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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한소식 49호

■ 시선집중

누구나 다 인민반을 강화하기 위한 사엽에 적극 떨쳐나서자-2006년 12월

“누구나 다 인민반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적극 떨쳐나서자”

인민반 소속원들과 간부들을 대상으로 인민반사업을 강화하자는 요지의 군중 및 강연자료가 지난 11월 전국 각지에 내려졌다. 「누구나 다 인민반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적극 떨쳐나서자」라는 제목의 이 강연자료를 보면, 서두에 인민반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식 사회주의제도’를 고수하면서 동시에 우월성을 발양하기 위한 목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이른바 ‘적’들이 북한을 ‘고립압살’하고 주민들의 생활방식과 사상을 변화시키려는 데 대해 인민반사업을 강화함으로써 내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적들의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짓부시어 온갖 비사회주의적 현상들을 없애기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인민반사업에 성실히 참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 “불순 록화물을 몰래 보거나 류포시키는 현상, 차판 장사를 하는 현상, 돈을 받고 불건전한자들을 숙박시키거나 집을 빌려주는 현상, 밀주행위 등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의 대다수가 사람들의 생활거점인 인민반들에서 나타난다”며 이와 같은 일들이 혹여 자신의 인민반에서 나타나지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일을 보고도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 하여 못 본체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주민들이 예전만큼 이웃들의 생활방식에 철저하게 감시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회 전반에 무관심한 태도가 만연해있다. “그런데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어떤가. 서로 담을 쌓고 옆집, 윗집 일에 무관심하며 인민반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일반적인 상태이다. 이는 간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금 일부 일군들이 자기가 속한 인민반도 잘 모르고 반장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옳지 않다. 일군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이런 현상들이 없는가를 돌이켜보고 인민반사업에 성실히 참가해야 한다”며 간부들에게도 인민반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하고 있다. 강연 내용 전반을 살펴보면 ‘말기층조직’이라고 하는 인민반의 조직생활이 생각 이상으로 느슨해져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민반 동원에 주민들 몸살 앓아-2006년 12월

인민반 동원에 주민들 몸살 앓아

인민반원들이 각종 동원과 거두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함흥시 성천강구역의 가두 인민반원들은 세대 동원과 유휴자재 거두기로 매일같이 들볶이는 것에 불평의 소리가 높다. 세대주들은 아침마다 동에서 조직하는 까벨선(케이블)공사에 동원되는데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나가야 한다. 만약 동원에 나가지 못하면 2,000원을 내야 한다. 파철, 파지, 파비닐 바치기 운동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또한 정량을 바치지 못하면 현금으로 1,000-1,500원을 내게 되어있다. 직장에 하루도 결근하지 않는, 이른바 ‘만출근’을 해도 2,000원 가량의 적은 임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다. 돈이 많거나 장사를 다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에 당국이 보수 없이 일시키는 것에 주민들의 심정적 저항이 심해지고 있다.

남편 없이 두 자녀를 데리고 사는 한 아주머니는 아침 동원에 나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돈을 내라는 소리에 “아침마다 동원시키면 아이들 밥은 누가 하고 학교는 어떻게 보냅니까? 공장, 기업소들이 다 서있는데 그런 일이나 시킬 것이지 제일 부려먹기 쉬운 가두(주부)까지 동원시키고 돈을 내라 하니 이거야 억울해서 견디겠습니까? 동원을 시키면 돈이나 배급이라도 주어야지 공짜로 시켜 먹으면서도 당당히 소리치니 어디 바른 처사가 됩니까?”하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처럼 예전과 달리 국가에서 무보수 노동을 시키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비판의 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 경제활동

신발부터 교복까지 학생들 자체 부담

인민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교복을 공급받지 못한 지 오래되어 천을 사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입는다. 인민학교 학생들이 신발부터 교복, 모자까지 만들어 착용하려면 보통 2만 원 이상의 돈이 든다. 중학생은 3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며, 대학생의 경우 남학생은 4만 원 가량, 여학생들은 치마와 저고리까지 해서 약 7-8만 원 이상의 돈이 든다. 학교에서는 될 수 있으면 교복을 착용하도록 권유하고 있어 교복을 입지 못하는 학생들로서는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무상교육이 유명무실해진 지 이미 10년이 훨씬 지나면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이 날이 갈수록 커져 차라리 공식적으로 학비를 거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소연할 정도이다. 반면 젊은 부부들은 자녀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자녀를 한두 명만 낳거나 아예 자녀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나 혼자 고생하기도 힘든데 자식까지 고생시켜야 하겠습니까?”라는 것이 요즘 젊은 부부의 솔직한 심경이다.

전국 주요도시 11월 중순 물가동향표 (49호)

(단위: kg/북한 원)

지역

품목

회령청진함흥혜산원산사리원해주평성남포신의주
북한쌀1,0501,1001,0501,1009007507009009001,000
중국쌀850870870850850700650850850900
한국쌀8709009001,000850700650850850900
옥수수320430450450350300400360350350
밀가루600-

900

600-

900

700-

900

600-

900

600-

900

700-

900

700-

900

600-

800

600-

800

600-

900

밀가루국수600500600500600600600500500500
두부(1모)200250250200250300300250250250
두부콩550600600500520570570600600550
사과(1알)400300200500400250250300300400
돼지고기2,5002,7002,8002,5003,0002,6002,6002,8002,8002,800
달걀(1알)250300300300300270270270280300
냉동명태

(1마리)

2,5002,2002,7003,0002,4002,6002,8002,6002,5002,800
마른명태

(1마리)

3,0002,7003,0003,5002,7003,2003,3003,2003,0003,500
마른낙지*

(20마리)

6,000-

10,000

5,000-

11,000

5,000-

11,000

6,500-

10,000

5,000-

11,000

6,000-

11,000

5,000-

10,000

6,000-

11,000

5,500-

11,000

5,500-

12,000

콩기름2,8002,8002,8002,9002,8002,8002,8002,7002,6002,800
소금250250250300250250200250200200
된장250250250250250250250250250250
맛내기4,6004,5004,5004,6004,5004,6004,6004,5004,4004,500
사탕가루2,1002,0002,0002,2002,0002,0002,2002,0002,0002,100
무우150200150200200100100100100200
배추250250250350300200200200200250
휘발유3,2003,1003,3003,3003,2003,2003,2003,1003,1003,200
디젤유2,6002,5002,7002,7002,7002,7002,7002,6002,7002,700
달라(100)30만5천30만6천30만6천30만4천30만3천30만3천30만2천30만4천30만4천30만5천
위안화(100)38,50038,60038,50038,60038,50038,40038,30038,40038,40038,600
*마른 낙지는 한국의 마른 오징어

자살한 아버지의 유언, “제 손만 믿고 살아라”

평안남도 신양군 인평에서 수해를 입고 산중 밭에 초막을 짓고 살던 한 농장원이 계속되는 굶주림과 한파를 못 이겨 서슬(간수)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올해 57세인 그는 아내와 딸이 밖에 일하러 나간 사이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서슬을 먹고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침 초막에 돌아온 딸이 아버지를 발견하고 급히 흔들어 깨우자, 아버지는 “미안하다. 나 혼자 이렇게 가서. 식량도, 덮을 것도 없이 너희들 앞날이 어떻게 되겠는지 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나를 욕 많이 해라. 앞으로 제 손만 믿고 살아라. 나처럼 시키는 대로 머저리처럼 살지 말고”라는 유언을 남긴 뒤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그동안 집이 언제 복구될 지 기약 없이 초막에서 기다리다가는 산중 강추위에 얼어 죽을 것이 뻔하다며 가족들의 생계에 시름이 매우 깊었다고 한다. 딸은 세대주로서 가족을 보살필 능력이 안 된다는 자괴감에 빠진 아버지가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며 울먹였다. 한편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집안에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몰라 술을 잘 못 마셔 목숨을 잃은 것으로 마을에 알렸으나 마을 주민 중에 사정을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강추위에 노부부 수재민 목숨 잃어

지난 11월 10일, 신양군에 인접한 거흥골에서 수해 피해로 초막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던 한 노부부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돌아온 아들은 신양읍의 집 건설 노력 동원에 나가있었고, 역시 군에서 제대한 딸은 어떻게든 하루빨리 집을 마련해보려고 평성에 가 있었다. 자녀들이 집을 비운 동안 노인들끼리 수재민 구제미를 받아 간신히 굶주림은 면해왔으나 본격적으로 영하로 뚝 떨어진 추위에는 꼼짝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지원해 준 모포 두 장으로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들과 딸은 집을 떠나기 전에 “이 땅에서 최하층으로 살면서 한 생을 땅과 씨름해온 우리이지만 생전에 마지막으로 저 남조선 사람들이 보내준 구제미 덕에 밥을 먹으며 살아보고 모포라도 덮어보게 되였으니 잊어지지가 않는다. 국가에서 집을 지어 준다지만 언제 제 집에 가겠느냐. 너희들은 제 손만 믿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라”고 했던 부모님의 말씀이 이제는 유언이 되고 말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제 손만 믿고 살라”는 말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대량아사를 겪으면서 주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다.

“이제는 추워서 잠자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한파가 본격적으로 밀어닥치면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꽃제비를 비롯한 취약계층의 겨울살이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저녁만 되면 김책시 성진제강소의 재무지에는 13-16세 사이의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온기를 찾아 모여들고 있다. 올해 열 세 살 된 한 남자아이는 “여름에는 그런대로 먹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추워서 잠자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며칠 전에는 신발을 하나 얻자고 도적질하다 붙잡혀 매만 맞았습니다. 역 대합실도 들여놓지 않으니 어디서 자겠습니까? 여기 재무지가 우리에겐 집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김책-고원행 열차에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거나 심부름으로 살아가는 꽃제비들이 많다. 청진-평양행 24열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열차원들은 “저 아이들을 보면 불쌍한 생각만 든다. 부모들은 저 자식들을 한번 봐야 한다. 열한 살 먹은 애가 무슨 철이 있다고 어린 동생을 먹여 살리며 이 렬차안에서 세 달째나 살고 있겠는가, 이 렬차 칸이 저 아이들의 집이고 식당 칸으로 되고 있다”고 측은해했다.

고원 역과 시장 주변에도 여전히 꽃제비 아이들과 노인들이 세숫물이나 비누, 수건, 양칫물 등을 팔며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열차를 기다리거나 정차하는 동안 열차 승객들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한 사람당 보통 100-150원을 받고 있다. 어디에서든 “세수하세요, 더운 물입니다”고 외치며 다니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원역에 상주하는 한 14살 여자 아이는 새까만 얼굴에 두 눈만 반짝이는데 보기에도 시릴 정도로 종아리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바지에 반팔 상의를 입고, 맨발에 다 헤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키 작은 아이가 가만히 서 있으면 춥다면서, 힘이 없는데도 부지런히 걷고 뛰면서 심부름과 동냥을 얻으러 다니느라 바빴다.

고원역의 한 관리원은 꽃제비들이 역 대합실에 드나들면 도적질을 하니 어서 내쫓으라고 소리치는 손님들에게 “자식 가진 부모들이 그런 말을 하면 되겠는가. 이 애들을 내 쫓으면 아이들이 어디서 잠을 자겠소. 제 새끼로 생각하고 여기서 바람이라도 막게 내버려 두시오”라며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님들은 스무 명 넘는 꽃제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합실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바람에 몸에 가득한 이가 옮는다며 여전히 불만이 높다.

회령 남문시장 통폐합 시점 2-3년 후로 연기

얼마 전 함경북도 회령시의 시장에서 상인들과 주민들이 당국의 시장 관리 방침에 반발, 항의 시위를 벌여 3개월 동안 1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에 전해진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있었던 사건과 알려진 내용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지난 10월 27일 남문동에 위치한 시장을 성천중학교 자리로 옮기면서 작은 시장들을 하나로 통폐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을 옮기기 전 날 한 시장관리원이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과 언쟁을 하다가 아주머니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시장 관리원은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혀 예전부터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날도 장사를 하는 한 아주머니와 시비가 붙었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아주머니들이 감정이 격해져서 우발적으로 관리원 폭행에 가담하게 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장 보안원이 폭행에 가담한 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집단 항의 시위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주민들을 배려하는 세밀하고 합리적인 계획 속에 시장을 옮긴 것이 아니었기에,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평과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남문 시장의 약 2,000석의 매대를 사용하기 위해 상인들은 약 5만원의 장세를 지불했는데, 새로 단장한 남문시장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는 데 따른 불만이 일어났다. 다들 “이게 웬일이냐. 금방 옮겨온 것을 그만두라니. 다른 데 옮기면 또 돈을 내야하는 거 아니냐. 이거 도대체 무엇을 어쩌자는 거냐”는 식의 말들을 주고받은 적은 있어도 구호를 외치면서 항의를 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회령시 인민위원회에서도 남문시장에 이미 투자를 많이 했는데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허물어뜨린다는 것은 낭비이며, 새 시장을 건설하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그럴만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함경북도에 계속 제기했다. 도에서는 이 의견을 받아 남문시장을 앞으로 2-3년 더 연장 운영하도록 결정하고, 여기에서 새 시장 건설비용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단 2-3년 후에는 새 시장으로 옮길 것을 재차 지시했다.

인민반 강연 아무리 자주해도 소귀에 경 읽기

국경연선지역 도시들에서는 인민반별로 자주 강연회를 갖고 있다. 보위부나 보안서, 또는 시당의 교원들이 강연자로 내려와 ‘비법월경을 하지 말 것, 손전화기를 사용하지 말 것, 타고장에서 온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숙박시키거나 친척, 친우들을 신고 없이 숙박시키지 말 것, 마약을 밀수하거나 사용하지 말 것’ 등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오히려 주민들은 어떻게든 강연회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강연 내용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속과 처벌을 한다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피해가고 돈 없는 사람들 중에 재수 없는 사람만 호되게 당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주민들이 없기 때문이다. 즉 돈만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문제 혹은 그와 유사한 정치적 문제로 걸리지만 않으면 다들 모른 체하거나 눈감아주는 분위기이다.

주민들에게 가장 다급한 문제는 비법월경, 손전화기 사용 등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식량을 1kg라도 더 확보하고, 난방용 석탄이나 땔감을 구해 올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황해남도 해주나 황해북도 사리원 등 곡창지대의 경우 예년 같으면 지금이 쌀값이 가장 싸야 할 시기인데도 좀처럼 700원대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쌀이 생산되지 않는 다른 지역의 식량가격 역시 계속해서 900-1,1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이 모였다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식량문제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게다가 10월 초부터 끊긴 전기와 수돗물이 여전히 공급되지 않고 있고,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한파에 땔감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주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가는 “한두 달도 못 가 모조리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우성이 높다. 또 “움직일 수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살 길 찾아 떠나자”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니 주민들로선 당에서 아무리 비법월경을 하지 말라, 마약밀매를 하지 말라는 강연을 주입한다고 한들 과연 어느 누가 듣겠느냐며 냉소할 뿐이다.