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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39호

■ 시선집중

소달구지 끌고 나무 해오는 농장원들

김학철씨는 아침 6시쯤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는 창고 열쇠를 열고 들어가서 몇 가지 연장 도구를 챙겼다. 오늘은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한술 령감과 같이 소달구지 한 개를 끌고 산에 가서 말뚝으로 쓸 나무 20대를 베어 와야 한다. 7시 반쯤, 농장 축사에 갔더니 달구지와 소는 계획대로 배정돼 있었다. 도끼와 톱, 바오라기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달구지에 싣고 한술 령감과 함께 산으로 떠났다. 금년에는 눈이 꽤나 많이 내려, 가는 길이 미끄럽고 울퉁불퉁했다. 집에서부터 출발할 때 군용운동화를 신고 그 위에 솜바지 자락을 힘껏 당겨 감싸 노끈으로 여러 번 빙빙 돌려 묶었다. 그래야 눈도 안 들어가고 바람막이도 된다. 윗옷은 잠바를 입었는데 지퍼가 고장 나 옷이 찬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허리춤을 새끼줄로 질끈 동여맸다. 손에는 벙어리장갑을 꼈는데 일하기가 불편했지만 나흘 전에 맨 손으로 일하다가 손가락 동상에 걸린 뒤로는 안 낄 수가 없다.

영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기둥감 나무 20대를 베어서 끌어내려다 달구지에 실으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었다. 장작을 모아놓고 우등 불을 지펴 얼어서 뻣뻣해진 손과 발을 엇갈아 가면서 녹였다. 손발과 몸이 약간 따스해지니 배에서 연방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도시락은 둘 다 옥수수밥과 말린 무 짠지였다. 점심 식사를 대충 끝내고 낡은 신문 종이에 엽초를 말아서 한 대씩 피우고 나니 그래도 힘이 돌아서는 것 같다. 서둘러 달구지를 소에다 메고 길을 재촉하는데, 뼈만 앙상한 소가 금방 쓰러질 것만 같다. 물도랑을 건너서 오르막길이 되니 소가 좀처럼 수레를 끌 생각을 안 한다. 둘이 달라붙어 밀고 당기고 하면서 회초리 찜질을 하였더니 겨우 한 고개 넘어선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반복하여 농장 창고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이럴 때는 저녁 밥상에 따끈하게 데운 소주라도 한잔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이루지 못할 꿈이고, 그냥 서로 입맛만 다시며 헤어졌다

맨손으로 옥수수 탈곡하는 농장원들

남혜경씨가 옥수수쌀 절반에 무와 배춧잎 절반을 섞어 지은 밥으로 아침을 먹고, 농장 탈곡장에 들어선 것은 날이 희뿜히 밝은 7시였다. 어제 아침에는 전기가 들어 왔는데, 오늘은 첫 시간부터 전기가 없다. 자리를 잡고 손으로 옥수수를 까는 작업에 들어갔다. 12명의 여자 농장원과 5명의 남자 농장원이 둘러 앉아 반나절을 깠지만 양은 얼마 안 됐다. 원래 건장한 남자들은 새해 농사 준비에 쓸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는데, 몸이 허약해서 여자만큼도 일하기 힘든 남자들이 옥수수 탈곡장에 동원된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배도 고파 여자들은 조금 까고는 언 손발을 녹이느라 경비실에 번갈아 드나들고, 남자들은 담배 피운다고 쉬다 보면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지난한 작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옥수수이삭을 구워 먹으니 주릴 염려는 없다. 덕분에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이 터지니 날씨가 더 춥다. 별 온기도 없는 솜옷을 꽁꽁 여미고 벙어리장갑을 껴도 몸이 얼어 점차 감각이 없어진다. 정 못 견디겠다 싶으면 작업은 그만두고 다시 경비실에 몰려 들어간다.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없어 일부는 바깥에 남는다. 여자들은 담장 모서리 양지쪽에 몰려 앉는데, 서로 떨어져 있으면 더 춥기 때문에 손과 손을 마주 잡아 주기도 하고 언 발을 서로 껴안아 녹여 주기도 하면서 몸을 녹이느라 부산하다. 추위를 이기려고 소리 지르면서 까놓은 옥수수를 가마니에 퍼 담으니 겨우 12가마니 남짓 된다. 한 사람이 한 가마니도 못 깐 셈이다. 새해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남은 옥수수를 다 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녁 6시가 되자 오늘 작업 총화는 내일로 미루고 다들 급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깃불도 없고 별 온기도 없는 집이지만 집에 가는 걸음이 빠르다. 지난해에는 내일을 가늠하기 바쁜 어려운 세월이라고 했는데, 금년 들어와서는 하루 순간순간도 가늠하기 바쁜 혹독한 세월이 되어버렸다. 혜경씨는 잔뜩 웅크린 채 집까지 종종 걸음을 하는 동안에도 저녁 아궁이에 지필 땔나무가 모자라지 않을지, 장롱 속에 넣어둔 옥수수쌀이 앞으로 몇 끼 분이나 남아 있을지 가늠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수돗물은 언제면 소 오줌 물만큼이라도 나올 것인지, 고뿔인지 여섯 살 딸아이의 몸에 열이 나는 것 같던데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 이런저런 시름이 깊어진다.

가발가공공장 노동자의 하루

아침 8시가 출근 시간인데 기업소까지 걸어서 한 시간 반이 걸려, 늦어도 6시 반에는 집에서 떠나야 한다. 오늘도 미현씨는 5시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진 유리 창문 대신 크라프트지로 겨우 문풍지를 한 것이 그래도 제법 바람막이를 한다. 어제 저녁 가마목에 퍼놓은 세숫대야의 물이 얼지 않았으니 말이다. 서둘러 가마에 물을 붓고 시루를 걸쳐 놓고는 감자를 큰 것으로 12알을 들여 놓았다. 주변이 모두 산골이라 땔나무는 자기 손만 부지런히 놀리면 넉넉히 땔 수 있다. 아궁이 한가득 나무를 집어넣고 불을 지피니 인차 가마가 끓기 시작하였다. 아침 식사로 세 식구가 감자 4알씩을 먹으려는데, 찬이 마땅하지 않다. 같이 살고 있는 본가(친정)어머니가 지난해 산에서 직접 캐서 말린 산나물을 데쳐 먹고 싶은데, 기름이 없으니까 볶아 먹을 수는 없고 뜨거운 물에 데쳤다가 된장에 무쳐 먹기로 한다. 미현씨는 범랑칠이 벗겨져 떨어져 나간 대야에다가 뜨거운 물을 떠 놓고 거기에 묵은 나물을 담아 두었다.

땔감을 더 가지러 밖에 나서니 컴컴한 어둠속에서도 어렴풋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인다. 거의 절반은 빈집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중도는 꽤 번화한 동네였다. 회령 시가지에서는 한 20리쯤 떨어져 있어도 로동자구인데다 중도 시멘트 하면 인근에서 알아주는 질 좋은 상품으로 저기 강 너머 중국에까지 수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후로 이래저래 생산이 잘 안되더니 지금에 와서는 아예 공장 전체가 문을 닫았다. 그때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하나둘 어디론가 떠나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쟁 폐허 같은 마을이 되어버렸다. 옛날 생각을 해봤자 부질없지만 괜히 서글퍼진다. 그때는 없이 살아도 좋은 일 있으면 서로 나눠 먹고 함께 기뻐했는데, 지금은 까딱 잘못하면 입에 풀칠조차 못하니 악을 쓰며 버텨내느라 좀처럼 웃을 일도 없고 눈물은 다 말라버렸다.

미현씨는 식구들 음식을 챙겨놓은 뒤, 잘 익은 감자 2알을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얼른 먹고 2알은 주머니에 담아 넣고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바짓단을 군화 안으로 잘 쓸어 넣고, 신발 끈을 단단히 조였다. 이렇게 해야 발목을 타고 찬바람이 쓸어들어 오는 것도 막고 흙먼지도 막고 걸음걸이가 편해진다. 두터운 맨 수건을 목에 두르고 깃을 돌려서 잘 동여 묶는다. 벙어리 면장갑을 낀 손으로 바깥에서 문을 잘 밀어 닫은 후 기업소를 향해 달음 치듯 걷기 시작했다. 회령 시가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너무 허기져서 품속에 간직했던 감자 2알을 꺼내 숨도 안 쉬고 통째로 꿀꺽 삼킨다. 다행히 점심식사는 직장에서 급식을 해준다.

도착하자마자 출근 기록부에 서명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강당에 모였다.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는 공장장이 관리위원회 회의를 가고 없어 욕설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기술 지도원 동지가 제품의 질을 보장할 데 대해 기술적인 문제를 몇 가지 제기하였을 따름이다. 보위부원 동지와 보안원 동지가 애도 기간에 주의해야 할 몇 가지 문제를 전달했다. 얼마 전에 도강을 하다가 6명이 붙잡혔는데, 전시법을 적용해 엄하게 다스린다는 말도 했다. 그때 무심코 눈이 마주쳤는데, 째지게 흘겨보는 눈길이 어찌나 섬칫하던지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호각 소리에 맞추어 모두들 자기 일자리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어 일을 하였으나 한식경이 지나자 점점 일하는 손과 눈빛들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잡담도 오가기 시작한다. 중국인 기술자 한명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조선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스물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뭘 먹고 저렇게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지 키도 180cm은 넘어 보이고 체중도 80kg는 넘을 것 같다. 여자들은 중국 총각을 흘끔거리며 잡담을 나눈다. 공장 직원들 중에 남자가 열 몇 명 되는데 그중 제일 키 큰 보위지도원도 165cm를 못 넘고, 제일 중량이 많이 나간다는 공장장도 60kg를 못 넘으니, 저 중국 총각은 조선 남자와 인종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키 크고 배 큰 놈이 민 하기나 하지, 약삭빠른 놈 못 봤다”며 웃고 떠든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부지런히 벽에 걸린 중국산 전자시계에 간다. 점심시간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괜히 시계만 쳐다본다. 마침내 12시가 되자, 모두들 식당 칸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수돗물이 안 나와서 모두들 손도 안 씻고 그대로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 상에 8명씩 앉은 가운데로 검붉은 옥수수떡이 16개 나왔다. 반찬으로는 한 가운데 큰 양철 대야에 배추와 무를 썰어 담근 물김치 한 그릇이 전부다. 그거라도 빨리 많이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다 먹어버리니 다들 먹는 속도가 가히 신기록감이다. 10분도 안 돼 식탁 위는 고양이가 핥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치워졌다. 양철대야에 담긴 김칫국물도 깡그리 없어졌다. 급하게 먹은 뒤 소화가 안 돼서인지, 아니면 식곤증 때문인지 사람들은 여기저기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자그마한 식당 방에 빼곡히 드러누우니 춥지는 않다. 여기저기서 나지막하게 코고는 소리도 들리고, 콜록콜록 기침소리, 무엇이 우스운지 킥킥 거리며 옹송그리고 웃는 소리, 좀 자자고 조용히 하라는 소리도 들린다.

회의에 갔던 공장장이 호루라기를 불어 댄 것은 정각 1시였다. 오전 내 했다는 일이 왜 요것밖에 안되느냐며 공장장은 공장 간부들부터 들볶아 대기 시작한다. 이놈저놈 하며 욕지거리를 시작하더니 이 간나 새끼, 저 간나 새끼까지 20분이나 계속됐다. 중국 기술원 총각은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는 눈길로 욕하는 공장장과 욕을 먹고 있는 로동자들을 멍하니 둘러본다. 어째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했다. 로동자들은 욕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저 짖을 테면 너 혼자 짖으라는 듯이 덤덤히 앉아 있을 뿐이다. 빨리 5시가 되어 퇴근하기만 바랄 뿐이다. 어제 하던 일을 오늘도 하고, 오전에 하던 대로 오후에도 하고, 금방 하던 일을 또다시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죽인다. 드디어 퇴근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공장 안은 갑자기 활기를 띈다.

70명여 명의 로동자들은 옷을 갈아입기 바쁘게 공장장의 사무실로 모였다. 오늘은 한 달 로임을 받는 날이다. 부기장이 명단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 부기원 동지가 건네주는 현금을 봉투도 없이 그대로 손에 받아 쥐고 장부에 서명하고 나간다. 미현씨는 기본 로임 3,200원에 수당금 2,100원 모두 합해 5,300원을 받았다. 돈을 건네받자마자 급히 자리를 빠져 나가면서 미현씨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머리를 굴린다. 쌀이 kg당 3,000원이 넘으니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 옥수수를 한 5kg 정도 사고, 주머니에 있는 500원을 보태 소금 1kg(800원)를 사면 딱 들어맞겠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발걸음이 자연 더 빨라진다.

바깥은 어느새 어스름이 몰려들고 있다. 미현씨는 큰 다리 말고 징검다리로 회령천을 건너 장마당에 갔다가, 서둘러 옥수수 5kg와 소금 1kg를 사서 배낭에 둘러메고 집을 향해 달음박질치듯 뛰어간다. 공장에서 집까지와 장마당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비슷하지만 올 때는 내리막길이기에 빠르고, 돌아갈 때는 오르막길이기에 걸으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기뻐할 걸 생각하니, 배고픔도 추위도 다 잊는다. 멀리서 집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사립문에 기대 딸이 언제나 퇴근할까 기다리는 어머니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딸 대신 집안일을 해주는 어머니가 새삼 그립고 눈물 나도록 고맙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마자 뛰다시피 달려와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들고, “많이 춥지? 수고했다”며 딸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미현씨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부엌에 들어가 서둘러 옥수수밥을 짓는다. 옥수수쌀을 솥에 앉혀놓고 아궁이에 붉은 불꽃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온몸이 노곤해진다. 오늘 저녁만은 옥수수밥을 푸지게 먹고 한숨 푹 자야겠다. 중국은 13억 인구도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없이 잘 산다는데 우리는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존다.

화교 머슴살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업

아침 7시, 날이 밝자. 박향란씨는 서둘러 집을 나서 길 건너편에 사는 화교 집에 간다.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조차 없이 높이 둘러막은 널판자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개 세 마리가 달려 나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낯선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다. 모르고 울타리 안에 들어 왔다가 그 개들한테 물린 사람이 부지기수다. 박씨는 부엌에 들어가 아침 준비를 서둔다. 장작개비를 지핀 뒤 새하얀 입쌀을 떠내 밥을 짓고, 샛노란 콩기름을 둘러 이면수를 튀기고, 잘 익은 물김치도 상에 올린다. 8시가 되어서야 주인 부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칫솔질을 한다. 향긋한 비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인 여자는 경대 앞에 앉아 온 몸에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작한다. ‘나도 언제면 저런 멋있는 경대 앞에 앉아 저런 고급 화장품으로 온 몸을 꾸미고 이렇게 남이 지어주는 밥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박씨는 그저 올 겨울 따스한 옥수수밥이라도 온 식구가 모여앉아 넉넉히 먹고, 추운 겨울 고생이나 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한다.

주인 부부가 식사를 끝낸 뒤, 먹다 남은 새하얀 입쌀밥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면수 두 개를 챙겨 품에 안고 얼른 건너편 집으로 건너갔다. 아무리 음식 쓰레기라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절대 대문 밖으로 가져 나올 수 없는데, 아침 식사를 지어준 보답으로 허락을 받은 것이다. 박씨는 물 한 그릇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죽을 끓일 때 넣으려고, 입쌀을 씻은 뽀얀 쌀뜨물과 이면수를 씻어서 비린내가 나는 물도 같이 챙겨왔다.

박씨네 인민반에서는 박씨만 유일하게 화교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모두들 부러워 야단이다. 화교 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와 낡은 옷가지들을 얻을 수 있으니 일단 먹는 걱정, 입는 걱정은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30년 전에는 우리나라 인민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 무슨 영문인지 중국 화교들은 날마다 잘 살게 되고, 우리는 날마다 못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화교네 집은 말로만 듣던 옛날 나랏님 처럼 살고, 자기는 얻어먹는 처지라 설움이 없을 리 없지만 감히 좋다, 싫다 앓는 소리를 못한다. 박씨네 인민반에서 자기 처지가 제일 좋은 게 사실이니까.

음식 찌꺼기를 부엌에 내려놓고 다시 화교 집으로 달려간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집안 청소를 끝내고 바로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걱정을 한다. 혹시라도 지금의 일자리에서 내쳐지지나 않을지, 다른 사람이 꿰차고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집주인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매사 조심한다. 주인 여자가 성질을 팩팩 부려도 그저 굽실거리며 잘못했다고 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옛날 머슴들이 하던 모양을 그대로 한다. 날도 흐려서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을 텐데, 한 더미 내놓은 빨랫감을 정성스레 빨아 널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걸레질을 하고 나니 금세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주인 여자가 외출하면 그래도 눈치껏 쉬기도 할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방에서 꼼짝도 안 한다. 방안에서 뭐 재미난 것을 보는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부엌까지 들린다.

사방에 어둠이 깔려도 이 집은 아무 걱정이 없다. 환한 전등불이 켜지니 대낮같이 밝기만 하다. 저녁 설거지에 마무리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바로 건너편인데도 퍽이나 멀게 느껴진다. 물에 빠진 솜뭉치마냥 다리 하나 들기도 버겁다. 박씨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마을 쪽을 쳐다보며, 희뿌연 하늘 아래 시커먼 마을에서 마르고 지친 새까만 유령들이 모여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도강자 처벌, 전시범죄 수준으로 강화

중앙당은 국경연선지역의 경우, 도당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 애도 기한을 100일로 정하고, 그 안에 도강을 시도하거나 손전화기를 사용하면 전시범죄로 다스리겠다”는 지시문을 내렸다. “1월 12일부터는 한 사람당 30kg 이상 되는 식량을 가지고 다닐 때에는 무조건 전량 몰수하기로 한다”는 통지문도 나왔다. 주민들은 식량 장사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냐며 불만이다. 올해부터는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강연을 들은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먹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법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서 얼마나 모질게 달고 쥐고 볶는지, 날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주민들은 모였다하면 “빨리 정책이 바뀌어서 중국처럼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 뿐이다.

음식물 쓰레기만 줄여도 북한 주민 다 살린다

중국처럼 잘 먹고 잘 살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새해 소망이다. 30년 전에는 북한이 중국보다 더 잘살았다는데 화교집 머슴살이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게 현실이다. 화교집에서 입쌀밥 하느라 씻어낸 쌀뜨물과 생선 씻은 비린내 나는 물조차 귀한 죽물로 쓴다. 화교집에서 버리는 음식물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고스란히 귀한 식량이 되는 것이다. 남한 환경부에 따르면, 버려지는 음식물로 발생하는 경제가치 손실이 2012년에는 2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남북협력기금 예산은 1조 70억 원이며, 그중에 대북인도적 지원 예산은 5천448억 원이다. 작년에도 남북협력기금은 1조153억 원이 책정됐지만 11월까지 사용한 금액은 306억 원에 불과했다. 단순히 음식물쓰레기만 줄여도 북한 주민들의 식량을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져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여 북한 주민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고, 평화통일의 분위기도 조성할 수 있다. 남한 정부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여서 북한에 식량을 보내 동포를 살리자고 대국민캠페인을 벌여도 좋겠다.

■ 사회

소달구지 끌고 나무 해오는 농장원들

김학철씨는 아침 6시쯤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는 창고 열쇠를 열고 들어가서 몇 가지 연장 도구를 챙겼다. 오늘은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한술 령감과 같이 소달구지 한 개를 끌고 산에 가서 말뚝으로 쓸 나무 20대를 베어 와야 한다. 7시 반쯤, 농장 축사에 갔더니 달구지와 소는 계획대로 배정돼 있었다. 도끼와 톱, 바오라기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달구지에 싣고 한술 령감과 함께 산으로 떠났다. 금년에는 눈이 꽤나 많이 내려, 가는 길이 미끄럽고 울퉁불퉁했다. 집에서부터 출발할 때 군용운동화를 신고 그 위에 솜바지 자락을 힘껏 당겨 감싸 노끈으로 여러 번 빙빙 돌려 묶었다. 그래야 눈도 안 들어가고 바람막이도 된다. 윗옷은 잠바를 입었는데 지퍼가 고장 나 옷이 찬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허리춤을 새끼줄로 질끈 동여맸다. 손에는 벙어리장갑을 꼈는데 일하기가 불편했지만 나흘 전에 맨 손으로 일하다가 손가락 동상에 걸린 뒤로는 안 낄 수가 없다.

영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기둥감 나무 20대를 베어서 끌어내려다 달구지에 실으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었다. 장작을 모아놓고 우등 불을 지펴 얼어서 뻣뻣해진 손과 발을 엇갈아 가면서 녹였다. 손발과 몸이 약간 따스해지니 배에서 연방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도시락은 둘 다 옥수수밥과 말린 무 짠지였다. 점심 식사를 대충 끝내고 낡은 신문 종이에 엽초를 말아서 한 대씩 피우고 나니 그래도 힘이 돌아서는 것 같다. 서둘러 달구지를 소에다 메고 길을 재촉하는데, 뼈만 앙상한 소가 금방 쓰러질 것만 같다. 물도랑을 건너서 오르막길이 되니 소가 좀처럼 수레를 끌 생각을 안 한다. 둘이 달라붙어 밀고 당기고 하면서 회초리 찜질을 하였더니 겨우 한 고개 넘어선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반복하여 농장 창고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이럴 때는 저녁 밥상에 따끈하게 데운 소주라도 한잔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이루지 못할 꿈이고, 그냥 서로 입맛만 다시며 헤어졌다

맨손으로 옥수수 탈곡하는 농장원들

남혜경씨가 옥수수쌀 절반에 무와 배춧잎 절반을 섞어 지은 밥으로 아침을 먹고, 농장 탈곡장에 들어선 것은 날이 희뿜히 밝은 7시였다. 어제 아침에는 전기가 들어 왔는데, 오늘은 첫 시간부터 전기가 없다. 자리를 잡고 손으로 옥수수를 까는 작업에 들어갔다. 12명의 여자 농장원과 5명의 남자 농장원이 둘러 앉아 반나절을 깠지만 양은 얼마 안 됐다. 원래 건장한 남자들은 새해 농사 준비에 쓸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는데, 몸이 허약해서 여자만큼도 일하기 힘든 남자들이 옥수수 탈곡장에 동원된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배도 고파 여자들은 조금 까고는 언 손발을 녹이느라 경비실에 번갈아 드나들고, 남자들은 담배 피운다고 쉬다 보면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지난한 작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옥수수이삭을 구워 먹으니 주릴 염려는 없다. 덕분에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이 터지니 날씨가 더 춥다. 별 온기도 없는 솜옷을 꽁꽁 여미고 벙어리장갑을 껴도 몸이 얼어 점차 감각이 없어진다. 정 못 견디겠다 싶으면 작업은 그만두고 다시 경비실에 몰려 들어간다.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없어 일부는 바깥에 남는다. 여자들은 담장 모서리 양지쪽에 몰려 앉는데, 서로 떨어져 있으면 더 춥기 때문에 손과 손을 마주 잡아 주기도 하고 언 발을 서로 껴안아 녹여 주기도 하면서 몸을 녹이느라 부산하다. 추위를 이기려고 소리 지르면서 까놓은 옥수수를 가마니에 퍼 담으니 겨우 12가마니 남짓 된다. 한 사람이 한 가마니도 못 깐 셈이다. 새해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남은 옥수수를 다 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녁 6시가 되자 오늘 작업 총화는 내일로 미루고 다들 급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깃불도 없고 별 온기도 없는 집이지만 집에 가는 걸음이 빠르다. 지난해에는 내일을 가늠하기 바쁜 어려운 세월이라고 했는데, 금년 들어와서는 하루 순간순간도 가늠하기 바쁜 혹독한 세월이 되어버렸다. 혜경씨는 잔뜩 웅크린 채 집까지 종종 걸음을 하는 동안에도 저녁 아궁이에 지필 땔나무가 모자라지 않을지, 장롱 속에 넣어둔 옥수수쌀이 앞으로 몇 끼 분이나 남아 있을지 가늠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수돗물은 언제면 소 오줌 물만큼이라도 나올 것인지, 고뿔인지 여섯 살 딸아이의 몸에 열이 나는 것 같던데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 이런저런 시름이 깊어진다.

가발가공공장 노동자의 하루

아침 8시가 출근 시간인데 기업소까지 걸어서 한 시간 반이 걸려, 늦어도 6시 반에는 집에서 떠나야 한다. 오늘도 미현씨는 5시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진 유리 창문 대신 크라프트지로 겨우 문풍지를 한 것이 그래도 제법 바람막이를 한다. 어제 저녁 가마목에 퍼놓은 세숫대야의 물이 얼지 않았으니 말이다. 서둘러 가마에 물을 붓고 시루를 걸쳐 놓고는 감자를 큰 것으로 12알을 들여 놓았다. 주변이 모두 산골이라 땔나무는 자기 손만 부지런히 놀리면 넉넉히 땔 수 있다. 아궁이 한가득 나무를 집어넣고 불을 지피니 인차 가마가 끓기 시작하였다. 아침 식사로 세 식구가 감자 4알씩을 먹으려는데, 찬이 마땅하지 않다. 같이 살고 있는 본가(친정)어머니가 지난해 산에서 직접 캐서 말린 산나물을 데쳐 먹고 싶은데, 기름이 없으니까 볶아 먹을 수는 없고 뜨거운 물에 데쳤다가 된장에 무쳐 먹기로 한다. 미현씨는 범랑칠이 벗겨져 떨어져 나간 대야에다가 뜨거운 물을 떠 놓고 거기에 묵은 나물을 담아 두었다.

땔감을 더 가지러 밖에 나서니 컴컴한 어둠속에서도 어렴풋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인다. 거의 절반은 빈집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중도는 꽤 번화한 동네였다. 회령 시가지에서는 한 20리쯤 떨어져 있어도 로동자구인데다 중도 시멘트 하면 인근에서 알아주는 질 좋은 상품으로 저기 강 너머 중국에까지 수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후로 이래저래 생산이 잘 안되더니 지금에 와서는 아예 공장 전체가 문을 닫았다. 그때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하나둘 어디론가 떠나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쟁 폐허 같은 마을이 되어버렸다. 옛날 생각을 해봤자 부질없지만 괜히 서글퍼진다. 그때는 없이 살아도 좋은 일 있으면 서로 나눠 먹고 함께 기뻐했는데, 지금은 까딱 잘못하면 입에 풀칠조차 못하니 악을 쓰며 버텨내느라 좀처럼 웃을 일도 없고 눈물은 다 말라버렸다.

미현씨는 식구들 음식을 챙겨놓은 뒤, 잘 익은 감자 2알을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얼른 먹고 2알은 주머니에 담아 넣고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바짓단을 군화 안으로 잘 쓸어 넣고, 신발 끈을 단단히 조였다. 이렇게 해야 발목을 타고 찬바람이 쓸어들어 오는 것도 막고 흙먼지도 막고 걸음걸이가 편해진다. 두터운 맨 수건을 목에 두르고 깃을 돌려서 잘 동여 묶는다. 벙어리 면장갑을 낀 손으로 바깥에서 문을 잘 밀어 닫은 후 기업소를 향해 달음 치듯 걷기 시작했다. 회령 시가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너무 허기져서 품속에 간직했던 감자 2알을 꺼내 숨도 안 쉬고 통째로 꿀꺽 삼킨다. 다행히 점심식사는 직장에서 급식을 해준다.

도착하자마자 출근 기록부에 서명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강당에 모였다. 오늘 아침 조회시간에는 공장장이 관리위원회 회의를 가고 없어 욕설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기술 지도원 동지가 제품의 질을 보장할 데 대해 기술적인 문제를 몇 가지 제기하였을 따름이다. 보위부원 동지와 보안원 동지가 애도 기간에 주의해야 할 몇 가지 문제를 전달했다. 얼마 전에 도강을 하다가 6명이 붙잡혔는데, 전시법을 적용해 엄하게 다스린다는 말도 했다. 그때 무심코 눈이 마주쳤는데, 째지게 흘겨보는 눈길이 어찌나 섬칫하던지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호각 소리에 맞추어 모두들 자기 일자리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어 일을 하였으나 한식경이 지나자 점점 일하는 손과 눈빛들이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잡담도 오가기 시작한다. 중국인 기술자 한명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조선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스물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뭘 먹고 저렇게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지 키도 180cm은 넘어 보이고 체중도 80kg는 넘을 것 같다. 여자들은 중국 총각을 흘끔거리며 잡담을 나눈다. 공장 직원들 중에 남자가 열 몇 명 되는데 그중 제일 키 큰 보위지도원도 165cm를 못 넘고, 제일 중량이 많이 나간다는 공장장도 60kg를 못 넘으니, 저 중국 총각은 조선 남자와 인종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키 크고 배 큰 놈이 민 하기나 하지, 약삭빠른 놈 못 봤다”며 웃고 떠든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부지런히 벽에 걸린 중국산 전자시계에 간다. 점심시간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괜히 시계만 쳐다본다. 마침내 12시가 되자, 모두들 식당 칸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수돗물이 안 나와서 모두들 손도 안 씻고 그대로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 상에 8명씩 앉은 가운데로 검붉은 옥수수떡이 16개 나왔다. 반찬으로는 한 가운데 큰 양철 대야에 배추와 무를 썰어 담근 물김치 한 그릇이 전부다. 그거라도 빨리 많이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다 먹어버리니 다들 먹는 속도가 가히 신기록감이다. 10분도 안 돼 식탁 위는 고양이가 핥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치워졌다. 양철대야에 담긴 김칫국물도 깡그리 없어졌다. 급하게 먹은 뒤 소화가 안 돼서인지, 아니면 식곤증 때문인지 사람들은 여기저기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자그마한 식당 방에 빼곡히 드러누우니 춥지는 않다. 여기저기서 나지막하게 코고는 소리도 들리고, 콜록콜록 기침소리, 무엇이 우스운지 킥킥 거리며 옹송그리고 웃는 소리, 좀 자자고 조용히 하라는 소리도 들린다.

회의에 갔던 공장장이 호루라기를 불어 댄 것은 정각 1시였다. 오전 내 했다는 일이 왜 요것밖에 안되느냐며 공장장은 공장 간부들부터 들볶아 대기 시작한다. 이놈저놈 하며 욕지거리를 시작하더니 이 간나 새끼, 저 간나 새끼까지 20분이나 계속됐다. 중국 기술원 총각은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는 눈길로 욕하는 공장장과 욕을 먹고 있는 로동자들을 멍하니 둘러본다. 어째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했다. 로동자들은 욕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저 짖을 테면 너 혼자 짖으라는 듯이 덤덤히 앉아 있을 뿐이다. 빨리 5시가 되어 퇴근하기만 바랄 뿐이다. 어제 하던 일을 오늘도 하고, 오전에 하던 대로 오후에도 하고, 금방 하던 일을 또다시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죽인다. 드디어 퇴근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공장 안은 갑자기 활기를 띈다.

70명여 명의 로동자들은 옷을 갈아입기 바쁘게 공장장의 사무실로 모였다. 오늘은 한 달 로임을 받는 날이다. 부기장이 명단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 부기원 동지가 건네주는 현금을 봉투도 없이 그대로 손에 받아 쥐고 장부에 서명하고 나간다. 미현씨는 기본 로임 3,200원에 수당금 2,100원 모두 합해 5,300원을 받았다. 돈을 건네받자마자 급히 자리를 빠져 나가면서 미현씨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머리를 굴린다. 쌀이 kg당 3,000원이 넘으니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 옥수수를 한 5kg 정도 사고, 주머니에 있는 500원을 보태 소금 1kg(800원)를 사면 딱 들어맞겠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발걸음이 자연 더 빨라진다.

바깥은 어느새 어스름이 몰려들고 있다. 미현씨는 큰 다리 말고 징검다리로 회령천을 건너 장마당에 갔다가, 서둘러 옥수수 5kg와 소금 1kg를 사서 배낭에 둘러메고 집을 향해 달음박질치듯 뛰어간다. 공장에서 집까지와 장마당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비슷하지만 올 때는 내리막길이기에 빠르고, 돌아갈 때는 오르막길이기에 걸으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기뻐할 걸 생각하니, 배고픔도 추위도 다 잊는다. 멀리서 집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사립문에 기대 딸이 언제나 퇴근할까 기다리는 어머니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딸 대신 집안일을 해주는 어머니가 새삼 그립고 눈물 나도록 고맙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마자 뛰다시피 달려와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들고, “많이 춥지? 수고했다”며 딸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미현씨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부엌에 들어가 서둘러 옥수수밥을 짓는다. 옥수수쌀을 솥에 앉혀놓고 아궁이에 붉은 불꽃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온몸이 노곤해진다. 오늘 저녁만은 옥수수밥을 푸지게 먹고 한숨 푹 자야겠다. 중국은 13억 인구도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없이 잘 산다는데 우리는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존다.

화교 머슴살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업

아침 7시, 날이 밝자. 박향란씨는 서둘러 집을 나서 길 건너편에 사는 화교 집에 간다.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조차 없이 높이 둘러막은 널판자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개 세 마리가 달려 나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낯선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다. 모르고 울타리 안에 들어 왔다가 그 개들한테 물린 사람이 부지기수다. 박씨는 부엌에 들어가 아침 준비를 서둔다. 장작개비를 지핀 뒤 새하얀 입쌀을 떠내 밥을 짓고, 샛노란 콩기름을 둘러 이면수를 튀기고, 잘 익은 물김치도 상에 올린다. 8시가 되어서야 주인 부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칫솔질을 한다. 향긋한 비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인 여자는 경대 앞에 앉아 온 몸에 향수를 뿌리고 화장을 시작한다. ‘나도 언제면 저런 멋있는 경대 앞에 앉아 저런 고급 화장품으로 온 몸을 꾸미고 이렇게 남이 지어주는 밥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박씨는 그저 올 겨울 따스한 옥수수밥이라도 온 식구가 모여앉아 넉넉히 먹고, 추운 겨울 고생이나 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한다.

주인 부부가 식사를 끝낸 뒤, 먹다 남은 새하얀 입쌀밥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면수 두 개를 챙겨 품에 안고 얼른 건너편 집으로 건너갔다. 아무리 음식 쓰레기라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절대 대문 밖으로 가져 나올 수 없는데, 아침 식사를 지어준 보답으로 허락을 받은 것이다. 박씨는 물 한 그릇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죽을 끓일 때 넣으려고, 입쌀을 씻은 뽀얀 쌀뜨물과 이면수를 씻어서 비린내가 나는 물도 같이 챙겨왔다.

박씨네 인민반에서는 박씨만 유일하게 화교 집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모두들 부러워 야단이다. 화교 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와 낡은 옷가지들을 얻을 수 있으니 일단 먹는 걱정, 입는 걱정은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30년 전에는 우리나라 인민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 무슨 영문인지 중국 화교들은 날마다 잘 살게 되고, 우리는 날마다 못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화교네 집은 말로만 듣던 옛날 나랏님 처럼 살고, 자기는 얻어먹는 처지라 설움이 없을 리 없지만 감히 좋다, 싫다 앓는 소리를 못한다. 박씨네 인민반에서 자기 처지가 제일 좋은 게 사실이니까.

음식 찌꺼기를 부엌에 내려놓고 다시 화교 집으로 달려간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집안 청소를 끝내고 바로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걱정을 한다. 혹시라도 지금의 일자리에서 내쳐지지나 않을지, 다른 사람이 꿰차고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집주인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매사 조심한다. 주인 여자가 성질을 팩팩 부려도 그저 굽실거리며 잘못했다고 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옛날 머슴들이 하던 모양을 그대로 한다. 날도 흐려서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을 텐데, 한 더미 내놓은 빨랫감을 정성스레 빨아 널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걸레질을 하고 나니 금세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주인 여자가 외출하면 그래도 눈치껏 쉬기도 할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방에서 꼼짝도 안 한다. 방안에서 뭐 재미난 것을 보는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부엌까지 들린다.

사방에 어둠이 깔려도 이 집은 아무 걱정이 없다. 환한 전등불이 켜지니 대낮같이 밝기만 하다. 저녁 설거지에 마무리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바로 건너편인데도 퍽이나 멀게 느껴진다. 물에 빠진 솜뭉치마냥 다리 하나 들기도 버겁다. 박씨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마을 쪽을 쳐다보며, 희뿌연 하늘 아래 시커먼 마을에서 마르고 지친 새까만 유령들이 모여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정치생활

도강자 처벌, 전시범죄 수준으로 강화

중앙당은 국경연선지역의 경우, 도당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 애도 기한을 100일로 정하고, 그 안에 도강을 시도하거나 손전화기를 사용하면 전시범죄로 다스리겠다”는 지시문을 내렸다. “1월 12일부터는 한 사람당 30kg 이상 되는 식량을 가지고 다닐 때에는 무조건 전량 몰수하기로 한다”는 통지문도 나왔다. 주민들은 식량 장사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냐며 불만이다. 올해부터는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강연을 들은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먹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법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서 얼마나 모질게 달고 쥐고 볶는지, 날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주민들은 모였다하면 “빨리 정책이 바뀌어서 중국처럼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