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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19호

■ 시선집중

“인걸은 간 데 없고”

인민군 7총국 산하 조선남강총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한 일군은 “지금 생각해도 3년 전에 청진 남강판매소장(리홍춘)의 목을 날린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3년 전 얘기를 꺼냈다. 지난 2008년 7월 15일, 북한 당국은 개인 착복 혐의를 물어 함경북도 청진시 남강무역회사 사장 을 비롯해 기지장(지사장) 등 5명을 비공개 처형한 바 있다. 매점매석을 통해 청진 쌀값을 마음대로 통제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여 개인들이 빼돌렸다는 혐의다. 이때 전국 각지의 남강총무역회사들이 줄폭탄을 맞았다. 함경남도와 황해북도, 평안남도, 평성 등지에서도 남강회사 기지장들이 서로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식량 값 통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모두 비공개처형 됐다. 가장 먼저 처형됐던 청진 남강무역회사 사장은 무역 거래 능력이 매우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강무역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청진 주민들도, 그가 재직하던 시절에는 먹고 살만했다는 평가다. 그가 들여오는 식량과 물자들이 많아 일반 주민들도 장사를 하거나, 식량을 구하기가 그만큼 수월했다는 것이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지금처럼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군 보위총국(전 보위사령부) 산하 장생무역회사 전(前) 사장에 대한 향수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7년도 8월에 구속돼 예심 기간 중에 사망한 김철 당시 청진 장생무역회사 사장은 아직도 청진 주민들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김철 사장은 김책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선철, 열강판 등을 중국에 넘기고, 옥수수와 콕스 등을 받아와 식량문제와 원료문제를 풀었다. 장생무역회사가 잘 되니, 주민들이 식량 사먹기도 편리하고 대단히 좋았다. 김철 사장이 죽은 뒤 청진 장생무역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김책제철소 등 관련업계도 악화일로에 들어섰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청진 시당의 한 간부는 청진 경제가 김철 사장 처형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갈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당시 북한 당국은 국가안전보위부 해외반탐국에서 김철 사장이 불법으로 한국에 철을 팔았다는 혐의로 처형했다. 아무리 군소 무역회사들이 속속 등장한다고 해도, 무역 수완이 뛰어난 인물을 바로 배출하기는 어렵다. 중앙당의 일부 간부들도 무역 규제 속에서 어렵게 무역거래를 성사시켜 온 인물들을 적극 보호하고, 새로운 능력자들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강성무역회사 54부, 식량 수입 앞장서

인민무력부의 대표 무역회사인 강성무역회사 54부가 식량 수입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4부 회사는 기본 군량미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평양 10만세대 살림집 건설 물자도 확보하는 등 비단 군부대뿐만 아니라 국가 주요 건설 물자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54부에서 근무하는 한 일군은 “중국에 나가 식량을 구입할 때 우리는 옥수수를 사들여온다. 이번에도 10만 톤을 확보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는데 중국에서 옥수수를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인도에서 옥수수와 밀, 보리 등을 구해 오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거의 현금 거래를 하기 때문에 신용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무역회사들 중 약 80%가 군부 계통 회사들이지만, 실제 소기의 성과를 내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54부처럼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회사는 국가에서도 손에 꼽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잘 나가는 54부를 두고, “국가에서 밀어주면 누구인들 못하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오는데, 54부가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각 부대마다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처한 조건에 따라 성과도 달라진다는 의견이다.

중국 진출 무역회사, 군부 계통이 가장 활발

올해 중국에 진출하는 무역회사들 중에 군부계통의 무역회사들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에서도 군부 계통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군부 식량난 대응책의 일환이다. 지난 4월, 국방위원회에서는 인민군 부대들에게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농민과 일반 주민들에게 군량미 과제를 거두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군량미를 자체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 무역일군은 “해외무역대표부 일군들이 군량미 과제를 더 못하겠다고 신소해서 군량미 과제가 사실상 중단됐다. 국내 원호사업을 아무리 해봤자 해외에서 안 들어오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군부에서) 무역회사들을 더 내오도록 추동하고 있는 것 같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인민군 피복류, 신발 등 생필품 보장도 시급한 문제라서 외화벌이 회사들을 많이 내주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 한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자연 중국에 진출하려는 군부 무역회사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군부 무역회사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작년 1월 5일, 군부 산하 무역회사들을 모두 해산시키라는 방침을 내린 지 1년 만의 일이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 북한 당국은 지난 해 1월, 시장 폐쇄 조치와 무역회사 구조조정을 시도한 바 있다. 당경제, 내각경제, 지방경제, 군부경제 등 각 단위별로 흩어져있던 무역회사들을 무역성에서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난 해 5.26 당 지시에 따라 사실상 무역회사 제재 조치를 철회했다. 이미 해체된 무역회사와 군부 계통 무역회사들도 투자를 받기만 하면 다시 무역거래를 허용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화폐 교환 조치와 시장 폐쇄 조치, 무역회사 해산 조치 등 연이은 정책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투자를 새로 받으려고 해도 크게 신용을 잃어 중국 대방들이 쉽게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광물 자원이든 무엇이든 중국에 내다팔 수 있는 것은 다 내다 팔아도 좋다는 중앙당의 방침 전환에 따라, 최근에야 비로소 활성화되는 모습이다. 군부 무역회사들 사이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해서, 군량미와 생활물자를 조달하는 회사들은 아무래도 특수부대처럼 힘 있는 부대들이다. 일부 회사들은 운영 자금조차 조달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금철(가명)씨는 “(우리 회사는) 무역 사업을 승인해주고 우리를 파견해준 인민군 간부들에게 (차량) 기름 값이나 대주는 정도다. 간부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중국에 계속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건 못해도 간부들 뇌물은 꼭 챙기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에 지인이나 친척이 있는 사람들, 혹은 무역 거래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 무역을 활성화하자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군부 간부들과의 연줄에 더 많이 좌우되다보니 성과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해외 진출하는 평양 의사들

“대외 합작 건에 능력이 있는 단위들은 적극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라”는 지시에 따라, 해외에 진출하는 평양 의사들이 늘고 있다. 현재 평양시에서는 교수급에 해당하는 의사 10여 명이 중국 심양과 대련, 연변 등에 진출해 있다. 자체적으로 진료소를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중국 현지 병원에 파견 근무하는 형태다. 연변에 나간 사람들은 연 5,000달러, 심양과 대련 등에 나간 사람들은 1만 유로를 국가에 상납해야 한다. 평양에서는 실력 있는 의사들이지만, 진출 초기 단계라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자체 진료소는 경영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중국인들이 조선의 의료 기술을 잘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중국인 의사를 두고 굳이 조선 의사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건물 임대료와 직공들의 생활비, 로임, 그리고 국가에 바치는 과제 수행까지 하려니 늘 적자에 허덕인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중국에서 캐온 인진쑥이나 갖가지 약초들을 북한산이라 속이고 팔고 있는 수준이다. 일단 1년이라도 버텨 입소문을 타게 되면 자연히 손님이 늘 것이라 기대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속속 해외에 진출하고 있는데, 성악, 무용, 미술, 태권도 등 예능인들이 중국 연변 등지에 나가 사설학원을 개설하고 수강생들을 모으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 운영이 어렵지만, 일부 교사들은 조선족 지인 등의 소개를 받아 부업으로 개인 교습에 나서기도 한다. 다만 태권도 교사들은 개인 교습을 받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해외에 기술 인력을 파견하는 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겠지만, 조선의 대중 수출 품목이 광물자원 등에 국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인력 파견은 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데 보다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함경북도 보건당국, 해외대표부에 SOS

함경북도 보건당국에서는 중국에 파견되는 해외대표단에 치료약을 구해달라고 SOS를 보내고 있다. 도내 병원마다 기초약품이 너무 없으니, 일단 소독약이나 소염제만이라도 구해달라는 내용이다. 해외대표부 성원들은 식량 과제를 달성하는 과제만으로도 너무 골치 아픈 상황이라, 약품 조달에는 아예 신경을 못 쓰고 있다. 식량은 얼마라도 사들여 보내면 영웅 소리를 듣지만, 약품을 사 보내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보건당국의 높은 사람이 찾아와 사정한다고 해도, 국내에 들여보내는 약품들은 자금 송환이 안 되어 “그저 강에 돌을 던지는 격”이라며 처음부터 손을 안 대려고 한다. “아무 이윤도 없는 거래라, 훈장을 주거나 승급은커녕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만 더 받는다. 처음부터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경북도 보건당국에서 근무하는 한 일군은 “얼마 전에 해외대표부 사람을 만나 약 좀 구해달라고 눈물 흘리며 사정을 했다. 간부과 병원에서도 약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치료약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반응이 차갑더라. 치료를 조금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지금은 돈이 없어 굶어죽는 형편이니 꼭 좀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호소를 했지만, 자기들도 도와줄 형편이 못된다고 했다. 요즘 해외대표부에 검열이 세게 들어가서 쉽게 눈 밖에 날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9월까지 식량을 못 구하면 자기들 목이 먼저 날아갈 판이라며, 오히려 나한테 소개해줄만한 중국 대방이 없느냐며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는데 우리는 누구한테 손을 내밀어야 하느냐”며 막막해했다. 각 간부들이나 돈주들은 결핵약을 비롯한 의약품들을 중국에서 직접 수입하고 있다.

식량난 질병에 의사들, “손 놓았다”

북한 보건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간염과 결핵, 위장 질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의사들은 한 마디로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전국적으로 입쌀밥 먹던 사람들이 5대5밥이나 옥수수밥을, 옥수수밥 먹던 사람들이 옥수수국수와 옥수수죽을, 옥수수죽을 먹던 사람들이 감자 몇 알과 풀죽 등으로 연명하는 등 식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해왔다. 함경남도 함흥 시병원에서 일하는 정일영(가명)씨 말처럼 “아무리 이 병, 저 병 갖다 붙여도 결국은 못 먹어서 생긴 병이고, 잘 낫지도 않는데 오래 앓다보면 죽어 가는 현실”이 된 것이다. 잘 먹기만 하면 얼마든지 호전될 수 있는 병들인데도,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의사들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함경북도 청진과 경성도 비슷한 상황이다. 청진시 도병원에서 일하는 김금옥(가명)씨는 “요즘 백성들이 주로 먹는 것이 옥수수국수나 옥수수죽이다. 열의 대여섯 집이 그렇게 먹는 것 같다. 그나마 산다는 집들에서 옥수수밥을 먹는데, 여기에 입쌀이라도 한 줌 섞어 먹으면 잘 산다는 소리를 듣는다. 환자들을 진단해보면, 다 못 먹어서 생긴 병이다. 그 중에서도 결핵이나 간염 환자가 제일 많다. 짐승들도 안 먹을 음식을 억지로 씹어 넘기다보니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있어도 내가 돈을 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그 사람들 형편을 뻔히 알면서 뭘 먹어야 병이 낫는지 말해주기도 난처하다”고 의사로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의사들이 더 딱하게 여기는 것은 치료약 대용으로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몸이 아파도 치료약을 구하지 못해 도저히 안 되면 양귀비 같은 마약류에 손을 댄다. 마약류를 사용하면 당장의 통증은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십중팔구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조금만 아파도 마약을 찾게 되고 중독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지사, 심한 경우 생명이 경각에 달릴 때에야 병원을 찾아 손도 못 쓰고 사망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특히 결핵 환자들이 마약 성분을 장기 복용할 경우 온몸이 마른 장작처럼 바싹 마르고 얼굴에도 뼈와 가죽 밖에 안 남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사실상 오래 살 가망이 없다. 곧 죽어간다기에 의사들이 왕진을 가보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집에서 병을 키우다가 마약 중독까지 겹친 환자들이 많다. 간염과 결핵은 전염 속도가 빠른 편이라 보건당국에서 고심하고 있지만 역시 별 대책은 없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전염되어도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는 경우가 많다. 김금옥씨는 “아직 길거리에서 굶어죽은 사람을 본 일은 없지만, 집에서 앓다가 죽는 사람들은 여럿 봤다. 사망 원인에는 반드시 병명을 써야 하기 때문에 결핵이다 뭐다 쓰기는 하지만, 자연사를 제외하고는 대개 영양실조에 병이 겹쳐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식량난 3대 질병 – 결핵, 간염, 위장병

탈북자 결핵 감염률이 남한 주민의 3배 수준이라고 한다. 환자는 아니지만 2년 내 발병할 확률이 높은 사람이 국내 정착 탈북자 2만 명의 80%에 달한다고 한다. 결핵만이 아니라, 간염과 위장질환도 식량난 속에 급증하는 질병이다. 북한에서 결핵, 간염, 위장병은 영양상태가 불량할수록 악화되는 이른바 식량난 3대 질병에 속한다. 보건당국은 별다른 대책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다. 치료약을 구해보려고 해외대표부에 손 벌려 봐도, 식량과제에 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지금으로선 해외 원조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결핵과 간염, 위장 질환 등 식량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약품 지원과 함께, 영양회복을 위한 식량 지원도 시급하다. 지난 8월 9일,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는 북한 어린이 5천명을 살릴 수 있는 결핵약품을 북한에 보냈다. 이 같은 움직임이 각계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해본다.

■ 식량소식

“인걸은 간 데 없고”

인민군 7총국 산하 조선남강총무역회사에서 일하는 한 일군은 “지금 생각해도 3년 전에 청진 남강판매소장(리홍춘)의 목을 날린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3년 전 얘기를 꺼냈다. 지난 2008년 7월 15일, 북한 당국은 개인 착복 혐의를 물어 함경북도 청진시 남강무역회사 사장 을 비롯해 기지장(지사장) 등 5명을 비공개 처형한 바 있다. 매점매석을 통해 청진 쌀값을 마음대로 통제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여 개인들이 빼돌렸다는 혐의다. 이때 전국 각지의 남강총무역회사들이 줄폭탄을 맞았다. 함경남도와 황해북도, 평안남도, 평성 등지에서도 남강회사 기지장들이 서로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식량 값 통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모두 비공개처형 됐다. 가장 먼저 처형됐던 청진 남강무역회사 사장은 무역 거래 능력이 매우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강무역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청진 주민들도, 그가 재직하던 시절에는 먹고 살만했다는 평가다. 그가 들여오는 식량과 물자들이 많아 일반 주민들도 장사를 하거나, 식량을 구하기가 그만큼 수월했다는 것이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지금처럼 먹고 사는 게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군 보위총국(전 보위사령부) 산하 장생무역회사 전(前) 사장에 대한 향수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7년도 8월에 구속돼 예심 기간 중에 사망한 김철 당시 청진 장생무역회사 사장은 아직도 청진 주민들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김철 사장은 김책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선철, 열강판 등을 중국에 넘기고, 옥수수와 콕스 등을 받아와 식량문제와 원료문제를 풀었다. 장생무역회사가 잘 되니, 주민들이 식량 사먹기도 편리하고 대단히 좋았다. 김철 사장이 죽은 뒤 청진 장생무역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김책제철소 등 관련업계도 악화일로에 들어섰고,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청진 시당의 한 간부는 청진 경제가 김철 사장 처형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갈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당시 북한 당국은 국가안전보위부 해외반탐국에서 김철 사장이 불법으로 한국에 철을 팔았다는 혐의로 처형했다. 아무리 군소 무역회사들이 속속 등장한다고 해도, 무역 수완이 뛰어난 인물을 바로 배출하기는 어렵다. 중앙당의 일부 간부들도 무역 규제 속에서 어렵게 무역거래를 성사시켜 온 인물들을 적극 보호하고, 새로운 능력자들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강성무역회사 54부, 식량 수입 앞장서

인민무력부의 대표 무역회사인 강성무역회사 54부가 식량 수입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4부 회사는 기본 군량미를 책임지면서 동시에 평양 10만세대 살림집 건설 물자도 확보하는 등 비단 군부대뿐만 아니라 국가 주요 건설 물자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54부에서 근무하는 한 일군은 “중국에 나가 식량을 구입할 때 우리는 옥수수를 사들여온다. 이번에도 10만 톤을 확보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는데 중국에서 옥수수를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인도에서 옥수수와 밀, 보리 등을 구해 오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거의 현금 거래를 하기 때문에 신용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무역회사들 중 약 80%가 군부 계통 회사들이지만, 실제 소기의 성과를 내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54부처럼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회사는 국가에서도 손에 꼽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잘 나가는 54부를 두고, “국가에서 밀어주면 누구인들 못하겠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오는데, 54부가 현금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각 부대마다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에서 처한 조건에 따라 성과도 달라진다는 의견이다.

식량난 질병에 의사들, “손 놓았다”

북한 보건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간염과 결핵, 위장 질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의사들은 한 마디로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전국적으로 입쌀밥 먹던 사람들이 5대5밥이나 옥수수밥을, 옥수수밥 먹던 사람들이 옥수수국수와 옥수수죽을, 옥수수죽을 먹던 사람들이 감자 몇 알과 풀죽 등으로 연명하는 등 식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해왔다. 함경남도 함흥 시병원에서 일하는 정일영(가명)씨 말처럼 “아무리 이 병, 저 병 갖다 붙여도 결국은 못 먹어서 생긴 병이고, 잘 낫지도 않는데 오래 앓다보면 죽어 가는 현실”이 된 것이다. 잘 먹기만 하면 얼마든지 호전될 수 있는 병들인데도,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의사들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함경북도 청진과 경성도 비슷한 상황이다. 청진시 도병원에서 일하는 김금옥(가명)씨는 “요즘 백성들이 주로 먹는 것이 옥수수국수나 옥수수죽이다. 열의 대여섯 집이 그렇게 먹는 것 같다. 그나마 산다는 집들에서 옥수수밥을 먹는데, 여기에 입쌀이라도 한 줌 섞어 먹으면 잘 산다는 소리를 듣는다. 환자들을 진단해보면, 다 못 먹어서 생긴 병이다. 그 중에서도 결핵이나 간염 환자가 제일 많다. 짐승들도 안 먹을 음식을 억지로 씹어 넘기다보니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있어도 내가 돈을 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그 사람들 형편을 뻔히 알면서 뭘 먹어야 병이 낫는지 말해주기도 난처하다”고 의사로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의사들이 더 딱하게 여기는 것은 치료약 대용으로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몸이 아파도 치료약을 구하지 못해 도저히 안 되면 양귀비 같은 마약류에 손을 댄다. 마약류를 사용하면 당장의 통증은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십중팔구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조금만 아파도 마약을 찾게 되고 중독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지사, 심한 경우 생명이 경각에 달릴 때에야 병원을 찾아 손도 못 쓰고 사망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특히 결핵 환자들이 마약 성분을 장기 복용할 경우 온몸이 마른 장작처럼 바싹 마르고 얼굴에도 뼈와 가죽 밖에 안 남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사실상 오래 살 가망이 없다. 곧 죽어간다기에 의사들이 왕진을 가보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집에서 병을 키우다가 마약 중독까지 겹친 환자들이 많다. 간염과 결핵은 전염 속도가 빠른 편이라 보건당국에서 고심하고 있지만 역시 별 대책은 없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전염되어도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는 경우가 많다. 김금옥씨는 “아직 길거리에서 굶어죽은 사람을 본 일은 없지만, 집에서 앓다가 죽는 사람들은 여럿 봤다. 사망 원인에는 반드시 병명을 써야 하기 때문에 결핵이다 뭐다 쓰기는 하지만, 자연사를 제외하고는 대개 영양실조에 병이 겹쳐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경제활동

중국 진출 무역회사, 군부 계통이 가장 활발

올해 중국에 진출하는 무역회사들 중에 군부계통의 무역회사들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에서도 군부 계통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군부 식량난 대응책의 일환이다. 지난 4월, 국방위원회에서는 인민군 부대들에게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농민과 일반 주민들에게 군량미 과제를 거두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군량미를 자체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 무역일군은 “해외무역대표부 일군들이 군량미 과제를 더 못하겠다고 신소해서 군량미 과제가 사실상 중단됐다. 국내 원호사업을 아무리 해봤자 해외에서 안 들어오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군부에서) 무역회사들을 더 내오도록 추동하고 있는 것 같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인민군 피복류, 신발 등 생필품 보장도 시급한 문제라서 외화벌이 회사들을 많이 내주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 한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자연 중국에 진출하려는 군부 무역회사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군부 무역회사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작년 1월 5일, 군부 산하 무역회사들을 모두 해산시키라는 방침을 내린 지 1년 만의 일이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 북한 당국은 지난 해 1월, 시장 폐쇄 조치와 무역회사 구조조정을 시도한 바 있다. 당경제, 내각경제, 지방경제, 군부경제 등 각 단위별로 흩어져있던 무역회사들을 무역성에서 통합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지난 해 5.26 당 지시에 따라 사실상 무역회사 제재 조치를 철회했다. 이미 해체된 무역회사와 군부 계통 무역회사들도 투자를 받기만 하면 다시 무역거래를 허용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화폐 교환 조치와 시장 폐쇄 조치, 무역회사 해산 조치 등 연이은 정책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투자를 새로 받으려고 해도 크게 신용을 잃어 중국 대방들이 쉽게 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광물 자원이든 무엇이든 중국에 내다팔 수 있는 것은 다 내다 팔아도 좋다는 중앙당의 방침 전환에 따라, 최근에야 비로소 활성화되는 모습이다. 군부 무역회사들 사이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해서, 군량미와 생활물자를 조달하는 회사들은 아무래도 특수부대처럼 힘 있는 부대들이다. 일부 회사들은 운영 자금조차 조달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금철(가명)씨는 “(우리 회사는) 무역 사업을 승인해주고 우리를 파견해준 인민군 간부들에게 (차량) 기름 값이나 대주는 정도다. 간부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중국에 계속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건 못해도 간부들 뇌물은 꼭 챙기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에 지인이나 친척이 있는 사람들, 혹은 무역 거래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 무역을 활성화하자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군부 간부들과의 연줄에 더 많이 좌우되다보니 성과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해외 진출하는 평양 의사들

“대외 합작 건에 능력이 있는 단위들은 적극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라”는 지시에 따라, 해외에 진출하는 평양 의사들이 늘고 있다. 현재 평양시에서는 교수급에 해당하는 의사 10여 명이 중국 심양과 대련, 연변 등에 진출해 있다. 자체적으로 진료소를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중국 현지 병원에 파견 근무하는 형태다. 연변에 나간 사람들은 연 5,000달러, 심양과 대련 등에 나간 사람들은 1만 유로를 국가에 상납해야 한다. 평양에서는 실력 있는 의사들이지만, 진출 초기 단계라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자체 진료소는 경영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중국인들이 조선의 의료 기술을 잘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중국인 의사를 두고 굳이 조선 의사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건물 임대료와 직공들의 생활비, 로임, 그리고 국가에 바치는 과제 수행까지 하려니 늘 적자에 허덕인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중국에서 캐온 인진쑥이나 갖가지 약초들을 북한산이라 속이고 팔고 있는 수준이다. 일단 1년이라도 버텨 입소문을 타게 되면 자연히 손님이 늘 것이라 기대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속속 해외에 진출하고 있는데, 성악, 무용, 미술, 태권도 등 예능인들이 중국 연변 등지에 나가 사설학원을 개설하고 수강생들을 모으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 운영이 어렵지만, 일부 교사들은 조선족 지인 등의 소개를 받아 부업으로 개인 교습에 나서기도 한다. 다만 태권도 교사들은 개인 교습을 받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해외에 기술 인력을 파견하는 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겠지만, 조선의 대중 수출 품목이 광물자원 등에 국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인력 파견은 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데 보다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정치생활

함경북도 보건당국, 해외대표부에 SOS

함경북도 보건당국에서는 중국에 파견되는 해외대표단에 치료약을 구해달라고 SOS를 보내고 있다. 도내 병원마다 기초약품이 너무 없으니, 일단 소독약이나 소염제만이라도 구해달라는 내용이다. 해외대표부 성원들은 식량 과제를 달성하는 과제만으로도 너무 골치 아픈 상황이라, 약품 조달에는 아예 신경을 못 쓰고 있다. 식량은 얼마라도 사들여 보내면 영웅 소리를 듣지만, 약품을 사 보내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보건당국의 높은 사람이 찾아와 사정한다고 해도, 국내에 들여보내는 약품들은 자금 송환이 안 되어 “그저 강에 돌을 던지는 격”이라며 처음부터 손을 안 대려고 한다. “아무 이윤도 없는 거래라, 훈장을 주거나 승급은커녕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만 더 받는다. 처음부터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경북도 보건당국에서 근무하는 한 일군은 “얼마 전에 해외대표부 사람을 만나 약 좀 구해달라고 눈물 흘리며 사정을 했다. 간부과 병원에서도 약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치료약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반응이 차갑더라. 치료를 조금만 받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지금은 돈이 없어 굶어죽는 형편이니 꼭 좀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호소를 했지만, 자기들도 도와줄 형편이 못된다고 했다. 요즘 해외대표부에 검열이 세게 들어가서 쉽게 눈 밖에 날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9월까지 식량을 못 구하면 자기들 목이 먼저 날아갈 판이라며, 오히려 나한테 소개해줄만한 중국 대방이 없느냐며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는데 우리는 누구한테 손을 내밀어야 하느냐”며 막막해했다. 각 간부들이나 돈주들은 결핵약을 비롯한 의약품들을 중국에서 직접 수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