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편지모음 – 2011 임진각 평화기행 및 21일 정진 회향식 기념 편지

[편지모음] “임진각에서, 보고 싶은 누나에게”

경기도 임진각에서, 항상 보고 싶은 누나에게

누나 나 오늘 임진각에 왔어요. 잠시라도 집식구들을 잊을 뻔 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임진강 고향 가까이 와보니 정말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지금 어디선가 살아계실지 모를 어머니도 생각도 나고, 돌아가신 아버지 영전에도 용서를 빌고 싶어요. 누나, 지금 먹을 게 없어 많이 바쁠 텐데 아무쪼록 항상 건강에 유의 하시고, 우리 곧 만날 그날까지 꼭 살아 계세요. 통일을 이룰 그날이 꼭 올 거라 믿어요. 사랑해요.

2011.6.5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동생 김우석(가명) 올림

좋은벗들을 후원하는 불자 활동가들은 21일 동안 매일 300배씩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를 했다. 21일 기도 마지막 날인 6월 5일 일요일에는 특별히 북한에서 오신 이웃들과 함께 위령제를 올렸다.

보고 싶은 형제들에게

우리는 오늘 좋은벗들과 함께 북한이 마주보이는 임진각에 왔단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여질 것 같아서… 너희들을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부탁한다.

무명

지난 21일 동안, 좋은벗들 불자 회원들은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을 촉구하는 기도도 함께 해왔다.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의 사랑하는 이 딸이 지금 할아버지 고향이 있는 남한에 와서 이렇게 편지를 띄워서 하늘로 올려 보내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네요. 아버지, 어머니, 이 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우리 걱정하지 마시고 아무 걱정 없는 좋은 곳에 가셔서 두 분이 새로운 행복을 찾기를 기원합니다. 이 딸의 행복한 인생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부모님의 편안한 영혼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부모님의 사랑하는 딸, 정희(가명)가

자나 깨나 보고 싶은 나의 엄마, 형제들에게

보고 싶은 엄마. 지금 하늘나라에서 끼니 걱정안하고 잘 지내고 계시죠? 오늘도 하루 끼니 걱정하며 살고 있을 나의 형제들은 생활난 속에서도 모두 살아계시는지요. 살아생전 죽물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 시던 엄마의 그 작은 소원도 들어주지 못했던 불효자식 막내딸은 지금 다시 볼 수 없는 엄마를 그리며 조선의 남쪽 땅에서 갈 수 없을 이 편지를 씁니다. 오빠, 언니들도 지금 어떻게 끼니나 제대로 먹고 사는지, 매일 매일 걱정하고 걱정합니다. 부디 모두 살아계시길 바라며, 언제나 잊지 않으리라 맹세합니다. 통일의 그날 다시 볼 수 있기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막내 혜숙이(가명) 올림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오늘 임진각에 와서 북쪽을 바라보노라니, 너희들과 형제자매들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구나. 엄마는 어서 빨리 너희들을 여기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뿐이다. 허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구나. 다만 어서 통일이 되어 하나 된 조국에서 서로 자유롭게 오가며 만나는 길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구나. 아들아, 우리 서로 힘을 합쳐 적은 힘이나마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더 많이 하여 어서 빨리 통일을 이룩하자. 우리서로 통일된 조국 광장에서 만날 때까지 건강하여라.

엄마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과 먼저 돌아가신 가족들에게 편지 쓰는 시간에 참가자의 자녀도 함께 하는 모습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보고 싶어요. 몸 건강 하세요. 통일 되면 꼭 만나요.

정옥희(7세) 올림

꿈에도 그리운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아빠와 헤어진지도 어느덧 20년 세월이 되었네요. 아버지라 부르기 낯설 정도로 너무나 먼 곳 남한 땅에서 이 큰딸, 아버지를 그리며 이 펜을 들었습니다. 아빠, 이 딸이 오직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이 말뿐입니다. 하지만 하루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또 오빠가 두고 간 수영이와 수진이를 제가 있는 곳에 데려와 자기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잘 돌볼 것을 맹세합니다. 꼭 아버지 앞에 부끄럼 없이 걱정하지 않으시게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여기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이 큰 딸이 아버지 사위와 최선을 다해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랑스러운 딸로 살게요. 부디 오빠와 하늘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두 분 위해 늘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큰 딸 명화(가명)가 올립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33번 평화의 타종을 하는 모습이다. 이날,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직접 간절한 마음을 담아 힘차게 타종했다.

꿈에도 그리운 언니, 오빠

보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아직 살아계실지 안부조차 모르는 형편에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살아계신다고 믿으면서 언니, 오빠도 이 동생과 함께 살아서 같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무리 먹을 게 많고 입을게 풍부하여도 형제가 정말 그립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자식들을 낳아 그렇게 힘들게 키우셨지만 부모님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지 못하고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남은 형제라도 같이 모여 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부디 그날까지 부디부디 앓지 마시고 살아 주세요.

허인실(가명) 올림

사랑하는 동생에게

동생아, 오늘 우리는 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북한이 바라보이는 임진각에 왔다. 북한이 바라보이는 임진각에 오니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한 주민들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서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생들아, 앓지 말고 건강하고 통일이 되면 만나서 서로 얼싸 안고 옛말하며 살 수 있는 그날이 꼭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자. 동생아 잘 있어. 사랑해.

사랑하는 형이

참가자들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철조망에 ‘평화 리본’을 묶고 있다.

꽃제비들도 “농장일은 싫어”

꽃제비들도 농촌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꽃제비 구제소에서 중학교 5학년에 진학할 만한 아이들은 모두 뽑아 인근 농촌에 청년 분조로 배치한다. 강원도 원산시 구제소의 경우, 만 15세 이상 아이들을 뽑아 평강군과 금강군 등의 농장에 보냈다. 구제소 직원들은 “이 아이들은 배운 것도 없고 부모도 없어서 일반 직장에 배치하기 바쁘다. 구제소에서 아이들을 먹일 식량도 없기 때문에 농장에 보내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몇 년 동안 길거리에서 야생하던 아이들이어서 사회 질서도 모르고, 먹다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다 보니 몸 상태가 허약하고 치료를 받지도 못해 될수록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우는 것이다. 옷은 원산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고쳐서 입히는 수준이다. 문제는 구제소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것이 농장 청년분조 생활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청년들은 앞날의 강성대국의 주인공들이며 당의 위업을 실현하는 가장 활력 있는 전투부대”라며, 청년들을 힘든 일자리에 배치하는 정책을 펴왔다. 강원도의 경우, 원산시, 문천시, 평강군의 중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을 평강군 협동농장에 배치했는데, 이때 수십 개의 청년분조와 청년작업반이 결성됐다. “젊은 로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청년들의 기피 현상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농장 일부는 꽃제비 청년들을 모아 청년분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평강군 협동농장에는 꽃제비 출신자들로만 구성된 청년분조가 있다. 한 분조에 보통 50여 명씩 모여 있는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행방불명된 고아들이 많다. 그동안 시장으로 들로 마을로 역으로 떠돌아다니던 아이들이 한 군데 묶여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지만, 영양실조 상태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려니 아이들이 감당하기가 버겁다. 게다가 구제소 안에서도 출입을 통제해 답답해했는데, 이곳은 더하다. 아침 6시 반에 기상해 7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거의 쉬지 않고 일을 시킨다.

이 꽃제비 청년분조를 담당하는 일군들은 “꽃제비를 하던 아이들이다 보니 생활 습성이 나쁘다. 도둑질도 잘 하고, 막 굴러먹은 아이들이니 더 부단하게 통제와 단속을 해야 한다”며 자유주의를 하지 못하게 꼭꼭 옥죈다. 신발과 옷이 해져도 사러 갈 수가 없다. 농장에서 집체적으로 해줄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작년에 청년분조에 배치된 채금실(가명)양은 “우리는 말이 농장원이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죄수들과 다를 데가 없다. 먹는 것도 농장 일군들이 선심 써주지 않으면 꼼짝 못하고 굶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년분조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채양처럼 젊은 여자 분조원들도 약 20명가량 되는데,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에 농사일만 하다 보니 얼굴이든 몸이든 모두 거칠기 짝이 없다. 채양은 “내 나이가 스무 살인데, 겉늙어서 서른 살도 넘어 보인다. 여기서 이렇게 있다가는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죽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빌어먹는 일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이다. 어딜 가든 빌어먹고 살 자신이 있다. 더 이상 이런 데서 썩고 싶지 않다”며 분조를 꼭 나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몇몇 꽃제비 출신자들은 분조를 뛰쳐나가 다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전연지대 군인들, 춘궁기 굶주림 심해

강원도와 황해남도 등 전연지대 군부대에서 식량난 고생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월에 중국에서 들어온 옥수수로 군량미를 배분받은 뒤로 식량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부대에서는 하루 2끼만 배식하는 곳도 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군인들이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일삼는 일이 느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배천군에 위치한 4군단 소속 곡사포련대에서는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허약한 군인들이 많아 포 훈련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이다. 군관들도 “식량 사정이 칼날 같은 상태에서 1선 군단 군인들이 이렇게 허약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누가 싸움을 하겠는가. 지금 당장 전투 발령이 떨어져도 동원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한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민가를 습격하는 군인들의 수가 급증해 군 상부에서도 군량미 확보 문제로 고민이 깊다.

햇감자 나오기도 전에 군인들에게 습격당해

황해남도는 6월 20일이 지나야 햇감자가 나오는데, 벌써부터 감자밭을 파헤쳐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감자를 도둑질해가는 일이 빈번하다. 주로 인근 부대 군인들의 소행이라, 농민들이 더 애달아하고 있다. 아무리 신소를 해봤자 보상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군민관계 훼손을 막아 달라”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신소를 보내보지만 소용이 없다. 매일 인근 부락에서는 군인 강도들 때문에 “인민군 옆에서 사는 것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칠 정도다. 황해남도 배천군 배천읍 협동농장은 감자밭이 이번 달에만 벌써 열 차례 이상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우리가 먹을 게 남아있겠느냐는 농민들의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장명국(가명)씨는 “지금 세월은 인민군대가 백성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도적질을 당하지 않으려고 인민군대를 감시하는 시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촌 지원을 명분으로 나오면 대놓고 털어갈 것이 아니겠느냐며, 인민군 부대에서 농촌지원을 나오는 것도 겁이 난다고 했다. 실제 배천군 관내 한 농장에서는 군인들이 농촌 지원 나오겠다는 것을 “일 없다”며 되돌려 보내는 일도 있었다. 더 이상 군인들은 농민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농촌동원도 빈익빈 부익부

누구랄 것 없이 동원되는 농촌 지원 전투이지만,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당일군이나 법일군 등 권력자들의 아내와 돈 있는 집들은 요령 좋게 빠져나간다. “힘과 돈만 있으면 다 빠져나가니, 동원되는 사람들은 순전히 가난한 집들의 몫”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함경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함주벌에서도 모내기가 한창이지만, “연유(유류)사정이 긴장한 조건에서 부림소 써레치기 (?) 도 바쁜”지라 농사일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함주벌 농장에 동원된 녀맹원 림순덕(가명)씨는 농자재가 없어 사람 힘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며, 누구도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지지리도 못 살고 못 먹는 사람들뿐이라며 푸념했다. “힘없는 사람들이 무더운 햇빛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며 힘겹게 모내기를 한다. 우리들이 어쩌다 못 나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문제로 삼고, 돈 있는 여자들이 안 나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당 선전부를 비롯한 당일군들이 농장에 나가 선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자기 안해(아내)들은 집에다 고이 모셔둔다. 그러니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그냥 맥없는 선전일 뿐, 다 귓등으로 흘려듣는다”고 했다.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동흥산동에 사는 전용숙(가명)씨는 요즘 심경이 더 불편해졌다. 오전에는 농촌동원에 나가고,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있는 집 여자들은 버젓이 그 시간에 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꼽기만 하다. 며칠 전, 전씨는 그날도 하루 종일 내리쬐는 뙤약볕 속에서 흙탕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허리 좀 펼라 싶으면, 어디선가 일군이 나타나 “당의 배려를 앉아서 받기만 하지 말고, 모내기 전투를 어서 질적으로 잘 끝내자”며 소리 지르는 통에 다시 주저앉곤 했다. 아침에도 국수를 후루룩 먹고 와 힘이 없는데, 그날따라 생리통 때문에 아랫배와 허리통증이 심해 제대로 모를 심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장사하러 나가야겠기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그날 떨어진 할당량을 채우려고 자꾸 가라앉으려는 몸을 다시 일으켰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영남이 엄마가 도와주어 겨우 4시에 장사하러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에서 매대에 앉았으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기운이 있어야 소리치면서 한 사람이라도 손님을 더 끌어 모을 텐데 앉아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아이들 학용품을 파는 매대라 손님이 많지도 않았다. 한 두 시간 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잘 먹여 키웠는지 볼 살이 통통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와 아이더러 공책을 고르라고 했다. 아이가 몇 번 들썩거리더니 “어머니, 다른 데 가자요”라며 제 어머니 손을 끌었다. 아이가 따로 찾는 공책이 있었던가보다. 여자도 몇 번 이리 들썩 저리 들썩 보더니, “여기 뭐 이래. 요즘에 질 좋은 중국산 공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이런 연필 자국도 안 들어갈 종이들만 골라왔나?” 라며 비위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고 가버렸으면 별 일이 없었을 텐데, 원주필(볼펜)은 어떻고 요즘엔 저런 거 그냥 줘도 안 쓴다느니 혼잣말로 너불거렸다. 처음에는 상대할 기운이 없어서 아무 대꾸를 안했는데, 계속 듣자 하니 열이 받쳐서 “야~ 가라우. 너 같은 것한테 팔 것 없으니 아새끼 데리고 빨리 가라~” 빽 소리를 질렀다.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잠깐 멈칫하던 여자도 “아니 이 여자가 어디라고 소리 지르니? 이 애가 누구 집 아들인지 알긴 아니?”라면서 같이 맞대응을 했다.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이어져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내아이는 빽빽 울어댔다. 결국 단속원이 달려와 둘을 뜯어 놓았다. 가까운 보안서에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젊은 여자가 검찰 일군 사모님이었다. 보안원들이 비위를 맞추는 통에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전용숙씨 혼자 말썽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며칠 벌이를 해도 모으기 힘든 돈을 벌금으로 내야했다. 전씨는 “농촌동원 때문에 사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어졌는데, 누구는 남편 잘 만나 농촌동원에도 싹싹 빠져나가고, 누구는 지지리 복도 없어 이 고생”이라며 서러워했다.

“내 먹을게 있어야 농촌 지원도 하지”

사람들이 농촌동원을 기피하는 이유는 몸이 고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계벌이를 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서 장사로 먹고 사는 녀맹원들의 불만이 크다.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은 따로 생계벌이를 안 해도 되지만, 녀맹원들과 가두여성(주부)들은 생계를 몸소 책임져야 한다.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오후 2시나 되어야 끝난다. 도급제다보니 그날 주어진 일을 마치지 못하면 끝나는 시간은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장사하는 여성들은 이 시간에 맞춰 가려고, 점심도 거르고 할당량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아이 엄마들의 마음은 더 분주하다. 집에 아이를 봐줄 노인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니면 탁아소에 맡겨야 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 탁아소에서는 먹을 것도 안 주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잘 안 쓴다는 인식 때문에 탁아소에 맡기는 것을 그다지 탐탁찮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젖먹이 어머니들은 결국 아이를 들쳐 업고 농촌 동원에 나간다. 농촌동원에 나왔어도 몸이 불편해서 밭머리에 앉아 쉬는 여성들이 아이를 봐준다. 아직 여린 아이들은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다가 더위를 먹고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있다. 가난한 여성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당장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농촌동원이라고 아침부터 불러서 장사할 시간도 얼마 안 주고. 애들은 나이 한 살이라도 먹으면 먹었다고 농촌에 동원 보내지, 아이 아부지는 아부지라고 동원해가지, 집에 사람이 없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온종일 농촌에 나가 일하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라는 말이냐.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한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일단 내 입에 한 숟가락이라도 들어가야 농촌 지원이라도 나갈 수 있지, 이렇게 입에 넣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뭘 하라는 말이냐”고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농촌 총동원, 고난의 전투 한창

전국적으로 농촌 총동원령이 떨어져, 거의 모든 주민들이 농촌에 나가 의무적으로 농사일을 거들고 있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농업전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선”이라며, “당의 원대한 농촌건설구상을 빛나게 실현해나가고 있는 본보기단위들의 모범을 따라 배워 알곡정보당수확고를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한 경쟁을 힘 있게 벌려나가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조선중앙TV에서는 농사철을 맞아 “모내기를 열흘 만에 제일 선창으로 끝냈다”는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과 “모내기를 제철에 질적으로 끝낸” 안악군 오국협동농장 등에 피바다가곡단과 국립민족예술단 소속 배우들을 파견해 특별히 축하방송을 내보냈다. “논벼 정보당 10톤 이상을 낸 일로 몇 해 전 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으로부터 ‘나의 정든 농장’이라는, 정말 누구나 쉽게 받아 안을 수 없는 고귀한 칭호를 받은” 황해북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에는 공훈배우 김윤미 배우 등이 찾아가 축하공연을 했다.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농촌지원전투를 독려하기 위함이다.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의 축하공연을 TV로 지켜본 사리원시 일용품공장 직원 김일주(가명)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2009년도에 정보당 10톤 이상 냈으니까 올해는 그 이상을 해내라는 압박이 아니겠느냐?”며, 공훈배우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별로 즐겁지가 않다고 했다. “TV에 나와서는 모두들 품종을 개량했다느니, 주체농법대로 과학기술적으로 해나가게 됐다며 자랑을 해대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농장현실은 종자도 비닐박막도 부족하다.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과 동사무소 녀맹원들, 그리고 중학교부터 대학교 학생들은 기초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동원되어 정작 도움은 못 주고,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만 할 뿐이다. 이들에게 농촌지원전투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고난의 전투’이다.

“식량증산, 언제까지 농촌 동원에 기댈 것인가?”

“농업전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선”이라는 말, 참으로 무거운 말이다. 인민의 목숨을 연명해주어야 할 농업이 도리어 목숨을 걸어야 할 주공전선이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 전투는 시작되고, 주민들은 한숨 쉬며 다시 농장들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어린 학생들부터 어머니, 아버지 할 것 없이 온가족이 농촌 지원 전투의 전사가 된다. 전 국민의 8할 이상이 농사일을 거들어도, 배급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 무엇이 문제일까? 남북한이 힘을 모아 해결책을 찾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난 6월 5일 일요일, 좋은벗들에서는 북한에서 내려온 60여명의 이웃들과 함께 임진각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특별히 망배단에서는 6.25전쟁과 천안함, 연평도 포사격 등으로 돌아가신 희생자와 고난의 행군 시절 식량난에 굶주려 돌아가신 북한 동포들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 기원하는 위령제가 있었다. 이날 북녘 땅에 두고 온 가족들과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며 쓴 편지들을 몇 장 나누고자 한다.

■ 사회

꽃제비들도 “농장일은 싫어”

꽃제비들도 농촌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꽃제비 구제소에서 중학교 5학년에 진학할 만한 아이들은 모두 뽑아 인근 농촌에 청년 분조로 배치한다. 강원도 원산시 구제소의 경우, 만 15세 이상 아이들을 뽑아 평강군과 금강군 등의 농장에 보냈다. 구제소 직원들은 “이 아이들은 배운 것도 없고 부모도 없어서 일반 직장에 배치하기 바쁘다. 구제소에서 아이들을 먹일 식량도 없기 때문에 농장에 보내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몇 년 동안 길거리에서 야생하던 아이들이어서 사회 질서도 모르고, 먹다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다 보니 몸 상태가 허약하고 치료를 받지도 못해 될수록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우는 것이다. 옷은 원산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고쳐서 입히는 수준이다. 문제는 구제소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것이 농장 청년분조 생활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청년들은 앞날의 강성대국의 주인공들이며 당의 위업을 실현하는 가장 활력 있는 전투부대”라며, 청년들을 힘든 일자리에 배치하는 정책을 펴왔다. 강원도의 경우, 원산시, 문천시, 평강군의 중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을 평강군 협동농장에 배치했는데, 이때 수십 개의 청년분조와 청년작업반이 결성됐다. “젊은 로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청년들의 기피 현상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농장 일부는 꽃제비 청년들을 모아 청년분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평강군 협동농장에는 꽃제비 출신자들로만 구성된 청년분조가 있다. 한 분조에 보통 50여 명씩 모여 있는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행방불명된 고아들이 많다. 그동안 시장으로 들로 마을로 역으로 떠돌아다니던 아이들이 한 군데 묶여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지만, 영양실조 상태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려니 아이들이 감당하기가 버겁다. 게다가 구제소 안에서도 출입을 통제해 답답해했는데, 이곳은 더하다. 아침 6시 반에 기상해 7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거의 쉬지 않고 일을 시킨다.

이 꽃제비 청년분조를 담당하는 일군들은 “꽃제비를 하던 아이들이다 보니 생활 습성이 나쁘다. 도둑질도 잘 하고, 막 굴러먹은 아이들이니 더 부단하게 통제와 단속을 해야 한다”며 자유주의를 하지 못하게 꼭꼭 옥죈다. 신발과 옷이 해져도 사러 갈 수가 없다. 농장에서 집체적으로 해줄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작년에 청년분조에 배치된 채금실(가명)양은 “우리는 말이 농장원이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죄수들과 다를 데가 없다. 먹는 것도 농장 일군들이 선심 써주지 않으면 꼼짝 못하고 굶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년분조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채양처럼 젊은 여자 분조원들도 약 20명가량 되는데,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에 농사일만 하다 보니 얼굴이든 몸이든 모두 거칠기 짝이 없다. 채양은 “내 나이가 스무 살인데, 겉늙어서 서른 살도 넘어 보인다. 여기서 이렇게 있다가는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죽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빌어먹는 일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이다. 어딜 가든 빌어먹고 살 자신이 있다. 더 이상 이런 데서 썩고 싶지 않다”며 분조를 꼭 나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몇몇 꽃제비 출신자들은 분조를 뛰쳐나가 다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농촌동원도 빈익빈 부익부

누구랄 것 없이 동원되는 농촌 지원 전투이지만,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당일군이나 법일군 등 권력자들의 아내와 돈 있는 집들은 요령 좋게 빠져나간다. “힘과 돈만 있으면 다 빠져나가니, 동원되는 사람들은 순전히 가난한 집들의 몫”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함경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함주벌에서도 모내기가 한창이지만, “연유(유류)사정이 긴장한 조건에서 부림소 써레치기 (?) 도 바쁜”지라 농사일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이다. 함주벌 농장에 동원된 녀맹원 림순덕(가명)씨는 농자재가 없어 사람 힘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며, 누구도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지지리도 못 살고 못 먹는 사람들뿐이라며 푸념했다. “힘없는 사람들이 무더운 햇빛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며 힘겹게 모내기를 한다. 우리들이 어쩌다 못 나가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문제로 삼고, 돈 있는 여자들이 안 나오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당 선전부를 비롯한 당일군들이 농장에 나가 선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자기 안해(아내)들은 집에다 고이 모셔둔다. 그러니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 그냥 맥없는 선전일 뿐, 다 귓등으로 흘려듣는다”고 했다.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동흥산동에 사는 전용숙(가명)씨는 요즘 심경이 더 불편해졌다. 오전에는 농촌동원에 나가고,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있는 집 여자들은 버젓이 그 시간에 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꼽기만 하다. 며칠 전, 전씨는 그날도 하루 종일 내리쬐는 뙤약볕 속에서 흙탕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허리 좀 펼라 싶으면, 어디선가 일군이 나타나 “당의 배려를 앉아서 받기만 하지 말고, 모내기 전투를 어서 질적으로 잘 끝내자”며 소리 지르는 통에 다시 주저앉곤 했다. 아침에도 국수를 후루룩 먹고 와 힘이 없는데, 그날따라 생리통 때문에 아랫배와 허리통증이 심해 제대로 모를 심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장사하러 나가야겠기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그날 떨어진 할당량을 채우려고 자꾸 가라앉으려는 몸을 다시 일으켰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영남이 엄마가 도와주어 겨우 4시에 장사하러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에서 매대에 앉았으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기운이 있어야 소리치면서 한 사람이라도 손님을 더 끌어 모을 텐데 앉아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아이들 학용품을 파는 매대라 손님이 많지도 않았다. 한 두 시간 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잘 먹여 키웠는지 볼 살이 통통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와 아이더러 공책을 고르라고 했다. 아이가 몇 번 들썩거리더니 “어머니, 다른 데 가자요”라며 제 어머니 손을 끌었다. 아이가 따로 찾는 공책이 있었던가보다. 여자도 몇 번 이리 들썩 저리 들썩 보더니, “여기 뭐 이래. 요즘에 질 좋은 중국산 공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서 이런 연필 자국도 안 들어갈 종이들만 골라왔나?” 라며 비위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고 가버렸으면 별 일이 없었을 텐데, 원주필(볼펜)은 어떻고 요즘엔 저런 거 그냥 줘도 안 쓴다느니 혼잣말로 너불거렸다. 처음에는 상대할 기운이 없어서 아무 대꾸를 안했는데, 계속 듣자 하니 열이 받쳐서 “야~ 가라우. 너 같은 것한테 팔 것 없으니 아새끼 데리고 빨리 가라~” 빽 소리를 질렀다.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잠깐 멈칫하던 여자도 “아니 이 여자가 어디라고 소리 지르니? 이 애가 누구 집 아들인지 알긴 아니?”라면서 같이 맞대응을 했다.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이어져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내아이는 빽빽 울어댔다. 결국 단속원이 달려와 둘을 뜯어 놓았다. 가까운 보안서에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젊은 여자가 검찰 일군 사모님이었다. 보안원들이 비위를 맞추는 통에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전용숙씨 혼자 말썽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며칠 벌이를 해도 모으기 힘든 돈을 벌금으로 내야했다. 전씨는 “농촌동원 때문에 사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어졌는데, 누구는 남편 잘 만나 농촌동원에도 싹싹 빠져나가고, 누구는 지지리 복도 없어 이 고생”이라며 서러워했다.

■ 식량소식

전연지대 군인들, 춘궁기 굶주림 심해

강원도와 황해남도 등 전연지대 군부대에서 식량난 고생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월에 중국에서 들어온 옥수수로 군량미를 배분받은 뒤로 식량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부대에서는 하루 2끼만 배식하는 곳도 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군인들이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일삼는 일이 느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배천군에 위치한 4군단 소속 곡사포련대에서는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허약한 군인들이 많아 포 훈련도 제대로 못 할 정도이다. 군관들도 “식량 사정이 칼날 같은 상태에서 1선 군단 군인들이 이렇게 허약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누가 싸움을 하겠는가. 지금 당장 전투 발령이 떨어져도 동원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한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민가를 습격하는 군인들의 수가 급증해 군 상부에서도 군량미 확보 문제로 고민이 깊다.

햇감자 나오기도 전에 군인들에게 습격당해

황해남도는 6월 20일이 지나야 햇감자가 나오는데, 벌써부터 감자밭을 파헤쳐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감자를 도둑질해가는 일이 빈번하다. 주로 인근 부대 군인들의 소행이라, 농민들이 더 애달아하고 있다. 아무리 신소를 해봤자 보상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군민관계 훼손을 막아 달라”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신소를 보내보지만 소용이 없다. 매일 인근 부락에서는 군인 강도들 때문에 “인민군 옆에서 사는 것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칠 정도다. 황해남도 배천군 배천읍 협동농장은 감자밭이 이번 달에만 벌써 열 차례 이상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우리가 먹을 게 남아있겠느냐는 농민들의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장명국(가명)씨는 “지금 세월은 인민군대가 백성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도적질을 당하지 않으려고 인민군대를 감시하는 시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촌 지원을 명분으로 나오면 대놓고 털어갈 것이 아니겠느냐며, 인민군 부대에서 농촌지원을 나오는 것도 겁이 난다고 했다. 실제 배천군 관내 한 농장에서는 군인들이 농촌 지원 나오겠다는 것을 “일 없다”며 되돌려 보내는 일도 있었다. 더 이상 군인들은 농민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내 먹을게 있어야 농촌 지원도 하지”

사람들이 농촌동원을 기피하는 이유는 몸이 고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계벌이를 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서 장사로 먹고 사는 녀맹원들의 불만이 크다.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은 따로 생계벌이를 안 해도 되지만, 녀맹원들과 가두여성(주부)들은 생계를 몸소 책임져야 한다.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오후 2시나 되어야 끝난다. 도급제다보니 그날 주어진 일을 마치지 못하면 끝나는 시간은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장사하는 여성들은 이 시간에 맞춰 가려고, 점심도 거르고 할당량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아이 엄마들의 마음은 더 분주하다. 집에 아이를 봐줄 노인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니면 탁아소에 맡겨야 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 탁아소에서는 먹을 것도 안 주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잘 안 쓴다는 인식 때문에 탁아소에 맡기는 것을 그다지 탐탁찮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젖먹이 어머니들은 결국 아이를 들쳐 업고 농촌 동원에 나간다. 농촌동원에 나왔어도 몸이 불편해서 밭머리에 앉아 쉬는 여성들이 아이를 봐준다. 아직 여린 아이들은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다가 더위를 먹고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있다. 가난한 여성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당장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농촌동원이라고 아침부터 불러서 장사할 시간도 얼마 안 주고. 애들은 나이 한 살이라도 먹으면 먹었다고 농촌에 동원 보내지, 아이 아부지는 아부지라고 동원해가지, 집에 사람이 없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온종일 농촌에 나가 일하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라는 말이냐.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한데,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일단 내 입에 한 숟가락이라도 들어가야 농촌 지원이라도 나갈 수 있지, 이렇게 입에 넣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뭘 하라는 말이냐”고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 정치생활

농촌 총동원, 고난의 전투 한창

전국적으로 농촌 총동원령이 떨어져, 거의 모든 주민들이 농촌에 나가 의무적으로 농사일을 거들고 있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농업전선은 인민생활문제해결의 생명선”이라며, “당의 원대한 농촌건설구상을 빛나게 실현해나가고 있는 본보기단위들의 모범을 따라 배워 알곡정보당수확고를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한 경쟁을 힘 있게 벌려나가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조선중앙TV에서는 농사철을 맞아 “모내기를 열흘 만에 제일 선창으로 끝냈다”는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과 “모내기를 제철에 질적으로 끝낸” 안악군 오국협동농장 등에 피바다가곡단과 국립민족예술단 소속 배우들을 파견해 특별히 축하방송을 내보냈다. “논벼 정보당 10톤 이상을 낸 일로 몇 해 전 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으로부터 ‘나의 정든 농장’이라는, 정말 누구나 쉽게 받아 안을 수 없는 고귀한 칭호를 받은” 황해북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에는 공훈배우 김윤미 배우 등이 찾아가 축하공연을 했다.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농촌지원전투를 독려하기 위함이다.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의 축하공연을 TV로 지켜본 사리원시 일용품공장 직원 김일주(가명)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2009년도에 정보당 10톤 이상 냈으니까 올해는 그 이상을 해내라는 압박이 아니겠느냐?”며, 공훈배우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별로 즐겁지가 않다고 했다. “TV에 나와서는 모두들 품종을 개량했다느니, 주체농법대로 과학기술적으로 해나가게 됐다며 자랑을 해대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농장현실은 종자도 비닐박막도 부족하다.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과 동사무소 녀맹원들, 그리고 중학교부터 대학교 학생들은 기초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동원되어 정작 도움은 못 주고,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만 할 뿐이다. 이들에게 농촌지원전투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고난의 전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