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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4호

■ 경제활동

국경연선 검열 강화에 주민 불만 고조

국경연선 지역 주민들은 계속 강화되고 있는 검열에 점차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의 숙박검열과 도로 검문검색 외에 가계표, 학력, 경력, 사진 등을 제출하도록 한 것이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로 이어졌다.

“주민등록 문건에 다 있는 것을 왜 자꾸 시끄럽게 구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을 돈이 있으면 국수라도 사먹겠다. 정말 사람들을 숨도 못 쉬게 하자고 잡도리를 하는구나. 아무리 쪼여도 제 할 짓은 다 하는데 잡을 건 못 잡고 괜히 백성들만 묶으려 한다.”고 말한다.

국경연선 지역의 단속 검열초소가 늘어나 검열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불만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새로 배치된 단속초소의 보안원이나 군인 중에는 단속 규정을 제대로 몰라 해당되지 않는 사람까지 단속하는 바람에 “단속자들이 검열할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단속을 하는가? 애매한 사람들과 해보지 말고 국가 밥 먹으며 진짜 간첩이나 잡아보라”는 노골적인 야유를 받기도 한다. 이래저래 각종 단속검열이 계속 이어지면서 생활의 불편과 생계에 지장을 받게 되자 주민들이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44호)

회령시 마을 건설 중단 – 2006년 12월

올 2월 27일에 협의하고, 3-4월부터 추진해 진행해왔던 회령시 마을 건설이 중단되었다. 내각부부장을 행정책임자로 도당부부장을 정치책임자로 하여 조직되었던 시 건설 지휘부가 겨울에는 건설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회령시 마을 건설은 2007년 12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탄생 90돌을 기념하기 위해 내각에서 책임자가 내려와 공을 들인 사업이었다.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되어 온 사업이 중단된 것은 시멘트, 강재 등을 비롯한 자재 공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공급받은 자재조차 일부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바람에 자재 누수가 심했다. 실태가 이러하니 당분간 공사는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공사가 재개되어 마무리되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4호)

10월부터 시장 판매 금지 물품 공고 – 2006년 12월

전국 모든 시장에서는 10월 11일부터 일제히 다음과 같은 물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방침이 내려졌다. 군용물품이 최우선 제한 물품이다. 군복과 모자, 허리띠, 견장, 군화, 통신선 등 군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민간인이 사용할 수 없으며, 특히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준 전시 체제로 군용물품의 사회 누수 현상을 막고 부족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이다.

이 외에 각 기업소나 공장에서 뜯어온 생산용 기계설비나 자재, 원료 등도 거래가 금지된다. 가정 살림살이로는 가구, 침대, 침대시트, 소파를 비롯해 냉장고, TV, 녹음기, 비디오, 컴퓨터용 CD, 선풍기, 가스통 등이 금지 물품에 올랐다. 식료품으로는 수입산 과일류, 수입산 과자(껌), 돼지고기, 개인이 만든 밀주, 맥주 등이 거래 금지 품목이고, 중고 자전거와 비닐 레자, 수입산 그림, 꽃, 대형 거울 등도 거래가 금지된다. 여기에 암암리에 거래되어오던 남한과 미국산 상품들도 다시 한 번 거래 금지 품목으로 못 박았다. 특이한 점은 여성들의 피임도구와 피임약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한 점이다. 피임도구와 피임약은 출산장려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거래를 중단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내려진 일부 품목의 시장 거래 금지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존에도 여러 차례 이런 방침이 내려왔다. 북한 당국이 위 물품들의 시장 거래를 금지시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시장 판매에 비해 국영상점이나 외화상점 판매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이유가 크다. 가격이나 질, 종류 면에서 시장 판매 물품이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국영상점의 판매율이 매우 저조하다.

소파, 침대, 가구 들이나 중고 자전거 등을 국영상점이 아니라 개인에게 사면 자체 주문 제작할 수도 있고, 중고 물품이라 하더라도 말끔하게 정비가 잘 되며, 종류가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그리고 배달도 된다. 국영상점에 가서 질 나쁜 상품을 두 배 이상의 비싼 가격에 사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국에서는 고육지책으로 번번이 시장 판매를 금지시킨다는 방침을 반복적으로 내리는 중이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 시장에 물건을 내놓고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파 판매합니다’나 ‘중고 자전거 판매’라는 종이쪽지를 몰래 보여주며 구매자를 직접 찾아 개인 집으로 데려가 거래를 하기 때문에 단속에 잘 걸려들지 않는다. 수요자들 역시 “어디 소파 파는 사람 없소?”하고 은밀히 안내자에게 약간의 수수료를 주고 개인 판매자를 찾아간다. 이처럼 살 사람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팔게 되므로, 이 조처가 현실성이 없다는 게 주민들의 중론이다. (44호)

식량가격 떨어질 조짐 안 보여 – 2006년 12월호

10월 들면서 햇곡식 때문에 식량가격이 약간 떨어졌으나 큰 차이는 아니다. 주민들은 앞으로도 식량수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해 식량을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 10월 초 현재 전국의 주요 시장에서는 쌀, 옥수수, 국수, 속도전 가루 등의 식량 가격이 9월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술, 달걀, 식당에서 파는 밥, 국수 등의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있다. 술(농태기) 한 병에 250-300원 하던 가격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고, 달걀 한 알에 300-330원, 식당에서는 달걀 한 알에 350-400원선에 팔린다. 밥과 국수는 600-800원 하다 요즘 1,000-1,200원까지 뛰어올랐다. 주민들은 두세 달 지나면 식량가격이 두 배로 뛰어오를 것이라며 근심에 쌓여 있다. (44호)

전국 주요도시 10월 초순 물가동향표

(단위: kg/북한 원)

지역

품목

신의주남포평성평양사리원해주원산청진함흥
북한쌀850-9009509509508007508901,0501,000
수입쌀9008008008008007208501,000950
한국쌀1,0001,0001,0001,0009008009501,1001,050
안남미600550550550600550600650650
찹쌀1,3001,2001,2001,2001,2501,1001,2001,4001,350
옥수수470450430430400500450500470
옥수수쌀500490460450430520480550510
속도전가루600600600600580650600650620
밀가루850-900850850850900900900900900
옥수수국수500500490490450530510550520
밀국수500500500500500500500500500
녹말900900900900900900900900900
소금250-300250-300280280250-300250-300250-300250-300250-300
된장200200200200200200200200200
휘발유3,2003,0003,0003,0003,2003,2003,2003,1003,100
디젤유2,6002,6002,7002,5002,6002,7002,7002,7002,700
사과1,500-

2,000

1,500-

2,000

1,8001,7001,5001,6001,7001,500-

2,000

1,500-

2,000

450450450400400450450450450
수박1,0001,0001,0001,0008001,0001,0001,1001,000
맛내기4,5004,4004,4004,4004,5004,6004,5004,6004,600
사탕가루3,6003,4003,5003,5003,6003,6003,6003,8003,700
무우160150150150120120140160160
배추200200200200200200200200200
달라(100)29만2천29만1천29만1천29만29만1천29만2천29만1천29만2천29만2천
위안화

(100)

36,60036,50036,50036,50036,40036,40036,40036,50036,500

대학생 규찰대, 주민 옷차림 단속

대학생 규찰대들은 전국 주요 도신의 시내에 나와 단속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10월에 떨어진 장군님 방침 관철이라면서, 옷에 초상 휘장을 달지 않았거나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찐바지를 입은 여성들, 귀걸이를 한 여성들을 자본주의 바람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단속하고 있다. 북한 당국에서는 옷차림이나 머리모양 등 용모에서부터 자본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 현상이 시작된다고 보고, 상당히 예민하게 주시한다.

나팔바지를 입거나 귀걸이를 하는 등 이른바 ‘튀는’ 행색을 하고 다니는 여성들은 자기도 모르게 보위부 미행국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 여성이 어떻게 그 옷을 입게 되었고, 어떤 경로로 얻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등을 소상히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런 식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는 용모가 사회주의식이 아닌 사람들이 몇 %인지, 어떤 자본주의 바람이 들어와 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통계를 내 지역별로 비교하거나 단속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렇게 단속하니 옷차림새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며 한숨 쉬는 주민들이 많다. (44호)

“핵실험이 우리에게 먹을 것 주오?”

지난 10월 27일에는 전국적으로 이번에 발표한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지지하는 군중집회가 열렸다. 군중집회에는 공장, 학교, 기업소, 단위, 당 및 정권기관, 군대, 사법검찰, 보위부, 안전부 등이 모두 참가했다. 회의에서는 각 계층 대표들에게 토론을 하도록 했는데, 이 토론에는 지하 핵 실험의 성공을 축하하고 앞으로 계속 있게 될 핵 실험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는 핵 실험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함흥시에서 열린 군중집회 때문에 시장이 하루 종일 운영되지 못하자 한 할머니는 “아니, 핵 실험인지 미싸일 실험인지가 우리에게 먹을 것 주오? 집을 주오? 글쎄 말로는 핵 실험이나 미싸일 실험을 계속하여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야 하루라도 시장에 나가 팔아야 먹고 살지, 군중집회에 참가하면 어떻게 하오. 오래 사니 별꼴 다 보오, 왜정 때도 이렇게는 살기 힘들지 않았소. 전기 하나 주지 못해 까막 나라에 살지. 배급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들지. 우리 백성들에게는 참으라 기다리라고 하면서 저희들은 제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매일 이렇게 들볶아 대면 우리는 어떻게 사오?” 라고 근심에 쌓여 말했다.

“시키는 일만 하는 머저리로 한평생 살아오다보니 후회막급”

사회의 경제 체제가 변화함에 따라 주민들의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은퇴하기 전까지 시 보위부에서 일했던 한 노인은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난이 오기 전까지 그는 다른 데 눈 돌릴 생각 한 번 안하고, 자기 일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연로보장(은퇴)을 하더라도 하루 배급 600g에 돈 2,500원을 받기 때문에 노년을 그럭저럭 영위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고 후회했다.

“내가 머저리로 살아왔다. 시키는 일만 하다가 제대되니 그 이튿날부터 제 손으로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도 어렵게 되었다. 배급을 주나, 연로 보장금을 제때에 주나, 동네 사람들은 보위부 사람이라고 사람 백정으로 생각하면서 곁을 주기 싫어한다. 먹고 살기 위해 산속에 부대기 밭을 일구고 봄부터 가을까지 강냉이를 씹으며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머리가 희어지고 허리가 구부러져도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도 힘들게 되었다. 통일, 통일하면서 잘 살날이 온다 하기에 시키는 일만 해보니 머저리 짓이었다. 누가 이제 와서 알아주길 하나, 도와주길 하나, 정말 힘들다. 인민반에서는 내라는 소리, 동원 나오라는 소리가 점점 늘어나니 언제 눈코 뜰 새가 없다. 정말 지난 시기에는 나쁜 놈만 잡아들이고 취급하던 내가 이제는 반동이 되는 것 같다. 우리도 잘 살자면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안 될 것 같다. 너무도 모르고 속아 살아온 나도 머저리다.”라고 말했다.

집 팔아야 대학 졸업할 수 있어

대학교나 전문학교 등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했다가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함흥 의과대학에 다녔던 한 제대군인 학생은 더 이상 집에 손 벌릴 수도 없고, 공부를 다 마치더라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고민 끝에 자퇴했다고 한다.

“군에 있을 때는 제대되어 공부하면 간부라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대학에 정작 가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고 느꼈습니다. 추천을 받느라고 뇌물을 먹인 것이 5만원,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하자니 한 달에 5만원, 학교 꾸리는 비용, 물자지원비, 동원 갈 때 내는 밥값에 심지어 화목 값까지 등등 학교에서 내라는 돈을 합하면 무려 10만 원 이상 들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무엇으로 돈을 대겠습니까?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어야지 내가 공부해서 그 많은 돈을 무엇으로 벌겠습니까? 내가 공부하고 나면 우리 집은 집까지 팔아야 할 겁니다. 학교에 가보니 다 돈이 선생 노릇하는데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공부도 못하겠습니다. 이런 꼴 이런 생활을 하자고 내가 10년이나 군사복무를 하면서 고생했겠습니까? 이제와 생각해보니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했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뿐입니다. 이제라도 고생한 집안 식구들을 위해 장사를 하든 도적질이던 싸움이던 아무 짓이라도 해서 돈을 벌 생각밖에 없습니다.”고 말했다.

회령시, 10월 배급 실시

10월 들어 회령시에서는 오랜만에 식량 배급을 주었다. 14kg씩 주었는데 배급을 타본지가 오래되어 자기 배급 카드 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배급소에 와본지 너무 오래되니 카드 번호까지 잊어먹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시선집중

소토지 농사 소출이 작년의 1/3 – 2006년 11월

소토지 농사 소출이 작년의 1/3

가을걷이가 한창인 요즘 농민들의 깊게 패인 주름이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다. 소토지 농사 소출이 작년의 1/3 수준에 불과해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토지 농사 소출이 이같이 크게 떨어진 이유는 북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지난여름 수해로 유실된 농경지가 많아 농사를 망쳤고, 국경지역에서는 가뭄으로 농사 수확량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에 비해 소토지 농사를 짓는 농가 수가 줄어든 것도 농사 소출 감소의 한 원인이다. 작년 겨울, 배급제를 재개하기 위해 북한 정부는 소토지를 의무적으로 등록시키고 세금을 내도록 방침을 내렸다. 토지세는 토지세대로 내야 하는데다, 만약 소토지 농사를 지으면 배급을 못 받는 대신 오히려 당국에 자신이 지은 농산물을 배급량으로 계산해서 바치게 되어 있어 주민들 중 상당수가 소토지 농사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앞으로 식량난이 심상치 않을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앞 다퉈 1-3톤씩의 옥수수를 사들여 저장하고 있다. 반면 힘없고 돈 없는 농민들이 기댈 데라곤 협동농장의 농작물밖에 없다. 농민들은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내년 식량예비를 위해 부지런히 농작물을 훔쳐내고 있다. 긴 옷과 장화를 신고 나가 일하는 틈틈이 벼나 옥수수, 콩을 주머니나 장화 안에 넣어 집에 가져간다. 하루에 이렇게 빠지는 식량도 한 사람당 보통 1-3kg 가량 된다. 농민들은 가을철에 이렇게 하지 못하면 내년에 살아가기가 더 막막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에 유통되는 군용물품 수거 중-2006년 11월

무력부 경무부에서는 기차나 자동차, 버스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짐을 검사해서 만약 군용물품이 있으면 무조건 몰수하고 있다. 10월 10일 원산 역 앞에서는 자강도에서 온 형이 군에서 막 제대한 동생을 마중 나왔다가 단속에 걸렸다. 동생이 제대하면서 챙겨 온 짐이 화근이었다. 짐 보따리를 풀어보니 군복무 10년 동안 부지런히 모은 군용물품이 쏟아져 나와 모두 몰수당할 수밖에 없었다. 군부에서는 군인의 군복, 신발, 허리띠, 모자 등 군용물품 공급량이 날로 줄어들자 민간에 새나가는 군용물품들을 우선적으로 회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