

청진, 장사 못하는 집에서 굶어죽어

함경북도 청진 시당에서 올린 주민 생활 실태 보고서에서 송평구역 송향동 김석태(가명)씨 둘째 아이가 굶어죽었다고 했다. 김씨네 가족은 작년 11월부터 식량 고생이 심해 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끼니를 때워 왔다. 풀범벅을 밥이라고 먹고, 된장이 없어서 소금국을 유일한 부식물로 먹었다. 풀범벅에 옥수수 낟알을 갈아서 섞었는데, 어른들도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운 음식을 아이들이 소화하기는 더 어렵다. 이번에 죽은 둘째 아이는 작년에 소학교에 입학했는데, 영양실조가 심해지면서 작년 가을부터 집에서 골골 앓아왔다. 또 수남구역 추목동에서는 꽃제비 가족 중에 세대주 김영철(가명)씨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김씨는 원래 김책제철소 노동자였으나, 오랫동안 배급이 없이 아내의 장사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그간 벌어들였던 돈이 모두 종잇장이 되면서 생활이 급격히 하락했다. 장사 밑천을 구하지 못해 살림도구를 내다팔았다. 어떻게든 장사를 다시 회복해보려고, 무리하게 빚을 끌어당긴 것이 불행을 자초했다. 시장에 아무리 좋은 물건을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다. 구매력이 떨어진 주민들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좀처럼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빚으로 구매한 물건을 팔지 못하면서 빚은 더 늘어만 갔다. 결국 빚쟁이들에게 집까지 빼앗기고 3식구가 길거리로 나앉고 말았다. 4월 중순까지도 김씨가 아내와 함께 수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걸해 먹고 살았는데, 얼마 못 버티고 역에서 굶어죽었다. 김씨의 아내와 아들은 역 일군들이 김씨의 사체를 실어내가는 것을 울면서 지켜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진 시당의 한 간부는 “우리 시에서는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긴다. 꽃제비를 오래하다 죽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람(김영철씨)네처럼 작년에 갑자기 생활이 급락해서 어렵게 버티다가 올 봄을 못 넘기는 집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노동자들이 많이 죽는데, 대개 보면 장사로 먹고 살아왔던 집들이다. 그러다가 화폐개혁으로 장사 밑천까지 다 날리면서 살 방법이 없어 고생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평양 손녀딸 찾아간 할아버지는 살고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 사포1동에 사는 최영호(가명) 노인은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 굶주리다 못해 살 길을 찾아 평양 손녀딸에게 건너왔다. 최씨 할아버지는 아내 김씨와 슬하에 6형제를 두었다. 자식들 대부분이 함흥시에 거주하지만, 다들 하루 한 끼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라, 그 중에서 가장 살림이 나을 것 같은 손녀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아내 김씨는 “어린 손녀에게 두 늙은이가 체면도 없이 어떻게 찾아가느냐. 자식을 여섯이나 낳아서 힘들게 키웠는데 자식 덕을 못 보고, 손녀한테 염치불문하고 얹혀살 수는 없다. 내 입 하나라도 덜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영감만 거두어 주어도 감사한 일”이라며 함흥에 혼자 남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평양으로 떠난 지 20일도 안 돼 작은 아들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뒤늦게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다 늙어서 그래도 좀 더 살아보겠다고, 체면 안 차리고 온 게 잘못이었다. 나도 안해(아내) 옆에서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 혼자 떠나보내고 말았다. 손녀에게도 미안하고, 안해에게도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할아버지의 눈물에 손녀와 손녀사위는 물론이고 이웃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이웃에 사는 동순천(가명)씨는 “이 모든 것이 나라 식량 사정이 어렵고 주민들이 장사를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데서 생긴 일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부모를 거두고 싶어도 못 모시는 자식들이 많다. 저 집도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데, 그 중 한 자식이라도 제 부모를 모실 수 있었으면 이렇게 떨어져 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세월이 불효자를 만든다”고 한탄했다.

중앙당, “춘궁기 아사자 소식 들린다”

중앙당에는 지난 4월부터,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일부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가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춘궁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식량 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까봐 우리 정부에서는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무역 일군들을 중국에 대량으로 내보내려고 했고, 지금도 내보내고 있지만 크게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최하층 주민들이 아사하는 것을 끝내 막지 못하고 함경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왔지만, 함경도에서 아사자수가 제일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노동자가 많이 집중되어 있는 청진과 함흥에서 아사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루를 겨우 1-2끼 죽으로 해결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사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중앙당의 인식이다. 중앙당에서는 아사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중국에서 옥수수와 밀가루 등 수입량을 계속 늘이고 있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크지 않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지금은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외부에서 대량의 식량이 들어오기만을 바란다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 순 무역으로만 중국에서 식량을 들여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외부 원조가 없으면 이 난국을 타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 식량소식

평양 주민들도 하루 1-2끼만

평양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마다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구매력이 떨어져, 시장에 쌀이 나와도 사가는 사람들이 없다. 국경연선지역에서는 각 세관을 통해 식량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평양을 비롯한 내륙지역에서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급 기업소를 비롯한 힘 있는 단위와 직장들, 군대 중에서도 특수부대 등에 우선 공급되고 있어서다. 일반 주민들에게 돌아갈 식량이 없어, 평성시와 같은 큰 도시들은 하루 2끼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평양시조차 하루 한두 끼로 연명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작년부터 배급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통에 그 전에 비축해두었던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늘고 있어서다. 아무리 형편이 안 좋은 세대라도 평양에서는 최소 6개월 식량은 비축해두는 것이 보통인데, 그마저 떨어질 정도로 평양시의 식량 배급 사정이 악화되었다. 올해 9월까지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해결하라는 지시도 이미 내려진 바 있어, 평양 주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도 나온다.

평양 대동강구역에 사는 한정선(가명)씨는 시장에서 중고옷 장사를 하며 제법 잘 살았다고 한다. 화폐 개혁 전에는 하루 번 돈으로 쌀과 물고기, 돼지고기 등을 다만 1kg씩이라도 매일 사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내라는 돈에 녀맹, 세대주의 직장 등에서 거둬가는 각종 사회 과제들을 다 내고도 이런 부식물들을 사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제 수행도 못하고, 먹는 수준도 완전히 떨어졌다. 매일 먹던 돼지고기는 이제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 명절에도 고기 1kg 사먹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도 한씨는 5대5밥이라도 먹으니 사정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자기 인민반에는 장사 밑천을 다 날려 하루 한 두끼 먹는 것을 이마저 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흥1동에 사는 김혜란씨 가족들은 작년 가을부터 하루 두 끼만 먹고 살고 있다. 식량을 아끼느라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에는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김씨는 대동강구역 시장에서 중국산 식품을 팔고 있는데, 장사가 잘 안 돼 4.15 명절 때 애들 사탕 한 알도 못 사 먹였다고 한다. 재작년에는 명절 때가 되면 쌀밥에 두부 국에 돼지고기와 계란 반찬 등을 먹었지만, 이제는 엄두를 못 낸다. 김씨는 “당에서도 배려가 많이 없어졌다. 올해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탄생 99돐을 맞는 4월 15일 명절에도, 중심구역 사람들에게만 세대 당 500g 과자 1봉지와 사탕 1봉지를 주고, 주변 구역에는 일체 배급이 없었다”고 했다. 평양시 주변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는 수도 시민도 아니다. 중심구역이나 주변구역이나 평양은 매한 가지인데, 어째 중심구역만 명절 공급을 주는 가”라고 의견들이 많았다. 현재 평양시에서 생활수준이 제일 낮은 구역은 선교구역, 대상구역, 동대원구역, 력포구역 등이다. 력포구역의 구역당 간부는 “실태 조사하러 집에 들어가 보면, 온 식구가 죽을 떠놓고 부식물도 아무 것도 없이 간장 하나 놓고 먹고 사는 집들이 많다. 죽이라도 배불리 먹어 보면 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영양상태가 나쁘니 각종 병들로 고생하거나 죽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앓아 죽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도인 평양시도 이런데, 다른 지방은 말 할 것이 없이 어렵지 않겠나”고 말했다. 평양 시당의 한 간부는 “현재 평양시에서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하루 세 끼를 꼭꼭 챙겨 먹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식량 걱정 없을 것 같던 함주군도 춘궁기 불안

함주군은 함경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이 지역은 작년 수해 피해에도 식량 분배량이 기본 6개월 이상이었다. 많게는 7-8개월까지 받은 농민도 있었다. 그러나 함주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한 일군은 춘궁기 불안정한 식량 상황은 함주군도 마찬가지라며 우려했다. 벌써 몇몇 협동농장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출근을 못하는 농민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식량 분배를 6개월 치 받았다고 해도, 생필품 구입에 아이들 교육비 등을 해결하려면 식량을 교환해야 한다. 물물 교환하는 식량이 많다보니 실제 먹는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농장 일군은 “작년 가을(추수) 끝나고 예상보다 많이 분배 받아서 올해는 춘궁기 걱정을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작년 봄에 꾸어 먹은 빚을 갚느라 일찌감치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많다”며 고리대 형식으로 빌린 식량을 갚아야 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5월 단오 전에 나오는 풀은 독이 없기 때문에 아무거나 캐 먹어도 된다”는 속설대로, 현재 함주군의 농민들도 각종 산나물과 풀을 뜯어 식량에 보충해 먹고 있다.

청진, 장사 못하는 집에서 굶어죽어

함경북도 청진 시당에서 올린 주민 생활 실태 보고서에서 송평구역 송향동 김석태(가명)씨 둘째 아이가 굶어죽었다고 했다. 김씨네 가족은 작년 11월부터 식량 고생이 심해 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끼니를 때워 왔다. 풀범벅을 밥이라고 먹고, 된장이 없어서 소금국을 유일한 부식물로 먹었다. 풀범벅에 옥수수 낟알을 갈아서 섞었는데, 어른들도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운 음식을 아이들이 소화하기는 더 어렵다. 이번에 죽은 둘째 아이는 작년에 소학교에 입학했는데, 영양실조가 심해지면서 작년 가을부터 집에서 골골 앓아왔다.

또 수남구역 추목동에서는 꽃제비 가족 중에 세대주 김영철(가명)씨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김씨는 원래 김책제철소 노동자였으나, 오랫동안 배급이 없이 아내의 장사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그간 벌어들였던 돈이 모두 종잇장이 되면서 생활이 급격히 하락했다. 장사 밑천을 구하지 못해 살림도구를 내다팔았다. 어떻게든 장사를 다시 회복해보려고, 무리하게 빚을 끌어당긴 것이 불행을 자초했다. 시장에 아무리 좋은 물건을 싸게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다. 구매력이 떨어진 주민들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좀처럼 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빚으로 구매한 물건을 팔지 못하면서 빚은 더 늘어만 갔다. 결국 빚쟁이들에게 집까지 빼앗기고 3식구가 길거리로 나앉고 말았다. 4월 중순까지도 김씨가 아내와 함께 수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걸해 먹고 살았는데, 얼마 못 버티고 역에서 굶어죽었다. 김씨의 아내와 아들은 역 일군들이 김씨의 사체를 실어내가는 것을 울면서 지켜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진 시당의 한 간부는 “우리 시에서는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긴다. 꽃제비를 오래하다 죽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람(김영철씨)네처럼 작년에 갑자기 생활이 급락해서 어렵게 버티다가 올 봄을 못 넘기는 집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노동자들이 많이 죽는데, 대개 보면 장사로 먹고 살아왔던 집들이다. 그러다가 화폐개혁으로 장사 밑천까지 다 날리면서 살 방법이 없어 고생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중앙당, “춘궁기 아사자 소식 들린다”

중앙당에는 지난 4월부터,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일부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가고 있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춘궁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식량 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까봐 우리 정부에서는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무역 일군들을 중국에 대량으로 내보내려고 했고, 지금도 내보내고 있지만 크게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최하층 주민들이 아사하는 것을 끝내 막지 못하고 함경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왔지만, 함경도에서 아사자수가 제일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노동자가 많이 집중되어 있는 청진과 함흥에서 아사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루를 겨우 1-2끼 죽으로 해결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사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중앙당의 인식이다. 중앙당에서는 아사 현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중국에서 옥수수와 밀가루 등 수입량을 계속 늘이고 있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크지 않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지금은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외부에서 대량의 식량이 들어오기만을 바란다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 순 무역으로만 중국에서 식량을 들여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외부 원조가 없으면 이 난국을 타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 경제활동

은덕군 ‘7월7일 공장’ 군수직장도 배급 없어

함경북도 은덕군 ‘7월7일 공장’의 군수 직장에서 식량 배급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생산 공정은 오래전에 중단되다시피 했지만, 군수직장만큼은 원료를 최우선 공급해 생산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에서 받기로 한 원료가 들어오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배급과 생활비도 끊겼다. 죽물로 버텨오다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공장 당위원회에서는 아무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소토지 농사를 지으라고 할 뿐이다. 공장 노동자인 리명근(가명)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출근을 못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희천발전소다 어랑천발전소다 하면서 과제를 내라고 야단이다. 국가 건설장 지원에 자발적으로 나서라고 하는데, 우리가 거기 줄 돈이 어디 있느냐. 그 돈이면 내 새끼 입에 옥수수라도 몇 알 더 넣어주고 싶지. 다른 공장 지배인들은 중국에 나가서 투자도 끌어오고, 밀가루도 들여오고 그런다는데, 우리는 군수직장인데도 파리 날리는 신세니 우리 공장 일군들은 정말로 한심하다”며 무능력을 질타했다. 은덕군에서도 중국 돈을 갖고 있거나, 탈북한 가족이 있거나, 혹은 소토지 농사를 500평 넘게 짓는 사람들은 먹을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저 산나물이나 풀을 채취하러 다닐 수밖에 없다. 또 다시 고통스러운 춘궁기를 버텨야 하는 것이다.

■ 사회

평양 손녀딸 찾아간 할아버지는 살고 남은 할머니는 죽어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 사포1동에 사는 최영호(가명) 노인은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에 굶주리다 못해 살 길을 찾아 평양 손녀딸에게 건너왔다. 최씨 할아버지는 아내 김씨와 슬하에 6형제를 두었다. 자식들 대부분이 함흥시에 거주하지만, 다들 하루 한 끼 먹고 살기도 힘든 처지라, 그 중에서 가장 살림이 나을 것 같은 손녀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아내 김씨는 “어린 손녀에게 두 늙은이가 체면도 없이 어떻게 찾아가느냐. 자식을 여섯이나 낳아서 힘들게 키웠는데 자식 덕을 못 보고, 손녀한테 염치불문하고 얹혀살 수는 없다. 내 입 하나라도 덜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영감만 거두어 주어도 감사한 일”이라며 함흥에 혼자 남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평양으로 떠난 지 20일도 안 돼 작은 아들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뒤늦게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다 늙어서 그래도 좀 더 살아보겠다고, 체면 안 차리고 온 게 잘못이었다. 나도 안해(아내) 옆에서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 혼자 떠나보내고 말았다. 손녀에게도 미안하고, 안해에게도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할아버지의 눈물에 손녀와 손녀사위는 물론이고 이웃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이웃에 사는 동순천(가명)씨는 “이 모든 것이 나라 식량 사정이 어렵고 주민들이 장사를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데서 생긴 일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부모를 거두고 싶어도 못 모시는 자식들이 많다. 저 집도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데, 그 중 한 자식이라도 제 부모를 모실 수 있었으면 이렇게 떨어져 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세월이 불효자를 만든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