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남조선에 간 안해여, 도와주오”

국경연선지역에는 가족 중에 행방불명자가 있는 집들이 많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헤어져서 생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중에는 중국에 건너간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다시 남한에 건너온 경우도 있다. 평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중국에서 혹은 남한에서 전화를 연결해주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번 돈을 전달받았을 때는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을 받은 기분이다. 함경북도 무산에 사는 김금화(가명)씨는 서울에 살고 있는 큰 딸이 한 해 한화로 200만원씩 보내주는데, 브로커에게 20-30% 정도 간다고 해도, 1년은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보위부와 보안원들에게 상납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유실되는 금액이 상당하지만, 당장 굶어죽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 5대5밥이라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할 뿐이다. 김씨처럼 중국이나 한국에 간 부모형제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대하는 마음도 커지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 사는 김철(가명)씨는 몇 달째 남조선에 간 아내와 연락이 안 돼 애를 태우고 있다. 2005년도에 중국에 건너갔던 아내는 그동안 한 해 1-2번이라도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어 김씨와 두 아이가 먹고 살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자꾸 쫓겨 다녀야 한다며 남조선으로 가겠다고 하더니 2년 전에는 남조선에 갔다고 연락이 왔다. 남조선 정부에서 정착금을 주는 데 그 돈으로 전화 연결도 하고 송금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두세 번 정도 더 도움을 받았는데, 작년 말부터 도통 연락이 안 됐다. 처음에는 심부름해주던 사람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회령까지 나가서 중국 측 브로커와 직접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화번호를 바꿨는지 연락이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몇 달째 연락이 안 되자, 김씨의 초조함이 극심해지고 있다. “남조선에 간 안해(아내)도 살기 바쁘겠지. 아니면 다른 남자 만나 살면서 마음이 변한 것인지도 모르고. 중국에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안해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고 아이들을 버리고 중국에 건너갈 수도 없는 형편이라 지금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그동안 안해 덕분에 죽물을 면하고 애들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는데, 안해가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두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널 수도 없는 처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지금은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다. 어린 것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암담해했다.

국경경비대, 도강 눈감아 돈벌이

식량난으로 불안한 시절이 계속되면서 국경경비대원들의 비법행위도 여전히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국경경비대원들은 풀밥 먹는 전연지대와 달리 옥수수밥이라도 먹는 편이지만, 풍족하게 먹을 정도는 안 되다보니 도강을 돕고 돈 받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군관과 사관(하사관)들이 조를 짜서 조직적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도강 문제가 제기되면 출당과 철직은 물론 법 처벌을 면할 수 없지만, 건수만 생기면 벌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해있다. 생활비 4천원에 본인 배급은 물론 가족들 배급까지 받는 군관들이라고 덜 하지 않다. 오히려 군관들의 욕심이 사관들보다 더하다. 언젠가 제대해야 하는데, 그때 사회에 나가 뭐라도 해먹고 살려면 돈을 챙길 수 있을 때 많이 챙겨두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강자와 밀수자를 붙잡아 좋은 소리 한 번 듣는 것보다 그냥 눈감아주고 돈을 버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도강자와 밀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적당히 단속하고 적당히 돈을 벌 기회라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안전보위부와 국경경비사령부에서 합동 검열이나 교차검열을 해도 불법 도강 조력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량강도 혜산시 국경경비군인들은 직접 동이나 약초 등 밀매매에 가담하기도 한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위사령부 검열이 진행됐는데, 군관 5명과 사관 7명이 밀매매행위로 체포됐다. 이들은 혼자 먹고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군사 과업을 달성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지휘부에서 내리는 각종 군사 과업도 군관들의 비법행위를 부추기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만도 초소꾸리기 과제 때문에 군관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순전히 자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군인이 무슨 돈이 있는가. 과업 수행을 하려면 밀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적당히 (뇌물을) 먹고 적당히 단속하는 것이 국경경비대원들의 처신”이 됐다. 한편 당국에서는 춘궁기 들어 국경연선지역에서 손전화기 단속과 주민 신고 사업 등을 더 강조하고 있다. 손전화기 사용자들이 만약 해당 기관에 자수하고 전화기를 바치면 용서해주겠다는 선전도 하고 있다. 그러나 매번 같은 소리를 들었던 주민들은 이번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분위기다.

“살고 싶어서 도강했다”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에 살던 김정호(가명)씨는 지난달 중국에 가려고 시도했다가 붙잡혔다. 김씨는 이번 도강이 처음 시도는 아니다. 2007년도에 도강했다가 강제 송환돼 전거리교화소에서 3년 동안 복역하다가 작년 대사령 때 풀려나왔다. 지난 해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당창건 65주년 기념으로 전국에서 대사령이 진행돼 약 15만 명이 석방됐는데 함경북도에서는 9천 6백 명 가량이 석방됐었다. 당시 한국행을 시도했거나 사회제도를 비판한 정치사상범과 강력범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김씨는 단순도강자로 분류돼 대사령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전염병이 횡행하고 늘 굶주렸던 교화소를 나온 직후에는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던 그였으나, 돌아온 집은 그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처음 그가 중국에 가려고 했던 것은 집을 나간 아내를 찾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남루하고 가난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엄마가 떠난 집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중국 연길에서 아내를 닮은 여자를 봤다는 얘기 하나만 듣고 무작정 건너갔다. 그때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중고 옷 밀매매를 하던 직장 동료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건너갔다. 아내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인연으로 직장 동료를 도와 헌 옷가지들을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됐다. 평소에도 몸이 잽싸고 배짱이 두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여서 도강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에는 국경경비대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무사히 건넜으나, 중국 변방대에 붙잡히고 말았다. 원래 중국 변방대와도 선이 있었으나, 붙잡힌 날에는 중국 측 경비가 너무 삼엄하던 때라 달리 손 쓸 새가 없었다. 결국 전거리교화소행을 면치 못했다. 열 살 먹은 아들은 구제소에 보내졌다. 대사령을 받고 나온 뒤 제일 먼저 아들을 찾아 나섰으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난 3년 동안 구제소에는 숱한 꽃제비들이 나왔다 도망 갔다를 반복했고, 아들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도망간 뒤 지금껏 소식이 없다고 했다. 다시 붙잡혀 들어오지 않은 것이 어디선가 목숨을 연명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차가운 집에 제 한 몸 누일 곳도 마땅치 않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으며, 마음 붙일 피붙이도 찾을 수 없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장사를 하고 싶어도 밑천이 없어 궁리하던 끝에 옛날 인연을 찾아 다시 도강하기로 했다. 그것이 올해 2월이었다. 다행히 국경경비대에 아는 얼굴도 남아있었고, 중국에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 헌 옷들을 받아올 수 있었다. 그 옷들을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넘기고 얼마간 돈을 받아 연명하기 시작했다. 춘궁기가 시작되고 마을마다 단속이 심해졌고, 국경지역 검열은 더 삼엄해져 도강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먹고 살자니 도강할 틈만 보고 있다가 넘어갔는데 중국 변방대에 체포돼 무산 세관으로 나왔다. 도강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더 심한 몰매를 맞았다. 현재 김씨는 보안서에서 운신조차 어려울 만큼 폭행을 당한 뒤 치료를 받지 못해 골골 앓고 있는 중이다. 조국에서 다시 안아주는 것에 감사히 생각하고 열심히 살 것이지 왜 다시 도강했느냐는 책망에 김씨는 “살고 싶어서 도강했다. 출소해 나왔는데 먹고 살 길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방도만 열어주었더라도 다시 도강을 꿈꾸지 않았을 텐데, 없어진 자식도 찾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돈이 있어야겠기에 하는 수 없이 다시 도강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9년형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엄한 농촌동원에도 도강 늘어

고난의 농촌 동원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길목마다 보안원들로 뒤덮여 사람 그림자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보이는 족족 농장으로 보내기 때문에 되거리 장사꾼들이 특히 애를 먹고 있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새벽부터 부지런히 낟알이라도 얻어와 시장에 내다팔아야 하는데, 돌아오는 도중에 보안원들에게 걸리기 십상이다. 장사 밑천이라도 있는 상인들이야 단속원들에게 사정을 봐달라며 뇌물이라도 먹이지만, 발품 팔아 소소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로선 피하는 게 상책일 뿐 다른 대책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장사하기가 더 어려운 계절이 바로 농촌동원 기간인 요즘이다. 굶주리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비극의 계절이기도 하다. 보안원들의 단속이 더 강화된 만큼 역으로 도강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는 못 살겠다”는 것이 도강하려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당장 끼니거리가 없는 사람들과 전에 도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최근 량강도 혜산, 평안북도 신의주, 함경북도 회령 등 국경 지역에서는 검열, 검색이 몇 배나 심해졌다. 춘궁기 들어 중국으로 도강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국경지역 검열을 강화하는 한편 특히 탈북자 가족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탈북한 가족과 손전화기로 연락을 취해온 세대를 적발해 외지로 추방했는데, 그 수가 약 70세대에 이른다. 이 중 30여 명이 교화형 처벌을 받았다.

총동원 단속에 “먹고 살 길 막막해”

함경남도 함흥시와 흥남시에서는 아사자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함경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먹을 것이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농촌동원으로 각자 먹고 살 길이 막히게 된 것도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보안원들의 길거리 단속이 심해지면서 주민들이 이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생계벌이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함흥시 사포구역에 사는 함미영(가명)씨는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새벽에 일어나 락원군 바닷가까지 나가서 물고기를 받아와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손에 쥐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농장 일을 하고 장사는 겨우 1-2시간 할 수 있으니 장사벌이가 더 시원치 않아졌다. 물고기를 받으려고 락원군까지 다녀오는 도중에 보안원들에게 단속되는 것도 너무나 신경 쓰이고 부담되는 일이다. 지난 6월 초에도 차량으로 물고기를 실어오다가 마을 입구에서 보안원과 딱 마주쳤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던 뇌물용 고양이담배를 재빨리 바쳤기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속이 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양이담배 한 막대기(보루)를 바쳤는데 순식간에 1만 2천원이 날아간 셈이다. ‘풍년’ 담배나 ‘고향’, ‘평양’등이 한 보루에 각각 5천원, 7천원, 8천 원 하는 것에 비하면 고양이담배는 보안원들이 뇌물로 선호할만하다. 뇌물을 바치고, 차량 운임비 등을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정말 없다고 한탄한다. “고양이 담배 1막대기를 바치는 건 일도 아니다. 신경 나는 것은 길목마다 서 있는 보안원들에게 바치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거다. 하루는 무사히 넘어갔다고 해도, 다음 날 걸릴 수도 있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두세 번 가야할 길도 한 번 가게 되고 그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차량을 이용해 물고기 장사를 하는 정도면, 함씨는 제법 장사를 잘 하는 축에 드는 사람이다. 흥남 시장에서 부식물 장사를 하는 리옥희(가명)씨는 하루에 겨우 600-700원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아침에는 농장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일일이 출석을 장악하고, 하루 참가 못하면 무조건 2천원을 바쳐야 한다. 하루 600원도 못 버는 사람이 2천원은 어디에서 나겠나. 장사를 잘 하는 여자들은 2천원 바치고 안 나오는 게 낫다고 하지만, 나는 그 돈 벌기도 바쁘니까 농촌동원에 나가야 한다. 그 시간에 장사한다고 괜히 돌아다니다가 보안원을 만나면, 아무리 안 줘도 담배 1갑은 바쳐야 한다. 그 돈이면 우리 집 식구들이 하루 2끼 먹을 걸 3끼 다 챙겨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우리같이 못 사는 사람들은 계속 못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 바에는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과 자식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렇게는 목숨 부지하기가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리옥희씨처럼 시장 매대에서 장사를 하는 여성들은 “시장 보는 시간이 너무도 짧아 펼쳐놓자마자 얼마 안 있어 어두워지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너무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 1-2끼 죽으로 연명하는 집들이 많다.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도 생긴다.

도강 권하는 사회

때는 농촌 총동원 기간,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하는 춘궁기이다. 마을 어귀에는 보안원들이 장승처럼 눈 치켜뜨고 서 있다가 보이는 족족 강제로 농장에 보낸다. 고양이 담배 한 갑이라도 쥐어주어야 겨우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 하루 온종일 장사해도 옥수수 1kg 벌이도 못하는데, 2-3시간만 장사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더러 죽으라는 거냐, 살라는 거냐?”항변이 터져 나올 만하다. 두만강을 건너면 개들도 이밥을 먹는다는데, 한번이라도 실컷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도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누가 이들을 강 저쪽으로 밀어내는가? 북한 당국은“살고 싶어서 도강했다”는 주민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먹여 살릴 수 없다면, 도강이라도 눈감아주어 먹고 살게 해야 한다. 강제 송환된 도강자들에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

■ 식량소식

“남조선에 간 안해여, 도와주오”

국경연선지역에는 가족 중에 행방불명자가 있는 집들이 많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헤어져서 생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 중에는 중국에 건너간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다시 남한에 건너온 경우도 있다. 평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중국에서 혹은 남한에서 전화를 연결해주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번 돈을 전달받았을 때는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을 받은 기분이다. 함경북도 무산에 사는 김금화(가명)씨는 서울에 살고 있는 큰 딸이 한 해 한화로 200만원씩 보내주는데, 브로커에게 20-30% 정도 간다고 해도, 1년은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보위부와 보안원들에게 상납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유실되는 금액이 상당하지만, 당장 굶어죽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 5대5밥이라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할 뿐이다. 김씨처럼 중국이나 한국에 간 부모형제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대하는 마음도 커지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 사는 김철(가명)씨는 몇 달째 남조선에 간 아내와 연락이 안 돼 애를 태우고 있다. 2005년도에 중국에 건너갔던 아내는 그동안 한 해 1-2번이라도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어 김씨와 두 아이가 먹고 살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자꾸 쫓겨 다녀야 한다며 남조선으로 가겠다고 하더니 2년 전에는 남조선에 갔다고 연락이 왔다. 남조선 정부에서 정착금을 주는 데 그 돈으로 전화 연결도 하고 송금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두세 번 정도 더 도움을 받았는데, 작년 말부터 도통 연락이 안 됐다. 처음에는 심부름해주던 사람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회령까지 나가서 중국 측 브로커와 직접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화번호를 바꿨는지 연락이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몇 달째 연락이 안 되자, 김씨의 초조함이 극심해지고 있다. “남조선에 간 안해(아내)도 살기 바쁘겠지. 아니면 다른 남자 만나 살면서 마음이 변한 것인지도 모르고. 중국에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안해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살자고 아이들을 버리고 중국에 건너갈 수도 없는 형편이라 지금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그동안 안해 덕분에 죽물을 면하고 애들도 학교에 보낼 수 있었는데, 안해가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두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널 수도 없는 처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지금은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다. 어린 것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암담해했다.

“살고 싶어서 도강했다”

함경북도 김책시 풍년리에 살던 김정호(가명)씨는 지난달 중국에 가려고 시도했다가 붙잡혔다. 김씨는 이번 도강이 처음 시도는 아니다. 2007년도에 도강했다가 강제 송환돼 전거리교화소에서 3년 동안 복역하다가 작년 대사령 때 풀려나왔다. 지난 해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당창건 65주년 기념으로 전국에서 대사령이 진행돼 약 15만 명이 석방됐는데 함경북도에서는 9천 6백 명 가량이 석방됐었다. 당시 한국행을 시도했거나 사회제도를 비판한 정치사상범과 강력범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김씨는 단순도강자로 분류돼 대사령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전염병이 횡행하고 늘 굶주렸던 교화소를 나온 직후에는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던 그였으나, 돌아온 집은 그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처음 그가 중국에 가려고 했던 것은 집을 나간 아내를 찾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남루하고 가난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엄마가 떠난 집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중국 연길에서 아내를 닮은 여자를 봤다는 얘기 하나만 듣고 무작정 건너갔다. 그때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중고 옷 밀매매를 하던 직장 동료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건너갔다. 아내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 인연으로 직장 동료를 도와 헌 옷가지들을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됐다. 평소에도 몸이 잽싸고 배짱이 두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여서 도강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2007년에는 국경경비대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무사히 건넜으나, 중국 변방대에 붙잡히고 말았다. 원래 중국 변방대와도 선이 있었으나, 붙잡힌 날에는 중국 측 경비가 너무 삼엄하던 때라 달리 손 쓸 새가 없었다. 결국 전거리교화소행을 면치 못했다. 열 살 먹은 아들은 구제소에 보내졌다. 대사령을 받고 나온 뒤 제일 먼저 아들을 찾아 나섰으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난 3년 동안 구제소에는 숱한 꽃제비들이 나왔다 도망 갔다를 반복했고, 아들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도망간 뒤 지금껏 소식이 없다고 했다. 다시 붙잡혀 들어오지 않은 것이 어디선가 목숨을 연명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차가운 집에 제 한 몸 누일 곳도 마땅치 않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으며, 마음 붙일 피붙이도 찾을 수 없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장사를 하고 싶어도 밑천이 없어 궁리하던 끝에 옛날 인연을 찾아 다시 도강하기로 했다. 그것이 올해 2월이었다. 다행히 국경경비대에 아는 얼굴도 남아있었고, 중국에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 헌 옷들을 받아올 수 있었다. 그 옷들을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넘기고 얼마간 돈을 받아 연명하기 시작했다. 춘궁기가 시작되고 마을마다 단속이 심해졌고, 국경지역 검열은 더 삼엄해져 도강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먹고 살자니 도강할 틈만 보고 있다가 넘어갔는데 중국 변방대에 체포돼 무산 세관으로 나왔다. 도강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더 심한 몰매를 맞았다. 현재 김씨는 보안서에서 운신조차 어려울 만큼 폭행을 당한 뒤 치료를 받지 못해 골골 앓고 있는 중이다. 조국에서 다시 안아주는 것에 감사히 생각하고 열심히 살 것이지 왜 다시 도강했느냐는 책망에 김씨는 “살고 싶어서 도강했다. 출소해 나왔는데 먹고 살 길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방도만 열어주었더라도 다시 도강을 꿈꾸지 않았을 텐데, 없어진 자식도 찾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돈이 있어야겠기에 하는 수 없이 다시 도강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9년형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총동원 단속에 “먹고 살 길 막막해”

함경남도 함흥시와 흥남시에서는 아사자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함경남도 도당의 한 간부는 먹을 것이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농촌동원으로 각자 먹고 살 길이 막히게 된 것도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보안원들의 길거리 단속이 심해지면서 주민들이 이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생계벌이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함흥시 사포구역에 사는 함미영(가명)씨는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새벽에 일어나 락원군 바닷가까지 나가서 물고기를 받아와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손에 쥐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농장 일을 하고 장사는 겨우 1-2시간 할 수 있으니 장사벌이가 더 시원치 않아졌다. 물고기를 받으려고 락원군까지 다녀오는 도중에 보안원들에게 단속되는 것도 너무나 신경 쓰이고 부담되는 일이다. 지난 6월 초에도 차량으로 물고기를 실어오다가 마을 입구에서 보안원과 딱 마주쳤다.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던 뇌물용 고양이담배를 재빨리 바쳤기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속이 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양이담배 한 막대기(보루)를 바쳤는데 순식간에 1만 2천원이 날아간 셈이다. ‘풍년’ 담배나 ‘고향’, ‘평양’등이 한 보루에 각각 5천원, 7천원, 8천 원 하는 것에 비하면 고양이담배는 보안원들이 뇌물로 선호할만하다. 뇌물을 바치고, 차량 운임비 등을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정말 없다고 한탄한다. “고양이 담배 1막대기를 바치는 건 일도 아니다. 신경 나는 것은 길목마다 서 있는 보안원들에게 바치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거다. 하루는 무사히 넘어갔다고 해도, 다음 날 걸릴 수도 있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두세 번 가야할 길도 한 번 가게 되고 그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차량을 이용해 물고기 장사를 하는 정도면, 함씨는 제법 장사를 잘 하는 축에 드는 사람이다. 흥남 시장에서 부식물 장사를 하는 리옥희(가명)씨는 하루에 겨우 600-700원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아침에는 농장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일일이 출석을 장악하고, 하루 참가 못하면 무조건 2천원을 바쳐야 한다. 하루 600원도 못 버는 사람이 2천원은 어디에서 나겠나. 장사를 잘 하는 여자들은 2천원 바치고 안 나오는 게 낫다고 하지만, 나는 그 돈 벌기도 바쁘니까 농촌동원에 나가야 한다. 그 시간에 장사한다고 괜히 돌아다니다가 보안원을 만나면, 아무리 안 줘도 담배 1갑은 바쳐야 한다. 그 돈이면 우리 집 식구들이 하루 2끼 먹을 걸 3끼 다 챙겨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우리같이 못 사는 사람들은 계속 못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 바에는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편과 자식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렇게는 목숨 부지하기가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리옥희씨처럼 시장 매대에서 장사를 하는 여성들은 “시장 보는 시간이 너무도 짧아 펼쳐놓자마자 얼마 안 있어 어두워지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너무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 1-2끼 죽으로 연명하는 집들이 많다.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도 생긴다.

■ 사회

국경경비대, 도강 눈감아 돈벌이

식량난으로 불안한 시절이 계속되면서 국경경비대원들의 비법행위도 여전히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국경경비대원들은 풀밥 먹는 전연지대와 달리 옥수수밥이라도 먹는 편이지만, 풍족하게 먹을 정도는 안 되다보니 도강을 돕고 돈 받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군관과 사관(하사관)들이 조를 짜서 조직적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도강 문제가 제기되면 출당과 철직은 물론 법 처벌을 면할 수 없지만, 건수만 생기면 벌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해있다. 생활비 4천원에 본인 배급은 물론 가족들 배급까지 받는 군관들이라고 덜 하지 않다. 오히려 군관들의 욕심이 사관들보다 더하다. 언젠가 제대해야 하는데, 그때 사회에 나가 뭐라도 해먹고 살려면 돈을 챙길 수 있을 때 많이 챙겨두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강자와 밀수자를 붙잡아 좋은 소리 한 번 듣는 것보다 그냥 눈감아주고 돈을 버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도강자와 밀수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적당히 단속하고 적당히 돈을 벌 기회라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안전보위부와 국경경비사령부에서 합동 검열이나 교차검열을 해도 불법 도강 조력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량강도 혜산시 국경경비군인들은 직접 동이나 약초 등 밀매매에 가담하기도 한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보위사령부 검열이 진행됐는데, 군관 5명과 사관 7명이 밀매매행위로 체포됐다. 이들은 혼자 먹고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군사 과업을 달성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지휘부에서 내리는 각종 군사 과업도 군관들의 비법행위를 부추기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만도 초소꾸리기 과제 때문에 군관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순전히 자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군인이 무슨 돈이 있는가. 과업 수행을 하려면 밀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적당히 (뇌물을) 먹고 적당히 단속하는 것이 국경경비대원들의 처신”이 됐다. 한편 당국에서는 춘궁기 들어 국경연선지역에서 손전화기 단속과 주민 신고 사업 등을 더 강조하고 있다. 손전화기 사용자들이 만약 해당 기관에 자수하고 전화기를 바치면 용서해주겠다는 선전도 하고 있다. 그러나 매번 같은 소리를 들었던 주민들은 이번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분위기다.

삼엄한 농촌동원에도 도강 늘어

고난의 농촌 동원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길목마다 보안원들로 뒤덮여 사람 그림자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보이는 족족 농장으로 보내기 때문에 되거리 장사꾼들이 특히 애를 먹고 있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새벽부터 부지런히 낟알이라도 얻어와 시장에 내다팔아야 하는데, 돌아오는 도중에 보안원들에게 걸리기 십상이다. 장사 밑천이라도 있는 상인들이야 단속원들에게 사정을 봐달라며 뇌물이라도 먹이지만, 발품 팔아 소소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로선 피하는 게 상책일 뿐 다른 대책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장사하기가 더 어려운 계절이 바로 농촌동원 기간인 요즘이다. 굶주리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비극의 계절이기도 하다. 보안원들의 단속이 더 강화된 만큼 역으로 도강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는 못 살겠다”는 것이 도강하려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당장 끼니거리가 없는 사람들과 전에 도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최근 량강도 혜산, 평안북도 신의주, 함경북도 회령 등 국경 지역에서는 검열, 검색이 몇 배나 심해졌다. 춘궁기 들어 중국으로 도강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당국에서는 국경지역 검열을 강화하는 한편 특히 탈북자 가족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탈북한 가족과 손전화기로 연락을 취해온 세대를 적발해 외지로 추방했는데, 그 수가 약 70세대에 이른다. 이 중 30여 명이 교화형 처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