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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11호

■ 시선집중

기획연재 – 2012, 강성대국의 조건(1) 식량문제, 꼭 푼다

1. 식량 문제, 꼭 푼다

"식량 문제, 내년에는 꼭 풀어야 한다." 역시 먹는 것이 문제다. 내년 4월 15일이 되면, 쌀이 그득한 곳간에서 주민들에게 배급을 나눠주어야 한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올해도 농사 전망은 밝지 않다. 고질적인 비료난과 농자재 부족에 올 겨울 유난했던 혹한과 초여름 가뭄과 뒤이은 집중폭우 등 기후까지 뭐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다. 인력은 어떤가? 춘궁기 심한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논밭에서 일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고 있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자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식량 문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중국에서 얼마 들어왔냐고? “묻지 마라, 피곤하다”

최근 중국과의 밀착행보를 겨냥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중국에서 식량이 얼마 들어왔는지 중앙당 간부들에게 물었다. 곧바로 “묻지 마라, 피곤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셈을 해본 사람들마다 10만 톤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간부에 따라 5만 톤 정도 들어왔다는 사람이 있고, 7-9만 톤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10만 톤은 안 넘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간신히 평양 시내에만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제 다 떨어져 평양 식량 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구상은 원대하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믿을 데는 해외대표부뿐?

역시 믿을 곳은 해외대표부뿐인가? 당, 정 핵심 일군들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최근 중앙당은 모든 해외대표부에 식량 과제를 할당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식량 할당량을 전해들은 해외대표부마다 기절초풍할 지경이라고 한다.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 얘기냐?”는 항변이 터져 나온다.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해외대표부의 한 일군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했다. 올 겨울, 군량미 과제도 힘들어서 헉헉대다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손들었는데, 이번 식량 과제는 군량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라고 했다. 군량미 때보다 아무리 못해도 40배 이상 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대체 할당량이 얼마냐고 물으니, “아직 공식 전달된 것이 아니”라면서도, “각 대표부마다 5천 톤은 내야한다”고 귀띔했다. “50톤도 아니고 5천 톤이라니, 분명히 내가 듣고도 내 귀가 의심스러워 다시 물어봤다”며,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을 뿐 확인된 사실이라고 했다. 각자 맡은 각종 과제에 본사 임무도 완성하기 힘든데, 그 많은 식량 자금을 어디서 끌어 모으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수행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일부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반응은 자못 격렬하다. 최근 무역성 간부들 숙청 얘기가 나돌면서 식량 구입을 핑계로 해외대표부 일선 실무자들까지 다 치려는 게 아닌 가 의심하는 눈도 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식량을 구입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곤 했지만, 올해는 2월 이후 아무 지시가 없어 본국의 식량 사정이 좀 나아졌나 보다 생각했다가 완전히 뒤통수 맞은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관망하자는 부류도 있다. 아직 본국에서 어떤 공식적인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니 기다리자는 것이다. 이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우리를 괴롭히겠느냐, 우리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식량을 댈 수 있다는 말이냐”며 애써 불안감을 지우려는 분위기다.

국내 간부들은 “그동안 그렇게 식량문제가 안 풀린다고 말할 때는 하나도 안 듣더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제야 지시를 내리는데 너무 늦은 거 아니냐. 지금까지 뭐하다가 일이 코앞에 들이닥쳐서야 이렇게 바빠하는지 모르겠다. 강성대국 대문까지 가기도 전에 다 죽게 생겼다”며 할당 지시가 너무 늦었다고 못마땅해 한다. 안에서는 막연히 밖에 나가있는 일군들만 쳐다보고, 밖에 있는 일군들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반발하는 모습이다.

해외 원조 단체 접촉 쉬워진다?

한편 해외 원조 단체들의 지원 폭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현장 분배가 원칙인 대북 지원 단체들이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하곤 했는데, 그들이 가고난 후 담당 간부들이 처벌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자, 해외 단체들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되면서 자연히 식량 원조 요청도 줄었다. 해외 관계자와 은밀히 접촉하려는 사람은 있어도, 공식적으로 상대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일단 담당 일군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해외단체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지원 받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방향에서 새 방침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앞으로 해외 원조 단체들과 접촉하는 간부들을 조사하는 일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하고, 지원하는 과정 전체를 감시하는 일은 인민보안부에서 하는 식으로 역할분담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해외 원조 단체들의 요구조건도 일부 수용하는 방향의 새 방침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조만간 해외 원조 단체들에 대대적으로 식량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농업 투자만이 살 길

중앙당에서는 당장 내년을 바라보며 해외 원조를 요청하고 해외대표부에 식량 수입을 다그치는 한편, 근본 대책 마련에도 부심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고, 기술도 낙후하고, 비료가 없고, 토지가 적어 해마다 식량고통을 겪어왔다. 해외에서 일정한 식량지원이 없으면 앞으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농업에 투자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농업 기술 혁신, 설비 투자, 종자 개선, 비료 등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제일 관건은 역시 농업에서도 전력이다. 농업 현대화와 전력문제를 해결하면 농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중앙당의 진단과 대책이다. 단기적으로는 해외대표부와 해외로부터의 식량 수입을, 장기적으로는 농업 투자를 이끌어내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실행 가능성이다. 농업 투자를 누가 어떻게 끌어낼 지가 관건인 것이다

감자 덕에 겨우 숨통 트여

함경북도 농민들은 햇감자 소출이 적어 실망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3월부터 산나물과 풀뿌리를 캐먹으며 연명해온 농가에서 특히 감자 수확에 좋아하는 모습이다. 작년에 받았던 분배량이 턱없이 부족해 일찌감치 식량이 떨어진 농가가 많았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직하리 남새농장에 다니는 박금화(가명)씨는 “우리 집은 3월 말부터 산나물을 캐서 풀죽 쒀먹으며 목숨을 유지해왔다. 지금은 텃밭에 심었던 감자를 캐먹을 수 있어 산나물을 먹을 때보다는 낫다”고 했다. 농민들은 시내 주민들과 달리 장사를 할 수가 없어 농사가 거의 유일한 생계원이다. 작년 여름에 수해피해로 소출이 적었는데, 안 걷겠다던 군량미를 올해 초에 다시 거둬가는 바람에 여름철 식량을 미리 챙겨놓을 수 없었다.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풀죽과 감자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 농촌 총동원 시기에 당 일군들이 워낙 거세게 몰아붙여 하는 수없이 출근했던 농민들은 총동원이 끝나자 하나둘 결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농장 일군들은 노력공수를 철저히 따져 가을 분배할 때 확실하게 셈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농민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분배량만 바라보고 사는 것보다, 개인 농사를 짓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농민들은 “가을에 황금산을 안겨준다고 해도, 당장 굶어죽겠는데 언제 그때를 바라고 하늘만 쳐다보겠는가. 지금 목숨을 유지하고 살아남는 방법은 소토지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진 시당에서는 올해 초 각 기관, 기업소에 농장 부업지를 노동자 인원에 따라 차등 배분 해주고 감자 농사를 지으라고 권고했다. 김책제철소와 같은 특급기업소를 제외하고, 일반 기업소들은 환영의사를 표했다. 공장들마다 자체 예산이 부족해 노동자들로부터 갹출해 종자와 비료 등 농자재를 구입했다. 청진버스공장은 노동자 1인당 감자 종자 값 2,000원과 비료 값 3,000원 등을 거두었다. 노동자들은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막상 감자를 수확하고 보니, 한 명당 10kg도 안 돌아가는 바람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 돈 내서 종자 사고, 비료 사고, 매일같이 점심 싸들고 다닌 것으로 따지면, 그 돈으로 시장에서 감자를 사먹어도 한 달 배급은 나오겠다. 내년에도 이럴 거면 안 하는 게 낫겠다”는 노동자들이 많다. 안 좋은 경작지에서 턱없이 부족한 농자재로 감자 농사를 지었으니 소출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 기관, 기업소에 농장 부업지를 떼 주는 것에 농장 관계자들은 내심 불만이 많았다. 자기네들이 전부 심어도 일인당 분배량이 턱없이 부족한데, 공장, 기업소에 경작지를 떼어주고 나면 분배량이 더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기업소들도 좋은 땅을 달라고 고집할 수 없었다. 소출이 작아 노동자들은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햇감자가 시장에 풀리면서 일반 주민들의 식생활에는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 한편, 기관, 기업소들은 감자를 다 캔 뒤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밭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해마다 7월 20일쯤이면 배추와 무를 심는다.

황해남도 은률군은 논밭이 많은 곡창 지대지만, 이곳이라고 식량난이 비껴가지는 않았다. 춘궁기 내내 농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근근이 농사를 지었다. 지난 3-4개월 동안 풀죽을 밥 먹듯이 해오던 농민들은 최근 햇감자가 나오자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좋아하고 있다. 은률읍에 사는 김영희(가명)씨는 “가뭄의 단비 뿌려주듯 햇감자가 나와 생활에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들도 적게는 일주일 분량에서 많게는 20일 분량까지 감자 배급을 받게 돼 잠시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다. 올해 4월, 은률군에서도 군당의 지시로 공장, 기업소들에 농장 밭을 분배해주고, 감자 농사를 짓도록 했다. 일군들이 수완이 좋아 비료 조달을 잘 한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20일 이상의 배급량을 줄 만큼 소출이 괜찮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은률군 도시건설사업소와 같이 감자 배급을 거의 주지 못한 곳도 있었다. 군당의 한 일군은 “올감자가 나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7월 초부터 보리를 가을(수확)할 수 있어 굶어죽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군민들은 감자에 산나물을 섞어 량을 늘려 먹으며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신병훈련소, 배고픈 탈영병 속출

황해북도 서흥군에 주둔하고 있는 4.25훈련소의 식량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입대 시기는 대체로 18-19세. 신장 160cm면 큰 편에 속할 정도로 갈수록 체격이 작아지고 있다. 훈련생들은 올겨울부터 지금까지 풀뿌리와 산나물을 뜯어 풀밥을 먹어왔다. 한참 먹고 커야할 시기에 잘 먹지 못하니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신병 훈련소에서 도주해 집으로 간 사례가 속출했다. 신입 병사 훈련소에서는 “(식량난에) 힘들어도 극복하고 이겨내자”고 선전 사업과 교양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도주하더라도 복귀하겠다고 하면 기회를 한 번 더 주겠지만, 끝까지 거부하면 엄벌에 처하고 가장 열악한 탄광, 광산에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굶주리는 어린 훈련생들의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제대해도 집에 못가고 탄광이나 농촌에 무리 배치 될 수 있어 빨리 도망갈수록 좋다는 훈련병들도 있다. 막상 탈영한다고 해도 별다른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이다. 붙잡히지 않으려 산길을 타다보면 주로 농가를 습격해 끼니를 때우게 된다. 그러다 인명을 살상하는 불상사도 생긴다. 지난 6월 중순에도 황해북도 평산군 평산읍을 지나가던 훈련소 탈영병이 농가를 털다가 저항하던 농민 부부를 살해한 사건이 나기도 했다. 감자 몇 알 훔쳐 먹자던 것이 살상을 불러온 것이다.

훈련소에서는 탈영병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평산읍 사례처럼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일삼아 군민관계를 훼손하고 있어 더 골치를 앓고 있다. “(훈련병들이) 백성들이 소름끼쳐할 정도로 너무 괴롭혀서, 이제는 마을 어귀에 군복 입은 사람이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주민들이 즉각 서로에게 경계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집단으로 순서를 정해 감시 한다”고 말한다. 범죄의 원흉 취급을 받는 군인들도 할 말은 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쳐도 무슨 소용이 있는 가. 제 몸 건사를 못해 허약이나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일생동안 고생하겠는데 지금 시기는 도적질해서 먹어서라도 허약에 걸리지 않는 것이 똑똑한 병사”라고 말하고 있다.

황해북도 봉산군에 주둔하고 있는 4.25훈련소 곡사포련대에서도 최근 햇감자를 수확해 식량에 보태고 있다. 올 초 훈련소 지휘부에서는 각 산하 련대마다 “자체 부업지를 적극 리용해 햇감자를 비롯한 작물을 많이 심으라”고 지시했다. 식량문제를 최대한 각 부대에서 알아서 풀라는 지시였다. 아침에는 옥수수밥, 점심과 저녁에는 햇감자를 주는데, 양이 작다. 옥수수밥은 120g도 못될 때가 많고, 감자도 한 끼에 5-6알 정도에 불과하다. 장정들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일부 군인들은 저녁에 일찍 잠들어도 너무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는다며, 몇몇 동료들과 무리지어 농장 밭이나 개인들의 소토지 밭에 몰래 들어가 훔쳐 먹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가끔 농민들이나 주민들의 신소가 들어오지만, 부대에서도 사람이 다치거나 너무 심하다 싶을 때만 주의를 줄 뿐이다.

작년에 입대한 박명호(가명)씨는 들어올 때만 해도 체중이 60kg 정도였는데, 지금은 40kg대로 뚝 떨어졌다. 부대에서는 올봄에 박씨처럼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한 훈련병 20여 명을 귀가 조치 시켰다. 부대 군의소에서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죽기 전에 집에 보내는 것이다.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을 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박씨의 어머니는 “귀한 아들을 키워서 나라에 바쳤는데 어찌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다시는 인민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곡사포련대의 한 군관은 “부모들의 심정도 이해된다. 군관 세대들도 가족들의 배급을 받지 못해 헤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내 안해(아내)도 본가(친정)에 얹혀살고 있다.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에서 군관 본인에게만 식량 배급을 주니, 가족들의 식량은 농사지어서 자체로 해결하라고 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군관들 중에는 이혼하겠다고 제기하는 여성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군관들도 이런데, 하전사들과 신병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7월이 되면 하계 훈련을 하게 되는데, 누구도 배불리 먹지 못해 육중한 곡사포를 다루기가 바쁘다. 훈련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군인들, 풀밥 전투 끝나나

부족한 끼니를 보충하려고 전투 아닌 전투(풀밥)를 해왔던 군인들의 식사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올감자 덕분이다. 강원도 평강군 5군단 산하 부대들에서는 올봄 내내 풀밥을 주식으로 먹다시피 했다. 가끔 옥수수밥이 지급됐지만, 풀밥을 먹는 날이 유독 많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은 산에 돌아다니면서 산나물을 캐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맨 풀만 먹고 어떻게 싸우라는 가. 아무리 목숨 바쳐 싸우는 결사대 자폭용사가 되자고 해도, 먹어야 힘을 내서 싸우지. 지금 같아선 당장 전쟁이 난다고 해도 허약한 상태라 움직일 수도 없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개성시에 주둔하는 2군단 부대들은 올 봄 산나물에 옥수수쌀을 섞어 양을 불려먹었다. 풀만 보이고 옥수수쌀은 듬성듬성 있는 밥이었다. 하루 일인당 정량 700g은 온데간데없고, 300-400g선으로 작년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밥이 더 부실해진 것이다. 그래도 순박한 일부 군인들은 곧 옥수수가 나면 상황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 낙관한다.

강원도 평강에서 군복무 6년차에 접어든다는 리국철(가명)씨는 “지난겨울에는 딱 죽는구나 싶었다. 심심산골에 한겨울이라 산에 들에 눈이 덮여있으니 산나물이 있나, 풀뿌리를 캘 수가 있나. 명절이 지나고 배급이 나와서 겨우 죽다 살아났다. 그래도 봄에는 풀이 돋아나고 산나물도 캘 수 있어서 양을 한껏 늘려 풀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같은 풀밥이라고 해도, 옥수수쌀에 감자를 더 섞어먹으니 낫다”고 했다. 풀밥전투가 끝날 것 같으냐고 물으니, 리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농장들을 습격해서 훔친 것들을 먹으면서 살아남았는데, 우리 부업지 농사 소출도 적지만 농민들 감자농사 지은 거 보니 형편없더라. 뺏어먹을 것이 적어 풀밥전투가 금새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햇감자, 군인들에 뺏겨 울상

드디어 올감자(햇감자)가 나는 철이 왔다. 풀뿌리로 연명하던 농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계절이 돌아왔으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건, 감자 소출이 기대보다 적은 탓이다. 초봄에 워낙 식량고생이 심했던 터라, 종자를 심은 지 얼마 안 돼 바로 캐먹기도 했고, 군인들에게 수시로 도난을 당했다. 평안북도 의주군의 경우 주민 수보다 군인 수가 더 많을 정도여서 피해가 유독 컸다. 막상 올감자를 캐려고 보니, 온통 군데군데 군인들이 파먹은 흔적이었다. 군대도둑한테 빼앗기기 전에 채 여물지도 않은 감자를 미리 거둬버린 농장도 있었다. 소토지 농사도 마찬가지다. 의주군 수진리에 사는 장정화(가명)씨는 “150평 감자 농사를 지었는데, 군인들에게 몽땅 도둑맞아 지금은 캘 게 없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몽땅 다 털렸다. 그걸로 옥수수 나올 때까지 버텨야하는데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한탄했다. 군부대들도 자체 부업지에서 생산한 올감자를 거둬들였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한창 배고플 장정들에게 끼니마다 5-6알도 안 되는 작은 감자만 먹이니 군인들이 버티기가 힘들다. 영양실조에 걸려 군 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든 군인들은 심한 경우 집에 돌려보내고 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는 군인들은 인근 농장 밭을 돌아다니며 감자 싹쓸이에 나선다. 이제는 보리가 여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6월 말 현재까지는 감자가 최선이다.

북한 군인도 먹고 살자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는 주장일 수도 있겠으나, 북한 군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군량미 부족으로 군인들이 농장 밭과 농가를 습격하는 일이 일상사라고 한다. 일부 호위군과 특수부대에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일반 사병과 군관들은 식량난에서 살아남는 게 자신들의 전투라고 말한다. 봄에는 풀을 섞어먹으며 풀밥 전투를 벌였고, 지금은 작은 햇감자 5-6알로 한 끼를 때운다. 군인들이 굶주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과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당국에서 제아무리 군민관계를 강조해도, 군인들은 일반인들에게 위협이 되고, 방어해야할 적(敵)일뿐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냈더니, 그 아들이 누군가에게는 귀한 식량을 훔쳐가는 원수가 되고, 때로 누군가의 아들이 내 식량을 훔쳐가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 현재 북한 식량난의 현실이다. 북한 군인도 사람이고, 그들도 먹어야 산다. 이 단순한 명제가 남한의 현실정치로 넘어오면 민감한 논란꺼리가 되지만,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한다”는 것이 인도주의 정신이라 믿는다.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북한 지도부가 설정한 강성대국의 방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는 강성대국의 조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식량소식

감자 덕에 겨우 숨통 트여

함경북도 농민들은 햇감자 소출이 적어 실망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다. 3월부터 산나물과 풀뿌리를 캐먹으며 연명해온 농가에서 특히 감자 수확에 좋아하는 모습이다. 작년에 받았던 분배량이 턱없이 부족해 일찌감치 식량이 떨어진 농가가 많았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직하리 남새농장에 다니는 박금화(가명)씨는 “우리 집은 3월 말부터 산나물을 캐서 풀죽 쒀먹으며 목숨을 유지해왔다. 지금은 텃밭에 심었던 감자를 캐먹을 수 있어 산나물을 먹을 때보다는 낫다”고 했다. 농민들은 시내 주민들과 달리 장사를 할 수가 없어 농사가 거의 유일한 생계원이다. 작년 여름에 수해피해로 소출이 적었는데, 안 걷겠다던 군량미를 올해 초에 다시 거둬가는 바람에 여름철 식량을 미리 챙겨놓을 수 없었다.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풀죽과 감자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 농촌 총동원 시기에 당 일군들이 워낙 거세게 몰아붙여 하는 수없이 출근했던 농민들은 총동원이 끝나자 하나둘 결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농장 일군들은 노력공수를 철저히 따져 가을 분배할 때 확실하게 셈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농민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분배량만 바라보고 사는 것보다, 개인 농사를 짓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농민들은 “가을에 황금산을 안겨준다고 해도, 당장 굶어죽겠는데 언제 그때를 바라고 하늘만 쳐다보겠는가. 지금 목숨을 유지하고 살아남는 방법은 소토지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진 시당에서는 올해 초 각 기관, 기업소에 농장 부업지를 노동자 인원에 따라 차등 배분 해주고 감자 농사를 지으라고 권고했다. 김책제철소와 같은 특급기업소를 제외하고, 일반 기업소들은 환영의사를 표했다. 공장들마다 자체 예산이 부족해 노동자들로부터 갹출해 종자와 비료 등 농자재를 구입했다. 청진버스공장은 노동자 1인당 감자 종자 값 2,000원과 비료 값 3,000원 등을 거두었다. 노동자들은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막상 감자를 수확하고 보니, 한 명당 10kg도 안 돌아가는 바람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 돈 내서 종자 사고, 비료 사고, 매일같이 점심 싸들고 다닌 것으로 따지면, 그 돈으로 시장에서 감자를 사먹어도 한 달 배급은 나오겠다. 내년에도 이럴 거면 안 하는 게 낫겠다”는 노동자들이 많다. 안 좋은 경작지에서 턱없이 부족한 농자재로 감자 농사를 지었으니 소출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 기관, 기업소에 농장 부업지를 떼 주는 것에 농장 관계자들은 내심 불만이 많았다. 자기네들이 전부 심어도 일인당 분배량이 턱없이 부족한데, 공장, 기업소에 경작지를 떼어주고 나면 분배량이 더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기업소들도 좋은 땅을 달라고 고집할 수 없었다. 소출이 작아 노동자들은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햇감자가 시장에 풀리면서 일반 주민들의 식생활에는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 한편, 기관, 기업소들은 감자를 다 캔 뒤 겨울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밭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해마다 7월 20일쯤이면 배추와 무를 심는다.

황해남도 은률군은 논밭이 많은 곡창 지대지만, 이곳이라고 식량난이 비껴가지는 않았다. 춘궁기 내내 농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근근이 농사를 지었다. 지난 3-4개월 동안 풀죽을 밥 먹듯이 해오던 농민들은 최근 햇감자가 나오자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좋아하고 있다. 은률읍에 사는 김영희(가명)씨는 “가뭄의 단비 뿌려주듯 햇감자가 나와 생활에 크게 보탬이 되고 있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들도 적게는 일주일 분량에서 많게는 20일 분량까지 감자 배급을 받게 돼 잠시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다. 올해 4월, 은률군에서도 군당의 지시로 공장, 기업소들에 농장 밭을 분배해주고, 감자 농사를 짓도록 했다. 일군들이 수완이 좋아 비료 조달을 잘 한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20일 이상의 배급량을 줄 만큼 소출이 괜찮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은률군 도시건설사업소와 같이 감자 배급을 거의 주지 못한 곳도 있었다. 군당의 한 일군은 “올감자가 나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7월 초부터 보리를 가을(수확)할 수 있어 굶어죽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군민들은 감자에 산나물을 섞어 량을 늘려 먹으며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신병훈련소, 배고픈 탈영병 속출

황해북도 서흥군에 주둔하고 있는 4.25훈련소의 식량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입대 시기는 대체로 18-19세. 신장 160cm면 큰 편에 속할 정도로 갈수록 체격이 작아지고 있다. 훈련생들은 올겨울부터 지금까지 풀뿌리와 산나물을 뜯어 풀밥을 먹어왔다. 한참 먹고 커야할 시기에 잘 먹지 못하니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신병 훈련소에서 도주해 집으로 간 사례가 속출했다. 신입 병사 훈련소에서는 “(식량난에) 힘들어도 극복하고 이겨내자”고 선전 사업과 교양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도주하더라도 복귀하겠다고 하면 기회를 한 번 더 주겠지만, 끝까지 거부하면 엄벌에 처하고 가장 열악한 탄광, 광산에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굶주리는 어린 훈련생들의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제대해도 집에 못가고 탄광이나 농촌에 무리 배치 될 수 있어 빨리 도망갈수록 좋다는 훈련병들도 있다. 막상 탈영한다고 해도 별다른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이다. 붙잡히지 않으려 산길을 타다보면 주로 농가를 습격해 끼니를 때우게 된다. 그러다 인명을 살상하는 불상사도 생긴다. 지난 6월 중순에도 황해북도 평산군 평산읍을 지나가던 훈련소 탈영병이 농가를 털다가 저항하던 농민 부부를 살해한 사건이 나기도 했다. 감자 몇 알 훔쳐 먹자던 것이 살상을 불러온 것이다.

훈련소에서는 탈영병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평산읍 사례처럼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일삼아 군민관계를 훼손하고 있어 더 골치를 앓고 있다. “(훈련병들이) 백성들이 소름끼쳐할 정도로 너무 괴롭혀서, 이제는 마을 어귀에 군복 입은 사람이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주민들이 즉각 서로에게 경계하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집단으로 순서를 정해 감시 한다”고 말한다. 범죄의 원흉 취급을 받는 군인들도 할 말은 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쳐도 무슨 소용이 있는 가. 제 몸 건사를 못해 허약이나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일생동안 고생하겠는데 지금 시기는 도적질해서 먹어서라도 허약에 걸리지 않는 것이 똑똑한 병사”라고 말하고 있다.

황해북도 봉산군에 주둔하고 있는 4.25훈련소 곡사포련대에서도 최근 햇감자를 수확해 식량에 보태고 있다. 올 초 훈련소 지휘부에서는 각 산하 련대마다 “자체 부업지를 적극 리용해 햇감자를 비롯한 작물을 많이 심으라”고 지시했다. 식량문제를 최대한 각 부대에서 알아서 풀라는 지시였다. 아침에는 옥수수밥, 점심과 저녁에는 햇감자를 주는데, 양이 작다. 옥수수밥은 120g도 못될 때가 많고, 감자도 한 끼에 5-6알 정도에 불과하다. 장정들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일부 군인들은 저녁에 일찍 잠들어도 너무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는다며, 몇몇 동료들과 무리지어 농장 밭이나 개인들의 소토지 밭에 몰래 들어가 훔쳐 먹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가끔 농민들이나 주민들의 신소가 들어오지만, 부대에서도 사람이 다치거나 너무 심하다 싶을 때만 주의를 줄 뿐이다.

작년에 입대한 박명호(가명)씨는 들어올 때만 해도 체중이 60kg 정도였는데, 지금은 40kg대로 뚝 떨어졌다. 부대에서는 올봄에 박씨처럼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한 훈련병 20여 명을 귀가 조치 시켰다. 부대 군의소에서 치료를 할 수 없으니 죽기 전에 집에 보내는 것이다.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을 보는 부모들의 심정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박씨의 어머니는 “귀한 아들을 키워서 나라에 바쳤는데 어찌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다시는 인민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곡사포련대의 한 군관은 “부모들의 심정도 이해된다. 군관 세대들도 가족들의 배급을 받지 못해 헤어져 사는 경우가 많다. 내 안해(아내)도 본가(친정)에 얹혀살고 있다.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에서 군관 본인에게만 식량 배급을 주니, 가족들의 식량은 농사지어서 자체로 해결하라고 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군관들 중에는 이혼하겠다고 제기하는 여성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군관들도 이런데, 하전사들과 신병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7월이 되면 하계 훈련을 하게 되는데, 누구도 배불리 먹지 못해 육중한 곡사포를 다루기가 바쁘다. 훈련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군인들, 풀밥 전투 끝나나

부족한 끼니를 보충하려고 전투 아닌 전투(풀밥)를 해왔던 군인들의 식사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올감자 덕분이다. 강원도 평강군 5군단 산하 부대들에서는 올봄 내내 풀밥을 주식으로 먹다시피 했다. 가끔 옥수수밥이 지급됐지만, 풀밥을 먹는 날이 유독 많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은 산에 돌아다니면서 산나물을 캐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맨 풀만 먹고 어떻게 싸우라는 가. 아무리 목숨 바쳐 싸우는 결사대 자폭용사가 되자고 해도, 먹어야 힘을 내서 싸우지. 지금 같아선 당장 전쟁이 난다고 해도 허약한 상태라 움직일 수도 없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개성시에 주둔하는 2군단 부대들은 올 봄 산나물에 옥수수쌀을 섞어 양을 불려먹었다. 풀만 보이고 옥수수쌀은 듬성듬성 있는 밥이었다. 하루 일인당 정량 700g은 온데간데없고, 300-400g선으로 작년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밥이 더 부실해진 것이다. 그래도 순박한 일부 군인들은 곧 옥수수가 나면 상황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 낙관한다.

강원도 평강에서 군복무 6년차에 접어든다는 리국철(가명)씨는 “지난겨울에는 딱 죽는구나 싶었다. 심심산골에 한겨울이라 산에 들에 눈이 덮여있으니 산나물이 있나, 풀뿌리를 캘 수가 있나. 명절이 지나고 배급이 나와서 겨우 죽다 살아났다. 그래도 봄에는 풀이 돋아나고 산나물도 캘 수 있어서 양을 한껏 늘려 풀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같은 풀밥이라고 해도, 옥수수쌀에 감자를 더 섞어먹으니 낫다”고 했다. 풀밥전투가 끝날 것 같으냐고 물으니, 리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농장들을 습격해서 훔친 것들을 먹으면서 살아남았는데, 우리 부업지 농사 소출도 적지만 농민들 감자농사 지은 거 보니 형편없더라. 뺏어먹을 것이 적어 풀밥전투가 금새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햇감자, 군인들에 뺏겨 울상

드디어 올감자(햇감자)가 나는 철이 왔다. 풀뿌리로 연명하던 농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계절이 돌아왔으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건, 감자 소출이 기대보다 적은 탓이다. 초봄에 워낙 식량고생이 심했던 터라, 종자를 심은 지 얼마 안 돼 바로 캐먹기도 했고, 군인들에게 수시로 도난을 당했다. 평안북도 의주군의 경우 주민 수보다 군인 수가 더 많을 정도여서 피해가 유독 컸다. 막상 올감자를 캐려고 보니, 온통 군데군데 군인들이 파먹은 흔적이었다. 군대도둑한테 빼앗기기 전에 채 여물지도 않은 감자를 미리 거둬버린 농장도 있었다. 소토지 농사도 마찬가지다. 의주군 수진리에 사는 장정화(가명)씨는 “150평 감자 농사를 지었는데, 군인들에게 몽땅 도둑맞아 지금은 캘 게 없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몽땅 다 털렸다. 그걸로 옥수수 나올 때까지 버텨야하는데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한탄했다. 군부대들도 자체 부업지에서 생산한 올감자를 거둬들였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한창 배고플 장정들에게 끼니마다 5-6알도 안 되는 작은 감자만 먹이니 군인들이 버티기가 힘들다. 영양실조에 걸려 군 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든 군인들은 심한 경우 집에 돌려보내고 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는 군인들은 인근 농장 밭을 돌아다니며 감자 싹쓸이에 나선다. 이제는 보리가 여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6월 말 현재까지는 감자가 최선이다.

기획연재 – 2012, 강성대국의 조건(1) 식량문제 꼭 푼다

편집자 주.

D-day는 2012년 4월 15일.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북한은 과연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인가? 세인의 관심에 그 누구보다 초조한 것은 역시 당사자들일 것이다. 국내외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었다고 만방에 알릴 수 있는 신호탄을 하루빨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간부들에게 물었다. 강성대국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3가지를 언급했다. 식량, 전기, 그리고 평양 10만 세대 건설. 모두 민생 문제와 직결돼있고, 경제발전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강성대국은 결국 체제보장 위에 세워지는 부강조국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앞으로 3회에 걸쳐, 북한 지도부가 설정한 강성대국의 방향을 짚어보려고 한다.

최근 북한 지도부의 행보가 빨라졌다. 거듭된 회의 속에서 새로운 방침들이 속속 내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새 방침들에는 지도부의 비장감마저 엿보이나, 일선 실무자들의 반응은 썩 흔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수령결사옹위 정신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하부단위에서 말을 잘 안 듣는다고, 공포정치로만 밀어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지도부는 어떤 영도력으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 것인가? 우리는 그들 앞에 놓인 난제들을 그들의 시각을 통해 가늠해보려고 한다. 그들이 봉착한 모순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때, 통일을 위한 우리의 역할이 보다 선명해질 테니까 말이다.

1. 식량 문제, 꼭 푼다.

2. 전력 공급에 전력을 다하라.

3. 평양 10만 세대 건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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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량 문제, 꼭 푼다

“식량 문제, 내년에는 꼭 풀어야 한다.” 역시 먹는 것이 문제다. 내년 4월 15일이 되면, 쌀이 그득한 곳간에서 주민들에게 배급을 나눠주어야 한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올해도 농사 전망은 밝지 않다. 고질적인 비료난과 농자재 부족에 올 겨울 유난했던 혹한과 초여름 가뭄과 뒤이은 집중폭우 등 기후까지 뭐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다. 인력은 어떤가? 춘궁기 심한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논밭에서 일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고 있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자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식량 문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중국에서 얼마 들어왔냐고? “묻지 마라, 피곤하다”

최근 중국과의 밀착행보를 겨냥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중국에서 식량이 얼마 들어왔는지 중앙당 간부들에게 물었다. 곧바로 “묻지 마라, 피곤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셈을 해본 사람들마다 10만 톤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간부에 따라 5만 톤 정도 들어왔다는 사람이 있고, 7-9만 톤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10만 톤은 안 넘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간신히 평양 시내에만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제 다 떨어져 평양 식량 문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구상은 원대하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믿을 데는 해외대표부뿐?

역시 믿을 곳은 해외대표부뿐인가? 당, 정 핵심 일군들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최근 중앙당은 모든 해외대표부에 식량 과제를 할당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식량 할당량을 전해들은 해외대표부마다 기절초풍할 지경이라고 한다.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 얘기냐?”는 항변이 터져 나온다.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해외대표부의 한 일군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했다. 올 겨울, 군량미 과제도 힘들어서 헉헉대다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손들었는데, 이번 식량 과제는 군량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라고 했다. 군량미 때보다 아무리 못해도 40배 이상 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대체 할당량이 얼마냐고 물으니, “아직 공식 전달된 것이 아니”라면서도, “각 대표부마다 5천 톤은 내야한다”고 귀띔했다. “50톤도 아니고 5천 톤이라니, 분명히 내가 듣고도 내 귀가 의심스러워 다시 물어봤다”며,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을 뿐 확인된 사실이라고 했다. 각자 맡은 각종 과제에 본사 임무도 완성하기 힘든데, 그 많은 식량 자금을 어디서 끌어 모으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수행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일부 해외대표부 일군들의 반응은 자못 격렬하다. 최근 무역성 간부들 숙청 얘기가 나돌면서 식량 구입을 핑계로 해외대표부 일선 실무자들까지 다 치려는 게 아닌 가 의심하는 눈도 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식량을 구입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곤 했지만, 올해는 2월 이후 아무 지시가 없어 본국의 식량 사정이 좀 나아졌나 보다 생각했다가 완전히 뒤통수 맞은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관망하자는 부류도 있다. 아직 본국에서 어떤 공식적인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니 기다리자는 것이다. 이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우리를 괴롭히겠느냐, 우리가 무슨 수로 그 많은 식량을 댈 수 있다는 말이냐”며 애써 불안감을 지우려는 분위기다.

국내 간부들은 “그동안 그렇게 식량문제가 안 풀린다고 말할 때는 하나도 안 듣더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제야 지시를 내리는데 너무 늦은 거 아니냐. 지금까지 뭐하다가 일이 코앞에 들이닥쳐서야 이렇게 바빠하는지 모르겠다. 강성대국 대문까지 가기도 전에 다 죽게 생겼다”며 할당 지시가 너무 늦었다고 못마땅해 한다. 안에서는 막연히 밖에 나가있는 일군들만 쳐다보고, 밖에 있는 일군들은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반발하는 모습이다.

해외 원조 단체 접촉 쉬워진다?

한편 해외 원조 단체들의 지원 폭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례로, 현장 분배가 원칙인 대북 지원 단체들이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하곤 했는데, 그들이 가고난 후 담당 간부들이 처벌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자, 해외 단체들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되면서 자연히 식량 원조 요청도 줄었다. 해외 관계자와 은밀히 접촉하려는 사람은 있어도, 공식적으로 상대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일단 담당 일군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해외단체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지고, 지원 받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방향에서 새 방침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앞으로 해외 원조 단체들과 접촉하는 간부들을 조사하는 일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하고, 지원하는 과정 전체를 감시하는 일은 인민보안부에서 하는 식으로 역할분담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해외 원조 단체들의 요구조건도 일부 수용하는 방향의 새 방침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조만간 해외 원조 단체들에 대대적으로 식량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농업 투자만이 살 길

중앙당에서는 당장 내년을 바라보며 해외 원조를 요청하고 해외대표부에 식량 수입을 다그치는 한편, 근본 대책 마련에도 부심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고, 기술도 낙후하고, 비료가 없고, 토지가 적어 해마다 식량고통을 겪어왔다. 해외에서 일정한 식량지원이 없으면 앞으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농업에 투자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농업 기술 혁신, 설비 투자, 종자 개선, 비료 등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제일 관건은 역시 농업에서도 전력이다. 농업 현대화와 전력문제를 해결하면 농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중앙당의 진단과 대책이다. 단기적으로는 해외대표부와 해외로부터의 식량 수입을, 장기적으로는 농업 투자를 이끌어내 식량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실행 가능성이다. 농업 투자를 누가 어떻게 끌어낼 지가 관건인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