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중

북방 호걸 전백록(全百祿)을 아십니까?

북방 호걸 전백록(全百祿)을 아십니까?

-함경북도 온성-

2001년 입국, 서울 양천구 강희섭(가명)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이 있다. 그곳이 사람 살기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늘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나같이 고향 땅을 멀리 떠나, 살아생전 언제 다시 밟아볼지 모를 사람에게,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잡으면서 즐겁게 뛰놀며 꿈을 키우던 곳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실향의 아픔이 올라올 때면 내 절로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며 고향땅을 그려보군 한다.

“뒷동산에 백살구꽃

곱게도 피어나면

고향따라 벌들이

날아드는 곳

그곳이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집앞에는 풍년벌이

아득히 펼쳐지고

가을이면 오곡이

물결치는 곳

그곳이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아 그리운

어머니 품이여”

내가 살던 고향은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군이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서북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남쪽으로는 회령시, 동쪽으로는 새별군(경원군)과 접해 있다. 인구는 13만 명 가량 된다. 경지 면적으로는 논이 약 2,000정보이고, 밭이 7,000정보나 된다. 나머지가 산지인데, 총면적의 87%를 차지한다. 대체로 해발고가 낮은 야산이다. 최북단이라고는 하지만 기후도 비교적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며 북부지대치고는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특히 두만강 연선은 아득한 평야지대로 벼농사가 잘 되며, 그밖에 참외, 수박, 오이, 배추, 고추, 마늘, 시금치 등 채소가 잘 되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해마다 중앙에서 고추나 마늘, 수박, 참외 같은 것을 가져가곤 한다.

야산마다 백살구나 사과배 과일나무를 가꾸어 봄이 되면 연분홍 살구꽃과 햐얀 사과배꽃이 마을을 둘러싸고 피어있어 참으로 볼만한 경치를 이룬다. 어디 그뿐이랴. 웬만한 땅을 삽자루 한 두 기장만큼 파면 석탄(갈탄)이 나오는, 북부탄전이다. 풍인탄광, 주원탄광, 상화탄광, 동포탄광, 온성탄광, 창평탄광, 강안탄광, 이런 탄광들에는 노동자만 각각 2-3천 명씩이나 되고, 석수탄광과 룡남탄광, 50호탄광, 수산탄광을 비롯한 30여개의 중소탄광들도 온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온성 사람들은 석탄더미 위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땔 것이 많고 농사도 잘 되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고장, 온성. 온성은 그야말로 사람 살기에 나무랄 데 없는 고장이다. 여기는 유물유적들도 많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여진족과의 담판에서 항복을 받아낸 ‘수항루’(북한 국보 제 50호), 북방개척의 명장 신립장군의 공적을 보여주는 비석과 자모산성 등은 기나긴 역사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지역차별을 딛고 황해도병마절도사까지 올랐던 전백록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태조가 서북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등용하지 말라고 한 이래 평안도와 함경도에는 500년 동안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혹 과거에 급제해도 현령 정도였고, 무장 중에는 정봉수와 전백록 두 사람이 유일했다. 전백록은 북방 호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풍당당했고, 청렴결백하고 충직해서 지역적인 차별 속에서도 스스로 빛 난 사람이었다. 청렴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한 여인이 시집 온 지 몇 해 되도록 임신을 못해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고 있는데 별안간 흰 사슴 한 마리가 울타리 안으로 뛰어 들어와 쓰러졌다. 여인은 틀림없이 무엇엔가 쫓겨 온 것이라 짐작하고, 사슴을 뒤뜰 안에 데려가 물을 먹인 뒤 입고 있던 치마를 덮어 숨겨 두었다. 얼마 안 있어 포수 2명이 헐레벌떡 들어와 사슴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베틀에 앉은 채로 태연하게 “사슴은 온 적도 없거니와 아낙네 홀로 속옷차림으로 일하고 있는 집에 뛰어드는 무례가 어디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포수들은 황급히 사과하고 집을 떠났다. 그들이 멀리 간 것을 확인한 여인은 사슴을 몰래 놓아주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꿈에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옥동자를 얻으리라”고 전했다. 그 후 그토록 기다려마지 않던 아이가 생겼고, 낳고 보니 꿈대로 사내아이였다. 흰 사슴이 주고 간 선물이라며, 아이의 이름을 백록이라 지었다. 그 백록이 자라 현종 임금 시절에 경흥부사가 되었다.

어느 날 백록이 잠을 자는데, 어머니가 몹시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너무 놀란 나머지 “어머니, 어머니” 부르며 깨어났다. 날이 밝자마자 어머니를 찾아뵈려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여러 하인들이 가마를 탄 그의 뒤를 따랐다. 온성 집에 도착한 그는 “어머니, 백록이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어머니를 찾았다. 곧 열릴 줄 알았던 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안에 계신 것을 확인한 백록이 문을 열어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으나, 어머니는 문을 열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 일이 없다. 에미를 보겠다고 이렇게 바쁜 모내기철에 숱한 하인들을 거느리고 올라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몹쓸 놈 같으니”라는 호통만 들었다. 백록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공직자로서 제 분수를 지키라는 준엄한 가르침이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바로 백록의 어머니가 그런 분이다.

우리 온성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훌륭한 분의 이야기를 대대로 전해 들으며 자라왔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백록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나서 자란 고향 온성은 남부럽지 않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과 기후 등 모든 면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 어느 고장과 비교해도 짝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빨리 통일이 되어 살아생전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기를 소원하며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잘 살 거라는 선전, 지겹다”

함경북도 은덕군 주민들은 정치 강연회로 대표되는 당의 선전이 지겹다는 반응이다. “당의 선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들어야 한다. 아주 만성적이다. 당에서는 형식적으로 틀에 매어 코 꿴 송아지처럼 끌고 다니려고만 하지,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을지는 전혀 생각 안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7월 7일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김길남(58세)씨는 “강연회 같은데 참가하면 계속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선전만 하는데 지금 현실이 어디 그런가. 해마다 총동원을 하는데 식량이 풀리지 않아 백성은 옥수수죽도 없어 연명하지 못해 죽는 사람들도 있고, 젊은 여자들은 자기들이 먼저 중국에 팔려가겠다고 한다. 과연 이 땅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고 당의 선전에 불신을 표했다. 김씨는 직장 동료 중에 “당에서는 래년이 오면 다 잘 살 게 될 거라고 선전하는데 이제 그만 좀 하면 좋겠다. 말하는 사람도 지겹지 않나? 그거 써준 사람도 아마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자기도 안 믿으면서 써주는 것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예전 같으면 ‘말 반동’으로 당장 보고가 올라갔겠지만, 요즘엔 애써 신고하는 사람도 없다.

오봉탄광 노동자 리학철(가명)씨는 “오봉탄광 지구만 해도 주민의 90% 이상이 소토지 농사에 명줄을 걸고 산다. 겨울에는 석탄이라도 팔아 살지만, 더운 여름에 석탄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지난달에 소토지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돌볼 시간이 없다. 농촌동원이라고 하구한날 끌려 다니고, 꼼짝달싹 못하게 통제하고 조직생활이라고 매번 정치 강연을 들으라고 하니 정말 못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소토지 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사람 손길이 많이 가야 되고 품도 많이 들여야 가을철에 수확해 먹을 수 있는데, 점심 때 잠깐 농사지으러 가려고 해도 거리가 멀어서 다녀오기가 바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오봉노동자구 녀맹원인 장금옥(가명)씨도 “봄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비료도 주고 김도 매야 되겠는데, 농촌동원에 잡혀 농사지을 시간이 없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는 아예 집 문을 잠그고 산에 올라가 소토지 농사 밭에다가 비닐 초막 짓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중국 식당은 매일 명절 분위기”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하지만 날로 퍼지는 분위기다. 중국을 드나드는 무역일군들은 물론이고 사사려행자로 다녀온 사람들도 중국의 발전상에 혀를 내두른다. 처음 다녀온 사람들은 얼이 빠질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다.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도 급속한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중국 화룡에 친척이 있어 1년에 한 두 번은 간다는 함북 무산 최진룡(가명)씨는 “중국이야말로 지상락원이다. 중국 식당들은 매일 명절 분위기다. 우리는 명절이 돼도 옥수수밥 한 번 푸짐하게 먹을 수 없지 않느냐. 또 중국은 전기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한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밤이 되면 우리는 깜깜해서 어디 다닐 수도 없는데, 어떻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천지차이냐? 중국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고 한탄했다.

올해 처음으로 신의주를 거쳐 단동에 다녀온 평성의 노동자 고창욱(가명)씨는 “내 나이가 올해로 50이다. 지금껏 장가들어서 위생지(화장실용 화장지)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신문지 아니면 아이들이 공부하고 버린 종이를 써왔다. 농촌에 가면 이런 종이도 구경하기가 어렵다. 샴푸 같은 것도 중국에서 시장에 흘러 들어와서야 이런 게 있구나 알았다. 중국 물품이 막 흘러들어오면서 별의 별 것을 다 구경해봤다. 어떤 것은 중국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서 폐기된 것들이라는데, 우리는 구경조차 못했던 것들이 많다.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막상 가보니 상상을 뛰어넘었다. 중국 사람들은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들도 안 먹는 풀죽을 사람이 먹고 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것 아니냐. 바깥세상은 저렇게나 발전했는데, 어째서 우리는 모계 씨족 공동체 단계에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왜 모계 씨족 공동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녀자들이 먹여 살리고 있지 않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고씨는 전국 시장에 풀린 물건들 중에 자체 생산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거의 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보니, “일부 사람만 빼면 온 나라가 마치 거지 왕국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환상 버려라”

녀맹위원회에서도 도강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식량 사정이 나빠질수록 중국에 시집을 가는 형식으로 도강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도강하겠다는 허튼 잡생각을 뿌리 뽑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는 것이 녀맹위원회의 주장이다. 탈북 금지령에 농촌총동원 결근자들이 불화살을 맞고 있다. 성실하게 참가하지 않는다는 경고로도 모자라 “중국에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엄한 추궁을 한다. 총동원에 안 나가는 이유야 얼마든지 많다.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가거나 그 시간에 식용 풀뿌리라도 캐야 하고, 일하다가 쓰러져 다시 못 일어나기도 한다. 집에 아픈 사람이라도 있으면 몰래 장사라도 다녀야 약값을 벌 수 있으니 결근하게 된다. 다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회의 때마다 결근자들을 강제로 끌어내 망신을 주고 욕설을 퍼붓기 일쑤다. 게다가 “조국의 반역자, 배신자”라는 정치적 모자까지 씌우려고 하니, 여성들의 반발이 커져만 간다. “올해만 농사를 잘 짓고 참으면 강성대국의 대문이 곧 열릴 것”이라고 당의 선전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가 없다.

은덕군에서 여성 도강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함경북)도에서 농사가 제일 안 되고, 군수공장과 탄광이 많아 노동자들이 밀집해있고 한쪽 구석에 위치해 교통도 안 좋다.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얼마 없고,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딸이라도 한 명 (강을) 건너간 집은 그런대로 도움을 받아 옥수수밥이라도 떨구지 않고 먹는다. 그걸 보고 도강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니까 녀맹원들을 대상으로 정치 강연을 강하게 내리먹인다”는 것이 보안원의 설명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은덕군에서 발생한 도강자는 총 35명에 달한다. 오봉탄광에 다니는 신혜림(가명)씨는 올해 스물여섯 살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올해는 집 살림이 하도 구차해서 선을 알선해주면 팔려가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 집도 도와주고, 나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똑똑한 형제나 도강 경험자를 만나지 못하면 엄두를 못 내지만 여자들은 시집가는 명목으로 가려는 경우가 많다. 보안당국에서는 주민들의 이상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받는 통제 기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지금 도강하면 민족 반역자”

북한 당국은 도강하지 말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을까? “지금 시기에 도강하는 자는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붕괴하려고 하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낙인이 핵심이다.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처벌도 “국경연선에서 도강한 자는 무조건 5년 이상의 형기를 주어 법 처벌을 강화하라”는 지시에 따라 중형이 부과된다. 도강한 가족이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거나 추정되면 도강할 낌새가 없어도 “무조건 안쪽 농촌 지역으로 이주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예전에는 도강하다 걸렸다고 해도 법일군들이 뇌물이나 돈을 받고 죄목을 바꿔주거나, 병보석으로 빠져나가게 해주었다. 지금은 뭉칫돈을 줘도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나섰다가 영영 매장되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다. 국경지역 단속이 심해질수록 교화소는 죄수들로 넘쳐난다. 생계형 범죄자들에 도강자들까지 무더기로 잡혀 들어오면서 작년 9월 대사령 이후 좀 한가해지는 가 싶었던 전거리교화소는 다시 꽉 들어차고 있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경우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적발된 도강자는 총 30여 명에 달하는데, 80% 이상이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됐다. 지난 6월 초에는 청진시 여성 3명이 무산읍에 사는 주민의 안내로 도강하려다가 붙잡혀 역시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 결정이 났다. 6월 20일 현재 6명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 역시 전거리교화소행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단속에 주민들 “피곤해”

도강자가 늘면 늘수록 고달파지는 건 일반 주민들이다. 당국으로부터 들들 볶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농촌동원으로 가뜩이나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산으로 들로 풀뿌리라도 캐러 다녀야 하는데 탈북자 단속 인민반 정치 강연까지 들으러 다녀야 하니 너무 피곤하다고 하소연한다. 매일같이 목청 좋은 선전원이 제아무리 목에 핏대를 세우며 “탈북하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얘기해도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선지역 주민들은 더 피곤하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까지 들이닥치는 단속반들에 가족 중에 탈북자라도 있다 치면 심심산골로 추방당하기 일쑤다.

함경북도 무산에 사는 림송이(가명)씨는 “먹을 게 없으니 먹을 것이 나오는 쪽을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 그런 사람들(도강자)은 그래도 머리도 깨이고, 수완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하는 거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도강)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아침 일찍 농장에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해 떨어지기 전에 잠깐 장사하고, 집에 돌아오면 밀린 일에 다음날 장사할 준비에 애들 거두고 하다보면 한밤중이 된다. 그 사이에 정치 강연이다 인민반 회의다 불러내서 탈북하면 조국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떠드는데 진짜 하나도 안 들린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고 했다.

정부의 매일 계속되는 탈북자 처벌 경고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주부들만이 아니다. 직장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 지경인데, 하루 이틀만 무단으로 결근해도 당장 찾으러온다. 도강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에 행불자가 있는 집들은 감시가 더 심해졌다. 조직에 보고하지 않고는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는다. 도강 전과자들을 더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를 강화해 탈북을 막으라는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지금은 황해도 가족 탈북 사건도 있고 춘궁기고 해서 시, 군당에서도 알아서 바짝 엎드리는 기간이다. 도강을 눈감아주었던 보안원이나 보위부원들도 잘못했다가는 정복을 벗을 수도 있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형제가족 월남에 전국 탈북 경계령

지난 6월 15일, 황해남도에서 한 형제 가족이 전마선을 타고 남한에 월남하자 해당 지역 보위부원과 보안원이 철직을 당하고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모든 해안선에 탈북 경계령이 내려져 바다출입이 까다로워졌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더 철저한 검증을 거쳐 바다출입증을 선별적으로 내주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기 쉬운 서해안 전마선(傳馬船)은 출입이 전면금지 돼 직격탄을 맞았다. 근거리 해안에서 물고기 잡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전국적으로 탈북자들을 막을 데 대한” 지시문을 전국 시, 군에 내려 보내고, 국경연선지역에는 특별히 통제 강화를 지시했다. 아울러 국경연선지역으로 들어가는 출입증 발급을 중단했다. 연선지역에서 내륙으로 나오는 것은 괜찮지만, 내륙에서 국경 도시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시, 군당 인민위원회와 보위부의 정치 강연도 강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당국의 호들갑스러운 선전에 무관심하다. 풀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귀에 정치 강연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황해남도 해주시 해주읍에 사는 정일영(가명)씨는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한 그릇의 옥수수밥도 먹어보지 못했다. 산에서 캔 나물에 옥수수가루를 섞어 풀죽을 쑤어 먹었을 뿐이다.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참고 견디더라도 이제 네다섯 살 된 아이들은 배를 곯다 못해 시름시름 앓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절로 안타깝게 한다. 정씨는 “이 땅에서 아무리 고생하고 애써도 늘 이 모양, 이 꼴이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월남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월남을 진짜 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국의 탈북 금지 선전과 민심의 괴리가 커져만 간다.

탈북자도 고향 자랑하고 싶다

누구도 제 고향을 등지며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국에서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떠나는 것이다. 등 떠민 건 생각 안하고, 왜 가느냐고 호통 치며‘민족의 반역자’라는 무서운 낙인까지 찍는다.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에 받은 건 상처뿐이고, 남은 건 악뿐이다. 그러니 탈북자들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그런 그들에게도 나서 자란 제 고향은 꿈에도 그리운 곳이고, 통일이 되면 꼭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됐어도 제 터를 지켰을 순박한 이들이 남한에서 생존분투하면서 고향 자랑을 보내왔다. 고향에 보내는 일종의 연서(戀書)다. 남북한 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너무 정치적으로 다루지 말고, ‘신(新)이산가족’이라는 측면에서 보듬어주면 좋겠다.

■ 정치생활

“잘 살 거라는 선전, 지겹다”

함경북도 은덕군 주민들은 정치 강연회로 대표되는 당의 선전이 지겹다는 반응이다. “당의 선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들어야 한다. 아주 만성적이다. 당에서는 형식적으로 틀에 매어 코 꿴 송아지처럼 끌고 다니려고만 하지,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을지는 전혀 생각 안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7월 7일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김길남(58세)씨는 “강연회 같은데 참가하면 계속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선전만 하는데 지금 현실이 어디 그런가. 해마다 총동원을 하는데 식량이 풀리지 않아 백성은 옥수수죽도 없어 연명하지 못해 죽는 사람들도 있고, 젊은 여자들은 자기들이 먼저 중국에 팔려가겠다고 한다. 과연 이 땅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고 당의 선전에 불신을 표했다. 김씨는 직장 동료 중에 “당에서는 래년이 오면 다 잘 살 게 될 거라고 선전하는데 이제 그만 좀 하면 좋겠다. 말하는 사람도 지겹지 않나? 그거 써준 사람도 아마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자기도 안 믿으면서 써주는 것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예전 같으면 ‘말 반동’으로 당장 보고가 올라갔겠지만, 요즘엔 애써 신고하는 사람도 없다.

오봉탄광 노동자 리학철(가명)씨는 “오봉탄광 지구만 해도 주민의 90% 이상이 소토지 농사에 명줄을 걸고 산다. 겨울에는 석탄이라도 팔아 살지만, 더운 여름에 석탄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지난달에 소토지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돌볼 시간이 없다. 농촌동원이라고 하구한날 끌려 다니고, 꼼짝달싹 못하게 통제하고 조직생활이라고 매번 정치 강연을 들으라고 하니 정말 못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소토지 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사람 손길이 많이 가야 되고 품도 많이 들여야 가을철에 수확해 먹을 수 있는데, 점심 때 잠깐 농사지으러 가려고 해도 거리가 멀어서 다녀오기가 바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오봉노동자구 녀맹원인 장금옥(가명)씨도 “봄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비료도 주고 김도 매야 되겠는데, 농촌동원에 잡혀 농사지을 시간이 없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는 아예 집 문을 잠그고 산에 올라가 소토지 농사 밭에다가 비닐 초막 짓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지금 도강하면 민족 반역자”

북한 당국은 도강하지 말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을까? “지금 시기에 도강하는 자는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붕괴하려고 하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낙인이 핵심이다. 정치적 생명을 끝장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처벌도 “국경연선에서 도강한 자는 무조건 5년 이상의 형기를 주어 법 처벌을 강화하라”는 지시에 따라 중형이 부과된다. 도강한 가족이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거나 추정되면 도강할 낌새가 없어도 “무조건 안쪽 농촌 지역으로 이주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예전에는 도강하다 걸렸다고 해도 법일군들이 뇌물이나 돈을 받고 죄목을 바꿔주거나, 병보석으로 빠져나가게 해주었다. 지금은 뭉칫돈을 줘도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나섰다가 영영 매장되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서다. 국경지역 단속이 심해질수록 교화소는 죄수들로 넘쳐난다. 생계형 범죄자들에 도강자들까지 무더기로 잡혀 들어오면서 작년 9월 대사령 이후 좀 한가해지는 가 싶었던 전거리교화소는 다시 꽉 들어차고 있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경우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적발된 도강자는 총 30여 명에 달하는데, 80% 이상이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됐다. 지난 6월 초에는 청진시 여성 3명이 무산읍에 사는 주민의 안내로 도강하려다가 붙잡혀 역시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 결정이 났다. 6월 20일 현재 6명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 역시 전거리교화소행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단속에 주민들 “피곤해”

도강자가 늘면 늘수록 고달파지는 건 일반 주민들이다. 당국으로부터 들들 볶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농촌동원으로 가뜩이나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산으로 들로 풀뿌리라도 캐러 다녀야 하는데 탈북자 단속 인민반 정치 강연까지 들으러 다녀야 하니 너무 피곤하다고 하소연한다. 매일같이 목청 좋은 선전원이 제아무리 목에 핏대를 세우며 “탈북하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얘기해도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선지역 주민들은 더 피곤하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까지 들이닥치는 단속반들에 가족 중에 탈북자라도 있다 치면 심심산골로 추방당하기 일쑤다.

함경북도 무산에 사는 림송이(가명)씨는 “먹을 게 없으니 먹을 것이 나오는 쪽을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 그런 사람들(도강자)은 그래도 머리도 깨이고, 수완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하는 거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도강)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아침 일찍 농장에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해 떨어지기 전에 잠깐 장사하고, 집에 돌아오면 밀린 일에 다음날 장사할 준비에 애들 거두고 하다보면 한밤중이 된다. 그 사이에 정치 강연이다 인민반 회의다 불러내서 탈북하면 조국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떠드는데 진짜 하나도 안 들린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고 했다.

정부의 매일 계속되는 탈북자 처벌 경고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주부들만이 아니다. 직장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옴짝달싹할 수 없을 지경인데, 하루 이틀만 무단으로 결근해도 당장 찾으러온다. 도강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에 행불자가 있는 집들은 감시가 더 심해졌다. 조직에 보고하지 않고는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는다. 도강 전과자들을 더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를 강화해 탈북을 막으라는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지만, 지금은 황해도 가족 탈북 사건도 있고 춘궁기고 해서 시, 군당에서도 알아서 바짝 엎드리는 기간이다. 도강을 눈감아주었던 보안원이나 보위부원들도 잘못했다가는 정복을 벗을 수도 있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형제가족 월남에 전국 탈북 경계령

지난 6월 15일, 황해남도에서 한 형제 가족이 전마선을 타고 남한에 월남하자 해당 지역 보위부원과 보안원이 철직을 당하고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모든 해안선에 탈북 경계령이 내려져 바다출입이 까다로워졌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더 철저한 검증을 거쳐 바다출입증을 선별적으로 내주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기 쉬운 서해안 전마선(傳馬船)은 출입이 전면금지 돼 직격탄을 맞았다. 근거리 해안에서 물고기 잡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전국적으로 탈북자들을 막을 데 대한” 지시문을 전국 시, 군에 내려 보내고, 국경연선지역에는 특별히 통제 강화를 지시했다. 아울러 국경연선지역으로 들어가는 출입증 발급을 중단했다. 연선지역에서 내륙으로 나오는 것은 괜찮지만, 내륙에서 국경 도시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시, 군당 인민위원회와 보위부의 정치 강연도 강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당국의 호들갑스러운 선전에 무관심하다. 풀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 귀에 정치 강연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황해남도 해주시 해주읍에 사는 정일영(가명)씨는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한 그릇의 옥수수밥도 먹어보지 못했다. 산에서 캔 나물에 옥수수가루를 섞어 풀죽을 쑤어 먹었을 뿐이다.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참고 견디더라도 이제 네다섯 살 된 아이들은 배를 곯다 못해 시름시름 앓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절로 안타깝게 한다. 정씨는 “이 땅에서 아무리 고생하고 애써도 늘 이 모양, 이 꼴이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월남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월남을 진짜 한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국의 탈북 금지 선전과 민심의 괴리가 커져만 간다.

■ 사회

“중국 식당은 매일 명절 분위기”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하지만 날로 퍼지는 분위기다. 중국을 드나드는 무역일군들은 물론이고 사사려행자로 다녀온 사람들도 중국의 발전상에 혀를 내두른다. 처음 다녀온 사람들은 얼이 빠질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다.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도 급속한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중국 화룡에 친척이 있어 1년에 한 두 번은 간다는 함북 무산 최진룡(가명)씨는 “중국이야말로 지상락원이다. 중국 식당들은 매일 명절 분위기다. 우리는 명절이 돼도 옥수수밥 한 번 푸짐하게 먹을 수 없지 않느냐. 또 중국은 전기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한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밤이 되면 우리는 깜깜해서 어디 다닐 수도 없는데, 어떻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천지차이냐? 중국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고 한탄했다.

올해 처음으로 신의주를 거쳐 단동에 다녀온 평성의 노동자 고창욱(가명)씨는 “내 나이가 올해로 50이다. 지금껏 장가들어서 위생지(화장실용 화장지)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신문지 아니면 아이들이 공부하고 버린 종이를 써왔다. 농촌에 가면 이런 종이도 구경하기가 어렵다. 샴푸 같은 것도 중국에서 시장에 흘러 들어와서야 이런 게 있구나 알았다. 중국 물품이 막 흘러들어오면서 별의 별 것을 다 구경해봤다. 어떤 것은 중국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서 폐기된 것들이라는데, 우리는 구경조차 못했던 것들이 많다.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막상 가보니 상상을 뛰어넘었다. 중국 사람들은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들도 안 먹는 풀죽을 사람이 먹고 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것 아니냐. 바깥세상은 저렇게나 발전했는데, 어째서 우리는 모계 씨족 공동체 단계에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왜 모계 씨족 공동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녀자들이 먹여 살리고 있지 않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고씨는 전국 시장에 풀린 물건들 중에 자체 생산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거의 다 중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보니, “일부 사람만 빼면 온 나라가 마치 거지 왕국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환상 버려라”

녀맹위원회에서도 도강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식량 사정이 나빠질수록 중국에 시집을 가는 형식으로 도강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도강하겠다는 허튼 잡생각을 뿌리 뽑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는 것이 녀맹위원회의 주장이다. 탈북 금지령에 농촌총동원 결근자들이 불화살을 맞고 있다. 성실하게 참가하지 않는다는 경고로도 모자라 “중국에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엄한 추궁을 한다. 총동원에 안 나가는 이유야 얼마든지 많다. 소토지 농사를 지으러 가거나 그 시간에 식용 풀뿌리라도 캐야 하고, 일하다가 쓰러져 다시 못 일어나기도 한다. 집에 아픈 사람이라도 있으면 몰래 장사라도 다녀야 약값을 벌 수 있으니 결근하게 된다. 다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회의 때마다 결근자들을 강제로 끌어내 망신을 주고 욕설을 퍼붓기 일쑤다. 게다가 “조국의 반역자, 배신자”라는 정치적 모자까지 씌우려고 하니, 여성들의 반발이 커져만 간다. “올해만 농사를 잘 짓고 참으면 강성대국의 대문이 곧 열릴 것”이라고 당의 선전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가 없다.

은덕군에서 여성 도강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 (함경북)도에서 농사가 제일 안 되고, 군수공장과 탄광이 많아 노동자들이 밀집해있고 한쪽 구석에 위치해 교통도 안 좋다.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얼마 없고,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딸이라도 한 명 (강을) 건너간 집은 그런대로 도움을 받아 옥수수밥이라도 떨구지 않고 먹는다. 그걸 보고 도강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니까 녀맹원들을 대상으로 정치 강연을 강하게 내리먹인다”는 것이 보안원의 설명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은덕군에서 발생한 도강자는 총 35명에 달한다. 오봉탄광에 다니는 신혜림(가명)씨는 올해 스물여섯 살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올해는 집 살림이 하도 구차해서 선을 알선해주면 팔려가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 집도 도와주고, 나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똑똑한 형제나 도강 경험자를 만나지 못하면 엄두를 못 내지만 여자들은 시집가는 명목으로 가려는 경우가 많다. 보안당국에서는 주민들의 이상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받는 통제 기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